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멀미 사진이 있는 에세이 2
차은량 지음 / 눈빛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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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보며 열매를 못 맺고 멀미가 난다면
 [책읽기 삶읽기 61] 차은량, 《꽃멀미》(눈빛,2009)



 사진을 찍는 아버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이는 사진찍기를 놀이처럼 즐깁니다. 아무 손전화나 아이 손에 집히면 사진기 노릇을 합니다.

 사진찍기 놀이를 즐기는 아이는 사진찍기를 문화나 예술로 여기지 않습니다. 심심할 때에 갖고 노는 사진기로 여기고, 아버지가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진기로 생각합니다. 때때로, 망가져서 못 쓰는 필름사진기를 들고 사진찍기 놀이를 합니다. 아이로서는 사진을 찍어 어떤 그림을 맺어야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쥐어 함께 놀 수 있으면 좋을 뿐입니다.

 아이한테 자그마한 디지털사진기를 사 줄까 어림해 보지만, 선뜻 장만하지 못합니다. 곧장 살림돈부터 팍팍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오래도록 갖고 놀 만한 작은 사진기 한 대를 선뜻 장만할 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사진찍기를 하는 아버지 또한 필름사진을 찍을 때에 쓸 필름값을 대기 벅차 쉬엄쉬엄 찍습니다. 필름사진 한 장을 찍을 때마다 돈이 얼마나 드는가를 느낍니다.

 디지털사진을 찍으면서 메모리카드 걱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디지털사진을 찍은 뒤에는 셈틀을 차지하는 파일을 헤아립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찍을 수 있는가를 곱씹고, 셈틀 저장장치가 다 차면 새로 마련할 일을 근심합니다.


.. 아끼던 카메라를 바꿨다. 흔히들 하는 것처럼 업그레이드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몇 단계 다운을 시켰다. 작은 카메라 두 대를 거쳐 급기야는 내 처지에 과분한 카메라를 장만한 날부터 일 년 하고도 수 개월이 지나는 동안 카메라의 노예가 되어 간다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 내지 못했다. 한 개의 렌즈만으로 버티겠다던 애초의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치고 여유돈만 생기면 렌즈를 사들였다. 카메라 가방은 점점 덩치가 커지고 가방을 멘 어깨는 장비의 무게로 한쪽이 기울어졌다 ..  (28쪽)


 사진찍기를 하거나 사진찍기를 하려는 이들은 사진기와 렌즈를 장만합니다. 누군가는 여러 해에 걸쳐 돈을 조금씩 그러모아 장만하고,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카드를 긁어 장만합니다. 장만한 장비를 이내 팔고 다른 장비를 갖추기도 합니다. 사진기 회사에서 새로 내놓은 장비로 갈아타기도 합니다. 사진기 몸통과 렌즈를 여럿 갖추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몸통하고 렌즈를 하나만 갖추고, 누군가는 몸통하고 렌즈를 회사에 따라 숱하게 갖춥니다. 몸통과 렌즈를 하나만 갖춘대서 사진을 못 찍거나 잘못 찍거나 엉터리로 찍지 않습니다. 몸통과 렌즈를 숱하게 갖추었기에 사진을 잘 찍거나 훌륭히 찍거나 사랑스레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너그러운 사랑입니다. 사진은 내 너그러운 사랑을 담는 그릇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한테는 시가 너그러운 사랑이고, 너그러운 사랑을 담는 그릇 노릇을 합니다. 수필을 쓰는 사람한테는 수필 한 꼭지가 사랑이 되고, 너그러운 사랑을 담는 그릇 구실을 합니다.

 시를 백 꼭지 쓰자고 다짐하면서 백 꼭지를 써내지 못합니다. 사진을 백 장 찍자고 다짐하면서 백 장을 찍지 못합니다. 부피로 시 백 꼭지를 채우거나 사진 백 장을 채우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다만, 내 마음을 드러낼 사랑스러운 시나 사진은 하루아침에 만들지 못해요. 내가 살아가는 결에 따라 차근차근 풀어내기만 합니다.


.. 내게는 사진 실력의 향상을 위해 바쳐야 하는 노력보다 카메라와 렌즈의 무게가 더 견뎌 내기 힘들었다 … 열다섯 살 즈음이었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에 어떤 소리들이 있을까 하는 문제로 단짝 친구 복희와 서로의 의견을 논한 적이 있었다. 노랫소리, 새소리, 물소리, 아가의 옹알이 소리에 이어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엄마가 용돈 주시려고 돈 꺼내는 소리’라고 말하자 복희는 ‘엄마가 밥상 차리는 소리’라고 응수했다. 복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나의 저속하기 짝이 없는 대답을 물리고만 싶었다. 복희 못지않게 나도 밥상 차리는 소리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뒤늦게 머리를 쳤던 것이다. ..  (29, 66쪽)


 시를 쓰는 솜씨는 키우지 못합니다. 소설이나 수필을 쓰는 재주 또한 북돋우지 못합니다. 사진을 찍는 솜씨라든지 그림을 그리는 재주 또한 살찌울 수 없어요.

