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지붕으로 되어 있던 송림2동 집 한 채가 헐렸다. 헐린 자리에는 빌라가 올라설 테지. 이런 지붕으로 남은 살림집이 우리 나라에, 또 인천에 몇 곳이나 될까. 아마, 앞으로 100년쯤 지나야 비로소 이런 지붕 집이 얼마나 소담스러운 문화였는지 깨달을까 못 깨달을까...

 - 2010.11.26.인천 동구 창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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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길을 걷는다. 아쉽게도 아이가 첫 발자국을 남긴 사람이 아니다. 마을 다른 분이 먼저 지나가고 말았다 ㅠ.ㅜ

- 201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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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봄에 새로운 '사진이야기책'을 내놓을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읽어 보시고, 이래저래 도움말 베풀어 주소서. 고마운 도움말 하나를 얻어 책 하나 한결 알뜰히 일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사진책이란
  ― 삶을 밝히는 밑거름, 길을 이끄는 길동무



 ‘사진책’은 국어사전 올림말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날 맞춤법으로는 ‘사진 책’처럼 띄어서 적어야 바르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진책’을 한 낱말처럼 붙여서 씁니다. 왜냐하면 ‘이야기책’과 ‘그림책’은 일찌감치 한 낱말이었고, 그림을 그려 엮은 책인 ‘그림책’이든 글을 써서 엮은 책인 ‘글책’이든 노래를 지어 엮은 책인 ‘노래책’이든 사진을 찍어 엮은 책인 ‘사진책’이든 한결같이 책이요,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결로 이야기를 일구어 담은 책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어 엮은 책이 사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 한 장 없이 이루어지는 사진책도 있습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일 때에도 사진책 갈래에 듭니다. 이리하여, 사진이 다문 한 장 깃들었어도 사진책이요, 사진 몇 장 살포시 담았어도 사진책으로 넣습니다.

 문학은 시와 소설과 수필과 희곡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사진책은 작품모음과 화보와 사진이야기와 사진비평과 사진수필과 사진교재 들로 나눌 수 있고, 이밖에 숱한 갈래를 촘촘히 가를 수 있습니다. 사진책이라 할 때에는 으레 ‘작가가 내놓은 작품모음’ 한 가지만 떠올리곤 하지만, 사진작품을 모은 책만 사진책 갈래에 들지 않습니다. 지자체나 나라마다 지자체나 나라를 안팎으로 알리려고 내놓는 화보라든지,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나 촛불집회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 엮은 화보라든지 얼마든지 사진책 갈래에 듭니다. 야구단이나 축구단에서 당신 구단에 몸담은 선수들 얼굴이나 경기 모습 들을 담아 내놓는 ‘팬북’이라는 책 또한 사진책 갈래에 듭니다. 학교나 회사가 스무 돌이나 쉰 돌이나 백 돌을 맞이했다면서 기리는 뜻에서 내놓는 ‘이십 년 사·오십 년 사·백 년 사’ 같은 역사책을 사진을 바탕으로 엮었으면 이 또한 남다른 사진책이 됩니다. 또한 졸업사진첩도 사진책이에요. 학교마다 해마다 쏟아내는 졸업사진첩은 한 학교를 다닌 모든 사람들 얼굴이나 몸차림 모습을 보여줄 뿐더러, 학교 안팎 모습을 들여다보도록 돕습니다. 제대로 못 엮은 따분한 졸업사진첩이라 할지라도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가 지나는 동안 새삼스레 지난 한 삶 발자국을 톺아보는 자료가 돼요.

 그림책 갈래에 드는 어린이책 가운데에도 사진책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쓰레기 산에 핀 꽃》(재미북스,2002)이나 《내 이름은 민들레》(소년한길,2007)는 사진으로 이야기를 엮어 마련한 어린이책이자 그림책입니다만, 다른 눈길로 바라보면 사진책 갈래에 듭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어린이책을 사진으로 엮는 일을 퍽 일찍부터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보는 도감이라든지 자연책이라든지 이야기책에 사진을 꽤 많이 써요. 어린이책을 내는 한국 출판사는 이와 같은 일본 ‘사진 어린이책’을 퍽 많이 옮기곤 합니다. 웅진출판사에서 1984년에 우리 말로 옮긴 ‘일본 아카네 쇼보’ 여든네 권짜리 《과학 앨범》은 사진으로 일군 놀라운 과학 전집이에요. 웅진출판사에서 1994년에 우리 말로 옮긴 ‘일본 가이세이사’ 서른네 권짜리 《세계의 어린이》 또한 사진으로 빚은 아주 알찬 인류학 전집입니다.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말하는 분들은 이러한 어린이책을 눈여겨보지 않습니다만, 이들 ‘사진으로 일군 일본 어린이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사진 찍는 매무새라든지 넋이라든지 손길을 곰곰이 받아들이거나 배울 만하다고 느껴요.

