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67 : 한글날에 읽는 책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몇 가지 글을 써 두었습니다.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두 꼭지 또 썼고, 한글날을 마친 뒤에도 한두 가지 글을 쓰려고 합니다. 한글날이니 우리가 늘 쓰고 있는 글이며 말을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풀어 보는데, 한글날 아닌 때에는 우리 글과 말을 다루는 이야기가 거의 먹히지, 들리지, 건네지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한글이나 우리 말이 아닌 ‘논술’ 이야기는 잘 먹힙니다. 잘 들린다고 합니다. 잘 건네집니다.

 제가 좋아하고 또 저를 좋아하는 어느 만화쟁이 아저씨가 제가 쓴 글을 그림으로 옮겨서 ‘어린이들이 우리 말을 잘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만화책’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여러 해 앞서부터 밝혔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해 동안 어떤 글을 묶으면 좋을까를 살피면서 글뭉치를 모아 보았습니다. 만화쟁이 아저씨는 몸소 출판사까지 알아보셨다고 하는데, 당신이 알아보는 출판사마다, ‘왜 그 사람하고 일을 하려고 합니까?’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저를 아는 학습지 출판사로서는 제가 하는 일이 ‘글쓰기’이지 ‘논술’이 아니며, ‘삶을 담는 말을 스스로 즐겁게 하면서 아름다워지기’를 말하지 ‘시험성적 높이며 일류대학교에 붙도록 하는 논술 이야기’ 또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잘 맞추도록 공부 시키기’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올 한글날을 앞두고 세상에 쏟아지는 책을 보노라면, 올해도 지난해하고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말을 다룬다고 하면 ‘깨끗한 토박이말’만 다뤄야 하는 줄, ‘잘못 쓰는 말을 바로잡기’만 해야 하는 줄, ‘틀린 맞춤법 추스르기’를 해야 하는 줄 아는 책만 보입니다. 글쓰기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으나,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수험생들한테 팔아먹는 ‘논술 장사’에서 홀가분한 책은 열 손가락 꼽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에 꼭 돈이 되어야만 값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돈이 되어야 한다면 왜 꼭 논술 장사로만 돈을 얻으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가운데 참 살 길을 찾아나서는 말과 글 이야기로도 넉넉히 돈벌이를 할 구멍을 살필 수 없는 노릇인지 궁금합니다. 일류대학교에 붙도록 도와주는 논술책이 아니라, 삼류대학교에 들어가건 아예 대학교는 꿈도 못 꾼다고 하건 사람이 사람다운 됨됨이를 추스르고 다독이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글쓰기책을 엮어내어 온 세상 두루두루 사랑을 펼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이야기책으로 엮을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찬물로 머리 감고 낯 씻고 손발을 씻고 자리에 앉아서 고요히 생각에 잠긴 뒤 하루를 열었습니다. 비록 오늘날 한국사람들은 한 해 가운데 고작 하루뿐인 한글날에조차 우리가 물과 밥처럼 쓰고 있는 말을 엉터리로 내팽개치고 있지만, 이 말과 글에 우리 얼과 넋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은 더 나아질 수 있고, 한결 넉넉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이 믿음을 펼쳐 보이고자. (4341.10.9.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음을 여는 말 689] 지못미

 진보신당 심상정 님이 책을 하나 냈습니다. 책이름 《당당한 아름다움》만큼이나 활짝 웃는 얼굴이 무척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심상정 님 얼굴이 곱거나 예쁘다고 느껴질 얼굴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만,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일하는 사람이든, 스스로 자기 길을 옳다고 여기며 꿋꿋하게 걸어가면 그이 스스로 제 깜냥껏 아름다움을 찾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는 무지개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어떤 이는 시궁창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며, 어떤 이는 싱그러운 들판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한편, 어떤 이는 자동차 배기가스로 가득한 도심지에서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없이 저마다 뜻과 값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저러나 심상정 님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습니다. 퍽 아쉽다고 여길 수 있고, 그래도 홀로 꿋꿋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말하며, 누군가는 ‘아직 덜 무르익었으니 더 무르익어야 해’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가시밭길은 고단하고 거칠며 팍팍합니다. 외롭고 슬프고 가슴 아픕니다. 그러나 가시밭길이 있기에 탁 트인 길이 시원합니다. 가시밭길이 있기에 더욱 단단해지고 좀더 야무지게 됩니다. 가시밭길을 거치면서 우리 스스로 꿋꿋해지고, 가시밭길을 헤치면서 우리 나름대로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심상정 님을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가 아닌 ‘앞으로 더 무르익도록 애쓰고 첫마음을 더 다부지고 튼튼하게 가꾸소서’ 하고 말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1.10.10.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가 바꿀 수 있어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5
프리드리히 카를 베히터 글.그림,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바꿀 수 있는 삶을 어영부영 대충 살지 않나요?
 [그림책이 좋다 52] 프리드리히 카를 베히터, 《우리가 바꿀 수 있어》


