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킬로그램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부터 군대에 가기 앞서까지 내 몸무게는 68킬로그램이었다. 이때 내 몸은 퍽 호리호리했고 어깨와 가슴만 크고 넓었다. 군대에서는 ‘괴물’처럼 살아야 하다 보니까, 군대를 마친 뒤 몸무게가 조금 불었고, 이 몸무게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래도 군대를 마친 뒤 신문딸배를 하면서 살았으니 69∼70킬로그램을 오갔는데, 신문딸배를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간 1999년 8월부터 몸이 꽤 불었다. 몸쓰기보다는 머리쓰기를 많이 하는 일이 되다 보니까, 74∼75킬로그램, 한때 78킬로그램까지 나가기도 했다.
군대에서 80킬로그램이 된 적이 한 번 있는데, 75킬로그램이라는 무게를 넘어가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 여겨졌다. 몸무게만큼 힘은 더 잘 써서 무거운 짐도 너끈히 나를 수 있기는 하지만, 몸은 굼떠서 자전거를 타거나 가방 너덧 개를 몸에 주렁주렁 달고 여러 시간 거닐며 헌책방 나들이를 할 때면 퍽 고달팠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충주 산골짜기에서 일하게 된 2003년 9월 무려부터는 72∼74킬로그램을 오갔다. 가볍지는 않으나 무겁지도 않은 몸무게였고, 이 몸무게는 충주에서 서울로 자전거를 싱 하고 달리면 2킬로그램쯤 빠졌다가, 사나흘 쉬며 몸풀이를 하면 도로 제자리를 찾고, 다시 서울에서 충주로 자전거를 달리면 또 2킬로그램쯤 빠졌다가, 사나흘 느긋이 지내면서 다시 돌아오곤 했다.
충주 살림을 접고 고향마을 인천으로 온 2007년 4월, 3.5톤 짐차로 석 대를 꽉꽉 눌러서 채운 책짐을 실어나르고 무거운 책장을 새로 들이고 책 자리를 새로 잡고 하는 동안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몸무게는 70∼72킬로그램 사이를 오가게 된다. 어느 하루도 몸 홀가분히 쉬는 날이 없으니, 책상맡에 앉아서 글을 쓰는 시간이 열 시간이 넘어간다고 해도 뱃살이 나올 겨를이 없다. 날마다 손빨래를 하고, 방바닥 걸레질을 하며, 밥하기와 설거지를 쉬지 않으니까, 내 몸에 군더더기살은 붙지 않는다. 게다가 틈틈이 자전거 마실을 하지, 서너 시간씩 걸으면서 동네 골목길 마실을 하지, 외려 얼굴이 말랐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올 팔 월 십육 일. 아기가 태어날 무렵. 옆지기와 함께 배앓이를 나누어 하면서 밤잠도 낮잠도 이루지 못하는 가운데 밥해 먹이랴 집 치우랴 무어 하랴 아주 바쁘게 돌아치는 동안 몸무게는 68킬로그램으로 떨어진다. 아기가 태어나고 기저귀 갈랴 빨랴 치우랴 밥하랴 청소하랴, 몸무게가 66킬로그램으로 떨어진다. 눈자위는 푹 꺼지고 눈밑이 꺼매진다.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밥맛을 잃고, 밥을 먹지 못하면서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루에 한 시간 자기도 어려운 가운데 잠깐 드러누워 등허리를 펼라치면, “여보, 벼리가 오줌 누었어요.”나 “여보, 벼리가 똥 누었어요.” 하는 소리.
아이를 막 낳은 어머니가 아기 기저귀를 갈 수 있으랴, 빨 수 있으랴, 더욱이 손수 미역국을 끓여먹을 수 있으랴. 옆에서 지아비 된 사람이 모든 시중을 들어야 한다. 옆지기는 깊은 밤 젖먹일 때를 빼놓고는 새근새근 잠이 들지만, 지아비는 맥주잔이라도 붙잡으면서 잠을 좇으며 기저귀를 갈고 빨고 널고 다림질을 한다.