 영국에서는 어린이책을 만드는 ‘D·K’라고 하는 ‘돌링 킨더스리’사에서 거의 언제나 사진으로만 이야기를 엮어 책을 내놓습니다. 이런 책들도 사진밭 사람들은 제대로 살피지 않는데, 어른이 보는 책에 사진을 넣든 어린이가 읽는 책에 사진을 넣든, 모두 어른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깊이 헤아리며 익혀 가다듬은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습니다. 더욱이, 여느 어른책이라면 ‘사진을 읽을 사람이 스스로 헤아리고 받아들이면 된다’고 할 테지만, 어린이책에 넣는 사진은 ‘이 사진을 읽을 어린이 누구나 꾸밈없이 헤아리고 아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처음부터 알뜰살뜰 찍어서 내놓아야 해요. 훨씬 땀을 들이고 더욱 마음을 기울여야 이루는 ‘어린이책 사진’입니다.

 다음으로, 사진이야기란 노익상 님이 내놓은 《가난한 이의 살림집》(청어람미디어,2010)이나 이용남 님이 내놓은 《어머니의 눈물》(민중의소리,2003)이나 권철 님이 내놓은 《우토로》(민중의소리,2005) 같은 책들입니다. 이러한 사진이야기는 다큐사진이라 할 수 있는 한편, 사람사진이나 삶사진이라 할 만합니다. 다큐사진이라 할 때에는 으레 사진이야기 자리에 깃들고, 모델이나 연예인을 담은 사진일 때에는 화보나 작품모음에 깃듭니다.

 사진비평이란 사진을 말하거나 사진책을 말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다른 어느 사진책보다 이 사진비평이 몹시 적습니다. 사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교수나 전문가가 아닌데,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을 즐기는 사람이든 섣불로 사진을 말하지 못합니다.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는 이 사진을 이렇게 보았어요.’ 하고 말해야 하고, ‘나는 이 사진이 이리하여 좋고 저리하여 슬퍼요.’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 하나를 놓고 온갖 이야기가 쏟아지면서 넋과 얼을 나누어야 좋습니다. 이야기를 넉넉하고 꾸준하게 주고받아야 우리네 사진밭이 알차게 자라납니다.

 우리들 살림집을 떠올려 보셔요. 집에서 식구들하고 말을 않는다면 집안이 어떻게 되나요. 집에서 식구들끼리 서로 칭찬을 해야 더 좋다지만, 잘못한 일을 잘못했다고 타이르거나 나무라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요. 마구 어지르거나 짓궂은 짓을 일삼을 때에 아무 소리 안 하거나 모르는 척을 해도 될는지요. 기쁜 일도 이야기하고 슬픈 일도 이야기할 집식구입니다. 사진밭을 일굴 일꾼이라면 ‘이 사진은 참 아름답네요.’라는 말과 함께 ‘이 사진은 참 아쉽군요.’라는 말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이런 말을 나누어 온 발자국을 그러모을 때에 사진비평이 태어납니다.

