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녀 백과사전 낮은산 너른들 2
김옥 지음, 나오미양 그림 / 낮은산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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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청소녀 백과사전
- 글 : 김옥 / 그림 : 나오미양
- 펴낸곳 : 낮은산(2006.10.30.)
- 책값 : 8800원


이 책 하나 12 ― 청소녀 백과사전
: 내 백과사전에는 무슨 이야기가 적힐까

 
 시골집에 있을 때면 입을 꾹 다물고 지냅니다. 이웃집이 없고(지난 섣달그믐날 그만 불이 나서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찾아오는 사람 없는 한편, 작은 방에서 홀로 책하고 씨름하며 살고 있거든요. 저라고 무슨 할 말이 없겠습니까만, 그저 새하고 별하고 해하고 바람하고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눌 뿐입니다. 때때로 천장에서 뛰어다니는 새앙쥐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한테는 제 속에 담은 말, 이를테면 ‘내 백과사전’에 담기는 말은 털어놓지 못합니다.


.. 내 나이 올해로 열세 살, 먹을 만큼 먹었다 ..  〈106쪽〉


 쉬가 마려워 신을 신고 밖으로 나가 풀밭에 볼일을 봅니다. 둘레가 퍽 밝다고 느껴져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달이 밝게 빛납니다. 아직 반쪽짜리 달이지만, 온 마을과 들판과 산을 하얗게 덮고 있는 눈 때문에 저리 밝게 보이네요. 얼어붙은 밤하늘이라는 말을 곧잘 들었는데, 오늘 밤하늘이 꼭 그 모습입니다. 달빛이 비쳐 하늘로 올라가는지 달 말고 다른 별은 잘 안 보입니다. 구름도 없는 이 밤, 멧새들은 일찌감치 서로 몸을 바싹 붙이며 잠들었지 싶습니다. 새벽만 되어도 창밖에서 부지런히 지저귀며 하루를 여는데.

 조용하군요. 지나가는 차가 없고 걸어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참 조용하군요. 해 떨어지고 밤이 되니 더 조용합니다. 어제그제 눈이 내려 읍내 마실을 못했으니 집구석에서 입을 열 일도 없습니다. 자리에 드러누워 밝은 노래를 틀어 놓고 흥얼흥얼 따라할 때, 밥을 먹을 때 잠깐잠깐 입을 엽니다.


.. “엄마도 화장하고 파마도 하잖아.” “나하고 너하고 같아? 나는 어른이고 너는 학생이잖아.” “그럼 엄마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딸 밥도 잘 안 챙겨 주는 거는 엄마 노릇 잘하는 거야?”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누군 구누야 엄마가 좋아서 엄마 인생을 사는 거지. 나는 바보처럼 공부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살 거야. 그리고 절대로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다 ..  〈22∼23쪽〉


 1995년 4월, 부모님 집을 떠나 서울 이문동으로 살림을 옮기던 때가 떠오릅니다.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에는 너무 멀고 찻삯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 즈음 저는 집에 붙어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집에서 크게 울려퍼지는 텔레비전 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새로 살림을 꾸리는 곳에는 텔레비전이 없어 좋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린 뒤, 신문사지국 형들과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간 다음, 학교도서관과 구내서점에서 시간제 일을 하고, 저녁에는 학교 앞 헌책방에 들른 뒤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여섯 달을 보낸 뒤 11월에 군대로 끌려갔습니다(우리 나라 군대는 강제징집제니까).


.. 의욕에 넘친 나는 사인펜을 들고 1면을 향해 돌진하다 말고 멈칫 했다. 가족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  〈52쪽〉


 군대 가기 보름쯤 앞서 부모님 집으로 잠깐 돌아옵니다. 하지만 잠깐도 못 있고 이날 곧바로 집을 다시 나갑니다. 아버지하고 크게 싸웠거든요. 싸움 빌미는 제가 벗어 놓은 옷(신문배달을 하며 입던 땀에 전 옷)을 아버지가 “이런 걸레를 아무 데나 두면 어떡해?” 하면서 제 속을 긁었기 때문. “걸레를 걸치는 사람도 걸레겠죠.” 하고 대꾸를 했고, 아버지는 “뭐야?” 하면서 주먹을 휘두릅니다. 저는 아버지 주먹을 막으며 밀칩니다. 아버지는 힘없이 나가떨어지고, 옆방에 있던 형이 나와 “야, 아버지한테 뭐 하는 거야?” 하며 제 따귀를 올려붙입니다. “그래, 내가 나가면 다 되겠네.” 하고 그 길로 부모님 집을 나왔습니다.


