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0자 - 김인국 칼럼집 철수와 영희를 위한 사회 읽기 시리즈 1
김인국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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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83


《2230자》

 김인국

 철수와영희

 2019.6.20.



억센 손이라도 가만히 만져 보면 따뜻하다. 밖에서는 몰라도 집에서는 틀림없이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살가운 손이다. (21쪽)


나라가 사위어가는 시절에도 쾌활한 색상과 고요하고 늠름한 자태를 잃지 않던 옛사람들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나 이상하고 초라해졌다. (65쪽)


대통령은 여소 야대를 만들어낸 민의를 받드는 대신 사드라는 미국산 미사일 방어시스템 카드를 들고 나왔다. 국면 전환에는 안보 이슈가 특효라고 믿었을까. (79쪽)


즉각 ‘해라’ ‘하게’ 등의 반말투를 버리라는 엄명에 양반들의 언사를 익혀 낮춤말만 쓰던 (서양) 신부들은 어리둥절하였다. 삼일 혁명은 이처럼 민주 공화제를 표방한 임시정부의 수립, 대대적인 소작 쟁의 말고도 삶의 전반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114쪽)



  또박또박 쓰고 뚜벅뚜벅 걷습니다. 할 말은 또박, 걸음걸이는 뚜벅, 언제나 힘차면서 야무집니다. 나긋나긋 쓰고 나풀나풀 걷습니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포근, 어우러지는 손길은 따뜻, 늘 고우면서 반갑습니다.


  똑같은 일을 놓고서 두 가지로 말합니다. 때로는 억세게, 때로는 보드랍게. 때로는 세게, 때로는 여리게. 때로는 깊이, 때로는 넓게.


  시골에서 항공방제란 이름으로 농약을 뿌립니다. 일손이 적어서 무인 헬리콥터나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기도 하지만, 무인 헬리콥터나 드론을 만드는 데에 돈을 엄청나게 쏟아붓고서 농약을 뿌리기도 합니다. 굳이 농약을 뿌려야 한다면, 무인 헬리콥터나 드론에 들일 돈을 처음부터 ‘사람’한테 들일 노릇 아닐까요? 더 헤아려서, ‘사람 손길’로 논밭을 다스리면 아예 드론도 농약도 기계도 시골자락에 발붙일 일이 없이 젊은 일꾼이 넓게 발붙이지 않을까요?


  《2230자》(김인국, 철수와영희, 2019)라는 이야기책은 천주교 신부님이 꾹꾹 눌러쓴 글을 엮습니다. 하나도 바르지 않은 길을 가는구나 싶은 정치를 나무라면서, 썩 곱지 않은 길로 뒤틀리는구나 싶은 경제를 꾸짖으면서, 참답거나 착한 삶하고는 등을 지는 학교를 지청구하면서 적바림한 글이라고 합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이란 빚을 지기도 합니다. 거꾸로, 말 한 마디로 천 냥이란 빚을 갚기도 합니다. 말 한 마디는 씨앗이 되어 온누리를 확 갈아엎곤 합니다. 말 한 마디는 대수롭지 않다며 싹둑 잘리거나 꽉꽉 밟히기도 합니다.


  우리 곁에서는 어떤 말이 흐르는가요. 우리 삶에서는 어떤 말이 태어나는가요. 우리 눈은 어떤 글을 좇는가요. 우리 마음은 어떤 글을 새로 지어서 이웃하고 함께하려는 바람이 흐르는 데로 나아가나요.


  칠월 아침에 후박나무 곁에 사다리를 대고 척척 디디고 서서 우듬지 언저리에 돋은 열매를 직박구리하고 함께 훑습니다.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쓰다듬으면서 열매를 훑으니, 가까이에서 멧새가 찌이째애 노래하면서 함께 있으니, 나무가 몹시 반기면서 시원하다고 솨락솨락 춤을 춥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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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이 하는 말 - 아름답게 나이 드는 50가지 방법
김재용 지음 / 스토리닷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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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82


《오드리 헵번이 하는 말》

 김재용

 스토리닷

 2019.5.23.



