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 - 제일 2세 김창생 에세이
김창생 지음, 양순주 옮김 / 신생(전망)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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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51


재일2세부터 4세까지, 모두 같은 이웃
―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
 김창생/양순주 옮김
 전망, 2018.4.3.


내 모어는 일본어이며 감성 역시 일본어로 형성되었다. 그런 내가 오빠의 강요로 고교 3년간을 민족학교에 다녔다. 본명을 대고 조국의 역사와 언어를 배우는 과정 속에서 나의 뒤틀림이 무지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 (42쪽)


  1951년에 일본 오사카 이카이노에서 태어난 분은 일본말을 듣고 쓰고 배우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이녁 어버이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며 제주말을 듣고 쓰고 배우면서 자랐다지요. 이녁한테는 손녀가 있고, 손녀는 영화 〈귀향〉에 나왔다고 하는데, 이 영화에는 손녀뿐 아니라 이녁 딸도 나왔대요.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김창생/양순주 옮김, 전망, 2018)을 읽으면 영화 〈귀향〉하고 얽혀서 일본 ‘넷 우익(극우 사이트 사람들)’이 글쓴이를 괴롭히는 이야기가 살며시 나옵니다. 글쓴이는 손녀가 영화 〈귀향〉에 나왔기에 몹시 대견스러우면서 자랑스러웠다고 해요. 우리 아픈 발자국을 돌아보는 뜻있는 영화에 나오며 우리 옛자취를 찬찬히 돌아보고 배우는 손녀가 이뻐 보였다지요.

  그런데 일본 ‘넷 우익’은 영화 〈귀향〉에 흐르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라고 외치면서, 이 영화에 나오는 글쓴이 손녀가 ‘일본에서 살아가기 힘들’리라는 말을 쏟아내었다고 합니다.

  영화 하나가 달래려고 하는 아픈 넋은 어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 나와서 오늘 우리한테 무엇을 보고 생각하면서 삶을 새롭게 가꾸어야 할까 하고 밝히는 넋은 오늘 이야기입니다.


재일4세인 나의 사랑스러운 손녀가 (영화 〈귀향〉에서) 주인공 정민 역을 연기했다. 일본 상황을 고려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을 들여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손녀가 살아갈 일본의 현실에. 넷 우익의 충실하고 부지런함에……. 치가 떨렸다. (176쪽)


  출입국 심사대에서는 국적을 따집니다. 그 국적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마음앓이를 했는지는 살피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적을 매기는 정치나 사회를 헤아릴 틈이 없습니다. 지구라는 별에서 나라가 서로 평등하거나 평화로우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 돈을 풀어 준다는 외국 관광객한테는 문을 열되, 한겨레한테는 국적 때문에 문을 열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어떤 길을 가는 모습일까요.

  그리고 한겨레가 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했을까요. 모든 사람은 생각도 말도 삶도 다르기 마련일 텐데, 생각이 다르대서 서로 죽이고 죽어야 했던 지난날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을까요. 돈이나 계급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사람을 가르던 봉건사회도 어리석지만, 이쪽이냐 저쪽이냐로 갈라서 총칼을 들어야 하던 나날도 어리석습니다. 무엇보다 흙을 가꾸며 살던 이들한테는 이쪽도 저쪽도 없이 ‘마을·보금자리·이웃’이 있을 뿐이었어요. 어느 쪽도 아닌 숱한 사람들은 훤한 낮에 떼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바로 제주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한 해에 2백만 명 이상 방문하는 한국에 조선국적이라는 이유로 조상의 땅을 여지껏 밟지 못하는 재일3세 청년이 있다. (85쪽)

4·3 사건을 직접 겪은 고령자가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보다 더해수다. 그땐 더 심해십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은 이 영화의 가치를 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 평소라면 영화관에 올 일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영화관에 찾아오게 만든 업적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100쪽)


  《제주도의 흙이 된다는 것》을 쓴 분은 늘그막에 가시버시 두 사람이 제주로 삶터를 옮깁니다. 글쓴이 어버이가 제주사람이기는 했어도 글쓴이로서는 그 고장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기에 제주에서 누가 이웃이거나 동무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겨레이지만 한국이라는 터전이 외려 더 낯설 수 있습니다.

  ‘내 뿌리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려고 삶터를 옮겼다고 해요. 일본에서 제주로 삶터를 옮긴 ‘재일2세’인 글쓴이는 틈나는 대로 제주 곳곳을 다니면서 1940년대 끝자락에 아프게 살아야 했던 자취를 마주하려고 합니다. 이녁 어버이가 그무렵 어떤 삶을 치러야 했는가를 느껴 보려 하고, 이녁 또래가 그즈음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느껴 보려 합니다.

  이러던 어느 날,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터에 들어간 적이 있대요. 해군기지를 막아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이곳저곳 걷다가 ‘열린 울타리’ 안쪽으로 살며시 걸음을 옮겨 보는데, 테니스 경기장에, 절에, 교회에 갖가지 건물이 늘어섰다지요.


