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한국사 상식 44가지의 오류, 그 원인을 파헤친다!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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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47



군사정권은 왜 ‘역사’를 건드렸을까?

―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박은봉 글

 책과함께 펴냄, 2007.11.24. 16800원



  《한국사편지》를 쓴 박은봉 님이 선보인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책과함께,2007)는 책이름처럼 한국사를 놓고 사람들이 ‘상식’으로 여기는 대목을 바로잡으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정작 옳지 않거나 틀릴 수 있다는 대목을 알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면 주민등록을 해야 하고, 이때에 성하고 이름을 쓰는데요, 이때에 아기한테 붙이는 성을 우리가 널리 쓴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대목을 깨닫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주민등록을 할 적에 ‘성’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또 어머니나 아버지 성 가운데 하나를 안 써서는 안 됩니다. 그나마 요즈음은 어머니 성도 처음부터 쓸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습니다만, ‘어머니 성도 아버지 성도 아닌 새로운 성’을 쓸 수는 없어요. 우리는 왜 새로운 성을 쓰면 안 될까요? ‘중국에서 베풀어’ 준 성이 아니라, 한국사람 스스로 새로운 성을 지을 수 없을까요?



고려시대 이전에는 왕족과 극소수의 대귀족만 성을 가졌고 나머지 사람들은 성 없이 이름만 있었다. 유력한 호족 집안에서 태어난 왕건조차 성이 없었으니 … 왕실의 체모를 갖추려면 중국처럼 성을 써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는 중국과 신라의 호칭 문화가 다른 데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호칭할 때 신라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관습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성을 불렀으며 이름 부르는 것은 무례한 일로 여겼다. (21, 23쪽)



  ‘성’이란 무엇일까요. 어버이 성은 아이가 꼭 물려받아야 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집안에 족보가 있다고 여기지만, 우리가 아는 족보 가운데 제대로 된 족보는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고구려나 백제나 신라에서도 성을 쓴 사람은 아주 드물었고, 고려 무렵에도 드물었으며, 조선 무렵이라고 해서 그리 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대목을 헤아릴 수 있다면 오늘날 ‘한국사람 누구나 성을 쓰는 일’을 좀 알쏭하게 여길 만하겠지요.


  다시 말해서 ‘아무 성’을 쓴다고 하더라도 족보에 남을 일이 아닐 만하리라 봅니다. 족보가 대수롭지 않다기보다, 족보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우리 살림이리라 생각해요. 사내(아버지)로 이어지는 핏줄을 지켜야 하는 살림이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저마다 즐거운 일을 찾아서 저마다 기쁨으로 삶을 짓는 데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래서 아버지 핏줄을 잇는다는 ‘성’이란 뜻이나 값이 얼마 없다고 할 만하지 싶어요. 우리는 아무 성을 잇는 사람이 아니라, 아름답게 삶을 짓고 사랑스레 살림을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곰곰이 돌아보면 오늘날에도 한국사람은 서로 부를 적에 ‘성을 잘 안 붙여’ 버릇합니다. 성으로 불러야 ‘버릇없지 않다’는 생각은 중국 문화였고, 중국 글이나 말을 쓰던 권력자 문화였다고 합니다. 이런 중국 문화를 받아들인 권력자가 여느 사람한테까지 이 문화를 퍼뜨렸기에 ‘최 영감’이나 ‘박 선생’ 같은 부름말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용구 삼촌’이나 ‘순이 이모’나 ‘은봉 선생’처럼 성을 빼고 이름으로만 부르곤 했어요.



사람들은 현모양처 하면 으레 신사임당을 떠올리며 조선시대의 이상적 여성상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실은 현모양처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개화기에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여성상이다 … 문제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현모양처가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다는 데 있다 … 1970년대 들어 ‘한국적 민족주의’를 외치며 유신체제를 선포한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통합의 상징 모델로 충무공 이순신과 신사임당을 내세웠다. (79, 87, 90쪽)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 다루기도 하는데, 조선 무렵 이 나라 여성한테 바란 모습은 ‘현모양처’가 아닌 ‘열녀’와 ‘효부’입니다. 내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 안팎에서 또래 가시내한테 어른들이 이런 말을 들려주는 모습을 곧잘 보았습니다. 그무렵 또래 가시내들은 왜 저희한테만 ‘열녀·효부’를 바라느냐며 따지곤 했고, 사내더러 너희는 ‘열남’이 될 수 있겠느냐고 따지기도 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성한테만 현모양처이든 열녀이든 효부이든 바라는 일은 올바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여성은 남성을 사랑하면 될 노릇이고, 남성은 여성을 사랑하면 될 일입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마음을 키워야지 싶어요.


  그렇지만 정치권력은 여성을 열녀나 효부나 현모양처 자리에 두면서 억누르려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성은 아직 ‘평등’이나 ‘민주’나 ‘평화’라는 자리에 서지 못해요. 오늘날에도 남성은 아직 사회평등뿐 아니라 남녀평등을 제대로 이루려고 마음을 쏟지 못합니다. 정치평등이나 교육평등뿐 아니라 남녀평등을 사회 얼거리에서뿐 아니라 집안에서도 넉넉하고 즐겁게 이루려는 몸짓이 제대로 싹트지 못하기 일쑤예요.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혼자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측량하여 만든 지도가 아니라, 이전에 만들어진 여러 지도를 두루 참조하여 종합, 집대성한 지도다. (171쪽)