.. 수학여행 가서 지킬 일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기나긴 당부 말씀이 끝나고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철이랑 나는 ‘맨 뒷자리에서 만나.’ 하는 눈빛을 서로 나누었다. 하지만 차에 먼저 타 있던 선생님은 통로에 버티고 서서 말했다. “여자는 오른쪽, 남자는 왼쪽. 키 순서대로 앉고 맨 뒷자리는 비워 둬라.”  좋다가 말았다. 키가 작은 나는 앞자리고 키가 큰 철이는 뒤쪽에 앉게 되어 우리는 견우 직녀처럼 떨어지고 말았다 ..  〈138쪽〉


 입대를 하루 앞두고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옵니다. 군대에 간다는 말은 안 했거든요. 아버지한테 “저를 보기 싫으면 안 보셔도 되지만, 앞으로 두 해 동안 볼 일이 없으실 테니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하고는 큰절을 한 뒤 집을 나섭니다.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가 아파트 툇마루에 서서 저를 배웅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고 계신가? 고개를 돌리고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니 어머니는 그대로 계십니다.


.. 평범하고 조용한 그 아이. 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 애가 진짜 내 영웅이다. 나는 얼른 단짝인 애리 손을 꼭 잡았다. 지금이 바로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때 아닐까? ..  〈131쪽〉


 혼자 기차역에 가서 혼자 기차를 타고 훈련소에 닿습니다. 표를 두 장 끊었지만 같이 갈 사람이 없습니다. 수원쯤이었나, 어느 할머니가 힘겹게 올라타기에 “제 옆자리는 비었으니까 앉으셔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훈련소 둘레에는 부모며 애인이며 동무들이며 온갖 사람들하고 함께 온 사람들로 득시글득시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뭔 저런 꼴값을 떠나 하고 생각. 훈련소에 들어가 한 달 남짓 얻어맞고 구르고 흙과 땀에다가 갖은 욕을 먹습니다. 잘하면 욕, 못하면 욕에다가 주먹다짐. 문득문득 ‘이렇게 구르느니 바로 하사관 지원해서 나중에 이 훈련소 조교들한테 똑같이 앙갚음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생각을 할 틈조차 거의 없이 뺑뺑이로 한 달은 훌쩍 지나갑니다. 그리고 자대배치를 받아야 하는 날.


.. 비밀 정원이 우리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집은 손바닥만한 뜰조차도 없는 작은 아파트이다 ..  〈163쪽〉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운이 지지리 없다고 해야 할지, 저를 비롯한 얼마 안 되는 훈련소 동기들만 논산에 다시 남아 두 주 동안 새로운 훈련을 받게 됩니다. 새로 받는 훈련은 ‘주특기훈련’. 제가 서 있던 줄은 무반동총(106) 주특기훈련을 받습니다.

 운이 좋다고 한다면, 훈련병으로 한 달이 지났으니 어깨에 빨간 계급장 한 줄(요즘은 까만 계급장으로 바뀌었습니다)을 달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중에 들어온 훈련생들 앞에서 우쭐댈 수 있습니다(참 웃긴 일이지만). 운이 지지리 없다고 한다면, 두 주 동안 주특기훈련을 더 받는 우리들은 거의 모두(퍼센트로 따지면 99%) 최전방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것. 제 운명은 최전방으로 떨어졌는데, 그 최전방에서도 가장 앞에 있는 곳으로 가고야 맙니다.


.. “치, 그런 게 어디 잇어. 순 거짓말이잖아.” 엉터리 말에 나는 웃어 버렸다. 아빠는 늘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애쓰지만, 나는 솔직히 부자인 별이네 아빠가 더 부럽다. 가난한 우리 아빠는 늘 보이지 않는 것, 만질 수 없는 것만 주니까 말이다. “우리 영자 사랑해.” 하며 내게 그려 보이곤 하는 사랑 모양도 두 팔을 내려 버리면 그뿐이고, 작년까지도 늘 잠들 무렵이면 해 주던 ‘사랑하는 따님에게 바치는 잘 자라 뽀뽀’도 아빠가 방에서 나가기도 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별이네 아빠는 정말로 보이는 것들, 만질 수 있는 것들을 줄줄 풀리는 화장지처럼 끝도 없이 사 준다 ..  〈164쪽〉


 주특기훈련 두 주를 끝마칠 즈음입니다. 실기시험(사격 연습)을 치르는데, 저는 운이 좋게 ‘어깨쏴’와 ‘엎드려쏴’ 두 가지 쏘기에서 잇달아 10점 만점을 쏩니다. 사실, 이 실기시험에서 1점이라도 깎이면 누구라 할 것 없이 기나긴 얼차려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죽든지 살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쏘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운은 저 말고 다른 동기들은 아무도 20점 만점을 못 쏜 덕분에 훈련을 마치고 부모님을 불러 드디어 면회를 하게 되는 날, 연대장 표창하고 휴가증 하나를 받습니다.

 넉 주 훈련소살이에 두 주 훈련소살이를 더하니 집에서는 소식이 뚝 끊어져 애가 무척 타셨던 듯.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부모와 자식 사이였을까요. 다른 집 자식들은 넉 주 뒤에 면회 오라고 연락이 왔다는데 왜 너만 연락이 없었느냐고(두 주 동안은 편지도 쓸 수 없었으니),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아셨답니다. 어쨌든 면회 오시는 날, 주어진 시간은 무척 짧으니 단출하게 도시락쯤만 준비해 주시면 된다고 말씀드렸으나, 어머님은 무슨 잔치상 비슷하게 차려 오십니다. 그 무거운 걸 어찌 들고 오셨을꼬. 그런데 다른 동기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 고작 한 시간 면회에 그 많은 걸 어떻게 먹을까요. 하지만 여섯 주 동안 밥다운 밥 한 번 못 먹은 우리들은 게걸스럽게 잔치상을 입에 처넣습니다. 말할 틈 없이 바쁘게 우겨넣습니다. 물 마실 틈 없이 바삐 쑤셔넣습니다.

