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수학 - 옥스퍼드대 김민형 교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강의
김민형.김태경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230



과자 한 조각을 넷으로 나누려는 셈놀이

― 수학의 수학

 김민형·김태경 글

 은행나무 펴냄, 2016.1.13. 12000원



  작은아이가 “동그란 과자 하나 먹어도 돼요?” 하고 묻습니다. “하나만?” “응. 하나만.” 아이는 동그랗게 생긴 모습으로 하나를 먹고 싶다 말합니다. 그러면 동그란 모습을 작게 잘라낸 조각은 그대로 하나일까요, 아닐까요?


  동그란 과자가 하나만 있을 적에 아이한테 되묻습니다. “하나만 있는데 어떻게 하지? 네 사람이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넷을 알맞게 잘라서 조각을 내면, 넷이 ‘모두 하나씩’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넷이 됩니다. 또는 두 사람이 안 먹고 두 조각으로 내면 둘이서 ‘저마다 하나씩’ 받습니다. 하나는 하나이면서 넷이 되다가 둘이 되지만 늘 하나입니다.



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대답은 “모든 것이 수이다”라는 피타고라스의 유명한 언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의 모호한 질문에 대해서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을 이루는 기본 요소가 바로 수라는 답을 준 것이다. (15쪽)


물리학자들은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쳐두고 먼저 적절히 수학적으로 공식화한 다음, 그것의 성질을 공부하기 위해 힘을 측정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관련된 이론을 전개해 나갈 뿐이다. (19쪽)



  김민형 님과 김태경 님이 함께 쓴 《수학의 수학》(은행나무,2016)을 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강의’라는 이름이 붙은 책입니다. 우리 삶을 둘러싼 수(숫자)를 수식과 이야기로 풀어내는 책이니, 어느 만큼 수식이 익숙할 때에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만하리라 봅니다.


  아이들은 아직 수식을 모르니 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수식을 알 만한 청소년이나 어른이라면 혼자서 읽을 만할 테고, 아이들한테는 어른이 먼저 읽고서 이야기를 들려줄 만하리라 생각해요.


  《수학의 수학》에 나오는 피타고라스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구고 정리’를 떠올립니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도록 ‘구고 정리’ 이야기를 듣거나 배우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한국수학사》(김용운·김용국 씀)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때에 ‘구고 정리’를 처음으로 알았어요. 피타고라스보다 훨씬 앞서 중국에서 갈무리했다는 수학 이야기예요. 《한국수학사》를 읽으면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수학을 가르치거나 배웠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은 모두 서양 수학이고 서양 이야기였어요.



처음에 제기되었을 때는 너무나도 어려웠던 개념들, 어려운 연산들이 인류가 점점 이해의 폭을 넓혀 오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결국 집단의 미성년들에게 지식으로서 전달하게 되는 일은 위와 같이 너무나 흔한 일이다. (32쪽)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더 어렵게 만든 것이 쉬운 답을 이끌어내는 실마리가 된 것이다. (44쪽)



  내가 학교에 다닐 무렵을 돌아보다가,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공부를 하는 요즈음을 헤아립니다. 수학을 익히든 철학을 배우든, 서양 수학이거나 한국 철학이거나 대수롭지는 않다고 느껴요. 우리는 그저 수학을 익히거나 철학을 배울 뿐이니까요. 누가 먼저 찾아낸 연산이나 수식이든, 이러한 연산이나 수식을 삶에 받아들이면서 살림을 가꾸는 길에 쓸 수 있을 때에 ‘아름다움’을 이루지 싶어요. 《수학의 수학》에서도 말하듯이 “집단의 미성년들에게 지식으로서 전달(32쪽)”하는 일은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기쁨이면서 아름다운 보람이 된다고 느껴요.


  아이들한테 수(숫자)를 가르치고 말을 가르치며 살림살이를 가르치는 동안 생각을 북돋우거나 가꿉니다. 하나부터 백까지 모든 숫자를 더하는 길을 아주 쉽게 풀어낸 가우스 이야기는 바로 생각을 가꾸고 살림을 북돋우는 길을 밝히는 숱한 보기 가운데 하나예요. 이른바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살짝 더 어렵게 바꾸어 외려 쉽게 풀이법을 찾는” 길이 나오거든요.


  이를테면 이런 보기를 들 만해요. 가우스는 ‘(1+100) + (2+99) + …… (50 + 51)’을 묶음으로 바라보았다면, 짐을 나를 적에도 ‘하나부터 백에 이르기까지’ 따로따로 들어서 나르기보다는, 알맞은 부피와 무게를 살펴서 함께 들어서 나를 수 있어요. 때로는 수레를 빌어 짐을 나를 수 있지요. 수레를 쓰든 어깨에 짐을 얹든, 왼쪽과 오른쪽이 무게가 어우러져야 하고, 앞과 뒤에도 무게를 골고루 나누어야 해요. 이러한 일이나 살림도 모두 수(숫자)라고 할 만합니다.



‘수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주려고 할 때 어떤 것이 ‘수’라는 성질이 그 물체 자체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처음에는 수와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곡면이나 곡선, 반도체에도 연산을 줄 수 있었다. 그것보다는 수 체계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집합 속에 들어가는 것이 수라는 것이 답이다. (73쪽)



  과자 한 조각을 넷으로 나누면 네 조각입니다. 네 조각을 붙이면 한 조각입니다. 하나는 넷이 될 수 있고, 넷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조각씩 받은 네 사람은 이 조각을 둘로 나누어 모두 여덟 조각이 되도록 할 수 있는데, 여덟 조각을 나란히 붙이면 다시 하나가 됩니다. 작은 조각은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갤 수 있고, 그야말로 수없이 작은 조각으로 가를 수 있으니, 작은아이가 “과자 하나만?” 하고 물을 적에 잘게 자른 조각을 건네면서 “자, 여기 ‘하나’야.” 하고 말할 수 있어요. 또는 “아까 네가 먹어서 뱃속에 있는 ‘하나’가 있는걸?”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에 쌀알이 몇이 들어갈까 하고 헤아리는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나락 한 알에서 볍씨를 몇 알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살피는 놀이를 할 수 있어요. 이 두 가지를 해 본다면, 네 사람이 한 해 동안 먹는 쌀알 숫자를 가늠하면서, 네 사람이 논을 부칠 적에 나락을 몇 포기 심어야 하고, 논을 얼마만한 넓이로 가꾸어야 하는가를 셈할 수 있습니다.