남방식, 북방식이라는 분류법은 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왜냐하면 고인돌 연구가 진점됨에 따라 북방식이라 했던 탁자 모양의 고인돌이 한강 남쪽 전라도에서 발견되고, 반대로 남방식이라 했던 바둑판 모양의 고인돌이 한강 북쪽 북한에서 발견되는가 하면 (201쪽)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 나오는 고인돌 이야기를 읽다가, 전남 고흥 곳곳에 수없이 많은 고인돌을 떠올립니다. 학계에 보고된 숫자만 쳐도 남녘에 3만 기를 웃도는 고인돌이 있다는데, 이 가운데 전라남도에 절반 가까이 몰렸다고 해요. 고흥에는 ‘학계에 보고된 고인돌’이 1500기가 넘는다고 하는데 아직 보고가 안 된 고인돌도 많으리라 느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흔히 말하는 ‘갑툭튀’ 같은 우람한 돌이 여느 마을 여느 살림집 마당이나 울타리에, 또는 고샅길 한쪽이나 밭 귀퉁이에 버젓이 꽤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갑툭튀’ 돌이 고인돌로 인정을 받거나 보고가 되었다고 하는 얘기는 거의 못 들어요. 웬만한 삽차로는 들어낼 수도 없이 엄청나게 큰 돌인데, 이런 엄청나게 큰 돌이 크기는 거의 다 비슷합니다. 생김새도 비슷하고요. 그래서 나는 우리 마을이든 이웃 마을이든 이런 우람한 돌을 볼 적마다 ‘틀림없이 보고 안 된 고인돌’이겠거니 하고 여깁니다.


  그나저나 이 고인돌이란 무엇일까요. 이 고인돌은 어떻게 세웠을까요. 엄청난 무게인 이 돌을 어떤 힘으로 날랐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학설’로 이 고인돌을 이야기합니다. 여러 가지 학설로 이 고인돌이 어떤 뜻으로 세웠겠거니 하고 여기지만, 아무도 속내를 알 길이 없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고인돌이 처음 선 무렵에 ‘남긴 글(기록)’이 없고, 고인돌이 처음 선 무렵에 왜 이 돌을 날라서 이 자리에 놓았는가를 지켜본 자취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 학설을 ‘상식’으로 여기면서 배우지만, 앞으로 ‘먼 옛날 연구’가 제대로 깊이 이루어지면, ‘오늘은 상식으로 여긴 학설’이 뒷날에는 아무것도 아닌 얘기가 되리라 느껴요.



거북선 철갑선설이 오늘날까지 위력을 발휘하게 된 데는 아무래도 1960년대 초부터 20년간 계속된 군사정권이 끼친 영향이 크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무인이요 난세의 영웅이었던 이순신을 군사정권의 정통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우상화하면서 기북선 철갑선설은 요지부동의 자리를 굳힌 것이다. (241쪽)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결혼 풍습은 처가살이에서 시집살이로 차츰 바뀌어 갔다. 바뀐 건 결혼 풍습만이 아니었다. 아들딸 차별 없이 나눠 주던 균분상속이 딸에게는 적게, 아들에게는 많이 주는 남녀차별 상속으로, 또 여러 아들 중에서도 맏아들에게 많이 주는 장남우대 상속으로 바뀌어 갔다. (400쪽)



  ‘상식’이란 무엇일까요? 학설이란 무엇일까요? 역사 지식이란 또 무어일까요?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거나 가르칠까요?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쓴 박은봉 님은 거북선 상식을 다루는 자리에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벌인 일을 찬찬히 들려줍니다. 스스로 올바르지 않은 군사독재를 가리려는 뜻으로 현모양처 그림을 내세웠고 군사영웅 그림을 앞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속 제도’도 정치나 사회가 바뀌면서 어느새 ‘차별’이라는 모습으로 달라졌다고 해요. 그리고 이런 그림이나 모습은 오늘날 ‘그냥 상식’이라도 되는 듯이 퍼져서 굳어지기도 합니다.


  프랑스 군대에 짓눌리는 식민지로 살아야 했던 인도차이나 여러 나라라고 해요. 인도차이나에 있는 여러 나라는 프랑스라는 굴레를 떨치려 했는데, 1950년대 그무렵에 한국군이 그곳에 가서 ‘프랑스를 돕는’ 전쟁을 해야 했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길을 걷는 모습이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무척 아찔한 일이지 싶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아주 쉬워요.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짓눌리며 끙끙 앓던 무렵, 한국을 더 짓누르면서 일본 제국주의 손을 거드는 군대가 한국에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면 됩니다.



1954년 1월 28일, 이승만은 인도차이나에 한국군 1개 사단을 파병하겠다고 주한 유엔군 사령관 존 헐에게 제안했다. 당시 베트남, 라오스를 비롯한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다.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가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프랑스와 디엔비엔푸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428∼429쪽)



  이제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를 덮으며 생각을 갈무리합니다. 정치권력이 역사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역사 상식’을 뒤집거나 엉뚱하게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뭣도 잘 모르는 채 이대로 배워야 합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성적을 좋게 받으려면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치는 대로 달달 외워야 하거든요.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테러방지법이 불거질 뿐 아니라, 역사 교과서를 정치권력이 함부로 손을 대려고 합니다. ‘상식 아닌 상식’을 아이들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상식 아닌 상식을 상식으로 여기면서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면, 앞으로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무렵, 한국은 일본 못지않게 군국주의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지난날 군사독재 정권이 했듯이 ‘독재 미화’와 ‘군사 영웅’을 드높일 뿐 아니라 ‘여성은 현모양처’라는 그림을 퍼뜨리겠지요. 요즈음은 아기를 여럿 낳으면 ‘애국’이라고까지 말하는 일이 마치 ‘상식’이 되는 마당입니다.


