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책 파는 헌책방은 꾸준히 는다

 


 고시책 파는 헌책방은 꾸준히 늘어납니다. 또, 이런 헌책방은 제법 장사가 잘되는 듯하고, 아직 ‘고시책 헌책방’ 가운데 문닫은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고시책을 파는 곳은 새책방도 적잖이 잘되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시책이나 수험서를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런 책만 다루는 책방이 새책방이나 헌책방으로 얼마든지 문을 열 수 있겠지요. 매장으로든 인터넷으로든.

 

 그러고 보면, 사진책이나 그림책(미술―디자인까지)을 다루는 전문 헌책방, 인문사회과학책을 다루는 전문 헌책방, 시모음이나 소설책만 다루는 전문 헌책방, 전집이 아닌 낱권 어린이책을 다루는 전문 헌책방, 만화책만 다루는 전문 헌책방 들은 문을 열 수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런 책을 꾸준하게 찾는 사람이 적으니까요. 또, 이런 책을 꾸준하게 펴내는 출판사도 적고요.

 

 〈한겨레21〉에서 “2006 올해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별책부록을 내서 잡지를 사는 사람한테 덤으로 줍니다. ‘예스24’와 함께 기획해서 낸 별책부록인데, 이 책에 이름을 올린 “2006 올해의 책”을 보니, 우리 나라 사람들 눈높이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 기자들이 알아보는 책, 평론가들이 책소개를 쓴다며 다루는 책이 무엇인가도 가만히 짚어 봅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성이 없음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4339.12.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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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2 강풀 순정만화 5
강풀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 순정만화(1ㆍ2) - 강풀  2006.10.31 10:13

- 책이름 : 순정만화(1ㆍ2)
- 글/그림 : 강풀
- 펴낸곳 : 문학세계사(2004.2.∼2004.5.)
- 책값 : 한 권에 12000원씩


 인터넷만화를 그리는 이 가운데 나라안에서 가장 이름이 높다는 강풀(강도영) 님. 손이 아닌 셈틀로 그리는 만화를 썩 내켜하지 않기에 이분 만화는 몇 번 지나가며 보기는 했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았습니다. 다른 인터넷만화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손쉽게 그리려 한다는 생각도 들고, 기계로 꾸민 빛깔이 제 눈에는 아주 따갑고 낯설고 사람냄새가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온갖 빛깔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셈틀입니다. 하지만 온갖 빛깔을 다 나타낼 수 있으면 뭐하나요. 사람냄새, 풀냄새, 꽃냄새, 흙냄새가 없는걸요. 이렇게 따지면 요즘 물감도 자연에서 얻기보다는 화학물질을 뒤섞어 만드니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그나마 질감이라도 있기는 하지만.

 한편, 너무 손쉽게 그린다는 느낌이 드는 인터넷만화는 ‘누구나 배워서 그릴 수도 있’다는 좋은 대목이 있어요. 뭐, ‘누구나 배워 쉽게 그린다’고 해도 아무나 대충 그릴 수 있는 그림이나 만화가 아닙니다. 그만큼 애쓰고 갈고닦아야 합니다. 다만 손그림 만화보다 품이 적게 들고, 어차피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여주는 세상이라면 손그림을 긁어서 인터넷에 띄우나, 처음부터 셈틀로 그려서 띄우나 마찬가지일 테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셈틀로 그리는 편이 보기에도 더 낫다고 할 수 있어요. 손그림 만화는 종이에 찍어서 맨눈으로 보아야 제맛이고, 셈틀그림 만화는 인터넷으로 보아야 제맛이니까요. 강풀 님 《순정만화》도 어느 만큼은 ‘종이보다 인터넷 화면’이 더 보기에 낫습니다.

 강풀 님이 그리는 만화는 널리 사랑받고 좋은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언제나 세상살이에 가까이 다가서면서 우리들한테 ‘어떤 생각이나 이야기’를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지 않아요. 자기가 겪고 느끼고 본 그대로 꾸밈없이 드러내 보일 뿐입니다. 머리로 꾸미거나 지은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낀 이야기를 자기 입이나 동무들 입을 거쳐서 들려줍니다. 그러니 이분 만화에는 숨결이 남아 있습니다. 싱싱합니다. 파릇파릇한 기운이 있습니다. 잠깐 보고 지나가면 그만인 다른 인터넷만화와는 달리,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는 힘, 기운, 느낌이 서려 있어요.