이곳저곳 걷다 보니 보수공사 중인 해군기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자재를 들여오기 위해 펜스를 열어둔 게 아닌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몰래 들어갔다. 잔디밭이 깔린 테니스코트, 해군을 위한 사원과 교회가 그 옆에 각각 세워져 있었다. 호도는 거대한 선박 때문에 시야에 가려져 볼 수 없었다. (227∼228쪽)


  재일1세라는 이름을, 재일4세라는 이름을, 앞으로 이어질는지 모를 5세나 6세나 7세라는 이름을 가만히 읊어 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이름을 읊어야 할는지, 앞으로는 이런 이름을 털어내고 ‘한이웃’으로 마주할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마을하고 마을 사이에 울타리가 없기를 바랍니다. 고장하고 고장 사이에도, 나라하고 나라 사이에도 울타리가 없기를 바라요. 울타리를 치기에 서로 군대를 두고 으르렁거립니다. 울타리가 없으면 군대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쳐들어갈 일도 쳐들어올 일도 없을 적에 평화와 민주와 평등이 함께 싹틀 수 있지 싶어요. 군대를 지키는 길이 아닌 평화를 지키는 길에서 따사로이 한이웃이 되어 손을 잡을 수 있지 싶습니다.

  제주에서 흙이 되려고 하는 글쓴이는 평화라는 걸음으로 고이 눈을 감고 싶은 꿈을 꿉니다. 이웃을 아끼려는 마음으로, 이웃이 되려는 마음으로, 남남이 아닌 서로 손을 잡으려는 마음으로 마지막 걸음을 곱다시 딛고 싶습니다. 2018.5.1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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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화의 길 - 나의 삶 나의 영화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1
나운규 지음 / 가갸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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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9


어릴 적 들은 구슬픈 아리랑을 영화로 담다
― 조선 영화의 길
 나운규
 가갸날, 2018.4.20.


돈으로 꾸며놓는 화려한 작품은 만들기 어려워도, 단 두 사람이 출연하고 오막살이 세트 하나라도, 실력만 있으면 사람의 가슴을 찔러줄 작품은 만들 수 있다. (15쪽)


  《조선 영화의 길》(나운규, 가갸날, 2018)을 읽습니다. 영화감독 나운규 님이 남긴 글로 엮은 책으로는 《춘사 나운규 전집》(집문당, 2001)이 있습니다. 2001년에 나온 책은 500쪽 가까운 두께로 나운규 님 삶을 두루 밝히려 했다면, 2018년에 나온 책은 176쪽 두께로 나운규 님 넋을 찬찬히 살피도록 이끈다고 할 만합니다. 누구나 이름은 익히 들어 보았어도 정작 목소리로는 알지 못하는 영화감독 숨결을 느끼도록 북돋우려는 《조선 영화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아즈바니, 도사부 잘 드능구마.” 이렇게 써놓으면 타지방 사람은 못 알아보는 모양이다. “아저씨 거짓말 잘하시네.”로 알아들을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지방 사람들이나 알아듣도록 고치려고 해 봤으나, 그것도 절름발이가 되는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중앙언으로 해버렸는데, 이렇게 해놓고 보니 지방색이라고는 아주 아니 난다. (28쪽)


  함경도에서 나고 자란 나운규 님한테는 함경말이 텃말이면서 엄마말입니다. 함경도를 터전으로 영화를 찍을 적에 ‘함경말을 쓰고’ 싶었다지만, 막상 함경말하고 서울말(중앙언)이 매우 다를 뿐 아니라, 다른 고장에서 쓰는 말하고도 달라, 영화로 들려주려는 줄거리를 못 읽을 수 있으리라 느꼈대요. 어쩔 수 없이 서울말을 쓰도록 했지만 아주 섭섭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이라면 영화에서는 함경말을 고스란히 쓰되, 글씨를 서울말로 넣을 수 있습니다. 제주사람 삶자리를 담은 영화를 보면 이렇게 하기도 합니다. 더 헤아린다면, 고장마다 다른 사람들이 고장마다 다른 말을 넉넉히 쓰도록 북돋우면서, 영화에 글씨를 붙여 서울말로 알려주어도 됩니다.

  영화감독 나운규 님이 나중에 글로 밝혀 놓기도 했습니다만, 함경도를 터전으로 찍는데 함경말 아닌 서울말을 쓰면 어쩐지 맛이 없겠지요. 말이란 살림살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목소리이거든요.


그는 옛날에는 환영을 받았다. 그렇지만 옛날의 환영이란 얼굴에 대한 환영이 대부분이었다. 인격이나 배우로서의 기량에 대한 환영이 아니었다. (33쪽)

지금 와서 탄식만 한다면 그런 낡은 썩은 옛이야기를 들추어낼 필요가 없다.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은 것만이 개화가 아니다. 역사란 언제든지 움직인다. (43쪽)

그 사람의 신분이 기생이라고 하자. 그러나 막이 열리고 무대에 나온 이상 한 사람의 배우다. (108쪽)


  오늘 우리는 영화감독 나운규 님한테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느냐고 물을 수 없습니다. 배우는 어떤 눈길이나 잣대로 뽑는지, 배우한테 무엇을 바라는지, 배우는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여러 가지도 물을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영화를 찍으며 얼마나 고단했는지, 일제강점기에 굳이 영화를 찍으려 한 마음은 무엇인지, 일제강점기라는 그때에 어떤 영화를 어떻게 찍어서 이 나라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는지, 이런 궁금한 대목도 물을 수 없어요.