복소수가 진정한 수 체계로 받아들여진 것은 복소수가 자연계에서 발견된 20세기부터가 아닌가 싶다. 특히 물질의 미세 구조를 묘사하는 양자역학은 복소수 없이는 불가능한 이론이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물리적인 시스템의 물리량들은 확실하게 값이 정해지지 않고 그것의 어떤 확률적인 분포밖에 알 수 없다고 한다. (150쪽)



  《수학의 수학》이라는 책을 덮으면서 ‘수(數)’라는 낱말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 한자는 ‘세다’를 뜻합니다. ‘세다’에서 ‘셈’이 나오고, 컴퓨터를 가리켜 ‘셈틀’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세다’는 ‘헤다’와 같은 낱말이며, ‘헤다’에서 ‘헤아리다’가 나왔으며, ‘헤아리다’는 ‘생각하다’와 같은 낱말이기도 합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수’를 찾아보면 “1. 셀 수 있는 사물을 세어서 나타낸 값 2. [수학] 자연수, 정수, 분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허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세어서 나타낸 값”이니 ‘셈값’이 ‘수’라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날을 세면서 ‘하루 이틀 사흘’ 같은 말이 태어나고, 얼마나 있느냐를 세면서 ‘하나 둘 셋’ 같은 말이 태어납니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꿈이나 사랑은 ‘셀’ 수는 없습니다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도표나 통계로 꿈이나 사랑을 나타낼 수는 없어도 마음속에 그림으로 그려 보일 수 있어요.


  ‘1 2 3’처럼 적는 글씨는 상징처럼 적는 기호입니다. ‘ㄱ ㄴ ㄷ’ 같은 글씨도 상징과 같은 기호이고요. 수학을 익히거나 배운다고 할 적에는 ‘삶자리에 있는 것’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나타내 보이려고 한다는 뜻이리라 느낍니다. 삶자리에 있는 것을 글씨(한글 같은 글씨)라는 기호로 옮겨서 마음을 나타내듯이, ‘1 2 3’이든 ‘하나 둘 셋’이든 ‘하루 이틀 사흘’이든, 이러한 기호를 빌어서 우리가 누리거나 이루는 삶을 그려서 나타내는구나 싶어요.


  모든 것은 셀 수 있고, 모든 것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모든 것은 ‘세면’서 우리 앞에 나타나고, 모든 것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우리가 느끼거나 알 수 있구나 싶어요. 어버이자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수학을 가르치고 함께 배운다고 할 때에는 바로 이 대목 ‘세는 힘’과 ‘생각하는 슬기’를 북돋우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세는 놀이’를 하면서 수학을 익히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헤아리면서 수학을 배웁니다. 4349.2.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
질베르 리스트 지음, 최세진 옮김 / 봄날의책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44



경제성장을 바라보다가 놓친 삶·살림·사랑

―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

 질베르 리스트 글

 최세진 옮김

 봄날의책 펴냄, 2015.11.20. 15000원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봄날의책,2013)을 쓰기도 한 질베르 리스트 님은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봄날의책,2015)을 선보입니다. 두 가지 책 모두 ‘환상’을 다룹니다. 문득 궁금해서 한자말 ‘환상’ 말풀이를 찾아봅니다.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헛된 생각”은 알겠으나 ‘공상’이라는 한자말이 다시 궁금해서 찾아보니,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어 봄”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알맹이가 없으며 이루어질 수 없을 만한 덧없는 생각을 가리켜 ‘환상’이라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발전’이나 ‘경제학’을 놓고 어떤 “덧없는 생각”이 흐른다는 이야기일까요? 발전이 끝없으리라는 생각은 왜 덧없고, 경제학이 과학(과학적)이라는 생각은 왜 부질없을까요?



다른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제 ‘과학’ 분야도 학계나 행정부, 국제기구에서 명망 있는 일자리를 차지하려는 권력 싸움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소위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려는 경쟁이 그 절정을 이룬다. (37쪽)


주류 경제학은 ‘경제적’이기는커녕 낭비를 부추길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경제적 부’가 생태를 빈곤화시키며 축적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49쪽)



  질베르 리스트 님은 이녁 책에서 ‘경제학’은 모든 바탕을 ‘지구자원을 캐내서 돈을 더 끌어모으는 길’을 다루기 때문에, 어느 경제학이든 ‘지구를 무너뜨리는 길’로 달릴 수밖에 없다고 밝힙니다. 지구자원을 더 캐낼 수 없을 때에는, 또 지구자원을 캐내는 1차산업에 몸을 바치는 일꾼이 없을 때에는, 발전도 경제학도 이루어질 수 없는 셈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발전이나 경제학 모두 쓰레기는 헤아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산업’하고 ‘경제성장율’을 헤아릴 뿐입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면서 비닐을 쓰고, 온갖 포장종이를 쓰기에, 이 모두가 ‘소비를 마친 뒤에 쓰레기’로 바뀌어도 딱히 걱정을 하거나 마음을 쓰지 않아요. 비닐 쓰레기가 온누리를 뒤덮어도, 아파트를 허물어 나오는 시멘트 쓰레기를 곳곳에 파묻어도, 발전이나 경제학 이론에서는 이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요.


