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뱃속 2025.2.18.불.



네가 뱃속에 무엇을 넣든 네 몸은 다 내보내. 네 뱃속은 담는 곳이 아니라, 거치는 곳이야. 네가 무엇이든 넣을 수 있을 텐데, 밥이든 물이든 잎이든 풀이든 열매이든 네 뱃속은 하나하나 느끼고 배워. 그런데 ‘배운다’고 하더라도 네 ‘삶’이나 ‘앎’은 아니란다. 누구나 늘 배우거든. 몸을 입고서 살아가는 사람은 “사는 동안 늘 배우는 길”이야. 숨만 쉬더라도 숨결을 배워. 숨조차 쉬기 어렵도록 아픈 몸이면, “숨조차 쉬기 어렵도록 아픈” 결을 배우지. 돈이 넉넉하니 ‘돈넉넉’을 배우고, 돈이 적으니 ‘돈적음’을 배워. 다들 배워. 그런데 배우기만 할 적에는 몸집이 늘어날 뿐이야. 넌 ‘먹기’만 하면서 살 수 있겠어? 먹기를 했으면 ‘누기’를 할 노릇이야. 밥은 먹는데 똥은 안 누려고 들면, 네 뱃속은 어찌 될까? 물은 마시는데 오줌은 안 누려고 들면, 네 뱃속은 어찌하지? 똥오줌이 두렵거나 싫거나 성가셔서 밥과 물을 멀리하니? 밥과 물을 멀리한다면, 안 배운다는 뜻이야. 많이 먹거나 적게 먹거나 대수롭지 않아. 이미 너는 살갗으로도 숨쉬고 먹거든. 이미 너는 자면서도 숨을 쉬고 몸을 고르게 가눠. ‘배’는 ‘받아들여’서 하나하나 뜯고 풀며 ‘배우’는 몸이야. 배운 만큼 내놓기에, 이때에 비로소 ‘익히’지. 배운 다음에는 뱃속에서 삭이고서 내놓을 틈을 둘 노릇이야. 숨을 쉴 적에는 숨을 내쉬기까지, 숨 한 줄기가 몸 구석구석을 어떻게 감도는지 읽고 새길 노릇이야. “익힐 틈”을 안 둔다든지, “기꺼이 내놓기”를 꺼리는 이들은 “배우더라도 배터지는 죽음늪”으로 달려가는 몸짓이란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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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퇴장 2025.2.20.나무.



물러나야 할 놈이 물러나야 하는데 도무지 안 물러나는 탓에 시끄럽니? 그러나 물러나야 할 놈은 그만 쳐다보렴. 물러나야 할 놈은 그자리에 다시 못 앉는단다. 다시 그자리에 앉았다가는 아주 호되게 두들겨맞고서 쇠고랑을 차게 마련이야. 이만 물러날 적에도 쇠고랑을 차지. 그놈은 이래 물러나든 저래 버티든 나중에는 쇠고랑을 찰 수밖에 없는 줄 알기에 우격다짐으로 달려든단다. 이러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해. “너도 잘못했잖아? 나만 잘못했냐? 너도 날 때렸잖나?” 하면서 아주 진흙싸움으로 끌어들인단다. 이때에 넌 ‘돌봄주먹(정당방위)’이었다고 외치면서 ‘옳은목소리(정의로운 주장)’를 펼 텐데, 이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북새통인 싸움밭으로 치닫는단다. 치고받는 늪에서는 누가 참이고 거짓인지 못 가려. 치고받다 보면 어느새 둘 다 끝장싸움으로 굴러떨어져. 그놈이라면 이제 잃을 것이 없을 텐데, 넌 어떡하지? 너도 다 잃어도 돼? 놈은 물러날 마음이 없어. 그런데 넌 놈을 무찌르고 싶겠지. 그래서 그놈은 널 물리치고 싶단다. 이때에 네가 할 일은 오직 하나야. 그놈은 몫(임기)이 있어. 그놈은 밥그릇(권력)을 쥐었지. 그래서 넌 그놈이 그놈 몫과 밥그릇을 붙잡는 늪을 그냥 내버려두면 돼. 넌 너로서 빛나는 사랑을 펴서 네 살림집을 숲으로 돌보면 돼. 물러날 수밖에 없는 그놈을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라지 마. 그저 그놈이 어떤 몫이고 밥그릇인지 말을 하고서 내버려두렴. 힘팔이꾼은 늘 제풀에 지친단다. 이름팔이꾼과 돈팔이꾼도 언제나 스스로 힘이 다하여 죽어.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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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은퇴 2025.2.19.물.



