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52 : 김수정 ① 일곱 개의 숟가락

 전국이 촛불모임으로 들끓고 있으나, 제가 사는 인천에서는 촛불이 아주 조그맣게, 또 조용하게 타고 있습니다.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들은 촛불모임 소식을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천 바로 옆에 붙은 서울은 날마다 어마어마한 숫자가 몰려듭니다. 인천에서 사회운동을 한다는 분들조차 인천에서 모이지 않고 서울로 먼길을 떠납니다. 이리하여 서울 촛불모임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모일 터이나, 정작 인천 촛불모임은 외롭기만 합니다.

 지난 6월 10일, 인천시의회에서 ‘성공적인 도시관리를 위한 시민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나온 여러 가지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살피면, “인천경제자유구역을 포함해 오는 2015년까지 추진되는 개발사업지구는 215곳이고 면적은 259㎢에 달한다. 시의 계획대로라면 분당신도시(1.65㎢) 만한 도시 157개가 10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서울도 곳곳에서 재개발 법석이지만, 인천에서 이루어지는 ‘재개발 + 재생사업’ 법석과 견주면 발가락 때만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데가 토박이가 드문 곳이라고 합니다만, 그나마 있던 토박이마저 제 삶터에서 내쫓기게 되는 ‘옛 도심지 없애고 새 아파트 올리는’ 일이 몹시 끔찍하다고 할 만큼 밀어닥칩니다. 워낙 한꺼번에 온갖 곳에서 쇠삽날 바람이 불고 있으니, 걷잡을 수도 없지만 숨 한 번 느긋하게 쉴 수조차 없습니다.

 “명주야, 여기 저금통장과 도장 놓고 간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 찾아 쓰도록 해라. 여러 가지로 힘들겠지만, 내일을 위해 우리 조금만 더 고생하자. 오빠가.(6권 93쪽)” 김수정 님이 1990년 3월부터 1992년 12월까지 그렸던 만화 《일곱 개의 숟가락》(태영문화사,1994)을 꺼내어 봅니다. 서울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다섯 아이와 할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이 만화책을, 한 해에 한두 번씩 꺼내어 몇 번씩 다시 보곤 합니다. 보고 또 보아 낡아버린 만화책이지만, 다시 보고 거듭 보는 동안, 1990년 앞뒤로 우리네 도시 서민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고누와 금긋기놀이를 하고, 고무줄과 긴줄넘기를 하며, 밥이 없으면 김치로만 배를 채웁니다. 따뜻한 부모와 걱정없이 살다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하나둘 세상을 몸으로 부딪히면서 스스로 헤쳐나가는 길을 찾고, 고등학생 일룡이와 중학생 명주는 둘 나름대로 홀로서기를 배우는 한편, 사랑스러운 식구들을 더욱 짙게 깨닫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밥상 위에 일곱 개의 숟가락이 놓였다. 늘 이렇게 일곱 개가 놓였으면 좋겠다.(7권 160쪽)” 아이들이 가난하면서도 서로 돕고 살던 달동네는 하나둘 사라집니다. 자가용은 없으나, 모두 똑같은 높이에서 똑같은 이웃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삶터가 사라집니다. 번듯한 장난감은 없으나, 돌멩이 하나와 나뭇가지 하나로도 놀잇감을 삼던 아이들 놀이터가 사라집니다. 큰돈은 못 벌지만, 누구나 조금씩 벌면서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던 일터가 사라집니다. 높은학교를 다니지 못했어도, 동네 언니와 아저씨가 길잡이요 스승이 되기도 하던 조촐한 배움터가 사라집니다. (4341.6.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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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가무연구소
니노미야 토모코 글, 고현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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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나게 술 마시고 신나게 놉시다
 [살가운 만화 36] 니노미야 토모코, 《음주가무 연구소》



- 책이름 : 음주가무연구소
- 그림ㆍ글 : 니노미야 토모코
- 옮긴이 : 고현진
- 펴낸곳 : 애니북스(2008.4.10.)
- 책값 : 9000원



 (1) 술 한잔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그린 만화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를 보면, ‘빵이 아닌 쌀로 만든 햄버거’를 만들어서 크게 사랑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이 만화는 1990년대에 그려졌습니다). 2000년대 첫머리쯤인가, 나라안에 있는 ㄹ회사에서 ‘라이스버거’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며 내놓았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이웃 일본에서는 진작 만들어서 팔고 있었는데, 한국땅에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가 마치 ㄹ회사에서 처음으로 만든 줄 잘못 알면서 퍼지고 ‘히트상품’으로 뽑히고 했구나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라이스버거’ 하나뿐이겠습니까만, 우리 스스로 우리 슬기를 빛내며 가꾸지 않으면서, 이웃나라 형편을 거의 모르는 여느 사람들한테 속임질을 하는 눈가리고 아옹이 먹혀들던 때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요즈음도 이런 눈가리고 아옹은 그치지 않습니다.


.. “움파♬” “룸파♬” “룸파 디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춤추기) 거리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춤을 추는 25세와 23세의 말 만한 처녀들. 부모님이 ‘결혼은 언제 하니?’라고 물어도 해결책이 없다 … 그것은 무더운 여름날의 일이었다. 그날도 나와 타나카 아츠코는 매우 썩고 있었다. 힘들게 술을 마시고 업된 기분으로 불꽃놀이를 하러 공원에 왔는데. 이게 뭐야! 왜 이래! “제길! 다 죽이자!” “그럴까요?” 공원커플 제거작전 개시! … “쓸데없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의외로 즐겁네♡” “우울하거나 심심할 때 딱이네요♡” ..  (51∼54쪽)


 니노미야 토모코 님은 《GREEN》이라는 만화를 그려서, ‘도시 아가씨가 시골 농사꾼한테 시집 가는 이야기’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노다메 칸타빌레》를 그리며 두루 사랑을 받습니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연속극으로도 만들어지고,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나라안에 소개된 니노미야 토모코 님 만화를 보면, 언제 어디서나 ‘술 마시는’ 이야기, 또 ‘술 마시고 죽는(맛가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이참에 소개되는 《음주가무연구소》(1996년에 낸 작품)는 아예 ‘술 먹고 바보가 되어 해롱해롱 노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데, 《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오는 ‘노다메’는, 술을 안 마시고 있어도 늘 술에 체한 듯하게 살아가는 사람, 바로 그린이 자기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보여주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 “혹시, 술 마실 사람? 맥주 정도라면 괜찮을 거야.” “마실래!” “마실 거야!” “앗! 얘들아, 일은 어쩌고, 철야해야 되는데 맥주라니.”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지는 항상 술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러고도 음주가무연구소장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 나는 음주가무연구소장이었지. 나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에게, 적어도 즐거운 시간을.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말이야, 일하면서 술을 마시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잖아? 맥주 열세 병을 마시고도 이틀 정도 철야는 문제 없었잖아 … “우리 모두의 죽음에, 건배!” ..  (74∼75쪽)


 《음주가무연구소》를 그려낸 1996년이면, 니노미야 토모코 님 나이로 스물일곱. 만화에 나오는 ‘나(니노미야)’는 거의 스물다섯 나이. 일을 하면서(만화를 그리면서) 맥주 병나발을 열석 병을 까기도 했다는데, 가장 많이 깐 숫자가 열셋일 테지만, 여느 때에도 서너 병은 가볍게 깠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나이 스물다섯 때를 돌이켜봅니다. 그때 저는 신문딸배를 하고 있었고, 살림돈이 없는 가운데에도 책 사서 읽으랴, 보도사진 배우며 필름 사서 찍고 찾느랴 몹시 쪼들렸습니다. 이때, 후배라도 만나서 “형, 술 좀 사 줘.” 하는 말을 들을라치면, 주머니에는 천 원 한 장 없을 때도 잦아서 안절부절 못하곤 했습니다. 그나마 한 살 더 먹은 스물여섯 나이에, 신문딸배 일을 마치고 출판사에 들어가면서 살림이 피니, 후배들한테 술 사 주는 일은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라는 곳은 웬만한 일은 술자리에서 풀리고, 또 제가 한 일은 영업부 일이었기에, 날이면 날마다 사람들 만나서 술자리 지키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가난한 출판사들은 지은이 선생님한테 글삯은 제때 못 챙겨 주어도 술은 꼬박꼬박 챙겨 줍니다. 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그때 제가 일하던 곳은 근속 1년을 못 채우면 비정규직이었습니다)한테 달삯은 짜디짜서 한 달에 62만 원을 받으며 일했지만, 선배들이 술 하나는 아낌없이 사 주었습니다. 영업을 다니면 낮에도 술 마실 일이 잦았고, 낮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소주 한 병쯤은 가볍게 까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영업을 뛰는 사람은 술 마시기가 일이 된 셈이니, 만화를 그리는 분한테도 만화 그리며 밤을 새워야 할 때, 옆에 술 한 병 끼면서 그리기가 일이 된 셈인지 모르겠네요.


