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에 쓰는 글


 셈틀 켜서 글을 쓸 겨를을 내기 힘들다 보니, 새벽·아침·저녁·밤으로 공책을 펼쳐 글을 쓴다. 낮에 아이하고 놀거나 책을 읽히다가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면, 이때에도 공책에 글을 쓴다. 아이는 아빠 하듯 저도 작은 수첩에 ‘글씨 작은’ 그림을 줄 맞추어 깨알같이 그린다. 공책에 글을 쓰기로 한 지 어느새 보름쯤 지난다. 얼마나 쓸까 궁금했는데 앞으로도 신나게 쓰겠구나 싶다.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셈틀 앞에 앉는 겨를을 줄일밖에 없다. 그러면 이제는 공책에 글을 꽤 많이 쓰는 삶이 될 텐데, 공책에 쓴 글은 언제 타자로 옮길 수 있을까. 이래저래 까마득하다. 다만, 공책을 쓰다가 셈틀을 켤 수 없어도 내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끝없는 이야기를 적바림한다. 한숨과 눈물과 웃음을 고스란히 적는다. 조금은 홀가분하다고 느끼고, 살짝살짝 마음풀이를 한다.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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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33] 손닦는천

 어릴 때부터 ‘수건(手巾)’이라는 낱말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지만, 뾰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딱히 다른 낱말을 쓰는 어른도 없었습니다. 손을 닦든 낯을 닦든, 닦는 천인데, 어쩐지 ‘수건’은 제 쓰임새를 옳게 나타내지 못한다 싶었어요. ‘손수건’은 어떤 천일까요. ‘손수건’이란 말이 될까요. ‘발수건’은 또 어떤 천인가요. ‘발수건’이란 말이 될 수 있는가요. 아이를 씻기고 나서 물기를 훔칠 때에 아이한테 “저기 수건 가져오셔요.” 하고 말은 하지만, 아이한테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늘 아리송합니다. 아이 머리카락과 몸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생각합니다. 먼 옛날 농사짓던 사람이나 고기잡던 사람은 어떤 물건을 쓰면서 어떤 낱말을 주고받았으려나요.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건’이라 할 뿐 아니라 ‘타올(타월/towel)’이라고도 하지만, 우리 아이한테 참말 이 말을 고스란히 그냥 그저 그예 가르쳐야 하나 알쏭달쏭합니다. 깊어 가는 밤, 새근새근 잠든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헤아려 봅니다. 우리 아이한테는 ‘손닦는천’이라 하고 ‘발닦는천’이라 하며 ‘접시닦이천’이라 말해 볼까.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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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
송언 / 내일을여는책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딸내미 아빠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 송언,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



- 책이름 :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
- 글 : 송언
- 펴낸곳 : 내일을여는책 (1997.5.25.)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시골 땅과 하늘을 바라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던 아이는 도시 땅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도시에서는 아이한테 달빛 하나 가르치기 몹시 힘들었습니다. 워낙 갖은 불빛이 많아, 아빠가 제아무리 손가락으로 밤하늘 높다란 자리에 걸린 동그라미 하나를 가리킨다 한들, 달인 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는 달 둘레에 온갖 별이 반짝입니다. 달은 달대로 가리키며 가르쳐 주고, 별은 별대로 손가락으로 꼽으며 가르쳐 줍니다.

 도시에서 살며 풀과 꽃과 나무를 가르쳐 주기 참 벅찼습니다. 골목동네 곳곳에 예쁘장하거나 앙증맞게 꽃그릇이나 텃밭 일구는 분들 터전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으니 그럭저럭 가르쳐 줄 수 있었으나, 다른 모든 곳에서는 꽃이니 풀이니 나무이니 만나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그저 ‘빠방(자동차)’하고 건물만 가득합니다.