삶을 마칠 때까지는 끝(은퇴)이 없어. 오늘날 ‘사람터’에서는 으레 ‘은퇴·정년퇴직’ 같은 이름을 붙이는데,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짓이란다. 보렴! “가정주부 은퇴”가 있니? “가정주부 정년퇴직”이 있어? 집안일을 서른 해쯤 했으니, 이제부터는 집안일에서 손떼도 될까?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야. ‘은퇴·정년퇴직’을 할 일이라면, 처음부터 ‘일감’조차 아니란다. ‘은퇴·정년퇴직’은 오직 ‘돈팔이·이름팔이·힘팔이’에서 쓰는 허울이란다. 너는 “숨쉬기 은퇴”나 “밥먹기 은퇴”나 “똥누기 은퇴”나 “씻기 은퇴”를 할 수 있겠어? 터무니없지. 너는 “빨래 안 하기”도 “옷 안 갈아입기”도 “잠 안 자기”도 할 수 없단다. ‘은퇴·정년퇴직’이 있는 자리를 제대로 바라보렴. 어느 나이에 이르면 그만두어야 한다면, 그곳은 사람들 ‘젊은피’를 빨아먹는 곳이라는 뜻이야. 온누리를 읽고 잇는 이야기를 펼 수 있는, 어질고 슬기로운 ‘어른’을 몰아내려는 얼거리가 ‘은퇴·정년퇴직’이란다. 보렴! 이제 막 어느 일터에 들어선 풋내기가 무슨 일을 맡을 수 있을까? 새로 빚은 술은 새로 짠 자루에 담을 노릇이지만, 오래오래 잇는 일이라면, 일손을 어질게 돌보는 사람이 다룰 노릇이란다. 보렴! ‘논밭지기’는 마지막숨을 내놓는 날까지 땅을 돌보고 사랑하는 어진 일꾼이야. 80살이건 120살이건 어진 논밭지기란다. 집을 돌보는 살림꾼(가정주부)은 90살이건 130살이건 어진 살림꾼이지. 집살림을 일구는 어진 사람은 집안일을 놓아야 할 까닭이 없어. ‘은퇴·정년퇴직’이 있는 자리는 언제나 사람을 ‘높낮이(질서·계급·신분)’에 가두는 쇠사슬이란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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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마음노래 가만히 (2025.1.4.)

― 부천 〈용서점〉


  새해 첫달과 둘쨋달에 부천 〈용서점〉에서 “책집에 갑니다”라는 빛꽃마당(사진전시)을 폅니다. 올해 첫머리부터 〈용서점〉과 함께하는 노래짓기(시창작)를 어떻게 할는지 이야기하려고 마실길에 나섭니다. 한창 얼어붙은 하늘과 땅을 느끼면서 논두렁을 걷습니다. 옆마을에서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겨울빛을 담습니다. “같은 시골”이더라도, 보금숲과 마을과 옆마을은 다릅니다. 시골버스를 타고서 나가는 읍내도 다르고, 읍내에서 갈아탈 서울버스가 가로지르는 이웃고을도 달라요.


  배우려고 여러 사람 말씨를 가만히 듣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넉넉히 들었구나 싶으면, 이제 여러 목소리를 슬며시 끊고서 목소리를 냅니다. 고맙게 들려주려는 여러 목소리가 나쁠 까닭이 없이 다 좋다고 여길 만하되, 내 이야기도 듣고서 같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고 가만히 보탤 만합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마음에 스스로 생각이라는 씨앗을 얹기에 말이 깨어나고 이야기가 흐릅니다. 우리가 바라는 하루는 저마다 입으로 말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깜깜하늘에서 뿌옇게 동트는 하늘을 지나서 환하게 밝는 파란바람을 헤아리는 사이에 서울에 닿습니다. 쏟아지는 사람물결 사이에서 큰 등짐으로 뚜벅뚜벅 걷습니다. 글붓집부터 들르고서 다시 걷습니다.


  이 땅에서 이웃으로 살아가려 하기에 네 말을 듣고 내 말을 합니다. 이웃이 아니라면 암말을 할 까닭이 없고, 쳐다볼 일마저 없습니다. 이웃 아닌 놈이라면 삿대질을 하며 싸울 테지요. 동무라면 도란도란 말을 섞고 웃으며 놀거나 일하고요.