 때로는 손재주를 부려 멋들어져 보이는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나 사진이나 그림을 얻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빼어난 손놀림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작품을 빚기도 합니다.

 그런데, 멋들어져 보이는 작품을 시라고 일컬어도 될까 궁금합니다. 멋스레 보이는 작품이라 하면 사진이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사진과 수필을 엮은 이야기책 《꽃멀미》(눈빛,2009)를 읽습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차은량 님은 당신 삶결에 따라 사진을 찍고 글을 씁니다. 더 잘난 사진이 아니고 더 못난 글이 아닙니다. 돋보이려 하는 사진이 되지 않고, 내보이려 하는 글이 되지 않습니다.


.. 고춧가루도 있고, 파·마늘도 있고, 마침 지난 조치원 장날 도가에서 사다 놓은 새우젓도 있으니 부추만 있으면 되겠다. 텃밭의 부추는 웃자란 순을 얼마 전 베어 낸 뒤로 아직 먹을 만큼 자라지를 못했다. 휑하니 차를 몰고 면소재지로 나가 부추 한 단을 사면서 김장을 담근다는 소문을 내고 왔다 ..  (114쪽)


 차은량 님은 당신이 살아온 결을 찬찬히 풀어놓기 때문에, 차은량 님이 사랑스레 살아온 나날을 사랑스러운 글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좁쌀뱅이나 꽁생원처럼 보낸 나날은 좁쌀뱅이나 꽁생원다운 글과 사진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차은량 님이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녹아들겠지요. 차은량 님이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다니기를 좋아하면 걷기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스며들겠지요. 차은량 님이 자가용을 씽 몰아 휭 오고간다면 자가용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배어들겠지요.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텃밭을 일구고 김치를 담그며 살림도 돌보는 차은량 님인데, 조치원 장날에 시골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오간다면 《꽃멀미》라는 사진수필은 어떤 모양새였을까 궁금합니다. “휑하니 차를 몰고 부추 한 단을 사”는 삶이 아니라 부추가 없으면 텃밭 둘레에서 다른 풀을 뜯거나 멧자락에 들어서 멧나물을 뜯어서 나물김치를 담그는 삶이라면, 《꽃멀미》라는 책이 아니라 ‘꽃소리’나 ‘꽃·새·메’ 같은 책을 내놓았을 수 있겠구나 느낍니다.

 스스럼없을 만큼 수수한 사진과 글이지만, 자가용을 휑하니 타고다니는 사람으로서 수수할 뿐입니다. 시골사람다운 수수함이나 살림하는 일꾼다운 수수함이 짙게 드리우지 못한 사진과 글입니다. (4344.6.4.흙.ㅎㄲㅅㄱ)


― 꽃멀미 (차은량 글·사진,눈빛 펴냄,2009.5.20./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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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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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를 걸었어도 깨닫지 못하는 까닭
 [책읽기 삶읽기 60] 서영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2010)



 걷는 길은 하나가 아닙니다. 곧게 뻗은 한길이더라도, 이 곧게 뻗은 한길을 걷는 사람은 다 다른 모양새와 생각과 느낌입니다. 누군가는 앞만 바라보며 걸을 테고, 누군가는 옆을 두리번거리며 걸을 테며, 누군가는 자꾸자꾸 멈출 테지요. 곧게 뻗은 한길이더라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걷기 때문에 다 다른 생각과 이야기와 느낌이 태어납니다.

 산티아고라 하는 데를 걷는 길 또한, ‘걷는 길은 같다’지만, 이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길을 걸은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르게 느끼거나 품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마련입니다.

 서영은 님이 내놓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2010)라는 책은, 산티아고를 걸었기 때문에 뜻있지 않습니다. 산티아고를 걸었대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네 골목을 걷든, 아파트 골마루를 걷든, 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느끼려 할 때에 느낌이 태어납니다.


.. 대한민국의 중요한 문학상 심사를 거의 도맡아 해온 심사위원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순간 왠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란 것이 부끄러웠다. 그들이 나에게, 내가 그동안 심사를 너무 많이 해온 것을 깨우쳐 주었다. 폭식 … 그 순간 나는 작가로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너무 멀리 떠나 와 있는 것을 느꼈다 … 나는 문학을 시작할 때 내 문학이 있을 자리는, 그 낡은 구두, 제 몸을 아무리 부딪혀도 삶이 양지로 변하지 않는, 또는 끝내 양지 쪽으로 자리를 옮길 수 없는 비통한 증거로서, 다 해진 그 구두가 있는 자리라 여겼다 ..  (15, 16, 17쪽)


 서영은 님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라는 책에서 ‘내려놓기’를 꿈꾼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줍니다. 그렇지만, 막상 서영은 님 스스로 내려놓기를 했다고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내려놓기를 하겠다’는 생각만 잔뜩 드러날 뿐입니다.

