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철학 그림책 1
홍성혜 옮김, 소피 그림, 라스칼 글 / 마루벌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손 잡고 나란히 길을 걷는 마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1] 라스칼·소피, 《문이》(마루벌,1995)



 “문이가 태어났을 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2쪽)”다고 합니다. “마침내 먹을 것이 다 떨어졌(6쪽)”고, 문이를 낳아 기르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바다 저 멀리로 문이를 떠나 보내려(6쪽)”고 “사랑하는 아기 문이를 상자 안에 소중히 담(6쪽)”습니다. 상자는 큰 물결을 맞으면서도 멀디먼 바다를 건너는 동안 가라앉지 않습니다. 아이가 담긴 상자는 이웃나라에 얌전히 닿습니다. 또한, 이웃나라 바닷가에 닿은 상자를 알아본 사람이 있고, 이들은 이 상자에 담긴 아이를 고이 껴안으며 기르기로 합니다. 이웃나라에서 어린 문이를 받아들여 키운 어버이는 문이가 꽤 컸다고 느낀 어느 날, “어느 봄날 이른 아침(24쪽)”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들려줍니다. 이때 새 어머니와 새 아버지는 문이한테 “문이를 데리고 온 이야기와 사랑하며 살아온 지난 이야기 모두(24쪽)”를 들려줍니다. 이때부터 문이는 “더 자주 바닷가에 나가게 되(28쪽)”었고, “바다 저쪽 끝에 있는 아빠와 엄마도 문이를 사랑했었다(28쪽)”고 여깁니다.

 저를 낳아 기르던 어버이가 저를 버린 줄 알았을 때 어떤 마음일까요. 저를 낳아 기르던 어버이가 당신들은 굶주리다 못해 숨을 거둔다든지, 또는 싸움판에서 끔찍하게 숨을 거둔다든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제 어버이가 당신들은 숨을 거두면서 저 혼자 살아남도록 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알았을 때에는 어떤 마음이려나요.

 길디긴 싸움판이 그치지 않을 때, 누구도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울 테고, 시골에서는 애써 거둔 곡식을 자꾸 빼앗길 테지요. 돈도 밥도 집도 옷도 얻기 어려우며, 삶마저 괴롭겠지요.

 마지막 곡식이 떨어질 무렵이면 싸움이 끝나 주리라 믿다가 사랑스러운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는지 모릅니다. 마지막 곡식이 떨어지기 앞서 싸움판 나라를 아이와 함께 떠나 평화롭고 따사로운 터전을 찾아나서야 했는지 모릅니다. 굶어죽더라도 함께 굶어죽고, 싸움판에서 총이나 대포에 맞아 죽더라도 함께 죽어야 했을는지 모릅니다. 아이만 바다 너머로 보낼 노릇이 아니라 어버이 또한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널 노릇이었는지 모릅니다. 아이는 용케 좋은 어버이를 새로 만나 즐거우며 따사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지만, 아이는 아무런 새 어버이를 만나지 못하면서 더 괴롭게 굶어죽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새 어버이를 만났다지만 못된 어버이를 만나 아파 하고 슬퍼 하며 삶을 마감할 수 있어요. 아이를 떠나보내고 얼마 있지 않아 싸움이 끝났다든지, 뜻밖에 먹을거리를 넉넉히 얻을 수 있었다면, 이 어버이들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요.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로서 아이를 누군가한테 떠나보낸다 한다면, 더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셈입니다. 도무지 할 수 없는 짓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누리는 아이 어버이들이 당신 아이를 더는 끌어안지 못하도록 내몰곤 합니다. 어버이와 아이를 갈라 놓고, 어버이와 아이한테 생채기가 남도록 짓누르곤 합니다.