.. 경기도 땅 덕소의 연립주택 3층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큰놈 이슬이는 어두컴컴한 지하 셋방에서 꼬박 5년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유독 잔병치레가 잦았다 ..  (11쪽)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제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무엇을 배웠거나 무엇을 배울 수 있었나 돌아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가까이 바다가 있고 갯벌이 있으며 골목동네 놀이동무하고 어울렸습니다. 바다는 쇠가시울타리로 꽁꽁 막히기는 했어도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다니며 바라보았고, 아직 새 건물 들어서지 않은 빈 땅에는 논이나 밭을 일구는 분이 있었으며, 물웅덩이에서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기찻길 옆 연탄공장 둘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라든지, 바로 이 옆에 붙은 국민학교를 여섯 해 다닌다든지 하면서 철길과 골목집과 판자집 삶을 ‘이런 삶은 이런 모양이다’ 하고 배우지는 않았으나, 내 둘레 사람들 여느 삶은 다 이러했으니 물처럼 스스럼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노느라 바쁜 나날이었고, 한두 시간쯤 되는 길은 으레 걸었으며, 누군가하고 만나기로 했으면 ‘몇 시 몇 분 어디’에서 만난다 하지 않고 ‘언제쯤 어느 둘레’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삼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가볍게 기다리면서 골목골목 쏘다녀 본다든지 다른 동무랑 논다든지, 나중에 중학생쯤 되면 가만히 책을 읽으며 기다린다든지 했습니다.

 도시라지만 도시 같지 않은 인천에서 나고 자랐기에 사람다운 빛을 그럭저럭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싶은데, 아주 깊디깊은 도시 한복판 삶터였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는지 두렵습니다. 시골 아닌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도시 아닌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처럼 풀이나 꽃이나 나무 이름을 척척 헤아리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셨으면서 도시로 나와서 시집가고 아이 낳아 기르는 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셨을까요.


.. 어제 저녁 무렵이었다. 지난 일요일에 내려왔으니 덕소에 오신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어머니가 불쑥 물었다. “얘, 아범아. 요 아래 왜 노는 땅이 있지 않디?” “그런데요?” “내일도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다니 함께 텃밭 좀 일궈 봤으면 해서 말이다.” “우리 땅도 아닌데 괜찮을까요?” “어차피 놀고 있는 땅인데 텃밭 좀 일궜다고 설마 뭐라 그럴라구.” “그럴까요, 그럼?” ..  (42쪽)


 도시에서 태어났으나 두 돌이 지나기 앞서 멧골자락으로 옮긴 첫딸 사름벼리는 앞으로 이 시골자락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거나 살피거나 헤아릴는지 궁금합니다. 제 아버지는 제 아버지를 키운 어머니한테 없는 여러 가지 길을 찾으며 살아갔다면, 딸아이는 제 아버지한테 없는 여러 가지 길을 살피며 살아갈까요. 제 아버지는 제 아버지를 키운 어머니와 달리 도시에서 시골로 왔다면, 딸아이는 제 아버지와 달리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가는 삶을 맞아들이려나요.

 어머니는 심부름을 참 많이 시켰고, 저는 심부름하기를 몹시 즐겼습니다. 어머니한테서 이것저것 곧바로 배운 집일은 드물지만, 언제나 곁에서 알짱거리면서 어깨너머로 요모조모 익혔습니다. 딸아이는 제 아버지가 했듯 저 또한 아버지 바지꽁무니 둘레에서 어정어정거리면서 이냥저냥 발치너머로 익히려나요. 어머니 삶이 제 삶이 되고, 제 삶이 아이 삶이 됩니다. 아이 삶을 생각한다면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아주 또렷합니다. (4344.1.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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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여느 책방에 배본을 하지 않는다. 서울 <풀무질>과 인천 <나비날다>에만 보내 준다. 이 잡지를 보려면 정기구독만 해야 한다.)



