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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 -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여자 이야기
안미선 지음, 장차현실 그림 / 철수와영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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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31 ― 처녀 총각일 때에 ‘애 엄마 삶’을 읽어야
 : 안미선,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



- 책이름 :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
- 글 : 안미선
- 그림 : 장차현실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09.3.14.)
- 책값 : 12000원



 (1) 여자와 남자 모두 살림꾼이 되어야


 방과 마루를 뻔질나게 오가면서 온 서랍을 다 뒤지고 갖은 물건을 모조리 뒤집어엎으며 쏟아놓는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덥석 안습니다. 아기는 까르르 웃고 눈을 빛냅니다. 왜 이제까지 나 혼자 놀도록 내버려 두었느냐는 눈빛입니다. 아기를 왼팔과 오른팔로 번갈아 안으며 이리 어르고 저리 어르니 또다시 까르르 웃습니다. 엄마가 뒷간에 가도 울고불고 하는 아기는 엄마이든 아빠이든 저하고 하루 내내 붙어 있어야 한다고 보챕니다. 아니, 아기로서 살아남자면 마땅한 몸부림이라 할 테고, 아기로서는 이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혼자놀기’를 잘한다는 어른이라 할지라도 동무나 이웃이 없으면 입에 거미줄을 칩니다. 입에 거미줄을 치면 입에서 차츰 구린 냄새가 납니다. 가끔이나마 입을 열어 이야기를 나누어야 거미줄이 걷히고 냄새가 사라집니다. 사람이기에 사람 사이에서 살면서 사람 내음을 가꾸고 사람다움을 일굽니다. 그러니까, 어른들도 혼자서는 심심하고 힘든 삶입니다. 아이들이라면 혼자서 훨씬 심심할 테며 더욱 힘들 테지요. 그러니까, 어버이 된 몸으로서 아이들을 홀로 집에 둘 수 없으며, 아기라 한다면 더더욱 함께 지내야 합니다.

 노자키 후미코 님이 그린 만화 《신이 주신 선물》(서울문화사) 7권(2001)을 보면, “걔네한테 친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겠지? 걔네들한텐 아빠가 꼭 필요해. 피가 섞이고 안 섞이곤 중요하지 않아. 부부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 애들은 문제 없어. 부자 간에 사소한 싸움이 있더라도 말야(17∼18쪽).”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나옵니다. 엄마 홀로 키우던 아이들을 보고 하는 말인데, 이 아이들한테 아빠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거꾸로 놓고 보아도 매한가지입니다. 아빠 홀로 키우는 아이들한테도 엄마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엄마 혼자서 낳거나 아빠 홀로 낳을 수 없으니까요. 아이는 엄마 혼자서 돌보거나 아빠 홀로 돌볼 수 없으니까요. 함께 돌보는 아이입니다. 서로 힘을 모아 키우는 아이입니다. 엄마가 도맡는다든지, 엄마가 더 오래 돌봐야 한다든지 한다면 서로서로 고단합니다. 아이한테도 좋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 사랑과 아빠 사랑을 골고루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터전을 돌아볼 때에, 오늘날 우리 아이들 가운데 엄마 사랑과 아빠 사랑을 골고루 받는 아이들을 만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으레 아빠 된 쪽이 회사로 일하러 나가면서 돈을 벌어들입니다. 흔히 엄마 된 쪽이 아침부터 밤까지 집에서 아이하고 씨름하면서 갖은 집안일을 합니다. 아빠는 아빠대로 집안일과 집살림과 아이키우기하고 동떨어집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이웃과 사회와 마을 이야기를 비롯한 바깥일하고 동떨어집니다. 아빠는 아빠대로 한편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고, 엄마는 엄마대로 한쪽만 들여다보는 바보가 됩니다. 엄마와 아빠가 다 함께 집안일과 집밖일을 하면서 아이키우기를 손잡고 하지 않는다면, 두 어버이는 모두 외곬 눈길로 치닫는 바보로 머물고야 맙니다.

 제 둘레 남자 동무들은 하나같이 집밖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아이는 저녁이나 밤, 또는 주말에나 얼굴을 겨우 본다고 할 만합니다. 제 둘레 여자 동무들은 한결같이 집안에서 아이하고 복닦이면서 세상일은 거의 젬병으로 지낸다 할 만합니다. 때때로 보육원에 아기를 맡기거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 놓으며 바깥일을 한다지만, 남자들이 바깥일을 하는 모습과 견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경자 님이 쓴 소설을 모은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작가정신,1992)를 읽으면 첫 작품부터 사람들 뒷통수를 퍽 하고 후려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날 남편은 밖에서 무슨 얘길 들었는지 느닷없이, 남성은 인류의 절반이다, 그러니까 하늘의 절반도 남성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너무도 뚱딴지 같은 소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건이 뭐냐고 했더니, 우리 아이에 대한 친권행사를 동등하게 하자는 겁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씨를 받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의 합작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순간, 저는 불같이 화가 뻗쳤습니다. 아니 그래, 그까짓 정자 한 개와 난자, 자궁, 진통, 수유 등등을 어떻게 견줄 수 있다는 겁니까(17쪽)!” 〈옛날 옛날 한옛날에〉라는 이름이 붙은 짧은소설 한 토막입니다. 오늘 우리 삶터와 견주면 아주 거꾸로라 할 이야기인데, 참말로 오늘 우리 삶터에서 남자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거꾸로 놓고 읽힐 글이라 하겠습니다. 1990년대 첫무렵에만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한 우리 터전이 아니라, 2010년이 되고 2020년을 바라보고 있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우리 터전이라 하겠습니다.

 옆지기 부모님 댁에 찾아가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아서 장모님이 즐기는 연속극을 함께 보고 있자면, ‘잘나고 똑똑하고 많이 배운 돈까지 많은 여성’들이 부잣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며느리로 들어가 한다는 일이란 앞치마를 두르고 밥하기입니다. 아이 낳아 하루 내내 애보기입니다. 부잣집 며느리라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집을 도맡기면 되련만, 부잣집 며느리 가운데 집일을 도맡기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속극에 나오는 모든 남자들은 하나같이 바깥일만 하지 집일은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집일을 하나도 모릅니다. 아니, 젊은 남자나 여자는 한결같이 집일을 모르며 알려 하지 않고 배우지 않을 뿐더러 누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일을 하는 사람은 나이든 여자뿐입니다. 나이든 남자는 ‘아주 마땅하다는 듯이’ ‘나이를 먹었으니 집일을 굳이 더 안 배우’고, ‘나이를 먹었기에 아내가 집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남편을 섬겨야 한다’는 듯한 모양새입니다. 1990년대 연속극이든 2000년대 연속극이든 2010년대 연속극이든 배우와 소재만 살짝 다르지 줄거리와 짜임새와 이야기는 매한가지가 아니랴 싶습니다.

 우오토 오사무 님이 그린 만화 《현미 선생의 도시락》(대원씨아이) 2권(2010)을 보면, “요즘 학생들은 양상추와 양배추도 구분 못하고, 토막난 상태가 아니면 무슨 생선인지도 몰라요. 무서워서 두부를 손바닥 위에 놓고 썰지도 못하죠! 거의 다 그래요! 애들은 학원 가느라 시간 없고, 부모는 부모대로 야근이니 뭐니 해서 늘 바쁘죠. 그러다 보니 애들한테 요리를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가 많아요. 애들도 자연히 요리에 대해서 배우지 못하고요. 어른이 된다고 해서 자연히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대학생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 현대의 대학생들은 피해자니까요(179쪽).”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굳이 만화책 이야기를 빌지 않더라도, 오늘날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 누구 하나를 붙잡고 물어 보아도 ‘밥하기’와 ‘반찬하기’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칼질하기를 옳게 할 줄 안다든지 설거지를 바르게 할 줄 안다든지 빨래를 알맞게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어른을 놓고 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기계가 도맡아 주지 않느냐고 할는지 모르는데, 따지고 보면 집밖일도 매한가지입니다. 갖가지 셈틀과 기계가 바깥일을 도맡아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셈틀이 있고 기계가 있어도 이러한 셈틀과 기계를 다루는 ‘사람을 써야’ 합니다. 집에서도 그래요. 온갖 집안 살림기계가 있다 하더라도 이 기계를 다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집안살림이든 집밖살림이든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터전에서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매무새를 익히는 사람 일을 제대로 안 가르칠 뿐 아니라 못 가르칩니다. 제대로 안 배울 뿐 아니라 못 배웁니다. 지식인은 많아도 살림꾼은 없습니다. 아니, 지식인은 세상에 떵떵거리면서 펜데를 굴려 일을 하여도 살림꾼 목소리는 어디에도 실릴 자리가 없습니다. 신문과 잡지와 책과 인터넷에서는 오로지 ‘살림을 안 하거나 살림을 모르는 사람이 살림하고 동떨어진 이야기’만 다룹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사랑놀이를 즐기며 아이를 배고 낳을 때에, 아이키우기가 어떠한 일인가를 옳게 가르쳐 주는 적이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아이키우기를 일러 주지 않습니다. 여자한테든 남자한테든 똑같이 가르칠 아이키우기이지만, 이를 살갗으로 올바로 깨달으면서 아이들한테 가르칠 어른이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학교에서도 알뜰히 못하지만 집에서도 알뜰살뜰 못합니다.


 (2) 《내 날개옷은 어디 있지?》라는 책 하나


 “회사 일이라는 게 돈으로 환산될 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67쪽).”고 말하는 《내 날개옷은 어디 있지?》를 쓴 안미선 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억압하지 않고 자기가 정말 겪은 일과 느낌을 솔직히 쓴다면 엄청나게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질 것이다. 텔레비전에도 신문에도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 말이다. 서로 사는 모습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의 모른다(6쪽).”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합니다. 대학교를 마친 뒤 책마을에서 일을 했고,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며 학교와 쉼터에서 성교육을 하기도 했던 안미선 님인데, 안미선 님 스스로 ‘직장여성’일 때하고 ‘애 엄마’일 때하고는 사뭇 달랐겠지요. 직장여성일 때에는 생각하지 못한 애 엄마 삶이었겠지요.

 저는 직장남성이라는 길을 걷기는 했지만,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몸이 된 뒤부터는 거의 집에서 식구들 돌보는 길을 걷습니다. 밥벌이와 옆지기 돌보기와 아이키우기를 한꺼번에 해야 하면서 지칠 뿐 아니라 고되기까지 하지만, 밥벌이 때문에 집밖으로 나가서 바깥바람을 쐬거나 바깥사람을 만나거나 홀로 책방마실을 하거나 사진찍기를 할 때에는 ‘혼자 모든 일을 다 하는 삶이란 이렇게 홀가분하구나’ 하고 느끼면서 ‘혼자 이 좋은 삶을 다 누리니 참 미안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옆지기 혼자서 아기하고 씨름하며 복닥일 모습을 그리면서 ‘더없이 힘들겠지’ 하고 느낍니다.

 예전에는 몇 가지 책을 넘기면서 ‘애 엄마 삶’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책에 담긴 지식으로 읽을 뿐, 애 엄마 삶이란 어디 머나먼 곳에 있는 엄마들 삶이 아닌 바로 ‘나를 낳아 키운 어머니 삶’이기도 함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 스스로 애 아빠 삶을, 아니 어버이 삶을 걸으면서 ‘애 엄마 삶’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헤아립니다. ‘아이키우기를 하는 삶’이란 어떠한가를 곰곰이 곱씹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어머니 삶을 돌아보고 옆지기 어머님 삶을 함께 톺아봅니다.

 안미선 님은 《내 날개옷은 어디 있지?》 끄트머리에서 당신과 마찬가지로 ‘한국땅에서 직장여성으로 살거나 애 엄마로 살거나 직장여성이면서 애 엄마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짤막짤막 옮겨적습니다. 대학교에서 청소용역을 한다는 아주머니는 “이 학교가 부자라고 하더라구요. 건물도 계속 짓고. 그런데 직영으로 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싸게 부릴 생각만 해요. 우리도 사람인데. 선생들은 고생을 안 해 봐서 청소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25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안미선 님은 청소 아줌마 목소리를 빌어 이 이야기를 적바림합니다만, 안미선 님이 강단에 서서 강사가 되고 조교수가 되고 부교수가 되고 정교수가 되고 했다면, 이 청소 아줌마 말마따나 ‘고생을 안 해 봐서 청소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는 또 한 사람이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이제 안미선 님은 ‘고생을 해 보’고 ‘청소를 어떻게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더없이 마땅하게도 ‘고생을 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담아내는 한편, ‘청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들 목소리’를 펼쳐 보입니다. 이 목소리를 이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들어 줄는지 모르지만. 이 나라 남자와 여자가 스스로 사람다운 길을 걸어가는 자리에서 얼마나 이 목소리를 귀담아들을는지 모르지만.


 (3) 한 줄 한 줄 되씹기


 책을 덮습니다. 옆지기가 이 책을 넌지시 들추면서 한 마디를 합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스스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생각을 달리 하고 있지만, 이분 스스로 이제까지 이 책에 쓴 아쉬움과 한숨과 눈물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배운 적이 없었다고.

 틀림없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숱한 사람들은 저처럼, 또 안미선 님처럼, 아니 모두들 다르게 혼인도 하고 아이도 낳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삶을 슬기롭게 배운 적이 없을 뿐더러, 나중에 잔뜩 짊어져야 하는 굴레를 깊이 돌아볼 겨를을 내지 못합니다. 몸과 마음 모두 느껴도 스스로 달라지면서 내 둘레 터전이 달라지도록 힘을 쓰지 못합니다. 너무 힘든 나머지 고꾸라지거나 쓰러지기도 하고, 울타리가 너무 높고 단단하기 때문에 주저앉기도 합니다. 여자들은 애써 이런 책을 써내고 돌려읽기도 하지만, 정작 남자들은 이런 책을 찾아 읽지 않고 다루지 않으며 가슴으로 새기지 못합니다. 하다 못해 책으로라도 이 같은 지식을 받아먹으려 하지 못합니다.

