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코와 반제티 - 세계를 뒤흔든 20세기 미국의 마녀재판
브루스 왓슨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30



자유·정의·평화를 마녀재판으로 죽인 미국

― 사코와 반제티

 브루스 왓슨 글

 이수영 옮김

 삼천리 펴냄, 2009.9.23. 26000원



  브루스 왓슨 님이 쓴 《사코와 반제티》(삼천리)를 읽습니다. ‘20세기 미국에서 벌어진 마녀재판’을 다루는 책입니다. 2009년에 한국말로 나온 《사코와 반제티》는 592쪽에 이릅니다. 사코와 반제티 두 사람은 고향 이탈리아를 떠나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노동자’이고, 두 이주노동자는 미국에서 ‘아름다운 꿈’이 아닌 ‘슬픈 모습’만 지켜보면서 이 끔찍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거나 마주해야 하는가를 걱정하거나 아파합니다.


  그런데 두 이탈리아 이주노동자는 어느 날 갑자기 경찰한테 붙잡힙니다. 이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붙잡히지 않습니다. 이 두 이주노동자는 정부 조직이 ‘가난한 노동자’한테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없다고 느껴서, ‘무정부주의’를 생각하고 ‘징집기피’를 합니다. 바보스러운 정부는 없어져야 한다고 여긴 두 이주노동자요, 바보스러운 정부가 벌이는 바보스러운 전쟁에 끌려가서 ‘착한 이웃’을 총으로 쏴죽이는 그야말로 바보스러운 짓은 할 수 없다고 여겨서 ‘징집기피’를 합니다. 두 이주노동자는 미국에서 일용노동자로 일하며 두 가지 길을 걷는데, 다른 범죄 사건에 휘말리면서 미국 경찰에 붙잡혔고, 이 두 사람은 미국 정치와 사회에 ‘희생양’으로 다루어지고 맙니다.



1908년 6월 19일,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재판 사건의 주인공이 될 감상적이고도 지적인 이탈리아인(반제티)이 맨해튼의 거리에 섰다. 그는 여행가방을 든 채 새로운 나라를 살펴보았다. 미국은 그가 기대했던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본 광경은 놀랍고도 역겨웠다. 사람들은 골목길에서 잠을 잤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썩은 상추와 상한 과일을 주워먹었다. 맨해튼은 깡패, 창녀, 그밖에 미국의 거침없는 산업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들로 넘쳐났다. 거물 기업인들은 격식 있는 예복 차림으로 대로를 누비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뉴포트 메인 버크셔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평범한 노동자들은 헝겊 모자를 쓰고, 집에서 만든 보잘것없는 음식을 싸 가지고 가서, 무더운 여름날 오후를 코니아일랜드에서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39쪽)


대중의 인식과는 다르게 다수의 무정부주의 문헌은 폭력을 옹호하지 않았다. (48쪽)



  사코와 반제티 두 사람이 ‘돈을 훔쳤다’거나 ‘사람을 죽였다’고 하는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 두 가지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뒤집어썼고, 무척 오래 옥살이를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두 사람 스스로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뒤집어쓰고는 사형 선고를 받았고, 전기의자에 앉혀졌으며, 그대로 목숨을 빼앗깁니다.


  미국 정치와 사회는 왜 두 이주노동자를 죽여야 했을까요?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유’와 ‘정의’를 한쪽에서 말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자유와 정의를 끔찍하게 짓밟은 셈인데, 어떻게 이 두 가지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을까요?


  가만히 보면, 한국 정치와 사회도 언제나 ‘자유’와 ‘정의’를 밝힙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자유와 정의를 외치거나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 무척 많이 짓밟혔고 괴로웠으며 죽음으로 내몰리기까지 했습니다. 한국은 틀림없이 민주 사회라고 하지만, 민주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무척 많습니다.


  한국에 있는 숱한 미군기지는 자유도 정의도 아닙니다. 세월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도, 송전탑과 대형 발전소와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도,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도, 어느 한 가지도 자유나 정의라고 할 수 없으며, 민주나 평화도 평등하고도 동떨어집니다.




산업은 메사추세츠의 돈줄이었고 산업에 돈을 댄 이들이 주 정부에 권력을 행사했다. (68쪽)


법원에서는 예심이 끝나고 기소가 한 주 연기되었다. 기소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사코와 반제티를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어난 브리지워터 강도 사건과 연계시키고, ‘마이크 보다’를 추적하고, 이탈리아에 타전하여 코아치의 수하물에서 도난당한 급료를 회수할 시간이 필요했다. (99쪽)


무정부주의에 대한 신념을 밝히고 나서 사코는 평생 일해 온 과정을 들려주었고, 자신의 손은 테두리 절단사의 손이지 살인자의 손이 아니라고 했다. “돈을 훔치고, 돈 때문에 불쌍한 사람을 죽이다니! 이건 나에 대한 모욕입니다! 나는 결백해요! 나 이런 짓 안 합니다! 곧 태어날 아기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지요.”라고 그는 항변했다. (127쪽)



  20세기 미국에서는 마녀재판으로 두 이주노동자를 오랫동안 감옥에 가둔 뒤 전기의자로 괴롭히며 죽였습니다. 21세기 미국은 어떤 일을 할까요? 미국은 20세기나 21세기나 수없이 많은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이 전쟁무기를 지구별 여러 나라에 팝니다. 한국은 미국 전쟁무기를 무척 많이 사들입니다. 미국은 엄청나게 많이 쌓은 전쟁무기를 이끌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미국 군부대는 한국을 비롯해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 있고, 미국에서 만드는 전쟁무기는 앞으로도 엄청날 테지요.


  곰곰이 헤아릴 노릇입니다. 전쟁무기와 자유는 한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요? 전쟁무기와 민주는 함께 있을 수 있을까요? 전쟁무기와 평화나 평등이나 정의는 나란히 있을 수 있을까요?


  전쟁무기를 잔뜩 쌓은 나라치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나라는 없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도 독일도 프랑스도 이탈리아도 스페인도 모두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전쟁을 일으켜서 지구별 숱한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괴롭혔습니다. 한국하고 이웃한 일본도 전쟁무기를 잔뜩 쌓은 뒤 한국으로 쳐들어와서 퍽 오랫동안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전쟁무기로는 언제나 전쟁을 합니다. 전쟁무기이니까요. 전쟁무기를 많이 갖춘 나라는 ‘겉으로 민주’를 말해도 민주를 지키거나 가꾸지 않기 마련입니다. 전쟁무기를 내세우는 나라는 ‘겉으로 자유와 평화’를 말해도 막상 자유와 평화를 잔뜩 억누를 뿐 아니라, 권력자와 부자한테만 도움이 될 자유와 평화로 나아갑니다.




