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 - 니체,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의 신체적 유물론
테리 이글턴 지음, 전대호 옮김 / 갈마바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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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367


《유물론》

 테리 이글턴

 전대호 옮김

 갈마바람

 2018.9.15.



우리 문화와 사뭇 다른 어떤 문화의 언어를 우리가 배우려 한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그 문화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요리하고 농담하고 숭배하고 옷을 꿰매고 범법자를 처벌하는지 등을 관찰할 것이며, 그러면서 그들의 말하기 형태들이 이 활동들과 관련되어 있는 한에서 그 형태들을 이해할 단서를 발견할 것이다. (187쪽)



《유물론》(테리 이글턴/전대호 옮김, 갈마바람, 2018)을 읽고 난 뒤 끙끙 앓았다. 수요일에 한 가지를 잘못 먹고 나서 사흘 동안 물 한 방울 입에 댈 수 없을 만큼 드러누웠고, 나흘째에 비로소 물도 밥도 먹을 수 있었지만 몸이 깨어나기까지 꽤 벅찼다. 앓는 소리를 내며 꼼짝할 수 없는 동안 다른 일은 하지 못하지만, 생각 하나는 한다. 아픈 몸은 어떤 나일까? 아픈 몸을 달고서 뭔가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몸앓이를 마친 나는 또 누구요, 다시 밥을 먹는 나는 또 누구일까? 우리 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몸을 얼마나 아는가? 책 하나는 수수께끼를 풀어줄 수 없다. 책을 쓴 이도 실마리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수수께끼를 못 풀거나 실마리를 못 얻더라도,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는 동안 수수께끼를 푸는 길을 살짝 엿보거나 실마리가 나오는 자리를 어렴풋이 느낄는지 모르리라. 앓는 동안 물 한 방울 입에 댈 수 없는 몸은, 거꾸로 보면 굳이 안 먹어도 움직일 수 있는 몸이기도 하다. 앓고서 일어나는 몸은, 곰곰이 보면 한결 튼튼하게 거듭나는 몸이란 뜻이기도 하다. ‘테리 이글턴이 읽은 유물론’은 이이가 ‘몸으로 읽은 유물론’이라 하는데 여러 학자들 말을 바탕으로 몸을 돌아보기보다는, 글쓴이 삶을 바탕으로 몸을 돌아보고 유물론을 바라보면 어떠할까 싶기도 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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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웨이크너 - 이미 완전한 '나'를 만나는 현각자의 길
이성엽 지음 / 그린라이트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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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368


《어웨이크너》

 이성엽

 그린라이트

 2015.12.15.



어떠한 조건이 나를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한다는 착각에서 나오는 것이 어웨이크너의 첫걸음이다. 모든 것의 원인이 나라는 것을 아는 것, 모든 것의 시작이 나라는 것을 아는 것은 자신의 탁월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23쪽)



《어웨이크너》(이성엽, 그린라이트, 2015)를 읽으며 생각한다. ‘어웨이크너’가 뭔가 하고. 사전에서 ‘awakener’를 찾아보니 “깨우는 자, 자각시키는 자”로 풀이한다. 잠을 깨우는 사람이라는 뜻이 될 텐데, 잠든 몸뿐 아니라 잠든 마음을 깨우는 사람을 가리키겠지. 그러면 잠든 몸이나 마음이란 무엇인가? 아직 참길을 스스로 바라볼 줄 모르는 몸이나 마음이리라.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남이 보여주는 대로 보고, 남이 들려주는 대로 듣느라, 정작 내 귀도 마음도 생각도 없으니 ‘잠든이’일 테지. 이 나라에는 깨어난 이가 얼마나 있을까? 이 나라에는 잠을 깨우려는 이가 얼마나 있으려나? 생각해 보면 ‘잠든이·깨어난이·깨우는이’ 이런 낱말도 새로 쓸 만하다. 잠든 사람이 잠든 줄 알려주는 말이며, 깨우도록 하려는 말이며, 깨우치는 말 모두 우리 곁에서 늘 쓰는 말일 적에 한결 빛나리라 본다. 어려운 말로 누구를 깨울까? 어려운 말을 쓰는 사람은 남도 못 깨우지만 스스로도 못 깨닫지 못한 몸이나 마음 아닐까? 어려운 말을 쓰는 사람은 누구보다 스스로 못 깨달은 사람일 뿐 아니라, 잠든 이웃이 안 깨어나기를 바라면서 ‘졸음이 쏟아지는 말’을 자꾸 쏟아내는 사람은 아닐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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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를 치켜세움
폴 오스터 지음, 샘 메서 그림,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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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으로 삶읽기 364


