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와 글쓰기


 옆지기 어버이가 시골집으로 나들이를 와 주신다. 옆지기 어머님이 김치를 담가 잔뜩 들고 와 주신다. 옆지기 어버이가 시골집으로 오시기 앞서 방바닥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치운다. 쓸고 닦는다. 아이가 자꾸 어지르는 물건을 아이를 타이르다가는 나무라다가는 하면서 스스로 치우도록 하는 한편, 아빠가 함께 치운다. 그러나 아이는 다 치운 제 놀잇감을 다시금 어지른다. 아빠는 또 아이를 불러 타이르며 제자리에 얌전히 놓도록 이끌고, 아이는 이내 다시 어지르는데, 아빠는 거듭거듭 한 가지를 놀고 나서 제자리에 곱게 치운 다음 다른 놀잇감을 갖고 놀라며 이른다.

 옆지기 어버이는 당신 딸아이네 시골집으로 오는 길이 많이 막히기도 하고, 살짝 헤매기도 하면서 무척 늦게 닿는다. 아이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언제 오나 손꼽아 기다리며 졸음을 꾸역꾸역 참는 가운데, 애써 치운 놀잇감을 자꾸만 어질러 놓으며 놀고파 한다.

 드디어 아이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시골집에 닿고, 아이는 차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문을 활짝 열고는 할머니랑 할아버지를 부르며 뛰쳐나간다. 늦게 닿은 어르신 두 분한테 밥을 차려 드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집안 어르신들이 자주는 아니어도 틈틈이 나들이를 와 주시면, 이때에 신나게 집안을 크게 쓸고 닦으며 치울 수 있다고. (4343.11.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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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로 imagepress 2
이미지프레스 엮음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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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과 살아가는 하루
 [찾아 읽는 사진책 10] imagepress, 《사람들 사이로》(청어람미디어,2006)



 다큐멘터리 사진쟁이 모임인 ‘이미지프레스’는 《여행하는 나무》(청어람미디어,2005)를 첫 책으로 삼으며 꾸준하게 사진이야기를 내놓겠다고 했으나, 2006년 12월에 《사람들 사이로》를 내놓고 나서 2010년 11월까지 셋째 사진이야기를 내놓지 못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첫 번째 책을 찾아 주셔서 17개월 만에 2000부가 넘게 판매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분발해서 매진의 속도를 높여 보겠습니다(9쪽/이상엽).”는 말은 덧없는 꿈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진을 말하거나 사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열일곱 달에 걸쳐 2000부가 팔렸다면, 적게 팔렸다 할 만하면서 많이 팔렸다 할 만합니다. 예쁘장하게 엮은 모양새를 헤아린다면 적게 팔렸고, 사진책 장만하는 사람이 그리 안 많음을 헤아리면 무척 많이 팔린 셈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기 장만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새로 나오는 제법 비싸다 싶은 사진기조차 꽤 많이 팔립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 할는지 모르겠는데, ‘사진을 알고 즐기’려는 매무새에 앞서 ‘더 값나가는 사진 장비 갖추’려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없는 탓이라 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이보다는 우리 삶터 얼거리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이는 사진밭에서만 느낄 아쉬움이 아니라, 글밭이든 그림밭이든 노래밭이든 학문밭이든 사회운동밭이든 매한가지예요. 이 나라 삶터가 온통 돈을 많이 벌든 이름을 크게 떨치든 힘을 대단히 거머쥐든 하는 쪽으로 흐르며 굳어졌거든요, 서로를 사랑하며 살거나 다 함께 착하게 어깨동무를 하거나 콩 한 알 나누는 너그럽고 따스한 넋을 아끼는 흐름이란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언제나 겨루기요 노상 다툼이며 늘 숫자놀음입니다. 사진밭 한 갈래만 착하거나 참되거나 곱게 나아가기를 바랄 수 없어요.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이자 사진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 《사람들 사이로》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열네 가지 이야기를 노순택·이기명·이상엽·이재갑·정은정·Area Park·김홍희·한대수·이규철·박평종·이치열, 이렇게 열한 사람이 들려줍니다. 그런데 열한 사람 이야기를 열한 가지 빛깔로 느낀다거나, 열네 가지 이야기를 열네 빛깔 무지개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 사이에 있고, 사람 사이에는 늘 사람이 있는데, 굳이 《사람들 사이로》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사진삶을 이야기하려고 했다면 ‘왜 사람이고, 왜 사람 사이이며, 왜 사람 사이 사진인가’ 하는 대목을 건드려야 합니다. 이 대목을 건드리지 않고 이름만 그럴듯하게 “사람들 사이로”라 외친들 사람들 사이에서 사진을 나누는 일이 되지 못합니다. “브 나르도”라 외친다거나 “민중 사이로”라 외친다 해서 참말 여느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지는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사이로 스며드는 일이란 외침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따로 외칠 까닭이 없고 애써 외칠 겨를조차 없습니다. 그저 그대로 조용히 살아가며 그예 고스란히 예쁘게 살아가면 넉넉합니다.

