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생 실험실 - 소비자로 살기를 멈추고 스스로 만들며 살아가기
웬디 제하나라 트레메인 지음, 황근하 옮김 / 샨티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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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7



날씨도 못 읽던 사람들이 살림을 새로 짓다

― 좋은 인생 실험실

 웬디 제하나라 트레메인 글

 황근하 옮김

 샨티 펴냄, 2016.6.10. 18000원



  아침에 일어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요즈음 사회에서는 아침 일찍 일터로 가는 사람이 가장 많으리라 느끼는데,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잠자리부터 여미고, 손낯을 씻으며, 아침밥을 어떻게 차릴까 하고 생각합니다. 마당으로 내려서서 밤새 아이들이 오줌그릇에 눈 오줌을 비우고, 마당밭이랑 뒷밭을 돌아보며, 우리 집 나무한테 간밤에 잘 잤느냐고 속삭입니다.


  볕을 살펴서 파란 물병에 물을 담아서 내놓습니다. 모처럼 빗줄기가 그쳤으니 옷장에서 두꺼운 이불을 꺼내어 볕바라기를 시킵니다. 여름 내내 안 덮더라도 틈틈이 볕을 쐬어 줍니다. 재잘재잘 노래하는 아이들하고 나무꽃도 옥수수꽃도 함께 바라보다가 하루를 여는 공부를 하고, 나는 내 나름대로 내가 맡은 다른 일을 찬찬히 붙잡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을 우리가 직접 만드는 대신 거의 사서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을 살지 결정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산 것과 똑같은 것을 사거나 광고에 귀를 기울였다. (59쪽)


손으로 만드는 물건에는 남다른 값어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기억과 경험, 지나온 삶에 대한 추억거리가 담긴 물건이라는 것이다. 얼굴 없는 컴퓨터와 산업 기계가 만든 상품에 사람들이 소중히 여길 만한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70쪽)



  내 하루는 즐거운 삶이 될 수 있을까요? 내 하루는 괴로운 삶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하루는 어느 쪽으로든 얼마든지 흐를 만하리라 느낍니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에 즐거운 삶이 될 수 있고, 또는 괴로운 삶이 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어제하고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제하고 다른 마음’이라면, 어제에는 괴로웠어도 오늘은 즐거울 만합니다. 그리고 이와 거꾸로 ‘어제하고 다른 마음’이기에, 어제에는 즐거웠어도 오늘은 괴로울 만해요.


  날마다 똑같은 일터에 오가야 하는 삶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늘 달라지지 싶어요. 부산스럽거나 바쁘게 아침을 연다면 일터로 오가는 길에 이 부산스러움하고 바쁜 숨결을 그대로 이어서 괴롭거나 힘들 수 있어요. 차분하면서 고요하게 아침을 연다면 일터로 오가는 길에 차분하면서 고요한 몸짓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일으킬 테고요.



하늘을 보고 날씨 변화의 조짐을 읽는 법이라든지, 성냥 없이 불을 지피는 법, 식물을 키우는 법 같은 지식은 지금껏 접해 본 적이 없었다. (88쪽)


정규 교육을 받으면서 내가 뭔가 빠졌다고 느꼈던 것은 바로 나와 인류 사이의 연결성, 나와 생명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 같은 본질적인 지식이었다. (223쪽)



  웬디 제하나라 트레메인 님이 쓴 《좋은 인생 실험실》(샨티,2016)을 읽어 봅니다. 이 책을 쓴 젊은 두 사람은 미국에서 도시 한복판을 떠나 두멧자락에서 ‘삶을 손수 짓기’로 누려 보자는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똑같이 ‘미국에서’ 이처럼 도시를 떠나 두멧자락에서 수수한 삶을 손수 지으려 했던 이들이 있었지요. 이를테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이 니어링 부부가 있어요. 이들은 어수선하거나 어지러운 도시에서 늘 똑같은 하루가 흐르는 모습이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여겼어요. 스스로 도시를 떠났고 스스로 시골에 깃들었으며 스스로 모든 살림을 지었어요.


  스스로 모든 살림을 손수 짓는다고 할 적에는 ‘돈을 벌’지 않습니다. ‘살림을 짓’습니다. 살림을 스스로 짓기에 굳이 ‘돈을 벌어서 이 돈으로 살림을 장만해’야 하지 않아요. 돈을 버는 살림이 되면 ‘내가 벌어들인 돈으로 살림을 장만해야 하는 흐름’이 되지요.