 낯선 사람을 만나며 차근차근 인연을 쌓다가 자기 삶이 차츰 바뀌고, 어느 결엔가 서로를 생각하고 바라는 마음이 사랑으로 탄탄하게 자리잡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순정만화》입니다. 사내 셋, 계집도 셋, 이들을 둘러싼 크고작은 인연이 하나씩 엉키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면서 사랑이든 만남이든 헤어짐이든 미움이든 멀리 있지도 않으나 바로 옆에 있기만 하지도 않음을 가만히 느끼도록 합니다.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보지 못하고,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보이는 사람 사귐을 생각하도록 합니다.

 책을 덮고 생각해 보면, 참 흔한 이야기입니다. 뻔한 줄거리입니다. 책이름 그대로 ‘서로서로 좋게좋게 끝내는’ ‘순정만화’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뻔하고 흔한 이야기를 잘 그리네요. 뭐랄까, 홀가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눈에 힘을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림 그린 이부터 어깨에 힘을 빼고 그렸으니, 그림 보는 우리들도 눈에 힘을 빼고 즐길 수 있습니다. 모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요 놀이라 하겠으나 ‘어떻게 먹고살까’를 생각하지 않고 바삐 돌아가는 우리들한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우리는 또 우리대로’ 어떠한 길을 스스로 찾아가면 좋을까를 넌지시 느끼게 해 줍니다.

 문득, 만화쟁이 강풀 님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누구나 다 아는 대로’ 꾸밈없이 그릴 줄 아는 사람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다른 만화쟁이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누구나 다 모르는 줄’ 잘못 생각하는구나 싶고, ‘누구나 다 모를 만한 이야기를 억지로 찾으려’ 바둥거리고 있으니, 마음을 적시고 즐거운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는 작품을 남기지 못하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만화대사로 쓰는 말을 좀더 다듬고 걸러낼 수 있으면 훨씬 좋은 작품으로 이어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책값을 지나치게 비싸게 붙였고, 책도 지나치게 겉멋들여서 꾸몄습니다. 그린이와 줄거리하고는 하나도 안 어울리는 부풀린 꾸밈새 때문에, 지난 이태 동안 이 책을 거들떠보지 않다가 이제서야 찾아서 보았습니다. (4339.10.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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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메리베드 로비엑스키 지음, 작은 우주 옮김 / 달팽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환경]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2006.11.27 02:11

- 책이름 :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
- 글쓴이 : 메리베드 로비엑스키
- 옮긴이 : 작은우주
- 펴낸곳 : 달팽이(2004.7.21.)
- 책값 : 12000원


.. 그는 해뜨기 전 새벽에 일어나 들판을 돌아다녔다. 학교를 빼먹고 숲속에서 지내기도 했다 ..  〈43쪽〉


 아침마다 작은 새들이 저를 깨웁니다. 새들은 창가에서 파닥거리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소리를 내거든요. 요즘은 딱새 몇 마리 구경하는 일로 아침 한때가 즐겁습니다. 딱새는 하늘에 뜬 채로 몇 초 동안 가만히 있기도 하는데(쉼없이 날갯짓을 하며), 저 작은 몸에, 날개에, 저렇게 빠른 날갯짓으로 참 잘 나는구나 싶어 놀랍습니다.

 박새와 콩새도 자주 보이는 새 가운데 하나. 요 작은 새들은 아주 조금만 먹어도(사람과 견주어) 되겠지요. 조금만 먹어도 얼마든지 자연 삶터에서 잘 어우러지는 목숨붙이일 테지요.


.. 세상의 압박받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눈물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 (알도 레오폴드/편지) 〈63쪽〉


 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많았고, 날이 퍽 포근했습니다. 예전 겨울이었다면 눈이 왔을 날씨인데, 요즘 겨울은 퍽 따뜻하기 때문에 비가 내립니다. 그러나 눈구름이 아닌 비구름임을 느끼는 이 드뭅니다. 이 눈(아닌 비였지만)이 따뜻하게 온 세상을 덮으면서 크고작은 날벌레들을 모두 죽여서 땅에 묻히게 하여 이듬해에 흙에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던 흐름은 차츰차츰 깨지는데, 이를 느끼는 이도 드뭅니다. 아직까지 모기가 다 죽지 않았음을 느끼기는 해도, 왜 모기가 안 죽었는지 깊이 생각하며 자기 삶을 돌이켜보고 바꾸려하는 이도 드뭅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맘때에는 몹시 추워서 바들바들 떨었는데(올해와 견주면), 올해는 그다지 안 춥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난해보다 지지난해가 덜 추웠고, 지지난해보다 지지지난해가 덜 추웠습니다. 0도 아래로 10도쯤 떨어지는 날씨는 아무것도 아닌 지난날이었지만, 이제는 0도 아래로 1도만 내려가도 강추위가 온 듯이 느끼는 요즘 사람들입니다. 몸은 몸대로 여려빠지고, 마음은 마음대로 곪아버렸달까요.