 사진수필은 사진이 글이나 그림이나 노래하고 어울려 태어나는 문학책입니다. 사진은 사진 그대로 넉넉히 문학이지만, 다른 문학하고 어우러 놓으면서 남달리 일구는 책이에요. 그런데 사진은 사진 그대로 문학임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따로 글줄이나 그림을 살포시 얹는 까닭은 사진 한 장으로는 모자라기 때문이 아닌데, 사진수필을 어여삐 엮지 못하곤 합니다. 《골목 안 풍경》을 내놓은 김기찬 님이 돌아가신 뒤, 김기찬 님 사진에 글을 덧다는 틀로 해서 나오는 책이 꽤 많습니다. 이를테면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가서,2006)나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샘터사,2005)인데, 모양새는 퍽 그럴싸하다 싶으면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이러한 책들은 글은 글대로 옹글지 못하거나 사진을 사진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아귀가 안 맞기 때문입니다. 글이 모자라거나 사진이 어수룩하기에 아귀가 안 맞을 일이란 없습니다. 이 사진수필에서는 무엇보다 사진이 한복판을 차지하는데, 사진을 옳게 읽지 않고 ‘추억’이나 ‘애틋한 그리움’을 떠오르도록 이끌려는 생각으로만 끼워맞추기를 하고 말아, 정작 ‘사진을 찍은 사람이 나타내려 하던 넋이나 얼’하고 동떨어집니다. 김기찬 님 골목 사진 한켠에는 틀림없이 ‘추억’이나 ‘애틋한 그리움’이 있기도 하지만, 김기찬 님 골목 사진은 오로지 추억으로 담은 사진이 아니에요. 이곳에 이 사람들이 오늘 하루도 어여삐 살아가는 자락과 무늬와 결과 내음과 빛깔을 곱다시 맺어 놓은 열매가 《골목 안 풍경》이에요.

 마지막으로 사진교재인데, 케네스 코브레 님이 엮은 《포토저널리즘》(청어람미디어,2005)이나 필립 퍼키스 님이 내놓은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눈빛,2005) 같은 책입니다. 임응식 님이 엮은 《사진사상》(해뜸,1986) 같은 책 또한 사진교재로 넣을 수 있습니다. 《사진사상》은 나라밖 손꼽히는 사진쟁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진에 담은 넋을 풀이하는데, 사진을 처음 만나거나 사진을 바야흐로 익히려 하는 새내기한테 길잡이처럼 베푸는 책이기 때문에 다른 갈래보다 사진교재 갈래에 넣을 때에 잘 어울립니다.

 사진책 갈래를 더 잘게 나눈다면 이밖에 숱한 갈래를 더 나눌 수 있습니다. ‘보도사진책’을 나눌 수 있고, ‘상업사진책(모델사진)’이라든지 ‘동인지’라든지 ‘사진잡지’라든지 ‘여행사진책’이라든지 ‘연감’이나 ‘도감’을 들어 볼 수 있어요.

 아직 사진책 갈래를 나눈 사람이 딱히 없을 뿐더러, 알맞게 나누었다 싶은 이야기를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저는 저대로 제가 좋아하는 사진책을 한 권 두 권 장만하여 갈무리하는 동안 ‘사진책을 이렇게 나누어 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대로 저마다 좋아하는 사진책을 하나둘 마련하여 그러모으는 가운데 ‘내 나름대로 이렇게 나누어 보자’ 하면서 나누면 됩니다. 도서관 분류법대로 나누어야 하는 사진책은 아니요, 남들이 하는 대로 그예 따르기만 할 내 삶이 아니니까요.

 사진책을 얼추 천 권쯤 건사했다 싶을 무렵부터 이 사진책들을 책꽂이에 차근차근 나누어 꽂아 보셔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쟁이가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진쟁이’ 이름을 따로 한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가 꾸리는 사진책 도서관에서는 좀 성기기는 하지만 ‘임응식’이나 ‘전민조’나 ‘김기찬’이나 ‘구와바라 시세이’나 ‘세바스타앙 살가도’ 같은 갈래를 따로 나눕니다. ‘로베르 드와노’나 ‘안셀 아담스’ 같은 갈래도 마련해 놓습니다. 사진쟁이 한 사람 작품모음을 차곡차곡 그러모으다 보면, 이분이 어떠한 사진길을 걸었고, 사진밭을 어떻게 일구며, 사진눈길이 어떠한가를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좋은 모습을 익히는 가운데 슬픈 모습을 느낍니다. 훌륭한 손길을 살피는 가운데 씁쓸한 뒷모습을 읽습니다. 사진책이 이천 권을 넘고 삼천 권을 넘어서며 자꾸자꾸 늘어나는 동안 ‘한 번 읽은 사진책’을 열 번 백 번 즈믄 번 다시 넘깁니다. 이때에는 되풀이해서 보는 동안 새삼스레 맞아들이거나 비로소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있어요.

 사진을 비평하는 분이나 그냥저냥 사진이 좋아서 들여다보는 분이나 엇비슷하게 잘못을 저지른다 할 만한데, 다들 사진 한 장을 너무 얼핏 스쳐 읽기만 합니다. 나중에 다시 들여다보지 않기까지 합니다.