 책은 못 읽어도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책조차 못 읽는 우리들 삶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토록 바쁠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바쁘도록 하나요. 무엇이 쫓겨 이다지도 바쁜 채 허덕이나요.

 누구보다 저부터 바빠맞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한 줄 두 줄 되씹어 봅니다. 나부터 우리 아이와 옆지기한테 좀더 마음을 쓰고 따숩게 얼싸안는 삶이 되도록 하면서 방긋방긋 웃자고 다짐하면서 석 줄 넉 줄 되읽어 봅니다. 세상 남자들이, 아니 한국 남자들이 ‘남자 날개옷’만 멋스럽게 붙잡지 말고 ‘여자 날개옷’을 나란히 챙기면서 ‘사람 날개옷’을 곱게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하면서 다섯 줄 여섯 줄 천천히 거듭 읽습니다. (4343.1.18.달.ㅎㄲㅅㄱ)


[17, 58쪽] 외국에서 아기를 낳은 친구들 얘기를 들어 보면, 임신해서 한 번만 초음파를 찍고 그 이상은 불필요하다고 의사가 말린다던데, 아기 낳는 모양새도 그 나라 습성을 따르는 게다. 조산소에서 가족과 함께 낳으면 가장 좋다는 말도 들었지만 수혈 문제 때문에 종합병원에서 낳게 되었다. 임신 내내 지금까지 줄곧 ‘위험할 수 있어요, 위험해요’ 하고 협박만 들은 것 같다 … 애가 아플 거라는 소리가 협박처럼 들렸다. 우는 애를 안고 일어서자 의사가 “문제는, 돈이야!” 하고 외친다. 뒤돌아서는데 속에서 뜨거운 게 치민다. 개새끼. 지가 의사면 의사지, 뭘 안다고 능글능글 반말로 씨부렁거리냐. 지가 젖 먹여 애 길러 봤어? 지가 애 땜에 뜬눈으로 간호해 봤어?

[27, 32, 37∼38쪽] 나도 할 말이 있다.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뛰어가고 엎어지고 엎지르고 박아대는 아기와 씨름하느라고 정신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 먹고논다니,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 정말 내가 안 움직이면 우리 집은 금세 엉망이 되어 버린다. ‘집은 쉼이다’면서 남자가 느긋하게 깍지를 끼고 누워 있는 광고도 있지만, 주부에게 그것은 그림의 개떡 같은 소리다. 집은 일터다. 집 밖에 나가야 한숨 돌릴까. 집은 곳곳을 치워 달라고 손봐 달라고 소리 없이 외쳐댄다 … “회사에서 아프면 사장한테 요구하지. 아니, 사장한테 도장 맞고 공단에 요구하지. 그런데 아기 보고 살림하다 아프면 누구한테 말해야 하지?” … 집에 있는 여자들과, 집안일을 더해 밖에서도 일해야 하는 많은 여자들이 아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플 거라고 여기지 않고 일한다고 여기지 않고 그것이 사회에서 보장해 주어야 할 몫이라고는 더더군다나 생각하지 않는다.

[34, 158쪽] 나도 애를 봐주는 할머니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가, 종일 업고 복도를 왔다갔다 하는 할머니를 보니 힘든 건 다 똑같은데 같은 여자한테 떠넘기지 말아야겠다 싶기도 하다 … 남편이 주말에 쉰다는 것이 어떤 아내들에게는 부러울 뿐이다.

[42, 83∼84, 198∼198쪽] 결혼한 친구들은 각각 자기 집에 틀어박혀 혼자서 가족감당을 하느라 여념이 없고, 결혼 안 한 친구들은 여행이며 연애를 꿈꾸는데 이건 나와 딴판의 이야기였다 … 어른들이 도시의 갇힌 공간에서 쇼핑으로 술자리로 기분전환하듯, 아이들은 한 시간에 얼마 하는 인위적인 실내 놀이 공간에서 좋다고 뛰논다 … 사고 쓰고 버리는 것이 어른들의 생활이듯, 아이들의 시간도 놀이도 그렇다 … ‘살림이며 육아를 알아서 할 사람이 있겠지’ 하며 나 몰라라 하는 그이의 직장, 남편이 잠잘 시간만 빼고 그의 노동력을 오롯이 써먹는 직장에 대해서 화가 난다. 아이를 같이 낳고 기르는 것은 남편과 나의 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직장에 다니니 평등가족이 될 수 없다고 남편은 먼저 푸념했다.

[48, 101, 108, 121, 136쪽] 남자에게 콘돔을 쓰게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이다 … 그때 나는 우리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면접자리에서 희롱을 당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책이 나온 날짜를 물끄러미 본다. 이 책이 나올 무렵 나는 깁스를 하고 빈방에 종일 앉아 있었다. 판권에는 사장 이름만 나와 있어, 만든 이들을 잊어버린 책이다 … 우리 시대의 고통바든 남편은 요컨대 자신도 집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본 바도 배운 바도 없거니와, 돈을 벌러 회사에서 갖은 고난과 핍박을 당한다는 피해의식과 ‘가장’이라는 한줌 자부심으로 모든 집안일에서 면제받길 바란다 … (쉼터에 있는) 이 아이들은 특별히 문제 있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피임을 배우지 못하고, 남자 애들이 사랑해 주면 좋긴 한데 제 몸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모르는 이 나라 여자 아이들은 누구나 이 자리에 올 수 있다.

[90, 92, 96쪽] 나는 애가 공부 잘한다고 싱글벙글인 부모에게 아이의 지치고 고단한 얼굴을 보았냐고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공부하는 건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두려워해서가 아닐까 혼자 생각도 해 보았다 … 뒤늦게 안 것이다. 십대의 행복은 십대에만 있을 뿐이다. 그때 읽고 싶은 책은 그때에 읽어야 즐겁고, 그때 하고 싶은 일은 그때에만 깔깔거리며 할 수 있다. 어른들은 정말 나의 행복을 바란 것이었을까 … 우리가 배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일과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통해서 얻는 것이지, 학교나 입시교육 안에서가 아닌 것이다.

[91, 94쪽] 모두들 서울에 오고 싶어했다. 서울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돈도 잘 벌고, 행복해질 거라고 여겼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으니, 또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따랐다 … 공부 못하면 여기에서 못 떠난다고 협박당하던 그 친구들이 고향에 남아 든든한 이웃이 되어 거기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또 농사를 짓고 일을 찾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스스럼없이 사투리를 쓰며 덩굴 뻗어 살아간다.

[141∼142, 187쪽] 남자 아이들에게 성은 자위를 몇 번 하니, 포르노에서 여자가 어떻게 나오니 정보를 공유하며 과시하는 놀이가 되지만, 여자 아이들은 월경과 함께 임신할 수 있는 몸, 성폭력을 당할지 모르는 몸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때부터 세상에 대한 공포를 잠재화하게 된다 … 문제는, 이렇게 딴판으로 성에 대해 생각하는 이성들이, 상대가 바라는 걸 알지도 배워 보지도 혹은 믿지도 못하는 이성들이 만날 때 일어나는 문제다 … 여성에게 위험한 것은 밤길뿐만이 아니다.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낯선 사람, 낯선 장소에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여성이 조신하지 않아서 섹시해서 무례해서 폭력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3, 209, 214쪽] 행복하고 깔끔한 가정과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종일 노동하는 사람은 여성이다. 특히 결혼과 동시에 여성은 가족 안에 고립되어 재산권이나 노동권, 재교육이나 사회적 지지 소통망 같은 자원에서 배제된 채 가족의 재생산과 보살핌을 위해 아무 대가 없이 일해야 한다. 이러한 낮은 지위와 처우는 가족주의와 성별분업을 기반으로 한 사회 속에서 구조화되어 있다. 교육을 받건 받지 않건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 성노동이 노동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고 보잘것없기 때문에, 일 자체가 성별화되고 불안하기 때문에 자주 노동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매매의 시장으로 간다 … 문학이나 대중문화가 근대의 산물인 것처럼, 작가도 초연한 존재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특정한 성으로 태어나 그에 따르는 시선을 학습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자에게 불평등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사회에서 성장한 작가는 성찰하지 않는 한 그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현실에서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터무니없거나 폭력에 가까운 묘사도 향수나 그리움, 애틋한 사랑의 이름으로 그려 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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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편지 선집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박홍규 옮김 / 아트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번역이 너무 형편없어서 별 하나를 깎고 싶지만, 책이 좋기에 별 다섯을 그대로 살려 놓는다. 번역하는 분들은 제발 우리 말 좀 배우고 나서 일을 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그리고 2쇄부터는 오탈자를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 내가 출판사에 알려준 오탈자는 마흔 곳쯤 되는데, 한 번 알려주고 나서 예순 군데를 더 찾았다. 히유... 띄어쓰기 문제가 아닌 '오탈자' 문제이다... 그리고 고흐가 살던 곳은 '네덜란드'인데, 화가 이름이나 지역 이름을 '네덜란드 말대로 읽기'가 아닌 '영어대로 읽기'로 적어 놓은 대목이 많아서, 책을 읽으며 몹시 언짢았다. 네덜란드사람이 한국사람 이름을 일본 말투대로 엉뚱하게 읽어서 적어 놓으면 기분이 좋을까? 번역을 하는 사람들은 그 나라 문화와 우리 나라 문화 또한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하지 않다면, 제발 번역가라는 이름은 달고 다니지 말아라...)  

(글 사이사이 곁들인 그림은, 출판사 '아트북스'에서 보내 주었기에 붙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이 책을 엮어낸 출판사 분들한테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긴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힘내어 주시면 좋겠다...)


 이 책 하나 130 ― 문화를 먼 나라에서 찾을 까닭이란 없다
 : 빈센트 반 고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 책이름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 글ㆍ그림 : 빈센트 반 고흐
- 옮긴이 : 박홍규
- 펴낸곳 : 아트북스 (2009.5.14.)
- 책값 : 26000원



 (1) 내가 꾸리는 삶은 고스란히 예술


 제 삶은 남들이 보면 부지런히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하루하루입니다. 혼자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하루가 온통 골목마실이나 자전거마실을 거쳐 헌책방이나 동네새책방에 드나든 다음 집으로 돌아와 글쓰기로 채워졌습니다. 옆지기와 살아가면서 자전거마실과 책방마실은 많이 줄었고, 아기를 낳은 뒤로는 자전거마실과 책방마실은 웬만하면 엄두를 못 내지만, 한 주에 한두 번씩은 꼬박꼬박 책방마실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책을 꼭 읽어야 하거나 새로운 책을 꼭 사야 하지는 않으나, 저 스스로 우물에 빠진 생각밭이 되고 싶지 않은 한편, 아직 새로 배울 이야기가 많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태껏 마련해 둔 책을 다시금 꼼꼼히 읽어도 되고, 이제까지 읽은 훌륭한 책을 거듭 되뇌어 읽어도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훌륭한 책을 바탕으로 새롭게 일군 ‘내 손길을 기다릴 또다른 훌륭한 책’이 부르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고 느끼기에 책방마실을 꾸준히 이으려고 합니다. 아픈 옆지기와 함께 살며 아기를 함께 키우자면 바깥마실이 힘들어 집에서 인터넷을 또닥거리며 책을 장만할 수 있지만, 책은 제 발품을 팔아 찾아다닌 책방에서 제 손품을 팔아 살피면서 장만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장만한 책은 너무 무겁거나 다른 짐이 많지 않다면 한겨울에도 땀 뻘뻘 흘리며 제 큼지막한 가방에 가득 채우고 끈으로 꽁꽁 묶어서 낑낑대며 집으로 나르고 싶습니다. 손발을 쓰지 않으며 책을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2009년 12월 오늘 이 자리에서 돌아보면 지난 1992년 8월부터 열여덟 해에 걸쳐 날마다 3킬로그램 남짓에 이르는 책을 장만해 왔습니다. 충북 충주에서 살며 자전거마실로 서울을 오가며 책을 사던 2006년 한 해에는 봄부터 겨울까지 자전거수레와 가방과 자전거 짐받이에 70∼80킬로그램에 이르는 책을 나누어 싣고 한 주에 한 번씩 오갔습니다. 지난 2008년과 올해에는 책을 좀 적게 샀는데, 2006년까지 책을 장만해 온 흐름을 줄잡으면 날마다 10킬로그램이 됩니다. 요새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데, 아무래도 열여섯 해 동안 몸을 지나치게 많이 부린 탓이 아닌가 싶고, 요 이태에는 책방마실을 자주 못 다닌다고 하여도 집일을 많이 맡으면서 스스로 힘겨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 손발톱을 깎아 남들 눈에 안 뜨이게 되었지만, 올 2009년 첫머리부터 제 손톱은 한쪽이 갈려 있었습니다. 곯아떨어진 어느 날 겨우 잠에서 깨어 일어났지만 잠자리에 누운 채 문득 손을 들어서 들여다보다가 손톱 끝이 갈려서 없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는데, 왜 이렇게 갈린 줄 몰랐습니다. 며칠 앞서 드디어 ‘손톱이 갈린 까닭’을 알았습니다. 날마다 아기 옷가지 빨래와 걸레 빨래에 들이는 품이 퍽 많아, 쉼없이 비빔질을 해대느라 손톱 끝이 한쪽으로 갈려 없어진 셈이더군요. 날마다 기저귀를 서른 장씩 빨 때에는 이러하지 않았고, 저와 옆지기 옷을 빨며 살 때에도 이러하지 않았습니다. 외려 아기가 젖을 차츰 적게 먹고 밥갈이와 오줌가리기를 하려는 요즈음 이렇게 손톱이 갈립니다. 





