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님의 "<요코 이야기> 논란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이 나라 언론매체는 <요코 이야기>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쓴다고 해도, 이 책을 안 읽고 쓰기 마련입니다. 참말로 이 책을 잠깐이나마 펼쳐 본 뒤 문제를 다룬 기자가 있었는지... 그리고 나라밖에서 말썽이 되면 대문짝 만하게 기사로 다루지만, 나라안에서 말썽이 되는 이야기는 기사로 안 다루지요. 한젬마 문제만 해도 <한국일보> 말고는 다들 싹 입 씻고 넘어가고 있는 걸 보면.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런 언론보도가 나오면 외려 <요코 이야기>가 더 잘 팔린다는 겁니다. 대리번역 말썽이 일어난 <마시멜로 이야기>는 이제, 신문잡지에 광고 안 때려도 베스트셀러 순위를 아주 단단히 지키는 한편, 예전보다 더 잘 팔리잖아요. 제 짐작입니다만, 이번 <요코 이야기> 말썽은, 이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 사람들 눈길을 끌어 책 팔아먹으려는 장삿속으로 보입니다만. 출판사에서 낸 보도자료와 논평을 보면 그런 느낌이 짙습니다. 사실,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가 많다면 우리 나라에서 번역을 하지도 말아야 했거나, `팔아먹을 생각'으로 번역하지 말고, `일본사람들 역사인식을 살피는 참고자료'쯤으로만 쓰도록 번역을 했어야 옳습니다. 그러나 출판사는 이 책을 아주 허벌나도록 잘 팔아치우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요코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책방마다 품절이 되어 줄서서 사려고 기다리는 독자들이 늘어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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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길
구로사와 아키라 지음 / 민음사 / 1994년 10월
평점 :
품절



(알라딘에서는 `품절'이 되었다고 뜨기에
제가 가진 책을 긁어서 올려놓습니다.)

 

- 책이름 : 감독의 길
- 글쓴이 : 구로사와 아키라
- 옮긴이 : 오세필
- 펴낸곳 : 민음사(1994.10.27.)


 1960년, 박정희는 《지도자도》라는 얇고 노란 책자를 펴내 전국 곳곳에 수없이 뿌립니다. 그러나 이내 이 노란 책자를 거두어들였고, 전국 곳곳에서 불을 지펴 집어던져 태워 버립니다(이 책자를 저한테 팔았던 헌책방 주인과 다른 책손이 들려준 이야기). 자신이 내세운 혁명공약 가운데 마지막 것,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때문입니다. 그 뒤 ‘혁명공약’은 다섯 가지만 적어서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펴낸 책은 《지도자의 길》. 독재자 박정희한테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고, 지도자라는 사람이 걷는 길이란 무엇이었을까요.


.. 단지 법이 규정한다는 이유만으로 지진아들을 강제로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어린이들의 성장은 제각기 다르다. 일부 다섯 살 아이는 일곱 살 아이의 지능을 가질 수도 있고, 반대로 다섯 살 아이 수준의 지능도 안 되는 일곱 살 아이도 있다. 지능은 아이마다 다른 속도로 성장하는 것이다. 1년의 성장이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1년 동안의 기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한다면 잘못이 아닐 수 없다 ..  〈31쪽〉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길’은 사람이 다니라고 뚫습니다. 자동차가 오가는 찻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아닙니다. 자동차에 탄 사람이 다니는 길입니다. 찻길에 자전거가 다닌다면, 자전거가 다니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탄 사람이 다닙니다. 그러나 찻길을 달리는 자동차꾼은 찻길에 함께 있는 자전거꾼을 못마땅해 합니다. 자전거에 탄 ‘사람’이 자기와 마찬가지 ‘사람’임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도》와 《지도자의 길》을 낸 독재자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다스리려는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람 위에 올라서서 권력을 누리’려는 마음이었을까요. 자기와 마찬가지로 ‘사람’인 이 나라 백성들을 굽어살피고 헤아리고 보살피는 ‘길’이었을지, 이 나라 백성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며 자기 앞에 굽실거리거나 무릎꿇게 하려는 ‘길’이었을지.


