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는 책읽기


 책 하나 서둘러 읽어치우려 하면 틀림없이 한결 빨리 읽어치울 수 있다. 책 하나 느긋하게 읽으려 하면 언제나 한결 느긋이 읽을 수 있다. 서둘러 읽어치우는 맛에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 테지. 더 많이 읽어내는 데에 책읽기 뜻을 두는 사람이 있겠지. 책 하나 오래도록 곱씹거나 곰삭이는 데에 책읽는 삶을 맞추는 사람이 있을 테고.

 누군가는 허둥지둥 밥을 먹어도 얹히지 않는다. 누군가는 헐레벌떡 밥을 먹으며 쉬 속에 얹혀 애먹는다. 누군가는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안달이고, 누군가는 알맞게 먹으면 그만이라고 여기거나, 내 이웃한테 한 숟갈이나 두 숟갈 덜어 주고자 마음을 쓴다.

 살아가는 매무새가 다르고, 읽어내는 몸가짐이 다르다. 살고 싶은 꿈이 다르며, 읽으려고 손에 쥔 책이 다르다. 먹는 밥이 다른 만큼, 읽는 넋이 다르다. (4343.11.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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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여름날, 골목동네에서 살면서 이제 이 동네에서 시골집으로 옮기기 앞서, 날마다 신나게 나들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걸리고 안고 하면서 꽃구경을 즐겼다.

- 2010.6.3. 인천 동구 만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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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5 09:37   좋아요 0 | URL
만수동이란 오랬만에 사진 보네요.제 기억에 도로를 사이로 두고 한쪽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마치 서울 약수동 같은 느낌),다른 한쪽은 텅 빈곳 같았는데,이제 그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나요?
 

  아빠가 인천마실을 하면서 찐빵하고 만두를 사 왔다. 아이가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빠가 더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에구구.

- 201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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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5 09:35   좋아요 0 | URL
ㅎㅎ 맛나 보이네요^^

숲노래 2010-11-15 10:55   좋아요 0 | URL
그래도 불량식품이라서 애 엄마한테 꾸중들었답니다..
 

  책으로 보는 눈 143 : 전태일을 말하거나 가을을 말하거나

 퍽 널리 쓰는 낱말 ‘케이블카(cable car)’는 영어입니다만, 이 낱말이 영어라고 느끼는 어른은 얼마 없습니다. 어른들한테는 익숙해서 널리 쓴달지라도,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가장 알맞춤하면서 좋은 우리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할 텐데, 한낱 덧없는 꿈입니다.

 영어 ‘케이블카’를 한자말로 적으면 ‘가공삭도(架空索道)’입니다. 줄여서 ‘삭도(索道)’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영어 ‘케이블카’는 익숙하고 한자말 ‘삭도’나 ‘가공삭도’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은 ‘삭도’라는 말을 즐겨씁니다. 어느 날 문득 국어사전에서 ‘삭도’를 찾아봅니다. 말풀이 끝에 “‘하늘 찻길’로 순화.”라 적혔습니다. 그러니까, 영어로는 ‘케이블카’, 한자말로는 ‘삭도(가공삭도)’, 우리 말로는 ‘하늘차’입니다.

 이 나라 공무원과 개발업자는 설악산 대청봉에 ‘하늘차’를 놓겠다며 으르릉거립니다. 어쩌면 설악산 대청봉 둘레에서 장사하는 분들 또한 대청봉에 하늘차가 놓이기를 바라겠지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더 많은 사람이 찾아들면 돈벌이가 늘거나 살림이 펴리라 생각하니까요. 나라에서 4대강사업을 한다고 외칠 때에도 적잖은 분들은 우리 터전이 무너지리라고는 느끼지 않고, 일자리가 늘어나리라 여깁니다.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느 사람이거나 관청 사람이거나 정치판 사람이거나 커다란 건설회사 사람이거나 일자리를 생각합니다.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어떤 일자리일는지를 살피지 않고, 이 일자리에 내 삶과 땀과 품을 바칠 때에 우리 터전이 어떻게 달라질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동차회사 노동자는 틀림없이 노동조합을 세워 노동권을 알뜰히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우리가 만드는 자동차는 어떤 자동차이며, 이 자동차를 이렇게까지 끝없이 만들면 우리 터전은 어찌 될까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더라도 자동차회사 노동자가 아닌 자전거회사 노동자로 거듭날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더 큰 회사에서 더 벌이가 될 일자리를 찾아 ‘더 많이 번 돈’으로 자가용 장만하고 아파트 장만하며 좋은 밥거리 장만하는 삶이 아름다운 나날이 될까 궁금합니다. 더 작은 회사에서 일하든, 도시 아닌 시골에서 내 삶을 북돋우며 스스로 땅을 일구어 스스로 밥·옷·집을 마련할 때에는 아름다운 나날이 못 될는지 궁금합니다.

