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김해자 지음 / 아비요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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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07 : 사람이 다 똑같다면 무시무시하겠지요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

 김해자

 아비요

 2013.7.7.



내 친구는 개는 물론 나무와도 대화한다. 산골 길고 긴 하루 내내 말 거는 사람은 없지만 내 친구가 말 걸 친구는 무진장 많다. 언젠가 아궁이 옆에 있는 개복숭아나무에 칡넝쿨이 감겨 올라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칡넝쿨에게 말했단다. “너네 날 자리가 아닌데 저렇게 개복숭아가 숨도 못 쉬고 꽃도 못 피고 하니 할 수 없이 너네를 쳐내야겠다. 미안하다.” (61쪽)


산에 올라가다 아이들이 내 IQ를 물었다 … 그 아이가 초콜릿 하나를 내 손에 꼭 쥐어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쌤, IQ 나빠도 괜찮아요. 마음씨만 좋으면 되죠 뭐.” 웃음을 참다 그 아이를 꼭 껴안고 말았다. (65쪽)


도토리 한 알에는 미래의 떡갈나무가 이미 다 들어 있다. 그 작은 한 알에 들어 있는 미래의 나무가 그를 올려주고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도토리에 뿌리가 뻗고 줄기가 솟고 잎이 생겨 피어난다. (165쪽)


우리 자랄 때만 해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먹이고 재워 주기만 했다. 소처럼 방목했다고나 할까. 산과 들, 논과 밭, 풀과 나무, 돼지와 소 닭 등 열거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무변광대한 동물과 식물과 흙과 돌과 바람이 우리를 키웠다. (290쪽)


아침이 밝으면 늘 새로운 날이듯 정신은 늘 초짜여야 한다. (328쪽)



  이제는 어떠할까 모르겠습니다만, 나무나 풀하고 말을 섞는 사람을 돌았다고 여기는 눈은 좀 수그러들었지 싶습니다. 돌이나 집하고 말을 주고받는다든지, 새나 벌레하고 말을 나누는 사람을 미쳤다고 여기는 눈도 좀 잦아들었지 싶어요. 그러나 아직 사람 아닌 숨결하고 말을 하는 사람을 얄궂게 바라보는 눈길은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나무랑 말을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어쩌면 고작 백 해가 안 된 일일는지 모릅니다. 신문도 책도 없던, 아니 흙을 만지며 씨앗을 심어 가꾸는 사람이 가득하던 무렵에는, 으레 누구나 흙이랑 말을 하고 풀잎이며 바람하고도 얘기를 했지 싶어요. 고작 백 해 앞서까지만 해도, 그때에는 벼슬아치나 나리가 아니라면 마땅히 나무랑 말할 줄 알던 삶이었다고 느껴요.


  시인 아주머니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김해자, 아비요, 2013)를 펴면 재미난 사람들 모습이 잇달아 흐릅니다. 나무하고 이야기하는 벗님, 시인 아주머니가 아이큐 낮다는 말을 듣고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달래는 어린이, 그리고 시인 아주머니 스스로 떠올리는 숱한 이웃이 새삼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시인 아주머니부터 ‘아리송한’ 사람일 수 있어요. 시인 아주머니가 만나는 사람이 하나같이 아리송하다기보다 아리송한 사람이 아리송한 사람을 만난달까요. 그리고 아리송한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아름답다지요. 알 수 없는 깊이하고 너비로 사랑을 나누는 그들 숨결은 더없이 알차면서 알뜰하다지요.


  그러고 보면 그렇습니다. 다 똑같아 보이는 곳은 재미가 없어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차림새에, 키에, 몸매에, 얼굴에, 목소리에, 생김새에, 몸짓에, 또 똑같은 자가용을 몰고 똑같은 아파트에 살며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집안 모습이라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다 다른 집에서 다 다른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숨결인 만큼, 언제나 다 다른 빛으로 자라서 다 다른 어른으로 설 적에 아름답지 싶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이니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요. 참으로 아리송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이 아리송한 맛으로 아름다운 길을 걷고, 그 아름다운 길에서 알뜰살뜰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운 하루가 될 만하지 싶습니다.


