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과 글쓰기


 산골집에서는 탄산 마실거리이든 보리술이든 한 병 얻기 힘들다. 면이나 읍까지 가기에도 멀지만, 마을 구멍가게 또한 없다. 그렇다고 내가 술을 집에 잔뜩 사다 놓고 틈틈이 마시는 사람도 아니다. 때때로 술 생각이 나더라도 술을 마실 수 없다. 이는 아이한테도 좋은지 모른다. 아이 까까를 아무 때나 손쉽게 살 수 없으니까. 그예 멧기슭을 보고 하늘을 보며 논밭을 바라본다.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받아들이며 물을 마신다. 텔레비전이나 기계나 자동차 소리가 아닌, 새와 닭과 풀벌레와 바람과 나뭇잎 소리를 듣는다. 덤으로는 멧쥐가 집으로 기어들어 벽을 갉는 소리.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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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벽을 바른 낡은 창고를 되살릴 길이 아쉽다.

 - 201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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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비매품으로 만든 사진책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조세현 님 다른 책에 이 글을 붙입니다. 아무쪼록, '최정상'이라느니 하는 부질없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들도 이런 말을 함부로 덧달지 않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사진은 그냥 사진입니다. 

 


 더 아름다운 얼굴사진은 어디에도 없다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27] 조세현, 《Self-portrait of Postenchians》



- 책이름 : Self-portrait of Postenchians
- 사진 : 조세현
- 글 : 유대식, 황원미
- 영어 번역 : 유대식
- 펴낸곳 : POSTECH (2006.11.11.)
- 시중에 팔지 않는 책



 (1) 얼굴사진 찍기


 모든 사진은 얼굴을 찍습니다. 사람을 찍든 돌을 찍든 나무를 찍든 새를 찍든 구름을 찍든 바다를 찍든 얼굴을 찍는 사진입니다. 낯짝을 대놓고 찍을 때에만 얼굴을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한 사람한테 고이 드러나는 빛깔을 찍는 사진이기에 얼굴사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돌에 깃든 얼굴, 나무에 스민 얼굴, 새한테 감도는 얼굴, 구름에 비치는 얼굴, 바다에 어린 얼굴을 차근차근 담는 사진입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사진쟁이 조세현 님을 일컬어 ‘얼굴 또는 사람 사진을 가장 잘 찍는 사진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 하고 웃었습니다. 도무지 터무니없기만 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가지를 가장 잘 찍는다 할 사진쟁이란 있을 수 없을 뿐더러, 사람이든 얼굴이든 가장 잘 찍을 사진쟁이 또한 나타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제 삶에 걸맞게 사진을 찍습니다. 누구나 저 스스로 좋아하는 모습을 제 깜냥껏 찍습니다. 잘 찍고 못 찍고란 따로 없습니다. 내 마음을 담아냈느냐 못 담아냈느냐만 있습니다.

 사람 모습을 사진으로 잘 찍었다고 할 때에는, 이 사진쟁이 한 사람이 바라보는 사람을 이 사진쟁이 넋으로 잘 담아냈다는 뜻입니다. 더도 덜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 모습을 사진으로 잘 찍었다”는 말은 함부로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진쟁이 한 사람은 사람을 찍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쟁이로서 어떤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끼어 절로 샘솟는 이야기를 찍은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딸아이 아빠보다 딸아이 사진을 잘 찍을 사람이란 없습니다. 다만, 딸아이 아빠가 바라보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남달리 잡아채어 찍을 수 있는 사진쟁이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딸아이 아빠가 아닌 딸아이 아빠 이웃집 아저씨도 매한가지입니다. 딸아이 아빠가 못 보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봅니다. 할머니도 보고 동무도 보며 동생도 봅니다. 언니도 보고 엄마도 보고 낯선 길손도 봅니다. 누구나 제 깜냥껏 제 눈길에 따라 제 삶결을 아로새기는 사진찍기일 뿐입니다.