.. 생물학자들 대부분이 개체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레오폴드 교수님은 개체군이란 개념을 생각하고 있었다. … 개체군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을 때, 교수님은 생태계와 그 생태계의 일부로서의 인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 교수님은 자연의 보존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의 융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  〈246쪽〉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또 서울에서 시골로 돌아오는 길에, 수없이 많은 자동차와 부대낍니다. 이 자동차들을 가만히 보면, 다른 자동차한테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도 보이지만, 다른 자동차를 윽박지르듯이 다니는 사람도 보입니다. 어느 쪽이 더 많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와 자동차끼리도 싸우고 윽박지르고 밀고 당기는 사람들이, 자동차와 자전거였을 때, 또 자동차와 사람이었을 때, 또 자전거와 사람이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우리한테 다가올까요.

 경주하는 자동차는 경기장에서만 달려야 할 텐데, 보통 찻길에도 함부로 끼어들어 큰일입니다. 경주하는 자전거도 경기장에서만 달려야 할 텐데, 보통 자전거길에도 함부로 끼어들어 큰일입니다. 무기는 제 나라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무기를 많이 만들어 가진 나라치고 힘여린 나라로 쳐들어가지 않은 나라란 없는 지구 역사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중요하고 맨 먼저’라고 외치면서 ‘자연은 사람들 목적에 알맞게 개발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치고 ‘자연에서 먹을거리-입을거리-쓸거리-잠잘곳’을 안 얻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4339.11.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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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문학] 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2006.12.24 00:13

- 책이름 : 유모아 극장
- 글쓴이 : 엔도 슈사쿠
- 옮긴이 : 김석중
- 펴낸곳 : 서커스(2006.11.4.)
- 책값 : 8800원


 지난달 끝무렵, 서울 마포구 공덕동을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퍽 예전부터 알고 지낸 분을 만나 낮밥을 얻어먹었습니다. 날이 제법 쌀쌀해 술 한 잔도 곁들였습니다. 술 한 잔 걸치니 몸이 좀 녹더군요. 자전거를 타고 오며 길을 헤매느라 찬바람을 많이 맞았는데, 한결 나았습니다.


.. “이봐. 이봐. 노상방뇨는 일본의 법률에 벌금형이라는 것을 모르나? 파출소에 가자.” 경관의 말투를 흉내내 큰소리로 꾸짖었다.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상대는 몸을 이쪽으로 틀면서 돌았다. 그 순간 알았던 것이다. 범인은 글쎄, 내가 가자고 했던 그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젊은 경관이었다. “이, 이, 이거야…… 죄송…… 하게 됐습니다.” 그는 바지의 단추를 채우는 것조차 잊고 송구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분명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솟아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순찰을 돌다가, 그만, 참을 수가 없게 되어서…….” “아니, 괜찮아요.” 나는 서글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  〈92쪽〉


 공덕동에서 만난 사람은 한때 ㅎ신문에서 판매부 일을 했고, 어느 날 마음먹은 일이 있어서 신문사를 그만두고 ㅇ이라는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부서 한 곳에서 일을 맡았습니다. 때때로 헌책방에서 마주치기도 해서 헌책방 가까이에 있는 맥주집에서 술잔을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안정된 돈-이름을 얻을 수 있는 ㅇ출판사 자리를 떨쳐나오고 1인출판사를 차립니다.