.. “술 끊자! 자! 일하자, 일!” 나는 인간이 될 거야 … 그러나, 여전히 일은 되지 않고, 시간만 정처없이 흘러 흘러, 어시가 또 한 명 죽어 버렸다. 술이 없어도 악마는 악마인가? … “그럼요, 소장님은 악마예요. 뼛속까지! 그러니까 포기하고 쭉 들이키세요.” “그래요, 오늘은 갈 데까지 가는 겁니다.” “악마를 위해 건배!” 그러나, 아직 포기하지 앟는 나 … “에이, 그럼 안 돼요. 니노미야 씨는 무조건 취해야 돼요.” “왜 취하라는 거예요?” “음주가무연구소장님이니까!” “이미 그만뒀어요! 그런 멍청한 연구소 따윈! 하하하” “뭐 어때요? 멍청하면 멍청한 대로 즐겁게.” … 아아, 술주정뱅이란 정말 악마구나 … 결국, 금주를 해 봤자 평소와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120∼122쪽)


 그렇게 ‘술이여 내 사랑아’ 하던 스물여섯 나이에 한 아가씨한테 눈이 맞았고, 이 아가씨는 저한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으며, 이 말을 들으며 여섯 달 동안 술을 끊기도 합니다. 술자리에는 가면서 술은 안 마시는 미련이로 살았습니다. 동무나 선배들은 술도 안 마시면서 왜 왔느냐고 채근대며 꿍얼댔지만, 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눈 맞았던 아가씨한테 채인 바로 그날부터 다시금 술 마시는 삶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때 비로소 동무와 선배들은 ‘녀석, 이제 제자리로 돌아오는군!’ 하면서 반겨 주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도 참 어리석은 짓이었는데, 조금 덜 마시거나 안 마시는 날을 만들면 되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싶더군요. 그러나, 제 성격에 조금 덜 마시기는 못했을 듯하고, 아예 마시지 않아야 몸이나 마음을 튼튼하게 지킬 수 있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2) 만화니까, 만화 《음주가무연구소》


 장마가 아닌 무더위로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집니다. 요즘 같은 날씨이던 가난한 신문딸배였을 때는 보리차를 잔뜩 끓여 냉장고에 가득 채워서 끊임없이 마셨습니다. 출판사에 들어가 영업 일을 하던 때에는 낮에도 일터 아래층에 있는 구멍가게에 가서 깡통맥주 큰것 둘을 사서 한숨에 들이키고 일했습니다. 나중에 편집부로 자리를 옮기고부터는 낮에 술을 댈 수 없었습니다. 더위를 꾹꾹 참고 저녁에 풀어냅니다. 아무런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 몸으로 살아가는 지금, 너무 더운 날이면 동네 구멍가게로 달려가서 보리술 한 병 사서 밥을 안주 삼아서 마십니다. 이렇게 한 병 마시고 잠깐 드러누워서 숨을 돌린 다음, 번쩍 일어나 낯을 씻고 빨래 한두 점을 한 다음 웃통을 벗은 채 옥상마당에 나와 빨래를 널고 기지개를 켜며 해바라기를 하면 제법 시원합니다. 그렇다고 더위를 이겨내지는 못하지만, 낮에 마신 보리술 한 병은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아 주고, 무너지려는 몸을 붙잡아 줍니다.


.. “오늘 말이야, 엄청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뭔데, 대멀?” “거래처 중역이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인데, 하도 얄밉게 굴길래 그만 꽃병으로 내리쳤어. 그래서 10억 손해 봤지롱♡” ..  (209쪽)


 저녁까지 어찌어찌 버틴 다음, 저녁밥을 들면서 보리술 한 병이나 두 병을 걸치기도 합니다. 두 병까지 하면 너무 배부르거나 힘들고, 꼭 한 병이 알맞다고 느낍니다. 모자란 듯하면서도 넘치지 않고, 조금 더 하고 싶지만, 이만큼만 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배를 슬슬 쓰다듬으며 책 하나를 끄집어내어 펼칩니다. 꼭 한 병만 마신 날은 한 시간 남짓 책을 읽다가 잠들 수 있는데, 두 병을 마신 날은 삼십 분 책을 들기에도 벅찹니다. 가게술은 이렁저렁 들이켜도 집술은 다르더군요. 집술로 한 병만 마시면 씻고 빨래하고 책 읽고 잠깐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할 수 있지만, 두 병이 되면 빨래하면서도 힘들고, 방바닥 훔치면서도 ‘아이구, 오늘은 걸레질 쉬고 싶네’ 하는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스물부터 스물아홉까지 젊은 날 너무 많은 술을 몸속에 넣었다가 빼낸 탓에 서른넷이라는 나이에도 몸이 고단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오래 즐길 수 있는 술을, 한창때 맛도 안 느끼면서 퍼부은 탓에, 좀더 맛깔스럽게 술을 즐기지 못하고 입가심으로 끝내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 “난 이제 끝났어!” “나도 끝이야!” “나도♡” “오늘은 몸이 좀 무거워서.” “난 그만 할래♡” “좋아, 그럼, 한잔 하러 갈까?” “아얏호, 기다리고 있었다구요!” ..  (240쪽)


 만화 《음주가무연구소》는 ‘음주가무연구소’ 이야기와 ‘한잔 하러 갈까’ 이야기에다가 ‘우리, 결혼했어요’ 이야기를 묶습니다. 모두 만화쟁이 니노미야 토모코 님이 스물다섯 안팎이던 때 삶이 담깁니다.

 그래서 만화책을 신나게 처음부터 끝까지 후딱 읽어내면서 궁금해집니다. 니노미야 토모코 님은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들었는데, 요즈음은 술 마시기를 어떻게 즐기고 있으신지. 지금도 병나발을 불면서 밤샘일을 하고 있으신지. ‘먹고 놀다가 죽자’라는 음주가무연구소장 다짐을 이어나가고 있으신지. 젊은 날과 달라졌다면 어떤 모습이 달라졌는지. 이런 이야기를 지금 형편에 맞게 또 한 번 그려 볼 마음은 있을는지.


.. “어떡하지, 마감 대문에 드레스 보러 갈 시간이 없는데.” “걱정하지 마. 너무 신경쓸 필요 없어. 도쿄에 가면 널린 게 드레스숍이잖아.” “그런가?” “그럼!” “그렇지.” 그리고 결혼식 3일 전 … “저, 죄송합니다. 이 드레스 지금 당장 필요한데요, 살 수 있을까요?” “네엣? 지금 당장은 좀, 저희 드레스는 모두 예약주문제라서요, 빨라도 한 달 정도 걸리거든요. 그런데 식은 몇 개월 후에 올리시나요?” ‘뭐시라고라?’ ..  (260∼262쪽)





 우리 나라에서도 술 마시는 사람들 이야기가 만화책으로 몇 번 나왔습니다. 먼저, 이상무 님이 그린 《포장마차》(자유시대사,1988). 그리고, 이은홍 님이 그린 《술꾼》(사회평론,2001). 다음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송채성 님이 남긴 《취중진담》(서울문화사,2001∼2002).