 참으로 내려놓기를 할 마음이라면, 굳이 ‘무엇을 내려놓아야지’ 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내려놓았을 테니까요. 제대로 내려놓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 내려놓을 마음이 없는데다가, 어쩌면 내려놓지 않은 채 마지막 삶길까지 걸을 매무새인 터라 ‘내려놓지 못하는 내려놓기’ 이야기가 가득하지 않나 싶습니다.

 문학상이든 작가이든 김동리이든 무엇이 대수롭겠습니까. 교수이든 강사이든 가정주부이든 짝짓기 연인이든 무엇이 대단하겠습니까. 나 스스로 즐거울 삶을 찾아 나 스스로 즐거울 길을 걸으면 됩니다. 문학상 심사를 즐겁고 아름다이 받아들여 옳고 바르게 펼치면 됩니다. 문학상 심사를 안 한대서 더 훌륭하거나 많이 한대서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잘 팔리는 소설을 써서 상도 받고 글삯도 벌어야 좋다 할 만하지 않습니다. 소설꾼 김동리 님하고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건 없건 나한테 따사로운 사람이거나 나한테 커다란 사람이거나 나한테 애틋한 사람이거나 나한테 좋은 사람이면 넉넉합니다.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믿음을 품는다 하고, 마음 깊이 살가이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믿음을 붙잡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단단하기 때문에 믿음을 품기도 하며, 마음 깊이 넉넉히 맞아들이기 때문에 믿음을 붙잡기도 합니다.

 내 삶을 내 손으로 어떻게 일구려 하느냐가 대수롭고, 내 길을 내 발로 어떻게 디디려 하는가가 대단합니다. 돈없는 삶도 내 삶이고 돈있는 삶도 내 삶이에요. 가난하대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지 않고, 가멸차대서 하늘나라에 갈 수 없지 않아요. 어떠한 길을 걸어가며 어떠한 삶을 일구든, 내가 나를 바라보며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매무새이면 알뜰합니다.


.. 내 마음에서는 김동리와의 인연을 다 내려놓고 싶은데, 밖에서는 끊임없이 그의 사진이 필요하다, 육필원고가 필요하다, 작가의 방을 꾸미겠다 등등의 일로 전화가 걸려왔다 … 내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과 비례해서, 내 마음의 여유는 폭우에 깎이는 산의 절개지처럼 세상 속으로 쓸리어 나갔다. 얄팍하고 거짓된 칭찬, 집단심리에 편승한 일시적 관심인 줄 알면서도 나는 높고 낮은 강단에 올라, 독자들의 값싼 호기심에 부응하려고 애썼다 ..  (21, 30쪽)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여행책도 믿음책도 수필책도 아닙니다. 딱히 어느 한 갈래로 넣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돋보이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어냐 하면, 함께 산티아고를 걷는 길동무한테 끝없이 투정을 부리는 대목. 길동무 마음을 살뜰히 읽지 않으며 그예 울타리만 쌓는 대목.


.. “너무 오래 쉬면 일어나기 싫어져요.” 노련한 카미노답게 치타는 앉지도 않고, 사진만 몇 컷 찍은 다음 이내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좋은 경치를 봐도 그냥 스쳐만 간다면, 도대체 이 길은 왜 있는 거야.’ 속으로 투덜대며, 마지못해 떠날 채비를 한다 … 그녀는 제법 많은 굴을 따서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비탈을 낑낑거리고 올라왔다. 몸이 추억을 되찾아가는 방법은 그 몸에 기억된 수고를 재현하는 것일까. 비탈 위에서 치타의 손을 잡아끌면서 나는 그녀가 단순히 먹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관계된 향수를 되찾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  (98, 190쪽)


 서영은 님은 스스로 이토록 낮아지고 싶어 글을 쓰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이토록 낮아지자 다짐하면서 글을 썼는지 모릅니다. 곁에서 사랑을 나누며 내미는 손길을 얼마나 못 받아들이며 얼마나 못 헤아리는가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 이제부터는 참사랑과 참믿음을 찾아나서겠다는 다짐을 펼치려는지 모릅니다.

 ‘좋은 경치’는 ‘한 번 보았으니 됐’습니다. 왜냐하면, 길동무이든 서영은 님이든 ‘좋은 경치’가 있는 곳에서 뿌리를 박으며 살아갈 사람이 아니니까요. ‘좋은 경치’를 보자면서 ‘산티아고 걷기’를 하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좋은 경치’를 보려는 산티아고 걷기가 아니라, ‘내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면서 참다운 삶을 바라보는 고운 넋을 일구려는’ 뜻에서 하려는 산티아고 걷기입니다. 서영은 님 스스로도 밝히고, 이제껏 산티아고를 걸었다는 사람들 또한 밝히는 대목이에요.