.. 나는 내 눈으로 자세히 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해서만 언급할 수 있다. 또한 나는 물증이 있는 것들만 믿는다 ..  〈103쪽〉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 자동차만 다니는 길이 되어 버린 찻길입니다. 그래서 이 찻길을 걸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수없이 차에 치여 죽습니다. 사람을 친 차는 어디론가 내빼도, 차에 치인 사람은 어디로 가지도 못합니다. 사람이 아늑하게 다닐 수 없게 된 길에서는, 사람 아닌 목숨도 목숨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오가는 길은 네 다리로 걷는 들짐승과 멧짐승도 오갈 수 있었습니다. 열 다리나 스무 다리로 기어다니는 벌레도 오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찻길을 건너는 짐승들은 그 자리에서 개죽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지렁이나 벌레는 자국도 못 남기고 사라집니다. 더욱이, 사람만 다니라고 하는 거님길(보도블럭)까지 치고 올라서는 자동차입니다. 길이 길 구실을 못하는 우리 삶터이고, 길을 마음놓고 다닐 수 없는 우리 형편이라고 할까요.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아마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은 기억력일지도 모르겠다 ..  〈63쪽〉


 언제부터 우리가 걷는 길이 이렇게 팍팍하고 메마르게 되었을까요. 어느 때부터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이렇게 사람은 다닐 수 없는 길이 되었을까요. 사람 발길이 끊어지고 매캐한 차방귀만 가득한 길, 사람 냄새도 손길과 발길도 움직임도 뚝 끊어지는 길이 되었을까요. 우리들은 우리들이 걸어갈 이 길을 엉망으로 망가뜨리면서, 우리들이 참답게 살아가는 길마저도,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마저도 엉망으로 흐트러뜨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 1930년 토키 영화가 등장하고부터, 우리는 옛 무성영화의 너무도 훌륭했던 점을 놓치고 잊어버렸다는 것이 나의 느낌이었다. 나는 미학적 손실을 끊임없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려면 영화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나는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  〈321쪽〉


 길이 길다움을 잃었을 때, 이 길을 오가는 모든 것도 자기다움을 간직하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지도자든 백성이든 관리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든 사람 아닌 목숨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오붓하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길이 아니니까, 서로서로 돌보고 마음쓰면서 보듬는 길이 아니니까, 서로 따스함을 나누며 사랑하며 믿고 살아가는 길이 아니니까, 이런 길에는 돈-이름-힘, 이 세 가지만 남는구나 싶어요.

 자서전 《감독의 길》을 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돈으로 걷는 길도 아니고 이름으로 걷는 길도 아니며 힘으로 걷는 길도 아닌, 한 사람으로 걷는 길을 걸어서 감독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사람다움을 간직하고 사람다움을 키우면서 사람다운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면서 감독으로 길을 걸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나라 영화감독 가운데 돈-이름-힘이 아닌 ‘사람으로서 걷는 감독이 갈 길’을 걷는 사람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4340.1.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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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 아저씨 말 3

 
 “헌책방 장사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정년퇴직 걱정 없이 내가 죽는 날까지 평생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야. 그래서 난 죽을 때까지 여기서 헌책방 장사를 할 거야.”


 충북 청주에 있는 헌책방 〈보문서점〉 아저씨, 아니 이제는 할아버지. 당신 또래 동무들은 모두 딸아들한테 눈치보며 용돈 타서 쓰지만, 당신은 헌책 팔아 손주 과자도 사 주고 용돈도 쥐어 줄 수 있으니, 남은 삶도 즐거우시리라 믿습니다. (4340.1.4.나무.ㅎㄲㅅㄱ)

 

헌책방 아저씨 말 4


 “네? 무슨 책이요? 아, 그런 책은 지금 없는 것 같네요. (전화 끊음. 그리고 저를 보면서) 요즘은 다 이렇게 전화로만 물어 봐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오는데, 전화만 하지 말고 이런 데 한 번 와서 죽 돌아보면 좋으련만. 태영이가 그러잖아. 전화상으로만 묻는 손님들은 우리들하고 무관하니까 물어 봐도 그냥 책 없다고 그러라고. 하하하.” -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1매장 아저씨

 
 ‘헌책’을 찾는 사람이 줄기는 줄었지만, 찾는 사람이 줄었다기보다 ‘손수 찾아다니는’ 사람이 줄었다고 느낍니다. 인터넷 헌책방이 늘어나고 인터넷으로 책 사고파는 일이 늘어나는 숫자를 보면, 이 숫자가 예전에는 손수 헌책방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던 숫자와 비슷하거든요.