 사랑스러운 짝꿍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는, 사랑스러운 짝꿍이 나한테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생각하면서 사진으로 담을 노릇입니다. 사랑스러운 짝꿍을 애써 찍었으나 무언가 어수룩하거나 예쁘장하지 않다고 느꼈다면, 사진기를 쥔 나 스스로 내 사랑스러운 짝꿍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깨닫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진기가 싸구려였다라든지 필름이 나빴다라든지 날씨가 궂었다라든지 솜씨가 없었다라든지 하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마음밭이 아직 모자란 탓입니다.

 사진관 일꾼은 누구나 사람사진을 잘 찍습니다. 왜냐하면 사진관 일꾼이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 ‘이 사진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아주 잘 알기 때문입니다. 큰회사에 낼 서류에 붙이는 사진이라든지, 대학입시 서류에 붙이는 사진이라든지, 여권에 붙이는 사진이라든지, 살림집 마루에 큼직하게 붙이는 사진이라든지, 지갑에 넣고 간직할 사진이라든지, 누군가한테 선물할 사진이라든지 …… 사진관 일꾼은 쓸모와 쓰임새에 맞추어 사진을 알차게 찍습니다. 사람사진을 가장 잘 찍는다는 말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만, 이런 말을 하자면 다른 사람이 아닌 사진관 일꾼한테 해야 올바릅니다.

 깊어 가는 밤나절, 아빠가 자꾸 부스럭거리면서 글깨나 끄적인다고 셈틀을 켜 놓고 있자니 아이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깹니다. 아빠는 글 좀 깨작거리고픈 나머지 아이한테 골을 부립니다. 그렇지만 셈틀을 끕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보아도 아빠가 잘못했으니까요.

 셈틀을 끈 아빠는 아이를 무릎에 누입니다. 한동안 누이다가 자리에 눕힙니다. 자리에 눕힌 다음 머리칼을 쓰다듬습니다. 한참 이대로 있자니 아이가 “물!” 하고 외칩니다. 아빠는 물을 갖다 바쳐야 합니다. 물을 마신 아이는 다시 눕습니다. 무언가 흐뭇한 얼굴입니다. 아빠도 아이 곁에 모로 눕습니다. 아이는 “이불!” 하고 외칩니다. 네, 이불을 끌어올려 드립지요. 아이는 한참을 더 뒤치락 엎치락 꼼지락 꾸무적 꼼틀꿈틀 하더니 한 시간쯤 걸려 바야흐로 고이 꿈나라로 빠져듭니다.

 아이가 한창 꼼지락거리며 두 손으로 머리칼을 만지작거릴 때에 디지털사진기를 들어 감도를 1600으로 놓고 셔터빠르기는 3초나 4초쯤으로 한 다음 사진 하나 찍어 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아빠가 누워 있다가 일어난 줄을 깨닫고 저도 일어나겠다며 ‘두 손으로 머리칼 만지작거리기’를 그칩니다.

 아빠는 속으로 ‘젠떡!’ 하고 외칩니다. 이내 뉘우칩니다. 아빠는 사진쟁이라서 사진으로 아이 삶을 담아내 주고 싶지만, 이런 모습을 꼭 사진으로 담아야 하지는 않습니다. 눈으로 보았으면, 눈을 거쳐 머리를 지나 가슴으로 포근히 안으면 됩니다. 그림을 그리듯이 가슴에 새기면 될 아이 삶이고 모습이며 몸짓입니다. 내 아이를 내 무릎에 몇 분 동안 누여야 아이를 사랑하는 삶이 되지 않습니다. 내 아이를 눕히고 몇 분 동안 몇 가락 잠노래를 불러 주어야 아이를 아끼는 모습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 곁에서 아이가 씩씩하거나 튼튼히 크도록 지켜봐 주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쯤 되는가에 따라 아이를 보살피는 몸짓이 되지 않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고, 함께 얼싸안는 삶입니다. 사진은 천천히 얻습니다. 삶무늬를 아로새기는 얼굴사진이란 함께 살아가는 사람끼리 언제 어디에서나 넉넉하게 얻고 나눕니다. 삶이야기를 풀어놓는 얼굴사진이란 함께 얼싸안는 삶에서 그때그때 숱하게 깨알처럼 쏟아지면서 맛난 이야기 열매로 새삼스레 주렁주렁 달립니다.