  아이는 사랑을 받아 태어나야 하고, 아이는 어른이 슬기롭게 삶을 짓는 이야기를 기쁨으로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은 스스로 어른답게 살림을 아름답게 지으면서,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 입맛에 따라 뒤바꾼 ‘상식 아닌 상식’이 아니라, 사랑을 담은 이야기를 가꾸어서 나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정치권력이 역사를 건드리더라도 속내를 꿰뚫어보는 눈길을 가꿀 노릇이요, 정치권력이 역사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우리 삶과 살림을 지킬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3.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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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곰처럼 살기로 했다 - 짧은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시간 관리 기술
로타르 J. 자이베르트 지음, 배정희 옮김 / 이숲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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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36



겨울잠을 자면서 아름다움을 꿈꾸는 곰

― 나는 곰처럼 살기로 했다

 로타르 J. 자이베르트 글

 배정희 옮김

 이숲 펴냄, 2016.2.29. 13000원



    새롭게 찾아온 봄입니다. 이 새봄에 들꽃을 바라보면 더없이 환하면서 맑은 빛깔이 몹시 사랑스럽습니다. 봄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이 봄꽃처럼 살고 싶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봄꽃이 피는 밭둑이나 풀숲 곁에는 새봄을 기다리는 나무가 꽃봉오리를 터뜨리려고 합니다. 모과나무는 잎눈이 부풀고, 매화나무는 꽃눈이 부풉니다. 동백나무는 도톰한 꽃봉오리가 곧 눈부시게 터질 듯해요. 봄나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이 봄나처럼 꿈을 펴고 싶구나’ 하는 생각으로 넘실거립니다.



곰은 조용하고, 여유롭고, 정신과 육체의 긴장을 완전히 푸는 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빙판 위에서 몸을 쭉 펴고 배를 드러낸 채 평화롭게 누워 햇볕을 쬐는 흰곰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9쪽)



  로타르 J. 자이베르트 님이 쓴 《나는 곰처럼 살기로 했다》(이숲,2016)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곰처럼 짓는 삶’도 무척 재미있으면서 알차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 책을 쓴 분은 곰을 왜 좋아하는가 하는 대목을 짤막하게 밝히면서 글머리를 열어요.


  글쓴이는 이윽고 온갖 숲짐승 살림살이를 넌지시 비추면서 숲짐승마다 어느 대목에서 스스로 살림을 즐겁게 가꾸지 못하는가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이러면서 온갖 숲짐승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한테 찾아가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묻지요. 겨울잠을 달게 자고 일어난 곰은 숲짐승한테 웃음 어린 목소리로 말합니다. 숲짐승은 곰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어요.



“자기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그걸 분명히 안다면 행복하고 보람찬 삶으로 가는 첫걸음을 이미 내디딘 거나 다름없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사흘 동안 자면서 꿈속에서 바랐던 것, 그걸 정확하게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48∼49쪽)



  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말은 우리더러 ‘나비처럼 꿈꾸라’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오래도록 잎을 갉아먹는 토실토실한 목숨으로 살다가 어느 날 ‘잎 먹기’를 멈추고는 번데기를 틀어서 다시 오래도록 깊은 잠에 빠져요. 그리고 이때에 ‘아름답게 새로 깨어날 꿈’을 꾸지요. 새로운 몸이 되어 하늘을 날아오를 꿈을 꾸면서 애벌레 몸을 녹여 없애고는 눈부신 날개를 다는 나비가 되듯이, 우리도 밤에 고요히 잠들면서 이튿날 새롭게 지을 삶을 꿈꿀 노릇이라고 할까요.



“생각해 보니 저한테는 거의 매일 밤 일어나는 일이군요. 어떤 동물은 저를 붙들고 자기가 조금만 노력하면 스스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어리석은 질문도 마구 해대거든요.” (75쪽)



  나는 늘 ‘나처럼’ 살 노릇입니다. 다만, 곰이 들려주는 슬기로운 생각을 귀여겨들으면서 참으로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살림을 짓는 꿈을 마음에 담으려 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새봄에 기쁘게 깨어나서 신나게 삶을 지으려고 하는 곰처럼, 나도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서 늘 새 하루를 맞이하려 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우리는 날마다 새 몸이 된다고 할 수 있어요. 한 시간을 자든 세 시간을 자든, 다섯 시간을 자든 일곱 시간을 자든, 이 잠을 기쁘게 맞이해서 즐겁게 누리면서 새로운 마음이 된다고 할 만해요. 오늘 아쉬웠던 대목은 오늘 고이 내려놓고 잠듭니다. 이튿날 짓고 싶은 살림을 밤새 꿈속에서 차근차근 생각으로 가다듬으면서 아침을 맞이하지요.



“그 격언은 나도 알아! 매일 그날을 생애 마지막 날처럼 살아라!” 첫째의 말을 듣고 있던 둘째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린 다섯째도 끼어들었습니다. “매일 그날이 아주 특별한 날인 것처럼 살아라!” (159쪽)



  《나는 곰처럼 살기로 했다》라는 책에 나오는 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누구나 익히 아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참말 누구나 익히 알되 마음속 깊이 아로새기지 못한 이야기일 수 있어요. 그야말로 누구나 익히 알기는 하더라도 몸으로 제대로 옮기지 못한 이야기라고 할 만해요.


  오늘 하루가 나한테 오직 하나뿐인 남다른 날인 줄 안다면, 우리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요? 오늘 하루는 두 번 다시 찾아올 수 없는 남다른 날인 줄 뼛속 깊이 안다면, 오늘 일을 모레로 미룬다거나 어제 일을 자꾸 아쉽게 여기는 몸짓은 안 보여줄 수 있겠지요?


  오늘 하루를 ‘내 삶에서 마지막인 날’처럼 여기면서 누린 뒤에 고이 잠듭니다. 아침에는 또 새롭게 ‘내 삶에서 마지막인 날’을 맞이하지요.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하루를 맞이하면서 살림을 짓는다면, 우리는 저마다 어느새 ‘우리가 품은 꿈’으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셈이라고 느껴요.