반제티의 감방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129쪽)


다섯 주 동안 사코와 반제티는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려 왔다. 두 사람이 화를 냈을 때 빼고, 배심원들은 그때까지 두 사람에게서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211쪽)


카츠만은 진술 대목마다 이의를 제기했지만 속으로는 행운이 찾아온 걸 기뻐하고 있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12만 6천 명의 미국인이 사망한 사실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에 새겨져 있었다. 1919년의 폭탄 테러들은 무정부주의의 악의에 찬 활동이라고 인식되었다. 이런 마당에 두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을 무정부주의자이자 징집기피자로 낙인찍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검사가 이보다 더 좋은 과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216쪽)



  이주노동자는 고향나라에서 살 길이 까마득하다고 느끼기에 고향나라를 등집니다. 한국도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사람이 이 나라를 떠났습니다.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가기도 했지만, 이 땅에서 살 길이 아득해서 만주로도 떠나고 일본으로도 떠났습니다. 오늘날에는 한국으로 찾아오는 이주노동자가 많습니다. 이주노동자로서는 제 고향나라 정치와 사회가 아름다웠다면 고향나라를 떠나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향나라도 안 아름다웠는데, 새로 뿌리내려서 살려고 하는 먼먼 나라도 안 아름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를테면, 한국으로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으로 찾아오는 수십만에 이르는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노동자 대접’을 제대로 받을까요? 한국에서 일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는 ‘사람 대접’을 어느 만큼 받을까요?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땀흘려야 했던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한국으로 찾아오는 이웃나라 이주노동자도 노동자 대접과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모두 사람 대접을 받으면서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평등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구별 모든 정부 조직은 ‘전쟁무기 만드는 데에 돈을 쓰지 말’고,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평등을 가꾸고 살찌우는 데에 돈을 쓰고 마음을 쓰며 슬기를 그러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유로운 사상이란 누구에게나 자신의 사상을 표현할 기회를 줍니다. 최고의 사상이 아니고, 특정한 사람에게 주는 게 아닙니다. 2천 년 전의 스페인과는 다릅니다. 출판, 교육, 저술, 자유언론의 기회를 주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압니다. 미국을 보니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 한 주에 21달러에서 30달러를 버는 이들에게는 하버드 대학에 갈 기회가 없습니다. 한 주에 80달러를 번다 해도 아이들 다섯 명을 기른다면 먹고살면서 아이들을 하버드 대학에 보낼 수 없습니다.” (228쪽)


미국인들은 1920년대 이전에도 향락을 즐겼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렇게 공공연하게 땡땡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금전등록기에 들어가는 그 많은 돈을 쓰며 즐긴 적은 없었다. 20세기를 지배하게 되는 거의 모든 오락(라디오, TV, 스포츠, 통속심리학, 가전제품, 청년문화, 유행의 광풍, 유성영화, 매디슨 애비뉴, 미키 마우스)이 이 광란의 시대에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도 일부 여흥은 부자들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 날 문득 ‘모든 사람’이 몰고 다니는 포드 자동차처럼, 야구 경기나 무도 음악을 ‘모든’ 집의 거실로 들어온 RCA처럼, 술과 섹스에 대한 솔직한 토로처럼, 오락은 모두의 것이 되었다. (282쪽)



  인문책 《사코와 반제티》는 사코와 반제티를 둘러싼 1920년대 미국 사회가 어떠한 모습이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1920년에 감옥에 갇힌 뒤 1927년에 목숨을 빼앗겨야 한 이탈리아 이주노동자 두 사람이 미국에서 보낸 1920년대는 ‘모든 사람이 모든 향락을 누리던 때’라고 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한국 사회도 1920년대 미국 사회와 엇비슷합니다. 2010년대 한국 사회를 보면, 한쪽에서는 차별과 푸대접과 따돌림이 판을 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스포츠와 영화와 섹스와 연속극과 유행과 상업문화가 판을 칩니다. 한쪽에서는 가난해서 굶는 사람이 있는 한국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매우 값비싼 사치품이 엄청나게 팔리는 한국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세값을 낼 돈이 없어서 달삯으로 살지만, 어떤 사람은 아파트 전세값을 1억 원이나 2억 원을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파트 전세값을 1억 원이나 2억 원을 내는 사람이 ‘부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전세 보증금 천만 원이 없는 사람보다 전세 보증금 1억 원을 댈 수 있는 사람이 ‘돈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더라도, 이쪽도 저쪽도 부자가 아닙니다. 이쪽도 저쪽도 삶이 아슬아슬하기는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와 정치와 사회인 한국에서 미국 스포츠와 유럽 스포츠 이야기는 실시간으로 퍼지고, 월세살이인 사람도 전세살이인 사람도 똑같이 스마트폰으로 이웃나라 스포츠 이야기에 푹 빠져듭니다.




세이어의 기각이 두 사람의 희망을 갉아먹고 있을 때, 판사는 자신의 공정성을 영원히 훼손하게 되는 말을 내뱉었다. 기각 결정을 내린 직후, 세이어는 다트머스 풋볼 경기에서 전직 매사추세츠 변호사인 교수 한 명을 우연히 만났다. 곧장 사코와 반제티 얘기를 꺼낸 세이어가 공격적으로 말했다. “내가 저번에 그 무정부주의 놈들한테 무슨 일을 했는지 모았는가? 아마 당분간 꼼짝 못할걸! 이제 그들을 대법원으로 보낼 테니 거기서 어떻게 되는지 보게!” (356쪽)


“내가 오늘 여기 이 판사석 앞에 서 있는 이유는 내가 억압받는 계급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압제자지요. 세이어 판사, 당신은 그걸 알 겁니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압니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압니다. 당신은 나와 가엾은 내 아내를 일곱 해나 박해하고서 오늘도 우리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겠지요!” (406쪽)



  누군가 권력을 쥐면 누군가 억눌립니다. 누군가 돈을 거머쥐거나 혼자 차지하려고 들면 누군가 빈털털이가 됩니다. 누군가 권력을 휘두르면 누군가 짓밟히면서 괴롭습니다. 누군가 돈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면 누군가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기까지 합니다.


  사코와 반제티 두 사람은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에, 고향나라에서 아무런 꿈을 키울 수 없어서 고향을 등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미국에서도 푸른 꿈을 볼 수 없이 슬픔에 사로잡힌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리하여 정부를 못 믿고 정부란 아무 도움이 안 되는구나 하고 느낀 사람이었기 때문에, 1927년 봄날, 그만 이슬처럼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사코와 반제티 두 사람이 미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지 않고 제 고향나라에서 꿈을 키울 수 있었으면, 미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죽을 일이 없습니다. 사코와 반제티가 두 사람이 제 고향나라인 이탈리아에서 ‘믿을 만하고 아름다운 정부’가 보여주는 멋진 정책을 지켜보면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지을 수 있었다면, 이 두 사람이 걸어간 길은 사뭇 달랐으리라 느낍니다.




“판사님은 내가 판사님 앞에서 떨지 않는다는 걸 보고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수치스러워하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고 나는 판사님을 똑바로 보고 있습니다.” (407쪽)


저녁 9시에 사코와 반제티는 사형 집행인이 옆방에서 전기의자를 실험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 시간 뒤, 그들은 옥에서 불려 나왔다. 머리를 박박 깎고, 전극 집게를 연결할 수 있도록 바지에 긴 틈을 냈다. (463쪽)



  사코와 반제티는 왜 무정부주의를 밝혔을까요? 정부가 제구실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코와 반제트는 왜 군대에 가지 않으려 했을까요? 제구실을 못하는 정부가 일으키는 전쟁은 ‘가난한 노동자 이웃’ 모두를 더욱 괴롭히는 끔찍한 짓인 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무정부주의와 징집기피를 밝힌 두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못 미더운 정부’가 ‘미더운 정부’로 바뀌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군대가 갈 만한 곳’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정부가 할 일은 두 이주노동자한테 ‘사형선고 하기’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도 제 나라 노동자도 걱정없이 삶을 가꿀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선보이는 일입니다. 1920년대 미국 정부뿐 아니라 2010년대 한국 정부도 슬기롭고 올바른 정책을 선보여서 ‘미더운 정부’로 거듭나야 하고, 전쟁무기로 이루는 ‘거짓 평화’가 아닌 전쟁무기와 군부대를 모두 내려놓고, 이 돈과 품으로 ‘아름다운 나라’를 이루는 참다운 길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반제티는 의자에 앉았다. 끈으로 조여지고 전극이 연결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죄라고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가끔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겠지만 나는 결코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내게 베풀어 준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이 범죄뿐 아니라 어떤 범죄도 말입니다. 나는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교도관들이 일을 마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내게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머리에 복면이 씌워졌다. 몇 분 뒤, 그는 방에서 실려 나갔다. (483쪽)



  바보스러운 먼 나라 정부가 목숨을 빼앗는 자리에서 반제티는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깁니다. 일곱 해 남짓 옥살이를 하면서 햇볕 한 줌 쬐기 힘들었던 사코와 반제티 두 사람은 이탈리아도 미국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죽음길로 갑니다. 사형선고 판결을 내린 사람도, 전기의자에 전기를 넣은 사람도, 두 사람 머리에 복면을 씌운 사람도, 모두 너그러이 보아줍니다.