 《사람들 사이로》에서 노순택 님은 말합니다. “나는 사진관을 운영하기 전에도 많은 대추리, 도두리의 농민들을 필름에 담아 왔다. 노동의 현장에서 그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투쟁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은 더 많았다. 그들은 그들이 원치 않았던 투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투사들을 필름에 담아 왔다. 그렇지만 황새울 사진관에서 내가 만난 그들은 달랐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수줍게 웃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것은 정녕,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22쪽/노순택).” 노순택 님은 《사람들 사이로》에서 비로소 당신이 걸어갈 다큐사진 길 한 자락을 얼핏 보았구나 싶은데, 이렇게 얼핏 본 다큐사진 길 한 자락을 조금 더 살가우며 기쁘게 붙잡으며 오늘 하루 사진삶을 즐기는지 어떠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느 사진이든 사진기를 쥔 사람이 바라보는 그대로 찍습니다. 이 결을 읽어 준다면 고맙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사진쟁이가 생각하는 그대로 담습니다. 이 무늬를 예쁘게 살펴 준다면 반갑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사진을 아는’ 사람이 꿈꾸는 대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이 느낌을 고이 얼싸안아 준다면 넉넉합니다.

 다만, ‘《사람들 사이로》라는 사진책 하나로 엮은’ 이만큼 해도 사진은 퍽 볼 만합니다. 이렇게 해도 사진은 꽤 값어치있습니다. 그러나, 이만큼 하기에 사진은 사람들 사이로 스미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니까 사진쟁이 삶이 여느 사람 삶하고 동떨어집니다.

 사진쟁이가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찍혀서 적바림되고픈 모습을 찍고 싶어 하기란 참 힘들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힘들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애 찍히는 사람이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모두 같은 목숨이요, 다 함께 사랑스러운 벗님이에요.

 아주 흔한 말이지만, 사진쟁이들은 사진기를 쥐기 앞서, 또 다큐사진이란 이름을 걸기 앞서 생각해야 합니다. ‘내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나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난 어떤 모습으로 이 사람 앞에 마주하거나 바라보며 서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느 마을사람이 사진쟁이를 사진으로 찍겠다고 할 때에, 다큐사진을 하는 분들은 어떤 느낌 어떤 넋 어떤 매무새가 될는지 곱씹어야 합니다.

 사진쟁이 이재갑 님 또한 말합니다. “약 6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때, 비로소 혼혈인 형님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 일정한 수입이 없던 당시로서는 많은 어려움은 당연했고, 이는 오히려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한 절대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다(83쪽/이재갑).” 그래요,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은 참 즐거운 나날을 보냅니다. 그런데, 사진기를 들었기에 서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붓과 종이를 들든, 연필과 수첩을 들든 서로 즐거이 어울릴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들어도 기쁘게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여러 겨레 피가 섞인 사람이든 이주노동자이든 여느 사람이든 다 똑같습니다. 우리들은 눈으로 사람을 보니까 여러 겨레 피가 섞인 사람을 달리 바라보곤 하는데, 앞을 못 보는 사람들한테는 여러 겨레 피가 섞인 사람이란 ‘무엇이 다른 사람’이 될까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한테 영어를 쓰는 사람이나 한국말을 쓰는 사람이나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되려나요.

 다큐사진을 하는 분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받아안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시내버스를 모는 분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이, 학문을 파고들어 깊은 뜻을 깨우친다는 분들이 어떤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헤아리면서 서로를 마주보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다큐사진을 왜 자꾸 멀리서만 찾고, 내 삶터에서 내 살붙이하고 못 보듬는지 아리송합니다. 《사람들 사이로》에서는 사진책 《윤미네 집》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오늘 다큐사진을 한다’는 분들 가운데, 또 이미지프레스 모임 분들 가운데 ‘내 삶터가 뿌리내린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오순도순 아기자기 알콩달콩 살랑살랑 들려주는 분은 아직 없습니다.


.. 나는 여행할 때마다 경치보다는 현지 사람들의 모습을 더욱 중요시한다. 그곳의 환경 속에 사는 그 사람들은 어떠한 것들 때문에 고민하고 기뻐하는지가 궁금하다 ..  (162쪽/한대수)


 사진책 《사람들 사이로》를 읽으며 한대수 님 이야기를 빼고는 그리 가슴에 와닿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다른 분들 사진이나 글은 자꾸 겉돌고 헛돌며 맴돈다고 느낍니다. 여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머무는 사람이 있으면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듯이 걱정하는 사람이 있고, 기뻐하듯이 슬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사람은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사진이고, 어디에서나 다큐멘터리입니다.