 짧은 면회는 끝. 이제 내무반으로. 조교들은 ‘그사이 잘 먹었느냐?’면서 히죽히죽. 꼬투리를 이것저것. 뭐가 문제라느니 뭐가 잘못이라느니. 데굴데굴. ‘한 시간 동안 잘 먹었으니 이제 되지 않느냐’고 한 마디. 괴로운 얼차려를 못 참고 게워내는 동기들 여럿.


.. 그럴 때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가슴이 아파 왔다. 마치 소중한 나만의 것을 빼앗긴 듯한 이 이상한 기분. 만약에 별이가 뽑히고 내가 떨어졌어도 선생님은 내게 낮은 음을 맡겨 주셨을까? 절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  〈180쪽〉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양구 보며 살아야지.”라는 짤막한 노래가 있습니다. 누가 지었는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는 노래입니다. 고달픈 군대살이를 하며 누군가 읊다가 입에서 입으로 이어온 노래이지 싶은데, 줄을 잘 섰거나 뒤가 든든한 녀석들은 대전이며 서울이며 춘천이며 살기 좋은(군인한테만) 곳에 자기 보금자리를 틀고, 줄을 못 섰거나 뒤가 하나도 없는 저를 비롯한 열여섯 사람은 열서너 시간 동안 눈이 가려진 채 기차를 타다가 춘천에서 내린 뒤, 군대짐차를 두 번 갈아타고, 배를 한 번 타고, 다시 군대짐차를 타고, 두 번 더 군대짐차를 옮겨탄 뒤 비로소 양구에 떨어집니다. 마지막 가장 밑바닥 중대까지 온 훈련소 동기는 모두 다섯. 자대에 떨어진 밤에도 눈은 펑펑 내렸고, 신병임에도 빗자루 하나 얼결에 받아들고 부지런히 눈쓸기를 합니다. 이튿날 새벽에도 일찌감치 깨워 빗자루 들리고 한 시간 넘게 산을 타라고 하더니 길을 쓸라고 합니다. 이 눈쓸기는 1995년 12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참 징하게 했습니다. 넉가래로 눈 예술품을 만들 수 있을 만큼.


.. 그동안 나는 학교에서 조금 삐딱한 아이였다. 눈부시게 흰 실내화를 신은 아이들 사이에 오직 나만 군청색 슬리퍼를 직직 끌고 다녔다. 앞뒤가 꽉 막힌 실내화는 답답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노랗게 염색한 단발머리를 늘어뜨려 한쪽 얼굴을 온통 가려 버렸다. 그러고는 아이들 몇과 화장실 구석으로만 몰려다니다가 선생님들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그냥 어른들이 싫었고 늘 어디론가 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은 모두에게 구제 불능의 삐딱이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우리 집 앞 커다란 교회의 지하실로 향하는 돌계단에서 몇 시간이고 조용히 책 속에 빠져드는 아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일요일이면 언덕 너머에 내가 좋아하는 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어두워지도록 들판을 헤매고 다니는 싸돌이라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  〈90쪽〉


 1997년 12월 31일, 현역군인한테는 마지막 특명이 떨어져 엿새 일찍 전역을 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뽑히며 군대조직이 꽤나 많이 바뀌었더군요. 제가 전역하는 이듬해부터 예비군제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이렇게 바뀌는 제도에 끼워맞추려고 제 또래 동기들이 특명을 받았던 것.

 하지만 이 특명을 고맙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부처님오신날까지 눈이 내리는 양구 깊은 산골짜기를 떠나게 되어 홀가분했던 마음은, 버스 두 번 타고 서울에 내려 참으로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는 동안 어두워집니다.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지는 한강이 내다보이는 그때, 제가 앉은 맞은편에는 생활정보지를 무릎에 얹어 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머리가 하얗게 센 양복쟁이 아저씨가 있었으니. 흔들흔들 하던 아저씨 머리는 콩 하고 문가 손잡이에 부딪히고, 그 결에 무릎에 얹어 놓은 생활정보지는 바닥으로 우수수. 퍼뜩 놀라 잠에서 깬 아저씨는 바닥에 흩어진 생활정보지를 엉거주춤 줍고.

 인천에 있는 부모님 집에 들어오지만 반기는 사람 없이 텔레비전 소리만 윙윙윙. ‘내가 지금 전역한 것 맞나?’ 윙윙윙거리는 아홉 시 새소식에는 ‘아이엠에프가 어쩌고 저쩌고’. ‘아이엠에프가 뭐지? 제기랄, 뭔지 몰라도 한 두어 달쯤 아무 생각 없이 좀 쉬어 보자. 너무 긴 이태였어.’