 사진은 이론이 아니고, 사진은 손재주가 아니며, 사진은 장비놀음이 아닙니다. 사진은 사랑어린 손길이고, 사진은 따사로운 눈길이며, 사진은 너그러운 마음길입니다.

 누구나 흔히 찍는 얼굴사진입니다. 누구나 참 잘 찍는 얼굴사진입니다. 아무개 사진쟁이를 놓고 얼굴사진이든 사람사진이든 가장 잘 찍는다고 일컫는다면, 이런 소리는 이런 소리를 듣는 사진쟁이한테부터 못마땅하거나 안 어울리거나 몹쓸 소리입니다.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 분들 또한 참으로 슬픈 넋입니다. 우리는 사진을 보고 사람을 보며 삶을 보아야지, 허울이나 겉치레나 껍데기를 볼 까닭이 없습니다.


 (2) 포항공대 찍기


 포항공대 스무 돌을 맞이하여 나온 사진책 《Self-portrait of Postenchians》를 봅니다. 비매품으로 나온 사진책이기에 헌책방에서 뜻밖에 만납니다. 다른 자리에서는 이 사진책을 마주할 길이 없습니다. 포항공대 스무 돌을 기린다는 뜻은 거룩합니다. 다만, 이렇게 기리는 거룩한 사진책에 붙이는 이름이 왜 이 모양으로 알파벳투성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포항공대 스무 돌을 기리는 사진책인 탓에 이런 이름이 붙겠구나 싶습니다. 지난날 포항제철 몇 돌인가를 기리는 사진책이 하나 나왔을 때에도(이때에도 비매품으로 나왔고, 저는 이 사진책을 아주 마땅히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에드워드 김’ 님이 사진으로 담은 이 사진책은 온통 알파벳투성이였습니다. 아마 《영일만의 기적》이라는 말마디를 영어로 “미라클 오브 영일만”이라 했던가 싶습니다. 알파벳으로 적는 책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 포스텍이 걸어온 20년은 한국 대학교육에 변화의 물길을 만들고 우리의 이공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면서 21세기의 과학기술을 이끌어 나갈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는 길이었다. 짧은 역사에 비해 먼 길을 왔다고 자부한다. 이 포토에세이는 그 기록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앞을 바라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그래서 ‘스무 살 포스텍’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고 성찰하면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하는 것이다. 기다리고 있는 길을 포스테키안은 선배들이 물려준 사명의식, 창의정신, 도전의식으로 목을 축이며 마라토너처럼 가기로 한다. 마침내 터져나올 환호성을 꿈꾸면서 ..  (책날개 소개글)


 사진쟁이 조세현 님은 《Self-portrait of Postenchians》를 아로새기는 사진을 찍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지난날 포항체절 기림책은 에드워드 김 님이 사진을 찍었으니, 이 자리 이 기림책에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우뚝 서는 일이란 사진쟁이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이름값이요 보람이며 금메달이라 할 만합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 첫손을 꼽을 만한 사진쟁이가 아니고서야 포항제철이든 포항공대이든 하는 곳 삶자락을 담아낼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뽑힐 수 없으니까요.

 사진책 《Self-portrait of Postenchians》를 넘기면, 이 사진책을 내놓고자 한 포항공대 뜻마따나 씩씩하고 똑똑하며 아름다운 젊은 학생들이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이 가득합니다. 슬기로운 머리와 튼튼한 몸, 땀흘리는 배움과 온누리를 밝히는 넋이 사진마다 고이 묻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참말로 포항공대는 나라안에서 손꼽는 훌륭한 대학교입니다. 나라밖으로 널리 알리며 북돋울 만한 멋진 배움터입니다.