.. 문이는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전쟁이 미웠고, 문이를 낳아 바다에 띄워 보낸 바다 저쪽 끝에 있는 아빠와 엄마도 미웠습니다 ..  (26쪽)


 전쟁은 사람이 일으킵니다. 전쟁은 어른이 일으킵니다. 전쟁을 하는 어른들은 남자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까닭은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더 많은 돈을 긁어모으고 싶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일으켜 이웃나라를 짓밟은 다음, 돈은 돈대로 거두어들이고 이웃나라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흥청망청 노닥거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은 싸우지 않습니다. 손수 제 밥거리를 얻으려는 사람은 이웃을 해코지하지 않습니다. 알맞게 일하여 알맞게 거두어 알맞게 먹고사는 사람은 다툼질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너무 큰 돈·이름·힘을 물려받는다든지, 얼마 일하지 않고도 지나치게 큰 돈을 얻어들이는 사람들이 다툼질을 하고 맙니다. 아무렇게나 쓰고도 어마어마하게 남는 사람들이 자꾸자꾸 이웃을 짓밟으며 더 가지려 하고 더 누리려 합니다.

 우리 삶터는 한결 발돋움하는 삶터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삶터는 서로서로 즐거우며 아름다운 삶터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고속도로가 더 생기거나 고속철도가 더 늘어난다고 우리 삶터가 좋아지지 않습니다. 큰물이 날 때에 물이 넘치니 ‘큰 물줄기 네 곳’을 손질해야 한다지만, 큰물이 나는 밑뿌리는 그대로 둔 채 토목건설만을 해댈 때에는 또다른 큰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좋아하는 삶을 찾아야 합니다. 즐기는 삶을 느껴야 합니다. 고운 삶을 껴안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삶을 나누어야 합니다. 믿음직한 삶을 누려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느긋하면서 튼튼하고 씩씩한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착한 삶을 아끼고, 참다운 삶을 돌보아야 합니다. 기쁜 삶을 맞아들이도록 나와 내 살붙이와 내 아이와 내 이웃과 내 동무와 함께 기쁜 일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 어느 가을날 저녁, 문이는 어릴 때 좋아했던 모든 것을 작은 대나무 상자 속에 담았습니다 ..  (30쪽)


 그림책 《문이》를 읽습니다. 그림책 《문이》에 나오는 ‘문이’는 전쟁 때문에 모든 삶이 바뀝니다. 전쟁이 아니라면 제 어버이를 잃지 않았으며, 새 어버이를 만나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제 어버이를 잃는 아이는 많습니다. 교통사고 때문이든, 길에서 그만 어버이를 잃든 하면서 제 어버이를 잃는 아이가 많습니다.

 죽고 죽이는 전쟁이 터지지는 않는 이 나라에서도 아이를 먹여살릴 길이 없어 아이를 누군가한테 맡겨야 하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다른 한켠에서는 넉넉히 먹고살 뿐 아니라 돈이 가득하거나 밥쓰레기가 흘러넘칩니다. 집에서 밥을 먹든 바깥에서 밥을 사먹든, 알맞게 밥을 먹어 밥쓰레기가 안 나오도록 마음쓰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내 몸을 생각하며 밥을 먹는 사람들이지만, 내 이웃 몸과 삶을 헤아리며 밥을 나누는 일은 좀처럼 드뭅니다.

 새벽과 아침과 낮에 해를 느낄 수 있다면, 밤에 달과 별을 올려다볼 수 있다면, 구름이 흐르고 바람이 부는 결을 맞아들일 수 있다면, 들풀과 들꽃과 들새 이름을 하나하나 욀 수 있다면, 이웃사람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미움이나 다툼이나 겨룸이나 싸움이 아닌 사랑이나 따스함이나 믿음이나 너그러움으로 어깨동무할 텐데요. 서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삶이 아니라, 서로를 좋은 보금자리로 안아들이는 삶이 될 텐데요.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가 아닙니다. 많이 가졌어도 모자랄 사람이 있고, 적게 가졌어도 넘친다 여길 사람이 있습니다. 알맞게 가지고, 알맞게 나누며, 알맞게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너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서로 기쁘게 살자고 하는 곳이 사랑이면서 평화입니다. 나와 네가 어깨동무를 안 하고, 나와 네가 서로 기쁘게 안 살려 하는 모든 자리는 싸움판입니다. (4343.11.18.나무.ㅎㄲㅅㄱ)


― 문이 (라스칼 글,소피 그림,홍성혜 옮김,마루벌 펴냄,1995.5.15./7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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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실을 하며 읽는 책