《타자기를 치켜세움》

 폴 오스터

 샘 메서 그림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2003.12.30.



2년인가 3년 전, 나는 종말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어서 브루클린 문구점 주인인 레온을 찾아가 타자기 리본을 50개 주문해 달라고 했다. 그는 내가 부탁한 사이즈의 리본을 긁어모으기 위해 며칠 동안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야 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중 일부는 캔자스시티 같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송된 것들이었다. (23쪽)



《타자기를 치켜세움》(폴 오스터·샘 메서/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2003)을 읽었다. 글밥이 얼마 없는 책이라 책집에 서서 읽었다. 헌책집에서 만났는데, 펴낸해를 읽고는 틀림없이 판이 끊어졌겠다 싶었다. 책집에서 손전화를 켜서 살피니 참말로 판이 끊어졌고 한참 망설인다. 이 책을 사느냐 다시 꽂느냐, 책집에 서서 다 읽었으니 굳이 안 사도 되지 않느냐 하면서. 마침내 이 책을 사기로 다짐하고서 연필을 쥔다. 마음에 드는 대목은 옆자리에 동그라미를 작게 그린다. 옮김말이 엉성한 대목은 빗살을 그려 손질해 본다. 셈틀이 아닌 타자기로 글을 쓰는 삶을 단출하게 펼쳐 주었고, 글쓴이가 몸뚱이처럼 여기며 늘 함께하는 타자기를 마주한 그림벗이 타자기를 담아낸 그림을 죽 엮어 놓는다. 나는 셈틀로도 글을 쓰지만 연필로도 글을 쓴다. 한때 연필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은 적이 있었으나 연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요즘 연필을 옛날하고 대면 매우 안 좋다. 이웃나라 일본은 아직도 연필을 매우 잘 깎는다. 어쩌면 한국이란 나라에서 연필은 무늬로만 살아남고, 속으로는 다 죽은 셈 아닐까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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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부엌 - 맛있는 이야기가 익어가는
오다이라 가즈에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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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361


《도쿄의 부엌》

 오다이라 가즈에

 김단비 옮김

 앨리스

 2018.7.20.



“사실은 무엇을 먹는지도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오이를 베어 먹더라도 가족이 웃으면서 먹는다면 그게 가장 큰 행복이니까요.” (169쪽)



《도쿄의 부엌》(오다이라 가즈에/김단비 옮김, 앨리스, 2018)을 읽었다. 서울처럼 커다란 고장에서 사는 분이라면 이 책이 여러모로 끌릴 수 있지 싶다. 나도 전남 고흥이 아닌 인천이란 고장에 그대로 남아서 살았다면 이 책이 남달랐다고 여겼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골에서 사는 살림지기 눈으로 보자면, 또 이 시골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서 살려는 마음으로 보자면, 그냥 그렇다. 도쿄에서 여러 부엌을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데, 뭔가 와닿지 않는다. 어쩐지 붕 뜬 느낌이랄까. 시큰둥. 도쿄는 워낙 땅값이며 집값이 비싸니, 이런 데에서 집 한 칸 빌리거나 얻어서 살며 건사할 부엌이란 얼마나 머리를 굴리고 써서 알뜰히 여미어야 하는가를 새삼스레 느낄 뿐이다. 우리는 참말로 누구나 마당 있고 텃밭 있으며 꽃뜰이 넉넉한 집을 누려야 한다. 그냥 ‘우리 집’이 아니라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먹는 넉넉한 보금자리숲’을 누리도록 이 별이 거듭나야 한다고 다시금 생각한다.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없애면 이 일을 이루리라.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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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의 유언 - <모모>의 작가 엔데, 삶의 근원에서 돈을 묻는다
카와무라 아츠노리 외 지음, 김경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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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36