 참말 좋은 사진이라면 오래도록 자꾸 들여다보아야 하고, 더없이 훌륭한 사진이라면 예배당 다니는 분들이 ‘똑같은 기도글’을 아침·낮·저녁으로 끝없이 되풀이할 뿐더러 달달 외우며 살아가지만 거룩한 뜻이 날마다 새롭다고 말씀하시듯, 똑같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내 마음이 언제나 새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똑같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그때마다 새삼스러우며 놀라운 선물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새롭지 못하거나 선물을 얻지 못한다면, 아직 내 눈이 영글지 못한 탓이거나 내가 좋아한다는 사진이 제대로 영글지 못한 탓입니다. 두 가지 모두일 수 있고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나 자라는 사람입니다. 열다섯 살에도 자라고, 스물다섯 살에도 자라며 쉰다섯 살이나 일흔다섯 살에도 자랍니다. 제가 ‘내 책을 그러모아 내 살림돈으로 연 도서관’에 전민조 님이라든지 구와바라 시세이 님 같은 분들 갈래를 따로 마련한 까닭은, 이분들 사진을 들여다보면 나이 스물이나 서른에만 온힘 바쳐 사진밭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이 마흔이나 쉰에도 한결같았고, 나이 예순이나 일흔에도 한결같습니다. 흔한 말로 ‘어르신 대접’을 받을 만하다 싶어도 스스로 어르신 대접을 손사래칩니다. 당신들이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노상 사진기를 단단히 움켜쥐어 ‘현장을 누벼야’ 하고, ‘사진 한 장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로 일하는 사진쟁이만 이렇게 나이 예순이나 일흔에도 나이 열이나 스물이나 서른과 같은 마음결이어야 하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좋아하고 즐기는 우리들 또한, 내 나이가 열다섯이든 서른다섯이든 쉰다섯이든 언제나 싱그러우며 푸른 넋을 건사하면서 아름다운 삶길을 걸어야지 싶어요. 이러면서 사진책 하나 가슴에 안는다면, 이 고운 사진책은 내 삶을 곱게 일구는 밑거름이 되거나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4343.1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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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건축 4 - 칠궁
임응식 지음 / 광장 / 1977년 10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올렸던 글을 '리뷰'로 옮겨 새로 올린다 ㅠ.ㅜ 이 책은 절판된 지 오래되어 없는 줄 알고, 처음부터 '판 끊어져 검색 안 되는 책' 자리인 페이퍼쓰기를 했는데... 임응식 님 책을 검색해 보다가, 덜컥 뜨는 모습을 보거는 허거덕 @.@ 아웅... 힘들어라... 그러나 고마운 일이다. 다시 살 수는 없어도 이렇게 '책 검색'이 되는데다가 표지라도 뜨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술이기 앞서 삶인 사진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9] 임응식, 《韓國의 古建築 ④ 七宮》(광장,1977)



 사진찍기를 처음 배우려 하는 분들한테나, 사진찍기를 제법 해 왔으나 ‘식구들 사진 아니고는 찍어 보지 못했다’고 하는 분들한테나 으레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진기는 다 똑같은 사진기이니, 더 값나가는 값진 사진기를 굳이 장만하려고 하지 마시라고. 덧붙여, 더 값나가는 사진기 한 대 장만할 돈만큼 사진책을 먼저 장만하여 죽 들여다본 다음에 사진기를 새로 사도 늦지 않다고. 이리하여, 하루아침에 사진책을 한꺼번에 장만하지 말고 틈틈이 책방마실을 다리품 팔며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으로만 한두 권씩 장만하며 사진기 값만큼 썼다 싶을 때에 비로소 사진기를 장만한다면 굳이 사진강의나 사진교실을 다니지 않아도 스스로 마음에 들 뿐 아니라 스스로 바라는 사진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우리 나라는 사진책이 아주 안 팔립니다. 책마을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책이 안 팔린다’면서 우는 소리를 내지만, 사진책을 만들어 온 책마을 일꾼은 예나 이제나 ‘책 팔기 힘들어’ 골골거리면서도 사진책 하나를 힘써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안 팔리는 책을 꼽자면 사진책과 함께 환경책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을 올바르고 아름다이 일구자는 뜻을 담은 환경책은 아주 뜻밖에 아주 안 팔립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광고돈 제법 들여 알리지 않고서야 거의 안 팔립니다. 이는 사진책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난 출판사에서 광고돈 들여 널리 알리면 곧잘 팔립니다.