.. 오히려 엄마는 다른 애들 다 뚫는 귀를 나만 못 뚫은 채 있으면 더 걱정할 것이다. 행여나 내 자식이 귀 하나도 못 뚫는 용기 없는 바보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문제적인 아이들을 보면 근심스레 내 얼굴부터 살피는 분이 바로 우리 엄마다. 행여나 내 자식도 안 보이는 데서 저런 짓이나 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빠는 아무 눈치를 못 챘다. 저녁 밥상에서도 엊그제 본 내 학원시험 점수가 언제 나오는지, 얼마나 오를지만 궁금해할 뿐이다 ..  〈115쪽〉


 1998년을 맞이하고 닷새 뒤, 또다시 집을 나섭니다. 군대 가기 앞서 일했던 신문사지국에 전화를 걸었더니 ‘언제든 와.’ 하는 한 마디.

 눈칫밥 먹는 부모님 집에서는 하루도 더 있기 힘든 형편. 군대에 있는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을 수 없었기에 두어 달쯤 질리도록 책 좀 볼까 싶었지만, 나라살림도 힘든 판에 집에 밥벌레 하나가 얹혀졌다고 느끼셨는지.

 아무 미련 없이 짐을 꾸립니다. 집에 남아 있는 제 책과 짐은 얼마 뒤 짐차 한 대 불러서 모두 가지고 서울로 뜹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 “엄마도 화장하고 파마도 하잖아.” “나하고 너하고 같아? 나는 어른이고 너는 학생이잖아.” “그럼 엄마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딸 밥도 잘 안 챙겨 주는 거는 엄마 노릇 잘하는 거야?”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누군 누구야 엄마가 좋아서 엄마 인생 사는 거지. 나는 바보처럼 공부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살 거야. 그리고 절대로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다 ..  〈22∼23쪽〉


 그리고 2007년. 멋대로 살아가는 둘째아들은 다른 친척들 앞에 내보이기 부끄럽다며, 사촌동생 장가가는 날에 ‘오지 말라’는 말을 듣습니다. 곧 설 명절. 설 명절에는 집에 ‘오라’고 하실는지. 또 ‘오지 말라’고 하실는지. 전화를 걸어 한 번 여쭈어 보면 될는지. 어찌하면 좋을까요.


.. 문제아인 애들도 진짜 속까지 문제아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애들도 그게 편하니까 그런 척할 뿐이다. 어른들만 속고 있지 애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  〈14쪽〉


 제 ‘백과사전’에 담긴 이야기 가운데 몇 줄을 끄적여 보았습니다. 제 아버지 백과사전에는, 또 어머니 백과사전에는, 형 백과사전에는 무슨 이야기가 적혀 있을까요.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아온 우리 식구들은 무슨 이야기를 당신들 백과사전에 적으셨을까요. 앞으로 그 백과사전에 적힌 이야기를 들여다볼 날이 있을까요. 부모님이나 형은 제 백과사전에 적힌 이야기를 들여다볼 날이 있을까요. 글쎄, 글쎄요. (4340.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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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가에서 물 뜨기


 - 1 -

 충주에 돌아온 뒤 땀에 전 옷을 벗고 부엌 수도꼭지부터 살핀다. 물이 안 나온다. 틀림없이 날이 풀려서 녹았을 텐데? 펌프 자리로 가서 뚜껑을 열어 본다. 전깃줄이 뽑혀 있다. 누군가 뽑은 듯. 전깃줄을 잇고 수도꼭지를 다시 살핀다. 아무 움직임이 없고 펌프 돌아가는 소리도 안 난다. 지난해 이웃집이 불타면서 펌프 부속도 불탔을까?

 하는 수 없이 윗마을로 올라가 물을 뜨기로. 물통을 가방에 담고 느릿느릿 고갯길을 올라간다. 수도꼭지를 틀면 철철철 나오는 곳에서 뜰까 하다가 아기 오줌줄기보다도 가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샘가에서 물을 뜨기로 한다. 글쎄, 이런 물줄기로 받는다면 어느 세월에 한 통을 받을까 싶지만, 물통 뚜껑을 받쳐서 똑똑똑 떨어지는 물을 몇 방울씩 받으며 조금씩 물통을 채운다.

 쪼그려 앉은 채 물을 뜬다. 아주 조금씩 차오르는 물통이 1/10, 1/7, 1/4, 드디어 반쯤. 몇 분쯤 흘렀을까. 삼십 분도 넘은 듯한데.

 틈틈이 허리를 편다. 고개를 들어 새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며 어느 나뭇가지쯤 앉아 있나 찾아본다. 하지만 아무 새도 안 보인다. 안경을 안 써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 주먹만큼도 안 되는 조그마한 새들이겠지. 박새, 콩새.

 오랫동안 똑똑 물줄기를 받노라니 물소리 하나하나 퍽 큰소리로 들린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소리도 제법 큰소리로 들린다. 샘터 바닥에 가라앉은 모래를 보고, 물 한 모금 떠서 손가락으로 이닦기를 하고, 따사로운 햇볕을 냠냠 받아먹고, 서늘한 낮공기를 큼큼 들이키고.