  무정부주의는 무장폭동을 일으키려는 사상이 아닙니다. 삶을 바로세우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 사상이기에 ‘바보스러운 정부를 끌어내려야 한다’고 밝히는 무정부주의입니다. 징집기피나 병역기피는 의무를 안 지려고 하는 몸짓이 아닙니다. 전쟁이 꾀하는 일이란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고 깨달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과 사회와 평화를 바라면서 보여주는 몸짓입니다.


  오직 평화가 평화를 이루고, 오직 민주가 민주를 이루며, 오직 정의가 정의를 이룹니다. 슬기로운 자유가 슬기로운 자유가 되고, 아름다운 평등이 아름다운 평등이 되며, 사랑스러운 꿈이 사랑스러운 꿈이 됩니다. 2010년대 한국 정부가 아름다운 평화와 슬기로운 정의와 사랑스러운 민주와 자유와 평등이 흘러넘치는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9.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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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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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05



‘문’을 열고 한 발짝 새롭게 길을 나선다

―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 문

 나쓰메 소세키 글

 송태욱 옮김

 현암사 펴냄, 2015.8.28. 13000원



  문틈으로 모기가 들어옵니다. 아주 조그마한 틈이 있는데 아주 조그마한 모기가 바로 요 틈으로 들어옵니다. 가을이 깊은데에도 아직 살아남은 모기는 아주 조그맣지만 아주 매섭게 뭅니다. 모기한테 물린 자리가 붓고, 부은 자리를 잊으니 이내 가라앉으며, 낮고 빠르게 나는 작은 모기를 찰싹 때려서 잡다가 속삭입니다. 얘들아, 너희도 이제 잠들어야 하지 않니? 너희를 더 때려잡고 싶지는 않구나.


  가을이 깊어지는 시골집은 저녁이 되면 썰렁합니다. 낮에는 가을볕이 뜨겁지만 해가 하늘에 없는 저녁과 새벽에는 스산해요. 아침에 느즈막하게 마루문을 열고, 저녁에 해가 질 무렵이면 마루문을 닫습니다. 그런데 마루문이나 방문을 꼭꼭 닫아도 바깥에서 울리는 소리는 집안으로 고이 스밉니다. 어떤 소리가 스미는가 하면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가 스밉니다. 우리 집을 둘러싼 마당과 텃밭과 풀밭에서 사는 수많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는 하루 내내 온 집안으로 퍼집니다.



“이봐, 작은집이 나카로쿠반초 몇 번지더라?” 하고 미닫이문 너머에 있는 아내에게 묻는다. “25번지 아니에요?” 하고 아내가 대답했는데 소스케가 수신인 주소를 다 쓸 때쯤에는, “편지로는 안 돼요. 가서 잘 말씀드리고 와야죠.” 하고 덧붙였다. (19쪽)


“오요네, 오요네.” 하고 소스케는 부엌에 있는 아내를 부르고는, “고로쿠가 왔으니까 맛있는 거라도 좀 만들어 봐.” 하고 말했다. 아내는 바쁜 듯이 부엌의 장지문을 열어 둔 채 나와 객실 입구에 서 있다가 그 뻔한 주문을 듣자마자, “네, 지금 바로 준비할게요.” 하고 대답하고는 바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그 대신 도련님, 미안하지만 객실 문을 닫고 남포등에 불 좀 켜 주시겠어요? 지금 저도 기요도 손을 뗄 수가 없거든요.” 하고 부탁했다. (30쪽)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가운데 아홉째 권으로 나온 《문》(현암사,2015)을 읽습니다. 이 작품은 1910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1910년은 한국으로서는 크게 아픈 해였지요. 이무렵 일본은 어떤 나날이었을까요. 이웃한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크게 힘을 뻗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요.


  일본에서도 살림이 넉넉할 뿐 아니라 흥청망청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살림이 가난할 뿐 아니라 하루 벌어먹기조차 고단한 사람이 있습니다. 군국주의와 전쟁을 두 팔 벌려 반기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군국주의도 전쟁도 온몸으로 거스르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요.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일본 정권에 빌붙어서 떡고물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고, 나라를 되찾으려고 온몸으로 애쓴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두 갈래로 나뉩니다. 삶을 짓는 사람하고 삶을 짓지 않는 사람으로 갈립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내 삶처럼 네 삶이 아름답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다치거나 억눌리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합니다. 삶을 짓지 않는 사람은 제 삶만 바라보기 때문에 둘레에서 아무리 다치거나 억눌리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고로쿠는 자신이 학교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형에게 일요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엿새 동안의 어두운 정신 활동을 이날 단 하루에 따뜻하게 회복하기 위해 형은 많은 희망을 24시간 안에 투입하고 있다. (33쪽)


이튿날 아침이 되고 관청의 일이 시작되자 소스케는 이미 고로쿠의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느긋하게 있을 때도 그 문제를 눈앞에 똑똑히 떠올리고 확실히 생각해 보는 것을 꺼렸다. 머리카락 안에 싸여 있는 그의 두뇌는 그 번거로움을 견디지 못했다. (69쪽)




  소설책 《문》에 나오는 ‘고로쿠’는 ‘소스케’라는 사람한테 동생입니다. 두 형제는 살림이 무척 넉넉한 아버지를 두었지만 아버지가 죽은 뒤로 집살림이 크게 기울었습니다. 형 소스케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불타는 사랑’에 뛰어들면서 학교와 마을에서 쫓겨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다가 도쿄에 어렵게 자리를 잡아서 두 부부끼리만 오붓하고 조용하게 삽니다. 동생 고로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작은집에 기대어 지내다가 더는 작은집에 기댈 수 없어서 형네 집으로 얹혀 들어가서 지냅니다. 형 소스케는 밝고 싹싹한 마음결로 삶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지낸 사람이지만, 불타는 사랑으로 짝을 맺은 뒤로는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는 일은 거의 안 하면서 일터와 집 사이만 오가는 나날을 보냅니다. 동생 고로쿠는 어려움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채 학교만 다니다가 돈 때문에 더는 학교에 다닐 수 없는 몸이 된 줄 깨닫고는 공부에는 재미를 안 붙이고 날마다 어디에선가 돈을 얻어서 술만 마시며 노닥거립니다.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넘어서던 일본 사회를 가만히 그려 봅니다. 한 사람은 ‘자유연애’라고 하는 문턱을 넘은 뒤 학교와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쫓겨난 뒤 ‘마음이라고 하는 문’을 굳게 닫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앞날을 생각하는 일’이 없이 그냥 학교만 다니다가 제 앞길이 더는 느긋하거나 탄탄하지 않은 줄 알아차리고는 ‘앞날을 생각하는 일’은 굳이 더 하지 않고 그저 노닥거리기만 하면서 어떠한 문턱도 스스로 넘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무렵 일본 정치와 사회는 전쟁이라고 하는 문턱을 넘습니다.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라는 문턱을 뛰어넘습니다. 평화와 평등이라는 문턱은 아예 짓밟습니다. 군국주의 일본 사회에서 학교는 어린이와 젊은이한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평화와 평등은 깡그리 짓밟는 정치와 사회에서 일본 어린이와 젊은이는 무엇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밤에는 오랜만에 《논어》를 읽었어.” 하고 말했다. “《논어》에 뭔가 있어요?” 하고 오요네가 되묻자 소스케는, “아니, 아무것도 없어.” 하고 대답했다. (82쪽)