 문학책이 문학쟁이 한 사람이 일군 문학이라는 열매 하나를 담은 책이라면 사진책은 사진쟁이 한 사람이 일군 사진이라는 열매 하나를 담은 책입니다. 그런데, 문학책을 즐거이 사 읽으며 문학맛을 보려는 사람은 있되, 사진책을 기쁘게 사 넘기며 사진맛을 보려는 사람은 좀처럼 드뭅니다. 이러는 가운데 몇 가지 사진책은 아주 불티나게 팔립니다. 잘 안 팔릴 뿐 아니라 거의 안 팔린다는 사진책이라 하지만, ‘사진 더 잘 찍는 솜씨를 말하는 책’이라든지 ‘사랑받는 연예인 화보를 담은 책’이라든지 ‘곱상한 사진으로 멋을 부리는 포토에세이’라든지 ‘대학교 사진학과에서 교재로 쓰는 책’만큼은 제법 팔립니다.

 사진책을 즐겨 장만하는 저부터 늘 느끼지만, 사진책은 값이 좀 세긴 셉니다. 흔한 말로 휘리릭 넘기면 다 보는 사진책인데 책값이 꽤 비싸다 할 만합니다. 굳이 양장에 책 껍데기에 날개에 뭔가를 덕지덕지 달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돈을 더 들여 더 빛나게 엮으려는 사진책이 퍽 많습니다. 글책은 그예 글책이고 사진책은 그예 사진책이기에, 글책이 글로 책을 받아들이고 글로 삶을 읽도록 돕는다면, 사진책은 사진으로 책을 맞아들이며 사진으로 삶을 헤아리도록 도울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겉을 어느 만큼 꾸밀 수 있습니다만, 애써 더 겉꾸밈에 마음쓸 까닭이 없는 책들입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사진책 엮는 분들은 생각을 좀 고쳐야 합니다. ‘어차피 만드는 데에 비싼 돈이 치이니 몇 가지 더 꾸민다’고 하는 생각이 아니라, ‘사진 품질을 살리면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장만할 수 있는 눅은 값’을 맞추는 데에 생각을 모두어야지 싶어요.

 1970년대 끝무렵에 ‘도서출판 광장’에서 펴낸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사진책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자꾸자꾸 할밖에 없습니다. 광장이라는 출판사는 건축책을 내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건축을 사진으로 말하는 사진책을 꽤 큰 판짜임으로 여럿 내놓았습니다. 광장 출판사에서는 모두 50권쯤은 내놓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는데 모두 몇 권까지 내놓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 가운데 제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찾아본 책들 가운데 다섯 권은 임응식 님 사진으로 나왔고(비원, 경복궁, 종묘, 칠궁, 소쇄원), 한 권은 강운구 님 사진으로 나왔습니다(내설악 너와집). 주명덕 님 사진으로 《수원성》이 나왔다고 하지만 이 책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제주 민가》를 담으려 했다는 사진책을 세 권 내려 했다는데 누구 사진으로 내려 했고, 나오기는 했는지조차 알 길은 까마득합니다.

 곰곰이 생각한다면,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는 사진책은 1970년대 끝무렵뿐 아니라 2010년대 첫무렵에 내놓는다 할지라도 널리 사랑받기에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옛집”이든 “우리 나라 오늘날 집”이든, 여느 사람들은 당신 살림집을 알뜰히 눈여겨보면서 우리 삶터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사람은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이 오순도순 모여 있는 한국 삶터 골목길을 스스럼없이 바라보거나 껴안거나 살피지 못합니다. 나라밖 일본이든 중국이든 티벳이든 인도이든 프랑스이든 미국이든 독일이든 스페인이든 하는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나가서 그 나라들 골목길을 눈여겨보거나 헤아리거나 바라보거나 살필 뿐입니다. 제주섬 올레길을 찾는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합니다만, 관광길인 올레길은 찾아다닐지라도 스스로 ‘관광길이 아닌 여느 사람 살림집하고 맞닿은 골목과 고샅’을 즐겁게 찾아다니며 마을사람 눈높이와 삶결대로 거닐면서 ‘내 이웃 삶을 받아들이려는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더욱이, 관광여행으로 많이 찾는 제주섬이 아닌 여느 우리 동네라 할 때에, 우리 동네 골목길 구석구석 골골샅샅 누비며 내 이웃집은 어디요 내 동무가 사는 집은 어디이고 내 단골집은 어디메인가 하고 곱씹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터조차 모르는 가운데 멀리멀리 비행기 타고 다닙니다. 우리는 우리 삶터 이웃집을 잘 알려 하지 않으면서 진보와 평화와 평등과 통일과 자유와 민주를 외치고 있습니다.