 언제인지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으나, 1980년대 가운데무렵쯤, 아버지 어머니 형 나 이렇게 네 식구가 열세 평 오층짜리 아파트에 살던 때에 빨래기계를 처음 들여오던 날이 생각납니다. 네 식구 옷과 이불까지 모두 손빨래를 하던 어머니한테는 빨래기계가 그야말로 ‘손품 더는 혁명’과 같지 않았으랴 싶은데, 이무렵 빨래기계 값은 요즈음 빨래기계 값하고 거의 맞먹었습니다. 아버지가 어쩌다가 빨래기계 장만할 생각을 다 하셨는지 궁금하지만, 빨래기계를 쓰며 어머니 손이며 손톱이며 조금은 수월해지셨겠지요. 그러나 빨래기계를 쓴다고 집일은 줄지 않습니다. 집일을 나누어 맡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가 큰일입니다. 형과 저는 어릴 적부터 으레 어머니를 거들며 집일을 함께했고, 양말과 신발은 마땅히 스스로 빨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주말에는 걸레를 빨아 방바닥 훔치는 일을 도왔고요.

 빨래기계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빨래를 개고 걸레질을 하는 동안 어머니가 하는 집일을 물끄러미 살펴볼 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집일은 언제나 쉴 겨를이 없었습니다. 빨래와 청소가 마무리되면 아침 낮 저녁 세 끼니 밥을 마련하는 데에 바쁘고, 끼니를 마련하자면 날마다 저잣거리 마실을 다녀야 했고, 찬거리 손질이며 쌀을 일고 씻고 안치고 하는 일에다가 상차림이며 나중에 설거지와 갈무리까지 ……, 입으로 읊으면 짧지만 몸으로 움직이면 겨울날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고단하고 바쁜 하루하루입니다.

 저는 국민학교를 다니며 학교에서 배운 이야기 가운데 떠오르는 대목이 거의 없습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배운 지식조각 가운데 생각나는 대목 또한 몇 가지 없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곁에서 늘 바라본 어머니 집일을 놓고 보았을 때에는 아주 많은 모습이 떠오르고 생각납니다. 아니, 떠오른다기보다 늘 떠올리며 삽니다. 생각난다기보다 노상 생각하며 삽니다. 오늘 하루 내 집일을 맡아 하면서 어린 날 어머니는 어떻게 했고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돌아봅니다. 내 국민학생 때 어머니는 바로 오늘 제 나이쯤 되었을 텐데, 그무렵 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들여다본 어머니 손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제 손은 얼추 비슷합니다. 어린 날 제 손은 말랑말랑하고 뽀얀 모습이었지만 어머니 손은 누리끼리하며 굳은살이 마디마디 박혀 있는데다가 손톱도 그리 곱지 않았습니다. 이제 어머니 지난날 손 모양을 제가 물려받으며 살고 있는데, 그제 저녁 혼자서 제 손톱 모양을 사진으로 한 장 남기면서, 우리 아이가 앞으로 서른세 해를 더 살아낸 다음 스스로 제 손을 들여다볼 날이 있다면 제 아버지(나 어머니) 손을 담은 사진을 돌아보면서, 제 어버이와 제 어버이를 낳고 기른 어버이와 그 어버이를 낳고 기른 어버이를 가만히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그 어느 책에도 이 같은 이야기는 다루지 않기 때문은 아닙니다. 굳이 어떠한 책에서 이 같은 이야기를 다루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닙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느끼고 읽고 삭이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문화나 예술이나 문학이나 과학이나 교육이나 정치나 경제가 꽃피운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깨닫고 내 이웃 삶을 톺아볼 줄 알 때에 바야흐로 내가 걷는 한길이 얼마나 고맙고 싱그럽고 아름다운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까지는 제 사진감 가운데 하나인 ‘헌책방’ 한 가지 사진을 날마다 열 장쯤 찍으면서 살아왔다면, 올해에는 제 사진감 가운데 하나인 ‘골목길’ 한 가지 사진을 날마다 60장쯤 찍으며 살아왔습니다. 이 사진들 가운데 추리고 추려 보니 얼추 3650장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저 스스로 제 마음에 아주 들어서 덜고 빼고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제 삶터 골목동네 사진을 날마다 열 장쯤 찍었다고 하겠습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텐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십이월 막바지에 이르며 곰곰이 되돌아봅니다. 그만큼 집식구와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고 할 수 있고, 그만큼 집식구와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좀더 걸음을 잘 걷고 조금 더 자란다면 몸 아픈 옆지기는 집에서 쉬더라도 둘이 골목마실을 할 수 있을 테고, 몸이 조금 괜찮은 날에는 셋이 골목마실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이 고향동네 삶터가 오로지 아파트만 때려짓는 재개발을 멈추지 않아 어쩌는 수 없이 우리 식구 조그마한 보금자리마저 밀려나야 한다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씩씩하게 함께 골목마실을 할 만큼 큰 다음이라 하여도 서로 웃으며 조용조용 골목마실을 즐길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즐거운 마실은 꿈으로만 그치지 않을까 근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꿈으로 그친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슬프지 않습니다. 이 또한 제가 걸어갈 길이라고 느낍니다. 가난이, 더 밑으로 내려가는 가난이, 날마다 오늘 끼니를 어떻게 이을까 걱정하는 가난이 저한테 주어진 길이라 한다면, 찍고픈 사진과 쓰고픈 글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우리 삶터 흐름 또한 저한테 주어진 길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달게 받아들이되 곧이곧대로 따르지는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꾸밈없이 삭여냅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어떤 이름으로도 따로 가리킬 수 없다고 느끼는데, 이를테면 헌책방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묶는다든지, 골목동네 삶자락을 글과 사진으로 보여준다든지 하는 일은 조금도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요사이 문화예술밭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아카이브’ 또한 아닙니다(저로서는 ‘아카이브’가 도무지 무엇인지 아직도 알 노릇이 없습니다만). 저는 그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헌책방을 좋아해서 즐겨 찾아다니며 듣고 보고 느끼고 담았습니다. 골목길 또한 있는 그대로 이곳에서 살아가니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 몸뚱이와 눈썰미로 사진을 찍고 글을 썼습니다. 잘나지 않은 주제이나 못나지 않은 주제입니다. 그저 있는 깜냥 그대로입니다. 저보다 가난한 골목이웃이 있으나 이들이 저보다 못살거나 꾀죄죄하거나 불쌍하거나 안쓰럽지 않습니다. 저보다 가멸찬 골목이웃이 있지만 이들보다 제가 못살거나 꾀죄죄하거나 불쌍하거나 안쓰럽지 않습니다. 모두 제 깜냥대로 제 삶길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제 삶길대로 골목길을 두 다리와 자전거로 돌아다니면서 이 길을 걸었던 지난 1975∼1995년 자취를 오늘과 맞대며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것이라 더 좋을 수 없고 새것이라 더 나을 수 없습니다. 옛것은 옛것대로 좋고 새것은 새것대로 좋습니다. 옛삶은 옛삶대로 모셔야 하고 새삶은 새삶대로 아껴야 합니다. 옛길은 옛길대로 고즈넉하고 새길은 새길대로 싱그럽습니다. 다 다른 마디와 고비와 대목이 깃든 길과 삶과 사람과 넋입니다. 다 달리 곱고 즐겁고 애틋한 길이요 삶이요 사람이요 넋입니다.

 이리하여 저는 사진기 하나 들고 동네마실을 하는 동안 따로 ‘취재’를 하지 않습니다. 지난날 헌책방마실을 거의 날마다 하고 살던 때에도 따로 ‘취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날에는(오늘날에도 다르지 않습니다만) 헌책방에서 ‘살았’습니다. 헌책방에서 살아온 그대로 헌책방을 사진과 글로 담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골목길에서 ‘살고’ 있습니다. 골목길에서 살고 있는 그대로 골목길을 사진과 글로 담습니다. 





 문화나 예술이나 문학이나 교육 따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문화이든 예술이든 문학이든 교육이든 있다면 바로 ‘삶’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 삶으로 받아들여 내가 맡은 아이들을 내 식구요 동무요 이웃으로 여기며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에서는 어떠한 이론이 없어도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내 삶으로 껴안으며 시이든 산문이든 희곡이든 수필이든 적바림할 때에는 마땅히 문학이 이루어집니다. 글이 대수입니까? 그림이 대수입니까? 사진이 대수입니까? 춤이 대수입니까? 노래가 대수입니까? 몸짓이 대수입니까? 대수란 바로 삶입니다.

 삶을 알면 사람을 압니다. 사람을 알면 넋을 압니다. 넋을 알면 길을 알고, 길을 아니 이제 시나브로 말을 알 수 있어, 저절로 말이 샘솟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화를 하고 예술을 하고 문학을 하고 학문을 한다는 숱한 사람들은 저절로 말이 샘솟도록 ‘제 길을 살아내지’ 않고 있습니다. 억지로 말을 뽑아냅니다. 우물자리를 알아보고 다니다가 관정기를 쑥 집어넣고 물을 억지로 빼냅니다. 관정기로 땅을 팔 돈을 어버이한테서 얻든 스스로 일해서 벌든 하고 나서는 억지로 물자리를 알아보고 끊임없이 빼냅니다. 스스로 물길을 트지 않으며, 제절로(저절로) 꾸준히 물이 샘솟을 때까지 스스로를 갈고닦는 삶을 꾸리지 않습니다. 책만 판다고 학문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학교를 오래 다닌다고 학문이 이룩되겠습니까. 훌륭한 스승한테서 배운다고 학문이 빛을 보겠습니까. 아닙니다. 학문 또한 삶이기 때문에, 제 삶을 제 발로 디뎌야 합니다. 먼저 제 삶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거나 즐기는 세계명작이란 다름아닌 ‘글쓴이 삶이 무르익어 열매로 터져나올 그때까지 조용히 힘을 쏟은 끝에 이루어진 빛’입니다. 억지로 우물파기를 해서 이룬 전기불이 아닙니다.

 나라안에 이름 높은 박수근이나 이중섭 같은 그림쟁이가 억지로 우물파기를 했을까요. 나라안에 이름 거룩한 김유정이나 이원수나 최명희나 박경리가 어거지로 우물파기를 했는지요. 우물파기로는 ‘우물 파는 데에 들인 돈’만큼 다시 본전치기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본전치기가 삶이 되나요?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듯이 대학교 졸업장에 얽매이고 큰회사 높은 연봉에 얽매이는 매무새가 삶이라 할 수 있나요? 큰 차와 넓은 아파트가 삶일 수 있습니까? 영어 일찍 배우도록 하려고 나라밖으로 보내거나 영어마을을 돈으로 때려짓는 일이 삶이 됩니까?

 틀림없이 이 나라에는 영어 ‘천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는 ‘아름답고 해맑게 영어로 제 넋과 꿈을 빛내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책방마다 ‘글쓰기 다루는 책’이 넘칩니다. 요즈음 글쓰는 사람 아주 많습니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많이 팔리고 읽히는’ 글ㆍ그림ㆍ사진ㆍ노래ㆍ춤ㆍ몸짓을 넘어, ‘우리 문화와 예술을 빛낸다고 할 만한’ 글ㆍ그림ㆍ사진ㆍ노래ㆍ춤ㆍ몸짓은 얼마나 될는지요?

 아무개 님 책이 수십만 권 팔린다고 하여 아무개 님 책이 우리 삶을 빛내는 문화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개 님 사진이 수천만 원에 팔린다고 해서 아무개 님 사진이 우리 삶을 비추는 예술이라 할 수 있겠는가요.

 내 주제를 알고 내 길을 다스리며 내 삶을 사랑하는 우리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어머니는 나한테 당신 삶을 그 어떤 말로도 일러 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일러 주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뜻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좋습니다. 내 어머니가 보낸 풋풋하고 싱그러운 스물∼서른 나이에 두 손이 누리끼리해지고 손톱 끝이 갈린 해쓱한 얼굴인 채, 제 서른 줄 나이를 보내는 오늘 하루가 고맙고 거룩하다고 느낍니다. 한 시간을 주물러도 풀리지 않는 어머니 어깨와 다리와 팔다리 뭉친 힘살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를 몸소 겪고 있는 제 나이값이 반갑고 흐뭇합니다. 저는 이와 같은 제 삶결을 그저 그대로 글로 옮기고 사진으로 싣고 책으로 묶습니다. 저로서는 달리 재주가 없기도 하며, 달리 재주가 없어 기쁘기도 하고, 달리 재주가 없는 까닭에 ‘다큐’나 ‘리얼리즘’하고는 처음부터 끈이 맞닿지 않았습니다. ‘문화’니 ‘예술’이니 ‘문학’이니 하는 얼굴하고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예 저한테 주어진 결대로 살아내는 하루하루요, 이 하루하루가 글과 사진이라는 모습으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2) 당신이 꾸리는 삶 또한 고스란히 예술


 799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읽습니다. 책을 읽으며 백 군데 남짓 되는 ‘오탈자’를 보고는 끔찍하다고 생각했으나, 이 책을 펴낸 곳에서 낸 다른 책을 떠올리면서, 엮음보다는 옮김에서 저으기 아쉬울밖에 없었다고 느낍니다. 아무래도 반 고흐(네덜란드말로 하자면 ‘환 호흐’)라고 하는 사람이 동생과 둘레 사람들하고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묶어내자면, 더없이 만만하지 않은 부피에 눌려 이런저런 아쉬움이 나타날밖에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아쉬움이 눈에 자주 뜨여도 책을 읽으며 그리 거리끼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묵묵히 한길을 가는 것이야(111쪽).” 같은 글월을 읽으며 “나는 조용히 한길을 걸어가야 할 뿐이야”로 새깁니다. “사람들은 보는 방식이나 사는 방식을 배워야 하듯이 책읽는 방법도 배울 필요가 있어(115쪽).” 같은 글월을 읽으며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나 세상을 사는 길을 배워야 하듯이, 책읽기도 배워야 해”로 받아들입니다.