  이리하여 경제학은 “낭비를 부추긴다”고 여길 만해요. 쓰레기가 늘고, 지구자원이 사라지며, 환경이 무너지더라도, 생산과 소비가 끝없이 이어지면 모두 발전이나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이 붙거든요. 경제를 다루는 공무원과 학자 모두 성장율이라고 하는 숫자를 살필 뿐, 삶자리도 마을도 보금자리도 둘러보지 않는다고 할 만해요. 돈이 더 되느냐 안 되느냐만 책상맡에서 살피는 경제학이라고 할 만하지요.



경제행위의 ‘합리성’은 19세기 유럽에서는 노동자 투쟁을 탄압하며 강요했고, 세계 대부분에 대해서는 식민화를 통해 강요했으며, (64쪽)


시장 제도에서는 ‘한몫 잡았다’고 허풍을 떠는 게 금지되어 있지 않다. ‘한몫 잡았다’는 말은 자신이 받은 것에 비해 상대방에게 적게 주었으며, 거래 당사자의 이익에 맞서서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줄 안다는 의미이다 … 이윤의 유혹에 빠진 시장 논리는 주는 기쁨을 모른다. (89쪽)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은 경제학이 말하는 ‘시장 제도’가 무엇인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모든 경제학은 ‘이윤 추구’로 나아가기 마련인데, ‘이윤 추구’란 ‘돈이 되도록 하기’이고 ‘돈이 되는 길 좇기’입니다. 돈이 되도록 하거나 돈을 모으려고 하면, ‘돈이 남한테 가기보다 나한테 오도록 해야’ 하고, ‘남은 이익을 덜 거두거나 못 거두도록 하면서, 바로 내가 더 많이 이익을 거두어야 합’니다. ‘시세 차익’이라고 하듯이, ‘더 남겨야’ 돈이 돼요. 그러니까, 질베르 리스트 님이 “시장 논리는 주는 기쁨을 모른다(89쪽)” 하고 말할 만합니다. 남한테서 더 가로채거나 가져와야 ‘돈이 되는(이익이 되는)’ 얼거리로 나아가는 경제학일 테니까요.


  곰곰이 돌아봅니다.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이라는 책에서 밝히지 않더라도, 경제발전에서는 수입보다 수출이 커야 한다 밝히지요. 즐거운 삶이나 아름다운 삶을 말하거나 살피거나 따지지 않아요. 수입도 수출도 없이 자급자족을 하는 사회나 삶은 이야기하지 않아요. ‘경제 행위’가 되려면, 남한테 뭔가를 내다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남한테 아무것도 안 팔고, 남한테서 아무것도 안 사면서 조용하게 살림을 꾸릴 적에는 어떤 경제학도 나타나지 않아요.



전통사회에서 사람들은 할 수 있을 때도 더 많은 것을 바라거나 더 축적하기를 바라지 않고, 수수하고 검소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 그들에게 삶의 목표는 소비가 아니다 … 노동보다는 서로 잡담을 나누거나 족장이나 노인들이 해주는 옛날이야기와 창조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거나 잔치 준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개인적인 풍요는 언제나 질투와 폭력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109쪽)


우리는 전자제품, 전화기, 의약품 같은 것들 없이 지내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다. (178쪽)



  아스라히 먼 옛날부터 모든 사람은 스스로 삶을 지었습니다. 밥이나 옷이나 집을 누구나 스스로 지었습니다. 게다가 즐겁게 지었어요. 전문가나 학자라는 사람은 따로 없었고, 누구나 ‘모든 것’을 다루고 살피고 알고 나누면서 살았어요. 사내랑 가시내를 따로 가르는 삶이나 살림이 아니라, 서로 아끼며 돕는 삶이나 살림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밥짓는 전문가나 옷짓는 전문가나 집짓는 전문가를 따로 두지 않던 지난날이에요. 공부만 하는 전문가라든지, 교육자 노릇을 하는 전문가라든지, 행정 서류를 도맡는 전문가가 굳이 없어도 되던 지난날입니다. 누구나 씨앗을 심고, 누구나 풀을 건사하며, 누구나 나무랑 숲을 아끼던 지난날이었다고 느껴요. 지난날에는 쓰레기가 나올 턱이 없으며, 지구자원을 파헤쳐서 망가뜨리는 일이 없지요. 권력자나 족장이 나서기 앞서까지는 싸움이나 전쟁조차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전쟁무기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살림살이만 지었을 테고요.


  그런데, ‘남는 것’을 거두는 사회가 되면서, ‘남는 것’을 다스리거나 더 그러모으려는 권력자가 나타나고, 이 권력 흐름이 깊어지면서 더 큰 정치권력이 되려고 하는 몸짓이 불거져요.



GDP 지표는 실제로는 그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생존이 아니라, 그 ‘체제’ 자체의 생존에 훨씬 더 중요하다. 성장을 멈춘 기업, 다시 말해 더 이상 이윤을 축적하지 못하는 기업은 성장하지 못하면 사라진다는 사회진화론의 원리에 의해 시장에서 곧 배제된다. (155쪽)


경제 ‘과학’이 처음으로 모습을 갖춰 가던 19세기 초에는 자연의 혜택이 무한하다고 오해했기 때문에, 자연의 혜택이나 천연자원이 유한하다는(혹은 재생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기 어려웠다. (210쪽)



  오늘날 우리는 운전만 하는 삶을 보내거나, 기계만 다루는 삶을 보내거나, 컴퓨터만 만지는 삶을 보내거나, 부엌일만 하는 삶을 보내거나, 아이들을 키우는 일만 하는 삶을 보내거나 하면서 지냅니다. 가게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쓰면서, 내 손에 쥐는 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대목을 돌아보지 않을 뿐더러, 돌아볼 겨를조차 없습니다.