  새해에 올려다보는 별빛은 지난해와 다르게 눈부십니다. 아하, 그렇지요. 밤하늘에 바라보는 별 가운데 똑같은 별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아리송한 노릇이지만, 이렇게 다 다른 별빛이 새삼스레 어우러져 빛나니, 밤도 낮도 언제나 아름답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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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의 공부 - 소설가 농부가 텃밭에서 배운 작고 서툰 손의 힘
조두진 지음 / 유유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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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11 : 도시야말로 텃밭이 꼭 있어야


《소농의 공부》

 조두진

 유유

 2017.10.14.



내 아들은 나보다 100배 이상 돼지고기를 먹었지만, 나만큼 돼지고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기회는 없었다. (18쪽)


사람은 겨울에 수박이나 딸기를 먹지 않아도 탈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겨울에도 여름철 과일을 먹기 위해 수많은 오염원을 가동하고, 이를 비용으로 지불한다. (37쪽)


사과 재배 농가에서는 추석 대목시장을 겨냥해 사과를 출하하기 위해 성장촉진제를 살포한다. (55쪽)


농산물 유통 담당 공무원과 술자리에 마주앉아 어지간히 취한 뒤에 물었다. “진짜 전수 조사합니까?” “잔류농약 검사비용이 얼만데 전수 조사합니까? 하나하나 다 조사하면 친환경 농산물 값이 지금보다 훨씬 비싸져야 합니다.” (110쪽)


자연 속에서 성장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과 친숙해지고, 계절을 잘 느끼고, 자연을 관찰하는 능력이 확실히 발달한다. (206쪽)



  서울에서 사는 아이라면 서울에 있는 살림을 늘 바라보고 느끼면서 잘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숲을 품고서 사는 아이라면 숲을 둘러싼 살림을 언제나 마주보고 받아들이면서 잘 알아차리기 마련이에요. 어느 아이는 날씨를 알리는 방송을 들어야 날씨를 압니다. 어느 아이는 바람을 맛보거나 읽으면서 날씨를 알아요. 어느 아이는 씽 달리는 자동차가 어느 이름인지 알고, 어느 아이는 자동차가 지나가거나 말거나 안 쳐다봅니다.


  슥 스치고 지나가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아보는 아이가 있다면, 살짝 나무를 스치고 지나갔는지 아닌지 못 느끼는 아이가 있어요. 꽃내음을 물씬 느끼며 알아보는 아이가 있고, 꽃내음이 나는지 안 나는지 안 쳐다보는 아이가 있어요.


  조그마한 책 《소농의 공부》(조두진, 유유, 2017)는 도시란 터전에서 살아가면서도 텃밭을 누리고 싶은 마음을 들려줍니다. 도시이기에 더더욱 텃밭이 대수롭다는 뜻을 밝히고, 도시라면 더더구나 스스로 앞장서서 곳곳에 텃밭을 돌보면서 숨통이 트이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해요.


  텃밭은 어떤 곳일까요? 집 곁에 있는 땅뙈기입니다. 푸성귀를 심어서 거두기도 하는 땅이자, 온갖 풀을 만나는 땅이에요. 푸성귀 아닌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땅이면서, 맨손이며 맨발로 흙을 만질 만한 땅입니다.


  서울에 공원만 있다면 심심하겠지요. 보기좋게 가꾸는 나무하고 거님길만 있는 공원에서라면 스스로 살아서 숨쉬는 노래가 흐르기 어렵겠지요. 철마다 다른 빛을 느끼고, 살림마다 새로운 풀빛을 먹는 곳이 텃밭이지 싶습니다.