 1970년부터 해마다 한 차례 돌아오는 11월 13일이 지납니다. 11월 13일에는 이름도 힘도 돈도 없던 여느 노동자 한 사람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날 이이 한 사람만 숨을 거두었겠느냐만, 노동법에 적힌 그대로 노동자가 노동권을 누릴 수 있기를 빌고 외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어느덧 마흔 해입니다. 노동자가 노동법대로 노동권 누리기를 바란 지 마흔 해이지만, 이제껏 하나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2010년 올해에 한글날이 오백 몇 십 돌이 되더라도 우리 말글 문화가 나아지지 못한 모습과 매한가지입니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가을이 가을빛을 잃습니다. 겨울은 겨울다우려나요. 삶이 삶답지 못하고, 철은 철을 잃으며, 책은 책다이 읽히지 못합니다. (4343.11.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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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책들을


 좋아하는 책들을 책상맡에 오래오래 놓습니다. 예전에는 이 책들을 혼자서만 좋아하며 살았습니다. 이 책들을 얼마나 좋아하며 아꼈는가는 이 책들을 읽고 나서 곁에 오래오래 둔 이야기를 느낌글 하나로 갈무리할 때까지 혼자만 조용히 알 뿐입니다.

 좋아하는 책인 한편, 아이가 좋아하는 책들을 집에 들여놓습니다. 집하고 맞닿은 도서관으로 이 책들을 옮기지 못합니다. 아이는 아이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날마다 새로 꺼내고 다시 들추며 또 들여다봅니다.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이 아니라, 백 번 즈믄 번 거듭 읽는데, 이 책을 집에 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뜨개질하는 엄마랑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보던 아이가 갑자기 아빠한테 뛰어옵니다. “수박! 수박!” 하면서 아빠한테 먹여 준다고 손가락을 둘 오므립니다. 아빠 등을 철썩 때리듯이 덮치며 “맛있어? 맛있어?” 합니다. 아이는 그림책에서 수박을 보고는 손가락으로 수박을 집어 저도 한 입 먹고 아빠도 한 입 먹으라 합니다.

 한 번 읽은 좋았던 책을 두 번 읽거나 세 번 읽곤 합니다. 넌지시 책꽂이에 얌전히 모셔 놓은 다음 새로운 좋은 책을 찾아 책방마실을 즐기곤 합니다. 새로 책방마실을 하며 예전에 읽은 좋은 책을 마주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진작에 읽은 책이지만 한 번 눈길이 가고, 두 번 손길이 갑니다. 속으로 헤아려 봅니다. 이 책을 누군가한테 선물해 볼까?

 우리 집 책꽂이에 얌전히 꽂히거나 누워 있는 책들은 제 손을 거치며 제 눈과 머리와 가슴에 아로새겨진 책들입니다. 이 책들 가운데에는 썩 달갑지 않아 굳이 사둘 까닭이 없다고 여기는 책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달갑지 않달지라도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와 같은 때 이와 같은 목소리가 있었구나’ 하고 돌아보도록 하는 책이라, 제 마음대로 없앤다든지 없는 책이라 말할 수 없어요. 내 아이를 헤아리면서 이 책도 곱다시 꽂아 놓습니다. 이와 함께 제가 참 좋아하는 책들을 차곡차곡 꽂아 놓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을 새삼 끄집어 내어 새롭게 펼칠 때에도 이 책을 읽는다 말할 테고, 이 책을 굳이 끄집어 내지 않고 가만히 마음속으로 떠올릴 때에도 이 책을 읽는다 말할 만하지 않은가 하고.

 좋아하는 책들을 펼쳐 읽으며 좋아하고, 좋아하는 책들을 예쁘게 꽂아 놓으며 좋아하며, 좋아하는 책들을 반가운 벗님한테 건네주면서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제 손을 거쳐 우리 집에 들여놓은 책들은 우리 아이한테 하나둘 이어가면서 새롭게 좋아하는 책들로 자리잡습니다. 좋아하는 책들을 마음으로 안아들어 눈을 감는 일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4343.11.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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