아침나절에는 관청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를 봤지만 이따금 어젯밤의 광경이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오요네의 병이 마음에 걸려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때로는 이상한 실수까지 저질렀다. 소스케는 점심시간을 기다려 과감히 집으로 달려갔다. (145쪽)



  한쪽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전쟁통에서도 아이는 태어납니다. 한쪽에서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어도, 이 북새통 틈바구니에서도 아기는 어머니한테 매달려 젖을 물어야 합니다.


  삶은 어디에서나 흐릅니다. 다들 배고프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날마다 잔칫상 같은 밥을 게걸스레 먹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두 끼니를 차려서 먹기도 벅찬 사람들이 있습니다. 애써 땅을 부쳐서 곡식을 거두어도 땅임자가 거의 다 차지하고, 얼마 남지 않은 곡식마저 식민지 총독부에서 빼앗기 일쑤입니다. 쌀죽은커녕 피죽조차 먹기 어려운 나날이 이어지는 소작농이 매우 많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살 길이 까마득하기에 만주로 떠나거나 일본으로 건너가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입에 풀을 바르려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문을 지나야 할까요. 배부른 사람들은 날마다 어떤 문을 드나들까요. 배고픈 사람들은 어떤 문을 바라보면서 고향을 뒤로할까요.



그녀는 그때 보통의 산모처럼 삼칠일을 잠자리에서 보냈다. 몸이라는 면에서 보면 극히 안정된 3주일이었다. 동시에 마음이라면 면에서 보면 놀랄 만큼 인내한 삼칠일이었다. 소스케는 죽은 아이를 위해 작은 관을 마련하여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장례를 치렀다. (163쪽)


부부는 해 앞에서 웃고 달 앞에서 생각하며 조용히 해를 보내고 또 맞았다. 올해도 이제 다 저물어 가고 있었다. (191쪽)



  나쓰메 소세키 님이 빚은 문학 《문》은 ‘잘나지도 않으나 못나지도 않은’, 그렇다고 ‘잘살지도 않으나 못살지도 않은’ 사람들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줍니다. 스스로 새로운 문턱을 한 발짝 넘어섰으나 더 새로운 문턱으로까지는 차마 넘어서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뒤로 물러나지도 못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두려워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길을 걱정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하루하루 흐릅니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안 하다 보니 마음에 응어리만 쌓입니다.


  소설 《문》에 나오는 사내인 소스케는 그야말로 안절부절한 마음에 그만 허둥거리다가 관청 일을 열흘씩 쉬면서 숲속 절집으로 꽁무니를 뺍니다. 소설 《문》에 나오는 가시내인 오요네는 아픔하고 슬픔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도 스스로 웃음을 잃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뒤로 빼거나 꽁무니를 빼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이녁 삶을 코앞에서 맞닥뜨리고 마주하며 부딪힙니다. 다만, 이러한 오요네라고 하더라도 더 너른 문턱을 넘어서지는 않습니다. 문지방 건너편에서 조용히 사내(남편인 소스케)를 지켜보면서 기다립니다. 마음속으로는 새로운 삶을 꿈꿀는지 모르나, 이러한 뜻을 선뜻 내비치지 않으면서 그저 사내를 지켜보며 기다리는 삶을 보냅니다.




소스케는 언뜻 보기에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 듯한 그 사람들의 나날과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지금의 생활을 비교하고 그 현격한 차이에 깜짝 놀랐다. 그렇게 속 편한 신분이라 좌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좌선을 한 결과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228쪽)



  삶은 언제나 흐릅니다. 하루하루 고달프거나 괴롭다고 여기면서 등을 돌린다든지 고개를 돌릴 수야 있습니다만, 내가 등을 돌리더라도 삶은 늘 흐릅니다. 내가 아무리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아침이 흐르고 낮이 흐르며 저녁이 흘러요. 나는 언제까지나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숨을 수 없습니다. 일터에 낼 수 있는 말미는 길지 않습니다. 열흘쯤 말미를 냈어도 열흘은 훌쩍 지나갑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뒤로 돌아갈 노릇이고, 뒤로 돌아갈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안 간다면 언제나 제자리걸음인 셈인데, 제자리걸음으로는 삶을 짓지 못합니다.


  뒤로 가는 길은 나쁘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뒤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봉우리에 오른다고 해서 그저 올라가기만 하지 않습니다. 봉우리에 올라섰으면 이제 내려와야지요. 봉우리에서는 아무것도 못 해요. 봉우리에 집을 지을 수도 없고, 봉우리에서 땅을 부쳐 열매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봉우리에 올라섰으면 적어도 집으로는 돌아가서 밥을 지어 먹어야지요.


  소설 《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수수합니다. 아무래도 수수한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실마리를 풀 수 없던 사회였을 테고, 바로 수수한 이야기이기에 이처럼 소설로 빚어서 삶을 새롭게 돌아보는 길을 찾아볼 만하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문턱을 넘어서는 일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어렵다고 여기니 어려울 뿐인데, 그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한 걸음 내딛으면 됩니다. 문을 여는 일도 아주 쉽습니다. 그저 손을 들어서 문짝을 잡고는 스르륵 밀거나 당기면 됩니다.



소스케는 집으로 돌아와 오요네에게 이 휘파람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요네는 장지문 유리로 비쳐드는 화창한 햇살을 바라보며, “정말 다행이에요. 드디어 봄이 돼서.” 하며 눈썹을 환하게 폈다. 소스케는 툇마루로 나가 길게 자란 손톱을 자르면서, “응,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인 채 가위를 움직였다. (264쪽)



  밥을 먹는 사람도 나요, 길을 나서는 사람도 나입니다. 새로운 사랑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나이며, 새로운 꿈을 키우는 사람도 나입니다. 소설 《문》에 나오는 소스케와 오요네는 ‘새로운 사랑과 꿈과 삶’을 생각하면서 ‘불타는 사랑’을 나누어서 새로운 살림을 지었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앞으로 가야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든 없든, 두 사람은 서로 아끼고 기대며 보살피는 따스한 손길로 새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이니까요. ‘문’을 열고 한 발짝 새롭게 길을 나서야 합니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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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데올로기 팡세총서 1
카를 마르크스 외 지음, 김대웅 옮김 / 두레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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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29



한국 사회를 이끌 ‘한국 철학’은 있을까?

― 독일 이데올로기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김대웅 옮김

 두레 펴냄, 2015.8.15. 15000원



  한국에도 ‘한국 철학’이나 ‘한국 사상’이 있을 텐데, 한국 철학이나 한국 사상이 무엇인지 알기는 퍽 어렵습니다. 한국 철학이나 사상을 살피는 학자는 드물고, 한국에서 스스로 제 철학이나 사상을 세우려는 학자도 드물며, 한국 철학이나 사상으로 사회나 삶이나 사람을 읽으려고 하는 학자도 드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따로 있지만, 이른바 한국은 독립한 나라이지만, 서양 철학이나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나 삶이나 사람을 읽기 마련이고, 문화나 예술이나 교육이나 과학도 한국 철학이나 사상이 아닌 서양 철학이나 사상으로 읽거나 헤아리는 흐름이 짙습니다.