요 며칠, 일산 옆지기 어머님 댁에 와 있어서, 옆지기 밥해 주는 몫은 크게 덜었다. 어느 만큼 몸이 느긋해지니 마음도 풀어져서, 이른저녁에 일찌감치 눈을 감아 본다. 밤새 잠을 못 잘 테니까.
그러나 한 시간 반쯤 눈을 붙였을까. 아기 오줌 기저귀를 한 번 갈아 받친 저녁 열한 시부터 새벽 여섯 시 삼십칠 분까지 내처 뜬눈으로 보낸다. 새벽 두어 시쯤 갑작스레 똥을 무더기로 내보낸 어린아기는 기저귀를 여섯 장 한꺼번에 쏟아내었고, 미리 다림질해 마련해 둔 기저귀가 꼭 한 장이 남았을 때가 새벽 여섯 시 삼십칠 분. 미리 빨아 널어둔 기저귀도 이즈음 거의 마르고. 아기도 더는 똥질과 오줌질을 하지 않으면서(그래도 한 시간에 한 번씩 꼬박꼬박 하지만, 그 뒤로는 왕창 쏟아내지는 않았다) 한숨을 돌렸는데, 새벽 네 시쯤 한창 힘들어 다문 십 분이나 삼십 분이라도 눕고 싶던 때, 옆지기가 나를 부른다. “여보, 착유기 좀 가져다 줘요. 아무래도 젖을 짜내야겠어요.”
아기가 아무리 신나게 젖을 먹어도 한쪽 젖은 퉁퉁 불기 마련. 남자인 내가 젖몸살 아픔을 얼마나 알겠느냐만, 잠들지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만 보아도 얼마나 아픈가를 살갗으로 느낀다.
익숙하지 않던 젖짜기 기계를 안 아프게 쓰는 길을 어렵사리 알아냈고, 지아비 된 사람은 기저귀가 모자랄세라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도록 다림질을 한다.
이틀 동안 한 번도 씻지 못했다. 씻을 겨를이 없다. 잠깐 아기가 우리한테 평화를 선사하는 때에는 씻을 힘이 없어서 그냥 드러누워서 눈을 붙인다. 그렇지만 ‘으 끙 끄’ 하는 나즈막한 외마디소리를 듣고 화들짝 깨어나서 똥기저귀와 오줌기저귀를 간다. ‘어차피 다시 땀으로 젖을 텐데 뭐 하러 힘들게 씻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찬물로 기저귀를 빨지만 하나도 안 시원하다. 널어 놓은 기저귀는 보송보송 말라 가는데, 내 목덜미며 허벅지며 때가 밀릴 만큼 땀이 범벅이 되었다.
날이 밝고 한잠도 이루지 못한 가운데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나서 옆지기 어머님이 아기방을 치우자고 이야기한다. 방에 먼지가 많을 테니 아기한테 안 좋으니까 쓸고 닦잔다. 아기를 옆방으로 옮긴다. 옮길 때 햇볕으로 눈이 부시지 않도록 잘 가리고, 옆방에서도 햇볕을 쐬지 않게 가려 놓는다.
부지런히 쓴다. 신나게 걸레질을 한다. 걸레를 빤다. 다시 걸레질을 한다. 이불을 턴다. 팡팡팡 두들기며 턴다. 또다시 온몸을 땀으로 씻어냈다. 낮 열두 시 십 분. 옆지기가 배가 많이 고프다고 한다. 낮밥을 먹기로 한다. 벌써 밥때인가? 옆지기 부모님 사는 집으로 온 다음부터, 밥때를 놓치기는 해도 끼니를 거르는 일은 없다. 좋다. 밥 먹고 보자.
밥상 차릴 즈음 후다닥 씻는다. 씻는 김에 똥오줌 기저귀도 빤다. 옆지기 기저귀도 함께 빤다. 부랴부랴 씻고 빨래한 뒤 널고 말리면서 밥술을 든다. 밥술을 뜨기 앞서 아기방에 들어가 엉덩이에 살며시 손. 촉촉하다. 오줌이군. 기저귀를 간다. 겉싸개 기저귀는 다리미로 말린다. 다리미로 말린 겉싸개 기저귀가 이번에는 엉덩이 기저귀가 된다. 엉덩이 기저귀는 씻는방 대야에 담긴다. 밥먹고 나서 빨자.