  곰곰이 보면, 양철북에서 낸 《이오덕 일기》는 군데군데 가려뽑으면서 ‘이오덕은 이렇게 늘 투덜투덜하기만 해’ 하고 몰아붙이는 얼거리로 잡은 듯싶습니다. ‘하루를 살펴서 스스로 배우려는 마음’에 눈길을 두었다면 《이오덕 일기》는 아주 다르게 나왔을 테고, 겉종이를 두껍게 안 했겠지요. 겉종이 두께만큼 ‘이오덕 하루글’을 더 실으면서 ‘누구나 하루를 스스로 쓰기에 몸소 배워 익힌다’는 살림새를 들려주는 길로 갔으리라 봅니다.


  배우려 하지 않기에 불이 치솟고 이글이글 타면서 싸웁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배우려 하지 않기에 마감에 쫓겨 몸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배우려 하기에 이야기를 일구면서 눈을 반짝입니다.


  늦을 일이 없고, 늦는 때가 없습니다. 다 다른 자리에 맞추어 늘 새롭게 움직이는 하루입니다. 그저 더 생각하고 살펴야 하기에 더 걸릴 뿐입니다. 너랑 내가 나란히 더 들여다보고 헤아리면서 돌봐야 하니까 더 품을 들여요. 오늘 〈용서점〉에서 ‘토요일’하고 ‘몰랐다’를 글감으로 노래짓기를 엽니다.


ㅍㄹㄴ


《촘스키, 실패한 국가, 미국을 말하다》(노엄 촘스키/강주헌 옮김, 황금나침반, 2007.2.15.)

- 틀린 날짜

- FailedStates #TheAbuseofPowerandtheAssaultonDemocracy #AvramNoamChomsky

《제비심장》(김숨, 문학과지성사, 2021.9.23.)

《남자는 소모품이다》(무라카미 류/박혜수 옮김, 친구미디어, 1998.3.20.첫/1999.1.15.2벌)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이해인, 열림원, 1999.11.22.첫/2002.3.22.17벌)

《가을을 찾습니다》(김현승, 열음사, 1987.2.25.)

- 조정정가 1200원 

《달 따러 가자》(운석중 글·민정영 그림, 비룡소, 2006.12.29.)

《나의 투쟁》(아돌프 히틀러/김수인 옮김, 청년사, 1988.4.14.)

《글이 된 말씀》(이애란, 성서유니온, 2023.4.20.)

《토끼의 의자》(고우야마 요시코 글·가키모토 고우조 그림/김숙 옮김, 북뱅크, 2010.11.30.)

#香山美子 #枾本幸造 #どうぞのいす

《1인 출판 탐구생활》(I'm 열매, 열매하나, 2019.10.24.)

《문화도시, 시작의 유산 : 부천 문화도시 조성사업 2020-2024》(한병환, 부천문화재단, 2024.12.10.)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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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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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2.25.

까칠읽기 55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K.르 귄

 진서희 옮김

 황금가지

 2019.1.29.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라는 책이름을 본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아니! 남겨둘 틈이 왜 없어! 남겨둘 틈이 없다고 여기니까 남겨둘 틈을 스스로 없앨 뿐이잖아!” 하고 한목소리로 외친다. 내가 말하기 앞서 먼저 외치는 아이들을 가만히 본다.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이웃 아이들도 이렇게 느끼게 마련이라고 본다. 스스로 눈빛을 안 가둔 아이라면 “남겨둘 틈이 없답니다”라는 말은 글쓴이뿐 아니라 우리 모두 쇠사슬에 치렁치렁 묶는 굴레일 뿐인 줄 알아채리라.


남겨둘 틈이 왜 없을까? 삶이 아닌 죽음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왜 틈이 없이 바쁠까? 꿈이 아니라 돈벌이에 따라서 쳇바퀴처럼 얽매이기 때문이다.


모든 마음은 그대로 모든 삶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나는 글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 하고 마음을 품으면 ‘글이름팔기’를 이루되, 아무 글이나 쉽게 쓰면서 목소리만 높이는 글바치로 나아간다. “나는 글 한 줄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으면서 푸른별이 푸른숲으로 피어나기를 바라.” 하고 마음을 품으면 ‘숲글살림’을 일구는 글지기로 걸어간다.