 - 2 -

 샘가에서 물을 뜨는데, 윗마을 공동체학교에서 지내는 아이 둘이 개를 풀어서 내 뒤까지 끌고 온다. 이상한 사람이 와서 쫓아내려고 그러나? 그 개는 아주 어린 새끼였을 때부터 가까이서 보아 온 녀석. 이 녀석은 어릴 적 이웃 개한테 잘못 물려서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얼굴을 보면 한쪽으로 뒤틀려 있다. 새끼였을 때는 퍽 불쌍하다고 느꼈는데, 다 자란 뒤 나를 보고 컹컹 짖는 모습을 보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다른 개들은 나를 보고 안 짖고 안기거나 얌전히 있는데 이 녀석만 짖는다. 하지만 모르지. 개가 짖는 소리에 무슨 뜻이 담겼는지 사람 생각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가.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왜 개를 끌고 내 뒤에 서는가. 할 말이 있으면 입으로 하든가, 보기 싫으면 나가라고 하든가. 이 아이들은 한 마을에, 그것도 바로 위아래에 나뉘어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을 모르는가. 하긴, 나도 이 아이들 얼굴이 낯설다. 아마 서로 얼굴 마주칠 일이 없어서 그럴 테지. 어른인 내가 아이들 얼굴을 잊지 않고 떠올린다고 해도, 아이들이 어른 얼굴을 모두 떠올리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자(이 아이들하고 가까이 지낼 일은 없지만 이래저래 스치며 여러 번 보기는 했으니까).

 등 뒤에서 바로 개 짖는 소리를 들으니까 물을 뜨던 손이 떨린다. 파르르.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이들한테, 그것도 공동체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아이들한테 도둑이나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을 받고 있으니. 조금 뒤, 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 가운데 오랫동안 가까이 지냈던 아이 하나가 나를 알아보고 “야, 최종규 선생님이야.” 하고 왜들 그러느냐고 이야기. ○○○구나. 히유. 한숨이 나온다. 그렇지만 개를 끌고 온 아이들이 내 이름이 뭔지, 내가 어디에서 사는지,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 턱이 없을 테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안다 한들 달라질 것 없겠지.


 - 3 -

 한참 물을 뜨다 보니 손과 발이 얼었다. 처음에는 몸에 땀이 후끈후끈 올라왔다. 자전거 타고 살림집에 닿은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래서 샘가에서 얼굴 씻고 발 씻을 때 시원함만 느꼈으나, 한참 쭈그려 앉으며 물을 뜨는 동안 허리도 쑤시고 손발도 시리고. 하지만 물통은 언제 찰는지 까마득하고.

 그렇지만 똑똑똑 떨어지는 물줄기를 쏴아아 흐르도록 할 수 없다. 무슨 기계로 빨아들인다한들 더 빨리, 더 많이 나올 수 없다. 그저 지금 이 빠르기대로, 이 흐름대로 받을 뿐이다. 억지를 쓴다고, 꾐수를 쓴다고 달라지겠는가. 조바심을 낸다고, 안달을 한다고 바뀌겠는가. 말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저 있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추운 겨울, 물이 얼어붙는 시골집에서는 으레 견뎌야 하는 일이며, 몇 방울밖에 안 떨어지는 물줄기라도 고맙게 느껴야지.

 문득, 물 한 동이 뜨려고 십 리나 이십 리 길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다녀야 한다는 사막마을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과 견주면 나는 얼마나 수월한가. 이만한 물줄기라도 하늘에서 내려준 복이 아닌가.


 - 4 -

 물은 반 조금만 더 받는다. 개 짖는 소리 듣기 싫고, 손발도 많이 얼었다. 밥할 만큼은 떴으니, 이것으로 넉넉하다. 다음에는 자전거 타고 휭 왔다가, 다시 자전거 타고 휭 사라져야지.


 - 5 -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늙은 감나무 옆에서 쉬를 보다. 올해에도 감 몇 알 열어 주시겠지. 내가 이 감나무한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시골집에 있을 때 틈틈이 올려다보거나 쓰다듬어 주기, 때때로 오줌을 주기. (4340.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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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
리타 골든 겔만 지음, 강수정 옮김 / 눌와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
- 글쓴이 : 리타 골든 겔만
- 옮긴이 : 강수정
- 펴낸곳 : 눌와(2005.4.30.)
- 책값 : 14000원


 재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딱히 잡혀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꼭 이래야 하거나 저래야 하는 법이 없으니 재미있지 싶어요. 시험을 치를 때 꼭 100점을 맞아야 하지 않아요. 99점만 맞아도 좋아요. 뭐, 80점으로 흐뭇할 수 있고, 50점만으로도 기쁠 수 있습니다. 10점이나 5점 맞고 웃을 수 있어요. 제 고등학교 때 성적표를 보면, 영어 94점, 한문 97점, 수학 24점, 윤리 51점, …… 이랬습니다. 수학점수가 10점대였던 적도 있지 싶고 골치아픈 서양철학만 외우게 하는 윤리는 30∼40점에 머문 적도 있지 싶습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요. 아니, 좋았습니다. ‘난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더 많이 할 테야’ 하고 생각했거든요.