 포항공대 사람들이 조세현 님을 ‘포항공대 역사 기록꾼’으로 받아들여 이 책을 엮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다른 사진쟁이였다면 이 책에 담긴 사진 같은 모습을 선뜻 담아내지 못했겠지요.


.. 지난 늦겨울에 포스텍으로부터 개교 20주년 기념 화보집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저는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20년이라는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일 년 가까이 포스텍에서 보낸 저의 사진 여정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세련된 대학환경, 창조적인 분위기, 예지적이면서도 정열적인 젊은 얼굴들이 색다른 영감을 일깨웠으며, 그 영감은 멋진 화보집을 탄생시킬 훌륭한 에너지로 바뀌었습니다 ..  (197쪽/조세현)


 사진쟁이는 사진으로 말합니다.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말할 때에는, 그동안 갈고닦은 사진 솜씨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사진쟁이는 사진기를 쥔 채 보내온 나날을 사진 한 장에 갈무리하며 말합니다.

 사진책 《Self-portrait of Postenchians》를 찍은 조세현 님은 당신이 걸어온 나날 이야기를 이 사진책에 담긴 모습들에 살포시 담아서 내려놓습니다. 사진책 이름은 포항공대 사람들이지만, 사진책 이야기는 ‘포항공대 사람들을 바라본 사진쟁이 조세현 님이 걸어온 길’입니다. 주문(부탁)을 받아 찍은 사진이기에 주문(부탁)한 대로 사진을 찍기 마련이지만, 사진관 일꾼이 아니고서야 사진쟁이 마음결을 사진에 담을밖에 없습니다.

 뭇사람과 뭇평론가는 사진관 일꾼이 일구는 사진을 으레 깎아내리는데, 사진관 일꾼이 사진을 찍을 때에는 당신 이름을 사진에 살며시 내려놓거나 스며 놓지 않습니다. 어느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사진관 사진’인데, 이런 사진관 사진이면서 ‘사진관마다 다 달리 찍는 사진’입니다. 모르기는 모르지만, 제가 포항공대 관계자였으면 포항공대 앞에 자리한 사진관 일꾼한테 《Self-portrait of Postenchians》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부탁)했습니다. ‘포항공대 사람들을 사진쟁이 깜냥껏 읽어내어 담아내는 사진’이 아닌 ‘포항공대 사람들 스무 해 삶을 꾸밈없이 담아내는 사진’을 바란다면 말이지요.


.. 기숙사를 나서는 등교시간, 기숙사로 돌아가는 하교시간, 그리고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포스텍 캠퍼스는 거의 하루 종일 적막감에 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강의실과 연구실에는 뜨거운 열정이 넘치고 있으며, 이것을 포스텍의 내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에도 연구실과 실험실에는 포스테키안의 아름다운 눈동자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 최첨단 디지털 도서관인 청암학술정보관은 대학 건축물에 대한 저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고요한 공간에서 과학 한국의 밝은 미래를 미리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득 고요를 깨야 했던 저의 카메라 셔터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고 미안했습니다 ..  (197쪽/조세현)