《엔데의 유언》

 카와무라 아츠노리·그룹 현대

 김경인 옮김

 갈라파고스

 2013.5.22.



그(엔데)는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것은 돈을 흩뿌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존경을 불러일으킬 만한 지적 사업을 실현하는 것이라 했다. (29쪽)


마르크스의 최대 실수는 자본주의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47쪽)


게젤은 토지를 공유화한 후 토지용익권의 대가인 지대를 사회생활의 기본을 받쳐주는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데 쓰거나 여성의 가사노동에 보수를 주는 원천으로 쓰려 했다. (152쪽)


채무경제는 기업에 항상 무리한 성장을 강요한다. 그러면 어딘가에서 희생자가 나올 것이고, 환경과 인간이 바로 그 희생자가 된다. (174쪽)


돈의 상식을 의심해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지역통화를 만들어 가는 구조를 추진해 간다면 우리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이 생겨날 것이다. (273쪽)



  저 스스로 문득문득 놀라는데, 어느 때에는 기꺼이 나서서 일을 하지만 돈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에는 일삯을 넉넉히 챙겨 준다고 하더라도 썩 내키지 않아서 안 하고 싶다고 느낍니다. 돈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일을 하거나 도우려고 할 때가 있고, 돈을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손사래칠 때가 있어요.


  살림돈이 바닥이 나서 돈을 빌려야 한 적이 제법 있습니다. 이때에 아무 말 없이 돈을 빌려줄 뿐 아니라, 제가 바라는 크기보다 더 얹어서 빌려주는 이웃님이 있어요. 이와 달리 돈을 빌려주지 않는 이웃님도 있지요. 빌려주는 이웃님이라서 더 좋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안 빌려주는 이웃님이라서 나쁘거나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삶과 살림이 다르기에 그때그때 다를 뿐이라고 느낍니다.


  《엔데의 유언》(카와무라 아츠노리·그룹 현대/김경인 옮김, 갈라파고스, 2013)은 오늘날 이 별에서 돈이란 무엇인가를 살피면서, 돈에 얽매인 삶하고 돈에서 홀가분한 삶은 또 무엇인가를 짚으려고 하는 책입니다. ‘돈이 모두’가 아니라 ‘삶이 모두’요, ‘돈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고 하는 길을 밝히려고 미하엘 엔데 문학을 바탕으로 여러 나라 여러 마을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삶을 짓는 돈’하고 ‘삶을 가꾸는 마음으로 나누는 돈’을 이야기해요.


  경제 정책을 펴기에 경제가 살아날 수 있지만, 경제라는 틀에 매이기에 경제마저 놓치거나 흔들릴 수 있습니다. 교육 정책을 펴기에 교육이 살아날 수 있지만, 교육이라는 굴레에 갇히기에 교육마저 잊거나 잃을 수 있어요. 경제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뒷전으로 밀어놓는다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한테 자유나 민주나 평화나 평등은 뒷켠으로 접어놓는다면, 경제도 교육도 참뜻을 잃겠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돈이 있으면 더 좋을 수 있고, 돈을 넉넉히 쓰거나 나누는 길도 얼마든지 좋을 수 있어요. 그러나 돈‘을’ 찾거나 나누는지, 돈‘만’ 찾거나 나누는지 따질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사람이 쓰는 돈이고, 사람이 짓는 돈이에요. 사람이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돈이고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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