  《좋은 인생 실험실》을 쓰기까지 퍽 오랫동안 미국 두멧자락에서 ‘손수 살림을 짓자’는 마음으로 살던 두 사람은 ‘빈틈없는 자급자족’까지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즐겁게 이루는 살림’이 되는 길을 걸으려 했다고 합니다.



해 보지도 않고 “나는 못해” 하던 마음가짐을 어떻게든 해나가면서 계속 뛰어넘었다. 우리는 실수를 했고, 그래서 더 좋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괜찮은 것들을 계속 만들었다. (121쪽)


지식은 머리만으론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식은 가슴을 통해서 얻는 것이며, 또 지혜의 원천인 생명에 다시 연결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227쪽)



  《좋은 인생 실험실》을 쓴 두 사람은 수수하게 털어놓습니다. 이제껏 기나긴 해를 들여 학교를 다녔지만 ‘살림짓기’를 배운 적이 없다고 해요. 학교를 아무리오래 다니고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날씨읽기’나 ‘흙읽기’를 배우지 못했다고 해요.


  이리하여 처음부터 모든 것을 몽땅 손수 짓겠다는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하나씩 차근차근 이녁 길을 걸으려 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하기로 합니다. 하다가 잘못된다면 잘못된 대로 새롭게 배우면서 이대로 즐거운 살림을 누리기로 합니다.


  흙을 만지면서 씨앗을 심을 적에도 이와 같아요. 어느 씨앗은 싹이 안 틀 수 있어요. 싹이 잘 터서 자라다가 그만 바람에 뚝 끊어질 수 있어요. 풀을 뽑다가 그만 ‘내가 심은 아이’를 뽑을 수 있어요. 저도 어제 밭에서 풀을 뽑다가 당근싹 하나를 잡아당기고 말았습니다. 비바람에 드러누운 옥수수를 세운다고 하다가 그만 옥수숫자루 하나를 끊고 말았어요.



부엌에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그에 따르는 보상이 어마어마하다. 돈을 절약할 수 있고, 튼튼한 몸을 만들 수 있으며, 기쁨과 창의성이 솟아나고, 과학과 화학, 생물학, 식물학, 연금술 지식을 넓힐 수 있다. 음식과 약을 만들면 이제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실질적인 결과물이 탄생한 것이다. (277쪽)



  부엌에서 누리는 칼놀림이 재미납니다. 내가 어떻게 칼질을 하느냐에 따라 밥차림이 바뀌어요. 오이를 썰 적에 늘 똑같이 썰 수 있으나 재미나게 썰 수 있습니다. 능금도 배도 복숭아도 모두 다르게 썰 수 있어요. 국을 끓이면서 무를 세모나거나 네모낳게 썰 수 있고, 도톰하거나 조그맣게 썰 수 있으며, 둥그스름한 결을 살려서 큼직하게 썰 수 있습니다. 내 손길을 담아서 지은 밥 한 그릇을 온 식구가 함께 나누면서 새로운 하루를 열 만해요.


  뭔가를 스스로 ‘짓’기에 이 몸짓이 살림으로 거듭납니다. 뭔가를 스스로 생각하면서 지으려 하기에 이 몸짓이 어느새 살림으로 녹아듭니다.


  스스로 살림을 지으면서 어느새 ‘날씨읽기’를 해냅니다. ‘날씨읽기’도 ‘책읽기’하고 비슷하다고 느껴요. 늘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결을 느끼며 흙이랑 풀이랑 나무를 살피면, 어느새 날씨를 읽을 줄 아는 몸이 되어요.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기대지 않고서 스스로 짓는 살림이 될 적에 날씨뿐 아니라 삶과 사랑을 스스로 가꾸는 숨결로 거듭날 만해요.