 “대중들의 교육·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도 사진의 촬영과 공표에 있어서 초상권의 문제는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사이에 열린 마음으로 나누는 적극적인 의사소통이 부재했다는 것이다(205쪽/이치열).” 같은 이야기는 참 좋습니다. 여러모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밑앎입니다. 애써 《사람들 사이로》 같은 책에서 한 꼭지로 들어갈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은 사진기를 쥐기 앞서 밑앎으로 익힐 이야기입니다. 낱말을 바꾸어 글쟁이나 그림쟁이나 연극쟁이나 영화쟁이나 방송쟁이나 신문쟁이 누구나 깊이 곱씹을 이야기입니다. 더욱이, 《사람들 사이로》는 이런 밑앎이 아닌, 참말 사진쟁이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얼크러지거나 설크러지며 빚어낸 사진삶을 차곡차곡 실어내야 해요. 사진쟁이 둘레 가장 너르며 흔한 이야기를 가장 고우며 밝은 사진삶으로 엮어내야 해요. 누구나 가진 사진기로 누구도 못 담는 사진삶을, 다른 누가 아닌 ‘다큐사진 모임 사진쟁이’부터 참다우며 제대로 깨닫거나 받아들이면서 신나게 나누는 모습을 알뜰살뜰 풀어놓아야 합니다.


..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서도 내가 기억해야 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보낸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있었구나, 했다 ..  (113쪽/정은정)


 가만히 보면, 《사람들 사이로》는 다큐사진을 하는 이 나라 사진쟁이들 어설픈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울이라 할 만합니다. 다큐사진을 한답시고 설치는 남우세스러운 모습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뉘우침책(고백록)’인지 모릅니다.

 다큐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사진이든 하나같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복닥이는 즐겁고 애틋한 나날’을 담는 손짓 눈짓 몸짓입니다. 그리고 사랑짓 믿음짓 나눔짓이에요.

 단추질에서 그치는 사진이 아니기를 빕니다. 단추질에서 헛도는 다큐사진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단추질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진모임이 아니기를 꿈꿉니다. 단추질과 볼펜질에 앞서, 사람들하고 사랑스러운 품앗이요, ‘사람들’이란 바로 나부터 함께하는 ‘그 사람들’임을 살갗으로, 뼈마디로 받아들일 나날을 기다립니다. (4343.11.28.해.ㅎㄲㅅㄱ)


― 사람들 사이로 (이미지프레스 엮음,청어람미디어 펴냄,2006.12.22./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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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 포스터를 붙이던 나무판. 이 나무판은 인천에 이 한 곳에만 남았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나 혼자만 사진으로 담아 놓는다.

 - 2010.11.10. 인천 동구 송현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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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랑 함께 텃밭 무를 뽑았다. 이제 깍뚜기 먹을 사람들이 김치로 담가 주면 된다. ㅋㅋ

 - 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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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27 23:18   좋아요 0 | URL
ㅎㅎ 따님이시지요.넘 귀엽습니당^^

숲노래 2010-11-28 06:56   좋아요 0 | URL
참 사랑스러운 아이예요
 



 시골버스


 시골버스는 진작 끊겼다. 면내에서 택시를 탄다. 면내 택시도 모처럼 장사를 할 테지. 택시삯이 아쉬우나 시골택시 일꾼은 이럴 때 돈을 벌어야지. 요새는 너나없이 자가용이 다 있기에 아저씨들 벌이는 참 형편없잖은가. 그제 오랜만에 인천으로 볼일을 보러 면내로 시골버스를 타고 나갈 적에 버스가 언제 들어오나 기다리며 어기적어기적 큰길가에서 제자리 맴돌기를 하며 하늘바라기를 하자니, 어느새 들어온 시골버스가 뒤에서 뽕뽕 하며 나를 불러 주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앞쪽에 앉은 늙수그레한 아지매가 버스기사하고 말을 나눈다. 버스 몰기 힘들지요, 아니요 힘들지 않고 손님이 없으니까 달리다가 졸려요, 네 그러시군요. 버스에서 내릴 무렵, 내 자리 맞은편 걸상 아래에 놓인 까만 비닐봉투를 본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이 비닐봉지를 들어 걸상에 올려놓고 안을 열어 본다. 마침 이때에 시골버스 일꾼이 손전화를 받는다. 손전화로 버스에 뭐 물건이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 소리를 듣기에, 내가 얼른 여기 물건 있어요 하고 이야기한다. 아, 손님이 여기 뭐 있다고 하네요, 네 아무도 안 가져가니까 걱정하지 마셔요.