인간은 실천을 통해 진리를, 즉 그의 사유의 현실성과 위력 및 현세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사유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벌이는 논쟁은 순전히 공리공론적인 것에 불과하다. (36쪽)


개인들은 각각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존재한다. 따라서 그들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은 그들의 생산과, 다시 말해서 그들이 무엇을 생산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생산하는가와 일치한다. (54쪽)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두 사람이 함께 빚은 《독일 이데올로기》(두레,2015)를 읽습니다. 두 사람은 이 책을 쓴 까닭을 “꿈속을 헤매다 정신이 혼미해진 독일 민중들에게 이들이 확언하고 있는 현실의 그림자에 맞선 철학적 투쟁을 조롱하고 모욕하려”는 뜻이라고 머리말에서 밝힙니다. 꿈속에서 헤매기만 하는 수많은 독일사람이 그림자를 보기만 할 뿐 삶을 바라보지 못하는 모습을 나무라거나 샅샅이 따지려는 뜻에서 《독일 이데올로기》를 썼다니, 여러모로 재미있구나 싶으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국에서도 누군가 쓸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참말 한국에서도 ‘한국 이데올로기’이든 ‘한국 철학’이든 ‘한국 사상’이든 이름을 붙이면서 한국사람 바보스러운 굴레에 스스로 갇힌 채 스스로 헤매는 모습을 나무라면서 참다운 길을 밝힐 만한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싶습니다. 몇몇 이름난 학자가 쓴 책을 좇아서 풀이하는 ‘한국 철학’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사람 스스로 나아갈 길을 찾는 ‘한국 철학’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머잖아 나올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실제로 진정한 공산주의자에게는 기존 사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급선무이다. (86쪽)


도시는 이미 인구, 생산 도구, 자본, 향락, 욕구 들이 집중된 곳이었으나, 농촌은 이와 정반대의 현상, 즉 고립화와 개별화를 보이고 있었다. 도시와 농촌 간의 대립은 사적 소유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을 분업, 즉 규정된 강제적 활동으로 포섭시킨다는 것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 준다. 이러한 포섭은 한쪽의 사람을 꽉 막힌 도시동물로, 다른쪽 사람을 꽉 막힌 농촌동물로 만들어, 양쪽의 이해관계가 날마다 새롭게 대립하게 만든다. (99쪽)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두 사람은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실마리를 밝히고, 독일이라는 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두 사람은 독일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길”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고립화와 개별화로 치닫는 문명”을 깨뜨리면서 독일 사회가 참답게 슬기로운 길로 새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앞으로도 끝없는 경제개발과 경제성장으로 가야 할까요, 아니면 평등하면서 평화로운 사회와 경제로 가야 할까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앞으로도 ‘노동 유연화’라는 이름을 붙인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가야 할까요, ‘사람들이 즐겁게 일하면서 살기에 좋은 나라’로 가야 할까요?


  어느 쪽으로 가든 ‘좋은 나라’입니다. 다만, 어느 길은 ‘기업을 하는 사람한테만 좋은 나라’이고, 어느 길은 ‘이 나라에서 사는 사람 모두한테 좋은 나라’가 됩니다.


  기업을 꾸리는 사람한테는 기업 이익이 가장 크다고 여길 테지만, 이 나라에서 사는 사람한테는 ‘이 나라에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즐겁고 넉넉하게 살 수 있어야 기업을 꾸리는 사람도 ‘더 큰 이익이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이익이 되는’ 사회와 경제가 됩니다.



각 개인들은 참되고 현실적인 공동체 속에서, 지배계급에 맞선 결사 속에서 그리고 그 결사를 통해 자유를 획득한다. (136쪽)


관념 속에서는 부르주아지의 지배 아래 있는 개인이 전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의 생활 조건이 우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더 커다란 물적 강제력 아래 포섭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자유롭지 못하다. (139쪽)



  한국 정치와 사회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합니다. 자유와 민주가 바탕이라고 합니다. 틀림없이 선거 제도가 있고, 남자도 여자도 투표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동권을 제대로 누린 일이 드물고, 아직도 이러한 노동권은 제대로 펼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여성은 여성 노동자로서 성차별을 아직도 받을 뿐 아니라,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한테는 노동자로서 누릴 권리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사회와 경제를 떠받치는 밑틀이 되는 수많은 사람들(노동자)이지만, 정작 이들 수많은 노동자가 받는 권리란 ‘쉽게 해고될 권리’일 뿐이요 ‘걱정하지 않고 한곳에서 일자리를 얻’는 권리는 없으며, ‘최저생계비나 생계비’ 아닌 ‘삶을 가꿀 만한 살림돈’을 일삯으로 못 받기 일쑤입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수많은 사람은 ‘나라에서 밝히는 최저임금’에 맞추어 최저생계비를 살짝 웃돌 만한 일삯을 겨우 받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사회나 정치는 ‘자유’라는 허울이지만 막상 자유라고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정치나 경제에서 ‘민주’가 있다고 하지만 정작 민주라고 할 만한 대목은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사회주의로 변장한 독일 철학은 물론 ‘조야한 현실’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상 그것은 언제나 그로부터 상당한 정도의 거리를 두고 신경질적인 분노를 표시하면서 다음처럼 외친다. 나를 건드리지 마시오! (203쪽)


각각 저술활동을 하는 분파가, 특히 자신을 ‘가장 발전된’ 것으로 생각하는 분파가 자신을 단순히 ‘주요한 당파들 중 하나’가 아니라 실제로 이 시대의 ‘주요 당파’라고 선언하는 것이 독일의 이데올로그들에게는 상당 기간 동안 하나의 유행이 되어 버렸다. (214쪽)



  독일 사회를 슬기롭게 이끌 수 있는 생각(철학, 사상, 이데올로기)을 가슴으로 품으면서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이 독일에서 나왔습니다. 백예순 해가 훨씬 넘은 일입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를 슬기롭게 이끌 만한 생각(한국 철학이나 한국 사상)은 있을까요? 먼먼 옛날부터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은 이 나라를 아름답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거나 훌륭하게 가꿀 만한 생각을 이 나라에서 어느 만큼 길어올리거나 나누거나 펼치려고 했을까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서양 철학이나 서양 사상이 아닌 한국 철학이나 한국 사상으로 이웃(한국사람)을 헤아리면서 참다운 삶길을 밝히는 이야기는 어느 만큼 나온다고 할 만할까요?


  그림 한 점이나 시 한 줄을 비평하면서도 서양 이론이나 철학을 붙이는 한국 사회 비평가와 지식인입니다. 몸은 이 나라에 있다지만 정작 이 나라 어느 곳에 몸이 있는지 모르기 일쑤입니다. 독일에서 ‘주요 당파’가 되어 독일 사회 정책을 바보스레 밀어붙이거나 이끈 지식 집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독일 사회가 참다운 민주나 자유나 평화나 평등이나 통일로 가는 길하고 엇갈렸습니다. 1900년대 첫무렵에 독일 사회와 정치가 보여준 모습으로 잘 알 만합니다. 2000년대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지식 집단이 어떤 철학이나 사상으로 정책을 꾀할까요? 이른바 ‘서민’이라는 자리에서 살면서 정책을 내놓는 지식 집단은 있을까요? 스스로 ‘여느 시민’으로서 수수한 살림을 꾸리면서 철학이나 사상을 펼치는 지식인은 얼마나 있을까요?