  《좋은 인생 실험실》은 날씨읽기조차 못하던, 게다가 날씨읽기를 할 줄 모르는 줄마저 느끼지 못하던, 그냥 도시에서 돈을 꽤 많이 버는 일자리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던 사람들이 모든 물질을 ‘더 손아귀에 쥐려 하지 않’고 ‘더 재미난 살림으로 더 즐거운 삶을 누리려는 꿈’으로 다시 태어나는 발자국을 조곤조곤 보여줍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살림짓기입니다. 즐거우려고 하는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즐거움으로 거듭나는 삶짓기라고 느낍니다. 2016.7.7.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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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놀라운 힘
장 가브리엘 코스 지음, 김희경 옮김 / 이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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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59



하늘 닮은 파랑은 생각을 살찌우는 빛깔

― 색의 놀라운 힘

 장 가브리엘 코스 글

 김희경 옮김

 이숲 펴냄, 2016.5.30. 13000원



  “넌 어떤 빛깔이 좋으니?” 하고 묻는 말에 어린 사내는 섣불리 ‘빨강’이나 ‘분홍’을 댈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나아졌지 싶지만, 아직도 어린 사내한테는 빨강이나 분홍이나 귤빛이나 감빛보다는 파랑을 좋아하라고 넌지시 밀지 싶습니다. 옷 한 벌을 고를 적에도 사내는 부드럽거나 환하거나 울긋불긋한 빛깔하고는 동떨어져야 하는 듯이 여기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크게 나아졌지 싶지만, 아직 이 틀이 깨졌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공공시설에 있는 뒷간을 알리는 빛깔을 보면, 사내는 으레 파랑이요 가시내는 으레 빨강입니다. 이렇게 해야 눈에 잘 뜨일는지 모르나, 참말로 사내와 가시내는 이 두 가지 빛깔로 갈라도 될 만할까요?



인간의 눈이 감지하는 색은 파장이다. 눈은 380nm에서 780nm 사이의 일부 파장을 감지한다. (9쪽)


구름이 희게 보이는 것은 물방울 입자가 빛의 파장보다 커서 스펙트럼 전체가 반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양이 멀리서 붉게 보이는 것은 대기에 떠 있는 분자들이 수백만 개의 미세한 거울처럼 작용해서 사방으로 빛을 분산하기 때문이다. (20쪽)



  장 가브리엘 코스 님이 쓴 《색의 놀라운 힘》(이숲,2016)을 읽습니다. 이 책은 빛깔마다 어떻게 다르며, 이 빛깔을 어떻게 살리면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이를테면 파랑을 셈틀 바탕화면에 깔거나 교실 벽을 바르는 빛깔로 삼으면 ‘생각하는 힘(창의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빨강이라는 빛깔을 쓰면 ‘생각하는 힘’은 떨어지지만 ‘쏟아내는 힘(생산성)’은 높아질 수 있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온통 파랗게 물들인 곳에서는 마음이 차분하면서 온갖 즐거운 생각이 춤을 추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온통 빨갛게 물들인 곳에서는 머리가 어지러우면서도 몸은 어쩐지 어느 한쪽으로 힘을 쏟아내는구나 싶기도 해요.



물고기도 인간보다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 물고기는 인간의 스펙트럼에 더해 자외선 스펙트럼 색도 인식할 수 있다. (34쪽)


오늘날 대부분 교실의 벽이나 가구는 교육에 가장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색으로 칠해져 있다. 창고나 구치소처럼 학교에도 무채색 환경이 지배적이다. 이 문제를 3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 흰색·검은색·갈색이 학생들의 성적을 낮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55쪽)



  어릴 적을 돌아보고, 《색의 놀라운 힘》을 읽고, 또 오늘날 흐름을 헤아려 봅니다. 사회가 어떤 흐름을 타느냐에 따라 사회에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빛깔은 틀림없이 바뀝니다. 지난날 한겨레는 하얗게 눈부신 옷을 입었다고 하는데, 시골사람이 입던 옷은 하얗더라도, 시골마을이나 시골집 빛깔은 하얗지 않았습니다. 시골사람이 늘 만지는 흙은 까무잡잡한 밤빛입니다. 시골사람이 늘 만지는 풀은 말 그대로 풀빛입니다. 나무마다 줄기 빛깔이 다릅니다. 풀잎이나 나뭇잎도 저마다 풀빛 결이 다릅니다. 더욱이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이 알록달록 예쁘게 피고 져요. 열매를 맺을 적에도 온갖 빛깔이 곱습니다. 가을에 물드는 나뭇잎도 새삼스럽지요.


  한겨레를 두고 ‘흰빛겨레’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면서도, 막상 옛날 한겨레를 이룬 수많은 시골사람 살림살이를 돌아본다면 ‘무지개빛겨레’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한겨레뿐 아니라 이웃 모든 겨레는 이와 같으리라 느낍니다. 빛깔마다 다 다르게 즐겁거나 반갑거나 고운 결을 저마다 나름대로 잘 살리던 살림이었을 테니까요.