  그러나 나운규 님이 드문드문 남긴 글을 한자리에 그러모으니, 어렴풋하지만, 아쉽지만, 더 살펴볼 수는 없지만, 무척 고맙게 마음으로 묻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구나 싶어요. 짤막하게 스치는 듯한 한두 줄에서 떠난 영화감독 한 사람 목소리를 어림해 봅니다. 참말로 짤막한 한두 줄을 되읽고 또 읽고 거듭 읽으면서,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감독이라는 길을 걷기’란 이와 같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낄 수 있어요.


나는 국경 회령이 내 고향인 만치, 내가 어린 소학생 때에 청진서 회령까지 철도를 놓기 시작하였는데, 그때 남쪽에서 오는 노동자들이 철로 길뚝을 닦으면서 ‘아리랑 아리랑’ 하고 구슬픈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것이 어쩐지 가슴에 충동을 주어서 길 가다가도 그 노래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었어요. 그러고는 애연하고 아름답게 넘어가는 그 멜로디를 혼자 외워 보았답니다. (148쪽)


  나운규 님은 퍽 젊은 나이에 이슬이 되었다고 합니다. 애써 찍은 영화는 툭하면 가위질이요, 가위질되어 줄거리 앞뒤가 끊어지니 다시 찍느라 돈은 돈대로 들고 품은 품대로 들며 마음앓이는 마음앓이대로 해야 하니 언제나 머리가 지끈거렸대요.

  일본 제국주의는 영화감독 한 사람을 총칼을 휘둘러 죽이지 않았습니다. 영화감독 한 사람은 식민지살이를 하며 영화를 제대로 찍기가 너무 벅차면서 괴로워 그만 갑자기 숨을 거두었대요.

  국경에 있던 회령에서 나고 자라며, 그곳으로 일하러 고향을 떠나 멀리 온 한겨레붙이가 구슬프게 부른 아리랑을 가만히 따라하고 외웠던 작은 아이는, 구슬픈 노랫가락 아리랑을 잊지 않았대요. 이 작은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어느새 영화감독이란 자리에 서면서, 어릴 적부터 가슴에 고이 담은 구슬픈 노랫가락을 손수 갈무리하고 노랫말을 새로 입혀서 영화에 담았대요.

  애틋하면서 아련하게 부르던 구슬픈 가락에 사람들 눈시울이 젖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해방 뒤에도 전쟁 뒤에도 군사독재 뒤에도, 앞으로 새로 지을 참다운 민주와 평등과 평화가 드리울 나날 뒤에도, 아리랑은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아름다운 노랫가락으로 흐르겠지요. 2018.5.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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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해고하다
명인 지음 / 삼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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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50


왜 시골사람으로 살려 하느냐?
― 회사를 해고하다
 명인
 삼인, 2018.4.1.


우리는 곧잘 ‘귀농인’으로 분류되곤 하지만, 사실 우리 부부는 그 말을 영 어색해한다. 일찍이 고향을 떠나셨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쭉 서울에서만 살아온 우리에게 애초에 고향이란 없었다. (14쪽)


  《회사를 해고하다》(명인, 삼인, 2018)는 책이름대로 회사를 해고하고서 서울을 떠나 시골에 깃들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회사를 해고하다니, 말이 안 된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만, ‘사표 쓰기’하고 ‘해고하기’는 다를 수 있겠지요. 사표를 쓴다고 할 적에는 돌아갈 틈을 남긴다고 할 테지만, 회사를 해고한다고 밝힐 적에는 돌아갈 틈을 없애며 씩씩하게 나아가겠다는 뜻이 되어요.

  ‘해고(解雇)’라는 한자말은 ‘내보내다’를 뜻합니다. “회사를 해고한다”고 할 적에는 “회사를 내 삶에서 내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밤늦도록 회사에 매이지 않겠다는 이야기요, 주말도 없이 일만 하며 살지 않겠다는 이야기예요. 스스로 삶을 찾아서 하루하루 다르며 새롭게 마주하고 싶다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해가 길어지고 짧아짐에 따라 ‘철’을 배울 차례구나. 2월의 흙과 3월의 흙은 어떻게 다른지, 3월에 먹을 것과 4월에 먹을 것은 어떻게 다른지,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거두는지, 철 따라 할 일이 다르고 철 따라 먹을 것이 다르니 (43쪽)

한 자루나 되는 농작물을 다듬을 때도, 해산물을 씻어 손질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제서야 농사가 기본인 시골집의 정주간이 왜 마루 바깥에 있고 신발을 신고 드나들게 지어졌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5쪽)


  그렇다면 서울을 떠나 시골에 갈 적에 비로소 “회사를 나한테서 내보낼” 수 있을까요? 서울에 살면서도 얼마든지 “회사에 매이지 않는 삶”을 지을 수 있지는 않을까요?