 좋은 경치를 보자면 한낱 관광객 아니겠어요. 좋은 경치에 얽매이자면, 한국땅에서 문학상 심사 오래오래 맡고 대학교수 이름쪽 단단히 거머쥐면 됩니다. 좋은 경치 아닌 좋은 삶을 일굴 노릇이고, 좋은 이름값 아닌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자며 마음닦이를 하듯 걷는 산티아고 ‘노란 화살표 길’이라고 느낍니다.

 먼 길을 오래도록 걷는 내내 곁에서 이모저모 챙기고 밥을 차리며 도움말을 끝없이 들려주는 길동무 마음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않으면서 산티아고를 걸었다면, 이 산티아고 걷기란 무슨 보람인가 알쏭달쏭합니다.


.. 도시에 들어서면 순례자들은 이방인이 된다. 도시가 버린 것은 ‘걷기’이다 … 여기까지 오는 길이 고통스러웠으니 산티아고가 거룩하고 성스럽기를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일 수 있다 ..  (108, 365쪽)


 에스파냐 도시이든 칠레 도시이든 일본 도시이든 한국 도시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사람들이 걷도록 놓아주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자동차가 우쭐거립니다. 어느 도시이든 높직한 건물이 가로막습니다. 어느 도시이든 따스한 사람결보다 돈을 앞세웁니다. 어느 도시이든 풀과 나무와 흙이 아닌 시멘트와 아스팔트입니다.

 이러한 도시 얼거리를 일찍부터 알았다면, 서영은 님은 일찌감치 도시를 떠날 노릇입니다. 꼭 산티아고를 걷지 않았어도 슬기롭게 깨달아 아름다이 살아갈 노릇입니다.

 산티아고는 거룩하지 않으니까요. 산티아고는 산티아고이지 서울이나 제주가 아니에요. 산티아고에서는 산티아고를 온몸으로 부대껴서 온마음으로 느껴야 해요. 내가 살아온 대로 보고 느끼며 받아들이는 이야기인 줄을 깨달아야 해요.

 이제 책을 덮습니다. 외롭다고 생각하며 외롭다는 이야기를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수없이 되풀이하는(그렇다고 ‘외로움’이라는 낱말로 외롭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일기책은 덮습니다.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살아가더라도 외롭다고 느낄 수 있고, 사람들한테 둘러싸였으나 내 마음 차분하게 사랑할 길을 찾지 못하기에 외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디, 산티아고에서 한국땅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자리에서 외로움을 떨치거나 예쁘게 껴안으면서 참살길을 보살펴 주기를 바랍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글·사진,문학동네 펴냄,2010.4.8./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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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문장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김철호 지음 / 유토피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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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솜씨가 밥을 먹여 준다지만
 [책읽기 삶읽기 59] 김철호,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문장편》(유토피아,2010)



 사람들은 나날이 학교를 더 오래 다닙니다. 가방끈 길어지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납니다. 나날이 새로운 책이 쏟아집니다. 이 나라 도서관은 퍽 어설프거나 모자라다 하지만, 이곳저곳에 새 도서관이 들어서며, 사람들이 손에 쥐어들 책이 꾸준히 늡니다. 신문은 무척 많이 나오고, 방송은 온갖 이야기가 하루 내내 끊이지 않으며, 셈틀을 켜고 인터넷을 열면 갖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말이며 글이며 어마어마하다 싶도록 넘칩니다. 잘난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못난 사람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름난 사람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이름 안 난 사람도 쓸 수 있는 글입니다.

 ‘문장작법’에서 ‘작문’을 거쳐 ‘글짓기’를 지나 ‘글쓰기’로 오면서, 여느 사람들 여느 말씨로 여느 사람하고 나누는 이야기를 글로 담아 나눌 수 있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계급과 지식과 학력과 정보를 뽐내려고 잔뜩 힘을 주거나 멋을 부리는 말씨로 엮는 책이 새삼스레 쏟아집니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 같은 책은 지난날에는 꿈을 꿀 수 없던 책입니다. 지난날 같으면 이와 같은 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글 바로쓰기》(이오덕 씀)가 처음으로 ‘여느 우리 말로 사랑하는 여느 우리 삶’ 이야기문을 연 뒤로 수많은 여느 우리 말 이야기책이 나왔고,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는 이러한 흐름 한켠에 야무지게 자리합니다.


.. 마지막으로, 글맛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야 한다. 문장이 뜻도 분명하고 표현에도 군더더기가 없는 데다 ‘맛있는 글’이니 ‘향기 나는 문장’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듣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마디로 ‘문학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은 나의 일부이다. 내가 쓰는 글도 나의 일부이다. 나의 말, 나의 글은 나의 정신이자 나의 인격이다 ..  (14쪽)


 ‘낱말편’에 이어 ‘문장편’이 나온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는 책이름 그대로 ‘우리 말을 잘 쓰면 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참말 그렇겠지요.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은 온통 영어사랑에 푹 빠지는데, 영어를 제아무리 잘 하는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한국사람하고 한국말로 내 생각을 나눌 수 없다’면 그토록 대단하다는 영어 솜씨라 하더라도 부질없습니다.