  전철삯이나 버스삯조차 모르는 지식인이나 정치꾼은 어떤 정책을 펼칠까요. 시골 농사꾼이 쌀 한 가마를 농협에 팔아서 돈을 얼마나 받는지, 이런 값으로 시골에서 살림을 꾸릴 만한지를 제대로 아는 지식인이나 정치꾼이 있기나 있을까요.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일이다. (255쪽)



  세계는 바뀔 노릇입니다. 다만, 바보스레 바뀌지 말고 아름답게 바뀔 노릇입니다. 세계뿐 아니라 우리도 스스로 바뀔 노릇입니다. 엉성하거나 어리석게 바뀌지 말고 사랑스러우면서 슬기롭게 바뀔 노릇입니다.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에서도 말하지만,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한다고 해서 세계가 바뀌지 않습니다. 논쟁이나 토론을 아무리 벌여도 세계는 안 바뀝니다. 세계를 바꾸려면 ‘해석·논쟁·토론’이 아니라 몸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삶을 바꾸는 길로 가야 합니다. 실천을 하지 않는 이론은 언제나 수많은 다른 이론으로 이어지기만 합니다.


  입시지옥을 비판하면서 제 아이는 똑같이 입시지옥에서 ‘서울권 대학교’에 잘 뽑히도록 이끈다면 이 세계는 바뀌지 않습니다. 평화를 바란다고 외치면서도 전쟁무기와 군부대에 눈을 감는다면 이 세계는 바뀌지 않습니다. 평등을 이야기하면서도 집에서 즐겁게 살림을 맡고 아이를 돌보는 하루를 짓지 않는다면 이 세계는 바뀌지 않습니다. 도시 소비자는 틀에 박힌 소비를 스스로 깨야 하고, 시골 농사꾼은 농약과 화학비료와 비닐에 기대는 굴레를 스스로 박차야 합니다.


  스스로 좁은 틀을 깨야 합니다. 스스로 낡은 굴레를 부수어야 합니다. 스스로 새로운 삶을 지어야 합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과 꿈이 되도록 한 걸음씩 새롭게 내딛어야 합니다. 아직 한국에 ‘한국 철학’이 없다면 이제부터 하나씩 슬기롭게 갈고닦으면 됩니다. 몇몇 배부른 사람만 더 배부르는 길로 가는 한국 철학이 아니라, 온누리 모든 사람이 기쁘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두레와 품앗이 같은 한국 철학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4348.9.1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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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반역이다 - 물리학의 거장, 프리먼 다이슨이 제시하는 과학의 길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학영 옮김 / 반니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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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깊은 생각 없이 지원금만 받는다면

― 과학은 반역이다

 프리먼 다이슨 글

 김학영 옮김

 반니 펴냄, 2015.7.30. 19000원



  논둑길에서 커다란 물이끼덩이를 밟는 바람에 미끄러져서 그만 자전거가 엎어졌습니다. 함께 자전거를 달리던 아이들은 안 다쳤으나, 저는 크게 다쳤습니다. 나흘이 되도록 물도 밥도 몸에 넣지 못하면서 끙끙 앓기만 하는데, 이때 다친 오른무릎은 살짝 대기만 해도 몹시 아픕니다.


  오른무릎이 크게 다쳤으니 서거나 걷지 못합니다. 무릎에서 힘을 받지 못하기에 피가 쏠리기만 할 뿐 꼼짝을 못 합니다. 무릎을 못 쓰는 다리는 아무 힘을 줄 수 없이 달린 살덩이와 같습니다. 이를 새삼스레 느끼면서 오른무릎이 나아지도록 기운을 모으고 차근차근 다스립니다.


  드러눕기만 하지 말고 씩씩하게 일어서자고 다짐하면서 오른다리에 힘을 넣어 펴고 접기를 해 보는데, 몸이 안 아픈 사람한테는 아무렇지 않을 일이 몸이 아픈 사람한테는 더없이 큰 일입니다.


  이럴 때에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목발을 생각할까요, 아니면 바퀴를 붙여 끌고 다니는 걸상을 생각할까요. 자리에 드러누운 채로도 머릿속에 그리는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컴퓨터나 기계 장치를 생각할까요, 아니면 손가락을 놀리기만 해도 무엇이든 심부름을 해 주는 기계나 로봇을 생각할까요.



젊은 영혼들을 구속하는 모든 문화의 압제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동맹, 그것이 과학이다 … 아인슈타인도 나이가 들면서 장방정식의 형식적 특성에 점점 집착했다. 그럴수록 장방정식을 있게 해 준 광범위한 우주의 개념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어갔다. 아인슈타인은 생애 마지막 20년 동안, 물리학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방정식을 찾는 일에만 매달려 무익하게 보냈다. (23, 30쪽)


과학이 최근 수십 년 간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게 된 까닭은 두 가지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인간의 현실적 요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현상이 한 이유요, 응용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점점 더 즉각적인 이윤에 집착하고 있는 현상이 또 한 가지 이유다. (49쪽)



  프리먼 다이슨 님이 쓴 《과학은 반역이다》(반니,2015)라는 책을 읽습니다. 글쓴이 프리먼 다이슨 님은 무척 오랫동안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교수로 지냈다고 하는데, 1947년에 리처드 파인만 님과 함께 ‘원자와 방사선 행동을 계산하는 간편한 방정식’을 개발했다고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민간 과학자로서 영국 공군에서 일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나이가 무척 많은 분입니다.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을 정리하기도 하면서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니, 과학밭에서는 돋보이는 발자국을 남겼다고 할 만합니다.


  《과학은 반역이다》는 “the scientist as rebel”라는 이름으로 2006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영어로 나온 책에서는 ‘과학자·반역자’라고 나왔으나, 한국말로 옮긴 책에서는 ‘과학·반역’으로만 줄여서 나옵니다.


  아무튼, 한자말 ‘반역’은 “1. 나라와 겨레를 배반함 2. 통치자에게서 나라를 다스리는 권한을 빼앗으려고 함”을 뜻합니다. ‘배반’이라는 한자말은 “저버림”이나 “돌아섬”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정부나 정치권력 뜻하고 어긋나는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반역자’라고 할 만합니다. 중앙정부에서 핵발전소를 자꾸 지으면서 엄청난 송전탑을 박으려고 하는 정책을 반대하면서 싸우는 사람도 ‘반역자’입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 수렁에 집어넣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반역자’입니다. 그리고, 모든 문화와 문명이 도시로 쏠리는 오늘날 흐름에서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서 조용히 살림을 짓는 사람도 ‘반역자’예요.



1918년 11월 전쟁이 끝났을 때, 영국의 대중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극도의 공포라고 전쟁을 회상했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독일 시민들의 기억은 달랐다. 국내의 배신자들에게 허를 찔리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의 시험대였다. (99쪽)


군인 프로 정신의 본보기를 독일에서 찾은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전국들 중에서 독일만큼 도덕적 딜레마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요들과 발크는 모두 나쁜 대의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전문적인 능력을 정복과 파괴에 썼다 … 그들은 이웃집을 탱크로 부수고 불태우면서도 이웃의 고통에는 무관심했다. (119쪽)



  《과학은 반역이다》라는 책에서는 과학 지식이나 이론은 거의 안 다룹니다. 아무래도 과학 지식이나 이론은 ‘과학 논문’으로 쓸 만할 뿐이요, 여느 사람들한테는 ‘과학이 무엇’이고 ‘과학으로 무슨 일을 하’며 ‘과학자인 사람은 어떤 길을 걸어야 슬기로우면서 아름다운가’ 같은 대목을 차근차근 들려줄 수 있어야 할 테지요.