어렸을 때는 제 이름이 너무 싫었습니다. 예쁜 이름도 많은데 왜 하필 남자 이름을 지어줬는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17쪽)


도화지만한 주방 창으로 보이는 나무가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저는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는 8층을 놔두고 바로 2층을 계약했습니다. (47쪽)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헵번 스타일’이 사랑받는 이유는 패션 자체보다 그녀의 내면이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98쪽)


누군가는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그녀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랑이 물결처럼 퍼져나간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행동했기 때문이었지요. (185쪽)



  어린이는 저한테 붙인 이름을 얼마나 좋아할까요. 어버이가 붙인 이름이 마음에 드는 어린이는 몇쯤 될까요. 어쩌면 어버이는 아이가 제 이름을 얼마나 좋아하거나 아끼는가를 잘 모르거나 안 살피지 않을까요.


  제 어릴 적을 돌아보면 ‘내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밝힌 동무는 퍽 적었습니다. 아니, 거의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사내도 가시내도 으레 돌림이름입니다. 아이한테 맞추어 온사랑으로 지은 이름이 아닌, 어른 틀에 짜맞추어 그냥 툭툭 던진 이름이라 할 만해요.


  어릴 적에는 으레 시키는 대로 따릅니다. 둘레에 있는 어른들이 자꾸 뭘 시키거든요. 어린 날에는 스스로 꿈꾸어서 짓는 길을 가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해보려 하면 둘레에 있는 어른이 으레 가로막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하는 말》(김재용, 스토리닷, 2019)은 할머니가 어떻게 삶길을 새로 가꾸는 하루가 되는가를 들려주려 합니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 어떤 삶이었는가를 되새기면서, 어제하고 오늘을 잇는 새길을 살핍니다. 어제하고 다른 길을, 어제보다 새로운 길을, 어제 걷지 못한 길을, 오늘부터 씩씩하면서 기쁘게 걸어가려고 하는 마음을 이야기해요.


  싫어하든 반기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돌림으로 붙인 이름을 싫어해도 되고 반겨도 됩니다. 그리고 우리 나름대로 새이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 나름대로 새이름을 지어도 좋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 새이름을 여럿 지어도 좋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이슬떨이로 삼은 오드리 햅번이라는 분은 어떤 길을 걸은 사람일까요. 어떤 사랑을 이녁 걸음걸이에 사락사락 드리운 사람일까요. 어떤 살림을 짓고 싶다는 꿈을 키우면서 기지개를 켜고 등허리를 곧게 편 사람일까요.


  우리는 오드리 햅번이 문득문득 들려준 말을 돌아보면서 우리 마음에 새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북돋우는 말을 의젓하게 지어서 노래할 수 있습니다. 춤을 추고 싶을 적에는 춤을 춥니다. 웃고 싶을 적에는 웃습니다. 꿈꾸고 싶을 적에는 꿈꿉니다. 하루는 우리 마음에 따라서 흐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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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얼굴 - 수집가 양해남의 한국 영화 포스터 컬렉션
양해남 지음 / 사계절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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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76


《영화의 얼굴》

 양해남

 사계절

 2019.2.25.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예전에는 영화 상영이 끝나면 쓰레기통에 처박히거나 길바닥을 나뒹굴었을 이 흔하디흔한 포스터가 왜 이렇게 모으기 어려워진 걸까? 그 많던 포스터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1960년대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1970년대 영화들의 포스터도 현재 남아 있는 것의 대부분은 유일본이다. 못해도 수백 장은 되었을 포스터들 가운데 딱 한 장씩만 남은 것이다. 아마 그 시절엔 누구도 포스터의 가치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먼 훗날 한 시대를 조망할 귀중한 문화 자산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영화를 사랑했던 수많은 제작자, 감독, 배우 그리고 관객들 어느 누구도 포스터를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을 만큼 신산했던 우리네 지난날이 서글프기도 하다. (7쪽)


현재 내가 소장하고 있는 1950∼59년까지의 한국 영화 포스터는 정확히 146장이며, 대부분 유일본이다. 이 시기의 포스터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비슷한 스타일을 보이는데, 이를 통해 포스터 디자이너의 수가 적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는 화폐나 우표를 디자인하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도안사’라고 불렸다 … 당시 활동한 도안사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는 당시 한국 영화계가 포스터 도안사를 정규 영화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3쪽)



  시골에서 살다 보니 극장에 갈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에는 극장이 없거든요. 시골에서 살며 책집에 갈 일도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시골에 책집이 없답니다. 시골에서 극장에 가자면 너무 까마득하기에 엄두를 안 냅니다. 그나마 가까운 도시로 책집마실은 다녀올 수 있습니다.