“다음 밤에 먼저 해결할 가능성이 가장 큰 일을 그 전날에 결정하세요. 가장 좋은 방법은 글로 써서 확정해 두는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반드시 그 일정을 지켜야겠죠. 그러면 스트레스가 없어요!” (103쪽)



  나는 나비처럼 살 수 있습니다. 나는 곰처럼 살 수 있습니다. 나는 토끼나 소나 사슴처럼 살 수 있습니다. 나는 꽃이나 풀이나 나무처럼 살 수 있습니다. 나는 해나 바람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나답게 살 수 있어요.


  즐거운 하루를 누리면서 웃습니다. 기쁜 하루를 지으면서 노래해요.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아름다운 삶이요 살림이며 사랑입니다. 2016.3.4.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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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게 가난한 사회 - 이계삼 칼럼집
이계삼 지음 / 한티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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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34



어깨동무하는 평화를 꿈꾸는 아저씨

― 고르게 가난한 사회

 이계삼 글

 한티재 펴냄, 2016.2.15. 15000원



여전히 나는 꿈을 꾼다. 오래된 미래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어떤 그림을. 고르게 가난한 나라, 그 가난이 가져다줄 삶의 평화. 그 평화의 정경을. (28쪽)



  이계삼 님이 신문과 잡지에 쓴 글을 엮어서 빚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한티재,2016)를 읽습니다. 이계삼 님은 한때 국어 교사였고, 한동안 밀양송전탑과 얽힌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녹색당에 몸을 바치면서 지낸다고 합니다. 밀양에서 나고 자란 뒤에 도시로 나가서 학교를 다녔고,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교사 일을 열한 해 만에 씩씩하게 그만두었고, 고향 밀양에서 시골마을 할매랑 할배하고 이웃으로 지냈다고 해요.


  이계삼 님은 어릴 적에 송전탑이나 전봇대가 무엇인지 알았을까요? 아마 몰랐겠지요. 이계삼 님은 어릴 적에 핵발전소나 거대자본을 알았을까요? 아마 몰랐을 테지요. 그렇지만 이계삼 님은 나이가 드는 동안 차츰 하나씩 알아차립니다. 스스로 알려고 하면서 하나씩 배워요. 사회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몸으로 부딪히면서 깨닫습니다. 정치나 경제가 굴러가는 얼거리를 몸으로 부대끼면서 알아차립니다.



송주법은 송전선로 갈등을 ‘얼마 되지 않는 쥐꼬리 보상’으로 틀어막으려고, 그러니까 주민들이 입을 피해를 덜어 주거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송전선로를 더 쉽고 원활하게 깔려고 만들어진, 철저히 한전과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입안된 것이다. (41쪽)



  《고르게 가난한 사회》는 이계삼 님이 몸으로 부딪히면서 깨달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수수한 국어 교사였던 사람이 왜 교사라는 자리를 씩씩하게 그만두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수수한 밀양 아저씨 한 사람이 왜 송전탑을 반대하는 싸움에 뛰어들어서 온몸을 바쳤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수수하고 작은 사람이 왜 녹색당이라고 하는 정치운동에 한몸을 맡기려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라는 이야기책에서는 경제발전을 다루지 않습니다. 이 책은 진보나 사상이나 철학을 밝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을 텐데 왜 이 길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길이 되는가 하는 대목을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돈 앞에 무릎을 꿇고야 마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보는 이야기를 적어요. 크거나 대단한 것이 아닌 평화와 사랑으로 짓는 살림살이를 꿈꾼다고 하는 이야기를 펼쳐요.



또래 아이들보다 가난했고, 밤낮없이 이어지는 부모님의 고된 노동을 지켜보면서 자랐지만, 그 시절이 행복했던 것은 아마도 내가 낙동강 지류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강변 마을에서 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2쪽)


학교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을 농민으로 길러내는 것은 지금 현실 속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교육 학교의 일부를 농업계로 전환하는 것도, 학교 교육과정 속에 농적 요소를 결부시키는 것조차 지금은 불가능해 보인다. (69쪽)



  어느 모로 본다면, 평화야말로 큰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곰곰이 따진다면, 사랑이야말로 커다란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차근차근 돌아보면, 꿈이야말로 삶을 살찌우는 가장 크나큰 이야기라 할 테지요.


  국가보안법이나 테러방지법을 외치는 정치는 평화하고 얼마나 가까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경제발전을 외치면서 온 나라 냇물하고 멧자락을 파헤치거나 까뒤집는 삽질은 사랑하고 얼마나 가까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입시지옥과 학벌을 없애지 않는 교육정책은 꿈하고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 있는가 하고 곱씹어 봅니다.


  시골 교사로 일하다가, 밀양송전탑을 반대하는 일을 하다가, 녹색당 일을 하는 이계삼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평화’로 나아가자는 이야기이고, ‘사랑’을 나누자는 이야기이며, ‘꿈’을 키우자는 이야기입니다. 평화 아닌 길로는 가지 말자는 이야기이고, 사랑하고 어긋난 자리에 서지 말자는 이야기이며, 꿈을 짓밟는 무리하고 손을 잡자는 이야기예요.



공부를 잘하면 한수원 직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자기보다 공부 못했던 하청 직원에게 피폭 노동을 맡길 수 있다. (95쪽)


할머니들이 한 젓가락 드시려고 마스크를 내리니, 옳거니 싶어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현장 직원이 있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단다, 이놈들아” 하며 소리치던 할머니들, 머쓱해 하는 직원이 보기 안 됐는지, “이리 와서 같이 짜장면 죽자”고 하셨단다. (154쪽)



  조촐한 이야기책 《고르게 가난한 사회》는 참말 이 이름 그대로 “고르게 가난한” 삶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고르게 가난한” 삶터가 되기를 바란다는 꿈은, 굶자는 뜻이 아닙니다. 혼자 차지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어깨동무를 하자는 뜻입니다. 서로 나누는 기쁨을 누리자는 뜻입니다. “고르게 평화롭자”는 뜻이고, “고르게 아름답자”는 뜻이리라 느껴요. 이 땅에서 한솥밥을 먹는 우리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즐겁게 열자는 뜻이리라 생각합니다.