  작은 책 《소농의 공부》는 도시에서 텃밭이 늘어나기를 바라면서 글쓴님 스스로 살펴서 알아낸 이야기를 찬찬히 보탭니다. 어떤 과일에 어떤 성장촉진제가 얼마나 쓰였는가를 알려줍니다. 밥상머리 살림을 지킬 공무원이 막상 ‘잔류농약 검사’를 허술하게 한다는 대목도 슬며시 곁들입니다.


  굳이 너른 땅을 누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푸성귀를 거두는 밭 한 자락을, 아이들이 흙놀이를 할 풀밭 한 자락을, 나무그늘을 누리며 나무열매도 맛볼 한 자락을, 이웃하고 어우러져서 도란도란 수다꽃을 피우려고 걸상을 놓을 한 자락을 다같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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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일기 - 서민 교수의 매일 30분, 글 쓰는 힘 밥보다
서민 지음 / 책밥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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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05 : 하루를, 마음을, 사랑을 쓰기에 일기


《밥보다 일기》

 서민

 책밥상

 2018.10.29.



글은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써야 늡니다. (29쪽)


자, 그렇다면 일기를 매일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38쪽)


이참에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날 일기를 쓰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73쪽)


이 말을 한 이유는 남이 보기에 사소한 일들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5쪽)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하루에 얼마나 오래 생각하십니까? (247쪽)



  열두 살 큰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늘 글살림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스스로 한글을 일찍 깨쳤고, 뭔가 끄적이기를 무척 즐겼습니다. 큰아이가 터뜨리는 놀라운 말을 아버지가 수첩에 꼬박꼬박 옮기기를 열 해를 하다가, 이제는 큰아이 스스로 ‘제(큰아이) 말’을 제 손으로 제 공책에 적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는 “하루를 남겨요”입니다. ‘일기’라는 말을 굳이 안 씁니다. 굳이 안 쓸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어린이가 처음 맞닥뜨리기에는 매우 힘겨운 낱말 가운데 하나가 ‘일기’입니다. 한자말이라서 아이한테 높은 울타리가 되는 말은 아니라고 여겨요. ‘일기’라고 툭 내뱉으면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를 하나도 알기 어려울 뿐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하고 “하루를 남겨요”란 말을 쓰는 까닭은 수수해요. 말 그대로이거든요. “자, 오늘 하루를 남겨 볼까?” 하고 말합니다.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어느 때이든 좋습니다. 마음에 남고 몸에 새긴 이야기를 스스로 공책에 옮깁니다.


  글쓰기를 다루는 《밥보다 일기》(서민, 책밥상, 2018)는 무엇보다 “일기를 쓰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은 하나를 통틀어 오롯이 ‘일기를 이렇게 쓸까요?’ 하고 묻습니다. 다만 이 책은 어린이나 푸름이 눈높이에 맞추지 않습니다. 적어도 서른 살 즈음 눈높이에 걸맞다고 느낍니다. 또는 마흔 살 언저리에 읽을 만하구나 싶어요.


  학교에서는 ‘일기’라 하고, 군대나 회사나 기관에서는 ‘일지’라 합니다. 말 그대로 “그날그날 있던 일을 적는 글”입니다. 이런 흐름으로 본다면 “하루 쓰기”이기도 하면서 “그날 쓰기”라고도 할 만해요. 살을 붙인다면, 오늘 하루를 살아온 이야기를 쓰기요, 그날그날 생각하고 느낀 모든 삶을 쓰기라 할 테지요.


  글쓴님이 《밥보다 일기》에서 살짝 짚기도 합니다만, 꾸며야 하는 글이 아닙니다. 예뻐 보이거나 멋져 보여야 할 글이 아닙니다. 남한테 자랑하거나 드러내려고 쓸 글이 아닙니다. 누리집 같은 곳에 올리는 글이라 하더라도 ‘남한테 보이려는 뜻’에 앞서 ‘내가 언제라도 다시 읽고서 삶을 스스로 되새기려고 쓸 글’입니다.