  누구는 서울에 그대로 머물며 회사하고 헤어질 수 있어요. 누구는 굳이 서울에 머물기보다는 시골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꿈을 키울 수 있고요. 《회사를 해고하다》는 회사를 내 삶에서 내보내는 데에서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시골길을 고른 이야기도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시골살이를 모르면 모르는 대로 부딪히며 배우면 되어요. 처음 서울에서 회사살이를 할 적에 회사가 어떤 곳인지 다 알고서 부딪히지는 않습니다.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 틀을 알고, 한 해 두 해 흐르는 사이 저마다 나름대로 몸을 맞추는 길을 찾아요. 시골에서도 이와 같으니, 처음에는 철을 모르면서 살림을 하겠지만, 한두 해나 서너 해를 보내면서 차츰 봄철이며 겨울철을 깨닫습니다. 이윽고 다달이 다른 결을 배우고, 나날이 새로운 바람을 익히지요.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돈 좀 안 벌고 살고 싶어’였지만, 막상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눈을 떠 간다. (118쪽)

그때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뭐가 되고 싶냐’거나 ‘뭘 하고 살 거냐’는 따위의 질문을 나름대로는 삼가는 편이다. 나는 나이 서른에도 몰랐던 걸 왜 애들은 십대 때 이미 알아야 하나? (191쪽)


  회사를 나한테서 내보내고 서울에 머무는 살림이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모로 익숙한 곳에 머물 적에는 새롭게 눈을 뜨기 어려울 수 있어요. 아주 낯선 곳에서 밑바닥부터 다시 허우적거리다 보면, 그동안 느끼거나 알지 못하던 삶을 마주할 수 있어요. 처음으로 마주하면서 배우는 삶이 있어요.

  굳이 서둘러야 하지 않으니, 차근차근 배우는 길을 걷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 돌아보자면 서른 살에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삶을 고작 열 몇 살 아이한테 묻거나 따질 수 없는 줄 배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버이자 어른으로서 마흔 줄에 접어들었어도 여태 몰랐던 시골살림이나 흙살림이라면, 아이들더러 시골이나 흙이나 숲을 좋아하거나 아끼거나 사랑하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기도 하겠지요. 다 같이 첫걸음을 떼는 삶이요, 다 함께 모두 새로 배우는 하루이니까요.


도시에 살 땐 성평등지수에서 대한민국 남성 중 상위 5퍼센트 안에 드는 남자 소리를 듣던 사람이 외지인으로 농촌사회에 빨리 안착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이 ‘가부장성’이라는 건 오래 곱씹어야 할 숙제다. (200쪽)


  《회사를 해고하다》를 쓴 분은 전남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힘씁니다. 처음부터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서 고흥에 깃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시골에 머물 자리’를 찾아서 깃들었고, 요즈막에는 ‘손수 지어서 살아갈 보금자리’를 차근차근 짓는다고 해요.

  이동안 여러 가지를 느끼고 배운다고 합니다. 서울살림이 얼마나 엉성했는가를 느끼면서 배우고, 서울하고 사뭇 다른 시골 성평등지수를 느끼면서 배운다고 합니다.

  저도 늘 느끼는데, 시골에서는 아직도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서 손에 물을 묻힐라’치면 다들 손사래를 칩니다. 사내는 얌전히 앉아서 가시내가 바치는 밥을 먹기만 하면 될 뿐이라고 여긴달까요. 이 낡은 틀을 깨자면 멀었달까요. 같이 짓고 같이 나누고 같이 누리는 길은 아직 시골에서는 아득하달까요.

  그러나 한참 먼 길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회사를 나한테서 내보낼 줄 아는 분들이 하나둘 시골에 깃들어 이 낡은 틀을 맞닥뜨리면서 천천히 손보거나 고치거나 바꾸어 내리라 느껴요. 서울에서도 시골에서도 사내랑 가시내가 함께 밥살림이며 옷살림이며 집살림을 새롭게 가꾸는 길을 열리라 생각합니다. 이 길을 열려면, 우리는 먼저 ‘낡은 틀을 나한테서 내보내기’부터 해야겠지요. 2018.5.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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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청년, 대한민국을 걷다 - 혼자가 되었던 1,000km의 걸음과 24일의 시간
김종건 지음 / 책미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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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6


새길을 찾고 싶어 1000킬로미터를 걷다가
― 50대 청년, 대한민국을 걷다
 김종건
 책미래, 2018.3.3.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쏟아지던 별들은 온데간데없고 따사로운 햇살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대지를 환히 밝히고 있었다. (27쪽)

서울 접어들어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든 게 바쁘다는 것이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나 차량 등 모든 게 휙휙 지나가는 느낌이고 왠지 모르게 분주하다는 느낌이다. 하긴 나도 그 안에 있었을 땐 그렇게 살았다. (31쪽)


  모임지기가 따로 없이, 다달이 하루씩 모여서 자전거를 달리는 ‘발바리(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란 모임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날 서울·인천에 살며 이 모임에 나가곤 했습니다. 충북 충주에서 한동안 살 적에도 다달이 이 모임에 맞추어 새벽 일찍 150킬로미터 넘는 길을 달려서 함께 자전거를 탔지요. 그때에 사람들이 저한테 물었어요. “뭣 하러 힘들게 150킬로미터 넘는 길을 달려와서 굳이 자전거 모임에 나와서 또 달려요?”