 영어를 잘 한다는 몇몇 사람 때문에 이 나라 사람들 모두 영어를 하면서 살아갈 수 없어요. 영어를 잘 해야 나라힘을 북돋울 수 있대서 시골 흙일꾼한테 영어를 쓰며 벼를 거두거나 배추를 기르라 할 수 없어요.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이들이 왜 영어를 써야겠습니까.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영어를 써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영어로 경기를 해야 할까요. 영어신문이나 영어방송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연속극을 영어로 듣는다든지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영어로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건 수업을 하건 한국말로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가’를 또렷하게 주고받으면서 생각을 살찌워야 아름답습니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라는 책은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막대접할 뿐 아니라 짓밟기까지 하는 어설프며 슬픈 모습을 뉘우치거나 돌아보자는 목소리를 들려주어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옳게 배우자고 외치며, 한국사람인 만큼 한국말을 알맞게 쓰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좀 궁금합니다. 왜 글쓴이 김철호 님은 ‘나의’와 같은 일본 말투를 쓰지요? 이제 이러한 일본 말투는 한국 말투로 스며들었다 할 만큼 두루 쓰니까 그냥 써도 될는지요? 글쓴이 스스로 토씨 ‘-의’를 다루는 대목에서 “눈과 머리로만 글을 쓰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또 다른 자리에서는 “말의 중요도를 높여주는” 구실이라든지 “한국어 쓰임을 넓힌”다고까지 덧붙입니다.


.. ‘한국의 문학’에서는 뒤의 ‘문학’보다 앞의 ‘한국’에 초점이 놓여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의’의 효과이다. 즉, ‘의’는 자신이 붙게 되는 말의 중요도를 높여주는 구실을 한다 … 이렇게 ‘의’의 쓰임이 넓어졌다는 것은 한국어에서 동사의 비중이 작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명사의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 위 예들(분홍색이 티셔츠, 34평의 아파트, 세 가지의 의문, 양쪽의 콧구멍)에서 ‘의’는 의미 전달에 공헌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읽는이들이 의미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런 표현들이 빈발하는 까닭은, 눈과 머리로만 글을 쓰기 때문이다 ..  (62∼63, 65, 68쪽)


 말은 하는 사람 나름입니다. 글 또한 쓰는 사람 나름입니다. 말을 하는 사람 나름대로 사랑스레 잘 하면 되는 말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 나름대로 올바로 잘 쓰면 되는 글입니다.

 말을 잘 한대서, 곧 말솜씨가 뛰어나다 한다면 아마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겠지요. 글을 잘 쓴대서, 그러니까 글재주가 훌륭하다 한다면 아마 책을 꽤나 팔 수 있겠지요.

 다만, 말을 좀 못 하거나 글을 퍽 못 쓰더라도 말에 담는 넋과 글에 싣는 얼이 아름다우며 착하고 참다울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솜씨로 부리는 말이 아니라, 착하게 나누는 말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재주를 피우는 글이 아니라 참다이 주고받는 글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 그런데 우리가 글을 쓸 때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고유어는 고유어끼리,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더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뒤집어 말하면, 고유어와 한자어는 친화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  (229쪽)


 글쓴이는 “토박이말은 토박이말끼리 잘 어울리고 한자말은 한자말끼리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토박이말을 쓰려고 애쓰는 사람은 낱말뿐 아니라 글월도 토박이 낱말과 토박이 말투로 가다듬습니다. 한자말을 쓰려고 힘쓰는 사람은 낱말을 비롯해 글월까지 한자 낱말과 한자 말투로 추스릅니다.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낱말에다가 글월까지 영어로 펼치겠지요.

 쉬우면서 바르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쉬우면서 바르다 싶은 말글을 나눕니다. 지식과 학식을 뽐내려는 사람이라면 아주 마땅히 지식과 학식을 뽐내려는 글을 쓸밖에 없습니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를 읽으면, ‘쉽다고 할 만한 한국말’은 거의 안 보입니다. 이 책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에는 ‘일본 한자말이건 중국 한자말’이건, 또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이 나라 지식인한테 스며들었다 하는 ‘일본 말투’에다가 ‘서양 번역 말투’까지 골고루 드러납니다. 글쓴이는 이러한 글매무새를 다독이거나 손질하지 않으면서 “우리 말 솜씨가 밥 먹여 준다”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을 덮으며 조용히 생각합니다. 참말, 말솜씨가 밥을 먹여 준다 할 만하며, 오늘날 수많은 글쓰기책이 나오고 말지식책이 나오는 만큼, 영어 지식 못지않게 한국말 지식을 쌓는 일도 ‘내 경력’과 ‘내 소개서’에 적바림할 좋은 보배덩이가 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식으로 얽어매려는 한국말 이야기보다는, 옳고 바르면서 착하고 참다이 꾸려 아름다운 삶으로 북돋우려는 한겨레 한글과 말꽃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무슨 보람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말솜씨는 없어도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글재주는 없어도 믿음직하게 땀흘려 일하며 어깨동무할 줄 아는 사람이면 반갑겠습니다. (4344.5.29.해.ㅎㄲㅅㄱ)