  우리 삶을 담는 글이니, 우리가 누리집에 올린 글에 누가 덧글을 남겨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기울여서 덧글을 쓰거나 그냥 지우거나 지나가면 되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오늘 하루를 꾸밈없이 쓴다면, 모든 사람이 스스로 겪고 맞닥뜨리며 느낀 삶을 고스란히 옮긴다면, 아마 우리 삶터는 대단히 달라지리라 생각해요. 속마음을 감추기에 겉치레가 불거지거든요. 속내를 나누지 않기에 허울좋은 겉모습이 커지거든요. 하루를 쓰고, 마음을 쓰며, 사랑을 쓰는 글이 되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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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벼 쌀 - 겨레의 숨결 국토의 눈물
김현인 지음 / 전라도닷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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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10 : 다 같은 논이 아닌, 다 다른 논으로


《논 벼 쌀》

 김현인

 전라도닷컴

 2019.10.31.



논둑을 세우던 날, 하늘을 땅 위에 새기던 날이면 내 육신의 목숨줄도 이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니 천지간의 목숨이 복되고도 귀하구나, 굵은 땀에 흔들려 뼛골이 다 닳는들 하나하나 흙을 일으키고 돌을 옮기며 세세연년의 복전을 기약하노라. (47쪽)


벼의 반응은 직선적이다. 너희는 내가 필요한가. 그렇게 벼는 묻고 있는 듯했다. (67쪽)


1962년부터 각급학교에서 보리 혼식을 감시하는 도시락 검사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고, 이는 향후, 어느 역사에서도 볼 수 없는, 산골 누옥의 밥상머리까지 들여다보는 강력한 국민 통제수단으로 자리잡는다. (142쪽)


어찌 보면 여러분은 똑똑해질 것이 아니라 한없이 다양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217쪽)



  겨울이 저물고 봄이 될 즈음, 해마다 시골마을에서는 마을지기 알림말이 구석구석 퍼집니다. 어떤 알림말인가 하면, 새해에 논에 심을 볍씨를 두어 가지 가운데 골라서 마을지기한테 말해 달라는 알림말이에요. 요즈막은 웬만한 논마다 농협에서 품종개량을 한 볍씨를 내다팔고, 시골 흙지기는 농협 볍씨를 사다가 심습니다.


  가을에 거둔 벼를 농협에 내다팔자면, 봄에 농협 볍씨, 그러니까 씨나락을 사야 하고, 농협에서 내다판 씨나락이어야 농협에 가을벼를 팔 수 있어요. 나라에서 사들이는 모든 벼는 나라에서 심으라고 콕 집어서 흙지기한테 파는 몇 가지 볍씨입니다.


  시골지기로서 흙을 만진 나날을 갈무리한 《논 벼 쌀》(김현인, 전라도닷컴, 2019)을 읽으며 논살림 얼거리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나라에서는 왜 똑같은 볍씨만 심도록 이끌까요? 지난날에는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또 집마다 다른 볍씨를 심었다는데, 왜 오늘날에는 모조리 같은 볍씨를 심어야 한다고 북돋울까요?


  마을 어르신 말씀을 들으면, 농협에서 파는 볍씨는 심어서 가을알을 거둔 다음에 이듬해에 심으면 그럭저럭 나지만, 이태 뒤부터는 거의 안 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라(농협)에서 흙지기한테 팔아서 온나라 논을 채우는 여느 볍씨는 ‘씨알을 거두어 심을 수 없는 씨앗’인 셈입니다. 여느 밥상에 오르는 쌀이란, 여느 밥집에서 다루는 쌀이란, 땅에서 새롭게 자랄 수 없는 알맹이랄까요.