 제 도서관 한켠에 얌전하게 꽂아 두고 있던 조그마한 책 《고호의 편지》(정음사)를 끄집어 냅니다. 1974년에 벌써 우리 말로 옮겨져 있던 이 책은 이때 뒤로 한 번 더 옮겨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노릇이나 여러 차례 더 옮겨졌는지 모릅니다. 저로서는 1974년에 나온 작은 책 하나로도 넉넉했기에, 굳이 다른 새 옮김판을 찾거나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는 그림쟁이 고흐 님이 쓴 편지글을 꽤 많이 실어 놓았습니다. 아쉽게도 모든 편지글을 담은 책으로 여미지 못했으나, 이만큼이라도 만날 수 있는 일은 그지없는 기쁨입니다. 책마을 일꾼이 책과 그림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베풀어 준 좋은 선물입니다.

 책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라고 붙였습니다만, 그림쟁이 고흐 님이 쓴 편지한테는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꾸밈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편지글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는데, 고흐 님은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바라지 않았거든요. 고흐 님 당신이 그릴 수 있는 ‘꾸밈없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바랐습니다.

 우리 나라는 일본 다음으로 ‘반 고흐 그림을 가장 사랑하는 나라’로 손꼽히지만, 정작 우리 나라에서 제대로 엮었다 할 만한 ‘고흐 읽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고흐 님이 편지글에 손수 쓰기도 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읽는 동안 어렵잖이 깨달을 수도 있는데, ‘감상에 지나치게 젖거나 사상에 지나치게 기울며’ 잘못 읽고 읊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이 그림(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거야. 나는 그런 그림이라고 확신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보이는 농민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에 가장 맞는 것을 찾으면 돼. 나로서는 농민을 조합한 그대로 그리는 쪽이, 그들에게 상투적인 감미로움을 갖게 하는 것보다 길게 보면 더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고 믿어(334쪽).” 같은 말마디처럼 고흐 님 그림에 담긴 넋을 찬찬히 읽으며 이렇게 읽은 이야기를 내 삶으로 담아내고자 애쓰는 분들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이렇게 ‘좋은 그림에 담긴 좋은 넋을 내 삶으로 담는 분’들은 이름과 소리소문이 하나도 없이 조용히 당신 길을 꿋꿋하고 힘차게 걸어가고 있겠지요. 굳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글로 되쓰거나 책으로 낼 일은 아니라 하겠지요.

 그림쟁이 고흐 님은 남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간 사람이 아니라 당신한테 주어진 길을 남김없이 받아들이면서 당신 깜냥과 주제에 걸맞게 삭여내면서 스스로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그림을 남기거나 대단한 편지를 남긴 고흐 님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답고 좋은 삶을(반가운 쪽으로든 얄궂은 쪽으로든) 꾸린 하루하루이고, 이 하루하루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살아낸 발자취이기에 고흐 님이 오늘날 널리 사랑받거나 알려져 있지 않더라도 당신 그림과 편지는 더없이 아름다울밖에 없습니다.

 전시장에 걸리는 그림이어야 아름답거나 훌륭한 작품이겠습니까. 집에서 손수 그려 집 벽에 걸어 놓거나 그저 스케치북에만 모셔 두는 그림이라 하여 떨어지거나 모자란 그림이겠습니까.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고 알뜰살뜰 꾸리고 있다면 누구한테나 당신 삶은 고스란히 문화이고 예술이며 문학입니다. 미국을 다녀왔다고 문화가 되지 않고, 유럽마실을 해 보았다고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하루키나 마리를 읽었다고 문학이 될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에 담긴 고흐 님 편지글은 우리한테 깃들어 있으나 우리 스스로 느끼지 못하여 우리 스스로 일으켜세우지 못하는 숱한 문화와 예술과 문학 실마리를 우리 스스로 찾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애타는 목소리와 애끓는 이야기가 가득가득합니다. 다만, 이 같은 애탐과 애끓음이란 느끼려는 가슴일 때에 비로소 느낍니다. 느끼려는 가슴이 아니라면 그저 ‘아, 나도 고흐쯤은 읽었다구!’로 그쳐 버립니다.
 





 (3) 되읽고 곱읽는 글월


 지난 유월부터 처음 읽어 두 달에 걸쳐 조금씩 곱씹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덮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오래도록 곰곰이 되돌아보았습니다. 느낌글이야 얼마든지 짤막하거나 단출하게 적바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 마음으로는 이 같은 편지글을 짤막하거나 단출하게 섣불리 적바림하기 싫었고, 제가 좋아하는 대로 곁에 놓고 찬찬히 되씹고 싶었습니다. 새로 읽고 거듭 읽으며 새로 삭이고 거듭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밑줄을 그으며 읽은 대목 몇 가지를 간추려서 옮겨적어 봅니다. (4342.12.22.불.ㅎㄲㅅㄱ)


[56∼57, 82, 114, 115, 145∼147, 203, 236쪽]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하도록 하렴. 그것이 예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참된 길이란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자연을 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단다 … 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처럼 펜도 종이를 따라야 하는 거야 … (예술은) 사람들이 옳게 이해하고, 사물을 왜곡하지 않는 경우에 한정되고, 그 사람의 인격의 참모습을 손상시키려 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로소 찾을 수 있어 … 사람들은 굴뚝 위에서 연기가 조금씩 나오는 것을 볼 뿐, 그대로 지나쳐 … 예술가는 언제나 처음에는 자연의 저항에 직면하게 마련이지. 그러나 자연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런 저항에 기가 꺾이기는커녕, 자극으로 받아들여 근본적으로 자연과 성실한 예술가는 하나가 되는 거야 … 모든 주의를 그 나무에 집중하여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듯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노력한다면 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은 저절로 만들어진단다 … 만일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 그냥 그대로 계속한다면 현상에 머물거나 답보하면서 후퇴하겠지 … 생명이 있는 존재를 소묘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야. 정말 어렵지만 멋진 일이지 …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화가들의 말이 아니라, 자연의 말이야.

[58, 64, 80, 95 177, 236쪽] 이곳은 정말 아름다워. 사람들이 멋지고 소박한 눈을 가졌다면, 그 눈 속에 수많은 대들보가 없다면 말이야 … 삶에서 우리의 몫이 신의 나라 속의 가난한 자, 즉 신의 심부름꾼이 되는 것인지 물어 보자 … 아우야, 낙담과 병과 분쟁을 만날 때마다, 이러한 시간을 우리에게 내린 신에게 감사하도록 하자. 그리고 온화한 마음을 잃지 말도록 하자 …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고, 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로 살기 때문이라고. 또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마케도니아 사람 같은 인간, 괴로운 생활을 보내는 노동자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며 계몽할 수 있는 주님이기 때문이라고 … 성직자들이 말하는 신은 나에게 완전히 죽었어 … 예술은 끈질긴 작업,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 작업, 그리고 끝없는 관찰을 요구하는구나. 끈질기다라는 말은 무엇보다 쉼 없는 노동을 뜻하지만, 동시에 이런 사람이나 저런 사람의 말에 휩쓸려 자신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해. 





[100, 126∼127, 211, 246, 412쪽] 갱부들과 사귀려면 그들의 심정을 알고, 그 기분을 나누어야 해. 다라서 교만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는 금물이야 … 광부나 방직공은 아직도 다른 노동자나 직공들과는 다른 세계를 형성하고 있고, 나는 그들에게 여전히 동료의식을 가지고 있단다. 언젠가 이들의 모습을 그려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거야 … 점점 이 가난하고 슬픈 노동자들, 소위 최하층 인간들, 가장 경멸받는 사람들, 보통사람들이 전혀 근거 없이 마치 범죄자나 악당처럼 생각하는, 그 가장 불쌍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감동적인 무엇, 비통한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어 … 신 앞에서 정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해. 옳은 일을 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라는 거야 … 나는 자연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저질이거나 진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아 … 그러나 옛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새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104, 137, 203, 235, 325, 413쪽] 나는 대학에서 죽을 각오로 공부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수명을 다하고 죽는 편이 좋아. 가끔 독일인 계절노동자에게 배우는 것이 그리스어 수업보다 더 도움이 돼 … 나는 반드시 땅을 파는 사람, 씨 뿌리는 사람, 경작하는 남녀를 쉬지 않고 그려야 해 … 이제 나는 화상이나 화가들을 쫓아다니지 않기로 했어. 그들이 누구라도 말이야. 내가 쫓아다녀야 할 사람은 모델뿐이야. 모델 없이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적어도 나는 그래 …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깊은 고뇌야 …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팍스러운 사람, 불쾌한 사람일 거야 … 그래, 좋아, 그것이 정말 사실이라고 해도, 언젠가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괴팍한 사람, 그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그의 가슴에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겠어. 그것이 내 야망이야. 그것은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 근거하고, 열정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근거하는 거야 …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막신을 신고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라는 말, 즉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에서 농민이 만족하는 정도에 자신도 만족한다는 점이야. 밀레는 그것을 실천했고, 사실 그밖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 이는 이스라엘스나 모베처럼 꽤나 사치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이 보여주지 않은 길을, 밀레가 인간으로서 화가들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해 … 네가 글을 쓰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놀랐어. 아니야, 사랑하는 어린 누이야, 차라리 춤을 배우고, 공무원이든 장교든 간에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렴. 요컨대, 네덜란드에서 공부하기보다는 차라리 더 많은 바보짓을 하렴. 공부란 사람을 둔하게 만드는 것 외에 어떤 목적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 





[110, 178, 195, 261, 324, 410쪽] 너도 잘 알 듯이 나는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아. 나도 그걸 알고 있고, 내 꼴이 충격적이라는 것도 인정해. 그러나 생각해 봐. 그것은 내가 외모를 꾸미는 일에 환멸을 느낄 뿐더러 그런 데 쓸 돈이나 재산이 없기 때문이야. 게다가 그것은 자신의 공부에 깊이 전념하기 위해 필요한 고독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해 …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삶은 정말 경이로운 거야 … 내가 아버지에게 진실을 말씀드렸다고 해서, 심지어 이성을 잃고 신랄하게 말씀드렸다고 해서 내가 아버지를 적으로 본 것은 아니야. 단지 아버지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뿐이지 … 작은 바다 스케치에는 황금색의 부드러운 효과가 있고, 숲 스케치는 더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야. 인생에는 두 가지 모두 있다는 게 기뻐 … 나는 밀레가 “나는 고통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술가 그 자신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 …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에게도 싹을 틔우는 힘이 있어. 따라서 자연스러운 생활이란 싹을 틔우는 거야. 곡식의 싹을 틔우는 힘이란, 우리에게는 바로 사랑에 해당하지.

[113, 155, 169, 175∼176, 280, 493쪽]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기란 정말 어려워. 지금 내가 직장을 잃고, 몇 년 동안 직장 없이 살고 있는 이유의 하나는 자신들과 생각이 같은 자들에게만 일자리를 나눠 주는 신사들과 생각이 달라서야 …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 너나 내가 사랑에 빠진다면 그냥 사랑하는 것이고, 그게 전부가 아니겠니? 그러니 실의에 빠지거나 감정을 억제하거나 불과 빛을 끄지 말고 머리를 맑게 유지하도록 하자 … 당신도 언젠가 사랑에 빠지면 좋겠다고 나는 그에게 말했어. 그럴까, 교수도 사랑에 빠질까? 성직자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까? …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새벽녘에도 곁에 친구가 있음을 발견하면, 세상살이가 더 즐겁지 않겠니? 그것은 성직자들이 사랑하는 교훈적인 일기나 교회의 흰 벽보다도 훨씬 즐거운 것이야 … 구빈원 노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그들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비록 이스라엘스가 그들을 완벽하게 그렸지만, 그런 눈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는 것이 놀라워. 여기 헤이그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세계가 존재하지.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야 … 어떤 사람은 색채의 뛰어난 관현악법을 알고 있으나, 사상이 결여되어 있네.