 사진쟁이 조세현 님이 사진을 못 찍는다거나 엉성히 찍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쟁이 조세현 님은 ‘사진쟁이 조세현 이야기’만을 사진으로 담을 줄 압니다. 사진쟁이 조세현 님은 ‘사진관 일꾼’이 아닙니다. 사진관 일꾼이 아닌 조세현 님은 이처럼 주문(부탁)을 받은 사진을 찍을 때에 어김없이 ‘조세현 이름표’를 달아 놓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사진을 찍지는 못하겠지요. 그러니까, 이 사진책 《Self-portrait of Postenchians》는 우리 둘레에서 마주하는 포항공대 사람들 삶이나 모습이나 몸짓이 아닌, ‘사진쟁이 조세현 님 눈에 비치며 사진쟁이 조세현 님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로 다시 그려지는’ 대학생일 뿐입니다. 조세현 님으로서는 포항공대 아닌 서울대 사람들을 찍을 때이든, 연세대 사람들을 찍을 때이든, 이화여대 사람들을 찍을 때이든, 조선대 사람들이나 광운대 사람들을 찍을 때이든 언제나 똑같을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이 대학 사람을 찍든 저 대학 사람을 찍든 ‘조세현 이름표’가 붙기 마련이며, ‘어느 대학 사람’인지는 따로 꼬리말을 달지 않고서는 알아챌 수 없습니다. 《Self-portrait of Postenchians》라는 사진책은 포항공대 사람들이라는 꼬리말이 붙었으니 비로소 포항공대 사람들인 줄 알지, 이런 꼬리말이 없으면 포항공대 사람들 사진책인지 아닌지 알 노릇이 없을 뿐더러, 포항공대 스무 돌을 기리는 사진책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낼 수 없습니다.

 거듭 밝히는데, 사진쟁이 조세현 님 사진이 알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거나 올바르지 않거나 좋지 않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조세현 님은 조세현 님 사진만 찍는 사진쟁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조세현 님은 부디 조세현 님 사진밭을 이루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주문(부탁)을 받아서 사진일을 한다면, 이러한 사진일을 하면서 어느 만큼 벌이가 될 테지요. 돈도 벌고 이름값도 얻겠지요. 그러나 당신 사진밭을 이루지 못할 뿐더러, 당신한테 일을 맡긴 사람들 또한 처음 바라던 대로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맙니다. 사진관 일꾼이 맡아서 사진을 찍어야 할 자리는 사진관 일꾼이 맡아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조세현 님은 ‘조세현 이야기’가 가장 잘 묻어나는 ‘조세현 사진’ 한길을 즐겁고 신나며 아리땁게 일구어야 합니다.


.. 이 책에서 저는 무엇보다도 스무 살의 젊음과 포부를 마음껏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에서 발견한 휴머니즘과 포스테키안의 드높은 기상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 아직 앵글을 맞추지 못한 캠퍼스의 여러 모습과 소중한 얼굴들이 많은데, 벌써 출간할 때가 되었다니 아쉬움이 큽니다. 아무리 서둘러도 시간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 ‘스무 살 포스텍’의 놀라운 저력이 미래의 한국 과학을 이끌어 나가리라고 믿으며, 모든 포스테키안들에게 미흡하나마 저의 시각의 혼을 담은 이 화보집을 바칩니다 ..  (197∼199쪽/조세현)


 ‘포항공대 사람들 스무 살 푸른 꿈’이 아닌 ‘사진쟁이 조세현 스무 살 푸른 꿈’을 잘 구경한 사진책 《Self-portrait of Postenchians》입니다. 조세현 님 다른 사진책을 볼 때에도 이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조세현 님은 ‘얼굴사진이나 사람사진 가장 잘 찍는다는 사진쟁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 얼굴 모습을 빗대어 조세현 님 당신 이야기를 알뜰히 담아낼 줄 아는 사진쟁이’라고 일컬어야 옳겠구나 싶습니다.

 문득 일본 사진쟁이 다카하시 아유무 님 사진이 떠오릅니다. 조세현 님도 다카하시 아유무 님처럼 한결 홀가분하면서 한껏 호젓할 수 있다면, 굳이 포항공대 같은 데에서 일감을 얻지 않고도 얼마든지 밥벌이 잘 될 멋진 사진책을 꾸준히 선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밥벌이 잘 될 멋진 사진책이 아니라, 밥벌이가 안 되더라도 눈물나고 웃음나는 사랑스러운 사진책을 꾸준하게 우리한테 선보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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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과 글쓰기