파란색은 창조적인 색이다. 뇌는 파란색을 보면 속박에서 벗어난다. 이 색은 자유를 상징하고, 균형감과 충만감을 준다. 하늘이나 바다를 바라볼 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효과를 보면 알 수 있다. (132쪽)



  집 안팎을 어떤 빛깔로 꾸미느냐에 따라 이 빛깔을 늘 바라보면서 받아들이는 생각이나 마음이 바뀐다고 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옳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아무 빛깔을 아무렇게나 입히지 말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봅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살찌우거나 북돋울 만한 빛깔을 슬기롭게 고를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저마다 좋아하는 빛깔을 스스럼없이 아끼면서 다룰 수 있어야지 싶어요. 《색의 놀라운 힘》이라는 책에서도 밝히는데요, 모든 빛깔이 어느 한 자리에서 100% 통계대로 맞아떨어지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빛깔은 빛깔대로 잘 다루어야 하지만, 어떤 빛깔을 마주하든 ‘이 빛깔을 다루려는 사람들 손길’에 따라서 사뭇 달라진다고 하는 대목을 늘 생각해야지 싶어요.


  하양만 깨끗하지 않습니다. 노랑도 보라도 깨끗합니다. 빛깔을 마주하면서 다루는 사람 스스로 마음을 활짝 열 적에 비로소 ‘생각하는 힘’이 샘솟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은 꽁꽁 가두어 놓은 채 파랑이라는 빛깔만 둘레에 깔아둔대서 ‘생각하는 힘’이 샘솟지는 않아요.



러시아어에서 빨간색과 아름다움은 동의어이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의 오역이다. 빨간색은 색을 대표하는 색이다. (135쪽)



  우리 집 작은아이는 작은아이입니다. ‘남자’나 ‘여자’라는 틀로 가를 아이가 아닌 그냥 작은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누나한테서 모든 옷을 물려입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가 입은 옷으로만 놓고 ‘남자’이냐 ‘여자’이냐를 가르려 한다면 부질없습니다. 어떤 옷을 몸에 걸쳤든 ‘아이 넋이나 숨결’을 읽고서 느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빨간 옷을 입은 사내도, 분홍 옷을 입은 사내도,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까만 옷을 입은 가시내도, 파란 옷을 입은 가시내도, 참말로 모두 사랑스러워요. 빛깔마다 얽힌 숨결을 읽으면서, 어느 빛깔이든 우리가 저마다 좋아하는 빛깔에 기쁜 숨결을 새롭게 담을 수 있을 때에 가장 아름다운 ‘빛살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016.6.2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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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말꽃모음 - 김구 선생님 말씀 모음집 말꽃모음
김구 지음, 이주영 엮음 / 단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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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58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는 작은 목소리

― 김구 말꽃모음

 이주영 엮음

 단비 펴냄, 2016.5.31. 12000원



  내가 어릴 적에 제비나 박쥐는 무척 흔한 새였습니다. 바다를 코앞에 낀 인천에서 1980년대 첫무렵을 살면서 낮에는 늘 제비를 보고 저녁에는 으레 박쥐를 보았어요. 가끔 매를 보기도 했는데 두루미만큼은 맨눈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2010년대 한복판을 지나는 요즈음 나는 어느새 두 아이 아버지가 되어 시골에서 살림을 짓습니다. 요즈음은 큰도시에서는 제비를 구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웬만한 시골에서도 제비는 만나기 어려운 새입니다. 무엇보다 박쥐 같은 새는 거의 볼 수조차 없어요.


  제비이든 뻐꾸기이든 꿩이든 매이든 우리 집 아이들은 흔하게 보지만, 박쥐처럼 예전에 아주 흔하던 새를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박쥐가 어떤 새인가 하는 이야기를 알려주기가 어렵습니다. 두루미도 알려주기 어려운데, 요새는 꾀꼬리나 뜸부기 같은 새도 알려주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나는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저마다 배우고 사람마다 가르치는 것이라 깨달았다. (25쪽)


나는 감옥에서 뜰을 쓸고 유리창 닦을 때마다 하나님께 빌었다.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여 보고 죽게 하소서.” 하고 빌었다. (45쪽)