  이렇게 묻는 분한테 딱히 할 말은 없었습니다. 그저 빙그레 웃거나, “자전거를 달려 보면 알아요.” 할 뿐이었습니다.


길가에 바로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나도 차를 운전하며 갔다면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으리라. (51쪽)

좌우로 논밭 시골 풍경을 보며 길을 걷는 기분은 방금까지 빗속에서 걸으며 지루하고 무료했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 신선함이었다. (63쪽)


  쉰 줄을 훌쩍 넘긴 아저씨 한 분이 서른 해를 몸담은 일터를 그만두고서 홀로 1000킬로미터를 걷는 마실길을 누볐다고 합니다. 이러고 나서 석 달 동안 바지런히 도서관을 오가며 글을 쓰고 사진을 추슬렀으며, 책까지 내놓았습니다. 《50대 청년, 대한민국을 걷다》(김종건, 책미래, 2018)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1000킬로미터 길을 스물나흘에 걸쳐서 걸은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사람들은 길에서 쉰 줄 아저씨한테 으레 물었다고 해요. “뭣 하러 힘들게 그 먼 길을 걸어요?”

  쉰 줄이어도 ‘젊은이’라고 여기는 아저씨는 숱하게 듣는 물음에 딱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대꾸를 안 했다고 할 만합니다. 걷는 사람한테 “왜 걷느냐?”고 묻는 말이란, 사는 사람한테 “왜 사냐고?”고 묻는 말하고 같아요.

  우리는 굳이 이런 말을 묻지 않습니다. 밥을 먹는 이한테 “왜 먹느냐?”고 묻는 일이란 없어요. 자는 사람한테 “왜 자느냐?”고 묻지 않아요.

  그런데 곰곰이 헤아려 볼 만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늘 숨을 쉬면서 목숨을 잇는데 “숨을 왜 쉴까? 숨이란 뭘까? 무엇을 숨으로 쉬면서 사는가?” 하고 물을 만해요. 왜 배가 고프고, 왜 잠이 오며, 왜 일을 하고, 왜 일을 쉬면서 놀이를 하는가 물을 만합니다. 왜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보금자리를 일구고, 왜 살림을 지으며, 왜 마음에 꿈이라는 씨앗을 품고 살아가는가 같은 대목을 스스로 묻고 이웃이나 동무하고 이야기를 해 볼 만하지 싶습니다.


나는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한참을 쉬었다. 그렇게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으니 그냥 오래 있고 싶었다. 하지만 마냥 쉴 수는 없었다. 나는 오늘의 목적지 추풍령고개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111쪽)

“시방 걸어서 다니는감?” “네―.” “이 더위에 왜 걷남? 참 할 일도 없지 원, 쯧쯧!” (146쪽)

어둠이 깔리고 공원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는 나를 보고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걷느냐고. 이번 도보여행에서 많은 사람이 내게 그렇게 물었을 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51쪽)


  젊은 아저씨 김종건 님은 혼자 길을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이제껏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는지 생각합니다. 이제껏 어떤 꿈을 바라보면서 살았는가 돌아보고, 이제부터 어떠한 꿈길을 누구하고 걸어가려는가를 헤아립니다.

  아직 실마리를 풀지 못했으니 “왜 걷느냐?”고 묻는 말에 대꾸를 못할 수 있습니다. 또는 “왜 걷느냐?” 하고 묻는 말에 재대로 대꾸하면서 슬기롭고 즐겁게 살림을 짓고픈 마음이기에 다시 걷고 새로 걷는다고 할 수 있어요.

  그나저나 《50대 청년, 대한민국을 걷다》를 읽다 보면, 걷고 또 걷는 동안 “왜 걷느냐?”를 생각할 틈이 없기 일쑤입니다. 발목이 붓고 다리가 아프거든요. 등짐이 무겁고 햇볕이 따갑거든요. 갈 길이 멀고 해는 떨어져 어둑어둑하거든요. 밥을 지어 먹을 만한 자리를 못 찾고, 밥집을 살피지만 밥집도 안 보이거든요.


한계는 자기 스스로 규정짓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나는 그런 한계에 익숙해졌고 어떤 때는 미리 안 된다는 판단으로 핑계를 만들기도 했다. (229쪽)

시골은 어둠이 깔리면 모든 게 잠든다. 나는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었다. 늦은 점심을 먹었기에 배는 고프지 않았다. (243쪽)


  “왜 사느냐?” 하고 “왜 걷느냐?” 같은 물음에 스스로 실마리를 찾으려고 걷던 젊은 아저씨 김종건 님은 가슴에 품은 물음보다 코앞에 닥친 어둑어둑한 먼 길에 바쁩니다. 1000킬로미터를 걸어내느냐 마느냐보다 다리가 아프고 발목이 부어서 끙끙거리는 오늘 이 길이 고단합니다.