일본스런 한자말 ‘환경·생태’에는 ‘숲’이나 ‘푸른길’이라는 뜻이 서리지 않는다. ‘환경 → 터’를 가리키고, ‘생태 → 살이’를 가리킬 뿐이다. 일본은 영어 “environmental movement”를 “環境運動”으로 옮겼고, 우리는 무늬만 한글인 ‘환경운동’으로 받아들인다. 이러다 보니 예전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우리나라 ‘환경운동’은 ‘친환경’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갇힌다.


일본사람이 옮긴 일본말씨라서 틀리거나 잘못인 ‘환경운동’이지 않다. 우리나라 ‘환경운동’은 하나부터 열까지 일본것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다. 우리 삶터를 돌아보자는 물결인데 정작 우리 눈길과 손길도 글길도 마음길도 아닌 ‘일본에 옮긴(번역한) 하늬바람(서양문화)’을 그냥그냥 오래도록 받아먹은 얼거리이다. 일본은 일본이라는 삶터를 푸르게 가꾸는 새길을 찾으려고 애썼는데, 우리는 무엇을 해온 셈일까?


이제는 우리 눈으로 보고, 우리 마음으로 가꾸고, 우리 손으로 일구고, 우리 살림으로 바꿀 때라고 느낀다. 모든 ‘환경운동’은 “터를 조금 손질하기”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 ‘나눠버리기(분리수거)’를 아무리 잘한들, 막상 ‘터가꿈’하고도 멀다. ‘나눠버리기’도 알뜰히 하되, 먼저 ‘살림짓기’부터 할 노릇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지구”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분이 무척 많은데, 언제나 이 말대로 스스로 굴레로 가두는 셈이다. “쓰고 버리는 푸른별”이 아니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살림하는 푸른별”로 우리 삶을 바꿀 노릇이고, 이렇게 하자면, ‘모든 서울(도시)’에서 떠날 노릇이고, 쇠(자가용)와 재(아파트)부터 버려야 한다.


이러면서 늘 쓰는 가장 수수한 낱말부터 ‘푸른말’로 바꿀 줄 알아야 할 테지. 늘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는 말글이 ‘푸른말’이 아니라면, ‘터가꾸기’나 ‘나눠버리기’조차 겉몸짓으로 갇히게 마련이다. ‘숲’을 말하지 않고서 ‘자연’만 말한다면, 숲을 등지고 모를 수밖에 없다. ‘배움’을 말하지 않고서 ‘학교’만 말한다면, 무엇을 배우는지 곱씹을 일이다.


그러니 모든 ‘올바른(정의로운)’ 길은 내려놓을 줄 알아야 바꾼다. 바다나 바람을 품는 말씨하고 먼 ‘바른말’이란, 오히려 서울(도시문명)을 더 키우고 늘리는 쳇바퀴로 흐른다. 오래오래 즐겁게 쓰면 되고, 오래오래 넉넉히 쓸 살림살이를 갖추면 아름답다. 오래오래 되읽을 글을 스스로 쓰면 되고, 아이들이 물려받아서 ‘어릴 적부터 읽을 책’을 우리 곁에 두면서 천천히 이 터전을 푸르게 가꿀 만하다고 본다.


‘어스시’ 이야기 첫자락은 나쁘지 않다. 다만, “나쁘지 않다”뿐이다. 가면 갈수록 쳇바퀴에 고이고 갇혀서 ‘올바른 목소리’를 밀어넣으려고 한다. 굳이 왜 이렇게 해야 할까? 참 알쏭달쏭했으나, ‘황금가지’에서 옮긴 이녁 글모음 두 자락을 읽고서 뒤늦게 알아챈다. 늙음과 죽음에 너무 사로잡혀서 두려워하는 대목을 느꼈다. 이녁 어버이가 남긴 엄청난 빛살인 《마지막 인디언》을 굳이 넘어서야 하지는 않다만, 이녁 어버이가 왜 ‘아히겨레’ 이야기를 《마지막 인디언》으로 남겨 놓았는지 여태 못 알아채고 못 깨달았구나 싶다. ‘아히겨레’는 옳거나 그르다고 가르지 않았고, 스스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길을 골라서, 그야말로 사라졌다. 그러나 아히겨레는 몸만 사라졌을 뿐, 아히겨레 넋과 숨결은 고스란히 남아서 해마다 꽃으로 피고 열매를 맺는다.