  내가 짓는 삶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를 스스로 나누는 삶이 잊힙니다. 남이 짓는 삶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삶으로 바뀝니다.


  오늘 우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 만할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돈을 잘 벌도록 한다든지, 한두 가지 재주를 키워서 전문 직업인이 되도록 하는 길 말고, 스스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는 사랑을 보여주거나 가르칠 만할까요? 돈이 아니어도 삶을 가꾸면서 사랑을 키우는 꿈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더 비싼 자동차나 아파트나 옷이나 전자제품을 장만해야 하는 살림이 아니라,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평등한 살림살이를 북돋우는 꿈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경제학은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이라는 책은 이 사회에서 우리가 새롭게 나아갈 길까지 들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이 외치는 숫자나 지표나 통계나 전망이나 이론에 감춰진 속내를 찬찬히 밝혀 줍니다. 경제성장이나 발전에 목을 매다가는 삶·살림·사랑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대목을 찬찬히 밝혀 줍니다. 우리가 스스로 잊거나 잃었지만, 스스로 찾거나 살려야 할 삶·살림·사랑을 이제부터 새롭게 바라보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4349.2.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양장) - 일상과 그 너머에 대한 인문적 성찰
류대영 지음 / 생각비행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229



길을 잃은 아버지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책

―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류대영 글

 생각비행 펴냄, 2016.1.15. 2만 원



  한동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일을 맡는다는 류대영 님은 이녁이 쓴 책을 이녁 아이들이 한 권도 안 읽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학자로서 쓴 글이고 책이니 이녁 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고 할 테지요.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마음으로 논문을 쓰는 사람은 매우 드물거나 딱히 없을 테니까요. 류대영 님이 그동안 쓴 글하고 책이라면 이녁 스스로 걸어가고 싶은 학문길을 살피면서 빚은 열매라고 느낍니다.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생각비행,2016)라는 책은 누구보다 류대영 님네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마음으로 쓴 글을 묶었다고 합니다. 학문도 논문도 아닌 ‘우리 아이들이 읽고서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만 따로 써서 이 책을 엮었다고 해요. 아버지라는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고 어떤 생각을 가슴에 품으면서 살았으며 이제껏 사람과 사회와 삶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제법 두툼한 책으로 여미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떠나도 그가 주고 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먹이고, 업어 주고, 쓰다듬어 주던 할머니의 사랑은 지금도 나를 살리고 있다. (24쪽)


학교 앞에 난 고속도로는 멀리서 학교로 오가는 일을 편리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다른 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그 길은 주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29쪽)



  글이나 책을 쓰는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글이나 책을 남길 만합니다. 땅을 지어서 흙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땅을 물려주면서 흙을 돌보는 손길을 물려줄 만합니다. 살림을 가꾸는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살림을 가꾸는 숨결을 물려줄 만해요. 자동차를 좋아하는 어버이라면 아이가 자동차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물려줄 테고, 바다를 좋아하는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바다로 자주 나들이를 가면서 바다가 베푸는 넋을 물려줄 테지요.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를 읽으면, 류대영 님을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가 흐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가 흐릅니다.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온 사회가 캄캄하던 무렵 어리거나 젊은 류대영 님이 겪어야 한 이야기가 흐르고, 캄캄해서 앞이 보일 듯 말 듯하던 무렵에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등화관제’ 이야기를 읽다가, 나도 어릴 적에 으레 겪은 등화관제 훈련이 떠오릅니다. 등화관제 훈련을 시킬 적마다 민방위대원인지 새마을대원인지 온 마을을 돌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우리 식구가 사는 집은 5층짜리 아파트였는데, 전쟁이 터지면 항구에서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길목을 우리 아파트를 허물어서 막는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길가에는 아파트가 남달리 많았는데, 이 아파트는 모두 ‘전쟁 대비 목적’으로 그곳에 세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유신시대 등화관제 때문에) 가로등을 포함해서 땅에서 모든 불빛이 사라지자, 놀랍게도 하늘에는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빛이 나타났다. 거대한 별바다였다. (56쪽)


나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주로부터 왔다. 물질적으로 볼 때 내 몸은 우주의 구성성분과 같다. (66쪽)


영어 사전에 걸레처럼 되어서 책갈피를 넘기기도 힘들게 되었을 때쯤, 나는 영문학이 무엇인지 조그씩 그 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때나마 문학의 길을 꿈꾸며 시를 습작하기도 했다. (78쪽)



  신학을 배웠고, 신학을 가르치는 류대영 님이라 하는데,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라는 책은 종교를 거의 안 다룹니다. 하기는, 류대영 님이 걸어온 길은 ‘학문 닦기’입니다. ‘종교 섬기기’라고 하는 길이 아니니까요.


  엄청난 별바다를 보던 어릴 적 일을 그립니다. 이윽고 ‘우주와 내가 이어진 고리’를 헤아립니다. 한국말이 아닌 영어라는 새로운 말을 익히면서 맛본 ‘다른 나라 문학’에서 새로운 삶과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손전화 없이 살다가, 손전화가 없으면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 얼거리에서 ‘네 식구가 함께 쓰는 전화기’를 마련하고, 아이들이 커서 따로 지낼 적에는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전화기’로 이어간다고 합니다.


  포항에서 커다란 공장이 설 적에 숲을 어떻게 밀어서 없애는가 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숲길을 거닐거나 멧자락을 오르내리면서 느낀 생각을 들려줍니다.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낸 동무가 일찍 숨을 거둔 일을 겪으면서 사람과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되새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수수하다면 수수하고, 투박하다면 투박한 이야기입니다. 류대영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아버지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요,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주고받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수수하고 투박한 이야기가 여러모로 맛깔스럽습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 류대영 님네 아이들은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책을 재미있게 읽으리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어느 지식을 강요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삶을 치르면서 어느 한 사람이 차근차근 거듭나거나 자라온 발자국을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한창 젊은 발자국을 내딛는 류대영 님네 아이들은 이 책을 곁에 두면서 새삼스레 기운을 얻을 만하리라 봅니다.