  극장 하나 없으니 시골살이는 심심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극장 아닌 곳에서도 갖가지 이야기가 흐르는 시골이에요. 풀밭에 엎드리면 개미를 비롯한 갖은 풀벌레가 바지런히 돌아다녀요. 먹이를 물어나르느라 부산하기도 하지만, 그저 놀거나 헤매는 풀벌레가 꽤 많습니다.


  나무에 앉는 새를 바라보고, 흐르는 구름을 쳐다봅니다. 밭자락에 낫이나 호미를 대고, 마당에 앉아서 숨을 고릅니다. 이 모든 하루는 날마다 새삼스럽기에, 오직 하나 있는 영화구경을 시골집에서 누린다고 하겠습니다.


  《영화의 얼굴》(양해남, 사계절, 2019)은 영화사랑으로 오랜 나날을 걸어온 분이 그러모은 ‘영화 포스터’ 이야기입니다. 어쩜 이렇게 알뜰한 손길로 영화 포스터를 건사하셨나 싶어 대단합니다만, 한국에서 영화 포스터뿐 아니라 영화하고 얽힌 여러 가지를 제대로 건사하는 살림이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영화뿐이겠습니까. 한국에서 책하고 얽혀 이런 자료나 저런 살림을 제대로 건사하는 곳이 있을까요? 커다란 출판사에서 선보인 베스트셀러하고 얽힌 자료뿐 아니라, 작은 출판사에서 야무지게 내놓은 뜻있는 책하고 얽힌 자료를 푼푼이 건사하는 데가 있을는지요? 책살피 하나 제대로 품는 도서관이란 없겠지요. 책싸개 하나가 책을 말하는 살뜰한 살림이 되리라 여기는 책마을 일꾼은 얼마나 될까요.


  두툼하고 묵직한 책은 그저 한 사람 손길로만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옹글게 영화 포스터를 그러모은 벗님이 있고, 해묵은 영화 포스터를 용케 간직하다가 건네준 벗님이 있으며, 이를 찬찬히 어루만져서 책으로 새롭게 묶은 벗님이 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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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여자 - 공선옥.김미월 산문집
공선옥.김미월 지음 / 유유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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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75


《내가 사랑한 여자》

 공선옥·김미월

 유유

 2012.7.20.



강경애라는 작가가 없었다면 내가 감히 어디 가서 ‘작가가 나온다면 바로 너희들처럼 가난하고 너희들처럼 학원도 못 가고 너희들처럼 돈도 없는 아이들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15쪽)


캐테 콜비츠의 자화상을 보다 나는 흠칫 놀랐다. 언젠가 어두컴컴한 부엌 부뚜막에 홀로 앉아 계시던 내 어머니의 모습이 거기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28쪽)


기자가 카슨에게 늦은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하자 그녀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때로는 결혼한 남자 작가들이 부러워요. 아내가 밥도 해주고 돌봐주니까요. 불필요한 방해를 받지 않으니 시간도 절약되잖아요.” (51쪽)


예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이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이미 삶 자체가 빛날 수밖에 없었던 아름다운 예술가, 아름다운 여성, 아름다운 어머니 펄. 그녀에게 경배를. (112쪽)



  락슈미바이라는 분이 걸어온 길을 다룬 인도 영화를 보았습니다. 인도에서 뭇사내가 벌벌 떨면서 영국 동인도회사 앞에서 무릎을 꿇지는 않았을 테지만, 무척 많다 싶은 사내들은 동인도회사 허수아비가 되거나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짐기에 어떠했을까요? 뭇사내는 당차게 일어나서 맞섰을까요, 아니면 벌벌 떨면서 제국주의 군화발에 혀를 핥았을까요.


  모아나, 홈, 인사이드아웃, 프로즌, 트롤, 뮬란, 포카혼타스 같은 만화영화를 즐겁게 보았는데, 문득 돌아보니 적잖은 만화영화에서 단단한 울타리를 깨거나 부수는 가시내가 나옵니다. 단단한 울타리란 저 너머에 있기도 하고, 우리 마을이나 집에 있기도 하고, 우리 마음에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가시내만 울타리를 깨거나 부수지 않아요. 사내도 울타리를 깨거나 부수는데, 울타리를 깨거나 부술 적에는 언제나 사이좋게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해요.