 《포장마차》는 가게술을 마시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 한잔에 눈물과 웃음과 기쁨과 슬픔을 쥐어짜내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보여줍니다. 《술꾼》은 말 그대로 ‘술꾼’ 같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취중진담》도 말 그대로 ‘술 들어간 몸에서 속에 감추어둔 생각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고 보면, 《음주가무연구소》는 말 그대로 ‘술 퍼마시고 마음껏 놀자’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꾼다운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술 만화는, 꾼다운 만화다워 반갑고, 여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눈물과 아픔을 보여주는 술 만화는, 말 못하는 이야기를 꽁꽁 묻어둔 채 홀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만화로 반갑습니다. 서민 삶을 꾸밈없이 드러내어 보여주는 술 만화는, 서민들이 값싼 술 한잔에 이렇게 시름을 달래고 고단함을 씻어내며 조그마한 꿈 하나 품는구나 하고 헤아려 보게 해 줍니다. 그리고, 즐거우니 더 즐겁게 놀고 괴로우니 괴로움 떨쳐내고 놀자는 만화는, 어떤 일을 겪거나 부딪히게 되어도 앙금을 털어내고 홀가분해지자는 마음으로 맞아들일 수 있어 반갑습니다. 그러나 술맛을 모르는 이한테는 따분할 만화로 비춰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술을 즐기더라도 몸을 더 헤아려서 살짝살짝 드시는 분들한테는 좀 꺼려질 수 있을 테고요. (4341.7.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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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그 예술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이길진 옮김 / 신구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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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건호 님이 우리 말로 옮긴 책은 판이 끊어졌기에, 신구문화사 판으로 유통되고 있는 책에다가 이 글을 붙입니다. 아무쪼록 신구문화사 판은 꾸준히 읽힐 수 있기를...)





- 책이름 : 한민족과 그 예술
- 글쓴이 :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 옮긴이 : 송건호
- 펴낸곳 : 탐구당(1976.3.20.)



 야나기 무네요시 님 책이 우리 나라에 몇 가지가 있는가 하고 더듬어 봅니다. 얼마 앞서 나온 《수집이야기》(산처럼,2008)는 당신이 손수 쓴 글입니다. 지난해에 나온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 굴》(지식산업사,2007)은 정일성이라는 분이 쓴 비평입니다. 《조선과 그 예술》(신구문화사)이 2006년에 새 번역으로 나왔고, 일본사람 나카미 마리라는 분이 쓴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효형출판)이 2005년에 나왔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미의 법문》(이학사)은 2005년에, 《조선공예개관》(동문선)은 1997년에, 《다도와 일본의 미》(소화)는 1996년에, 《조선을 생각한다》(학고재)는 1996년에 나왔습니다. 그 사이, 야나기 무네요시 님을 비평하는 책으로 《이데카와 나오키-인간 부흥의 공예》(학고재,2002)와 《이인범-조선예술과 야나기 무네요시》(시공사,1999)가 나왔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예전 책을 살피면, 1970년대 첫머리부터 1980년대 첫머리까지, 몇 가지 야나기 무네요시 님 책이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한국과 그 마음》(지식산업사,1974)이라든지, 《공예문화》(신구문화사,1976)라든지, 《광화문의 마음》(소금,1980)이라든지 하면서.

 짤막짤막하게 읽히는 글은 많고, 교과서에서도 야나기 무네요시 님을 다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나기 무네요시라고 하는 한 사람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두루 돌아볼 만한 글이나 책은 마땅치 못합니다. 또한,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이 바라본 ‘일본 사회와 문화’ 이야기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976년에 나온 《공예문화》하고 1996년에 나온 《다도와 일본의 미》에다가 2005년에 나온 《미의 법문》 세 권이, 모자라나마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돌아보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야나기 무네요시 님은 1910년에,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實篤)’라는 분하고 ‘시가 나오야(志賀直哉)’라는 분과 《시라카바(白樺)》라는 문예잡지를 엮었다고 합니다. 1961년에 ‘무샤고오지 사네아쓰 인생론집(이때는 ‘무샤고오지’라고 적혀서 나왔습니다)’ 여섯 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분이 쓴 《석가의 생애와 사상》(현암사)이 1963년에 나오기도 했고, 그 뒤로 이분이 쓴 불교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몇 가지 나왔습니다.


.. 일본에는 아직도 옛날의 식민주의적 잔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우리를 업신여기거나 재진출을 꾀하는 층이 있음에 비추어, 그들에게 저자세로 영합하는 친일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 한편 일본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두 나라의 참된 우호를 위해서는 실로 우리 민족을 이해하고 협조를 아끼지 않는 양심적 인사들이 많다는 점에서, 일본을 무조건 증오하고 배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일본의 대한 태도에 있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환영하고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분명히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  (옮긴이 말)


 고작 스무 해밖에 안 된 일이지만, 제가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이름을 처음 듣던 때,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짙게 들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이분을 가르치는 교사들 목소리에는 ‘조선을 이해한 사람’인 한편, ‘조선 예술을 한쪽으로 얽매어 놓은 사람’ 두 가지였습니다. 저로서는 교사와 교과서가 말하는 이 두 가지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을 이해한 사람’으로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을 들면서, 정작 ‘조선을 이해한 조선사람’은 누가 있었는가를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고유섭도, 이능화도, 백남운도, 전형필도, 조자용도, 예용해도 말하지 않았을 뿐더러, 띄엄띄엄 이름은 말해 주었어도 이분들 책과 발자취는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 다 저 혼자서 헌책방을 돌며(새책방에서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찾아낸 책을 옥편을 뒤져 가면서 읽으며 알아갈 뿐이었습니다.

 나라안에서 야나기 무네요시 님 이야기가 나오는 모습을 헤아리면, 이분 책이 좀더 낱낱이 여러 갈래로 옮겨졌어야 할 텐데, 참 보잘것없을 만큼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번역된 책도 제대로 읽힌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물며, 나라안에서 문화를 하니 예술을 하니 뭐를 하니 하는 사람들 가운데 고유섭, 이능화, 백남운, 전형필, 조자용, 예용해 같은 이름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되겠으며, 책이나마 한두 권 뒤적여 보기라도 했을는지요. 게다가 이분들 책은 하나같이 판이 끊어졌거나, 지나치게 비싸게 묶여서 쉬 찾아 읽기 어렵게 되어 있거나, 옛날 한문투 글월을 요즈음 말투에 알맞게 풀어내지 못하곤 합니다.


.. 부끄러운 이야기이나, 역자는 우리 민족의 예술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고 큰 관심도 없는 일개 무식꾼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번 유종열 씨의 글을 통해 비로소 눈을 크게 뜨게 된 것은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8ㆍ15 해방과 독립 후 만약 뜻있는 인사라도 있었으면, 그를 한 번쯤 이 땅에 초청함직도 했었으나, 6ㆍ25 등 민족적인 불행이 거듭되는 가운데 사랑하는 민족이 바다 건너에서 전란 속에 신음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선의 예술’의 나라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1960년 73세를 마지막으로 영면의 객이 된 것은 생각할수록 애석한 일이다 ..  (옮긴이 말)