파이어스톤 도서관에 있는 책꽂이 길이를 모두 합치면 약 110킬로미터나 된다고 한다. 서울 시청 앞에서 천안 사거리까지의 도로 길이가 약 100킬로미터라고 하니. (104쪽)


상상력은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낳는다. 상상력은 위대한 문학과 예술을 탄생시키고, 초월을 위한 종교와 사상을 만들며,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어낸다. (135쪽)



  미국에 있는 파이어스톤 도서관은 무척 크다고 합니다. 그곳에 깃들어 책이나 자료를 살피다 보면 흔히 길을 잃는다고 해요. 파이어스톤 도서관에 들어갈 적에는 ‘도서관 지도’를 꼭 손에 쥐고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도서관 지도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찾아다녀도 때때로 ‘어디로 돌아 나와야 하는가’를 잃는다고 합니다.


  도서관이 워낙 커서 모든 곳에 불을 밝히지 않는다지요. 사람들이 저마다 책을 살펴서 보는 자리에서 스스로 불을 켜도록 한대요. 그런데, 미국에 있는 의회도서관은 이보다 훨씬 크다고 합니다. 책이라는 모습으로 이룬 열매를 알뜰히 여겨서 건사한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이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새롭게 서려고 하는 길에 스스로 배우려고 하는 책을 넉넉히 찾을 만하겠지요.


  류대영 님은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자꾸 길을 잃으면서 학문을 닦습니다. 학문을 닦으면서 스스로 거듭납니다. 길을 잃고 또 잃지만 씩씩하게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지도에 없는 길을 느껴서 찾고, 지도와는 다른 도서관 얼거리를 느끼면서 ‘책하고는 다른 삶·사회·사람 얼거리’를 배웁니다. 사람이 이룬 문명과 문화가 어마어마하다 싶은 도서관에 가득가득 모이지만, 사람이 이룬 모든 문명과 문화가 이곳에 다 모이지는 않는다는 대목을 깨닫습니다.


  신라 옛 유적이 있는 곳을 천천히 거닐면서 ‘오늘날까지 남은 문화재(유물)’는 거의 모두 권력자가 쓰던 것이라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여느 사람들이 수수하게 살며 쓰던 살림살이는 오늘날까지 거의 남아나지 않는다는 대목을 돌아보지요.



한국은 학자가 100권의 책을 내더라도 논문을 따로 쓰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이상한 나라다. (207쪽)


나는 죽비로 머리통을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 이발사는 세계적인 대기업을 다니며 안정적인 생활을 했지만, 순전히 봉사를 위해 이발 기술을 배웠고, 지금까지 이발 봉사를 하고 있었다. (249쪽)


농협이라는 조직은 말 그대로 농촌의 협동조합인데, 도대체 누가 누구를 위하여 대형 마투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 농협이라면 깨끗하고 편리한 건물을 지어 놓고, 거기에 농민들이 와서 자기 물건을 팔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 같다. (291쪽)



  어느 모로 본다면, 길을 잃기에 길을 새로 찾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또 어버이로서, 또 학자로서, 또 곁님(남편)으로서 빈틈없는 모습으로 살아온 나날이 아니라, 이렇게 부딪히고 저렇게 넘어지면서 늘 새롭게 배우려고 한 삶이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류대영 님 나름대로 책으로 적었다고 할 수 있어요. 어버이 한 사람은 이제까지 살며 이렇게 삶을 배웠다고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희 삶을 새롭게 부딪히고 부대끼고 어우러지면서 기쁘게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물려주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나도 두 아이 아버지로서 늘 새롭게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새롭게 거듭나고 배웁니다. 늘 길을 잃기에 늘 길을 새로 찾습니다. 어린 아이가 자꾸자꾸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걸음마를 익히듯이,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는 곧잘 어긋나기도 하고 어리숙하기도 한 나날을 보내면서 찬찬히 슬기로운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배울 수 있는 마음이기에 어른으로 산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가르칠 수 있는 마음이기에 어른이거나 어버이가 아니라, 배울 수 있는 마음이기에 어른이나 어버이로 살면서 아이들하고 사랑을 나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이하고 살며 ‘길을 잃는’ 수수한 어버이한테 길동무가 될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가 되리라 하고 느낍니다. 길을 잃는 수수한 어버이 누구나 ‘우리가 걸어온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한테 스스로’ 기쁘게 들려줄 수 있으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하고도 느낍니다. 4349.1.2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린다 2016-01-2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따뜻해지는 리뷰여요ㅎㅎ

숲노래 2016-01-29 13:2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언제나 마음이 따뜻한 하루 누리셔요 ^^
 
장정일의 악서총람
장정일 / 책세상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227



노랫가락을 책으로 읽는 소설가

― 장정일의 악서총람

 장정일 글

 책세상 펴냄, 2015.12.31. 17800원



  나는 요즈음 아이들하고 노래를 즐겁게 듣습니다. 두 아이가 퍽 어릴 적에는 으레 노래를 부르며 살다가, 어느덧 이 아이들하고 새로운 노래를 새롭게 배우면서 지냅니다.


  내가 요즈음 즐겁게 듣는 노래는 ‘영어 동요’입니다.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엮는 일을 하는 사람이 ‘영어 동요’를 듣는다고 하면 알쏭달쏭하게 여길 분도 있을 텐데, 지구에서 쓰는 온갖 말 가운데 하나인 영어에 깃든 결을 ‘영어 동요’로 새삼스레 배워요.