 책을 읽는 마음 삶을 읽는 마음
 :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머리말



 책을 읽는 마음이 반드시 곱거나 삶을 읽는 마음이 꼭 착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얄궂은 마음을 품는 사람이 어김없이 있고, 삶을 읽는다면서 정작 돈맛을 살피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즈음 시골 터전은 참 곱습니다. 나뭇잎 빛깔이 곱고 하늘 빛깔이 곱습니다. 한국에서는 시골이라 할지라도 싱그러운 바람과 보드라운 햇살이 나날이 옅어지기는 하지만, 한국땅 도시와 견주면 시골 삶자락에서는 숨통을 트면서 사람과 푸나무와 멧짐승이 제 목숨껏 살아남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를 끌어 읍내 장마당에 나들이를 하면서 곰곰이 헤아립니다. 자동차가 두 대 지나다닐 수 있는 두찻길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 멧짐승이 제법 있는데, 자동차가 넉 대 지나다닐 수 있는 네찻길에서는 자동차에 치여 죽는 멧짐승이 대단히 많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로서는 멧짐승을 버젓이 치고는 아무렇지 않게 당신 가던 길을 갑니다. 자동차를 타는 이들은 사마귀나 메뚜기나 개구리나 잠자리나 나비를 치거나 밟을 때에는 ‘목숨을 덧없이 죽였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으레 대통령이나 장관쯤 되어야 권력을 움켜쥐었다고 여기는데, 시골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생각을 차근차근 가다듬습니다. 대통령도 아니요 장관 또한 아니며 면사무소 일꾼조차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동차를 타고 싱싱 몰 때에는 누구나 권력자가 되고 맙니다.

 저는 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몰 때에 가져야 한다는 면허증서도 없습니다. 오토바이도 안 타고 오토바이라 하더라도 몰 마음이 없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시골버스를 탑니다. 때때로 택시를 얻어 탑니다.

 두 다리로 넉넉합니다. 자전거로 즐겁습니다. 시골버스는 재미납니다.

 가을이 깊어 가는 일요일 음성읍 장날에 네 식구 함께 마실을 다녀옵니다. 아이 엄마 배속에서 둘째가 무럭무럭 크니까 네 식구 마실입니다. 버스삯은 어른 두 사람 몫 2300원을 냅니다. 장마당으로 가는 길에는 모두 일곱 사람이 타고, 장마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가 꽉 찹니다. 이웃마을 어르신들은 아침 버스를 타고 장마당 마실을 나오셨군요. 읍내하고 가까운 데에 살던 할머니 한 분이 그만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립니다. 버스 기사가 깜빡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들이 “한 바퀴 돌아와서 내리면 되겠네!” 하면서 모처럼 이웃마을 구경을 하라고 웃습니다. 이웃마을로 마실을 다니기는 할 테지만, 시골버스를 타고 끝에서 끝까지 오갈 일은 드물겠지요. 가만히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나 보금자리는 그닥 안 넓은지 모릅니다. 좁은 곳에서 조용히 살아가는지 모르고, 좁은 곳에서 조그맣고 조용하게 살아가지만 옹기종기 오순도순 즐거운지 모릅니다. 괜히 피 튀기며 다툴 까닭 없고, 돈이며 이름이며 힘이며 더 얻자고 아웅다웅 할 까닭 없습니다.

 고운 사람 하나와 착하게 사귀며 참다이 살아가는 마음이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책 하나 더 읽어도 괜찮고, 책 하나 어여삐 사랑해도 괜찮다고 느낍니다. 책과 삶을 알뜰히 아낄 줄 아는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면 좋겠습니다.

2010년 11월 7일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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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을 깎는 마음


 뒷간 똥이 차곡차곡 쌓인다. 날이 달포째 얼어붙으니 자꾸 쌓인다. 한낮에 삽으로 콱콱 찍어 깎는다. 삽날이 부러지겠구나 싶어 겨우 조금 깎았다. 무너뜨리기는커녕 참말 조금 깎고 만다. 날마다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깎아야 하는가 보다. (4344.1.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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