 ‘조선 예술을 한쪽으로 얽매어 놓은 사람’이라는 목소리, 또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 독립을 바라지 않았다’는 목소리는 어느 한편으로 옳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또 곰곰이 헤아릴 대목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목소리를 내는 우리들로서는 ‘우리 스스로 이 나라가 참된 독립을 바란다고 할 때, 참된 독립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하나와, ‘우리가 참 아름다움과 기쁨을 찾아서 가꾸어 나갈 우리 삶과 문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두 가지를 먼저 슬기롭게 풀어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식민지가 아닌 2008년 오늘날 야나기 무네요시를 이야기한다면 어떤 뜻에서 이야기를 하는가 곰삭여야 하며,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땅과 사람과 삶을 얼마나 가까이에서 살갗으로 느끼면서 펼쳐내고 있는가를 되새겨야지 싶습니다. 나라안 사람이 문화와 예술을 한다고 할 때에도 ‘잘못 보’거나 ‘엉뚱하게 보’거나 ‘권력자 입맛에 맞게 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목소리와 눈길을 한 자리에 놓고서 야나기 무네요시를 받아들이거나 따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제가 야나기 무네요시를 읽는 뜻은, 이분 책에 여러모로 아쉬움이나 모자람이 있기도 할 터이나,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고맙게 새길 수 있고, 모자람은 모자람대로 제가 채워서 익히면 되고, 고마움은 고마움대로 잘 받아먹으면서 이 땅에서 튼튼한 한 사람으로 살아갈 길을 곱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꼭 차례를 두어야 하지는 않겠지만, 야나기 무네요시를 읽는다고 할 때에는, 《공예문화》와 《다도와 일본의 미》와 《미의 법문》을 먼저 읽은 다음, 《조선과 그 예술》하고 《조선을 생각한다》를 읽어야지 싶습니다. 이분은 조선 문화와 예술‘에도’ 마음을 쏟은 사람이지, 조선 문화와 예술‘에만’ 마음을 쏟은 사람이 아닙니다. 깜냥이 깊다면 깊다고도 할 터이나, 깜냥이 얕다면 얕은 우물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앞뒤를 살피고 생각깊이를 돌아보며 발자취를 더듬어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미처 넘지 못한 울타리라 한다면, 이 울타리가 무엇인지를 우리 나름대로 좀더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우리 스스로 갇힐 수도 있었을 울타리는 남김없이 허물거나 훌쩍 뛰어넘으면서, 우리 문화와 예술을 껴안고 사랑할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그나저나, 1976년에 탐구당에서 펴낸 손바닥책 《한민족과 그 예술》은, 1975년에 〈동아일보〉 편집국장 자리를 스스로 물러난 송건호 님이 우리 말로 옮겼네요. 회사에서 후배 기자를 자꾸자꾸 억지로 내쫓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기꺼이 사표를 낸 송건호 님은, 그 뒤 외국어대와 국민대에 강의를 나갔고, 한양대에서도 강사로 일합니다. 대학 강사로 일할 때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때 부지런히 책을 써내었습니다. 어린이 위인전을 쓰기도 했는데, 이처럼 나라밖 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일도 하셨군요. (4341.7.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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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관찰 일기
클레어 워커 레슬리.찰스 E. 로스 지음, 박현주 옮김, 최재천 감수 / 검둥소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자연뿐 아니라 삶터까지 망가뜨리는 우리들인데
 [잠깐 읽기 7] 클레어 워커 레슬리+찰스 E.로스, 《자연 관찰 일기》



- 책이름 : 자연 관찰 일기
- 글ㆍ그림 : 클레어 워커 레슬리, 찰스 E.로스
- 옮긴이 : 박현주
- 펴낸곳 : 검둥소(2008.5.21.)
- 책값 : 2만 원



 (1) 한국땅 도시에 남은 자연은 골목길


 옆지기와 함께 동네 골목길을 거닐 때, 꽃그릇 소담스레 가꾸고 있는 집 앞에 오래도록 머물곤 합니다. 잠깐 쭈그려앉아서 꽃잎을 만지기도 하며, 꽃 가까이 얼굴을 내밀어 냄새를 맡기도 합니다. 옆지기는 “여기에서 그림 그려도 좋겠다”고 말하고, 저는 ‘그 자리에서 여러 모습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다음에 이 앞을 다시 지날 때면 또 한 번 사진을 담습니다. 겨울날, 꽃그릇이 텅 비었을 때부터 봄날, 새싹이 돋을 때와 여름날, 차츰 줄기가 물이 오를 때에다가 가을날, 잎이 지고 떨어질 때까지, 네 철에 따라 같은 골목을 오가며 꽃을 구경하고 느끼고 사진으로 담습니다.


.. 땅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설사 부분적으로 포장이 되어 있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라. 그리고 개체들에 가까이 다가가라. 그러면 그곳에서 나뭇잎, 꽃, 곤충, 바위, 혹은 지렁이 똥을 손쉽게 관찰할 수 있다 ..  (50쪽)


 처음 골목마실을 할 때에는 꽃그릇에 그렇게까지 눈길을 두지 못했습니다. 아니, 눈길을 안 두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어릴 적 뛰놀던 골목이 어디였을까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지난날과 오늘날 얼마나 바뀌거나 그대로인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옛동무가 아직도 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했고, 천천히 거니는 우리를 알아볼 옛이웃이 아직 있나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골목길에 골목꽃이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있었건만, 발걸음을 멈추고 지긋이 바라보고 마음에 담을 줄 몰랐어요.

 어쩌면, 지난 몇 해 사이 뺑소니 자전거 사고 때문에 팔다리가 다쳐서 자전거도 많이 망가지고 몸도 여러모로 다치지 않았더라면, 인천에서 서울로, 또 인천에서 수원으로, 또 인천에서 목포로 부지런히 자전거로 내달리기만 하며 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거님길과 골목길은 자전거로 내달리기에 알맞지 않으니, 자전거 타기만 즐긴다면 자동차 달리는 찻길로 똑같이 달렸겠지요. 그러면서 더더욱 골목빛깔과 골목맛과 골목냄새는 못 느끼었지 싶어요.

 외려, 자전거를 타기 힘든 몸이 된 보람이라고 할까요. 두 다리로만 걸으며 돌아다니게 된 뒤로, 자전거로는 안 갔을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고, 까마득한 계단골목을 거닙니다. 손수레 하나 지나갈 틈이 없어서, 이 골목에서 사는 분은 짐을 옮길 때마다 애먹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골목집 사람들은 집옮기는 일이 드뭅니다. 재개발이라 하며 쫓아내기 앞서까지는 한 집에서 오래오래 머뭅니다. 한 집에서 서른 해를 살고 쉰 해를 사니, 구태여 골목이 넓어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볼일을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가면서 보시니 굳이 자동차가 안 들어와도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살고 있으며 다니고 있는 골목 문화는, 우리들 맨몸뚱이로 가꾸는 삶터에서 시나브로 일구어 왔구나 싶더군요. 대단한 사람들이 들여다보아 주지 않아도 되는 삶터이고, 이웃사람과 오순도순 나누면 넉넉한 삶터인 한편, 이웃사람이 자주 놀러오지 않아도 스스로 즐거워서 일구는 삶터입니다.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한 동네 어느 틈바구니에 한 포기 두 포기 풀이 돋으면서 이윽고 풀밭을 이루게 되듯, 개발업자와 공무원이 건드리지 않으면 골목사람 스스로 골목길을 살뜰하게 아름답게 손질하고 보듬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옮겨다니는 동네하고, 사람들이 거의 옮겨다니지 않는 동네는, 몇 분만 걸어 보면 금세 알겠더군요. 토박이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동네에는 어디에나 골목골목 꽃그릇이 가득 놓여 있습니다. 그닥 크지 않은 플라스틱통에 나무를 심어 기릅니다. 가로세로 1미터 될락 말락 한 흙땅에서 감나무와 앵두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우람하게 자라서 스무 해도 서른 해도 야무진 열매를 맺는 모습을 봅니다. 돈 주고 사먹는 감이 아닙니다. 기나긴 세월을 날마다 물을 주고 북을 돋우고 거름을 내면서 가꾼 감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먹습니다.




.. 종종 스케치는 사진으로는 포착이 불가능한 것들을 포착할 수 있게 해 준다. 자신이 관찰한 것들에 색다른 확실성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 단순하건 복잡하건 하루에 한 가지씩 비범한 이미지를 찾아보자.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쓸 수 있을 때까지 마음속에 간직한다 … 내 일기는 내 삶과 내가 사는 곳을 반영한다 ..  (89, 99, 116쪽)


 날마다 골목마실을 하면서 고마운 사진을 얻습니다. 당신들이 온삶을 바쳐서 땅에 기대어 살아온 손자취와 발자취를 고맙게 사진 한 장 찍으며 얻습니다. 이 모습을 저는 사진으로 담습니다만, 좀더 긴 시간과 품을 들여서, 걸상도 갖다 놓고 느긋하게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을 그리면서 골목집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세상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면, 그림에 담는 멋과 깊이는 한결 그윽하고 멋스럽지 않으랴 싶어요.