  영어 동요를 듣다 보니 어릴 적부터 낯익던 가락이 무척 많습니다. 왜 이렇게 낯익던 가락인가 하고 돌아보니, 노랫말만 살짝 다르게 붙인 ‘번안 동요’를 어릴 적부터 듣고 배웠구나 싶습니다. 이제서야 깨닫는 셈인데, 외국 동요(서양 동요)를 외국 동요가 아닌 듯이 노랫말만 다르게 붙여서 이 나라 아이들한테 가르쳤구나 싶어요.



유럽의 찬송가나 프랑스의 민요, 에스파냐의 무곡, 흑인 영가가 섞여 재즈가 발전한 것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이지만, 재즈를 재즈답게 하는 리듬, 즉흥성, 관능성은 모두 그보다 일찍이 존재했던 아프리카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66쪽)


레넌은 비틀스를 유지하면서 생기는 웅장한 주택보다는 요코와 함께 지내는 초라한 움막이 더 좋다고 말하곤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레넌의 ‘이매진’은 그것의 적절한 은유며, 실제로 그 노래를 만들도록 설득하고 영감을 준 것도 요코였다. (174쪽)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영어 동요를 새롭게 듣고 배우면서 《장정일의 악서총람》(책세상,2015)을 읽습니다. 2015년 12월 31일을 펴낸날로 해서 나온 두툼한 《장정일의 악서총람》은 소설가 장정일 님이 읽은 ‘노래책(음악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모로 보면 ‘노래책 독후감’을 그러모은 책이고, ‘노래를 다루거나 노래하고 얽힌 이야기가 흐르는 책’에 흐르는 줄거리를 장정일 님 나름대로 헤아리면서 풀어낸 책입니다.


  장정일 님은 재즈를 몹시 좋아하지만 재즈가 아닌 노래에도 귀를 열려고 하는 몸짓으로 여러 갈래 노래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퍽 두툼한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참말 내(장정일)가 이 책을 다 읽었단 말입니까!’ 하고 기쁨과 놀라움에 찬 외침말을 붙이기도 해요. 그래서 나도 장정일 님 말투를 빌어서 ‘내가 이 책(장정일 님 책)을 참말 끝까지 다 읽었단 말입니까!’ 하고 슬그머니 외쳐 봅니다.


  아이들만 영어 동요를 듣도록 하면서 몇 쪽씩 읽다가, 아이들이 깔깔깔 웃고 춤추는 모습만 어깨너머로 볼 수 없어서 함께 방바닥을 구르면서 춤추면서 웃다가, 아이들을 재우고서 조용히 읽다가,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서 살짝살짝 읽습니다.



그걸(일본 제국이 친구로서 독일을 지지한다) 수행하기 위한 단체가 유럽 거주 일본 외교관과 나치 간부들이 만든 일독회라는 문화 선전 단체였고, 안익태는 이 단체를 통해 일본의 음악 대사 역할을 했다. 바로 이것이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가 철저히 숨기고 싶은 전력이었고 … 평생 음악에 헌신했던 안익태는, 음악 경력 말년에 이르러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미하게 된다. (123∼124쪽)



  《장정일의 악서총람》에는 몇 사람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이를테면 마돈나하고 신디 로퍼하고 레넌하고 서태지가 곧잘 나옵니다. 이밖에 수많은 사람이 꾸준하게 나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지구별에서 크게 이름을 떨친 사람들을 다룬 노래책이 꽤 많으니까요. 한 번만 살짝 나오고는 더 나오지 않는 이름도 많은데, 안익태하고 얽힌 이야기를 ‘장정일 님이 읽은 책에 나온 이야기’로 다시 읽으면서 새삼스레 고개를 끄덕입니다. 괴벨스하고 얽힌 이야기를 ‘장정일 님이 읽은 책에서 장정일 님이 읽은 줄거리’로 거듭 읽으면서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바이올린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진창현이라는 분하고 읽힌 이야기를 ‘장정일 님이 읽은 책에서 장정일 님이 무릎을 치면서 새삼스레 되새겼다’고 하는 대목을 고요히 읽으면서 가만히 되돌아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늘 무엇인가를 ‘발명’할는지 모릅니다. 우리한테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그야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스스로 찾아내거나 알아내야 해요. 만화책 《피아노의 숲》을 보면 ‘숲에 버려진 피아노’를 제 것으로 삼아서 ‘스스로 피아노를 배운’ 아이가 나오지요. 장정일 님은 인문책하고 소설책하고 역사책만 읽으셨고 만화책은 하나도 안 읽으셨는데(이 책에서 다룬 책으로만 따진다면), 《피아노의 숲》에 나온 아이는 아무한테서도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이 스스로 피아노를 쳤으니 ‘피아노 연주법’을 ‘스스로 발명’했다고 해야겠지요.


  《순백의 소리》라는 만화책을 보면, 이 만화책은 ‘샤미센’을 켜는 청소년이 나오는데요, 이 청소년한테 할아버지인 분은 아무한테서도 악기 켜기를 배우지 않았어요. 만화책에 나오는 청소년한테 할아버지인 분은 혼자서 동냥밥을 먹으면서 스스로 샤미센 켜기를 익히고 가다듬었습니다. 그러니 그분도 ‘연주법 발명’을 했겠지요.



음악이 기록되고 연구의 대상이 된 이래 음악 연구를 지배해 온 것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225쪽)


프로파간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괴벨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선전이 문화적이고 즐거운 오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전체 프로그램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부분은 … 1938년에는 69.4%까지 증가했으며,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는 독일 방송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90%에 육박했다. (258쪽)



  《장정일의 악서총람》은 널리 알려진 음악가나 노래꾼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 장정일 님이 좋아하거나 마음에 두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서태지하고 얽힌 이야기를 곳곳에서 읽을 수 있어도, 정태춘·박은옥 같은 사람하고 얽힌 이야기는 한 줄로도 읽을 수 없습니다. 조용필 이야기는 몇 줄로 읽을 수 있어도, 김광석 이야기는 한 줄로도 읽을 수 없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굳이 모든 사람을 다루어야 하지 않고, 애써 모든 노래를 들어야 하지 않아요.