  ‘공부 못한’ 학생이었기에 ‘하청 직원으로서 피폭 노동’을 도맡아야 하지 않거든요. ‘공부 잘한’ 학생이었기에 ‘한수원 직원으로서 방사능 안 쐬는 사무직’을 도맡아야 하지 않아요. 공부를 못하거나 잘하거나 아름다운 일자리를 함께 누려야 하고, 학벌이나 재산을 모두 내려놓고 즐거운 꿈과 기쁜 사랑을 두 손으로 쥘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운 나라가 되리라 생각해요.

  


기본소득론은 예수님이 원조이다. 일거리가 없어 놀다가 저물녘 맨 나중에 온 일꾼에게도 먼저 와서 일한 자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다는 포도원 주인 비유야말로 기본소득론의 핵심적인 논리를 꿰뚫고 있다. (225쪽)


이명박 정부는 강을 결딴냈다. 22조 원을 쏟아부은 4대강 본류는 지금 녹조 범벅이고, 물고기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곁으로 큰빗이끼벌레가 유유히 헤엄치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되어 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산을 결딴내고 있다. 빗장이 풀린 산지개발허가는 전국 곳곳에 대규모 개발사업을 일으키고 있다. (295쪽)



  어깨동무하는 평화를 꿈꾸는 아저씨 이계삼 님이 내딛는 발걸음은 조그맣습니다. 이제 막 한 걸음을 내딛는다고 할 만합니다. 어릴 적에 누린 아름다운 낙동강을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자라는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꿈이란 무척 수수하면서 예쁘다고 할 만합니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에서 이계삼 님이 목청 높여 외치듯이, 어느 대통령 한 분은 이 나라 물줄기를 결딴냈고, 어느 대통령 한 분은 이 나라 멧자락을 결딴내는 길을 걷습니다. 어쩌면 두 분 대통령은 “고르게 가난한” 삶터를 누린 적이 없기 때문에 슬픈 몸짓으로 물줄기와 멧자락을 결딴내는 정책을 밀어붙이는구나 싶기도 해요.


  평화가 평화를 낳고 사랑이 사랑을 낳습니다. 꿈이 꿈을 낳고 웃음이 웃음을 낳아요. 이리하여 국가보안법은 군사독재나 테러방지법을 낳는구나 싶습니다. 전쟁무기는 새로운 전쟁무기로 이어지고, 서슬퍼런 공권력은 새로운 공권력으로 이어질 테지요. 부디 이 나라에 따스한 평화와 아름다운 사랑과 푸른 꿈이 깃들 수 있기를 빌어요. 평화를 꿈꾸는 아저씨 이계삼 님도, 대통령이나 기업가도, 공무원이나 회사원도, 수수한 어버이도, 그리고 앞으로 이 땅을 가꿀 맑고 밝은 어린이도,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삶이 아니라 “고르게 넉넉한” 삶과 “고르게 즐거운” 삶이 되는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빌어요. 이 꿈길은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 아니 우리가 꼭 이루리라 생각힙니다. 2016.2.2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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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히로시마
존 허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책과함께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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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46



늘 ‘민간인’을 죽이는 전쟁 불구덩이

― 1945 히로시마

 존 허시 글

 김영희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5.8.6. 11000원



  1914년에 중국에서 태어난 존 허시 님은 열 살 무렵 미국으로 건너가서 살다가, 전쟁이 지구별을 휩쓸 무렵 종군기자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한 해가 지날 무렵,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에서 살아남은 여섯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썼고, 이 이야기는 1946년에 처음 책으로 나옵니다.


  존 허시 님은 그 뒤 마흔 해가 지나서 “40년 후” 이야기를 보탭니다.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지고 난 뒤에 살아남은 여섯 사람이 지난 마흔 해 동안 어떤 살림을 꾸렸는가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책 하나로 새로 묶였어요. 《1945년 히로시마》(책과함께,2015)는 바로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폭격기들이 지나가자마자 나카무라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2시 30분이 조금 지나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곧장 라디오부터 켰다. 그런데 다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게 아닌가. 순간 짜증이 몰려왔다. 아이들을 쳐다봤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동부 연병장까지 도대체 얼마나 왔다갔다했던가. (24쪽)


그는 양말만 신은 채로 여기저기 끌려다녔고, 밀려드는 환자에 아연실색했으며, 끔찍할 정도로 드러난 생살에 자지러졌다. 결국 그는 의사로서의 직업의식을 완전히 잃었다. 능숙한 외과의사로서, 환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인간으로서 진료할 수가 없었다. 대신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닦고 바르고 감고, 닦고 바르고 감기만을 반복했다. (54쪽)