 예전에 혼자 살던 때에는 마실을 다니며 길에서든 차에서든 거의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마실을 다니는 곳마다 마주하는 책방에 들러 또다른 책을 잔뜩 장만하면서 새로운 책을 끊임없이 읽었다. 옆지기를 만나 함께 살아가면서도 함께 마실을 하는 길에 틈틈이 책을 읽었고, 마실 다니는 곳에서 함께 찾아가는 책방에서는 책을 곱배기로 장만했다. 이제 아이 하나를 낳아 함께 살아가면서는, 함께 마실을 할 때에 책을 읽지 못한다. 그래도 가방에는 책을 한두 권이나 두세 권 챙겨 놓는다. 아주 살짝이라도 틈을 내어 한 줄이라도 읽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참말, 아이랑 함께 마실을 다니면서 길에서든 차에서든 잠집에서든 책을 펼치지 못한다. 길에서는 아이랑 복닥이느라, 차에서는 아이를 안느라, 잠집에서는 아이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하느라, 또 지치고 고단해서 곯아떨어지느라 책을 손에 쥘 수조차 없다. 2010년 11월 13일부터 11월 17일까지 제주마실을 하면서 《식민지의 사계》(조지 오웰 글,청람 펴냄,1980) 한 권을 챙겼다. 요사이 조지 오웰 님 책들이 새롭게 눈길과 사랑을 받으며 다시 나오는데, 그동안 조지 오웰 님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수없이 새로 나오는 동안 제대로 사랑받은 적은 거의 없지 않느냐 싶다. 아무튼, 이 책 하나 가방에 챙겨 늘 갖고 다녔지만, 새벽에 똥을 누며 몇 쪽 넘기고 끝. 비행기에서든 버스에서든 어디에서든 도무지 펼치지 못한다. 그래, 말이 좋아 여행하며 책을 읽는다는데, 혼자 한갓지게 여행할 때가 아니라면 책이란 한낱 꿈이다. 아니, 복닥이고 보듬으며 안아야 하는 아이랑 옆지기가 바로 책이라 할 만하겠지. 아이랑 옆지기랑 마실을 하며 종이책을 읽겠다고 생각한 애 아빠는 바보요 멍텅구리이다. (4343.11.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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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 남자와 여자

 우리 말은 ‘사내’와 ‘계집’입니다. 그런데 우리 말을 우리 말로 여기는 흐름은 꽤 예전부터 꺾였습니다. ‘사내’라는 낱말을 놓고는 깎아내리는 느낌을 안 받으면서, ‘계집’이라는 낱말을 놓고는 깎아내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계집’이라는 낱말을 섣불리 올리면 인권모독이나 인권침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인천 싸리재길을 늘 지나다니면서 이 거리에 자리한 가구집들 이름이 어떠한가를 따로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리바트가구이든 시몬스침대이든 그저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던 얼마 앞서 ‘레이디가구’라는 이름이 붙은 가구집 옆을 스치다가 ‘레이디’라는 이름을 붙인 가구 회사는 어쩜 이름을 이리 지었을까 싶어 궁금했습니다. 우리 말로는 ‘아가씨’이잖아요. 또는 ‘아씨’나 ‘색시’쯤 될 테지요. 그런데 ‘색시’라는 낱말도 얕잡는다는 느낌을 받는 낱말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아씨가구’라 하면 낫다 여길는지 모르나, 이 또한 모를 노릇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 고스란히 글로 담지 못합니다. 똥오줌 누는 뒷간에 ‘남자-여자’라 적힌 모습을 보기조차 힘듭니다. (4343.9.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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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4] 스물네 시간