[266∼267, 311, 353, 388쪽] 실패를 거듭한다고 해도, 가끔은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져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해 … 중요한 것은 행동이지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점이야. 나는 원칙이란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인정될 수 있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 원칙만 나열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칙으로부터도 얻을 게 전혀 없지만, 네가 말한 사람들은 만약 그들이 마음을 다잡고 사려 깊게 산다면, 위대한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야 … 위대한 일은 우연이 아니라 분명한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야 … 나는 우리가 자연 자체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또 자연 속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틀리에 작업의 속임수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본다네 … 나는 “밭갈이하는 농부에게는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어. 농부는 진짜 농부여야 하고, 밭 가는 사람은 밭을 갈아야 그 그림은 진정으로 현대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고 말이야 … 그 누구보다 평온했던 코로는 봄을 깊게 느꼈고, 평생을 노동자처럼 간소한 생활을 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타인의 불행에 언제나 민감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297, 333∼335쪽] 사람은 왜 평범하게 되는가? 그건 세상이 시키는 대로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저렇게 순응하고 타협할 뿐, 결코 세상에 반대하지 않고 그 의견에 얌전히 따르기 때문이야 … 나는 램프의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이 사람들이 접시의 감자를 먹는 그 손으로 대지를 팠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어. 따라서 그 그림은 손 노동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양식을 정직하게 얻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나는 우리들 문명화된 인간들의 생활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어. 따라서 나는 사람들이 그런 이유도 모른 채 감탄하거나 인정하는 것은 전혀 기대하지 않아 … 언젠가는 이 그림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거야. 나는 그런 그림이라고 확신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보이는 농민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에 가장 맞는 것을 찾으면 돼. 나로서는 농민을 조합한 그대로 그리는 쪽이, 그들에게 상투적인 감미로움을 갖게 하는 것보다 길게 보면 더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고 믿어 … 만일 그 소녀가 귀부인의 옷을 입는다면 본래 개성은 사라져 버릴 거야. 농민은 일요일, 신사용 코트를 입고 교회에 갈 때보다 무명옷을 입고 들판에 있을 때가 더 멋지거든. 마찬가지로, 나는 농민화를 상투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 … 농민화에 향수 냄새가 나서는 안 돼 … “웬 쓰레기 같은 그림야!”라는 소리를 들을 게 틀림없지만, 그것은 각오해야 한다. 나 자신도 그렇듯이. 그래도 우리는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해 … 농민을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들 자신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면서 그려야 해.

[326, 339, 345∼346, 348쪽] 밀레에 대해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도시 화가들이 그린 농민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역시 파리 근교의 농민을 생각나게 할 뿐이라고 네가 지난번 편지에서 썼기 때문이야. 나도 같은 인상을 받았어. 이는 그 화가들이 인간적으로 농민생활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밀레는 또 말했지. 예술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 아무리 견고한 기초를 다진 신앙이나 종교도 결국은 썩어 버리고 말지만, 농민들의 삶과 죽음은 언제나 똑같이 이어진다는 거야 … “천사를 그린다니! 흥, 누가 도대체 천사를 보았지?”라는 쿠르베의 말에 남들은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계속 말하고 싶어. “〈하렘의 재판〉이라니! 흥, 도대체 누가 하렘의 재판을 보았지?”라고 … 그 모든 역사화들이, 보지도 못한 것을 계속 높이거나 넓혀 온 것이 아닌가! 도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모두 무엇을 위해 그런 그림을 그렸는가? 그것들은 대개 몇 해가 지나면 진부하고 재미도 없으며 더욱더 따분한 것이 되어 버릴 텐데 말이야.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그림을 잘도 그렸으니, 앞으로도 여전히 그렇게 하겠지 … 나는 그 모든 이국적인 그림이 아틀리에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 밖으로 나가 현장에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모든 일이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어 … 하루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농가에 살면서 농민처럼 들판에 나가야 한다는 거야. 여름에는 태양의 열기 속에서, 겨울에는 눈과 서리를 참아 가며, 실내가 아닌 툭 트인 야외로 나가, 잠시 산책하는 게 아니라 하루 진종일 농민처럼 살아야 한다는 거야. 





[371, 492, 520, 535∼536쪽] 현실의 삶 자체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감동이지. 나는 길거리 사람들을 자주 보는데, 귀부인보다 하녀가 흥미롭고 더욱 아름다워. 그런 평범한 남녀 속에서 기력과 활력을 발견한단다. 만일 그들을 그 특유의 성격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확고한 붓놀림과 간단한 기술로 그려야 해 … 정확한 소묘, 정확한 색채를 추구하는 건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모습을 색이나 무엇으로 정착시키려고 해도, 그림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사진 이상일 수 없기 때문이야 … 수확을 그리는 동안, 내 일은 수확하는 농부들보다 더욱 힘들었어 … 이곳에 온 어느 날, 어떤 화가가 이렇게 말하더군. “이런 걸 그리기는 너무 지리할걸.”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네. 이 풍경이 너무나 훌륭했기에 그 바보 녀석을 야단칠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것이지.

[414∼415, 571, 608, 662, 773쪽] 책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하렴. 그림을 그리렴. 생명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생한 인간이어야 해 … 가능한 많이 즐기고, 가능한 한 재미를 느끼렴 … 공부를 너무 많이 하지 마라. 그것은 독창성을 고갈시킬 뿐이야 … 파리에는 나막신 그림이 전혀 없어 유감이야 … 파리에서 나는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밖에 배우지 못했어 … 마치 자신이 꽃인 듯이 자연 속에 사는 그런 일본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종교가 아닐까? 더욱더 즐거워지고, 더 행복해지며, 인습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나 노동과는 반대로, 자연으로 되돌아가지 않고서는, 일본 미술을 연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 모든 게 인상주의인 인상주의 일변도가 되어서는 안 돼. 결국 다른 무엇인가에 장점이 있다면 그것을 놓쳐서는 안 돼. 확실히 색채는 인상주의를 통해 진보했어. 비록 길을 잃었을 때도 그랬지. 그러나 들라크루아는 이미 그들 이상의 경지에 이르렀어. 그리고 거의 색채를 갖지 않은 밀레는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남겼는지! … 나는 조카녀석을 자주 생각한단다. 모든 신경을 기울여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아이를 키우는 쪽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지만, 발길을 돌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바라기에는 지금 너무 늙어 버렸다고 느끼고 있어. 





[504, 663, 707쪽] 도대체 언제쯤 나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는 그 그림을? … 화가는 자신이 본 대로 그리면 위대한 인간으로 남아 … 그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는 것은 좋은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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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2-2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 글은 언제 읽어도 좋은데 의외로 알라딘에선 오시는 분이 드므신것 같아요.참고로 전 프리첼 시절부터 된장님 글을 많이 읽었읍니다^^
 
사람, 참 따뜻하다
유선진 지음 / 지성사 / 200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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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128 ― 할머니 삶자락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 유선진, 《사람, 참 따뜻하다》



- 책이름 : 사람, 참 따뜻하다
- 글 : 유선진
- 펴낸곳 : 지성사 (2009.10.26.)
- 책값 : 12000원



 (1) 제대로 닥친 추위를 느끼며


 새벽부터 깨어난 아기는 한낮까지 잠깐이나마 잠들지 않습니다. 다문 삼십 분이라도 아침잠을 자 준다면 아빠와 엄마는 숨을 돌리며 글을 쓴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할 텐데, 이렇게 숨돌릴 겨를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기한테는 마땅한 몸짓일 테니,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아기하고 옹글게 마주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나중에 아기가 크면 엄마 아빠가 아이보고 ‘엄마랑 아빠랑 함께 놀아 주렴’ 하고 노래를 불러도 밖에 나가서 동무들하고 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아기는 ‘나중에 엄마 아빠 스스로 안타까워 하지 말고, 바로 이 자리에서 놀아 주셔요’ 하는 마음일는지 모릅니다.

 셈틀 앞에 앉았으나 글쓰기는 못하고 아기하고 놀던 아침나절, 무슨 냄새가 나는가 싶어 아기 기저귀를 만지니 젖어 있습니다. ‘쉬를 했구나’ 생각하며 기저귀를 벗기려는데 구수한 냄새가 나면서 아기 엉덩이에 넓게 눌러붙은 똥이 보입니다. ‘언제 이렇게 똥을 누었지?’ 다시 기저귀를 엉덩이에 대고 아기를 덥석 안고 씻는방으로 갑니다. 씻는방 바닥에 똥기저귀를 내려놓고 따순 물을 받아 아기 아랫도리와 엉덩이를 씻습니다. 다 씻은 아기는 마루로 보내고 똥기저귀를 빱니다. 냄새가 빠지라고 창문을 열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구름이 우중충합니다. 비가 오려나? 올겨울에는 눈 구경이 어려울 듯한데.

 똥을 푸지게 눈 아기는 뱃속이 시원한지 눈자위가 벌거며 졸음이 가득한 데에도 잠잘 생각은 않고 더 놀자고 칭얼거립니다. 아빠는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인형놀이를 합니다. 벌써 두 시간 반을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데 아기는 지루해 하지 않고 팔팔합니다. 아홉 시 반이 조금 못 되어 옆지기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아빠는 아기한테 이길 수 없다며 잠자리에 듭니다. 이제부터 엄마하고 더 놀든지 잠들든지 하기를 바라면서.

 살짝 눈을 붙이지만 얼마 잠들지 못하고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 집을 찾아올 처가 식구를 헤아리며 기저귀 빨래를 해 놓습니다. 옆지기는 마루와 방을 쓸고 닦습니다. 밥을 한 솥 해 놓고 집살림을 조금 갈무리합니다. 그래 보았자 아기가 도로 어질러 놓겠지만.

 도서관 문을 열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창문을 열고 골목을 내다봅니다. 싸락눈이 온 골목을 휘감습니다. ‘눈?’ 아침에 본 구름은 비구름이 아닌 눈구름이었을까요.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사진기를 챙기며 집을 나섭니다. 바깥 날씨가 꽤 쌀쌀합니다. 이런 날씨에 옆지기와 아기를 데리고 골목마실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장갑을 끼고 골목을 걷습니다. 온도가 퍽 떨어졌는지 손가락이 금세 얼어붙습니다. 사진기 단추를 누르려 해도 손가락이 굳어 잘 안 움직입니다.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고 늘 푸념하고 있는 소리를 하늘이 들었을까요. 두 시간 반쯤 골목마실을 하며 겨울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데, 귀와 코와 입이 시리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딱딱하게 굳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걸리적거리지 않으며 따뜻한 장갑 한 켤레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혼자 살며 한겨울에도 충주에서 서울로 자전거를 달릴 때에는 ‘하루 열 시간을 자전거로 달려도 손가락이 얼지 않을 만한 장갑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꾸었습니다. 겨울날 열 시간쯤 쉬지 않고 자전거를 달리면 손가락도 얼고 발가락도 어는데, ‘발가락이 안 얼 만한 양말이 있으면’ 하는 꿈도 함께 꾸었습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모진 추위를 견디게 해 줄 좋은 장갑과 양말이 더없이 그립습니다. 그러나, 저야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에 땀이 나니 그럭저럭 괜찮을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손님을 기다리며 내내 앉아 있어야 하는데, 이분들 손과 발과 몸을 따뜻하게 해 줄 옷 한 벌이 참말 그립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늘 그 자리에서 동냥을 하는 사람을 볼 때에도 ‘값싼 장갑 한 켤레’를 건넬 수도 있지만, ‘그저 손에 끼는 장갑이 아닌 손이 따뜻할 장갑’을 건넬 수 있기를 꿈꿉니다.

 밥 한 그릇을 먹을 때에 그저 배만 가득 채우는 싼 먹을거리도 나쁘지 않겠으나, 조금 더 돈을 치르면서 내 삶을 채우고 내가 얻은 곡식과 푸성귀를 길러 준 일꾼한테까지 이바지를 하는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옷 한 벌을 장만할 때에도 같은 마음입니다. 책 하나를 사들여 읽을 때에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더 싸게 싸게 또 싸게 싸게 해서 내 주머니가 조금이라도 덜 짐스럽다면 반가울 수 있습니다만, 나 혼자만 홀가분한 삶이기보다는 내 이웃과 함께 홀가분하며 기쁠 삶이고 싶습니다. 내가 얻는 대로는 아니나, 내가 얻은 기쁨을 내 이웃이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돌아보면, 지난날에는 이런 마음을 품지 못했습니다. 어리고 철부지일 때에는 그저 ‘돈을 적게 쓰는’ 쪽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적게 쓰고 덜 쓰고’ 하면서 내 삶을 가꾸고 내 삶터를 일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적게 쓰는 삶과 덜 쓰는 삶이란 틀림없이 나와 내 둘레 터전에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밑바탕을 튼튼하게 일구지는 못합니다. 겉훑기예요. 참으로 도움이 되려면 ‘쓸 곳에 알맞게 써야’ 하는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적게 쓰는 삶에서 알맞게 쓰는 삶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덜 쓰는 삶에서 올바로 쓰는 삶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적게 쓰거나 덜 쓰는 삶이란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적다’는 테두리에서 머뭅니다. 알맞게 쓰거나 올바로 쓰는 삶이란 ‘아예 한푼조차 안 쓸 때가 있는 한편, 내 모두를 송두리째 바칠 때가 있’습니다. 써야 할 곳에는 아낌없이 쓰고, 쓸 까닭이 없는 데에는 조금도 안 씁니다. 이와 같은 삶이 알맞게 쓰는 삶이요 올바로 쓰는 삶입니다. 그렇지만 제 삶은 아직 알맞게 쓰는 삶이나 올바로 쓰는 삶에 가 닿지 못합니다. 시늉만 하고 있습니다. 시늉이나마 한다 말할 수 있는데, 하루아침에 탈바꿈하는 꿈이 아니라 나날이 차츰차츰 애쓰는 땀방울로 지내야 한다고 느낍니다.

 갑작스레 닥친 추위에 손가락이 얼어붙으며 사진을 찍는 동안 뼛속 깊이 느끼기도 합니다. 추운 겨울에 추위를 느끼며 찍는 사진에는 추위와 아픔과 괴로움을 함께 담아야 한다고. 사진기로 골목을 바라보는 사람이 느끼는 추위뿐 아니라 사진으로 찍히는 골목사람 삶터에 그동안 배어 온 추위를 함께 담아야 한다고. 그러면서 이 추위를 살며시 녹이는 따스한 손길을 놓치면 안 된다고.


 (2) 책에 담는 할머니 삶


 몇 해 앞서 《지는 꽃도 아름답다》(달팽이,2007)라는 책을 읽으며 참으로 기뻤습니다. 기쁘면서 반가웠고, 반가우면서 고마웠습니다. 이 책을 쓰신 할머니는 할머니이기 때문에 이렇게 받아들이고 곰삭이고 되새기면서 글 한 줄 우리한테 선물로 내어준다고 깨달으면서 기뻤습니다.