 임응식 님이 “韓國의 古建築”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은 사진책 《비원》과 《경복궁》과 《종묘》와 《칠궁》과 《소쇄원》을 하나하나 넘겨 보노라면, 임응식 님은 이무렵 쉰 해 남짓 이어온 당신 사진삶을 한결 가다듬고 추스르면서 당신으로서는 거의 마지막 불꽃이라 할 만한 사진길을 새롭게 걸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나라 사진누리를 맨 처음으로 다스리거나 갈고닦았다고 할 분 가운데 하나로서, 당신 뒷사람한테 보이거나 남기거나 물려주고픈 이야기와 넋을 사진마다 알알이 아로새겼구나 하고 느낍니다.

 “韓國의 古建築”이 나올 무렵은 한국 사진쟁이도 “우리 나라 옛집과 옛궁”을 어떤 흐름과 줄기를 좇으며 어떤 이야기를 담도록 사진을 해야 하는가를 곧잘 살피던 때인 한편, 일본 사진쟁이 또한 “일본 이웃에 있는 아름다운 옛집과 옛궁이 살아숨쉬는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밝히고자 바지런히 찾아와서 알뜰살뜰 사진을 찍던 때입니다. 한 자리에 놓고 견주기에는 마땅하지 않으나, 1981년에 ‘村井修’라는 일본사람 사진으로 《李朝の建築》(求龍堂)이라는 두툼한 사진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일본 사진쟁이는 ‘조선 무렵 옛 궁궐과 기와집’ 사진을 빛깔사진과 흑백사진 두 가지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빛깔사진으로 해야 할 자리와 때에는 빛깔사진으로 담고, 흑백사진으로 해야 할 곳과 때에는 흑백사진으로 담습니다. 놀랍도록 또렷하면서 밝고 아리땁게 ‘조선 무렵 옛 궁궐과 기와집’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고운 사진책인 《李朝の建築》입니다. 이 일본 사진책하고 임응식 님 《비원》과 《경복궁》과 《종묘》와 《칠궁》과 《소쇄원》을 나란히 놓고 생각한다면, 임응식 님 사진은 어느 모로 답답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 빛을 좀더 맑고 밝게 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임응식 님은 굳이 흑백사진으로만 “조선 무렵 옛 궁궐과 기와집”을 담습니다. 어느 사진은 선명도가 깨지고 어느 사진은 살짝 흔들리고 어느 사진은 빛이 잘 맞지 않아 아쉽지만, 이 땅에서 이만 한 집을 이루어 살아가던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즐기며 무엇을 아끼려 했는가 하는 생각을 사진마다 골고루 담아 놓습니다. 사진길을 오랫동안 걸어온 ‘임응식이라는 손꼽히는 사진쟁이’ 이름이나 얼룩을 느낄 수 없는 사진을 선보이는 “韓國의 古建築”입니다. 임응식이라는 사진쟁이가 내놓은 작품을 보라는 “韓國의 古建築”이 아니라, 이 나라 옛 궁궐과 기와집을 처음 지은 일꾼들 땀냄새하고 이 궁궐과 기와집에서 하느작거리며 노닐던 사람들 삶결을 읽으라 하는 이야기가 서린 “韓國의 古建築”입니다. 그래서, 사진 작품으로 치자면, 또 이 나라 옛 궁궐과 기와집 매무새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진으로 보자면, 일본 사진쟁이가 이룬 《李朝の建築》이라는 책이 더할 나위 없이 멋있습니다. 이와 달리, 사진하는 넋과 사진기를 쥔 손길에다가 사진으로 이루어 사진으로 나누려는 눈물과 땀내로 돌아보자면, 여러모로 어수룩한 구석이 남아 있으면서 “이 나라 옛 궁궐과 기와집”을 읽는 새로우며 남다른 생각과 밑눈을 베풀어 준 “韓國의 古建築” 다섯 권이 그지없이 고맙습니다. 저는 이 다섯 권 가운데 4번 《七宮》 사진책을 몹시 아낍니다.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저 좋아 웃습니다. 기와집이란 풀집과 달리 권력과 이름과 학문과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집인데, 이러한 기와집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사람 기운이 똑같이 어려 있’음을 사진으로 아기자기하게 엮어 냅니다.