.. “앗, 회충이다. 조심해.” “뭐라고, 회충?” “그래. 장 속에서 자네 여동생의 영양을 빨아먹고 있는 회충이다. 자네는 어떻게 여동생에게 구충제도 먹이지 않은 거야?” “이봐, 지금 그런 말 하고 있을 겨를이 없어. 메스로 죽이는 거야. 이 회충을.” 가까이 다가온 회충을 메스로 찔렀다. 하얀 액체가 주위로 흘러나왔다. 회충이 날카로운 입을 벌리고 온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  〈29쪽〉


 1인출판사를 연 분은 사무실을 따로 낼 돈까지는 없기에, 당신이 아는 제법 큰 출판사 사무실 한켠에 책상 하나 빌려서 전화 한 대 놓고 일을 합니다.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작은 출판사는 더욱이 살아남기 어렵다고 하는 판인데, 참 대단한 용기로 일을 벌였습니다.


.. 그때, 나와 쏙 빼닮은 얼굴의 남자가 내 쪽을 향해 빙긋이 웃었다. 나와 똑같은 얼굴의 뺨에는 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와 똑같은 얼굴이, 나를 조소하듯이 빙긋이 웃었다. 저것은 나의 분신이었다. 나의 분신이, 매일 전서구처럼 직장을 통근하고, 점심시간에는 카레라이스를 먹고, 그리고 한 달에 두 번 아내한테 들키지 않게 가슴을 조마조마하며 바람을 피우고 있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  〈167∼168쪽〉


 소설책을 오랜만에 펼쳤습니다. 소설을 쓴 ‘엔도 슈사쿠’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면서, 일본 소설은 여태 몇 권 읽지 않았으나, 당신이 처음 일을 벌여서(출판사 차리기) 손수 우리 말로 옮기기까지 한 책(첫 번역책)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런데 웬걸. 생각 밖으로 재미를 느낍니다. 금세 읽히는군요. 소설이란 이런 거였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면서, 이 책 하나 엮어내려고 땀을 흘렸을 분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제대로 몰라서 그렇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큼직한 책방에서도 묻히는 책이 얼마나 많을까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 가는 책은 얼마나 많으며, 딱 한 번이라도 읽는이 손에 쥐어지지 못하는 책, 평론가들 칭찬이든 깎아내림이든 비판이든 추켜세움이든 한 번이라도 들어 보지 못하고 역사에 묻히는 책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예전에는 ‘판매국 아저씨’라 했다가(그때 그분 나이는 서른도 안 되었을 텐데), ‘편집장 아저씨’라 바꾸었다가, 이제는 ‘사장 아저씨’로 바꾸어 부르는 선배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 옵니다(그러고 보니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마구 ‘아저씨’라고 했네요).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니 참 힘들다고. 그래, 참 힘든 세상입니다. 좋은 책을 내도 좋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적은 세상, 돈을 처바른 책을 내도 돈처바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 그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엔도 슈사쿠라는 분은 《유모아 극장》이라는 이야기책을 이런 세상에 내놓았을까요. (4339.12.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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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열 권- 2006년 반가운 책
올 한 해 내 마음속에 다가온 책 10권

 보름 남은 2006년을 앞두고, 올 한 해 사들인 책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참 잘 샀구나 싶은 책이 거의 모두이지만, 책이름만 보고 잘못 샀구나 싶은 책도 있습니다. 사진책 내는 출판사들 어려움을 알기에 나라안 창작 사진책은 웬만하면 사두려고 했으나, 비싼 책값과 견주어 알맹이가 터무니없이 작은 책도 있어서 내가 괜한 짓을 했구나 싶은 책도 있습니다. 그럭저럭 괜찮으리라 생각하며 집어들었는데, 뜻밖에 참 아름답고 좋아서 눈물이 절로 흐를 만큼 마음에 드는 책도 있습니다. 읽는 동안 가슴이 벅차올라, 한꺼번에 읽기 아까워 야금야금 읽으며 한두 해에 걸쳐서 읽다가 마무리지은 책도 있어요.

 어느 책이 더 낫고 어느 책은 덜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좋고 저 책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제 살림집을 채우는 책은 모두 제 손으로 고른 책이고, 제 스스로 여러 갈래 쓰임새에 따라서 하나둘 사모은 책입니다. 제 주머니를 털어서 샀으며, 제 가방에 짊어진 뒤 자전거를 타고 시골집으로 날라 온 책입니다. 어느 한 가지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손쉽게 받아 본 책이 아닙니다. 몇 군데 단골 새책방에서도 사고, 헌책방에서 운좋게 만나서 사기도 한 책입니다. 이 가운데, 2006년 올 한 해에 나온 책으로 열 가지를 추려 봅니다.