  나라에서 볍씨를 다룬다면, 나라에서는 통계를 내거나 돈을 벌기 쉽겠지요. 그러나 다 다른 고장이며 고을이며 마을에서 다같은 볍씨를 심다가는 비바람이나 가뭄에 쉽게 큰일이 날 수 있습니다. 고장마다 날씨가 다를 텐데 고장마다 엇비슷한 볍씨를 심도록 한다면, 또 한 고장이어도 고을이며 마을마다 날씨가 다르기 마련인데, 모조리 같은 볍씨로 맞추려 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까요? 무엇보다도 ‘농협 볍씨를 손수 심고 거두어 새로운 씨나락으로 삼을 수 없도록 품종개량’을 했다면, 이러한 쌀이 우리 몸에 얼마나 이바지할까요?


  흙지기 김현인 님은 《논 벼 쌀》이라는 책을 쓰면서 이 대목을 아프게 밝힙니다. 이러면서 외치지요. “사람들이 똑똑해지기보다는 다 다르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우리가 나아갈 길은 ‘쉬운 관리와 표준화’가 아닌, 고장맛 고을멋 마을살림을 다 다르게 가꾸면서 ‘서로 다르기에 아름답게 새로 어우러지는 사랑’이 될 노릇 아닌가 하고 이야기해요.


  우리가 나아갈 길이란, 우리 삶터를 가꾸는 길이란, 우리 마음이며 몸을 살찌우는 길이란 무엇일는지 돌아봅니다. 밥 한 그릇에 담는 온누리를 흙지기뿐 아니라 나라일꾼도 어린이도 푸름이도 풀내음하고 바람결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빕니다. “보리 혼식”을 밀어붙이고 나중에는 ‘혼분식’이라 해서 하루 한끼는 반드시 밀가루를 먹어야 한다고 윽박지르던 새마을운동이었는데, 논뿐 아니라 밥상까지 지켜보며 억누른 그 눈초리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셈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 다만, 이 책은 글결이 너무 딱딱하고 덧없는 한자말을 잔뜩 써서 아쉽다. 흙지기님은 왜 이렇게 낡은 중국 말씨에 일본 한자말을 잔뜩 집어넣어서 글을 써야 했을까? 흙말을, 시골말을, 마을말을, 무엇보다도 나락말을 쓴다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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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 여든 앞에 글과 그림을 배운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
권정자 외 지음 / 남해의봄날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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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03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순천 할머니 스무 사람

 남해의봄날

 2019.2.1.



하루는 남편이 그 집에서 나오는 것을 붙잡아 나는 한 달 동안 뼈빠지게 일하고 왔는데 헛짓거리 하고 있었냐고 했더니 남편은 화를 못 이기고 연탄을 들고 와 나한테 던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연탄에 맞아 걷지를 못했습니다. (31쪽/안안심)


엄마는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했습니다. 나는 동생을 업고 젖을 먹이러 다녔습니다. 쌀을 씹어 죽을 끓여 먹이기도 했습니다. 누덕바지로 만든 기저귀에 오줌을 싸서 내 등이 다 젖었습니다. (79쪽/하순자)


남편은 자기 생일날 밥을 빨리 안 준다고 상을 엎어 밥상이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상을 새로 안 사고 석 달 동안 땅바닥에 밥을 줬더니 그 뒤로는 상을 안 엎었습니다. (127쪽/김영분)


나는 큰아들이 기특했습니다. 그래서 큰아들에게 흙이 너와 잘 맞는 것 같다고 흙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라고 했습니다. (143쪽/권정자)



  오늘 마을에서 마주하는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는 아닙니다. 어느덧 아흔 여든 일흔이란 고개를 넘어가는 할머니도 서른 살이나 스무 살 젊은이였던 나날이 있고, 열대여섯 살 푸른 나날이 있었으며, 예닐곱 살 어린 나날이 있었어요. 어린 나날이나 푸른 나날은 어느덧 지나갔고, 젊은 나이도 지나갔으며, 늘그막을 오래오래 보낼 뿐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오늘 여든 살 할머니가 스무 살 젊은이였던 예순 해 앞서는 1960년대요, 오늘 아흔 살 할머니가 열 살 어린이였던 여든 해 앞서는 1940년대예요. 그무렵에는 어떤 젊거나 어린 하루를 누렸을까요. 그무렵 그분들 어머니나 아버지는 어떤 어른스러움을 보여주었을까요.