 1979년에 나온 《현대한국사진작가선 : 임응식》(시각)이라는 사진책을 펼치면 이경성 님이 임응식 님 사진을 읽어낸 글이 한 꼭지 실려 있는데, 마지막을 다음처럼 맺습니다. “사실 그(임응식)의 말대로 오늘의 평면 예술에는 사진술을 이용한 많은 회화와 판화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사진술을 썼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궁극의 목적이 회화이므로 사진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진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사진작가 임응식은 ‘사진은 기록성과 진실성을 담은 평면예술이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4343.8.6.쇠.ㅎㄲㅅㄱ)


― 韓國의 古建築 ④ 七宮 (임응식,광장,1977/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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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민들레
윤주영 / 호영출판사 / 1993년 3월
평점 :
절판



 촉촉한 가슴에서 저절로 샘솟는 고운 사진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3] 윤주영, 《동토의 민들레》(호영,1993)


 잘 찍는 사진, 또는 잘 찍은 사진하고는 동떨어졌을 뿐더러, 훌륭한 사진이나 놀라운 사진이나 대단한 사진이나 좋은 사진하고도 멀거니 떨어진 윤주영 님 사진을 읽습니다. 1928년에 태어나 여태껏 사진기를 힘차게 쥐는 당신은 1928년에 태어나 이제껏 사진기를 당차게 쥐는 최민식 님하고 동갑내기입니다. 윤주영 님은 당신이 예순다섯이던 1993년에 내놓은 사진책 《동토의 민들레》에서 “사실 내가 2∼3년만 일찍 태어나 국민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농사일이나 거들고 있었다면 나도 영락없이 이곳에 끌려와 그들이 살아온 세월처럼 형용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을지도 모를 일(126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윤주영 님이 러시아에서 쭈그렁 할아버지로 지내는 가운데 최민식 님이 러시아로 사진 취재를 떠나 만나는 사이가 되었을 수 있어요. 그러나저러나, 얼어붙은 땅 러시아 사할린에서 겪는 한겨레붙이 아픔과 슬픔이란 ‘강제이주’ 하나뿐 아니라 ‘강제이주에 재이주에 재재이주’까지 덧달립니다. 이루 말로 담아내기 힘들고, 이루 사진으로 실어내기 벅찬 눈물입니다.

 그러나 이 얼어붙었다는 땅에서도 한겨레붙이는 서로 믿고 기대어 사랑을 나눕니다. 다 함께 손잡고 어깨동무하며 따순 품을 나눕니다. 끔찍한 나날을 겪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가운데에는 ‘러시아 녀석하고 내 손주가 시집장가 가는 꼴을 못 본다’고 외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한겨레붙이하고 똑같이 한겨레붙이라 할 만한 남녘땅 한겨레붙이는 러시아에서 살아가는 러시아사람하고 맞대 놓을 때에 얼마나 한겨레붙이답다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재일조선인 소설쟁이 유미리 님은 한국에서 온 유학생 아무개가 다니는 대학교에 놀러갔을 때 이야기를 당신 수필책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2000)에 적바림합니다. 당신을 “유입니다.” 하고 말했더니 한국사람이냐고 묻기에 한국사람이라 하니까, 한국사람치고 일본말을 참 잘한다고 하기에 일본에서 태어났으니 그렇다 했는데, 한국 유학생은 “그럼 일본사람이잖아요?” 하고 물었고, 유미리 님은 “아니, 그러니까 재일한국인 2세인데요.” 하고 대꾸했는데, 막상 돌아온 말이란 “그게 무슨 소리죠?”였다고 적바림합니다.