  제국주의 군홧발에 짓눌리던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로 되찾고 싶다는 꿈으로 살던 분이 남긴 글을 간추린 조그마한 이야기책 《김구 말꽃모음》(단비,2016)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김구 말꽃모음》은 백범 김구 어르신이 남긴 글을 이주영 님이 이모저모 손질을 해서 ‘요샛말’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엮은 책이라고 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어록집’일 텐데, ‘어록집’이라는 이름은 퍽 어렵다고 여길 만하니 ‘말꽃모음’으로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고 할 만해요. 아름답게 남긴 말이기에 ‘말꽃’이고, 이처럼 아름답게 남긴 말을 모았으니 ‘말꽃모음’인 셈입니다.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를 도운 독립운동가를 잡으려는 왜경들 손길이 날마다 드세지니 동포들이 편하게 살 수가 없었다. 또 애매한 동포들이 잡힐 우려가 있으므로 나는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 책임자가 나 김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69쪽)


현재 우리나라 남북에서 외국에 아부하는 어떤 자들은 남한을 치겠다고 말하고, 어떤 자들은 북한을 치겠다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전쟁을 바라고 있다. 실제로는 아직 그 실현성은 없다. 그러나 전쟁이 터진다고 하면 그 결과는 세계 평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동족의 피를 흘려서 왜적을 살릴 것밖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128쪽)



  한국현대사에서 백범 어르신은 무척 남다릅니다. 무엇이 남다른가 하면 ‘백범’이라는 이름부터 남다릅니다. 백범 어르신은 이녁이 한 일을 대단하거나 훌륭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마땅히 할 수수한 일로 여깁니다. ‘백범’이라는 이름이 바로 ‘수수한 사람’이나 ‘투박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여느 사람을 가리키는 ‘백범’이라는 이름이요, 권력이나 계급이나 신분이나 봉건제 같은 틀에 짓눌리던 수수하거나 투박한 사람을 나타내는 ‘백범’이라는 이름이에요.


  그러면 한국현대사에서 백범 어르신은 어떤 일을 하면서 무엇을 바랐을까요? 우리가 흔히 알기로도 ‘독립운동’을 했으며 ‘아름다운 나라’를 바라셨습니다. 식민지도 봉건제도 계급제도 군주제도 군정도 아닌 ‘아름다운 민주와 자유로 춤추는 나라’를 바라셨습니다. 제국주의 우두머리를 수류탄이나 폭탄이나 총으로 죽여서 없애려고 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백범 어르신이 바란 이 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였어요.



수백 년 동안 조선은 계급 독재 국가였다. 유교, 그 가운데에도 오직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정치에 있어서만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까지도 규정하는 계급 독재였다. 주자학이 아닌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였고, 그 영향은 예술, 경제, 산업에까지 미쳤다. (176쪽)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195쪽)



  나도 아름다운 나라를 꿈꿉니다. 아름다운 고장을 꿈꾸고,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며,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꿈꿉니다. 아름다운 살림을 꿈꾸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며, 아름다운 말이랑 넋이랑 삶을 꿈꾸어요.


  군대나 전쟁무기가 없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꿈꿉니다. 권력이나 신분이나 학력이나 재산이 없이도 평등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꿈꿉니다. 겉모습이나 자가용이나 부동산이나 옷차림으로 금을 긋지 않는 따사롭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꿈꿉니다.


  참말로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 모든 아이와 어른이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요.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 너나없이 사랑스럽게 어깨동무를 하는 즐거운 노래를 바라요.


  아름다운 나라는 어려울까요? 경제성장이 아닌 아름다움을 헤아리기는 어려울까요? 일등이나 명예가 아닌 아름다움을 생각하기는 어려울까요? 《백범일지》를 읽든 《김구 말꽃모음》을 읽든 마음속에 수수하면서 투박한 따사로운 아름다움을 사랑스레 품을 수 있기를 빕니다. 2016.6.2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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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위한 시간 - 유럽 수도원 기행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패트릭 리 퍼머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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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55



고요한 곳에서 눈·귀·마음을 연다

― 침묵을 위한 시간

 패트릭 리 퍼머 글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펴냄, 2014.10.20. 12000원