 느긋하게 살피고 둘러보면서 책 하나 고르지 못한다면, 자기가 사들인 책을 느긋하게 헤아리면서 읽을 수 없지 싶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찾아들고 집어든 책 하나가 아니라면, 책에 담긴 줄거리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깊은 알맹이는 더더구나 맛을 못 보지 싶습니다. 기꺼이 다리품을 팔지 않을 때에는 헌책방마다 다 다르게 간직한 모습을 볼 수 없을 테고요. (4340.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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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답장―글 잘 쓰는 비결이란?

 

- 받은편지 (북데일리 김ㅇㅇ 기자 2007.1.10.)

 글 잘 쓰는 비결을 알려 주세요.
 최종규 씨 글을 읽으면, 먹지 못하게 뜨거운 숭늉이 알맞게 식어 따뜻하고 찰지게 넘어 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완곡하지만 그 안에 담을 이야기들은 명확히 담는 솜씨도 부럽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글은 쓰면 쓸수록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날씨 추운데 자전거 타시면서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또 연락드릴께요.

 

- 편지 읽고 보낸 편지 (최종규 2007.1.11.)

 아고, 제가 글을 잘 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예전에 쓰던 글과 견주면 한결 나아지기는 나아졌어요. 그렇지만 아직 한참 멀었는걸요. 저는 글 고치기를 참 많이 합니다. 한 번 쓴 글이 그대로 남아나는 일이란 아주 드뭅니다. 거의 없다고 보아야지요. 적어도 스무 번은 고쳐서 다시 씁니다. 어느 만큼 마음에 들어서 싸이월드 〈함께살기〉 모임 게시판에 올리는 글은 30번∼50번쯤 손본 글입니다. 인터넷매체나 사외보 같은 곳에서 청탁이 들어와서 쓰는 글은 100번쯤은 다시 쓰고요. 가장 품이 많이 드는 글은 헌책방 나들이 글인데, 짧으면 하루가 걸리고, 길면 두어 달, 또는 반 해가 걸리기도 합니다. 다녀온 지 한참 지나면 느낌이 사그라들기도 하지만, 그때 그 자리 느낌을 그동안 써 온 글과 다르게 풀어낼 때까지 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엇이 없다면, 조금씩 써서 살을 붙이면서, 마무리가 될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거든요. 충북 청주에 있는 헌책방 〈보문서점〉 이야기는 여섯 달 묵힌 글입니다. ^^;;;

 저는 소설가 최명희 님이 글쓴 몸가짐하고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1번에 마무리되는 글이란 없고, 100번이고 1000번이고 다시 써서 마무리를 짓지만,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어도 자기 목숨이 다할 때까지는 마무리가 되었다고 할 수 없는 글을 쓰기’라 하겠습니다.

 아무튼∼ 잘 읽어 주시니, 제가 고맙습니다. 칼럼 자리를 채우는 사람으로서, 어느 만큼 자리를 지킬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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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예술로 가는 길 - 창조적 사진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 개정판
한정식 지음 / 눈빛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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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사진, 예술로 가는 길
- 글쓴이 : 한정식
- 펴낸곳 : 눈빛(2006.5.1.)
- 책값 : 12000원


 시골집에 있을 때는 쉬를 할 때 꼭 밖에 나갑니다. 밖에 나가서 산기슭이나 감나무 밑이나 밭둑을 찾습니다. 뒷간에서는 똥만 누고 오줌은 곧바로 이 산 저 들에 돌려 줍니다. 예부터 ‘감나무 밑에 개를 매어 놓으면 감이 맛있게 잘 익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늘 자리를 바꾸어 가며 오줌을 누니까 감나무가 썩 잘 자라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까요?


.. 사진가의 삶이 진지해야 진지한 사진이 나오는 것이지, 사진을 오래 해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진을 오래 해도 인간적으로 숙성되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그처럼 얕은 사진밖에 나오지 않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인간적 깊이가 있는 사진가에게서 심도 있는 사진은 나오는 법이다 ..  〈21쪽〉


 어제부터 그믐이지 싶습니다. 달력을 봅니다. 맞네요. 그믐이 되겠네요. 밤에 쉬하러 밖에 나오면 캄캄 어두움이더니만. 제가 사는 바로 옆집은 불이 나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제, 제가 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은 더 깊은 산속에 하나, 마을로도 한참 떨어진 곳에 또 하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깊은 밤에 불을 다 끄고 바깥으로 나오면 그야말로 어둠뿐입니다. 둘레에 불이 하나도 없으니 밤하늘이 아주 잘 보입니다. 추운 겨울바람이 더 춥게 느껴집니다. 예부터 추운 날은 별이 더 잘 보인다고 했는데, 별이 막 떨어질 듯이 보인다고 했는데, 안경을 안 써서 잘은 모르겠으나 참말 별이 잘 보입니다. 어제는 부엉이 우는 소리를 아주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사냥철이 끝나가는지, 사냥꾼들 총부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멧새가 밤에 조용조용 몰래몰래 우는가 봅니다.