 다른 사람보고 하라고 하기보다, 저부터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 들고서 작은 걸상 마련하여 앉은 다음, 골목집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본다면, 사진찍기와는 사뭇 다른, 또 사진찍기로는 미처 못 보던 모습까지 보는, 여기에다가 골목집 사람들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까지, 그림예술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 하루에 10분을 일기에 투자하면 봄이 얼마나 빠르게 다가오는지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 여름이면 세상은 풍요로워지고 생명으로 가득 채워진다. 모든 것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몇몇 새로운 장소들을 체험하기도 하고, 고향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다른 종류의 생명들을 관찰할 기회가 올 수 있다 … 우선 마을 주변을 산책하면서 가을의 징후들을 관찰하고 그려 보자 ..  (119, 136, 155쪽)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고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란다면, 손아귀 힘을 길러서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쥘 수 있으면, 세 식구가 걸상 하나씩 들고 골목마실을 하다가 한 자리씩 잡고서 나란히 앉아 골목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꿈을 꾸어 봅니다. 또는, 옆지기는 그림을 그리고, 아이는 놀고, 저는 가까운 이웃 골목을 두루 돌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요.




 (2) 《자연 관찰 일기》라는 좋은 길잡이책을 덮으며


 우리 집과 이웃으로 지내는 앞집 헌책방 아주머니는 ‘요새 들어 더더욱 헌책방 하기 싫어진다’는 말씀을 하곤 합니다. 저라도 힘겨워서 그만두고픈 생각이 하루에도 수없이 들리라 봅니다. 날이 갈수록 책읽는 사람이 줄기도 하지만, 책읽는 사람이 줄어드니까 ‘읽히는 책’이 줄고, 읽히는 책이 줄어드니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이 줄어듭니다. 사람들 책읽는 매무새는 ‘다양한 책 살펴 읽기’가 아니라 ‘이름난 책 너도나도 따라 읽기’에 가까워서, 헌책방에 들일 수 있는 책 가짓수가 줄어든다기보다 판에 박히게 됩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우리 사회 틀거리를 뜯어고치지 않거든요.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핑계로, 잘못된 틀거리를 바로잡지 않는 가운데, 올바른 틀거리를 북돋우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입시지옥을 나무라지만, 몸으로는 입시지옥 한 배를 탑니다. 썩은 정치꾼 하나를 꾸짖는 입은 있지만, 비슷비슷한 정치꾼한테 표를 주거나 아예 투표권을 버리는 우리 손입니다. 생각있다는 사람들조차 1회용품 쓰기를 줄이지 않고, 자동차 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물 한 방울 적게 쓰는 매무새는 바랄 수도 없습니다. 밥그릇 깨끗하게 비우기는 운동이 아니라 삶이어야 하는데, 삶이 삶답게 제자리를 잡고 있지 못한 가운데 정치싸움에 지나치게 쏠려 있습니다.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 책읽는 매무새는 몇몇 갈래에 너무 매달려 있는 나머지, 더 넓고 깊게 껴안지 못합니다. 쓰레기를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올바르기는 합니다만, 우리 삶은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내놓을 쓰레기가 없도록 가꾸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날마다 치솟는 기름값이 걱정이라서 기름값이라도 벌어야 한다지만, 기름값을 번다고 하면서 몸을 바치고 시간을 들여서 하는 일이란 어떤 일입니까. 중고등학생한테 과외를 시키고 돈을 벌면서 사회운동을 하지는 않습니까. 마치, 미국 여느 시민들이 군수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자기 생계를 지켜야 한다고 둘러대듯이.


― 자연 관찰 일기 쓰기는 자연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을 마주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고. 막상 지렁이를 그리고 배우면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은 더 이상 지렁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28쪽)
― 자연 관찰 일기에 풍경을 멋지게 담으려고 하지 말라. (236쪽)
― 살아 있는 동물을 그리면 동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241쪽)
― 늘 그렇듯이 학생들은 그리기를 하면서 숲에 아주 익숙해진다. (253쪽)


 삶을 바꾸지 않으면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드높은 생각과 거룩한 생각을 훌륭한 책을 읽고 뛰어난 어른이나 스승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로 지금 모습을 바꾸어 내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느낍니다. ‘생활철학’이나 ‘생활투쟁’이 아닌 ‘삶’이라고 느낍니다. 지금 자기 삶을 다부지게 붙잡지 못하는데, 무슨 사회운동이 있고 무슨 교육운동이 있으며 무슨 촛불모임이 있겠습니까.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서 크게 솟구치는 물결은 뒤잇는 더 큰 물결에 잡아먹힙니다.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기 마련이고, 내려갔으니 올라갈 구멍을 찾게 됩니다. 여태 우리 사회는 우리 삶을 밑바닥으로 깔아뭉개며 짓이기고 있었기에, 응어리진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터져나오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목소리는 왜 터져나왔을까요. 큰 발판이 있어서 터져나오게 되었습니다만, 큰 발판을 넘어서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 곪아 있는 부스럼과 고름과 생채기를 볼 수 있습니까.


.. 우리들 대부분은 도회지에서 산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환경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버리기 쉬운 곳이 바로 도시 지역이다.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햇살의 따스한 온기를 느껴 보는 것도, 혹은 지붕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는 걸 실제로 알아차리는 것도 잊어버린다. 농촌 지역에 살거나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조차 그저 잠시라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되어 본다거나 관찰해 볼 시간을 내는 걸 잊어버린 채 차를 들락거리느라 달음질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  (39쪽)




 ‘우리를 둘러싼 사랑스러운 자연 삶터를 눈여겨본 다음, 그림으로 담아내면서 자기 삶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이야기책 《자연 관찰 일기》를 읽는 동안, 제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또는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미국 나름대로 걱정이 있고, 유럽에서는 유럽 나름대로 근심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일본 나름대로 끌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미국 유럽 일본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대껴야 하는 걱정도 근심도 끌탕도 없습니다.

 식민지를 두고 식민지를 만들고 식민지를 갉아먹으면서 늘리고 키운 살림살이로, 문화를 한다며 예술을 한다며 창작을 한다며 기부와 봉사를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네들입니다.

 옐로우스톤은 어마어마한 넓이로 국립공원이 되지만, 한국에서 북한산과 지리산은 이름뿐인 국립공원입니다. 허울은 좋은 국립공원인데, 나라님과 나라사람 어느 누구도 국립공원을 아끼거나 지키거나 사랑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가꾸며 보듬는 자연 삶터는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돈을 들여서 새로 짓고 만드는 수목원과 공원만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연 삶터와 목숨붙이를 이야기하는 그림쟁이들이 있으며, 자연 그림책과 도감은 꾸준하게 세상에 나옵니다. 그림책과 도감에 나오는 목숨붙이를 보기란 아주 어려운 노릇인데. 자연 목숨붙이가 깃들일 자연 삶터는 아파트 재개발과 공장터와 새 찻길터로 무너지고 있는데. 끙끙 앓는 목소리로 숨막혀 울고 있는 이들이 한쪽에 버젓이 있는데.