  아흔 살을 훌쩍 넘기고도 바지런히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는 프리먼 다이슨 님은 과학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전쟁을 퍽 자주 곁들여서 함께 이야기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전쟁은 ‘첨단과학’이 이룬 ‘첨단무기’로 사람들을 더욱 손쉽게 더욱 많이 죽이는 짓에 이바지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아니었으면 수소폭탄이나 핵폭탄이 나오지 않습니다. 과학이 아니었으면 핵잠수함이나 항공모함이 나오지 않습니다. 과학이 아니었으면 전차나 미사일이나 기관총이 나오지 않습니다.


  과학이기에 생화학무기를 만들어 냅니다. 과학이기에 비행기에 폭탄을 더 많이 실어서 도시도 숲도 집도 깡그리 불태우는 짓에 이바지합니다.



진정성 없는 평화주의자들은 겁쟁이나 공범자 취급을 받았다. 유럽 평화주의의 참패는 적어도 한 가지 교훈은 남겼다. 간디처럼, 진정성과 용기를 겸비하지 않으면 현대 사회의 평화주의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158쪽)


주류와 멀리 떨어진 생물학의 드넓은 배후지에는 다윈의 전통을 따르면서 새로운 종의 들풀을 발견하거나 말 그대로 나비를 수집하는 아마추어들이 드넓게 포진해 있다.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나비 수집가라면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꼽지만,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 뿐 새로운 종들을 발견한 아마추어 수집가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226쪽)



  과학은 왜 전쟁무기가 첨단무기가 되는 길에 이토록 이바지했을까요? 과학자는 첨단무기가 이 지구별에 평화 아닌 전쟁만 일으키는 줄 몰랐을까요? 과학자는 과학 연구와 탐구만 하느라 ‘마음을 옳고 바르며 슬기롭게 갈고닦는 배움’은 아예 등을 돌렸을까요?


  전쟁무기를 첨단무기로 만드는 데에 쏟아부은 돈은 이루 헤아릴 수 없도록 엄청납니다. 그 돈을 지구별에 평화와 사랑이 감돌도록 하는 데에 쓴다면, 이 지구별에는 아프거나 슬퍼할 일이 없습니다. 전쟁무기에 이바지하는 과학이 아니라, 무한재생이 가능한 깨끗한 에너지를 살피는 과학이라든지, 석유나 가스나 석탄이 아닌 햇볕과 물과 바람을 살려서 얻는 깨끗한 에너지를 북돋우는 과학이라든지, 매연과 공해를 말끔히 걸러내는 길을 여는 과학이라든지, 석유에서 뽑아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아니라 쉽게 흙으로 돌아갈 수 있는 깨끗한 소비재가 되도록 헤아리는 과학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과학자가 걷는 길이 ‘돈이 되는 길’을 찾는 과학 연구나 탐구가 아니기를, 과학자가 하는 연구나 탐구가 정부나 기업 지원금을 더 타내는 쪽으로 쏠리지 않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파인만이 특히 우려했던 부분은 매뉴얼에 의존한 교사들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학생들의 점수를 깎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 수년 후 (파인만 딸) 미셸이 고등학생 때, 대수학 문제의 정답을 구했지만 기존의 풀이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점수가 깎였다. 파인만이 항의하러 학교를 찾아갔을 때, 교사는 오히려 그를 보고 수학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비난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미셸은 집에서 아버지에게 대수학을 배웠고 시험 때만 학교에 갔다. (333쪽)


러더퍼드는 원자핵을 연구하며 여생을 보냈다. 러더퍼드에게 연구의 원동력은 원자핵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열정이었다. (300쪽)



  리처드 파인만 님과 같은 바람을 마시면서 일하기도 한 프리먼 다이슨 님은 재미있는 ‘숨은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노벨상까지 받은 물리학자가 ‘수학을 모른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니 참으로 놀라운 노릇입니다. 수학 교사인 분은 ‘교과서 수학’은 다른 누구보다 ‘수학 교사 스스로’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을까요? 교과서에서 내놓는 풀이법을 똑같이 따르지 않는다면 ‘점수가 깎여도 될’까요?


  수학이나 과학은 ‘정답찾기 놀이’가 아닙니다. 수학이나 과학뿐 아니라 문학이나 철학도 정답찾기를 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학문에도 정답이란 없습니다. 모든 학문은 저마다 다 다르면서 새롭고 다 같이 즐겁게 누릴 삶을 생각하는 길찾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반역”이라고 하든 “과학자는 반역자”라고 하든, ‘반역·반역자’는 틀에 박힌 길을 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틀로 지은 대로 똑같이 따라하기를 거스르면서 늘 새로운 길을 찾는 몸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길로 가면 무엇이 나올까 하고 궁금해 합니다. 저 길로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고 궁금해 합니다.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찾는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선입관이나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갇힌 채 쳇바퀴를 돌려 하지 않고, 스스로 홀가분하면서 사랑스레 피어나는 꽃이 되고자 합니다.



푸앵카레와 아인슈타인이 당대의 기술을 똑같이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철학적 사유에 대한 두 사람의 애정도 같았다고 본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새로운 개념을 수용하는 태도였다. (258쪽)


자연 상태의 숲에서 새들의 사체더미를 볼 수 없는 까닭은 자연의 청소부 덕이다. 인간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망치는 가장 큰 이유는 채굴과 청소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353쪽)



  숲에는 청소부가 있습니다. 숲 청소부는 쓰레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숲 청소부는 온갖 주검이 정갈한 흙으로 돌아가도록 해 줍니다. 숲 청소부가 있기에 숲은 언제나 맑고 푸릅니다. 바다에도 바다 청소부가 있어서 바다가 언제나 맑고 새파랗게 빛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에어컨은 무엇을 할까요? 끝없는 소비문명은 어디로 가려고 할까요? 공사비도 어마어마하지만, 문을 닫을 적에도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야 하는 핵발전소에 왜 이렇게 과학기술이 많이 들어가야 하고, 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안전한 원자력’을 홍보하는 과학 전문가는 왜 이렇게 많을까요?


  옳지 않다고 느낄 줄 아는 가슴과, 옳지 않다고 느끼는 길을 거스를 줄 아는 당찬 마음과, 옳지 않다고 느끼는 길을 거스를 줄 아는 당찬 마음으로 아름답게 새 길을 여는 슬기로운 과학자가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과학자뿐 아니라 모든 전문가들이 반역자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9.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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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 풀꽃 속의 일제 잔재
이윤옥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조선식물향명집>을 자꾸 왜곡하면 안 된다

'참고'를 '토대'로 바꾼 번역은 잘못이다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라는 책을 쓴 이윤옥 님은 <조선식물향명집>이라는 책이 '조선총독부 사전'과 '일본 식물학자 도감' 두 가지를 "토대로 삼아서 쓴 책"이라는 주장을 그분 책에서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제가 쓴 글에 반박글을 붙이면서 다시금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윤옥 님은 크게 잘못 생각하십니다. <조선식물향명집>에 적힌 "여기 기재된 것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하는 대목은 이 말 그대로입니다. "여기 기재된 것이 중요한 것이다"와 같이 머리말을 썼다고 해서, 이러한 말이 "이 책을 토대로 했다"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윤옥 님 스스로 쓴 반박글에도 나오듯이, <조선식물향명집>을 쓴 한국 식물학자는 '조선총독부 사전'과 '일본 식물학자 도감'만 "참고로 삼지" 않았습니다. 향약채집월령, 향약본초, 동의보감, 산림경제, 제중신평, 방약합편고적 같은 책도 "참고로 삼았"을 뿐 아니라, '정태현'이라는 한국 식물학자가 함께 엮은 조선삼림수목요감이라는 책도 함께 "참고로 삼았"습니다.