 아이랑 아이 엄마랑 하루 스물네 시간을 붙어 지냅니다. 세 사람이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하루 한 시간은커녕 하루 한 분조차 안 됩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한 주 이레, 한 달 서른 날, 한 해 열두 달 내내 함께 살아가며 같이 움직이고 나란히 잠자리에 듭니다. 밥을 한다든지 설거지를 한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다른 일을 한다든지 하면 아이는 혼자 심심해 하곤 하지만, 이내 혼자 소리지른다거나 노래부른다거나 춤을 춘다거나 합니다. 엄마나 아빠 따라 책을 펼친다든지 사진찍기 놀이를 하거나 드러눕거나 마구 달라붙거나 엉겨붙습니다. 아이는 스물네 시간 함께 살아가며 제 어버이 삶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따릅니다.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서로서로 마주하는 가운데 닮아 가기도 하고 안 닮아 가기도 합니다. 아이도 그렇겠지요. 제 어버이 삶을 고스란히 따르기도 하지만, 제 어버이 말을 하나도 안 들으며 제멋을 찾아 제길을 갈 테지요. 아이와 아이 엄마하고 보내는 하루 스물네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길다고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밥하고 빨래하며 쓸고닦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아침 되고 아침이 낮 되며 낮이 저녁 됩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 또한 퍽 짧습니다. (4343.11.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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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과 글쓰기


 제주섬 헌책방으로 마실을 왔다. 아이는 헌책방 골마루를 누비며 논다. 아이 엄마랑 아이 아빠는 책꽂이를 찬찬히 살피며 책을 찾거나 읽는다. 아이가 지루해 하지 않고 스스로 잘 놀아 주니 몹시 고맙다. 아이 아빠는 사진을 같이 찍는다. 동화쓰는 ㅎ님이 쓴 ‘동화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밝힌 책 하나 본다. 새책으로 나왔을 무렵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지 않은 책이다. 책이 나온 지 네 해 흘렀다. 나는 내가 쓴 글이 네 해 묵었다면 참 철없고 해묵었으며 부끄러운 글이라고 느낀다. 새로 쓰거나 다시 손질하거나 거듭 매만져야 한다고 여긴다. 하루하루 새롭게 배우며 다시금 익히는 삶이니, 네 해나 흐른 오늘 이 자리에서 예전 내 글을 쉽사리 남들한테 보여주지 못한다. 자꾸자꾸 새 글을 써야 하고 거듭거듭 옛 글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내놓는 책이란 늘 모자라거나 어설프거나 어리숙하다고 본다.

 동화쓰는 ㅎ님은 ‘동화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밝힌 이 글을 언제쯤 썼을까. 2006년에 나온 책이니 적어도 2006년이나 2005년에는 썼다 할 테고, 더 예전부터 갈무리해 놓았다고 할 수 있겠지. 대학교 문예창작과 학생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 하는 글인데, 나라 안팎 숱한 이론이 가득하다. 이 이론을 풀이하고자 제법 어려운 말이 많다. 따지고 보면,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편, 또다른 대학교수나 학자들이 머리로 헤아린 이야기를 주섬주섬 엮었다 할 만하다. 가만히 보면, 어려운 말이라 할 수 있으면서, 갖가지 영어와 한자말을 뒤섞었다 할 수 있다.

 대학생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서 이러한 글 눈높이와 매무새여야 하는가 궁금하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학문을 한다 할 때에는 이렇게 ‘이론 늘어놓기’와 ‘영어에 한자말 섞어쓰기’를 즐겨야 하는가 모르겠다. 글쓰기를 배우러 대학교에 찾아온 아이들은 글쓰기 삶쓰기 넋쓰기 아닌 이론쓰기 영어쓰기 한자쓰기를 배우는 노릇인가 싶어 아리송하다.

 학문하는 글쓰기는 어린이문학에서 학문하는 글쓰기일 때마저 영어 뽐냄 글쓰기이거나 한자 자랑 글쓰기에서 허덕여야 하는가 궁금하다. 사랑 듬뿍 글쓰기요 믿음 가득 글쓰기로 거듭날 수는 없는 이 나라 학문 글쓰기인가 궁금하다. 어린이책이든 어린이문학이든 영어 뽐냄 글쓰기나 한자 자랑 글쓰기를 하지 않는데, 어린이책을 이야기하거나 어린이문학을 다룰 때에는 으레 아이 사랑 글쓰기나 어른 믿음 글쓰기가 되지는 못한다. 어린이책을 쓰듯이 ‘어린이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어린이문학을 나누며 즐기듯이 ‘어린이문학으로 나아가는 길을 다루는 책’을 여미어야 하지 않겠는가. (4343.11.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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