.. 일기 쓰기는 어떤 장소에 대한 진정한 감각, 그리고 생명에 대한 온전한 시야의 개발을 향해 떠나는 개인적인 여정이 될 수 있다 ..  (255쪽)


 자연 삶터와 목숨붙이를 그윽히 바라보고 살피면서 그림일기를 써 나가려는 분들한테는 훌륭하게 도움이 될 《자연 관찰 일기》입니다. 풋내기이든 새내기이든, 또는 퍽 익숙하다고 할 만한 사람한테까지도 좋은 길잡이가 되는 《자연 관찰 일기》입니다. 미술대학에 가는 어린 학생이 많고, 미술학원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많으며, 그림그리기로 밥벌이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 형편을 돌아본다면, 이 모든 사람한테 제법 도움이 될 《자연 관찰 일기》입니다. 더구나, 골목길 꽃그릇과 텃밭을 그리는 데에도 알뜰살뜰 도움이 되는 《자연 관찰 일기》예요. 이처럼 나긋나긋하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펼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붉은여우 한 마리가 모래언덕에서 나와 포장도로를 건너다 잠시 멈춰 서서 우리를 지켜보더니 습지대를 가로질러 간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번 바라본다.(120쪽)”는 말처럼 뭇 목숨붙이를 사랑하고 돌보려는 따순 마음결까지 느낄 수 있는 《자연 관찰 일기》입니다. 그렇지만 책을 처음 펼치던 때부터 덮는 이때까지 숨이 막힙니다. 제가 꿈을 꾸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저는 배가 고프고 울고 싶습니다. (4341.7.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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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동화 보물창고 4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최혜란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56 ― 지식은 많으나 빛줄기는 없는 가난뱅이 한국
 : 구드룬 파우제방,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 책이름 :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 글 : 구드룬 파우제방
- 그림 : 최혜란
- 옮긴이 : 함미라
- 펴낸곳 : 보물창고(2005.1.25.)
- 책값 : 9500원



 (1) 서울사람


 사진기와 렌즈를 잃어버렸습니다. 잊고 있었던 우체국 보험을 손해를 무릅쓰고 깬 다음, 어머니와 형한테 도움을 얻으면서 겨우 새 사진기와 렌즈를 장만합니다. 인천에서는 물건을 살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서울로 나들이를 갑니다. 혼자 자전거 타고 후딱 다녀오려고 했으나, 옆지기가 함께 가자고 해서 전철을 타고 갑니다. 누가 보아도 배가 불룩 튀어나온 옆지기는 걸어다닐 때에는 그럭저럭 낫지만, 전철처럼 시끄럽고 흔들리고 딱딱한 자리에 앉을 때면 몹시 고달파 합니다. 더구나, 전철이나 버스라는 대중교통은, 이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이 걱정없이 다니도록 하는 데까지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광고방송이 나오고, 눈 둘 데가 없도록 광고판으로 어지러운 한편, 쉴새없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옮겨다니면서 밀치는 사람, 시끄럽게 전화를 받고 거는 사람, 다리 쩍 벌리고 앉는 사람, 내리지 않으면서 문가에 버티고 있는 사람, 내리면서 뒤에서 미는 사람, 앞에서 먼저 타겠다고 헤치는 사람 …….

 우리들은 모두 어머니 배속에서 열 달을 머물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어느 누구도 안 소중한 사람이 없고, 어느 누구도 사랑 안 받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목숨 하나 소중하다고 느끼는 만큼 이웃 목숨 하나도 소중하다고까지 깨닫거나 헤아리는 사람은, 어인 일인지 퍽 드뭅니다.


.. 우리는 많은 집에 지붕이 없어진 것도 알게 되었다. 다락방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누나와 내가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서 있을 때였다. “롤란트, 너 저 비명 소리 들리니?” 누나가 물었다. 물론 들렸다. 나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시내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처참한 소리였다. 그러나 난 모든 것이 마치 꿈속같이 느껴졌다. 그림처럼 많은 꽃들이 있던 작고 아늑한 도시 쉐벤보른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빨리 악몽에서 깨어나야 할 것 같았다 ..  (31쪽)


 볼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촌에서 인천으로 가는 터라 신도림역을 거치게 됩니다. 앞차를 코앞에서 놓치고 한참 기다렸다가 타서 그런지, 북적거리는 칸에서 우루루 내리고, 우루루 내린 사람은 이윽고 들어오는 ‘동인천 가는 급행’을 타려고 우루루 뛰며 계단을 오릅니다. 뜀박질로 계단을 오르는 사람은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을 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습니다. 다른 이가 자기를 치고 지나가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프지 않을지 모릅니다. 자기도 그이를 치고 앞지르거나 다른 이를 치고 앞지르면 될 테니까요.

 하늘이 도와주셨는지, 꽤 많은 사람이 우루루 몰려서 탔는 데에도 조금 빈자리가 보여서 우리가 살짝 마지막으로 탑니다. 이번 차를 보내고 뒷차를 탈까 생각했는데.

 등에 진 가방을 내려서 짐칸에 올려놓습니다. 몸이 홀가분해지기는 했으나, 어린 목숨을 부여안고 있는 옆지기는 힘들어 합니다. 한참 서서 가다가 조금 자리가 비니, 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앉는다고 아기엄마 몸이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쭈그려앉을 때가 한결 낫습니다. 또, 자리에 앉는들, 좁은 틈바구니에서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으니 더 고달플 뿐입니다. 모로 엎드릴 수 있다면 모르되, 전철 걸상은 너무 좁을 뿐더러, ‘노약자나 임산부 지정석’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어르신한테도 아기엄마한테도 아늑하지 못합니다.


.. 아빠는 빵과 우유를 구하러 시내에 나가 보았지만,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살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갈기갈기 찢어지고 불에 탄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선뜻 구호품을 건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52쪽)


 종로3가에서 사진관에 들른 다음 270번 시내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갈 때에는, 용케 문낮은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문낮은 버스는 서는 자리가 조금은 넓어서 몸이 무거운 사람한테는 그럭저럭 아늑합니다. 버스기사가 여느 버스보다 천천히 몰아서 고맙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빨리 달리기는 빨리 달렸고, 멈출 때에도 확 멈춥니다. 빠르기를 좀더 늦추어도 괜찮을 테고, 다시 움직일 때에도 좀더 느긋할 수 있을 텐데.


.. 나는 누나의 모습에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곧 나는 비명을 지른 것을 후회했다. 내가 놀랐던 것이 누나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몸 색깔이 변하고 반점이 나타난 다음, 누나는 죽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아주 조용하게. 누나는 그냥 그렇게 가 버렸다 …… “운동화 좀 벗겨. 태워 버리기엔 너무 아깝구나. 이제 운동화 같은 건 구할 수도 없는데. 나중에 네가 신어도 되겠어.” 한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  (112쪽)


 버스에서 내릴 때, 앞자리에서 내리는 사람과 뒷자리에서 내리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뒷자리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저희만 먼저 내리려고 제 앞으로 끼어들고, 어느 한 사람도 잠깐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앞자리와 뒷자리에서 한 사람씩 내릴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사람만 바보입니다.

 신촌 나들목에서는 건널목으로 건너가기가 까다로워서 땅밑길로 들어갑니다. 옆지기가 뒷간에 들른다고 합니다. 조금 뒤 나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쓰겠다고 합니다. 하긴. 신촌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뒷간은 고작 몇 칸밖에 안 되고. 그러고 보면 종로3가역도 다르지 않고 동대문역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전철역도 뒷간은 고작 몇 칸만 놓았을 뿐입니다. 게다가 뒷간 찾기는 보물찾기마냥 어렵습니다.


.. “분유가 무슨 소용이 있어?” 엄마가 물었다. “나는 희망이 필요해요. 희망 없이는 아기가 살아서 세상에 태어날 수 없어요.” ..  (158쪽)


 사진기 대리점에 들어갑니다. 미리 부탁한 렌즈를 삽니다. 미리 부탁하는 물건을 사건만, 대리점 사람들이 일을 잘못해서 우리는 그제 왔다가 허탕을 치고 오늘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제때 연락을 해 주지 않아 하루를 버리기도 했습니다. 지지난해에 바로 이곳에서 ‘지난주에 잃어버린 사진기를 사면서 회원등록도 했’으나, ‘입력이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해서 손해까지 봅니다. 입으로는 ‘미안합니다’, ‘그때는 저희가 일하지 않아서’ 하고 말하는 직원들이지만, 속으로도 미안하다고 느끼고 있는가는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놈은 아쉬워하지만, 아쉬움이 없을 사람들로서는 ‘수많은 일처리’ 가운데 하나로만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 사람들은 찾아낸 물건들을 몰래 숨겨 두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온 쉐벤보른 사람들이 통조림을 얻기 위해 온통 난리를 쳤다. 그 가운데 남아 있는 것들이 지금도 인기 있는 교환 물품으로 거래되고 있다. 가장 힘들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서로 죽이기도 했다 ..  (208쪽)


 사진기 대리점을 나와 뒷길로 빠져서 샛골목으로 접어듭니다. 똑같은 서울바닥이고 신촌거리이지만, 샛골목은 퍽 조용합니다. 샛골목에도 우락부락 오토바이를 몰고 우격다짐으로 자동차를 쑤셔대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큰길을 걸을 때보다 낫습니다.