빨아 둔 기저귀가 다 말랐다. 하나하나 걷는다. 이제 또 다림질을 해야지. 그러는 동안 또다시 똥오줌 기저귀는 새로 나올 테고, 빨래감은 또 나올 테며, 새로 너는 빨래는 자꾸자꾸 나오리라. 아기는 때맞춰 똥오줌을 누고 젖을 먹으며, 지아비 된 사람은 밀리지 않고 빨래질을 해낸다. 한 번 밀리면 죽음은 아니고, 두어 번 밀린다고 해서 기저귀가 모자라지 않는다. 다만, 여러 차례 밀렸을 때에는 어김없이 똥벼락이 내려서 기저귀가 바닥이 날 때가 있기에, 한 번이라도 빨래를 밀리지 않으려고 한다.
갈고 빨고 다림질하고 어르고 안고 달래고 쓰다듬고 하는 데에 한 시간 가운데 오십 분쯤 쓴다. 한 시간에 10분쯤 쉴 틈이 난다. 이때에는 수첩에 아기 매무새와 움직임 들을 적어 놓는다. 옆지기 가슴 주무르기를 한다. 팔다리 주무르기를 한다. 이러다 보면 ‘빼기 시간’이 되어서, 다음번 기저귀 빨래 시간을 갉아먹는다. 가끔가끔, 아기는 한 시간에 한 번이 아닌 두 시간에 한 번 오줌을 지리면서 빨래감을 줄여 주곤 한다. 이때에는 얼마나 고마운지 넙죽 절을 하게 되고, ‘빼기 시간’으로 갉아먹었던 모자람을 넉넉히 채우게 된다. 잠깐이나마 마루에 나와 허리돌리기를 하고 기지개를 켜며 효소를 타서 물 한 잔 마신다.
그런데 이렁저렁 하루를 보내는 동안 책 한 번 펼치지 못한다. 옆지기 어머님이 세탁기로 한 집식구들 빨래가 마루에 나오면, 옆지기 어머님도 바빠서 미처 개키지 못하는데, 초등학교 6학년 다니는 어린 옆지기 동생은 빨래 개기를 안 한다. 시키면 할 테지. 이래저래 바쁜 가운데 빨래가 마루에 널브러진 지 두 시간쯤 지나서 겨우 짬을 내어 빨래를 갠다. 빨래를 개면서 ‘집안일로도 이렇게 바쁘고 할 일이 많으신데, 우리가 아이를 데려와서 더 힘드실 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할 일이 많아도, 옆지기 어머님도 할머니가 된 즐거움을 누리는 맛’이 힘듦보다 더 크지 않으랴 싶다. 오늘 아침에도 아기를 씻기면서 옆지기 어머님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아기 돌보기를 더 거들어 주고 싶어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저러나, 나도 옆지기도, 또 옆지기 어머님도 책을 읽지 못한다. 모든 일을 다 끝난 늦은 저녁에는 몸이 고단하니 책장을 못 넘기고, 햇볕 좋은 아침과 낮에는 이 일 저 일 부대끼느라 책장을 못 펼친다. 나 또한 밤늦게 다림질을 하고 겨우 숨을 돌리면서 불빛에 기대어 책장을 한두 쪽 넘기는데, 그러다가 기저귀 갈이를 하다 보면, 책은 어느새 덮어놓게 된다.
책 좀 읽고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책 좀 읽으며 내가 아직 모르는 세상 이야기를 배우고 싶어도, 책 좀 읽으며 여러모로 어리숙한 내 마음밭을 푸근히 가꾸고 싶어도, 책과 가까워지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끈은 놓지 않는다. 아직은 책을 펼치기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은 책과 떨어진 채 지내야 하지만, 우리 아이가 책이요 우리 옆지기가 책이며 우리 옆지기 어머님이 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달려가자. 어제그제는 그나마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잠을 더 자 주었다고 몸무게가 2킬로그램 늘어서 68킬로그램이 되었다. (4341.8.29.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