 저는 신문이나 방송을 안 봅니다. 언론매체 책소개하고는 아무 상관 없이 제가 고르고픈 책을 골랐습니다. 제가 찾아가는 책방 임자가 진열대에 꽂아놓은 책을 살피기도 하고, 우연찮게 들은 소식이라든지, 출판사 인터넷방에 들어가서 알게 된 소식, 책마을 사람들과 술 한 잔 마시면서 들은 소식에 따라서 하나둘 사서 읽은 책입니다. 때때로 선물받는 책이 있지만, 출판사에서 홍보를 한다며 거저로 준 책은 없습니다. 다만 한 권, 《내 마음속의 자전거(13)》은 제 생일선물로 받은 책입니다.

 

웬델 베리 님이 쓴 다른 책으로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가 있습니다.
녹색평론사 
웬델 베리 님이 쓴 다른 책으로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가 있습니다.

 1.《삶은 기적이다》
 (웬델 베리/박경미 옮김,녹색평론사,2006.2.15) 7000원

.. 그러나 나는 여기 나 자신의 삶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지, 백인 미국 남성의 대표자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 있는 새나 동물, 식물도 특정한 성이나 종의 대표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고유한 우리 자신의 방식과 형태, 습관을 가지고 있다 ..  〈70쪽〉

 사람한테만 아름다운 삶이 아니고, 지구에 발붙인 모든 목숨붙이들한테도 아름다운 삶입니다. 다만 우리들이 사람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사람인 우리들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목숨붙이는 덜 소중할까요? 다른 누구보다 나, 자기 자신이 소중하겠지요. 그러면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은 덜 소중할까요?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똑같이 소중합니다. 사람이 소중하다면, 사람만큼 다른 목숨붙이도 소중합니다. 이런 마음을 잃거나 흔들린다면 평화가 깨지지 싶습니다. 평화가 깨지며 차별이 생기고, 차별에 따라 계급이 이루어지고, 계급을 지키고자 전쟁을 일으키겠지요.

 

 

 

 


후루노 다카오 님이 쓴 <오리 농법>도 함께 우리 말로 나왔습니다.
그물코 
후루노 다카오 님이 쓴 <오리 농법>도 함께 우리 말로 나왔습니다.
 2.《백성 백작》
(후루노 다카오/홍순명 옮김,그물코,2006.7.22) 8000원

.. 아마도 문제의 본질은 청둥오리가 가엾다기보다 ‘왜 사람은 평상시 먹는 것에 대하여 가엾다고 생각하지 않는가’에 있을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쓰고 버리는 시대에 우리들은 ‘먹을거리’가 생명이라는 당연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  〈97쪽〉

 집안에 모셔 두는 ‘난’이라는 풀 한 포기와 앞산이나 길가에 자라는 풀 한 포기하고 어느 쪽이 더 값이 있을까요. 돼지고기와 소고기와 닭고기는 그렇게 잘 먹어대면서 개고기를 못 먹을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고기를 즐겨먹든 풀을 즐겨먹든, 모든 먹을거리를 목숨입니다. 강이나 바다에서 낚아올린 물고기도 목숨입니다. 약이 되는 풀이라 해서 목숨이 아닐까요. 능금이나 배나 감이나 귤은 목숨이 아닐까요. 다른 목숨을 먹으며 우리 목숨을 이어가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니, 이렇게 온나라가 자동차세상이 됩니다. 온나라가 돈에만 미쳐 날뜁니다.

 

 

 

 


 

2007년에는 2권이 나올 수 있을까요?
허브 
2007년에는 2권이 나올 수 있을까요?

 3.《들꽃 이야기(1)》
  (박연 글ㆍ그림,허브,2006.1.15) 8500원

.. 역시 나는 시간 나면 나가서 풀 뽑고 하는 걸 더 좋아해요. 그러니까 서울의 모임 같은 건 뭐 … 하하 그렇게 찍혀 가지고. 그런데 취향에 맞는 거 같아요. 몇 번 튀는 걸 해 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저는 작품을 할 때 우리 엄마, 아빠, 동생, 친구들이 작품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을까, 이런 걸 봐요. 애들에게 보여줘도 괜찮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 데뷔하고 바로, 1982년에 (포천으로) 내려왔지요. 그러다가 작품활동 좀 열심히 해 볼까 하고 1985년에 (서울로) 올라갔다가 1987년 정도에 다시 내려왔어요. 서울은 여유가 없어서 유유자적 다닐 만한 곳도 없고. 저는 천천히 둘러보면서 걸어다니는 걸 좋아해요 ..  〈199쪽 : 그린이 말〉