ㅍㄹㄴ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어슐러 K.르 귄/진서희 옮김, 황금가지, 2019)


대대적으로 당신이 기대한 바에 비해 당신의 손자 손녀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 그대가 크게 바란 바와 달리 그대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14


사실 나는 기대를 품고 있지 않다

→ 막상 나는 딱히 바라지 않는다

→ 정작 나는 그리 궁금하지 않다

14


어린아이들이 여가 시간을 아주 많이 누릴 때가 있었다

→ 아이들이 아주 느긋이 하루를 보낼 때가 있었다

→ 아이들은 아주 넉넉히 뛰놀 때가 있었다

18


잎채소와 운동이 더 건강한 노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 잎을 먹고 몸을 쓰면 늘그막에 더 튼튼할 수도 있다

24


두려움은 현명하기 어렵고 결코 친절할 수 없다

→ 두려우면 슬기롭기 어렵고 따뜻할 수도 없다

→ 두려우니 어질지 않고 포근하지도 않다

28


조심스럽고 공손한 여러분의 행동은 그들로 하여금 동일한 태도를 이끌어낸다

→ 여러분이 부드럽고 곱게 굴면 그들도 부드럽고 곱다

→ 여러분이 가만가만 얌전하면 그들도 가만가만 얌전하다

29


그 외에도 다채로운 이상한 일들이 작가로서의 내 삶에 벌어졌고

→ 이밖에 글을 쓰는 동안 온갖 재미난 일이 있었다

→ 이밖에 글을 써 오며 갖가지 놀라운 일을 겪었다

35


그녀는 자신이 고양이들을 사랑하며 잘 돌보고 있고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 그사람은 고양이를 사랑하며 잘 돌보고 모두 걱정없다고 보지만

→ 그이는 고양이를 사랑하며 잘 돌보고 모두 멀쩡하다고 여기지만

43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되길 원치 않는다는 말은 고양이를 곁에 두는 것이 싫다는 말이 아니다

→ 내가 온누리 한복판이 되길 안 바란다고 해서 고양이를 곁에 두면 싫다는 뜻이 아니다

55


하지만 증오와 배설물은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다

→ 그런데 미움과 똥오줌은 자꾸 뻗어나간다

→ 그렇지만 불씨와 똥오줌은 그저 거침없다

64


내가 답을 줄 필요는 없지만 그는 질문의 답을 간절히 원했다

→ 내가 대꾸할 일은 없지만 그는 부디 얘기해 주기를 바랐다

→ 내가 말할 까닭은 없지만 그는 꼭 들려주기를 바랐다

65


내가 아이들의 팬레터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 내가 아이들 꽃글을 참말 반긴다고 말하면 놀라는 사람이 더러 있다

→ 내가 아이들 사랑글을 참 기뻐한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가끔 있다

72


몇 년 후, 이따금 그 속담을 골똘히 생각하던 중에 나는 시나브로 가지다(have)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여러 가지 의미, 그 의미의 미묘한 차이를 깨달았다

→ 몇 해 뒤, 이따금 이 삶말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시나브로 가지다(have)라는 낱말에 흐르는 여러 뜻이 어떻게 다른지 깨달았다

79


수긍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도덕적 우열과 무관한 그 어떤 종류의 전투나 경쟁에서도 승리와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 받아들이기를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낫고 나쁘고를 떠나, 어떤 싸움이나 겨루기에서도 이기거나 질 적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89


작가라면 스스로 유명해지기를 거절해야 한다

→ 글바치는 스스로 드날리지 않아야 한다

→ 글을 쓴다면 스스로 휘날리지 말아야 한다

97


아저씨는 노후에 유독 그 두 가지로 소일했던 것 같다

→ 아저씨는 늘그막에 으레 이 두 가지로 보낸 듯하다

→ 아저씨는 늙어서 무엇보다 이 두 가지를 한 듯하다

107


스토리가 없는 플롯이 가능하긴 하다

→ 이야기가 없는 밑감이 있긴 하다

→ 줄거리가 없는 뼈대가 되긴 하다

121


계란을 반숙하려면 찬물을 담은 작은 냄비에 계란을 넣고

→ 달걀을 설삶으려면 찬물을 담은 작은솥에 달걀을 넣고

→ 달걀을 설익히려면 찬물을 담은 작은솥에 달걀을 넣고

263


리조트들은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니다

→ 놀이채는 서울도 아니고 시골도 아니다

→ 나들터는 서울도 아니고 시골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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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이 매일 아침 있던 곳에서 빛난다

→ 길구름이 아침마다 있던 곳에서 빛난다

→ 나래구름이 아침마다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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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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