  축축한 날에 잠자리에 눕다 보면 때때로 방바닥 어느 곳에서 지네가 기어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넓은 바깥이 있는데 굳이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올 까닭이 있나 하고 여기면서도 지네가 기어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수없이 많은 다리로 사라락사라락 꽤 빠르게 기는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동이 틀 무렵 온갖 소리가 집 안팎으로 퍼집니다. 밤새 노래하던 개구리는 수그러들고 바야흐로 온갖 새가 새로운 아침을 기쁘게 맞이하는 소리가 퍼집니다. 새가 들려주는 노랫가락은 꽤 많습니다. 새마다 다 다른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아직 소리만으로 어떤 새인지 낱낱이 가리지는 못합니다만, 머잖아 귀를 기울이기만 해도 어떤 새인지 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는 조용한 고독과 평화를 원했고, 여기 그 고독과 평화가 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쓰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깥 숲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울한 기분과 뭐라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갑자기 망치로 내려치듯 나를 덮쳤다. (26쪽)



  패트릭 리 퍼머 님이 쓴 《침묵을 위한 시간》(봄날의책,2014)을 조용히 읽어 봅니다. 이 책을 쓴 분은 ‘말을 하지 않고 아주 조용한 삶’을 보내고 싶어서 여러 수도원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여러 수도원에 머물면서 수도원 규칙을 따르고, 몇 가지 일을 하면서, 여느 때에는 오로지 ‘이녁 마음 깊은 데’로 스스로 들어가서 생각에 잠기려고 했다는군요.


  나는 수도원에 가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수도원에 어떠한 기운이 흐를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어림해 볼 만하다고 느낍니다. 수도원은 시끌벅적하지 않을 듯합니다. 수도원은 도시 한복판하고는 사뭇 다르리라 느낍니다. 이곳에 깃들려는 사람들은 모두 차분하면서 얌전한 몸짓이 되리라 느낍니다. 서로서로 느긋하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몸을 착하게 다스리려 하리라 느낍니다.



시간을 새로 배분하게 된 덕분에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이 하루에 19시간으로 늘어났다.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점점 일이 수월해졌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수도원 안팎을 탐험하거나 책을 읽었다. (38쪽)



  우리는 수도원 같은 곳뿐 아니라 여느 삶자리에서도 차분하면서 조용할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는 ‘차 없는 거리’를 따로 마련하기도 하는데, 자동차가 덜 다니거나 안 다닐 적에 비로소 ‘사람이 살 만한 흐름’이 감도는 셈은 아닐까요?


  자동차를 아예 안 타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둘레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지 싶어요. 기계도 너무 많고, 건물도 너무 많습니다. 찻길도 너무 많지요. 가만히 보면 관광지나 여행지가 되는 곳도 너무 많습니다.


  《침묵을 위한 시간》을 쓰려고 수도원을 다닌 분은 ‘하루 가운데 19시간’을 이녁 마음대로 쓰니 ‘신이 된’ 느낌이라고 밝히는데, 하루 열아홉 시간이 아닌 하루 스물네 시간을 오롯이 ‘내가 나를 가꾸거나 살찌우거나 북돋우는’ 데에 쓸 수 있으면, 우리는 ‘하느님이 된’ 느낌에서도 한결 더 나아갈 만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여기저기에 창백한 나무숲이 나타났다가 문득 어두운 소나무 숲과 마주쳤다. 들에서 일하는 수사들은 하나같이 두건을 쓰고 나막신을 신은 채 사방 천지가 물에 젖은 이 들판에 고립된 점이 되어 밭을 갈거나 나무를 했다. 도끼를 휘두르는 걸 보고 몇 초가 지나야 도끼 소리가 귀에 닿았다. (83쪽)



  천천히 걷는 동안 귀가 새로 열린다고 느낍니다. 천천히 걷는 사이에 눈이 새로 뜨인다고 느낍니다. 천천히 일하거나 쉬는 내내 몸이 새로 깨어난다고 느낍니다.


  서둘러야 하지 않습니다. 빨리 가거나 얼른 마쳐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즐겁게 할 수 있으면 됩니다. 모든 살림은 즐겁게 가꿀 수 있으면 됩니다.


  고속도로를 내기에 더 빨리 간다기보다, 고속도로를 내기 때문에 자동차가 더 늘어나면서 찻길이 더 막히지 싶어요. 즐겁게 살고, 즐겁게 어우러지며, 즐겁게 일하거나 쉬거나 놀 수 있는 터전이 될 때에 비로소 모든 기운이 환하게 열리리라 봅니다.