― 국어 실력이 밥 먹여 준다―문장편 (김철호 글,유토피아 펴냄,2010.10.15.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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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하워드 진.에드워드 W. 사이드 외 17인 지음, 강주헌 옮김, 데이빗 버사미 / 시대의창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착한 삶 사랑할 때에 바른 말 하는 사람
 [책읽기 삶읽기 58] 데이비드 바사미언,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시대의창,2006)



 한자말 ‘양심(良心)’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양심 있는 사람이 된다 할 때에는 옳고 그른 줄을 아는 사람이 된다는 사람을 가리킨다 할 테지만, 이에 앞서 ‘착한’ 사람을 일컫는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良心’에서 ‘良’이란 ‘착할 량’이거든요.

 말이며 몸가짐이며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할 때에 착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말이며 몸가짐이며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하자면, 옳은 말과 몸가짐을 알아야 합니다. 옳은 말과 몸가짐을 모르고서야 곱거나 바르거나 상냥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으레 ‘선량’이나 ‘양심’이나 ‘선행’이나 ‘선심’ 같은 갖가지 한자말을 들먹입니다만, 어떠한 말마디라 하더라도 한 가지로 모둘 수 있습니다. ‘착함’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 마음을 착하게 가다듬을 때에 내 삶을 옳은 쪽으로 접어들도록 애쓰는 셈이고, 내 하루를 착하게 돌볼 때에 내 삶을 바른 길로 접어들도록 힘쓰는 노릇이며, 내 말을 착하게 다스릴 때에 내 삶을 상냥한 결로 돌보도록 온몸을 쓴다 할 만합니다.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라는 책이라 한다면, 이 지구별에서 ‘착하게’ 살아가면서 ‘바르게’ 말하려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는 소리라고 느낍니다.


.. 인도 정부는 비폭력이란 개념을 지향해 왔습니다. 따라서 비폭력 저항과 비폭력 지배가 인도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지요. 중국이나 터키, 인도네시아와 달리 인도는 국민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정부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국민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꾹 참고 기다릴 뿐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하고, 그 결과는 무시해 버립니다 … 인도 공공분야의 기반시설은 국민의 돈으로 지난 50년 동안 꾸준히 건설된 것입니다. 정부는 이런 기반시설을 엔론에게 팔 권리가 없습니다 … 야라 나라가 핵무기를 비축해서, 인도와 파키스탄과 미국처럼 자기 국민을 속이고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 세계는 위험한 세계입니다 …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라 말하면서, 핵폭탄을 만드는 데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 도시의 좁은 틈바구니에는 예외없이 가난한 사람이 몸을 쪼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한 곳은 빛이 너무 환한데, 어둠은 그 주변에서 점점 짙어 갑니다. 엘리트들은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 내가 쓴 글대로 행동하고, 내가 글로 쓴 것을 끝까지 해내려고 애씁니다 ..  (아룬다티 로이/145∼151쪽)


 나부터 착해야 합니다. 내 마을이 착해야 합니다. 내 겨레와 내 나라가 착해야 합니다. 여느 일자리를 찾아 여느 살림을 꾸리는 나부터 착해야 합니다. 공무원이나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착해야 하고, 정치를 하건 회사를 꾸리건 착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은 제 밥그릇을 챙기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나와 네가 서로 웃으면서 마주할 밥상을 차립니다. 착한 사람이 제 밥그릇 떵떵거릴 까닭이 없고, 착한 사람이 어깨를 우쭐거릴 일이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며 정치를 한다 할 때에는 제 힘을 키우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즐거울 터전을 일굴 정치를 할 착한 사람입니다. 회사를 꾸리건 공장을 꾸리건 다르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땀값을 받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착한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은 돈을 더 벌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은 내 살림을 사랑하고 내 이웃 살림을 사랑합니다. 다 함께 오붓하게 누리거나 즐길 보금자리를 사랑합니다.


.. 우리에겐 더 이상 관광객이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관광객을 원하지 않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휴양지가 세워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 하와이에는 사방이 골프장입니다. 온갖 종류의 살충제가 뿌려집니다. 원주민이 쫓겨난 땅에 골프장이 세워집니다 … 환경오염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환경적 인종차별이기도 합니다 … 관광객들도 와이키키가 자동차와 사람으로 만원이라고 투덜댑니다. 교통난이 끔찍합니다. 관광객들은 다른 섬으로도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다른 섬들까지 단기간에 황폐화시킵니다 …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우리 역사를 모릅니다. 우리가 미국의 일부가 되기를 기꺼이 원한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진 매우 낭만적 이야기를 알고 있을 뿐입니다 ..  (하우나니 카이 트라스크/173∼177쪽)


 나는 어버이로서 생각합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착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우리 집 아이가 학교를 다니건 안 다니건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가 일구는 착한 삶을 가까이에서 늘 지켜보면서 스스로 착한 길을 걸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착한 삶을 스스로 헤아리면서 아이한테 가장 걸맞으며 아름다울 착한 나날을 일구면 됩니다.