.. 나는 누군가 다른 이의 삶을 살고 있다. 근사한 레스토랑과 유쾌한 사람들, 아카데미니 그래미니 하는 각종 행사들로 채워진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이다. 24년을 함께 산 남편과 나는 유명 인사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최근 영화들을 시사회에서 감상한다. 로스앤젤레스의 도서 관련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초대된다. 남편이 유명한 잡지의 편집자문 일을 하는 덕분에 우리는 남들이 흔히 누리지 못하는 특권과 화려함으로 채워진 삶을 구가한다. 하지만 이젠 그런 자리에 가더라도 특권을 향유한다는 뿌듯함 대신 눈부신 화려함이 왠지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더 이상은 나라고 할 수 없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명품의 세계에 살고 있다 ..  〈13쪽〉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난 내가 살고픈 대로 살 테야’ 하고 마음먹으면서 살고 있고, ‘난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을 테야’ 하면서 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읽습니다. 충주에서 서울로 자전거를 타고 오가기를 즐기는데, 올겨울에는 손발이 많이 시려워서 때때로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쯤 따뜻하게 가곤 했습니다. 얼어붙는 손발을 부여잡고 낑낑대며 달릴 때에는 ‘참 괴롭구나’ 싶었지만, 글쎄, 괴롭기는 해도 즐겁더군요. 더우면 더운 대로 ‘이게 바로 더위구나’ 하고 느꼈고, 추우면 추운 대로 ‘이게 바로 추위구나’ 하고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면 몸은 느긋했지만, 마음은 무겁습디다. ‘이거 너무 몸이 느긋하게 다니는 셈 아닌가’ 싶었고, 돈 몇 푼(찻삯)으로 자꾸만 손쉬운 길을 가면 마음까지 흐물흐물 늘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더군요. 그래서, 고속버스에서 내린 뒤 다시 추위를 와락 껴안으며 달릴 때면 참 시원하데요. 그 짜릿한 추위와 칼바람이란! 하하!


.. 지금은 내가 선택한 삶의 자유와 독립을 구가하는 중이다. 만약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면 니카라과에는 결코 가지 못했을 것이다 ..  〈117쪽〉


 곧 설 명절이 다가옵니다. 설 명절에 부모님 집에 갈까 말까 망설입니다. 저는 제가 살고픈 대로 살기 때문에, 저 한 사람한테는 좋다고 하겠지만 이웃사람, 이 가운데 집안식구들한테는 썩 좋지 못합니다. 혼인과 이혼도 멋대로 했으니 집안식구들로서는 달가웁지 않겠지요. 제 둘레에 있는 다른 분도 비슷하리라 봅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다고 느끼는 일이지만, ‘야, 니가 고생하며 사는 걸 너 빼고 누가 좋아하겠냐?’ 하고 말하는 선배들 말을 들으면, ‘그렇구나. 나는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구질구질하게 뭐 하는 짓이냐고 느끼겠구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지내는 시골집을 슥 둘러보시더니 ‘무슨 피난민 수용소 같네’ 하던 부모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 코네티컷의 부모님 댁에서 일주일을 머문다. 두 분은 내 인생에 대해 무척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신다. 딸이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꾸리길 원하신다는 걸, 내가 아무리 행복하다고 말해도 믿지 않으신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리 그래도 당신들이 더 잘 안다. 여자는 남편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걸. 그게 인생이라는 걸. 엄마는 딸과 이혼한 옛 사위에게 얼마 전에 생일 선물을 보냈다고 얘기하신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내심 우리가 다시 화해하기를 바라신다 ..  〈89쪽〉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셈일까요? 남들이 말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 집안식구들이 말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요? 이 모두가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삶을 꾸려야 잘사는 삶일까요?


.. “의료 교육을 받으셨나요?” 내가 묻는다. “아니오.” 그녀가 대답한다. “그렇지만 엄마들이라면 다 아는 일들인걸요.” 그녀는 자식이 다섯에, 손자는 열다섯 명을 두었다 ..  〈106쪽〉


 《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난 미국여자 한 사람이 세계 여러 곳을 두루 다닌 이야기를 끄적였나 싶어 따분할지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남 보란 듯이 꾸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즐겁게 꾸리는 삶’을 찾고자 위자료 한 푼 안 받고 이혼을 마음먹은 뒤, 제3세계를 중심으로 홀몸으로 낯선 세상과 사람들을 부대끼는 이야기임을 깨달은 뒤에는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군요.