 요 한 달 사이에 《사람, 참 따뜻하다》라는 책을 읽으며 새롭게 즐거웠습니다. 즐거우면서 놀라웠고, 놀라우면서 흐뭇했습니다. 이 책을 쓰신 할머니는 할머니가 되었고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알차고 푸진 말마디를 우리한테 선물로 내려주는구나 하고 깨달으며 즐겁습니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쓴 문영이 할머님은 1935년에 태어났습니다. 《사람, 참 따뜻하다》를 쓴 유선진 할머님은 1936년에 태어났습니다. 어느새 일흔을 넘기고 여든 가까운 나이가 되어 가는 두 분입니다. 생각을 곰곰이 가누며 당신들 또래 할아버지들은 어떠한 글을 쓸까 궁금해집니다. 아니, 일흔을 넘기고 여든이 되어 가는 ‘예부터 글을 써 온’ 할아버지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일본사람 ‘사하시 게이죠’라는 분은 《할아버지의 부엌》(여성신문사,1990)이라는 책을 쓰면서 ‘나이 들어 혼자 남는 할아버지들이 집일을 하나도 못하며 너무 힘없이 쓰러지며 무너지는 삶으로 끝장이 나는 모습이 안타까워,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앞서 집일을 익히며 늙은 삶을 아름다이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일본사람 ‘소노 아야코’ 님은 《아름답게 늙는 지혜》(정우사,1985)라는 책을 쓰며 ‘늙음은 덧없음이나 못남이 아니라 새롭게 아름다움을 찾는 나이’라고 밝히며 스스로 늙어 가고 있음을 돌이킵니다. 나이가 들어 가기 때문에 스스로 더 아름다워지고 있음을 받아들이며 즐겁다고 이야기합니다(사하시 게이죠 님 책은 《아버지의 부엌》(지향)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새로 나왔고, 소노 아야코 님 책은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리수)라는 이름으로 2004년에 새로 나왔습니다).

 모두들 어린 날은 어린 날이기에 아름다우며, 어린 날 철없이 구는 모든 짓거리는 철없이 굴 수 있는 기운이 있는데다가, 뒷날 스스로를 깨닫고 고쳐 나갈 수 있어서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젊은 날은 철이 차츰차츰 들면서 어린 날부터 품어 온 꿈을 일구어 가는 땀방울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늙은 날은 기운이 없어 예전과 같지 않은 모습이 되는데,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꿈을 품에 안고 지내 온 삶이 아름답고 당신 꿈을 뒷사람한테 고이 물려줄 수 있어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유선진 님 책 《사람, 참 따뜻하다》는 수필문학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수필문학이라는 이름 없이 당신이 보내 온 삶을 적바림한 이야기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따로 어떤 문학 갈래로 나누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글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굳이 어떤 대단한 문학이 되어야 하는 글이 아니요, 반드시 어떤 높은 이름을 얻어야 하는 자귬이 아닙니다. 아픈 지난날을 아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 좋은 글이고, 외로움을 고스란히 즐기는 당신 삶을 속살 그대로 보여줄 수 있어 좋은 글입니다. 꼭 마음 뭉클하게 읽지 않아도 좋은 글이요, 오래오래 간직하며 거듭 돌아보지 않으며 살포시 삭여내어도 좋은 글입니다.

 나이 든 사람으로서 내려놓을 수 있음을 고마워하면서 적은 글입니다. 나이 들지 않은 사람들 또한 언제나 홀가분한 몸이 되어 사랑을 나누면 더욱 아름답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조촐히 적바림한 글입니다. 할머니가 어린 딸아들한테 조곤조곤 들려주는 글이요, 할머니가 더 어린 손자와 손녀한테 조용조용 나누어 주는 글입니다.


 (3) 《사람, 참 따뜻하다》 곰곰이 되읽기


 앞으로 할머님들 책이 우리 앞에 얼마나 선보일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크게 이름 높지 않은 할머님들 책들이, 이를테면 예순이 넘은 뒤 처음 붓을 잡고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수채그림을 즐기는 박정희 할머님 같은 분들 책이든 온삶에 걸쳐 집살림을 꾸려 온 여느 할머님들 책이 얼마나 나올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할머니 된 분들한테 ‘홀로 넉넉하고 느긋하게 당신 삶을 돌아보며 글 한 줄 적어 내려갈 틈’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쉽게 나오기 어려운 만큼 더 고맙게 받아 읽은 《사람, 참 따뜻하다》를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되읽어 봅니다. 저 스스로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 먹어 가기 때문이 아니라, 한 해 두 해 갈수록 할머님들 삶자락이 한결 따스하고 포근하다고 느낍니다. (4342.12.5.흙.ㅎㄲㅅㄱ)


[23, 65, 147쪽] 사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학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현재 삶의 내용이 학력이지요 … 쇠잔이란 얼마나 평화로운 체념인가. 젊음의 열정과 과욕이 씻기어 나간 평화. 그리고 쇠잔이란 또 얼마나 사람을 조그마하게 만드는가. 나는 아주 작아져서 엄지의 엄지가 되어 그의 등에 업혀 잠들고 싶다 … 내가 도착한 ‘노년’은 축복의 땅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빈손 때문이 아니라, 얻으려는 욕망이 걷힌 빈 마음으로 풍요의 고장이었고, 비로소 ‘신’이 바로 보이는 밝은 눈의 영토였다.

[39, 42∼43쪽] 나는 자라면서 내가 딸이어서 좋구나, 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연코 없다. 아들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은 없지만, 딸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컸던 것이 내가 살았던 사회환경, 아니 우리 집의 가정환경이었다 … 짐을 풀면서 솜씨 좋은 어머니가 새로 만드신 분홍빛 아기 옷에 눈이 가자, 나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면 꼭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학교도 다녀 보고, 돈도 벌어 보고, 큰소리도 치면서 살고 싶다, 를 입에 달고 사셨던 어머니. 딸 다섯을 낳을 때마다 섭섭하고 섭섭하여 몽땅 도둑을 맞았다 해도 그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으리를 노상 읊어대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당신 딸이 낳을 넷째 아이는 “딸이기를……” 바라는 당신의 절박한 염원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64, 94∼95쪽] 고부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관점에서 장점을 볼 줄 아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아니 장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하겠다 …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세상은 새로웠다.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그만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꼭 쓰이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깨달았다 …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약초이구나. 그래서 다른 이의 삶에 치유의 구실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한다. 구태여 익명으로 나를 감추지도 않는다. 언제나 실명이다.

[79쪽] “조카, 아주 이쁘게 나이를 먹었네.” 내가 칭송하자 “아마 미국에서 살아서 그럴 거예요. 한국에서라면 사방의 적들이 견제하고, 자연히 조급증에 걸리고, 사회 전체가 무언지 불안하고 바쁘잖아요? 그 가운데서 나도 그런 표정으로 늙었겠지요?”

[86∼88쪽] 오빠는 다섯 가지 약을 열심히 먹었다. 그 약이 자기를 살리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지성으로 먹었다. 그것은 소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자기 목숨에 대한 최대의 성실이었다. 성한 몸이든, 병든 몸이든, 생명을 부여받은 자로서 생명을 준 자에 대한 최고의 감사며 정의였다 … 소식을 듣고 모인 형제들에게 (오빠는) 미소를 지으며 “고마웠어요” 말을 하고 자는 듯이 눈을 감았다. 모처럼 단잠에 잠기는 듯 편안하게. 그 모습은 맑고 고왔다. “어서 와서 영진의 이뻐진 얼굴을 보아라!” 용케 참고 계시던 아버지가 오열을 터뜨리셨다 … 옆에서 보기에 답답하고 한심하고 지루한 병상에서 오빠가 누렸을 자유!

[102, 133쪽] “아무 생각 마시고 그림만 보세요.” 동서가 가만가만 말을 합니다 … 교편을 잡고 있는 동서가 아이를 낳자, 병원에서 바로 제 집으로 데려와 키울 때나, 열세 식구 조석을 단풍잎만 한 손과 종이배 같은 발로 동동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육신의 고달픔이 보기에 안쓰러워 “그러지 말고 약국을 하거라. 너는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람을 써서 살림을 맡기면 덜 고단하지 않겠니?” 내가 말하면 “언니, 우리 가족에게 젤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우. 형제 간에 사랑하고 화합하는 일이 문제인데 그 몫을 돈이 할 수 있나?”

[106쪽] 역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날렵한 차를 몰고 가는 이웃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들은 운전석 옆 유리창을 열고 정중하게 동승을 권한다. “역까지라도…….” 나는 한껏 상냥한 어조로 사양을 한다. 미끄러지듯 멀어지는 차를 보며 ‘당신은 오늘 그 귀찮은 물건을 끌고 다니느라 수고가 많겠구나’ 하고 가당찮게 오히려 동정을 한다. 그러면서 상대적인 자유를 느낀다.

[138쪽] 나는 다행히 나를 닮은 딸은 없고 아들만 있는데, 내 아들들에게 아버지가 내게 훈도하신 대로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고 일러 주며 길렀다. 아니 아버지보다 한술 더 떠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약점을 갖는다는 건 축복이야. 약점으로 인생에 승부를 걸어 보거라.”

[280쪽] 사실 70년을 산 여인들에게 쌓여 있는 것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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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수업
박원순, 홍세화 지음 / 두리미디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배움터가 못 되는 학교에 갇힌 사람들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3] 박원순과 52명, 《내 인생의 첫 수업》



 열여섯 달이 되어 가는 아기는 ‘엄마’와 ‘아빠’와 ‘아기’라는 말 다음으로 ‘아, 됐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말로 이 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알쏭달쏭이지만, 우리 귀에는 ‘아, 됐다’로 들립니다. 아기가 무언가 집고 싶어서 안달을 하고 떼를 쓸 때에 모른 척하고 있는데, 아기가 집어 달라는 무언가를 집어서 슬그머니 건네면, 아기는 한숨을 쉬듯 ‘아, 됐다’ 하고 내뱉습니다.

 엄마가 문득 읊는 소리를 듣고는 따라하는지, 그냥저냥 내는 소리가 ‘아, 됐다’처럼 들리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작은 키로 발돋움을 하며 무언가 집으려고 용쓰는 아기가 드디어 제 손에 무언가를 집고 나서 내뱉는 그 짧은 소리마디는 더없이 잘 어울리면서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 내가 다닌 학교에 민주공화국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면, 대한민국 공교육의 1차적 소명은 대한민국 국민을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 형성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공교육의 현장인 학교마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민주공화국이어야 했다. 프랑스의 학교마다 그들의 국가 이념인 ‘자유ㆍ평등ㆍ박애’가 강조되듯이. 그러나 내가 다닌 학교에서 강조된 것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반공ㆍ방첩’이었다 … 젊은 세대들은 거의 이 사건을 모른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과 6ㆍ10민주항쟁조차도 모르는데, 하물며 보도지침사건을 배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도지침사건은 한국 언론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  (16∼17쪽/홍세화, 97쪽/김주언)


 아기는 날마다 새롭게 배웁니다. 날마다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집과 똑같은 동네를 보면서도 배우고, 때때로 조금 먼 동네로 마실을 가며 부대끼는 모습과 사람들을 보면서도 배웁니다. 낯선 바람을 쐬면서 배우고, 낯익은 바람을 쐬면서 배웁니다. 어느 하나 배움 아닌 이야기가 없는 우리 터전입니다. 좋은 모습을 배우는 한편, 궂은 모습을 배웁니다. 좋은 사람한테서 좋은 내음과 목소리와 생각과 삶을 살며시 배울 수 있을 테고, 궂은 사람한테서 궂은 내음과 목소리와 생각과 삶을 안타깝게도 어느 결엔가 배울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꼭 아이를 키우는 몸이 되었기 때문에 제 둘레 터전을 더 깊이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이가 없이 어른끼리 살아가는 터전이라 하여도 ‘사람이 살 만’한 곳이어야 합니다. 맑은 숨과 따뜻한 햇볕을 쬘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나부터 내 이웃한테 따사로운 사람이어야 하며, 내 이웃은 둘레 사람들한테 넉넉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럴 때에야 비로소 살 만합니다. 동네는 돈에 눈먼 이들이 함부로 짓밟거나 까부수는 재개발구역이면 안 됩니다. 한 동네에 뿌리내린 채 서른 해이고 쉰 해이고 백 해이고 걱정없이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시끄럽거나 지저분한 장사꾼이 들이닥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서는 좀처럼 살 만한 터전을 찾기 어렵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이 있는 대로, 돈이 적거나 없는 사람은 돈이 적거나 없는 사람 대로, 마땅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힘이 듭니다.

 참말 왜 우리는 이렇게 온누리를 들쑤시면서 끝없이 재개발을 되풀이해야 할까요. 갯벌을 갯벌답게 살리고, 바다와 냇물을 바다와 냇물 그대로 살리면 안 되는가요. 논밭과 산들에 그렇게 비료와 농약을 쳐대야만 하는가요. 좀 못생기고 자그마한 능금과 배와 복숭아와 포도를 먹어서는 안 되는가요. 더 빨리 달리는 고속철도보다, 더 둘레 터전을 아늑하게 보듬으며 환경사랑을 함께하는 철도를 마련할 수는 없을까요.