 노고산동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헌책방 앞에 닿습니다. 한숨을 쉬고 땀을 들이고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새로 장만한 사진기로 사진 몇 장 찍어 봅니다. 퍽 오랫동안 손에 익고 길이 들던 사진기가 아니라 어쩐지 낯섭니다. 예전보다 떨어지는 렌즈를 붙이고 사진을 찍다 보니, 느낌이나 맛이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떨어지는 렌즈로 처음 사진을 배웠고, 떨어지는 렌즈로도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담아내 왔음을 떠올립니다. 더 나은 장비를 쓰면 더 낫습니다만, 덜 떨어지는 장비를 쓴다고 하더라도, ‘장비가 있음’에 기뻐하면서, 이 모자란 장비로 펼칠 수 있는 사진을 생각해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2) 인천사람이 벌인 시국미사


 지난 7월 2일, 인천에서도 ‘시국미사’를 열었습니다. 우리 나라 문화재이기도 한 답동성당에서, 인천에서 일하는 신부님 마흔 분 안팎이 모이고, 삼백쯤 되는 신도와 백쯤 되는 여느 사람들이 모여서 미사를 올린 다음, 답동성당부터 동인천역까지 500미터 거리를 느린걸음으로 오가면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에서 이 소식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궁금해서 400원을 주고 사서 펼칩니다. 끝까지 펼치는데 아무런 소식이 보이지 않고, 사설이나 논설에서 한 마디도 안 다룹니다. 그렇다고 인천에서 굵직굵직하게 터지거나 일어나는 소식을 다루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맨끝 사진 한 장 넣어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린 ‘시국미사와 촛불행진’ 기사를 봅니다. 기사에는 신부님이 스무 사람쯤 모였고, 미사를 드린 시민이 이백 사람쯤이라고 나옵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모임을 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을 뿐더러, 인천 쪽에서 크게 촛불모임을 안 한다고 하더라도 부평역이나 인천시청 앞에서 조촐하게 하는 줄 알고 있는데,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에서는 ‘서울 쪽 촛불모임’ 기사도 거의 안 다루지만, ‘인천 쪽 촛불모임’ 기사도 거의 안 다룹니다. 그래도, 이날 미사와 행진 때 둘러보니 사진 펑펑 찍는 기자 분들 꽤 많이 보이던데.


.. “누나, 여기도 전부 오염되었다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죽게 되겠지…….” 유디트 누나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누나, 우리가 죽는 거 상상할 수 있어?” “아니, 아직은 못하겠어.” ..  (44쪽)


 미사를 보신 신부님 가운데 한 분도 말씀을 하셨고, 인천에서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한 분도 말씀을 하셨는데, 두 분은 인천에서 촛불모임을 꾀하기보다는, 전철을 타고 서울로 나들이를 떠나서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함께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주말에 서울에서 크게 촛불모임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때 함께하며 힘을 보태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마땅하고 옳으신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쪽이 시립니다. 틀리지 않고 바른 말씀이라고 느끼면서도, 팔다리 한쪽이 저립니다. 반갑고 좋은 말씀이라고 들으면서도, 두 눈을 질끈 감게 됩니다.


.. “하지만 만약 내가 저 사람들처럼 구걸을 하러 다니면요? 아니, 그게 바로 케르스틴이라면요?” 내가 물었다. “나도 이럴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밉단다. 하지만 너희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을 구해 줄 수는 없잖니?” 엄마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  (57∼58쪽)


 인천에서 이래저래 환경운동을 한다는 분이 앞에 나와서 ‘경부운하’ 못지않게 ‘경인운하’가 큰 골칫거리라면서, 이에 따른 환경파괴와 자원낭비와 끔찍한 재앙이 어떻게 닥치는가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이으려 하는 이명박 대통령 꿈은 아직 삽질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서울과 인천을 이으려 하는 지자체 우두머리 꿈은 일찌감치 삽질을 하며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퍽 문제거리로 기사가 되기도 했는데, ‘서울과 부산을 잇는 물길’과 견주면 ‘서울과 인천을 잇는 물길’은 코딱지만큼으로 여겨지는지, 요사이는 기사가 되어 나오는 소식을 듣기가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워낙 나라 곳곳에 터무니없는 막공사와 날림공사가 넘쳐나다 보니까, 이만한 막공사나 날림공사는 그다지 마음을 안 기울여도 되고, 눈길을 안 두어도 될 만하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민 자유발언’을 해도 된다고 하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가 사는 배다리 골목집 한복판을 꿰뚫어 놓으려고 하는 ‘너비 50미터 넘는 산업도로’ 문제를 이야기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줄 못 느끼면서 내다 버리고 있는 ‘골목길 문화’를 외쳐 볼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 할머니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부모님을 이해해 드려라.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엔 모두들 너무 잘 지내서 아무도 도와줄 필요가 없었지.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돕고 사는 걸 잊어버렸단다. 그리고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면 국가가 맡아서 해결했거든. 그랬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그저 저만 생각하는 거란다. 너희 엄마, 아빠도 바로 정 없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고.” ..  (81쪽)


 아기들 아장걸음과 맞먹을 만큼 느리게 느리게 걸어서 동인천역으로 가는 동안, 또 동인천역에서 길을 거슬러 답동성당으로 돌아가는 동안, 이 길, 지금은 자동차만 다니도록 되어 있는 이 언덕길은 ‘자동차가 없는 사람’한테도 열려 있던 길이었고, ‘자동차가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오가던 길이었음을 떠올려 봅니다.

 신호등이 없던 나라인 중국에 신호등이 생기고, 건널목이 굳이 없어도 되었던 중국땅 곳곳에 건널목이 그려집니다. 차가 다녀도 사람과 섞이며 다녔고, 차가 아무리 바삐 길을 가야 해도 사람 걸음을 헤아려야 했던 문화가 그리 먼 옛날까지가 아니라 가까운 앞서까지 있던 중국이었음을 헤아려 봅니다. 우리 나라도 중국과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하고, 이렇게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은 길 구석 좁은 자리로 내몰릴 뿐 아니라, 그 좁은 거님길 한쪽도 길바닥 장사를 하는 사람들한테 막히고, 길거리 가게에서 내놓는 물건에 막히며, 아스팔트길을 밝히는 거리등불과 전봇대 들한테 막히는 데다가 함부로 세워 놓은 자동차한테 막히는 모습을 맞대어 봅니다.

 우리한테는 무슨 권리가 있는지요. 우리가 져야 하는 의무만큼은 아니더라도, 무겁게 지고 있는 의무 모서리 하나만큼이라도 어떤 권리를 누리고 있는지요. 국방 의무라면서 남정네면 죄 군대에 끌려가서 ‘살인기계 훈련’을 받고 ‘멍텅구리 되어’ 피끓는 젊음을 버린 우리들한테 이 나라는 무슨 평화를 베풀어 주고 있는지요. 직접세보다 무서운 수많은 간접세들이 넘치는 이 나라는 우리들 사회보장과 문화복지와 교육예술에 얼마만큼 돈을 들이고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요. 법은 얼마나 사람을 아끼고 있으며, 규칙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있는지요.