 몇 시에 잠들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튼 한참 자다가 아이가 오줌을 기저귀에 누었다며 칭얼대는 소리에 퍼뜩 깬다. 아이 기저귀를 간다. 오줌 기저귀는 씻는방 대야에 담가 놓는다. 새 기저귀를 채운 다음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자리에 눕는다. 밤이라 시계를 볼 수 없으니 때가 어떠한지 알 길이 없다. 바깥은 그예 깜깜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이 시골집에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할 수 없는 일 또한 많다. 무엇보다 도시에서 살듯 이것저것 사들이거나 여기저기 누비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없다. 마음속으로만 오늘은 어느 골목부터 걸어 어느 골목을 지나 어느 골목에서 마무리를 하는구나 하고 헤아린다. 11월 25일 오늘 같은 때에는 골목빛이 어떠하겠다고 곰곰이 떠올린다. 어디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고 어느 길에서는 어떠한 사람을 마주하겠는지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부질없는 생각이 아니겠느냐 싶다. 나는 도시사람이 아닌 시골사람인데, 마치 도시에서 살아가듯 생각하면 어떡하나. 오늘 낮에 텃밭 무를 뽑은 일을 생각해 볼까. 그래, 무를 그때그때 한 뿌리씩 뽑아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 무를 그대로 두면 다 얼어서 못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지만, 토요일쯤 옆지기네 어머님과 아버님이 찾아오시기로 해서, 어쩌면 그때에 무로 김치를 담글는지 모르기에 그날 다 뽑으면 훨씬 나은 줄 뻔히 알면서 오늘 무를 모두 뽑는다. 마침 아이가 아빠 곁에서 함께 놀고 싶어 하며 텃밭에 함께 서 있기에, 아이한테도 무를 뽑도록 한다. 아이는 처음에는 무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아빠가 먼저 이렇게 손으로 잡아서 살살 잡아올리면 돼, 하며 보여준다. 그래도 무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아빠가 힘이 모자라서 무를 못 뽑는 척해 본다. 벼리야 도와줘, 아빠 힘으로는 무를 못 뽑겠어, 얼른 네가 손으로 잡아서 함께 뽑아 주렴. 이제 아이가 아빠 손을 잡는다. 이때에 영차영차 하면서 뽑는다. 이리하여 이제부터는 아이가 모든 무를 다 뽑는다. 무 뽑는 맛에 쉴새없이 뽑아댄다. 거름 한 번 제대로 못 낸 엉터리 텃밭인데 알이 제법 굵은 무가 여럿 있다. 거름을 제대로 냈다면 무가 얼마나 굵었을까. 이듬해에는 거름을 제대로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올망졸망한 무를 고랑 한켠에 주욱 늘어놓는다. 참 예쁘다고 느끼어 사진을 여러 장 찍는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사진을 찍는 분 가운데 무를 사진으로 담은 사람이 있던가 하고 곱씹어 본다. 글쎄, 잘 모르겠다. 벼나 논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곧잘 보지만, 무라든지 배추라든지 파라든지 갓이라든지 콩이라든지 우리가 흔하게 먹거나 마주하는 푸성귀나 곡식을 사진감으로 삼는 사람은 아직 못 보았다. 어쩌면, 이런 흔한 푸성귀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 일군 작품을 알아보거나 대접하는 사람이나 모임이나 출판사 따위가 없어 구경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더욱이, 도시에서 살아가면서도 얼마든지 무이든 배추이든 파이든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저잣거리 마실을 하면서 푸성귀장수 아지매나 할매가 늘어놓은 녀석들을 찍으면 되니까. 이 푸성귀를 사들여 집에서 밥을 하거나 나물을 할 때에 틈틈이 찍어도 된다.