 남들 따라 살지 않고 나 따라 살아가니까 그럴까요. 한 번 살고 떠나는 이 세상에서 굳이 미련이나 아쉬움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자유롭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살아가니까 그럴까요. 더 많이 움켜쥐거나 가지려는 삶이 아니라, 더 많이 부대끼고 즐기려는 삶이라서 그럴까요. 떠날 때는 바람, 머물 때는 햇살. 그래, 그렇군요. 가볍게 살되, 한 자리에 머물 때는 따순 마음을 펼칠 수 있어야겠군요. 저는 바람처럼 살는지 모르나 햇살처럼 못 머물고 있었습니다. (4340.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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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을 사는 즐거움
- 헌책방 책값 느끼기


 책등이나 책 뒤쪽에 책값 딱지를 붙여놓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연필로 책값 숫자나 기호를 적어 놓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책값 딱지를 안 붙이고, 숫자나 기호도 안 적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책값 딱지를 붙이는 헌책방에서는, 책손이 책마다 매겨진 제값을 잘 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책값 딱지를 안 붙이는 헌책방에서는, 이 책이나 저 책이나 다 비슷비슷한 값인데 구태여 책값 딱지를 붙일 까닭이 없다고 느끼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아예 책꽂이마다 책값을 달리해서 꽂아 놓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헌책방을 열어 꾸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책값을 붙이는 방법이 저마다 다릅니다. 또한, 책값을 붙이는 방법만큼이나 책값 매기는 잣대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김남주 시인 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키 소설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학습지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마음을 더 두는 책에, 자기가 더 좋아하는 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깁니다. 장사하는 처지로 본다면, ‘내가 안 좋아해도 남이 좋아하는 책’이라면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들도 헌책방 임자가 ‘아는 책’이나 그렇지 ‘모르는 책’에 섣부른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조복성’이 누구인지 아는 헌책방 임자가 어디 있겠으며(책손조차도 거의 모릅니다만), ‘앨런 테인 더닝’이 누구인지 아는 헌책방 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도종환이든 조정래든, 헌책방 임자로서는 ‘헌책방에 들어오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하나를 지은 사람’일 뿐입니다. 책더미 사이에서 눈에 뜨여서 따로 빼낸 뒤 좀더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놓을 수 있지만, 그냥 책탑을 쌓아 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도종환 님 책이라면 시집 칸 한쪽에 그냥 꽂아 놓을 수 있고, 조정래 님 책이라면 소설책 두는 자리에 덩그러니 올려놓거나 쌓아 둘 수 있습니다. 새책 값으로 6000원이 붙은 도종환 님 시집을 헌책방에서 2000원에 팔면 알맞는 값일까요? 1000원이나 1500원에 팔면 싼값일까요? 3000원에 팔면 비싼값일까요? 새책 값으로 9000원이 붙은 조정래 님 산문모음을 헌책방에서 4000원에 팔면 알맞는 값일까요? 3000원만 받아야 알맞을 값일까요?

 그제 강우방 님 산문모음을 5000원 주고 한 권 샀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는 8000원을 받았을지 모르는 책이고, 어떤 헌책방에서는 3000원이나 4000원을 받았을지 모르는 책입니다. 이 책이 저한테 아주 쓸모있고 소중하다면 8000원이 아니라 1만 원을 불렀어도 조금도 비싸지 않다고, 참 싸다고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재미없거나 따분하거나 값어치없다고 느꼈다면, 3000원이 아닌 거저로 준다고 해도 짐스러워서 안 받겠지요.

 어느 헌책방이든 500원이나 1000원에 파는 책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500원이나 1000원이라는 아주 싼값에 살 수 있는 책은 ‘우리들이 얼마나 즐겁게 만나서 사 읽을 만한 책’이 될까요. ‘우리들이 반갑게 사 읽을 만한 책’이라면, 헌책방 임자가 책 값어치를 몰라서 대충 싸구려로 후려치며 내다 파는 책 사이에 더 많을까요, 아니면 헌책방 임자가 알뜰히 손질하고 책먼지를 깨끗이 닦아내어 얌전하게 책시렁에 꽂아 놓은 책 사이에 더 많을까요.

 헌책방을 찾든 새책방을 찾든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우리들이 읽을 만한 책은, 우리들이 치러야 할 만한 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갓 나온 최민식 님 사진책 《인간》(눈빛)은 6만 원 딱지가 붙었습니다. 이 사진책 《인간》은 6만 원이라는 값을 하기 때문에 6만 원이 붙습니다. 조지 레이코프라는 사람이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라는 책은 1만 원이라는 책값이 붙었습니다. 이 책은 1만 원이라는 값을 하기 때문에 1만 원이 붙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알맞은 책값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이 헌책방에 들어온다면, 책값이 헌책방마다 다릅니다. 먼저, 헌책방에 들어오는 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책이라 해도, ㄱ이라는 헌책방에는 1000원에 들어오고, ㄴ이라는 헌책방에는 500원에 들어오며, ㄷ이라는 헌책방에는 100원에 들어오고, ㄹ이라는 헌책방에는 50원에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ㄱ와 ㄴ은 책값이 어떻게 될까요. ㄷ과 ㄹ은 어떻지요? 1000원에 들어오는 책이라 해도, 들어오기 무섭게 팔린다면 책값은 한결 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즘 우리들이 얼마나 책을 즐겁게 사서 읽고 있는가요. ‘헌책방에 책이 들어오기 무섭게 팔리는’ 오늘날인지, 아무리 좋다고 하는 책도 ‘헌책방 책꽂이에 자꾸자꾸 쌓이기만 하는’ 오늘날인지.