.. 아직 추수할 게 남아 있는 농가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는 콤바인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낫으로 짚단을 베어야 했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낫질이라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터였다. 사람들은 다시 노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큰 낫은 거의 구할 수 없었다 …… 우리는 잎사귀가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사과와 배를 땄다. 자두는 흔들어 떨어뜨렸는데, 설탕이 다 떨어져 조림을 만들 수 없었다. 말려 보려고도 했지만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전쟁도 겪었고, 전쟁 이후의 삶도 다 겪은, 경험 많은 할머니가 우리 곁에 있었더라면! ..  (120∼122쪽)


 시국미사를 이끈 마니산성당 신부님은 “저는 한겨레21을 창간호부터 구독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있는 강화도 마니산성당 마을에는 조선일보 한 가지만 들어와요. 그곳에는 신문이 조선일보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조선일보를 보게 되었는데, 조선일보를 한 여섯 달쯤 보니까 어느새 조선일보 논조에 따라 생각하고 말을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성당에 조선일보를 끊고 한겨레21만 봅니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신부님 말씀이 아니어도 조선일보라는 신문이 사람들한테 끼치는 힘은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사람들 마음을 크게 휘어잡고 움직이는 힘이 있구나 싶습니다. 이 힘이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튼튼하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슬기로운 쪽보다는 어리석은 쪽으로, 아름다운 쪽보다는 밉살스러운 쪽으로, 튼튼한 쪽보다는 더러움에 찌들어 몸을 망가뜨리는 쪽으로 흐르는구나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한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이 큰힘을 슬기로운 쪽에 쏟으면 참으로 나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생각은 허튼 생각인지요. 더 널리 읽히며 사람을 이끌 수 있다면, 이 큰힘을 아름다운 쪽에 바치면 그지없이 기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생각은 꿈같은 생각인지요. 더 깊이 파고들면서 사람들 몸에 스며들게 한다면, 이 큰힘을 사람들 스스로 마음과 몸을 튼튼하게 북돋우도록 모으면 대단히 훌륭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생각은 부질없는 생각인지요.


.. 그러나 아빠에게, 아빠 세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핵폭탄이 터지기 전 여러 해 동안 인류의 멸망이 준비되고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했다고 비난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아빠는 항상 “도대체 우리가 그 문제를 두고 뭘 할 수 있겠니?”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었다. 또 핵무기의 무시무시함 때문에 평화를 보장해 준다는 사실을 지치지 않고 이야기했었다. 아빠에겐 대부분의 다른 어른들처럼 편리함과 안락함이 가장 중요했고, 아빠와 그들 모두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  (216∼217쪽)


 인천시장과 개발업자가 2013년까지 마무리지으려고 하는 어마어마한 ‘인천 갈아엎기’ 재개발과 재생사업을 보면, 성당이나 교회 자리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성당이나 교회를 둘러싼 골목집, 그러니까 성당과 교회를 나가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죄 건드립니다. 학교와 관공서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살림집, 그러니까 학교로 아이들을 보내고 관공서로 민원을 넣으려 찾아가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남김없이 건드립니다. 공장과 전철역은 조금도 손대지 않습니다. 돈없는 사람이 모여 지내는 동네, 그러니까 공장에 일하러 가고 서울로 일하러 가고자 전철을 타야 하는 사람이 사는 집은 어느 곳이나 건드립니다.

 인천시장과 개발업자는 ‘인천 갈아엎기’ 재개발과 재생사업이 돈이 되는 일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하고 푸른사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이 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며,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온지요.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흐르는 돈인가를 따지기 앞서, 우리 삶에서 돈이 얼마나 크거나 아름다운지요. 자본주의 사회라서 돈이 없으면 굶는다지만, 굶지 않으면서 넉넉히 나누며 살아갈 만한 돈크기는 얼마쯤인지요. 우리는 돈버는 일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되고, 돈을 쓰지 않으며 즐기는 놀이는 해서는 안 되는지요.


 (3)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라는 이야기책


 1928년에 체코에서 태어나 남아메리카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구드룬 파우제방’이라는 분은 수많은 이야기책을 써냈습니다. 한국말로 옮겨진 책이 제법 많습니다. 제가 읽은 이분 책을 손꼽아 보아도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 《나무 위의 아이들》, 《그리운 자작나무》,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가 있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이분 책을 살펴보면, 《하느님, 한 번 더 기회를 드릴게요!》, 《엘린 가족의 특별한 시작》, 《산적 학교》, 《두브스키와 거리의 악사》, 《그냥 떠나는 거야》, 《강물소리가 들리니 엘린》, 《구름》, 《통조림 속의 인어 아가씨》 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읽은 책으로 헤아려 본다면, 구드룬 파우제방이라는 분은, 입으로만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분이 아니라, 몸으로 평화사랑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분입니다. 글로만 자연 삶터를 아낀다고 말하는 분이 아니라, 마음을 바쳐 자연사랑으로 살아내는 분입니다. 생각으로만 가난한 이웃을 걱정하는 분이 아니라, 말씀과 몸 움직임을 함께 어우러내어 슬기로운 길을 찾으려고 하는 분입니다.


.. 흰 피부 니콜이 말했다. “비열한 놈! 폭탄이 떨어진 건 당신들 책임이야. 당신들은 아이들이 무슨 일을 겪든지 상관없었던 거야. 중요한 건 당신들이 편하게 사는 거였지. 지금 당신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고, 그건 당신들이 벌인 일이야. 하지만 우리까지 불행에 빠뜨렸어! 뒈져 버려라!” ..  (144쪽)


 말마디마다 뼈가 담겼는데 딱딱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술술 읽히는데 잊히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든 자본주의가 아니든, 한 사람이 사람다움을 추스르면서 삶을 가꾸는 매무새를 다독이도독 손길을 내밉니다.


.. 쓰레기더미 근처에 있는 겨울 호밀을 심은 들을 지나가게 되었다. 가을에, 그러니까 폭탄이 떨어지고 난 뒤에 씨를 뿌린 것이었다. 처음에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녹고 있는 눈 속에 자그맣고 파란 싹이라니, 온 들판을 가득 채운 파란 새싹이라니! 우리에겐 그것이 꼭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황폐해졌는데도 해야 할 일을 해 놓았구나. 믿기 힘든 일이야.” ..  (177쪽)


 어쩌면, 구드룬 파우제방 님은 마흔둘이라는 늦깎이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기르게 되었기 때문에, 당신 아이한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빛줄기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면서, 무지개빛 작품을 하나둘 내놓게 되었을까요. 끔찍한 전쟁통을 겪고, 한겨레(동독과 서독)이면서 남남처럼 나뉘어 으르렁거리던 아픔을 견디어 냈기에, 더 크게 껴안는 어머니품을 작품마다 고이고이 담아내게 되었을까요.

 우리 한국사람들도 식민지를 겪었고 전쟁을 치렀으며 독재를 견디었고 가까스로 선거민주주의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계급과 신분 푸대접은 오래도록 끊이지 않고, 돈과 이름과 힘에 따른 괴롭힘과 따돌림은 여태껏 스러지지 않습니다. 방송은 즐거운 소식과 올바른 이야기를 펼치기보다 상업주의에 찌들거나 물들어 버리고, 끝끝내 권력을 붙잡아 더 큰 잇속을 챙기려는 정치꾼이 넘치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못난 정치꾼을 솎아내거나 털어내는 데에 힘을 들이지 않습니다.


.. 나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읽고, 쓰고,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  (218쪽)


 대학생이 늘고, 유학생이 늘며, 지식과 상식 넘치는 여느 시민이 늡니다. 학교는 넘치고 영어학원과 영어교재는 불티나며 거리마다 양복으로 차려입는 사람이 늡니다. 번쩍거리는 자동차는 기름값이 치솟아도 줄어들지 않는 가운데, 값싸고 작은 집을 새로 짓는 일이란 없이, 비싸고 큰 아파트만 올려세웠다가 스무 해쯤 지나면 허물고 새로 올려세우는 일만 되풀이됩니다. 원자폭탄 피해자도 없는 체코이고 독일이고 남아메리카인데,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라는 문학작품이 태어납니다. 원자폭탄 피해자도 있을 뿐더러, 많은데다가, 원폭 2세 환우도 있고 원폭 3세 환우까지도 있는 한국입니다만, 원자폭탄과 핵개발 문제를 다루는 사랑스럽고 뜻깊고 아름다운 문학작품은 태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른문학으로도, 또 어린이문학으로도. (4341.7.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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