  《내가 사랑한 여자》(공선옥·김미월, 유유, 2012)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엮는 이야기책입니다. 가시내로서 가시내를 사랑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고, 온누리에서 저마다 다르지만 똑같이 울타리를 깨거나 부수려 했던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사내가 세운 울타리를 사내가 깨기도 합니다만, 가시내가 세운 울타리를 사내가 깨는 일은 드뭅니다. 없다시피 하기도 하지요. 어떤가요, 우리 삶자리에서 가시내가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 있을까요? 모든 울타리는 사내 스스로 벌벌 떨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바보스레 세운 무덤은 아닐까요?


  힘으로 세운 울타리는 힘으로 깨거나 부술 수 없습니다. 해님이 따순 볕으로 흐물흐물 녹여내어 껍데기를 벗기듯, 어떤 힘울타리도 작은 씨앗 같은 사랑으로 살살 녹여서 허울을 벗기지 싶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님이란, 포근한 겨울볕이요 따스한 봄볕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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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환자 생활 - 병원 가서 기죽지 않고 주체적인 환자 되기
버니 시겔 외 지음, 문 실버만 옮김, 김철환 감수 / 샨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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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74


《당당한 환자 생활》

 버니 시걸·요시프 오거스트

 문 실버만 옮김

 샨티

 2019.3.28.



어째서 병원들이 그토록 위험한 장소로 변질된 것일까? 우리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의료 기술이 인술을 대체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기술로 생명을 살릴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인간이 인간에게만 제공할 수 있는 보살핌과 배려를 대신할 수는 없다. (20쪽)


‘병원hospital’이라는 단어는 원래 ‘환대hospitality’라는 어휘에서 파생된 말이다 … 호텔 관리인이라면 누구나 투숙객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유치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의료 전문가들은 사람을 돌보는 방법에 대해 그들만큼도 모르는 것일까? (22, 23쪽)


치유는 삶과, 또 사랑과 관련이 있다. 치유는 온전함 혹은 신성함을 경험하는 일이며, 삶과 창조주와 하나가 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반면 치료는 육체와 관계가 있다. (55쪽)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고 소중하며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많은 사랑을 주고,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덜 신경 쓰는 지혜를 알게 될 것이다. (189쪽)



  누구나 다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아플 수 있고, 몹시 앓다가 쓰러질 수 있습니다. 누구는 다쳤다가 말끔히 낫습니다. 어떤 이는 아파서 쓰러진 뒤에 도무지 일어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아픈지 안 아픈지 모르는 채 가볍게 지나갑니다.


  똑같은 일이 생길 적에 왜 다른 길로 갈까요. 똑같이 다쳤어도 왜 다르게 나을까요.


  손가락이 긁혀 피가 난다며 뭘 자꾸 붙이려 합니다. 때로는 뭔가 붙이고서 일할 수 있고, 때로는 아무것도 안 붙이고 안 바른 채 저절로 낫도록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만, 다칠 적에는 한 가지를 헤아려야지 싶어요. 다친 까닭은, 앞으로 한결 튼튼한 새살이 돋으려는 뜻이라고 말이지요.


  《당당한 환자 생활》(버니 시걸·요시프 오거스트/문 실버만 옮김, 샨티, 2019)은 오늘날 병원이 ‘사람을 반기며 따스히 맞이하는 곳’에서 차츰 멀어지는 까닭을 곰곰이 짚으면서, ‘아픈 이 스스로 왜 아프고 어떻게 낫는 길’을 갈 만한가를 밝히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아플 적에는 씩씩하게 아프면 됩니다. 지치거나 힘들어서 쓰러질 적에는 신나게 쓰러져서 쉬면 됩니다. 앓아누울 적에는 마음껏 앓아누우면서 새롭게 깨어날 우리 몸을 그리는 마음이 될 수 있어요.


  아픈 모습을 그리기에 내내 아플 수 있습니다. 튼튼한 모습을 그리기에 아픈 곳을 가만히 스스로 어루만지면서 다부지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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