 굳이 초등학교이니 중학교이니 고등학교이니 대학교이니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학문은 제도권학교가 아닐 뿐더러, 배움은 대안학교 또한 아닙니다. 졸업장이 있대서 학문을 잘 갈고닦은 사람이 아닙니다. 대안학교를 다녔기에 열린 넋이나 얼로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제도권이라 하든 대안이라 하든, 정작 가야 할 길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배우는 곳이라 하는 학교는, 교과 과정이 아니라 삶을 가르치며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삶을 가르치며 배울 수 없다면 배움터가 아닙니다. 삶이 아닌 지식을 가르치거나 배운다면 입시학원입니다. 시험문제를 풀거나 교과서를 외우도록 이끈다면 입시학원입니다. 학교는 학원이 아닌 학교라는 이름을 쓴다지만, 껍데기가 학교라 하기에 학교이지 않습니다. 알맹이가 학교라야 학교이지, 학교 노릇은 안 하거나 못 하면서 이름만 학교라 일컫는대서 학교일 수 없습니다.

 학교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부터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착한 꿈과 착한 말로 착한 삶을 사랑하는 교사가 있어야 비로소 학교입니다.

 착한 교사가 착한 아이들을 맞아들여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착한 배움길을 걸어가려 할 때에 바야흐로 배움터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착하지 않고서야 무슨 가르침이고 어떤 배움이겠습니다.

 착함이란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길이요, 착함이란 아름답고 해맑게 살아내는 나날이며, 착함이란 따스하며 넉넉하게 얼싸안는 사랑입니다.


.. 어머니는 여성만의 힘으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남자는 탐욕과 자아로 가득해서 긴장과 폭력을 낳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 어머니는 “나일론 옷을 사 주는 건 문제가 아니란다. 하지만 네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 생각해 보거라. 그럼 먹을 것이 직공의 손에 들어가는 게 낫겠니? 이익이 산업자본주의자의 손에 들어가는 게 낫겠니?”라고 말했습니다 … 내가 아직도 수공예품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수공예품을 단순히 제품으로만 보지 말고 인간의 창조력과 노동으로 빚어진 산물로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 미국 영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엘리트들에게 미국식의 에너지 소비자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간단히 정의한다면 ‘시장이 될 만한 곳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마시는 물에 돈을 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은행은 물이 공짜이기 때문에 남용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물이 남용되는 진짜 이유는 물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산업체가 물을 알뜰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물을 오염까지 시키고요 … 사회적 책임, 노동자의 권리, 자원의 이용이나 독극물의 방출에 대한 제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본과 무역만 자유화하는 세계 헌법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현재의 자유무역협정은 이 땅에서 생명을 고갈시키려는 협정입니다 … 대기업들과 싸우면서 그들이 겉으로는 막강한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한없이 공허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짜릿한 전율감마저 느낍니다 ..  (반다니 시바/340∼349쪽)


 이야기책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라는 사람이 만난 스무 사람은 한결같이 ‘착한 꿈’을 ‘착한 말’로 펼치며 ‘착한 삶’을 들려주려 합니다. 꿈과 말과 삶이 한동아리로 착하게 흐르도록 힘을 쏟습니다. 넋과 글과 일놀이가 착하게 뿌리내리도록 땀을 흘립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그저 착한 길입니다. 착한 마음일 때에 착한 얼굴이고, 착한 손길로 착한 글을 쓰거나 착한 그림을 그리거나 착한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바라기를 하면서 조그맣게 살림을 꾸립니다. 믿음바라기를 하면서 예쁘게 두레를 하거나 울력을 합니다.

 굳이 남 앞에서 멋들어져 보이는 옷을 차려입을 까닭이 없습니다. 내 고운 결을 아끼면서 내 고운 보금자리를 어여삐 돌보는 삶을 일구면서 내 숨결을 살찌우는 자연을 헤아리는 옷을 자연에서 얻어 자연스레 웃으면 됩니다. 치레하는 삶이 아닌 사랑하는 삶입니다. 내보이거나 뽐내는 삶이 아닌 보살피거나 어깨동무하는 삶입니다. (4344.5.15.해.ㅎㄲㅅㄱ)


―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데이비드 바사미언 엮음,강주헌 옮김,시대의창 펴냄,2006.9.18./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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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래곶에 사는 고래라고 합니다
이와사 메구미 지음, 다카바타케 준 그림, 황부겸 옮김 / 푸른길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파란빛 하늘과 바다를 껴안아 주셔요
 [책읽기 삶읽기 55] 이와사 메구미·다카바타케 준, 《나는 고래곶에 사는 고래라고 합니다》(푸른길,2004)


 온누리에는 책이 참 많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책이 태어나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운 책이 늘어나며 온누리 책은 날마다 북적북적 넘칩니다.