- 책이름 : 우리가 바꿀 수 있어
- 글ㆍ그림 : 프리드리히 카를 베히터
- 옮긴이 : 김경연
- 펴낸곳 : 보림 (2008.9.16.)
- 책값 : 9800원






 (1) 아이를 생각하며 내 삶부터 바꾸기


 제가 ‘세탁기도 냉장고도 전자레인지도 없이 잘산다’고 하니, ‘그러면 왜 컴퓨터는 쓰냐?’고 되묻는 이가 있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안 쓰는 물건이 있다면 그러한 물건을 왜 안 쓰는지를, 또 그러한 물건을 안 쓰면서도 왜 잘산다고 하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나서 되물어야 할 텐데, 그리 묻지 않고 막바로 되묻기만 한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저는 세탁기를 안 쓰고 손빨래를 합니다. 냉장고를 안 쓰고 그때그때 저잣거리에서 장만하여 먹습니다. 냄비로 덥히지 전자레인지를 돌리지 않을 뿐더러, 덥혀야 할 먹을거리를 구태여 마련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굳이 커다란 기계를 씻는방에 들여서 씻는방을 좁게 쓸 까닭도 없지만, 빨래를 전기와 많은 물을 들여서 할 까닭 또한 없다고 느낍니다. 손빨래는 좋은 운동이자 자기 옷을 더욱 사랑해 주는 일이 됩니다. 알맞게 입고 알맞게 빨면서 옷과 몸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먹는 일에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니 저절로 냉장고를 안 쓰게 됩니다. 냉장고를 두어 보았자 넣어 놓을 먹을거리도 없습니다. 따로 김치를 담그지 않고 날푸성귀를 먹으니 김치를 둘 일이 없습니다. 미역을 먹어도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불리고 다른 반찬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찌개 하나나 날푸성귀로 올려놓는 밥상이면 배가 부릅니다. 처음 밥을 할 때부터 누런쌀에 보리쌀을 섞고 대여섯 가지 잡곡과 콩팥 옥수수 들을 넣으니 밥만 먹어도 조그마한 그릇으로도 배가 부릅니다. 젖병을 데울 때만큼은 전자레인지가 쓸모있지 않느냐고도 하지만, 주전자로 물을 끓여서 담가 놓으면 오래지 않아 젖병이 따뜻해집니다. 다만, 전자레인지와 견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요. 그러나 아기를 잘 얼르고 있으면서 물리면 되니 괜찮습니다. 더욱이 젖병으로 엄마젖을 물릴 때에는 아기 뱃속을 씻어 주고자 숯가루를 먹일 때뿐이니(처음에는 엄마 젖꼭지가 헐어서 젖병을 썼지만) 전자레인지를 들여놓아 부엌을 좁게 할 일이 없음을 더더욱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틀림없이 되묻겠지요. 자전거도 똑같이 공장에서 만드는데 왜 똑같이 공장에서 만든 물건인 자동차는 안 타면서 자전거는 타느냐고.