  걷는 길에 꼭 들르고 싶은 곳을 미리 살폈습니다만, 하루 동안 걸을 길을 헤아리노라면 그만 못 들르기 일쑤입니다. 애써 들렀어도 ‘얼마쯤 더 걸어야 하는가’ 같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워요.

  어느 날은 등짐을 벗어버리고 싶습니다. 때로는 등짐에서 우산이나 여러 가지를 길에 내려놓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자동차를 얻어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어느 날은 누가 말을 걸어 주거나 술 한 잔 건네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은 길에서 놀래키는 매몰찬 운전수 때문에 짜증이 확 일어납니다. 이러다가 어느 때는 길에서 마음 따뜻한 운전수를 만나서 아까 일어나던 짜증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어느 날은 애써 다리를 쉬려고 들른 밥집에서 밥집지기가 차갑게 구는 바람에 밥술을 제대로 안 뜨고 일찌감치 일어섭니다. 어느 날은 밥집에서 푸근한 할머니를 만나 그만 시간 가는 줄 잊은 채 이야기를 듣습니다.


동해안 해안도로를 걷다 보면 어느 곳은 도로가 폐쇄되어 해안을 멀리 돌아 안쪽으로 걸어가게끔 되어 있었다. 그런 곳은 대개가 해안가 철책이 드리워진 출입금지 지역이었다. 동해안 북쪽 해안도로에는 분단의 비극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285쪽)


  《50대 청년, 대한민국을 걷다》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란히 흐릅니다. ‘나도 얼마 앞서까지 저 자리에서 바쁜 개미처럼 일만 했다’고 돌아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오늘 나는 새롭게 삶을 바라보고 싶어 이 길을 조용히 걷는다’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뒤따릅니다. ‘나도 자동차로 움직이기만 하던 때에는 이런 뜻밖인 모습을 늘 놓치고 살았다’고 되새기는 이야기가 새삼스레 흐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두 다리를 믿고 걷는 길처럼, 내 삶에 든든한 다리가 되어 주는 사람이 곁에 있구나’ 하고 돌아보는 이야기가 밑바탕에 잔잔히 흘러요.


짜장면의 양이 너무 많아 더 먹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주인은 내가 국토횡단 하는 걸 알고서 면을 곱빼기로 담은 것이었다. (262쪽)


  새길을 찾고 싶어 1000킬로미터를 걸은 김종건 님은 앞으로 한결 새로운 길을 걸으실 만하지 싶습니다. 스물나흘에 걸친 1000킬로미터는 좀 빡빡합니다. 책에도 곧잘 나오는데, 느긋하게 머물면서 노근리공원이라든지 정지용 집터 같은 곳에서 삶을 찬찬히 돌아보고 싶었다지만, 미리 짠 틀에 맞추어 걸을 길이 잔뜩 남아서 ‘느긋하게 걸으려던 길’이 뜻밖에 ‘바삐 걸어야 하는 길’이 되곤 했답니다.

  꼭 하루 동안 어느 만큼 걸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며칠 사이에 어디까지 가야 하지도 않습니다. 천 킬로미터를 천 날에 걸쳐서 걸을 수 있어요. 하루에 시나 군 한 곳을 잡고서 천천히 걸어서 전국을 두루 돌아볼 수 있습니다. 시라면 하루에 구 한 곳만 두루 거닐어 볼 수 있습니다. 시골 읍내뿐 아니라 면내도, 또는 마을마다 두루 돌아보는 마실길을 누려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어느 시나 군에서 이틀이나 사흘을, 나흘이나 닷새를 머물면서 더 깊고 넓게 거닐어 볼 만합니다.


갓길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데도 갑자기 뒤에서 울리는 화물차 경적은 나를 깜짝 놀라게 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너무 신경 쓸 건 없었다. 나만 손해니까. (97쪽)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켰을 뿐인데 곱빼기로 주고 밥까지 덤으로 주는 밥집이 있어요. 뒤에서 갑자기 빵빵거리며 놀래키듯 괴롭히는 운전수가 있어요. 우리 곁에 숱한 사람이 숱한 모습으로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아름다이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즐겁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습니다. 한결 천천히 걸을 수 있다면,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때로는 함께 냇물을 헤엄치고, 때로는 버스나 택시에 몸을 싣기도 하면서, 이제껏 바라보지 못한 삶을 새롭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나이가 아닌 젊음을 생각하는 뚜벅님 마음밭에 즐겁게 씨앗 한 톨이 깃들었으리라 봅니다. 이 씨앗이 곱디곱게 자라서 이 땅 골골샅샅에 상냥한 꽃 한 송이로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2018.4.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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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 -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수언어에 대하여
요시오카 노보루 지음, 니시 슈쿠 그림, 문방울 옮김 / 시드페이퍼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343


서울말은 사라졌다. 한국말은 안 사라질까?
―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
 요시오카 노보루·니시 슈쿠/문방울 옮김
 SEEDPAPER, 2018.3.12.