.. 사진이란 어떤 예술이라는 말인가. 한마디로 해서, 자연과 인생에 대한 자기 발언이다 … 복합적인 인생과 자연을 대상으로 거기에서 깨달은 내 생각, 내 느낌을 찍는 것, 이것이 사진이다 … 진지하게 우리의 삶과 환경을 둘러보는 것이 사진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사진을 해야 한다 ..  〈62∼63쪽〉


 고요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일이란 큰 고마움이자 아름다움이라고 느낍니다. 오로지 제 스스로 몸을 놀려야 살아갈 수 있고, 사람 아닌 온갖 소리와 움직임을 느낄 수 있거든요. 지금 이 세상에는 사람 목소리와 움직임이 얼마나 많은가요. 이런 소리와 움직임에서 멀찍이 벗어나 나한테서만 나는 소리와 움직임으로, 또 사람 아닌 소리와 움직임을 부대낄 수 있는 곳이 어디일는지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인데, 자연을 못 느끼고 자연을 모르고 자연을 멀리하는 요즘 아닙니까. 더욱이, 이제는 태어나기를 시멘트집에서 태어나고 죽기를 시멘트집에서 죽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흙하고는 동떨어졌달까요. 인연이 없달까요. 흙이 뭔 줄도 모른달까요.


.. 예술은 황무지에 길을 내는 행위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길을 만드는 작업이다 … 이미 닦여진 길은 그냥 걸어가기에는 편하지만, 그것은 남을 따라가는 행위이다. 길을 만드는 일이 아닌 것이다. 예술가란 길을 만드는 사람, 길을 여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149쪽〉


 지지난주부터는 물이 아예 안 나옵니다. 그나마 그사이 날이 풀리며 두 번 녹은 적 있는데, 그 뒤로는 안 녹네요. 이제부터 참 겨울이구나 싶습니다. 뭐, 물이 안 나와도 그동안 미리 받아 둔 물이 있으니 밥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씻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 산골짜기에서는 씻지 않아도 때 탈 일이 없으니까, 몸 더러워질 일이 없으니까, 안 씻는다고 몸에 나쁠 일이 없습니다. 외려 씻는 일이 도움이 안 된달까.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구나 하고, 창밖이 밝아지며 날이 새면 아침이 오는구나 합니다. 아침마다 박새와 콩새가 조잘조잘 지저귀며 창가에까지 날갯짓을 합니다. 사람이 있으니 먹잇감이 둘레에 있을까 싶어 오는구나 싶은데, 안타깝게도 저는 이 새들한테 줄 만한 먹이가 없군요.

 제 사진기는 헌책방에서만 움직입니다. 시골집에 있을 때는 가방에서 얌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가끔, 제 살림집 둘레라든지 책상맡이라든지 사진으로 담으면 어떨까 싶기도 해서 디지털사진을 찍곤 합니다. 지금도 글을 쓰며 밤참으로 먹던 날고구마를 한 장 찍었습니다. 필름값이 두려운 저로서는 가볍게 즐기고픈 사진은 디지털을 씁니다. 필름값이 두렵기는 하지만 헌책방 삶터를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기에, 헌책방을 찍을 때만큼은 필름을 씁니다. 거의 아낌없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기 삶은 자기 스스로 가꾸며 즐길 때가 가장 좋지 싶어요. 저는 저대로 사람 발길 드문 시골집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자전거를 타고 헌책방 나들이를 떠납니다. 제가 찍는 사진이라면 이런 제 삶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겠지요. 제가 찍는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저부터 제 삶이 반가워야 할 테고 즐거워 할 테며, 기쁜 마음으로 가꾸어야지 싶어요. 뭐, 예술이 안 되더라도 저 나름대로 살아가는 삶을 담을 수 있다면, 제 목소리를, 제 움직임을, 제 마음을, 제 생각을 담을 수 있다면 좋을 테고요. (4340.1.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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