 무를 거의 다 뽑은 아이는 마지막에 그만 앞으로 고꾸라진다. 꽤 굵은 무가 한 뿌리 있었는지, 이 무를 잡아당기다가 힘이 딸려 앞으로 고꾸라진다. 온몸에 풀씨가 가득 묻었다. 아빠보고 털어 달라며 운다. 하나하나 털고 뗀다. 아이는 이내 “언니!” 하면서 운다. 우리 멧기슭 집보다 위쪽에 자리한 이오덕자유학교를 다니는 언니하고 놀고 싶다는 소리이다. 아이 눈을 보면 졸음이 가득한데 낮잠은 도무지 잘 낌새가 없으며, 곧 밥 먹을 때인데 밥조차 안 먹을 낌새이다. 참 갑갑하다. 놀 때는 놀더라도 밥은 먹으면서 놀고 잠은 자면서 놀아야 하지 않나.

 어찌하는 수 없이 아이를 안고 멧길을 따라 걷는다. 아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언니 있는 쪽’으로 걷는다. 차츰 위로 올라갈수록 언니랑 오빠가 놀면서 나는 소리가 크다. 아이는 ‘어? 어?’ 하다가는 아빠한테 안긴 다리를 세차게 흔들며 내려가겠단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오르막 멧길을 달린다. 금세 언니를 찾았고, 언니하고 함께 놀자며 달라붙는다. 그런데 아이는 잠을 실컷 잔 몸이 아니라 졸음이 가득한 몸이기도 한 탓에 언니한테 투정만 잔뜩 부리면서 함께 놀아 주는 언니가 골이 나게 하고야 만다. 아이보고 언니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하고 이르지만, 아이는 미안하다는 말은 않고 자꾸자꾸 언니한테 달라붙기만 한다. 언니는 심통이 난다고 말하면서도 아이하고 즐겁게 놀아 준다.

 밥때가 슬슬 지나는데 아이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그저 하염없이 기다린다. 비로소 아이가 엉엉 운다. 몸집 큰 오빠가 공놀이를 하며 찬 공에 가슴께를 쾅 하고 맞아 아프다며 서럽다며 운다. 그러게, 녀석아, 넌 아직 공놀이를 할 수 없는데, 오빠들 틈바구니에 끼어 멀뚱멀뚱 서 있으니 한 대 얻어맞지.

 아이를 안는다. 아이를 달랜다. 토닥토닥 달래며 안 아프니 괜찮다고 말하며 어여 울음을 그치도록 어른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까만염소 무리를 보고 닭 무리를 본다. 울던 아이가 염소랑 닭을 보더니 뚝 그친다. “꼬꼬다!” 하고 외치면서 또 다리를 세차게 흔들며 아빠 품에서 내린다. 닭한테 달려간다. 그러나 닭은 화들짝 놀라 꼬꼬꼬 하면서 꽁무니를 뺀다. 이제 드디어 집에 닿는다. 아이를 먼저 집으로 들이고 아빠가 뒤따른다. 저녁때에도 어김없이 밥을 제대로 안 먹으려는 아이랑 고단하게 실랑이를 하면서 웬만큼 밥을 먹인다. 방 한켠에 쌓인 그림책을 걸레로 닦는다. 아이 이를 닦인다. 아빠가 먼저 힘이 들어 자리에 눕는다. 아이는 뜨개질 하는 엄마 곁에서 곯아떨어진다. 엄마가 아이를 안아 잠자는 방에 눕혀 기저귀를 채운다. 아빠랑 아이가 새근새근 잠든다. 이러다가 아이가 첫 오줌을 누어 일어나 보니 한밤이나 새벽인 줄 알았더니, 고작 저녁 열 시를 조금 넘은 때이다.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 생각할 기운이 없다.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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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났다고 아이가 왜 이렇게 서럽게 울다가 잠들었는지 까맣게 잊었다. 아이가 사탕 노래를 부르다가 사탕을 안 주니 울다가 잠들었던가. 아이야, 부디 울지 말고 잘 놀아 주렴... 

 - 2010.11.21.

  

덤 : 아빠는 아이가 왼손 숟가락질을 하기를 바랐으나 아이는 꼭 오른손 숟가락질을 했는데, 요사이는 왼손 숟가락질만 한다.

 

 덤 2 : 고양이 책이라면 다 좋아하는 아이. 고양이 책을 안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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