[루루흐]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다. 농작물이 많이 자라난 모양
농사는 자연과의 대화. 열심히 한다고 언제나 결실이 약속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풍작은 누구에게나 기쁨을 주고, 웃음 짓게 합니다. 와, 올해는 옥수수가 ‘루루흐’로구나!
- 아야쿠초·케추아어 (90만 명, 페루) : 케추아어족에 속하는 케추아어파 남케추아어군 가운데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언어이다. 페루 남부 산악 지대의 아야쿠초주와 우앙카벨리카주, 아푸 리막주 서부에서 사용하며 아야쿠초어라고도 한다. (15쪽)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요시오카 노보루·니시 슈쿠/문방울 옮김, SEEDPAPER, 2018)은 앞으로 이 지구별에서 사라지겠구나 싶은 말을 어느 곳에서 얼마나 쓰는가를 다룹니다. 쓰는 사람이 100만이 못 되는 말을 하나하나 짚는데, 맨끝에는 쓰는 사람이 0이 된 말을 다룹니다. 고작 3∼5사람만 쓰는 말이라든지, 10사람 즈음 쓰는 말을 다루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다가 ‘마지막 야히’사람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설 무렵, 그곳에서 텃사람으로 살다가 차츰 삶터를 잃다가 마침내 딱 한 사람이 남았고, 마지막 한 사람이 ‘야히 인디언 박물관’에서 ‘박물관사람’으로 있다가  조용히 죽은 일이 있어요. 마지막 야히사람은 숲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흰둥이한테 몸으로 보여주고, 야히사람이 쓰던 야히말을 ‘사전으로 엮을 수 있도록’ 이이가 아는 모든 낱말을 들려주고 뜻을 밝혀 주었다고 합니다.


[오이본] 얼어붙은 호수나 강의 수면에 난 구멍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얼음에 난 구멍에서 건져 올리는 생활. 낚은 물고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을 만큼 혹독하고 기나긴 겨울이지만 천연 저장고 덕분에 풍요롭게 날 수 있어요.
- 사하어 (45만 명, 러시아) : 튀르크어족에 속한다. 사하족의 언어로 러시아 사하 공화국의 공용어이기도 하다. 약 48만 명 정도 되는 사하족 대부분이 사하어를 사용한다. 사하족은 과거 야쿠트족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스스로 사하족이라고 부른다. (27쪽)


  박물관을 짓고 사전을 엮는다면 말이 글로 바뀌어 남을 수 있습니다. 다만 말이 살아남는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말이란, 소리에 담은 생각을 사람 스스로 머리를 움직여 입으로 터뜨려야 말일 테니까요. 종이에 남은 그림은 글일 뿐, 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전을 알뜰히 남기더라도, 입으로 말을 할 적에는 높낮이나 길이가 있어요. 느낌을 담아서 낱말 하나하나를 소리내고, 다시 느낌을 담아서 낱말을 주렁주렁 엮어 월을 이야기하기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쓰는 말은 어떠할까요? 한국사람은 5천만이라는 숫자가 넘으니, 또 북녘이 있고, 일본·중국·중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한겨레가 있으니, 한국말은 사라질 일이 없을까요? 참말로 한국말은 사라지지 않을 만하다고 여겨도 될까요?


[보한타이오흐트] 기분 전환 하거나 잡담을 나누러 집을 방문하는 일
잠깐 잡담이라도 나누러 갈까. 웬만해선 행동의 목적이 되기 어려운 잡담을 일부러 하겠다고 누군가를 찾아가는 건 좋은 일이겠지요. 신빙성도, 요점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러 오는 친구는 소중합니다.
- 아일랜드어 (13만 8000명, 아일랜드) : 인도·유럽어족 켈트어파에 속한다. 아일랜드 전역에서 사용하지만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15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47쪽)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을 읽으면, 머잖아 사라지겠구나 싶은 여러 겨레 말을 짚으면서 낱말 하나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이 말을 쓰는 겨레가 어떤 살림을 어떤 소리값에 담아서 ‘말’로 지어서 생각을 나누었는가를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말이란 그냥 소리값이 아닌 살림을 밝힌 소리값인 셈입니다. 살아가는 결이나 흐름이나 모습이나 이야기를 소리에 얹어서 드러내기에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리를 흉내내기에 말한다고 하지 않아요. 살아가면서 생각이나 뜻을 소리로 밝히기에 말한다고 합니다. 마음 없이 뱉는 소리는 말이 되지 않아요. 마음을 담아 터뜨리는 소리이기에 비로소 말이 되어요.

  바로 이 대목을 헤아릴 수 있다면, 우리 한국말이 나아갈 길을 살짝이나마 어림할 만합니다. 무늬로만, 겉으로만, 껍데기로만, 시늉으로만 살아남을 말이 될는지, 아니면 속알맹이를 야물게 건사하거나 다스릴 줄 아는 말이 될는지, 우리 두 손에 달린 일입니다.