  순천에서 늘그막을 누리는 할머니 스무 사람이 쓴 글하고 그린 그림으로 엮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순천 할머니 스무 사람, 남해의봄날, 2019)를 읽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 할머니마다 떠올리는 어리거나 젊은 날이 매우 모질거나 아프거나 슬픕니다. 툭하면 맞고, 거친 말소리를 듣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고단하거나 괴롭거나 힘든 나날입니다. 둘째, 모두 시골에서 나고 자란 할머니인데 이 책에 흐르는 글은 모조리 서울 표준말입니다. 매우 아리송했습니다. 시골말로 살아온 시골 할머니가 왜 서울 표준말로 글을 썼지? 스무 할머니는 스무 가지로 다른 삶길을 걸어왔는데, 서울 표준말에 ‘갇힌’ 글은 다 다른 할머니가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른 삶을 맞닥뜨리면서 헤쳐내거나 이겨내거나 받아들이면서 삭인 숱한 눈물이며 멍울이며 생채기이며 고름이며 앙금을 제대로 담아내기에는 어렵지 싶더군요.


  이 책이 안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무 할머니 살아온 이야기는 매우 애틋합니다. 더구나 지난날을 미움으로 그리지 않아요. 맞든 거친말을 듣든 언제나 가로막혀서 힘겨워야 했든, 할머니는 어리거나 젊은 나날부터 조용조용 한 걸음씩 내딛었습니다. 이녁 아이들은 ‘이녁이 겪은 짓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매우 크셨지 싶습니다. 이녁 아이들을 어떤 사랑으로 돌보고 아꼈는가를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늘그막에 비로소 한글을 깨치고서 스스로 이녁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큰가도 느낄 만합니다.


  전라남도 한켠에서 벌써 열 해 넘게 나오는 잡지 〈전라도닷컴〉이 있습니다. 이 잡지를 펴면 시골 할매 할배 삶이 시골말 그대로 흐릅니다. 시골 할매 할배가 읊는 말을 굳이 서울말로 바꾸지 않습니다. 곡성 할매라면 곡성말대로, 화순 할매라면 화순말로, 담양 할매라면 담양말로, 부안 할매라면 부안말대로 담더군요.


  시골 할매한테 한글을 가르칠 적에 서울말을 바탕으로 가르치기보다는 할머니마다 어릴 적에 듣고 자란 말씨를 가만가만 받아들여서 그 말씨를 할머니 스스로 그 시골말로, 삶말로, 오랜말로, 사랑이며 아픔이며 이야기가 서린 그 고장말로 나타내도록 북돋우면 한결 좋았으리라 생각해요.


  이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에는 빛깔펜으로 담은 그림만 담았는데, 할머니가 연필로 담은 그림이 있는지 궁금해요. 갖은 빛깔을 그야말로 곱게 살려서 빚는 그림이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연필로도 온갖 빛깔을 나타낼 수 있어요. 때로는 연필로 할머니 이녁 삶이며 눈길을 한결 수수하고 투박하지만 더욱 짙게 나타낼 수 있기도 합니다. 책을 덮으면서 자꾸자꾸 이 생각이 들어요. 시골 할매한테 시골말이 ‘자랑스럽다기보다 사랑스럽다’는 대목을 일깨워 주면 좋겠어요. 빛깔펜으로 빚는 그림도 고운데 ‘연필로 사각사각 찬찬히 빚는 그림도 사랑스럽다’는 대목을 넌지시 짚어 주면 좋겠어요. 시골말로 삶을 노래하고, 시골스러운 빛으로 하루를 나누는 새로운 책을 기다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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