  《1945년 히로시마》라는 책은 ‘일본 원폭 생존자’ 여섯 사람을 눈여겨봅니다. 이 생존자 여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서양 신부입니다. 일본에 서양 종교를 퍼뜨리려고 들어온 사람이지요. 이 한 사람을 뺀 다섯 사람은 일본사람이고, 군인이 아닌 민간인입니다. 《1945년 히로시마》는 전쟁 불구덩이에서 ‘민간인’은 어떻게 전쟁을 맞닥뜨려야 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이지만, 군인이 아닌 민간인은 어떤 살림이고 삶이었는가 하는 대목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적에 틀림없이 일본사람이 가장 많이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사람도 무척 많이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가서 강제노동을 해야 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원자폭탄이 터진 뒤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식민지 강제징용 노동자’는 고향나라로 돌아온 뒤에 모질게 앓습니다. ‘원폭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지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죽고, 나중에 원폭병인 줄 알아도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 모두 등을 돌렸기에 그대로 죽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뿐 아니라 ‘일본인 원폭 피해자’도 오랫동안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전쟁 미치광이’가 된 사람들도 있었고 ‘전쟁터에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으며 ‘천황 폐하한테 충성’하겠노라 다짐한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전쟁이란 까맣게 모르면서 조용히 살던’ 사람들도 있었어요. 원자폭탄은 이 모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였고, 전쟁을 일으킨 정치권력은 ‘죽은 사람’하고 ‘살아남은 사람’ 앞에 고개 숙여 뉘우치는 몸짓이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사사키 양도 마찬가지 처지였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 한 명 없이 공장 앞마당에 대충 임시방편으로 만든 지붕 아닌 지붕 아래 버려졌다 … 부러진 다리 때문에 무시무시한 고통에 시달리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90쪽)


사사키 양은 두 동생을 그 고아원에 맡겼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자신도 그 고아원의 보모 자리를 지원했다. 그녀는 그곳에 채용되었고, 그 후 야스오와 야에코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을 삶의 위안으로 삼았다. (204쪽)



  불구덩이에서 죽어야 했던 이들은 ‘민간인’입니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는 전쟁터가 아니라 ‘민간인 마을’이었으니까요. 군수공장이 이런 도시에 있었다 하더라도,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민간인’이지요. 또 한국·중국·대만에서 끌려온 ‘강제징용 노동자’이고요.


  더 헤아리면, 전쟁터에 나가서 총을 들어야 하는 이들도 ‘민간인’입니다. 몇몇 간부나 장교쯤이라면 직업군인일 테지만, 전쟁터에서 총알받이가 되어서 죽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민간인입니다. 더군다나 직업군인 사내를 낳은 어버이도 거의 모두 민간인이요, 군대에서 간부나 장교인 사람들 식구까지도 모두 민간인이라고 할 만해요.


  ‘사내’로 태어났기 때문에 ‘나라(전쟁을 일으키는 정치권력)’가 이들 민간인을 군대로 끌고 갑니다. 그동안 평화롭게 살던 민간인은 정치권력이 등을 미는 대로 총을 손에 쥐고서 ‘다른 민간인(이웃나라 사람)’을 죽이는 몫을 맡습니다. 다른 민간인도 군인이 되어야 하는데, 이들이 총을 겨누는 적군(우리한테 쳐들어온 이웃나라 군인)이란 똑같이 ‘민간인’일 수밖에 없어요.


  정치권력은 권좌에 앉아서 민간인을 이리저리 휘두릅니다. 민간인인 여느 사람들은 난데없이 총을 손에 쥐고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서로 죽이지 않으면 서로 죽으니, 너도 죽고 나도 죽는 끔찍한 불구덩이가 됩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도 불구덩이요, 원자폭탄이 떨어지지 않은 수많은 전쟁터도 똑같이 불구덩이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을 겪은 사람들을 지칭할 때, 일본인들은 ‘생존자’라는 단어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살아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이 단어는 숭고한 죽음을 맞은 자들을 다소 경시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나카무라 부인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할 때 ‘피폭자’라는 다소 중립적인 단어가 사용되었다 … 일본 정부는, 승전국인 미국이 저지른 극악무도한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 등을 비롯하여 그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160쪽)



  존 허시 님이 쓴 《1945년 히로시마》에 나오는 여섯 사람 가운데 이 ‘끔찍하고 모진 전쟁 불구덩이’를 제대로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생각하는 사람은 딱 하나입니다. 원자폭탄이 처음 떨어지던 때에 한쪽 다리를 크게 다쳐서 걷지 못한 채 비를 쫄딱 맞으면서 며칠 동안 굶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사키’라는 여학생입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그무렵에는 여학생이었으나, 이 불구덩이에서 다리를 다쳐서 절름발이가 된 뒤에는 어버이를 잃은 외톨이로 바뀝니다. 어린 두 동생을 절름발이인 몸으로 돌봐야 하는 외톨이예요.


  나는 《1945년 히로시마》를 읽으면서 다른 다섯 사람보다 이 한 사람을 눈여겨봅니다. 다른 다섯 사람 이야기도 안쓰럽다고 할 만하지만, 다른 다섯 사람은 ‘안쓰러운 아픔’을 겪고 난 뒤에 ‘전쟁하고 등을 지거나 전쟁을 깡그리 잊은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오직 사사키라는 여학생은 ‘전쟁을 늘 껴안으면서 이 전쟁이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를 깊이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여학생 사사키는 외톨이가 되었다가, 두 동생을 고아원에 맡긴 뒤, 이녁 스스로도 고아원으로 들어가서 돌봄이(보모) 일을 합니다. 오랫동안 돌봄이 일을 하다가 동생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잘 사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 수녀원에 조용히 들어갑니다. 수녀가 된 뒤에는 요양원 일을 하면서 한삶을 보내는데, 이녁은 늘 ‘아프고 외로운 이’ 곁에서 벗님 자리를 지켜요.