  조용한 곳에서 몸을 곱게 다스립니다. 고요한 곳에서 눈·귀·마음을 기쁨으로 새롭게 엽니다. 나는 오늘도 호미 한 자루로 조용히 밭자락에서 김을 맬 생각입니다. 풀벌레하고 새하고 구름하고 여름볕하고 산들바람을 동무로 삼으면서 말이지요. 2016.6.1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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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신기루 - 한자를 둘러싼 오해와 그 진실
이건범 지음 / 피어나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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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35



‘편지’를 가리키는 한자말이 221가지?

― 한자 신기루, 한자를 둘러싼 오해와 그 진실

 이건범 글

 피어나 펴냄, 2016.1.11. 15000원



  한글문화연대 대표를 맡는 이건범 님은 《한자 신기루, 한자를 둘러싼 오해와 그 진실》(피어나,2016)이라는 책을 쓰면서 ‘한자 사교육’과 얽힌 ‘한자혼용 주장’을 하나하나 따지거나 짚으려고 합니다. 이 책은 ‘한자를 쓰지 말자’고 외치지 않습니다. 이 책은 ‘한자가 사라져야 한다’고도 외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를 둘러싼 엉뚱하거나 쓸모없는 한자말이 너무 많다는 대목을 차근차근 밝힙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도 우리 학문과 지식과 사회제도의 거의 모든 용어가 일본이 만든 한자 용어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인 데다가 일부 국어학자와 뜻 있는 지식인들 말고는 정부조차 일본식 한자어를 토박이말이나 우리 한자어로 바꿀 엄두를 내지 못했다. (29쪽)


우리말 ‘편지’에 대응하여 정재도 선생께서 국어사전에서 찾아낸 한자어는 합성어까지 포함하면 무려 221개나 된다. (39쪽)



  ‘편지’라는 낱말은 한자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便紙’로 적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한자 ‘便紙’를 모른다고 해서 ‘편지’라고 하는 “한글로 적은 말”을 못 알아듣거나 잘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에 ‘편지’를 가리키는 다른 한자말이 221 가지가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간독·간찰·서간·서독·서소·서신·서장·서찰·서척·서한·서함·성문·신·신서·이소·찰한·척한·편저……’ 같은 한자말을 꼭 알아야 할까요? 이런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서 다루어야 할까요? 한자말 ‘편지’가 있으면 한국말로 ‘글월’이 있어요.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우리가 쓸 만한 말을 알맞게 쓰고, 지난날 지식인이 한자 지식으로 지어서 쓴 수많은 한자말은 이제 찬찬히 털어낼 때에 아름답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한자를 모르면 우리말 가운데 한자어 낱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한자 맹신자들의 논리는 오류다. 만일 이 주장이 참이라면, 문맹이 많은 중국에서는 어떻게 의사소통할 수 있겠는가? … ‘인문(人文)’이라는 한자어는 매우 쉬운 한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뜻을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드물다. 둘 다 한자 지식 이전에 그 낱말을 알고 있느냐 아니냐로 봐야 할 일이다. (102쪽)


‘애국’이라는 낱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 음이나 ‘愛國’이라는 글자 모양이 아니라 ‘사랑 + 나라’라는 한자의 뜻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이건 내 주장이 아니라 앞서 소개했던 방송토론 상대의 말에서, 그리고 한자 맹신자들의 말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핵심 논리다. (105∼106쪽)



  《한자 신기루》는 여러 가지 보기를 들면서 ‘한자를 알아야 말을 알지 않는다’는 대목을 밝히려 합니다. 우리는 ‘한자를 알기 때문에 한자말을 알지 않는다’는 대목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한자가 아닌 ‘말’을 알고 ‘뜻’을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인문’이라는 한자말에서 ‘人’이나 ‘文’이라는 한자를 알기에 ‘인문’을 제대로 알 수는 없습니다. ‘학교’나 ‘전철’이 어떤 한자를 쓰거나 말거나 모르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전기’나 ‘자전거’가 어떤 한자를 쓰거나 말거나 모르더라도 우리는 어렵거나 힘들지 않아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더 많은 한자’가 아니라 할 만합니다. ‘한자 지식’을 많이 갖추어야 한자말을 잘 알지 않아요. 쓸데가 없는 수많은 한자말은 털어내고, 알맞게 쓸 만한 한자말을 즐겁게 쓸 수 있으면 된다고 느낍니다.