 이 나라를 지키는 길에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몹시 안쓰러운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법 없이 느긋하고 넉넉하고 따뜻하고 힘차고 슬기로운 삶터를 일굴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더 많은 돈이 없이도 얼마든지 나라를 북돋우고 살림을 북돋우며 교육과 문화와 과학을 북돋울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 당시에 대한 기억들은 온통 선생님들께 ‘개기고 기어오른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내심으로 선생님들을 깔보고 무시했다. 학생이라고 무시하고 때리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대접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 세상 물정에 어둡던 나는 쉬는 시간이면 맨 뒷자리에 앉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교련반대시위가 심심치 않게 벌어졌지만 나는 그냥 멀리 피해 다녔다. 행여 그쪽 가까이 지나가다가 잘못될까 두려웠고, 혹시 졸업 이후에 공무원 등으로 취직하는 데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20쪽/오창익, 112쪽/이학영)


 《내 인생의 첫 수업》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덜컹거리는 지옥철에서 이 사람한테 밀리고 저 사람한테 발을 밟히며 읽습니다. 밀어붙이는 사람이나 발을 밟는 사람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차가운 빛조차 없는 메마른 낯빛으로 아무렇지 않게 밀치고 발을 밟을 뿐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내 옆과 뒤에서 똑같이 하는데 내가 밀치거나 밟을 밟았대서 내가 뭔 잘못인데?’ 하는 뚱한 모습입니다.

 가늘게 한숨을 쉬면서 힘겹게 책을 손에 쥐어듭니다. 모두 쉰세 사람이 저마다 당신 삶을 오늘과 같은 흐름으로 이끌어 준 ‘고마운 스승’이 누구였는가를 떠올리면서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쉰세 사람은 모두 우리 세상을 좀더 낫고 알차고 아름다운 쪽으로 이끌고 싶어하는 분들로, 저마다 시민사회 모임에 몸을 담고 온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사회 디자이너’라고 일컬으면서 우리 사회가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을 치지 않게끔 애쓰고 있음을 여러모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쉰세 사람이 되는 다 다른 삶이지만, 다 다른 사람들 삶이 어쩐지 몹시 닮았구나 싶습니다. 하나같이 초중고등학교 적을 ‘즐겁게’ 떠올리지 않습니다. 입시에 매이는 학생 때는 스스로를 사람답게 살지 못한 때로 떠올립니다.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취업이라는 벽에 부딪쳐 제 밥그릇을 챙기는 쪽에 좀더 기울어져 있거나, 공장이나 시위판에 뛰어들어 ‘보통사람이 누구인가’를 비로소 처음 보고 느끼며 배웠다고 이야기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금세 끝까지 읽어치웁니다. 다 읽어치운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글쓴이는 모두 쉰셋이지만, 왜 한 사람이 쓴 이야기라는 느낌만 드는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습니다. 어이하여 쉰세 사람이 지내온 발자국이 마치 한 사람이 지내온 발자국처럼 보이는지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 비판이라는 미명으로 상대를 비난하거나 험담해야 자신의 존재가 살아남는 우리 나라 운동권 문화에 익숙하던 나에게,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적절한 유머로 만들어 가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하고 강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 그 과정에서 강압적이며 불합리한 결정의 뒤에 돈과 권력에 충성하는 과학기술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간파했다. 그래서 과학은 가치중립이라고 믿던 ‘이공계’는 인문학을 더 공부해야만 한다는 걸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  (71쪽/나효우, 149쪽/박병상)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인천역에서 내려 어두움 깔린 길을 걷습니다. 코앞에 걷고 있는 젊은 짝꿍이 “씨발, 추워.” 하고 한 마디 뱉습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음직한 새파란 이들이 그리 춥다고 하기 어려운 이 날씨에 춥다고 하면서 “씨발”을 입에 붙입니다. 영 도 밑으로 뚝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춥다고 느끼면 춥겠지요.

 아침에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서 스치는 고등학교 아이들 또한 어느 누구한테나 입에 “씨발”이 붙어 있습니다. “씨발, 아침부터 …….”, “씨발, 오늘도 …….” 저녁나절 동인천역 둘레 술집거리에서 노닥거리거나 뒷골목에서 담배를 꼬나무는 고등학교 아이들 입에도 언제나 “씨발”이 매달려 있습니다. 단골로 가던 창영초등학교 앞 분식집은 이제 문을 닫고 말았는데, 이 분식집에 들어앉아 떡볶이를 먹으며 한 시간쯤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곳을 드나드는 초등학생과 여고생을 살펴볼 때에는 “씨발”을 입에 달던 아이는 못 보았습니다.

 동네 탓일는지, 가게 탓일는지, 또래동무 탓일는지, 둘레에 어떤 어른이 있는가에 따라 다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창영초등학교 앞에 있던(이 학교 바로 옆에는 여상이 있습니다) 분식집 아주머니는 어린 학생이 함부로 “씨발”을 입에 올렸을 때에 가만히 있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넌지시 타이르며 이런 말을 쓰지 않도록 이끌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때때로 떡볶이를 사는 곳이 있습니다. 대한서림과 동인서관 옆에 나란히 세 곳 붙어 있는 분식집 가운데 한 집에서 사는데, 이 분식집들을 드나드는 어린 학생이나 나이 좀 먹은 아저씨들이나, 분식집 할매한테 으레 반말을 늘어놓습니다. “할머니, 빨리 줘.”라든지 “할머니, 얼마야?” 하고. 어떤 이는 ‘할머니’라고도 안 붙이고 그냥 반말만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런 반말지꺼리에 딱히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으레 높임말을 씁니다.

 할머니 분식집은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에도 보았고, 옆지기와 함께 살며 딸아이를 낳은 요즈음도 봅니다. 할머니는 더 늙고 힘이 없어질 때에도 가게를 열어 놓으실 텐데, 앞으로 열 해쯤 더 이곳에서 장사를 이을 수 있지 않을까 어림해 봅니다. 그러니까, 이 할매 분식집을 찾아오는 나이 좀 먹은 이들은 당신이 학생 때부터 온 손님이요, 이제는 초등학생 아이를 데려오며 이곳을 들를 만한 때라 하겠습니다. 모르기는 모르지만, 이이들 나이 좀 먹은 이들은 학생 때부터 할매한테 말을 까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학교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은 앞으로 나이를 좀더 먹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 이곳을 다시 찾아온다면 그때에도 어김없이 말을 깔 테지요.


.. 그렇지만 중대장의 공명선거 의지는 상급자의 압력에 의해 바로 제동이 걸렸다. 거기에다 기무대 소식 보안반장까지 직접 찾아와서 “상급 라인에서는 발벗고 열심히 뛰고 있지만, 하급 라인에선 많이 ‘민주화’되어 여당표가 70퍼센트도 힘들 것이다. 너무 강압적으로 하지 말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해 줘라. 서신검열기로 표본조사를 하여 여당득표율이 저조할 때는 해당 중대가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라고 엄포를 놨다 … 그 대학이란 것이 이렇게 비싼 것이었구나! 대학생이란 것이 그저 합격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돈을 풍덩풍덩 바쳐야 누릴 수 있는 신분이었구나! 나는 당시 이런 바보 같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  (87쪽/이지문, 159쪽/김언경)


 집에 닿아 가방을 내려놓고 씻고 아기를 안습니다. 하루 내내 아기와 함께하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만 함께해야 하는 삶이 퍽 고단합니다. 더욱이 바깥일을 한다며 서울을 오가는 길에 부대끼거나 복닥이는 사람들이 그리 따사롭거나 넉넉하지 못해, 이런 바깥물이 제 몸에 배어들어 아기한테 옮아갈까 걱정스럽습니다. 제아무리 바깥물이 어지럽고 어수선하더라도 저 스스로 제 몸과 마음을 알뜰히 간수한다면 근심될 일이 없다 할 테지만, 한 사람한테 따스함과 넉넉함보다는 성과와 돈과 이름값을 바라는 이 삶터에서 제자리와 제길을 건사하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싸우고 싶지 않은데 싸우도록 내몰고, 어깨동무하고 싶은데 어깨를 내어주지 않습니다. 다투고 싶지 않은데 당신들과 같은 옷을 입지 않으면 편을 가릅니다. 따돌리기도 싫고 따돌림받기도 싫은데 당신들과 같은 자리에 서지 않으면 손가락질을 하거나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합니다.

 오늘 우리 삶터에는 학교라 할 만한 학교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 우리 삶터는 학교 울타리 안쪽에서만 가르치고 배우는데, 울타리 안이나 밖이나 매한가지로 어지럽고 어수선할 뿐 아닌가 싶습니다. 제도권을 박차고 나와도 제도권 틀거리요, 제도권 바깥에서 힘내어 싸운다 할지라도 제도권 테두리로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제도권을 비판하면서 제도권을 바로잡자고 애쓰는 쉰세 분이 쓴 토막글을 모은 《내 인생의 첫 수업》은 어쩔 수 없이 제도권 이야기에 파묻힐밖에 없고, 이리하여 쉰세 사람 쉰세 가지 삶이라고는 하나, 속살은 하나같이 어슷비슷하거나 도토리 키재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같은 목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배움터가 못 되는 학교를 박차고 나오지 못하면, 살림터가 되기 힘든 울타리에 매이는가 봅니다. 배움터가 되는 학교를 스스로 찾아나서지 못하면, 살림터가 될 우리 세상을 일구지 못하는가 봅니다. (4342.11.12.나무.ㅎㄲㅅㄱ)


 ┌ 《내 인생의 첫 수업》(두리미디어,2009)
 ├ 글 : 박원순을 비롯해 쉰두 사람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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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 -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2
김현아 지음, 박영숙 사진 / 호미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125 ― 딸아, 내가 아픈 만큼 내 이웃도 아프단다
 : 김현아,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



- 책이름 :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
- 글 : 김현아
- 사진 : 박영숙
- 펴낸곳 : 호미 (2009.7.27.)
- 책값 : 14000원



 (1) 한식구가 아플 때


 새로 퍼지는 감기에 알맞춤한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영어와 한자를 섞어 ‘신종플루’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내거나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서울로 일하러 다니고 싶지도 않으나, 요 몇 달 동안 서울로 일을 나가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지옥철에서 어마어마한 사람하고 부대끼고 서울에서도 엄청난 사람숲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저야 어찌어찌하다 보니 요 몇 달 이렇게 일하면서 산다지만, 인천에서 살고 있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수십만이 넘는 직장인과 학생)은 한두 달이 아닌 열 해나 스무 해, 또는 서른 해 남짓을 이처럼 전철(또는 버스)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복닥이고 시달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종플루에 걸리지 않고 싶으면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지만, 지옥철은 사람 많은 곳이 아니라 사람 미어터지는 곳이라 그야말로 아슬아슬하며 무시무시한 곳이라 할 수조차 있습니다. 서울 시내 학교에서는 휴교를 생각하고 있다고도 하는데, 따지고 보면 서울 시내 학교에 앞서 ‘인천-서울 전철’과 ‘수원-서울 전철’ 같은 끔찍한 지옥철이야말로 ‘운행 금지’를 깊이 헤아릴 노릇이 아닌가 싶고, 서울 지하철역에서도 신도림역이나 서울역이나 시청역이나 강남역 같은 데는 아예 ‘영업 정지’를 곰곰이 따질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좀더 앞선 몇 달 동안은 이런 생각을 따로 해 보지 않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끔찍하게 몸살을 앓는데다가 이 몸살 기운이 월요일을 맞이한 오늘까지 거의 가시지 않는 모습을 돌아보면서, 어쩌면 나도 이 새로운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랴 싶기도 하고, 새로운 감기가 아닐지라도 ‘지옥철에 익숙하지 않은 몸으로 지옥철에 시달리’면서 몸이 크게 무너지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서른다섯 해를 돌아보건대, 몸살이 나서 길게 이틀까지 몸져누운 적은 있으나 사흘을 넘긴 적은 없습니다. 좋게 본다면 저도 나이가 한 해 두 해 쌓이며 몸에 힘이 많이 줄었기에 몸살이 걸려도 나흘 닷새 엿새 이레까지 간다 여길 수 있습니다. 나쁘게 본다면 요새 걱정된다 하는 그 고뿔에 걸렸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밥술을 못 뜨고 말도 못하던 나날은 넘기고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몸이 조금은 좋아졌지만, 며칠을 더 두고보아야겠지요. 걷는다고 하나 십 분 넘게 걸으면 온몸이 욱씬거립니다.

 그런데 이런 판에 아기가 크게 다칩니다. 아픈 아빠를 보살피느라 고달픈 엄마가 꾸벅꾸벅 조는 사이 아기는 조금도 지치지 않고 마루에서 뛰어놀다가 제풀에 넘어집니다. 넘어지며 밥상 모서리에 눈썹 위쪽을 쾅 하고 박습니다. 예전에도 이렇게 박은 적이 여럿 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1센티미터 남짓 찢어집니다. 철철 흐르는 피를 어느 만큼 달래고 아기가 크게 놀라 하지 않을 무렵 겉옷을 도톰히 싸입히고 눕힌 채 가까운 병원으로 갑니다. 병원에 갈 일이 없는 삶이었으나 집 둘레에 병원이 있어 좋은 보람을 한 번 누립니다. 그래도 일요일 저녁에 찾아가서 아기 눈썹 위쪽을 꿰매는 값은 제법 비쌉니다. 아기는 꿰매는 내내 끔찍하게 울어젖힙니다. 어른 또한 마취 않고 꿰매자면 아픈 판에 아기는 얼마나 더 아플까요. 십 분 남짓 꿰맨 끝에 다 끝나고 엄마 품에 안기니 울음을 뚝 그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 품에만 안깁니다. 하기는, 아빠는 걸을 힘조차 없어 아기를 안기 벅찹니다. 집에 닿아 바닥에 내려놓으니 언제 그렇게 울어댔느냐는 듯이 온 집안을 휘저으며 뛰어놉니다. 조금 앞서까지 울부짖던 그 아기가 맞느냐 싶습니다.