 윤주영 님은 다큐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물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사진이나 상업사진을 찍지도 않습니다. 이른바 프로사진이 아닌 윤주영 님 사진이라 할 텐데, 윤주영 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결대로 다리품을 팔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이런 이름도 어울리지 않고 저런 갈래도 걸맞지 않습니다. 그예 사람들 살아가는 품새를 다루고, 그저 사람들 복닥이는 매무새를 들여다봅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저마다 아는 만큼’ 찍는다 여길 수 있습니다만, 저마다 아는 만큼 사진을 찍는 일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저마다 살아가는 만큼’ 사진을 찍습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만큼 사람과 삶터를 바라보고, 저마다 살아가는 만큼 사진기를 장만해서 단추를 눌러 사진 하나 일굽니다.

 이리하여, 윤주영 님 사진하고 견주면 솜씨 빼어나거나 틀이 괜찮거나 생각이 좀 깊거나 한달지라도 윤주영 님 사진만큼 이야기가 넉넉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윤주영 님처럼 살아내지 못하면서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섣불리 붙인다든지, 윤주영 님처럼 다리품과 손품을 팔지 않으면서 사진쟁이라는 허울을 우쭐거리면서 쓴다든지 한다면, 보잘것없는 사진 작품만 잔뜩 쏟아냅니다. 가만히 보면, 스스로 ‘다큐’라 이름 붙일 때에는 다큐사진이 아니고, 제 입으로 ‘인물’이라 이름 달면 인물사진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문화이고 예술이고조차 아닌 겉멋이나 겉치레에 머물고 맙니다.

 윤주영 님만큼이라도 다리품을 팔거나 손품을 들이면서 사진길을 걷는다면 이 나라 사진쟁이들은 얼마나 크게 발돋움할까요. 돈이 있고 겨를이 많아 윤주영 님이 이렇게 다리품과 손품을 팔았겠습니까. 나한테 돈이 아주 많거나 겨를이 참말 넉넉하다면 윤주영 님은 저리 가라 하도록 멋진 사진을 내놓을 수 있는가요.

 사진책 《동토의 민들레》를 들여다보면, 윤주영 님이 사할린 한겨레붙이를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결 살가이 보듬지 못했구나 하고 느낄 만합니다. 윤주영 님 스스로 밝히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 사진집을 통해 사할린 교포들의 삶을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한 욕심이었던 듯싶다. 그들이 50년 동안 겪고 살아온 그 엄청난 수난의 세월을 짧은 시간에 담아내는 데는 어차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127쪽/윤주영).”는 말이 아니더라도 몇 차례 사진여행을 떠나 수십 또는 수백 통 필름을 썼달지라도 ‘러시아 사할린땅 한겨레붙이’ 삶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작 한 차례 나들이를 했으면서도 얼마든지 러시아 사할린땅 한겨레붙이 삶을 알뜰살뜰 여밀 수 있어요. 윤주영 님은 아직 이 대목을 깨닫지 못하시는데, ‘미리 촬영 대상을 공부하고 살피거나 알아본다’고 하든 ‘사람들하고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진을 담는다’고 하든 이야기사진이나 다큐사진 하나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진이든, 우리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내 삶을 곰삭이며 내 깜냥과 주제와 그릇에 걸맞게 내 삶을 사진 하나에 실어내려고 할 때에 이야기 한 자락을 사진 하나에 살포시 얹으며 삶꽃 어여삐 일굽니다.

 잘 찍을 까닭이란 없습니다. 깊거나 놀랍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까닭이란 없습니다. 곧거나 옳은 목소리를 외칠 까닭이란 없습니다. 멋지거나 그윽한 그림을 보여줄 까닭이란 없습니다. 사진은 사진이지 ‘글’도 ‘그림’도 아닙니다. 사진을 글인 듯 여기면서 줄줄줄 꼬리말을 달아 놓는다면 부질없습니다. 사진을 그림처럼 받아들이면서 그럴싸한 모습을 달달달 늘어 놓는다면 덧없습니다.

 더 많은 필름이나 더 좋은 장비나 더 기나긴 겨를로는 사진을 이루지 못합니다. 더 너른 사랑과 더 따순 믿음과 더 깊은 마음으로 사진을 이룹니다. 내 삶부터 따뜻하게 여미어 주셔요. 내 가슴을 촉촉히 적셔 주셔요. 내 눈망울을 맑게 빛내어 주셔요. 사진은 저절로 우러납니다. (4343.12.1.달.ㅎㄲㅅㄱ)


―  (윤주영 사진,호영 펴냄,1993.3.20./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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