  재즈를 듣건 팝송을 듣건 대중노래를 듣건 모두 스스로 좋아하는 노랫가락을 마주하면서 받아들이면 됩니다. 나는 두 어린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서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는 거의 모두 어린이노래(동요)입니다. 내가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노래도, 아이들하고 내가 함께 듣는 노래도, 참말 거의 모두 어린이노래예요. 때때로 재즈도 듣고 교향악도 듣고 ‘지브리 스튜디오 연주’도 듣습니다만, 나를 둘러싼 거의 모든 노래는 어린이노래이지요.


  그래서 나로서는 안익태 뒷이야기가 궁금하기보다는 권태응이나 이원수 이야기가 궁금하고, 서태지 이야기보다는 백창우 이야기에 눈길이 갑니다. 그러나 소설 쓰는 장정일 님은 악익태 뒷이야기나 서태지 이야기에 마음이 가지요.



진창현은 바이올린을 발명했다. 아무도 그에게 바이올린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304쪽)



  소설 쓰는 장정일 님은 소설 쓰는 장정일 님 삶에서 스스로 좋아할 만한 노래를 찾아서 귀를 열면서 듣습니다. 그리고, 책을 장만해서 눈을 밝히면서 읽습니다. 어느 책을 놓고는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쓴소리를 짤막하게 붙입니다. 어느 책을 놓고는 그 책을 쓴 분이 부디 다음에도 멋진 책을 베풀어 주기를 바란다며 추켜세우는 말을 붙입니다. 그리고, 《장정일의 악서총람》 곳곳에 ‘국악 비판’이 꾸준히 흐릅니다. 고급스러운 노래로 서지도 못하고, 서민 곁에서 사랑받는 노래로 서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걸음걸이인 국악이 제대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 드러나요.



국악을 대중화하고 현대화하고 싶다면 차라리 소녀시대를 만나는 게 낫다. 국악 진흥에 진력한 국악인들의 노고를 폄하해서는 안 되지만, 그 노력은, 까마득한 옛날 조용필의 ‘못 찾겠다 꾀꼬리’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가 대중에게 국악을 환기한 만큼도 효과가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538쪽)



  어떤 노래가 아름다울까요?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켜는 사람부터 스스로 즐겁거나 기쁘게 들려주는 노래가 아름답지 싶어요. 어떤 노래가 사랑스러울까요? 가슴 깊이 따사로운 마음으로 맞아들여서 부르거나 악기를 켤 적에 사랑스러운 노래가 되리라 느껴요.


  노랫가락이 이야깃가락이 되면서 우리 곁에 있을 적에 반가우면서 즐겁습니다. 노랫가락이 사랑가락이 되면서 우리와 함께 숨을 쉴 적에 살가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귀가 아닌 눈으로 노래책을 읽으면서 귀가 아닌 눈을 열면서 노랫가락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귀로 듣는 노래를 눈으로도 함께 들으면서 온갖 노랫가락을 새롭게 마주해 봅니다. 마흔 줄 나이가 넘어서 영어 동요를 아이들하고 들으며 방바닥을 쿵쿵 구르면서 춤추어 보니 무척 재미있습니다. 재즈로도 락으로도 트로트로도 얼마든지 춤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어 동요로도 신나게 춤출 수 있습니다. 요즘 저는 ‘walking in the jungle’이나 ‘Johny Johny yes papa’나 ‘hickory dickory dock’이나 ‘put on your shoes’ 같은 재미난 노래를 날마다 여러 차례 듣습니다. 《장정일의 악서총람》을 이런 동요를 들으며 읽으면서 함께 신나게 춤추어 보시겠어요? 4349.1.2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 - 누구나 행복한 사람이 되는 곳
김경희 지음 / 공명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225



기쁨은 돈으로 따지거나 재지 않습니다

―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

 김경희 글·사진

 공명 펴냄, 2015.12.30. 13800원



  방송작가로 일하는 김경희 님은 좀처럼 말미를 내어 차분히 쉬거나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고 합니다. 열 살 난 아이가 있어서 이 아이를 두고 보름씩 집을 비우면서 나라밖을 다녀올 생각을 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부탄을 둘러보려는 마음이 커서 체류비를 씩씩하게 냈고, 마흔 문턱에서 삶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넋으로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공명,2015)라는 책은 부탄이라고 하는 나라가 참으로 얼마나 ‘기쁨 나라(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인가를 몸으로 겪어서 느껴 보려고 하는 발걸음으로 태어납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김경희 님은 2014년에 바닷속에 슬프게 가라앉은 세월호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잊거나 잃은 ‘사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부탄에서 찾아보고 싶었다고 해요.



부탄 사람들에게는 순박하고 착해 보인다는 흔한 말로는 부족한 정갈한 매력이 있었다. 그게 뭘까, 한참 생각하던 나는 어느 순간 그것이 ‘품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농부는 농부대로, 공항 경비원은 또 그들대로, 자기 나름의 분위기와 품위가 있었다. (28쪽)


부탄의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겠지만 거대한 산자락 아래 위치한 이 학교는 시야가 탁 트여 있으면서도 무척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운동장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정경은 최고였다. (87쪽)




  경제성장율이나 국민소득으로 치자면 부탄이라는 나라는 거의 맨끝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요. 숫자로 쳐도 부탄은 국민소득이 3000달러 즈음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부탄에서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기쁨’은 무척 높다고 나와요.