 들꽃 이름 열 가지를 몰라도 괜찮습니다. 나무 이름 열 가지를 몰라도 괜찮습니다. 풀벌레 이름 열 가지를 몰라도 괜찮습니다. 들꽃도 들풀도, 나무도 남새도, 풀벌레도 들짐승도, 모두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고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이름만 알면 뭐하나요. 이름만 알고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풀이름은 잘 알지만 풀을 못살게 굴면 뭐하나요. 머리로, 지식으로 익히는 풀이름, 꽃이름, 나무이름, 짐승이름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아 배우는 온갖 목숨붙이 이름 또한 쓸모가 없습니다. 모두가 우리 곁에 가까이 있지 않는다면.

 

 


2년하고도 반 해 만에 13권이 나온 자전거 만화. 다른 만화는 금세금세 뒤엣편을 번역하는데, 이 만화만큼은 참 오래 걸렸습니다. 그만큼 자전거 이야기를 찾아보려는 사람이 적다는 소리겠지요.
서울문화사 
2년하고도 반 해 만에 13권이 나온 자전거 만화. 다른 만화는 금세금세 뒤엣편을 번역하는데, 이 만화만큼은 참 오래 걸렸습니다. 그만큼 자전거 이야기를 찾아보려는 사람이 적다는 소리겠지요.
 4.《내 마음속의 자전거(13)》(미야오 가쿠 글ㆍ그림/오경화 옮김,서울문화사,2006.12.25) 3500원

.. 자전거는 기계라, 마음 따윈 갖고 있지 않아. 하지만 만약 마음이 있다면 나한테 이렇게 말했을 거야. 매일 타 줘서 고맙다고. 더러워져도, 흠집이 나도, 아마 자전거에게는 그게 가장 기쁜 일 아닐까? ..  〈20∼21쪽〉

 오늘은 셋째 주 토요일, 서울을 비롯해 전국 여러 곳에서 ‘발바리 행사(두 발과 두 바퀴로 무리지어 달리는 자전거 행사)’가 있는 날. 어서 일마치고 충주에서 서울로 달려가고 싶은데, 마무리지어야 할 일이 쌓이고 밀려서 집을 못 떠나고 있습니다. 세 해 만에 처음으로 이 행사에 빠질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좋아서, 땀흘리며 바람 맞는 일이 좋아서, 비든 눈이든 찬바람이든 더운바람이든 좋고, 내 몸과 자전거가 하나가 되고, 내 숨소리를 느낄 수 있으니 좋아서 타는데. 서울 시내만 해도 제아무리 잘 달리는 자동차라 해도 평균빠르기 30km를 넘기 어려운 형편인데도 기름 아까운 줄 모르고 다니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 버스로 두어 정류장만 되어도 걷던 사람들은 옛날 사람이 되었고, 이제는 걷는 사람도 없게 된 이 나라 사람들.

 

 

 

 

 


 

이 겉그림은 지난 2005년에 `살림' 단체에서 자비출판으로 낸 판입니다. 수수하게 펴낸 이 책을 알아보고 기꺼이 새책으로 옷을 입혀 준 삼인 출판사에 큰복이 내리면 좋겠습니다.
살림 
이 겉그림은 지난 2005년에 `살림' 단체에서 자비출판으로 낸 판입니다. 수수하게 펴낸 이 책을 알아보고 기꺼이 새책으로 옷을 입혀 준 삼인 출판사에 큰복이 내리면 좋겠습니다.
5.《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 엮음,삼인,2006.8.18) 9800원

.. 아가씨들이 도망가면, 업주들은 가슴을 치면서 “내 돈!” 이래요. 자기네들 결론은 돈이라는 거지요. 심지어 차를 타고 가다가도 자기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저를 잡아 줘요. 내가 죽으면 돈을 못 받거든. “내가 니 좋아서 해 주는 줄 알아? 돈 때문에 이러는 거야”라고 얘기를 해요. 업주들은 우리를 돈으로 봐요. 자기 자식들이 이런 일을 한다면 그렇게까지는 안 하겠죠. 우리 마음을 다 이해해 달라는 것은 아니에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우리를 조금만 더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거죠 ..  〈26쪽〉