이윤옥 님께 여쭙겠습니다. 이윤옥 님 스스로 반박글에서도 밝히셨듯이, <조선식물향명집> 머리말에는 여러 가지 자료를 "참고로 했다"고 적었습니다. 이는 이윤옥 님도 스스로 쓰신 반박글에 또렷이 나옵니다. 게다가, 이윤옥 님이 쓰신 반박글에도 "3년간 100여 차례 만나서 수집한 방언을 토대로 하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네, 이것뿐입니다. 한국 식물학자는 1930년대라고 하는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에 "한국 시골에서 쓰던 풀이름"을 샅샅이 모으려고 땀을 흘렸고, 이 시골말(방언)을 바탕(토대)으로 삼아서 <조선식물향명집>을 엮었습니다. 그리고 "전기문헌을 참고로" 했지요.


이윤옥 님 스스로 이러한 앞뒤 사정을 잘 알면서, 왜 '토대'와 '참고'를 무시하는지 아리송합니다. 일제강점기 무렵 한국 식물학자는 한국 시골에서 쓰던 풀이름을 '토대'로 하면서 여러 책을 '참고로' 삼았는데, 왜 갑자기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라는 책에서는 이 말을 바꾸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이윤옥 님이 쓰신 반박글에서도 이러한 오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왜 이러한 주장을 자꾸 하셔야 할까요?


토대(土臺) : 어떤 사물이나 사업의 밑바탕이 되는 기초와 밑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참고(參考) : 살펴서 도움이 될 만한 재료로 삼음


일제강점기 한국 식물학자는 그야말로 힘들게 애써서 <조선식물향명집>을 엮었습니다. '국명'이 아닌 '향명'이라는 이름도 어렵게 붙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이 일본 식민지였기에 '國'이라는 말조차 못 쓰고 '鄕'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그러니, 거의 독립운동을 하듯이 <조선식물향명집>을 엮은 한국 식물학자 땀방울을 깎아내리는 주장일 수밖에 없는 "조선총독부 사전과 일본 식물학자 도감 두 가지만 토대로 해서 조선식물향명집을 엮었다"고 주장하는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라고 하는 책은 심각하게 한국 식물학자들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그무렵 조금 더 슬기롭게 한국 풀이름을 못 붙인 대목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있습니다. 이러한 풀이름은 오늘 우리가 슬기롭게 바로잡거나 가다듬으면 됩니다. 그러나, 한국(식민지에서는 조선) 식물학자는 피땀을 흘려서 '시골 풀이름'을 모았고, 이 시골 풀이름을 바탕(토대)으로 삼아서 멋진 책을 엮었습니다. 일본 학자나 총독부 입김이 아닌, 한국 식물학자 힘으로 엮었습니다.


이러한 대목을 자꾸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면서 <조선식물향명집>을 나쁘게 보려는 주장을 하신다면, 이는 한국 문화와 역사를 북돋우는 길에도 그리 도움이 되리라 못 느낍니다. 부디 조금 더 차분하게 <조선식물향명집>을 바라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풀이름을 '학문으로 붙이는 이름'으로뿐 아니라, 스스로 이 풀을 아름다운 나물과 고마운 풀숲을 이루는 이웃으로 여기는 마음이 되어 마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이윤옥 님은 책으로만 풀이름을 살펴보신 듯합니다. 풀이름을 책으로만 살피지 않고, 1930년대 한국 식물학자처럼 전국을 두루 다니면서 ‘시골말(방언)’을 손수 모아 보셔요. 왜냐하면, “창씨개명되지 않은 우리 풀이름”은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쓰던 풀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식물향명집〉에 실린 풀이름이 ‘제대로 된 번역’인지 ‘엉뚱한 번역’인지 ‘고심한 흔적’인지 따지지 마시고, 손수 시골마을을 돌면서 풀이름을 모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윤옥 님은 ‘봄까지꽃’이나 ‘코딱지나물꽃’ 같은 이름을 들어 보셨는지요? 반박글을 읽어 보니, 아무래도 처음 들으신 듯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이런 이름을 흔히 씁니다. ‘쇠별꽃’을 두고도 식물도감에 나오는 이름보다 ‘콩버무리’ 같은 이름을 널리 씁니다. 부디 책에 너무 기대지 마십시오. 일제강점기에 <조선식물향명집>을 엮은 뜻있는 한국 식물학자는 저마다 시골마을을 골라서 찾아다닌 뒤 바지런히 풀이름을 그러모았습니다.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이 안 어울린다고 반박글에 쓰셨지요? 그러면 생각해 보셔요. 왜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이 퍼졌을까요? 이해인 수녀님은 왜 ‘봄까지꽃’을 ‘봄까치꽃’으로 잘못 적은 시를 쓰셨을까요?


까치가 놀러 나온 / 잔디밭 옆에서 //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 (이해인-봄까치꽃)


시골에서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을 쓰는 할매와 할배가 있기 때문에 이해인 수녀님은 이러한 풀이름을 들으셨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봄까지’를 ‘봄까치’로 잘못 듣거나 생각하셨으니 이렇게 시를 쓰셨으리라 느낍니다.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봄까치꽃’처럼 이 풀이름을 잘못 쓸 일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울릉도 호박엿”과 같은 꼴입니다.




울릉도에는 ‘호박엿’이 없었습니다. 요즈음은 “울릉도 호박엿”을 따로 곤다고도 하지만, 울릉도에서 ‘호박엿’을 곤 지는 얼마 안 되었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 남녘 바닷마을에서는 먼 옛날부터 ‘후박나무 껍질과 열매’를 얻어서 엿을 고았습니다. 뱃사람이 뱃멀미를 하지 않도록 ‘후박엿’을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섬과 바닷마을이 아닌 뭍(내륙)사람은 ‘후박나무’를 모르지요. 따뜻한 남녘 바닷마을에서만 자라는 나무인 후박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뭍사람이나 서울사람은 이를 ‘호박엿’으로 잘못 알아듣고는 이 잘못된 이름을 퍼뜨렸습니다. ‘봄까지꽃’이 ‘봄까치꽃’으로 잘못 퍼진 까닭도 이러한 얼거리하고 같습니다.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으로 얼룩진 “창씨개명된 풀이름”뿐 아니라, “오늘날 한국사람 스스로 시골마을 풀과 나무를 제대로 몰라서 엉뚱하게 잘못 붙이는 풀이름”을 함께 살펴야 하지 않을는지요?


광대나물이 왜 광대나물인지 제대로 모르는 채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부처자리’로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윤옥 님입니다. 한국 식물학자가 멀쩡하게 잘 지은 풀이름을 왜 “창씨개명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시는지 아리송합니다. 한국 식물학자가 제 나름대로 잘 빚은 ‘광대나물’을 쓰거나, 시골마을에서 널리 쓰는 ‘코딱지나물’이라는 이름을 쓸 노릇이지요.


일본말에 얼룩진 자국을 지우는 일은 틀림없이 뜻이 있습니다만, <조선식물향명집>을 자꾸 깎아내리면서, 이 책에 나온 ‘참(사실)’을 비트는(왜곡) 일은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식물학자를 깎아내리는 짓은 무슨 보람이 있을까요?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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