  한국은 경제성장율이나 국민소득으로 치자면 꽤 앞쪽에 든다고 할 수 있어요. 숫자로 치면 한국사람은 제법 잘사는 나라라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부탄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기쁜 삶’이라고는 느끼지 못한다고 해요. 부탄하고 견주면 얼추 아홉 곱(2014년 잣대로 한국 국민소득은 27090달러)이나 되는 국민소득인 한국이지만, 정작 한국사람이 살갗으로 느끼는 기쁨은 무척 떨어진다고 할 만해요.


  다시 말하자면, 부탄은 숫자로 기쁨을 따지지 않는 나라요, 한국은 기쁨보다는 숫자를 따지는 나라입니다. 부탄이라는 나라에서는 국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사는 기쁨’하고 ‘사는 보람’을 생각한다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며 벌어야 하는 돈’하고 ‘살며 가져야 하는 돈’에 많이 얽매이는 셈입니다.



20달러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을 가진 기업들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스카프 한 장이 수십만 원에 팔리는 세상에서 대자연의 기도가 담긴 머플러를 20달러에 두 장이나 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더마가 내게 차 한 잔을 더 권했다. (112쪽)


“하하, 요리를 재미로 하나요? 가족들과 함께 맛있게 먹기 위해서 하죠.” “그렇구나. 초키는 정말 좋은 남편이에요.” “누구나 하는걸요, 뭘. 한국 남자들은 요리를 안 하나요?” (120쪽)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를 쓴 김경희 님은 방송작가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다큐작가로서 쓰지 않습니다. 보름에 걸쳐서 부탄에서 조용히 살며 겪은 대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때때로 사진기를 들어서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두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으며 느낀 이야기를 적바림해요.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책을 덮고서 부탄하고 얽힌 여러 가지 ‘지표(숫자)’를 살펴보고, 한국하고 얽힌 여러 가지 지표도 살펴봅니다. 한국하고 얽혀 땅뙈기는 세계 109위라 하고, 인구는 세계 26위라 하며, 국민소득은 세계 11위라고 나옵니다. 부탄은 땅뙈기가 세계 137위라 하고, 인구는 세계 165위라 하며, 국민소득은 세계 159위라고 나와요.


  한국에 있는 학교에서는 세계 역사나 문화를 가르칠 적에 으레 이러한 숫자를 바탕으로 가르치겠지요. 매체에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룰 적에도 으레 이러한 숫자를 들 테고요. 그러면 이러한 숫자에는 어떤 기쁨이나 즐거움이나 보람이나 사랑이나 꿈이 깃들었다고 할 만할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정부는 언제나 경제성장율을 높이겠다는 정책만 밝히는데, 경제성장율을 높이면 우리는 얼마나 기쁘거나 즐겁게 살 만할는지요.



와이파이가 되지 않으니 음악을 들을 수도 없었고 불빛이 없으니 책을 읽기에도 좀 애매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요함 속에 누워 있으니 평소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귀에 들렸다. 몇 시간 사이에 빗줄기가 굵어졌는지 처마를 타고 흐르는 빗소리가 전해졌다. (172쪽)


현명한 부탄 아가씨들은 돈이나 배경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구애를 펼치는지 본능으로 받아들인다. (184쪽)





  부탄도 부탄이지만 내가 지내는 보금자리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이들한테 어머니나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어서 집안으로 가지고 와야 아이들이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랑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 때보다는 저희랑 함께 있으면서 함께 놀고 웃고 노래하고 어울리고 잠들고 이야기할 적에 기뻐하거나 즐거워합니다. 밥상맡에 함께 둘러앉아서 수저를 들 때에 기뻐하거나 즐거워합니다. 밥상에 온갖 먹을거리를 잔뜩 차려야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언제나 따스한 사랑하고 너른 꿈을 바라요. 아이들은 어떤 숫자나 지표를 따지거나 챙기거나 살피지 않아요. 과자 한 점을 먹을 적에도 서로 나누고 어머니나 아버지 입에도 똑같이 주고 싶은 아이들은 기쁜 마음하고 즐거운 숨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나게 뛰놀 수 있는 마당을 좋아하는 아이들이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들길을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점배, 아이들이 어쩜 저렇게 인사를 잘하죠?” “학교에서 배우고 집안에서 배우고 마을 어른들에게도 배우니까요.” (263쪽)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번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듯하다. 부탄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것에도 성공하는 것에도 능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확실히 우리보다 더 행복하다. (311쪽)




  김경희 님이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라는 책에서도 쓰듯이, 기쁘기에 기쁘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돈을 벌기에 기쁜 삶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벌려 하면 돈을 벌 뿐입니다. 국민소득이 높으면 그저 국민소득이 높다는 뜻일 뿐, 사람들이 서로 돕고 아끼고 돌보고 사랑하고 어깨동무를 한다는 뜻이 되지 않아요.


  참말로 기쁨은 숫자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쁨은 돈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쁨은 시험성적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쁨은 집 넓이나 자동차 크기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쁨은 키나 몸무게로 따질 수 없습니다. 기쁨은 언제나 마음으로 살펴서 삶으로 누릴 뿐입니다.


  노래하는 마음이 되기에 노래가 흘러나오고, 춤추는 마음이 되기에 춤사위가 샘솟습니다. 노래방에서만 소리를 빽빽 질러대는 몸짓이 아니라, 여느 자리에서 밥을 짓고 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느긋하고 살가이 노래할 수 있는 몸짓이 될 때에 비로소 기쁜 삶이 되리라 봅니다. 돈을 내고 들어가는 춤판이 되기에 춤을 추는 몸짓이 아니라, 밥을 짓다가도 춤을 추고 길을 걷다가도 춤을 추며 마당에서 아이들하고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는 몸짓이 될 적에 바야흐로 기쁜 사랑이 되리라 느껴요. 멀리 있는 기쁨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는 기쁨이니, 바로 이 기쁨을 눈여겨보고 아낄 때에 스스로 웃는 삶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349.1.1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