 제 자식들이라면, 제 식구라면, 제 이웃이라면, 제 동무라면 어느 누가 함부로 할까요. 어쩌면 제 자식이고 식구고 이웃이고 동무라 해도 돈이 되니까 하는 짓인지 모릅니다. 벌이가 되니까 하는지 모릅니다. 장사도 잘되지만, 장사 잘되어 거두어들이는 돈으로 무엇이든 맘대로 움직이고 휘두를 수 있으니까 끊이지 않는지 모릅니다. 우리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신동엽 님 시는, 교과서가 아닌 문학작품으로 읽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암사 
신동엽 님 시는, 교과서가 아닌 문학작품으로 읽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6.《시인 신동엽》
(김응교 글/인병선 유물 공개,현암사,2005.12.30) 12000원

.. 이제 유물을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으니 그를 아주 보낸다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보내고 저 또한 가고……. 그것이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시는 영원히 우리 옆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시를 가리켜 어떤 분은 70∼80년대 민족주의에 고착되어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시는 지금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우리 속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  〈4∼5쪽 : 인병선〉

 이 나라 교과서에서 문학작품을 다 빼면 좋겠습니다. 대학교수학능력시험이나 논술시험에도 문학작품을 안 다루면 좋겠습니다. 문학은 시험문제 내라고 빚어내는 열매가 아니니까요. 우리 세상을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자기 온마음으로 우리 세상을 곰삭여서 담아내는 문학작품이니까요. 시험문제 내는 이가 시인이나 소설가보다 문학을 잘 아는 사람일까요? 아니, 문학을 사랑하기나 하는 사람일까요? 아니, 문학을 왜 빚어내는지, 문학으로 무슨 말을 건네려 하는지 헤아리기나 하는 사람일까요?

 

 

 

 


레니 리펜슈탈을, 이이가 해 온 여러 가지 일들, 영화나 사진이나 다른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한편, 뚜렷하게 밝히지 않은 나치 때 일을 아울러 살핀다면, 예술이든 무엇을 하는 우리들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마티 
레니 리펜슈탈을, 이이가 해 온 여러 가지 일들, 영화나 사진이나 다른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한편, 뚜렷하게 밝히지 않은 나치 때 일을 아울러 살핀다면, 예술이든 무엇을 하는 우리들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7.《레니 리펜슈탈 :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허진 옮김,마티,2006.5.25) 20000원

.. 리펜슈탈은 할리우드를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리펜슈탈은 스튜디오가 원하는 이름, 그것도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손에 넣고 싶어하는 이름이었다. 그토록 고된 환경에서 영화를 찍으려는, 찍을 능력이 있는 여배우가 어디 있겠는가? 거절하면 할수록 영화사는 점점 더 높은 출연료를 제시했다. 리펜슈탈이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결국 레니는 영화사의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지만, 돈 때문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레니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소중한 동료들과 다시 한 번, 어쩌면 마지막이 될 모험을 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  〈146쪽〉

 얼마 되지 않은 제 삶입니다만, 그동안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 많고 안타까운 일도 많고 잘못해서 엉뚱하게 나아간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이때마다 귀엽게 봐주면서 슬기롭게 이끌어 준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고, 아직 잘 모를 때는 샛길로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배고프고 괴롭던 일제강점기 때 잠깐 머리가 돌아서 친일부역을 할 수 있겠지요. 가난에 쪼들리는 식구들을 저버리지 못하고 조선총독부가 시키는 짓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일제강점기 때 모든 이름값을 버리고 조용히 땅을 일구며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친일부역을 한 사람도 많았으나, 친일부역 안 한 사람도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면 친일부역을 안 한 사람은 무엇일까요. 바보일까요?

 

 

 


도시에서도 즐겁게 살아갈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너무 시끄럽고 팍팍하고 바쁘고 돈 아니면 몸붙일 곳도 없으니...
푸르메 
도시에서도 즐겁게 살아갈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너무 시끄럽고 팍팍하고 바쁘고 돈 아니면 몸붙일 곳도 없으니...
 8.《씨앗은 힘이 세다》
(강분석,푸르메,2006.5.19) 9000원

.. 시골에는 사람보다 나은 것이 참 많이 있다. 평생을 뼈빠지게 일하고 죽은 후에도 버릴 것 하나 없이 제 몸을 내어주는 소도 그렇고, 나락은 나락대로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고, 바싹 마른 몸뚱이는 더러는 지붕이 되고, 더러는 소나 사슴의 먹이가 되고, 더러는 거름이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벼도 그렇다 ..  〈121쪽〉

 우리한테 즐거움이란 무엇일는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한 달에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차분히 돌아본다면, 우리가 아름다움을 찾고 서로 오붓하게 돕고 살아가자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지긋이 짚어 본다면 어떨는지요. ‘한 사람한테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나?’ 하고 물었던 톨스토이가 2000년대 대한민국에 산다면, ‘한 사람한테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나?’ 하고 다시 물었지 싶습니다.