  신문은 ‘신문’일 뿐 ‘新聞’이 아니어도 됩니다. 아니 ‘新聞’이라고 쓰는 사람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겠지요. 성탄절은 ‘성탄절’일 뿐 ‘聖誕節’이 아니어도 됩니다. 아니 ‘聖誕節’이라고 쓸 사람도 이제 찾아볼 수 없을 테지요.



“최고의 고려청자”는 그 고려청자가 가장 오래된 것인지 가장 좋은 것인지 누구도 구별할 수 없다. 단지 ‘한글만으로 썼기 때문에’ 구별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입말로 해도 가려낼 수 없다 … 말로도 분간할 수 없는 걸 한글로 써놓으면 당연히 분간할 수 없지 않겠는가? 즉, 동형어는 글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말에서도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다. (129쪽)



  《한자 신기루》는 ‘입으로 말을 할 적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한다고 밝힙니다. 이는 아주 마땅한 노릇입니다. 글로 낱낱이 따져서 읽어야 알아들을 수 있는 글씨를 입으로 말한다면, 아무도 못 알아듣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입으로 말을 할 적에 누구나 알아듣는다’면, 이는 한자말이거나 영어이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컴퓨터나 버스는 그저 ‘컴퓨터’나 ‘버스’이지, 이를 영어라고 여길 일이란 없어요.



사실 어려운 한자어는 중·고교 수업에서 훨씬 많이 나오는데 왜 중·고교 한자 사교육은 없을까? 한자 교육 강화 주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중·고교 한문 수업을 강화하자는 이야기는 없고 오로지 초등학생만 잡으려고 들까? (208쪽)


중등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의 지정 효과가 미미해지고 정규 과목인 한문 교과가 나날이 부실해지며, 교과서 한자병기도 시행되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중·고교 한문 교육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은 단 한 가지도 제시하지 않았다. (210쪽)


한자 급수시험의 응시생 절반 이상이 초등학생이라고 한다. (215쪽)



  곰곰이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어려운 한자말’은 중·고등학교에 더 많이 나올 뿐 아니라, 인문책이나 신문이나 방송에 훨씬 자주 나옵니다. 그렇지만 중·고등학생한테 ‘한자 교육 더 시켜야 한다’라든지 어른들한테 ‘한자 교육 더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초등학교 한자 교육’은 ‘한자 사교육’으로 장사를 하려는 속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를 볼모로 삼은 ‘한자 사교육 장사’ 바람이 대단히 드셉니다. 책방에는 ‘초등 대상 한자 부교재·학습서’가 엄청나게 많고, 이런 ‘초등 대상 한자 부교재·학습서’는 자꾸자꾸 새로 나와서 불티나게 팔려요.



한자병기 논쟁에서 사람들이 그동안 중요하게 보지 않았던 매우 뜻깊은 사실 하나가 확인되었다. 한자 맹신자들도 한글전용 덕분에 우리 사회에서 문맹이 사라졌다고 모두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255쪽)


문제는 이제 한글전용이 아니라 어려운 낱말들이다. 입말로 할 때 알아들을 수 없는 낱말이 섞여 있다면 글로 써놓아도 그 낱말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256쪽)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까닭을 슬기롭게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생각을 활짝 열고 마음을 새롭게 가꾸려는 뜻으로 말을 익히거나 글을 쓴다고 봅니다.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진작 바뀌어 이제 안 쓸 뿐 아니라, 일본조차 쓰지 않는 ‘한자(나라마다 한자가 모두 다릅니다)’는 조용히 내려놓고서 중국‘말’을 배우자고 외치는 일이 훨씬 나아 보인다고 느낍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를 무시무시한 사교육 수렁에 빠지게 하지 말고,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생각을 널리 열고 마음을 따사로이 가꾸도록 하는 데에 힘을 쏟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어려운 한자말’을 우리 어른들이 아직 털어내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초등 교과서 한자 혼용’이나 ‘한자 사교육’이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합니다. 지식 사회에 퍼진 ‘어려운 한자말’을 어린이한테까지 가르치려 들지 말고, ‘쉽고 또렷하면서 고운 한국말’을 슬기롭게 살펴서 함께 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한자 신기루’를 말끔히 털어내고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말’을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6.6.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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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ey 2016-06-0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221가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