 수없이 늘어나는 책을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모조리 읽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새로 태어나서 나중에 스스로 책을 읽을 무렵이 될 때에는 ‘일찌감치 판이 끊어져 새책방에서 찾아볼 수 없는’ 책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갖춘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커다란 도서관 빼고는 안 갖추는 책이 많습니다. 부산, 인천, 대구, 대전, 제주에 있는 도서관에서도 모든 책을 샅샅이 갖추려 하지는 않으니까요. 아니, 이 나라 모든 도서관은 한국땅 모든 책을 1권씩이라도 알뜰히 건사할 만큼 돈이나 시설이나 일꾼이 없다고들 합니다.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들은 어떠한 빛과 소금을 담는지 헤아려 봅니다. 부질없이 나오는 책이란 없겠지요. 쓰잘데없이 종이쓰레기를 빚는 책 또한 없겠지요. 그러면, 종이에 글을 찍는 책이라면 하나같이 사랑할 만하거나 아낄 만하거나 돌아볼 만하다 할 수 있을까요.


.. 파란색을 정말 좋아하는 고래 선생님은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를 보며, ‘아, 행복해. 이런 곳에서 태어나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  (6쪽)


 《나는 고래곶에 사는 고래라고 합니다》(푸른길,2004)라고 하는 책을 집어들어 읽습니다. 옆지기가 고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고래곶’과 ‘고래’라는 이름에 끌려 집어듭니다. 아마, 고래를 좋아하는 다른 분들도 책이름에 두 차례 나오는 ‘고래’라는 이름에 끌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 앞머리에 나오는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를 보며” 참으로 즐겁다고 느끼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곧이어, ‘품격이라는 뭔가는 참으로 뭔가 있기나 한가’ 하고 곰곰이 생각한다는 대목에도 밑줄을 긋습니다.

 너른 바다를 누비는 고래라 한다면, 파란 바다와 파란 바다가 좋겠지요. 품격이니 격식이니 하는 틀이나 껍데기에 얽매이지 않을 테지요. 사람들처럼 성적표라든지 졸업장이라든지 매달리지 않겠지요.

 아파트가 없어도 되는 고래이고, 자가용이 없어도 되는 고래입니다. 훈장이라든지 기관총이라든지 파티복이라든지 전투기라든지 없어도 되는 고래예요.

 고래는 바다에서 살아가며 바닷것을 먹고 바다에 똥오줌을 눕니다. 고래처럼 큰 덩치가 바다에 똥오줌을 누며 살지만, 고래 똥오줌 때문에 바다가 더럽혀진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합니다. 고래 못지않게 덩치가 큰 상어가 누는 똥오줌 때문에 바다가 더럽혀진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없어요. 오직, 사람이 누는 똥오줌 때문에 온 들판과 물과 하늘과 흙과 바다가 더러워집니다. 사람이 누리는 물질문명 때문에 온 하늘과 바다가 더러워집니다.


.. “저, 아무래도 고래 선생님은 엄청나게 큰 몸집으로 보나 품격으로 보나, ‘고래 씨’라든가 ‘구지에몬 씨’라고 부르는 것은 어쩐지…….” 고래 선생님이 품격이 대체 뭘까 생각하고 있는데, 펠리컨이 다시 말했습니다 ..  (14쪽)


 이야기책 《나는 고래곶에 사는 고래라고 합니다》는 고래들이 벌이는 ‘올림픽’을 보여줍니다. 물뿜기를 겨루고, 다른 바닷짐승이 펼치는 놀이를 보여줍니다. 치고 받으며 다투기보다는 어깨동무하면서 사이좋게 어울리는 삶을 보여줍니다. 보드라운 이야기요, 따사로운 이야기입니다.

 다만, 책을 덮기까지 두 군데 말고 더 밑줄을 긋지 못합니다. 새삼스레 들여다보거나 가만히 되짚을 만한 대목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쁘거나 얄궂은 이야기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만 한 이야기책까지 굳이 한국땅에서 책으로 내놓아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한국땅에서 한국 삶터를 돌아보면서 한국 아이들한테 살가이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마음그릇이 있는 한국 글쟁이는 없을까 궁금합니다.

 파랗디파란 하늘을 가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수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면 좋겠습니다. 파랗고파란 바다를 끝없이 아끼는 넋으로 조촐히 이야기마당을 열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더 작게 생각하고, 더 작게 바라보며, 더 작게 살아갈 때에 한결 애틋하면서 살가운 이야기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4.5.1.해.ㅎㄲㅅㄱ)


― 나는 고래곶에 사는 고래라고 합니다 (이와사 메구미 글,다카바타케 준 그림,황부겸 옮김,푸른길 펴냄,2004.7.1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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