 

 

 

 

 

 


아이들하고 늘 가까이 지낼 뿐 아니라, 언제나 아이들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부대끼니까 이런 훌륭한 작품 하나 빚어내겠지요.
양철북 
아이들하고 늘 가까이 지낼 뿐 아니라, 언제나 아이들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부대끼니까 이런 훌륭한 작품 하나 빚어내겠지요.
 9.《악동들의 주머니》(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양철북,2006.6.5) 8000원

.. “이 아이들은 저희 반 아이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돈을 빼앗은 적이 있어요. 그 아이는 워낙 성격이 소심해서 그 뒤로는 겁이 나서 학교에도 잘 나오지 못할 정도라고요.” 5학년 주임 선생님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 그 자식은 집에서 몰래 돈을 갖고 나와 아이들한테 한턱 쓰고는 그 아이들을 자기 부하처럼 부려먹는 나쁜 놈이란 말야. 그래서 우리가 대신 벌을 준 것뿐이라고. 하지만 변명 따윈 안 해. 선생한테 변명을 하면 그 자식이랑 똑같아져 버리니까.’ 아이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도대체 말로 해서는 안 될 녀석들이군.”
 교감 선생님은 벌레 씹은 얼굴로 말했다.
 “싹수가 노란 녀석들은 일찌감치 잘라 버리는 게 상책이에요.”
 이번에는 교장 선생님이 말했다.
 “이 녀석들,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 거냐?”
 요코다 선생님이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놈들이!” ..  〈15∼16쪽〉

 학교 교사들이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을 안 읽는 학교 교사가 학생들한테 책읽기를 가르치거나 책읽기로 이끌 수는 없습니다. 학교 교사들이 꼭 평화를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안 사랑하고 안 아끼는 교사가 학생들한테 평화를 가르치거나 깨닫도록 이끌 수 없겠지요. 교사들 모습에 따라 학생들이 배웁니다. 부모들 모습에 따라 아이들이 배웁니다.

 

 

제주섬에 들를 일이 있다면, 두모악 갤러리에도 한 번쯤 발걸음을...
다빈치 
제주섬에 들를 일이 있다면, 두모악 갤러리에도 한 번쯤 발걸음을...
10.《김영갑 1957∼2005》(김영갑 글ㆍ사진,다빈치,2006.5.15) 45000원

.. 제주도 사람 누구나 알고 있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꼭꼭 숨어 있는 속살을 엿보려면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 보고 느낄 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한라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보다 빼어날 수 없다. 한라산의 속살을 보고 느낄 수 있다면 하와이나 발리, 아니 지구상의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낙원임을 인정할 것이다 ..  〈23쪽〉


 저는 헌책방을 좋아합니다. 새책방도 곧잘 가지만 헌책방을 더 즐겨찾습니다. 저는 헌책이 좋습니다. 새책도 곧잘 사지만, 세월과 사람 손때가 배인 헌책이 더 즐겁습니다. 헌책방 헌책이 값이 싸기 때문에 좋지는 않습니다. 제가 사는 헌책은 여느 새책보다 훨씬 비싼 것들이 많으니까요. 10만 원, 20만 원짜리 헌책도 있으니까요. 겉은 많이 닳고 낡았지만, 얼핏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우리 삶과 이야기와 눈물과 웃음이 고이 담겨 있는 헌책이라고 느낍니다. 사람이 빚어내고 사람이 땀과 발자국을 남긴 헌책이라고 느낍니다. 두고두고 이어갈 수 있는 힘을 담은 책, 오래오래 곁에 놓고 간직하고픈 마음을 담은 책, 이런 책이 헌책방 헌책이라고 느껴서 틈틈이 서울로 헌책방 나들이를 떠납니다.

(다음주에 "2006년 반가운 책 10권" 2편을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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