 아기 아빠는 집에 와서 다시금 잠자리에 쓰러지고 아무런 일을 못합니다. 아기 엄마는 여러 날 홀로 온갖 집안일을 도맡습니다. 아기 먹을 밥과 아빠 먹을 밥에 당신 먹을 풀물 짜기까지. 아기 기저귀 빨래와 당신 옷과 아빠 옷 빨래까지. 집안 치우기와 쓸고 닦기까지.

 우리 식구는 여느 때에 아빠가 집안일을 많이 했기에 엄마한테 미안하며 고맙다고 느끼지만, 다른 식구는 아빠가 몸져누울 때, 또는 엄마가 몸져누울 때 어찌 될까 궁금합니다. 우리 부모님 댁에서 아버지가 몸져눕는다면 어머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버지를 돌볼 텐데, 어머니가 몸져누우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보고 집살림을 꾸리고 밥이며 청소며 빨래며 갖가지 일치레를 얼마나 꾸릴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남녀평등이나 여성주권이나 가부장제나 뭐나를 떠나, 한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을 때에 우리들 살림살이는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까요.


 (2) 한겨레가 아플 때


 우리 겨레가 많이 아픕니다. 못된 법으로도 아프고 나쁜 법으로도 아프며 짓궂은 법으로도 아픕니다. 쓸개빠진 정책으로도 아프고 못난 권력자 때문에도 아프며 어이없는 일로도 아픕니다. 그런데 갖가지 아픈 일이 수그러들거나 잦아들기 앞서 새로운 아픈 일이 터집니다. 새로운 아픈 일이 터지며 지난 아픈 일은 여론에서 묻히거나 사라지고, 여론에서 묻히거나 사라진다 하여 안 아프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새로운 아픔이 거듭거듭 자꾸 쌓이기만 합니다.

 생각해 보면, 새로 터지는 아픔이 많기 때문에 지난날 아픔만 오래도록 붙잡고 있기란 힘들다 할 수 있습니다.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이라는 책에도 나오지만, 수요일마다 시위를 하는 할머니들이 겪은 아픔을 놓고 수요일마다 꼬박꼬박 기사를 써 주는 언론은 이제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나마 수요시위는 천 회가 넘도록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어 ‘때 되면(?)’ 한 번쯤 굵직굵직하게 다루어 준다지만, 이 사슬을 뿌리뽑고자 ‘뿌리뽑히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고 어깨동무하며 싸워 줄 기자벗이나 지식인벗’은 없다 할 만합니다. 그래도(?) 서울 용산 철거민들 삶과 아픔과 눈물은 틈틈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퍽 큰 자리를 차지하면서 사람들 가슴을 저미고 있는데, 서울 용산 못지않거나 서울 용산보다 큰 생채기를 남기는 전국 곳곳 재개발 철거민과 골목동네 가난한 사람들 삶과 아픔과 눈물은 거의 어떠한 신문이나 방송을 못 타고 있습니다. 지역신문에서 드물게 다루어 준다 하여도 지자체 공무원과 개발업자들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습니다. 케이티엑스 승무원 문제는 어떠하며, 이랜드 노동자 문제는 어떠한가요. 아마, 요 열 해 사이에 일어난 갖가지 아픔과 눈물과 생채기로 얼룩진 이야기를 ‘이름만 갖다 붙여’도 일간신문 하루치를 통째로 채울 만큼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국가보안법 탓에 아파하는 사람과 군의문사 탓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이름만 줄줄이 적어 놓아도 무척 길디길지 않을까 싶어요.

 있는 사람은 더 누리지 못해 아프다고 하는 우리 겨레라고 느낍니다. 없는 사람은 밑바닥에서 허덕이느라 아프다고 하는 우리 겨레라고 느낍니다. 너나없이 아파하는 우리 겨레라고 느낍니다. 이런 판에 책 하나 끄집어 내어 읽는 사람은 더없이 느긋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런 세상에서 책 하나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그지없이 한갓진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파할밖에 없는 우리 겨레요 우리 나라요 우리 삶터이기 때문에, 아픔을 곱새기고자 책 하나를 더 붙잡으려 합니다. 몸져누워 끙끙 앓는 가운데에도 다문 한 줄이나마 읽고 잠자리에 들려고 합니다. 내가 아픈 만큼 내 둘레에 아픈 사람이 있음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내가 고단한 만큼 내 언저리에 고단한 사람이 울고 있음을 모르쇠로 넘기지 않고 싶습니다. 내가 한숨지으며 몸이 낫기를 비는 만큼 내 곁에 한숨지으며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있음을 지나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야기책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은 이런 대목을 살짝살짝 긁어 줍니다. 북북 긁는 책이 아니라 살살 긁는 책입니다. 우리가 안 느끼려 하는 아픔이 무엇이고, 우리가 못 느끼고 있는 생채기가 무엇인가를 차근차근 우리 온몸으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면서 살며시 긁는 책입니다. 이 책을 쓴 김현아 님은 지난 2008년에는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호미)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한 해 지난 2009년에 둘째 책을 내놓으며 우리가 자꾸자꾸 놓칠 뿐 아니라, 어느 한편으로 보면 내팽개치고 있다 할 만한 빈자리를 한결같이 붙잡고 있습니다.

 그저 몇몇 사람 생채기가 아님을 밝힙니다. 그예 어느 갈래 사람들 뒷이야기가 아님을 들려줍니다. 한낱 철지난 삶이라든지 떠벌이기 좋은 말밥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함께 껴안고, 같이 부둥켜안으며, 서로 감싸안을 우리 삶임을 글줄 몇에 살포시 담아내 줍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우리 나라에도 이만한 글을 쓰도록 살아낸 사람이 있고, 또 이만한 글이 나오도록 도와준 사람이 있기에, 겨레와 나라가 통째로 아파하고 있으면서도 그럭저럭 하루하루 버티듯이 서로를 기대면서 삶자리를 다스릴 수 있구나 싶습니다.


 (3) 글월 하나씩 아프게 씹어 읽기


 믿을 만한 책이라 한다면 두 번쯤은 차분히 되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랑할 만한 책이라 한다면 해마다 한 번씩 곰곰이 다시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름답다 할 만한 책이라 하면 내 아이한테 물려주어 내 아이가 내 나이가 될 무렵 즐겁게 읽도록 오래도록 간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딸아이한테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을 물려주고자 합니다. 딸아이한테 이 책을 물려주기 앞서,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가슴에 꾹꾹 눌러담은 말마디가 무엇이었는가를 하나하나 되읽으면서 천천히 옮겨적어 봅니다.


[17, 19∼21쪽] 사람이 꽃처럼 뛰어내리기에 절벽은 너무 험하고 거칠다. 떨어지는 도중에 바위 모서리에 부딪쳐 머리가 깨지거나 눈알이 튀어나오는 끔찍한 풍경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몇 천 명이 줄줄이 뛰어내렸다면 아비규환의 지옥이 따로 없었으리라. 곷이 지듯 애잔하고 슬프게 그녀들이 죽었다는 건 누구의 상상일까. 오히려 이 벼랑을 ‘피바위’ 같은 살별한 이름으로 명명되는 게 더 현실적이다 … 삼천과 궁녀라는 말이 조합되어 사용된 것은 일제강점기 대중가요들에서다. 낙화삼천, 꿈꾸는 백마강, 추억의 백마강, 백마강 등의 노래에는 낙화암과 삼천궁녀가 자연스레 짝을 지어 등장하고 이 대중가요들은 낙화암에서 삼천 명의 궁녀가 뛰어내렸다는 이미지를 완성한다.

[80∼81, 103∼104쪽] 본래 아랑 전설에는 원혼의 억울함과 해한이라는 주제가 중요한 이야기의 둥치였다. 아랑 전설 속에서 아랑각이 세워지고 아랑이 사당에 모셔진 건 억울하게 죽은 혼을 달래고자 한 것이지, 그녀가 정절을 지켜서가 아니었다 … 초기 아랑 제사는 밀양의 권번에서 어린 기생들이 주축이 되어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해방 후 기생 제도가 폐지되면서부터는 대한부인회가 주최가 되어 지내다가 그 뒤로는 아랑제집준위원회가 그 역할을 대신 맡아 여태껏 진행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랑제집전위원회는 모든 회원이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 논개가 왜군의 장수와 함께 장렬히 죽은 것이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조정에서는 처음에는 논개에게 어떠한 포상도 내리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왜병 한 명의 목만 베어도 공을 인정해 벼슬까지 내리던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보면, 왜장을 끌어안고 자살 투신한 논개의 공은 혁혁하다. 그러나 논개는 ‘관기’였다. ‘여성’이면서 ‘기생’. 당시의 신분 체제상 논개는 가장 하위에 배치된 ‘오염’된 존재였다. 사실, 기생은 사농공상 네 개의 계급으로 구성된 조선의 신분 체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122, 129, 131쪽] (여느) 제사의 과정에서 여자들은 늘 음식을 준비하거나 바쁘게 움직일 뿐 정작 그 의식에서 몸을 감추던 것이 비해, 모든 것이 여자들에 의해 진행되는 의암별제는 독특하고 낯설다. 이어지는 연희도 모두 여성들이 진행한다.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독창적인 형식의 행사인 것이다. 춤과 음악이 끝나면 음복연이 이어지는데 일종의 제사 뒤풀이 격인 이 음복연은 의암별제에서 매우 중요한 순서디. 의암별제가 단순히 논개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그 축제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축제였다는 걸 기억한다면 이해되는 바이다 … 백오십 년의 세월 동안 논개를 기리기 위한 작업을 해 온 진주 사람들의 정성으로 봐서, 만일 당시 논개한테 친인척이 있었다면 당연히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후손도 없고 친인척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논개에게 성을 부여하고 누군가의 딸이 되게 하는 건 어쩌면 논개가 끌어안고 갔던 신분과 계급의 억압을 다시 논개에게 덧씌우는 일이 아닐까 … 이렇게 논개는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애인으로 끊임없이 남성과의 관계 속에 자리매김된다. 논개를 민족정신의 수호자로 기억하려 할 때 논개는 끊임없이 남성과 연관되어 설명될 수밖에 없다. 민족이나 국가는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여성을 명명하기 때문이다.

[144, 156, 163, 225쪽] 그나마 이화중선이 살던 남원의 집도 지난해에 헐리고 빈터만 남았다. 이제 그 집은 해마다 한 번씩 유적지들을 돌며 찍어 둔 김용근의 사진 속에만 남아 있다. 있는 것들을 보존하는 일에 우리는 왜 그토록 인색할까. 새로운 것들을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의 절반만 있는 것들을 보존하는 데 들인다면 시간과 시간이 겹쳐지면서 만나는 생의 본질을 슬쩍 들여다볼 수도 있으련만 … 이화중선의 무덤은 오랫동안 오수에 있었다. 그러나 도로 공사를 하면서 이화중선의 무덤은 자취를 감춘다. 후손을 두지 않았던 이화중선은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지금 그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사실, 생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 인간의 정서와 예술적 미감을 만드는 건 고향이다 … 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요소 중 생가는 그가 ‘이곳’에서 태어났기 대문에 그런 작품을 남겼구나 하는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 아픈 기억을 바라보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를 지우는 건 더 위험한 일이다. 역사의 현장을 남겨 두는 건 그곳에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236∼237쪽] 십오 년 동안 한결같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수요시위는 매주 수요일 12시 일본 대사관 앞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상설 퍼포먼스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 간에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 어쩌면 모두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결된 것 아무것도 없지만 이슈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 언론도 더는 이 문제를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독도 분쟁이나 일본의 교과서 왜곡 같은 문제가 터졌을 때 기자들은 이곳으로 달려와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인다. 그리고 다음날 신문에는 ‘절규하는 위안부 할머니’따위의 제목과 함께 그녀들의 사진이 실린다. 그러나 막상 수요시위에서 절규하는 위안부 여성들은 별로 없다. 실제로 그녀들의 표정은 말갛고 차분하다.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기에 그녀들은 너무 나이 들었다. 스티로폼을 깔지만 차가운 바닥에 앉아 한 시간 넘는 시위를 견뎌내는 건 칠팔십대의 노인들에게 보통 일이 아니다.

[258, 267쪽] 언젠가 일본 시민단체 사람들과 ‘나눔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사각사각 기록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꼼꼼히 박물관을 둘러보고 방명록을 적는 그들, 한편에선 끊임없이 왜곡하고 부인하고 은폐하고, 한편에선 끊임없이 돌아보고 들추어내고 눈물 흘리는 것.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여성의 몸을 성적 도구로 사용했던 이들은 여전히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그 사실을 부정하고,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과거를 성찰하는 이들을 협박한다 … 때로 일부 언론에서는 피해 생존자들을 ‘불쌍한 희생자’ 혹은 ‘동정을 받아야 하는 피해자’로 대상화하기도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불쌍한 여성이 아니다. 그녀들은 군사주의와 폭력 앞에서도 목숨을 지켜내 마침내 그 실상을 폭로한 용감한 여성들이다.

[299쪽] 문학관을 나서서 최명희 생가 터가 있는 곳까지가 최명희길이다. 비록 짧은 길이지만 최명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길. 을지로, 충무로, 도산로……. 온통 남자들의 이름으로 불리던 이 땅에도 이제 여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길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그 길의 첫머리에 그녀의 이름이 있다.

[363쪽] 과수와 채소에 비료 농약을 쓰지 않는 일, 쓰레기차에 쓰레기를 내다 버리지 않는 일, 이 두 가지는 박경리가 원주에 온 뒤로 실천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작가가 원주에서 한 일은 《토지》를 완성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토지》를 완성한 일은 박경리가 원주에서 한 수많은 일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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