 모든 책에는 그만한 값이 매겨집니다. 먼저, 책에 담긴 글-그림-사진을 풀어낸 글쓴이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다음으로, 책을 엮어낸 출판사 사람들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그리고, 책을 죽 늘어놓고 파는 책방 사람들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헌책방에 들어가는 책은, 먼저, 책을 내놓은 사람한테 물건값(책값)을 보상해 줍니다. 또는, 고물상이나 폐휴지수집상에서 책을 거두어들인 샛장수한테 물건값을 보상해 줍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들어온 헌책을 매만지고 손질해서 갖추어 놓는 헌책방 임자 품에 값을 매깁니다. 새책에는 새책에 걸맞는 값을 매기고, 헌책에는 헌책에 걸맞는 값을 매깁니다. 새책으로 사든 헌책으로 사든, 우리들 책손이 이 책 하나를 손에 쥐기까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 품과 보람을 몇 푼 책값에 매겨 놓습니다.

 책을 사는 일은, 책 하나에 담긴 줄거리를 받아들이거나 즐기는 일입니다. 또한, 책 하나 엮어내거나 파는 이들이 들인 땀방울에 보답을 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에는 되도록 ‘자기 돈을 써서 사서 읽어야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한테 재미나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슬기나 깨달음 들을 넉넉히 건네주는 책 하나를 써내고 엮어내고 팔아 준 이들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일이 ‘책 사기’거든요. 밥 한 그릇 받아먹으며 농사꾼들 땀방울을 고맙게 느끼는 한편 밥알 하나를 이룬 햇볕과 물과 흙과 바람 앞에 고마움을 느끼듯, 책 하나를 손에 쥐면서 이 책을 이루어 낸 모든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을 고맙게 느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책을 읽는 일 못지않게 책을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누군가 저한테 책을 거저로 선사해 준다면 참 반가운 노릇이기는 한데, 제 주머니돈을 털어서 책을 사는 일보다 기쁘지 못합니다. 어렵사리 모은 돈을 그러모아서 고마운 책 하나 사는 일이란, 좋은 줄거리를 받아먹는 일만큼이나 ‘나도 무언가 했구나’ 싶은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손수 책을 하나하나 사서 읽히는 어버이들을 볼 때면, 참 흐뭇하고 살갑다고 느낍니다. 저 아이들은 벌써부터 ‘책 사는 즐거움’을 느끼고 배우고 몸으로 익히니까요. (4340.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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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를 한다. 보일러를 돌려 따뜻한 물이 나오게 한 뒤, 먼저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다 감을 무렵 비로소 물이 조금 미지근해진다. 머리는 찬물로 감았다. 하지만 빨래를 할 때에는 제법 따순 물이 나온다. 어제부터 담가 둔 긴소매 웃옷 한 벌과 긴바지 한 벌을 빤다. 긴소매 웃옷은 보름 앞서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갈 때 입던 옷. 그때 땀에 흠뻑 젖어서 이제 빨아 입어야 했는데, 시골집은 물이 얼어서 빨래를 못한다. 빨래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번 서울 나들이에는 빨랫감을 입고 지고 하며 가지고 왔다. 그제는 시골집에서 입는 두툼한 겉옷 하나를 빨고 면티 하나와 수건도 하나 빨았다. 시골집에서는 난방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옷을 두툼하게 입는다.

 오늘 빤 빨래도 진작에 빨고 싶었지만 못 빨고 있던 옷들. 이제 면티 하나만 더 빨면 밀린 빨래는 다 하는 셈.

 문득 오랜만에 빨래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렇구나. 겨울이 되어 물이 얼어붙은 뒤로는 땀에 전 옷도 말려서 다시 입곤 했다. 이렇게 입으니 몸이 근질근질 자꾸 가려웠는데,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 땀이 줄줄 흐르면 가려움은 이내 사라지곤 했다.

 빨래도 오랜만, 머리감기도 오랜만. 한 번 말끔하게 빨고 씻으니 몸이 개운. 씻은 뒤 가뿐하다는 느낌이 이러했던가.

 비누를 골고루 문지른 뒤 북북 비벼서 빤다. 홍제동 얹혀지내는 집 뒷간은 크기가 작은데다가 세탁기까지 자리를 차지해서 퍽 비좁다. 그래도 몸을 비틀어 쭈그리고 앉은 채 빨래를 한다. 잿빛 땟물이 줄줄줄 흘러나온다. 물을 틀어 빨래를 헹구고, 다 헹군 뒤 뒤틀어 물을 짠다. 다 짠 뒤 탁탁탁 턴다. 빨래를 털 때 자잘하게 일어나는 김 같은 물방울들. 여름철에는 이 물방울이 팡팡 일어날 때 참 시원하다고 느꼈다. 겨울에는 조금 차갑다고 느끼는데, 따순 물로 빤 다음 터니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 빤 옷을 벽에 박힌 못에 건다. 다 마른 옷은 걷어서 갠다. 월요일쯤 충주로 돌아갈 텐데, 가는 길에 땀에 흠뻑 젖는 옷이 또 하나 생길 테지. 그 옷은 다음에 서울 나들이를 다시 할 때 또 입어야지. 그리고 서울에 와서 다시 빨래를 해야지. (4340.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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