사사키 양은 아기 엄마들이 불쌍했다. 아기 엄마 중에는 매춘부도 있었다. 또 아기 아빠도 불쌍했다. 아기 아빠들은 열아홉 혹은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미국) 청년들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과 무관해 보이는 전쟁에 징집되어 온 처지였고, 아기 아빠로서의 책임감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 즉 죄책감 정도에 불과했다 … 경미하게 부상을 당한 피폭자와 권력에 굶주린 정치인들이 주로 원자폭탄을 들먹였다.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전쟁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희생시킨다는 사실인데 말이다. 전쟁은 원자폭탄과 소이탄 투하로 일본인들을 희생시켰고, 일본에게 침략당한 중국의 민간인들을 희생시켰으며, 죽을 수도 있고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전쟁에 마지못해 끌려나온 어린 일본인 병사와 미국인 병사들을 희생시켰다. 그리고 또 일본인 매춘부와 그들이 낳은 혼혈아들도 희생시켰다. (206∼207쪽)



  전쟁무기가 있으니 전쟁을 벌입니다. 전쟁무기는 평화가 아닌 전쟁을 벌이려고 마련하는 무기입니다. 그런데 정치권력을 손에 쥔 이들은 자꾸 전쟁무기를 만들려 합니다. 전쟁무기는 나날이 최첨단을 걷습니다. 최첨단 전쟁무기를 만드는 데 들어갈 돈은 어마어마합니다. 우리는 언뜻 ‘평화 지키기’ 때문에 전쟁무기를 갖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모든 전쟁무기는 전쟁을 하려는 뜻으로 만듭니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무기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전쟁무기는 없습니다. ‘방어하는 전쟁무기’란 없다는 뜻이에요. 모든 전쟁무기는 ‘공격해서 죽이려’고 만들어요.


  더욱이 《1945년 히로시마》를 읽으면, ‘불쌍한 아기 엄마’와 ‘불쌍한 아기’와 ‘불쌍한 아기 아빠’를 바라보는 사사키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녁이 고아원에서 일하는 동안 마주하는 ‘세 가지 불쌍한 사람’은 모두 전쟁 때문에 나타납니다. 전쟁 때문에 한쪽에서는 가시내가 ‘성 노리개’가 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사내가 ‘전쟁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면서 성욕 풀이’를 하는 바보가 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는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외톨이가 됩니다.


  전쟁은 얼마나 미친 짓일까요. 전쟁무기는 얼마나 끔찍한 것일까요. 전쟁무기 가운데 원자폭탄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일까요.


  히로시마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기 앞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였다고 합니다. 히로시마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뒤 군수공장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잿더미 도시가 되는데, 잿더미를 치워서 새롭게 일으켜세울 적에 유흥도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전쟁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오니 이 문명 사회가 걷는 길은 ‘유흥도시’인가 싶어 아찔합니다.



원폭 투하 이후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히로시마는 일본 전역에서 가장 현란한 유흥도시로 탈바꿈했다. (218쪽)



  《1945년 히로시마》 첫머리를 보면 하승수 님이 추천글을 씁니다. 이 추천글에서 김형률이라는 분 이야기를 밝혀요. ‘원폭 피해’를 받은 사람이 낳은 아이는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짤막하게 적습니다.


  1946년에 처음 선보인 책을 1986년에 보탤 적에 존 허시 님은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알 수 있었을까요, 알기 어려웠을까요? 아마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1980년대 첫무렵에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미국사람이 찾아내어 만나기란 몹시 어려웠을 테고, 이를 다룬 자료도 찾기가 매우 어려웠겠지요.


  그러나 한국에서도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돌아보고 살피며 도우려고 한 손길이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아니고, ‘한국 민간인’이 원폭피해자를 이웃으로 바라보았어요. 1975년에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창원사)라는 책이 처음으로 나왔고, 이 책을 쓴 박수복 님은 열 해 뒤에 《핵의 아이들》(한국기독교가정생활사)을 선보이면서, 그동안 한국인 원폭피해자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살핍니다. 이밖에 《한국인 원폭피해자(실태조사보고서)》(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1984년에 나왔어요. 한국교회여성연합회와 사회사진연구소는 1989년에 《그날 이후》(한국교회여성연합회)라는 사진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아픈 이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쟁 불구덩이도, 원자폭탄 불구덩이도 이 지구별에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2.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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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화학자 - 화학과 요리가 만나는 기발하고 맛있는 과학책
라파엘 오몽.티에리 막스 지음, 김성희 옮김 / 더숲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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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31



‘쓴맛’도 맛있다고 배우는 부엌살림

― 부엌의 화학자

 라파엘 오몽 글

 김성희 옮김

 더숲 펴냄, 2016.1.27. 13000원



  만화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면, 활활 타오르는 불에 부침판을 올려서 베이컨하고 달걀을 굽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때에 하울은 기름을 두르지 않고 달걀을 부쳐요.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이 대목을 지나쳤습니다. 나중에 집에서 베이컨을 처음으로 부침판에 올려서 구워 보고 나서야 이 대목이 다시 보였어요.


  아이들하고 만화영화를 다시 보다가 베이컨 굽기를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예전에는 이 대목을 그러려니 하고 지나친 까닭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베이컨은 부침판에 바로 얹어서 불을 올리면 기름을 따로 두르지 않아도 ‘베이컨에서 나오는 기름’이 워낙 많기 때문에 베이컨을 자글자글 구우면서 달걀을 손쉽게 익힐 수 있어요. 더욱이 베이컨은 처음부터 부침판에 얹어도 들러붙지 않습니다. 달걀에 베이컨 냄새가 두루 배면서 남다르다 싶은 맛이 되기도 해요.


  그러니까 세겹살을 구우면서 나오는 기름으로도 달걀을 부칠 수 있겠지요. 고깃집에서는 세겹살을 구우면서 나오는 기름으로 김치를 폭 절여서 먹기도 합니다.