[스카마]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계절
수십 일간 지속되는 춥고 어두운 겨울. 사람들은 별빛과 달빛에 의지하며 생활해요. 눈이 하얀 건 이 시기에 조금이라도 빛을 얻게 해 주려는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고요한 하늘 가득 오로라가 장엄하게 펼쳐지는 것도 즐거움이지요.
- 사미어 (3만 5000명, 스칸디나비아 반도·핀란드·콜라 반도) : 우랄어족 사미 언어에 속한다. 언어 사용자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에 걸쳐 분포해 있다. 사미족의 민족어로 사용자 수는 그들 인구의 약 절반 정도이다. (63쪽)


  곰곰이 따지면 한국에서도 사라진 말이 많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일까요? 한국에서도 사라진 말이 있다니? 그러나 한국에서도 사라진 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서울말’이 사라졌습니다. 매우 뜬금없다고 여기실 분이 있을는지 모르나, 참말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표준말 아닌 서울말이 어느 말보다 일찌감치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우리가 서울이란 고장에서 쓰는 말은 ‘국가 표준말’일 뿐, 서울이라는 고장에서 오랜 나날 텃사람으로 살아오던 사람이 쓰던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서울말 자국은 어디에 남았을까요? 1980년대 첫무렵에 ‘뿌리깊은 나무 민중자서전’이란 책이 나온 적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제 텃마을에서 거의 벗어난 적이 없고,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을 본 일이 거의 없으며, 다른 고장 사람하고 거의 말을 섞은 적이 없는, 그야말로 ‘텃마을 텃사람’을 찾아서 이야기를 듣고, 고스란히 소리값으로 옮긴 책이지요. 이 책에서 ‘서울 텃사람’이 한 분 있는데, 이 서울 텃사람이 입으로 들려준 서울말은 오늘날 ‘국가 표준 서울말’하고 사뭇 다릅니다.

  이런 얼거리로 보면, 우리는 서울말을 비롯해 인천말, 부천말, 안산말, 시흥말, 고양말, 광주말(경기 광주), 수원말 같은, 수도권을 이룬 고장에서 쓰던 말은 모두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제주말을 쓰는 분이 퍽 많으나, 제주말도 살림자리나 문학이나 신문이나 학교 같은 곳에서 널리 쓰지 않는다면, 자취로만 남고 사라질 수 있습니다. 대구말, 부산말, 광주말(광역시)도 지역 신문이나 방송이며 학교에서 두루 쓰지 않으면, 몇 가지 낱말이나 높낮이(억양)만 남을 뿐, 대구말답거나 광주말다운 고장말은 자취를 감출 수 있어요.


[이요만테] 곰을 바치는 제사. 곰의 영혼을 신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의식
새끼 곰(곰의 모습을 한 신)을 잡아 마을에서 일정 기간 정성껏 기르다가 마을사람 모두가 기도하며 곰의 고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그 영혼을 신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제사. 신은 인간 세계에 내려올 때 동물의 모습으로 변신해 살과 가죽을 사람을 위한 선물로 가져온다고 합니다.
- 아이누어 (5명, 훗카이도) : 계통적 고립어이다. 전국의 아이누족 인구는 10만 명 정도이지만 유창한 아이누어 사용자는 훗카이도에 3∼5명뿐이다. (111쪽)


  말이란 언제나 삶입니다. 삶을 고스란히 담는 말입니다. 말이 사라진다고 할 적에는, 말만 사라지지 않고 ‘말로 담아낸 삶’이 나란히 사라집니다. 한국에서 서울말이 사라졌을 적에는 서울이라는 고장에서 손수 살림을 짓던 얼거리가 나란히 사라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서울에서 소비생활을 하던 모습’이 아닌 ‘서울에서 자급자족을 하던 삶’이 사라지면서 서울말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아주 깊은 시골자락에서 사는 분은 드문드문 읍내에 다니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지만, 스스로 살림을 짓는 길을 가기에 오랜 고장말을 입에 달고서 살아갑니다. 제 살림이 있기에 제 말이 있는 얼거리입니다. 손수 짓는 삶이 있기에 오랜 텃말이 몸에 익숙합니다.

  한국은 5천만을 웃도는 숫자가 되니 ‘표준 한국말’은 사라질 일이 없을 만합니다. 다만 한국을 이루는 여러 고장마다 다른 살림을 나타내던 고장말은 가뭇없이 사라질 만합니다. 그리고 표준 한국말은 살아남더라도, 속알이 야문 한국말이 아니라 번역 말씨나 일본 한자말에 휘청거리는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요.

  지구별 곳곳에서 숱한 말이 사라진 까닭은 의사소통 때문입니다. 영어를 써야 의사소통에 좋다고 하면서 매우 많은 나라에서 텃말이 사라졌습니다. 일본 훗카이도에서 아이누말이 사라지려는 까닭도 ‘표준 일본말을 써야 의사소통에 좋기’ 때문입니다.

  의사소통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의사소통만 앞세워 삶이나 살림을 잊거나 등진다면, 의사소통만 앞세우면서 생각을 깊고 넓게 다스리거나 갈고닦는 길을 잊거나 놓친다면, 한국말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2018.4.1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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