 우리 식구는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더러 자가용 굴릴 돈이나 헌 자동차 살 돈조차 없다. 시골버스만 고만고만하게 탄다. 시골버스를 타며 이 버스를 마치 넉넉하고 큼직하며 한갓진 택시로 여긴다. 시골택시는 늘 더 빨리 달릴 길로만 달리지만 시골버스는 골골샅샅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는데 아주 적은 돈으로 온갖 곳을 다 다닐 수 있으니, 우리 식구한테 시골버스는 택시와 마찬가지이다. 같은 길을 달리면, 시골버스로 우리 시골마을 어귀부터 면내까지 1600원이고, 택시로는 꼭 1만 원이다.

 엊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작 끊긴 시골버스는 탈 수조차 없는데, 저녁 아홉 시 오 분에 면내에 시외버스를 내리고 보니, 차부 가게는 벌써 문을 닫아걸었다. 아이 까까라도 하나 사들고 돌아갈까 했으나 빈손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나 아이는 집에서 일찌감치 잠들어 있겠지. 택시 타는 데로 간다. 택시 일꾼 한 분이 나와 준다. 차가 오래 서 있느라 안이 차다며 미안해 하신다. 괜찮아요, 내내 버스를 타고 왔는데요.

 택시삯이 아쉬우나 깊은 저녁이지만 집까지 안 들어가고 마을 어귀에서 내린다. 택시삯 만 원을 치른 다음 마을길을 걷는다. 마을 살림집 몇 채 있는 길은 불빛이 조금뿐인데 참 밝다고 느낀다. 이 불빛 때문에 밤하늘 별이 조금 덜 보인다. 그래도 밤하늘 별은 더없이 따사롭게 빛난다.

 초롱별이 그야말로 초롱초롱 빛나는 논둑길로 접어든다. 개장수 집에서 개들이 짖어댄다. 이 개들은 저희를 꺼내 달라는 듯한 목소리로 짖는다. 개장수 집 곁을 스칠 때마다 눈을 이리로 돌리지 못한다. 자칫 이들 가여운 개들 구슬픈 눈망울을 마주칠까 두렵다. 그러나, 이들 개로서는 목숨을 앗겨 고기국으로 바뀌기 앞서 저희를 따사로이 마주해 줄 사랑스러운 눈길 한 번을 기다리지 않으려나. 내가 개장수 집 우리에 갇힌 개라 한다면, 나를 꺼내 주지 못할지라도 나를 한 번이나마 바라보며 생각해 줄 눈길을 기다리겠다고 본다.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걷는다. 바람소리도 잦아든 저녁나절 길을 걷는다. 인천에서 살아가며 골목마실을 할 적에도 이런 느낌이었다고 떠올리는데, 인천 골목동네에서는 포근함을 느끼기는 했어도 별을 볼 수는 없었다. 어여쁜 꽃그릇과 예쁘장한 빨랫줄은 많았으나, 이들을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초롱별은 맞이할 수 없었다. 시골마을일 뿐 아니라 멧기슭에 자리한 우리 집에서는 어여쁜 꽃그릇이라든지 예쁘장한 빨랫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멧새가 있고, 짓궂지만 멧쥐가 있으며,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과 논밭을 타고 달리는 바람소리가 있다. 감나무는 시골에도 도시에도 있다. 엊그제 인천 골목마실을 하면서 곳곳 살림집마다 까치밥을 알뜰히 남긴 모습을 보며 콧등이 시큰했다. 감나무는 어디에서도 감나무인걸.

 시골별도 해마다 조금씩 줄어든다. 이듬해에 마주할 시골별은 올해 시골별보다 줄겠지. 첫째 아이가 올려다볼 별보다 둘째 아이가 올려다볼 별은 훨씬 적겠지. 첫째가 무럭무럭 커서 아빠 나이만큼 되었을 때에는 시골별을 한국땅에서 얼마나 껴안을 수 있으려나.

 시골별이 모조리 사라지는 날에는 책은 몽땅 쓰레기라고 여긴다. 시골별 숫자가 줄어드는 동안 책은 차츰차츰 쓰레기하고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4343.11.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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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27 23:20   좋아요 0 | URL
털털 거리는 시골 버스가 한편으로 낭만적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 불편하기도 하지요.예전에 강원도 영월에서 충남 서산까지 버스로 간적이 있는데 아침 8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에 도착했지요.처음에는 영월 동강의 모습을 보면서 굽이 굽이 가는 버스 밖 경치에 취해서 시간 가는지도 몰랐지만 어느새 지겨워 져서 잠만 쿨쿨 잤던 기억이 나네요^^

숲노래 2010-11-28 06:57   좋아요 0 | URL
버스든 무어든 너무 오래 타고 움직이면 힘들어요. 한 시간 달린 뒤에는 두어 시간은 쉬고 해야 비로소 나들이가 된다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