분자요리의 관점에서 밀가루는 더 이상 비스킷에 꼭 필요한 재료가 아니며, 달걀이 없어도 수플레를 만들 수 없고, 베이킹파우더 없이 케이크를 부풀릴 수 있으며, (13쪽)


요리사는 어떻게 라즈베리로 구름 같은 요리를 만들게 되었을까? 이것이 진짜 중요한 질문이다! 어떻게 요리로 사람들을 그토록 감동시킬 생각을 했을까? (24쪽)



  라파엘 오몽 님이 쓴 《부엌의 화학자》(더숲,2016)를 가만히 읽습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서 과학을 돌아본다는 화학자 이야기가 흐릅니다. 부엌에서 밥을 짓는 손길마다 곳곳에 화학 이야기가 깃든다고 하는 대목을 밝혀 줍니다. 분자식이나 분자원리를 잘 모르던 먼 옛날 사람도 동양이든 서양이든 ‘분자요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처음에는 ‘그럴 수 있겠네’ 싶다가, 책을 읽는 내내 ‘참으로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러면서 ‘오늘 우리가 누리는 온갖 밥짓기’를 처음으로 깨닫거나 알아차린 사람들 살림살이를 그려 봅니다.


  아마 처음에는 ‘실패’나 ‘잘못’이라고 여겼을 수 있는데, 때때로 실패하거나 잘못을 해 보면서 새로운 밥짓기를 알아내요. 처음부터 삭혀서 먹거나 말려서 먹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처음에는 그때그때 땅에서 훑어서 먹었겠지요. 열매나 곡식이나 풀을 말리는 손길도 나중에야 알았겠지요. 말린 것을 물이 불리거나 불에 익혀서 먹는 손길을 처음부터 알지는 못했으리라 느껴요.



우리 연구에 따르면 달걀흰자는 62℃에서 응고하고, 노른자는 68℃에서 응고한다 … 제일 중요한 결론은 달걀을 100℃에서 익히지 말라는 것이다! 이 경우 응고가 지나치게 많이 진행되고, 그 결과 단백질의 그물 구조가 너무 촘촘해진다. (67∼68쪽)


물리화확자는 스테이크를 굽는 기술에서 ‘온도 기울기’에 주목한다. 스테이크의 겉과 속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적인 온도 변화를 두고 하는 얘기다. (77쪽)




  한국에서 김치를 담근다거나, 서양에서 치즈를 빚는다거나, 한국에서 소금에 절인 물고리를 먹는다거나, 서양에서 잼을 졸인다고 하는 밥짓기도, 맨 처음부터 이렇게 먹을 줄 알았기 때문에 먹지는 않았으리라 느껴요. 그렇다고 그 옛날에 화학방정식이나 분자식을 알았기에 이렇게 손질을 하거나 다뤄서 먹지는 않았을 테고요.


  그야말로 처음에는 수없이 실패하고, 수없이 버리다가, 문득 이러한 맛도 재미있거나 새롭거나 좋기도 하다고 알아차렸으리라 봅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여러 가지 밥짓기를 ‘분자요리’라는 이름으로 낱낱이 파헤치면서 새로운 밥짓기를 헤아릴 수 있을 테고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수없이 깨지고 까지면서 배워요. 아이들은 유리잔이나 접시를 들고 나르다가 그만 미끄러뜨려서 깨뜨리지요. 아이들은 한손으로도 얼마든지 잘 들거나 나를 수 있다고 뽐내다가 그만 잘못을 저지르는 셈인데, 이렇게 깨뜨리면서 하나씩 배워요. 신나게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면서 ‘왜 넘어졌지?’ 하고 돌아보면서 배워요. 이모저모 여느 틀대로 밥짓기를 하다가 뭔가 어긋나서 잘 안 되면, ‘왜 맛이 이렇지?’ 하고 돌아보다가 새로운 밥짓기를 익히기도 해요.



예전에 할머니들은 삼투 현상이나 수소이온농도 지수가 무엇인지 몰라도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냈다. 경험을 통해 직관적인 방식으로 그 요소들을 다룰 줄 알았던 것이다. (128쪽)


초콜릿 무스의 질감은 다른 지방성 재료와 액체 재료를 가지고도 만들 수 있다. 그 질감의 비밀은 지방질과 액체, 공기를 혼합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화학자의 시각에서는 물과 유사한 물질에 해당하는 화이트와인과 푸아그라나 치즈만 있으면 화이트와인 푸아그라 무스나 화이트와인 치즈 무스를 만들 수 있다. (198쪽)



  그나저나 《부엌의 화학자》에서 다루는 ‘분자요리’는 모두 서양요리입니다. 다만, 요새는 서양요리나 한국요리 사이에 울타리가 아주 얕아요. 아니, 울타리가 없다고 할 만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분자요리를 오늘날에는 누구나 재미있게 해 볼 만하리라 생각해요. 그래도 책끝에 ‘한국요리를 분자요리 얼거리로 돌아보기’를 놓고 몇 쪽쯤으로 붙이면 어떠했을까 싶어요. 이를테면 김치는 왜 분자요리일는지 살필 만하고, 젓갈이나 된장도 재미난 분자요리라는 대목으로 살필 수 있어요.


  콩 하나로 콩밥을 짓기도 하지만, 두부도 빚고, 된장이나 간장도 나와요. 국이나 찌개를 끓일 적에는 분자 얼거리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엿볼 수 있을 테지요. 《부엌의 화학자》에서는 국이나 찌개 같은 밥짓기는 다루지 않으니, 한국사람이 흔히 먹는 밥을 놓고는 좀처럼 분자요리로 마주보기는 수월하지 않아요.


  오늘 아침도 밥상을 기쁘게 차리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엊저녁에 먹고 남긴 밥을 알맞게 데울 온도를 헤아리고, 어느 만큼 데워야 맛나게 먹을 만한가를 살핍니다. 몇 초를 덜 데우면 찬 기운이 그대로 남고, 몇 초를 더 데우면 외려 굳거나 눌러붙습니다. 불을 어떻게 올려서 어느 만큼 손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밥맛이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분자요리라는 틀로 바라보노라면, 나도 우리 집에서 ‘밥아비’이면서 ‘부엌 화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쓴맛을 보면서 이 쓴맛으로 밥살림을 새롭게 배우는 아침저녁입니다. 2016.2.1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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