 이때에도 답답한 생각이 들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좀더 속깊이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얼거리가 없는 한편, 우리 스스로도 좀더 속깊이 생각하려는 매무새가 줄어들었다고 느낍니다. 기름을 먹는 자동차와 두 다리로 굴리는 자전거는 같을 수 없으며, 자동차 한 대 값이면 자전거는 수백 대를 장만합니다. 또,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에 드는 쇠붙이와 플라스틱과 온갖 자원과 자전거 한 대 만드는 데에 드는 자원은 견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자동차를 굴리려면 길을 깔아야 하지요. 자전거 다닐 길도 깔아야 하지만, 사람이 걸어다닐 만하면 자전거도 크게 걱정없이 다닙니다. 좁은 골목길도 자전거는 넉넉히 다니지만 자동차는 못 지나갑니다. 더군다나 몰지 않을 때 자동차는 아주 넓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자전거는 아주 적은 자리만 차지할 뿐 아니라, 접는자전거는 접어서 신발장 옆에 두어도 되고 헛간에도 쏙 들어가며 문간에 놓아도 넉넉합니다.


 “아이참, 이 연못에는 왜 아이들이 없어요?”
 “글쎄다, 하랄트. 하지만 엄마 아빠가 있잖니?”
 “난 친구랑 놀고 싶어요.” ..  (2쪽)



 저나 옆지기는 어릴 적에 예방주사를 많이 맞았습니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맞았고, 우리 어머니도 꼭 맞혀야 한다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알아보니, 예방주사에 들어가는 성분에는 수은과 포름알데히드가 있는 한편, 예방주사가 ‘병을 다 막아 주는’ 주사가 아니라, 몇 퍼센트라는 확률로 막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상에 공개된 ‘예방주사를 맞아서 병을 미리 막을 수 있는 확률과 예방주사를 안 맞고도 병에 안 걸리는 확률’ 자료란 없습니다. 재료를 내놓는 과학자도 없고, 자료를 만들려는 과학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예방주사를 맞아서 부작용에 걸린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를 다룬 자료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먹을거리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무턱대고 맞히는 예방주사가 얼마나 알맞는지, 얼마나 아기 몸에 영향을 끼치는지 꼼꼼하게 밝혀 놓은 자료를 미리 읽고 나서, ‘예방주사를 맞힐는지 안 맞힐는지’를 우리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맞아서 후회될 일 없잖아요?’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맞힐 주사가 아닙니다.

 우리 아기도 병원에서 우리 모르게 맞힌 비형간염 백신주사 때문에 황달에 걸려서 쉰 날을 넘긴 지금까지도 애를 먹이고 있는데, 화학물질 항생제로 맞히는 주사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을, 병원에서는 또다른 화학물질 항생제로만 처방할 뿐입니다. 더군다나 아이 엄마한테 젖을 끊기고 분유를 먹이라 하지만, 요즈음 분유에 섞인 성분 때문에 크게 말썽이 되듯, 분유는 요즈음만 말썽이 아니라 그동안 말썽거리 성분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야 겨우 터졌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멜라민을 비롯한 온갖 문제 있는 화학성분이 섞인 분유를 먹으며 자란 아이들은 몸에 어떤 문제가 깃들고 있는 셈일까요.

 풀 먹는 짐승인 소한테 동물성 사료를 먹여 살을 찌우니 고기소들이 몸에서 부작용이 생기며 ‘미친소’가 되었고, 이렇게 미친소가 된 가여운 짐승을 잡아서 고기를 해 먹으니 사람들 몸에도 끔찍하고도 나쁜 병이 생겨나게 됩니다. 과학자들 말씀마따나 ‘미친소 고기를 먹어도 꼭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고 할 테지만, ‘병에 걸릴 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확률이 낮아도 죽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떠들썩해집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엄마젖을 먹이고 병에 걸린 아기가 여태까지 있던가요. 엄마젖과 아기가 어떤 사이인가를 돌아본다면, 엄마젖을 끊으라고 하는 양의학 병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일본 미나마타 바닷가에서 ‘유기수은 중독’ 때문에 벌어진 무시무시한 대물림 돌림병인 ‘미나마타병’처럼, ‘수은’은 아기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몹시 나쁘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그런 수은 성분이 든 예방주사를 어떻게 아기한테 함부로 맞힐 수 있겠습니까. ‘부작용이 없을 가능성이 99퍼센트’라고 해도 그 1퍼센트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99.99퍼센트라 해도 1만 아이 가운데 한 아기가 걸리니, 그 한 아이 삶은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 나라가 오천만에 가까운 숫자인데, 나날이 새로 태어나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헤아리면 99퍼센트라도 걱정이고 99.9퍼센트라도 걱정입니다.





 “이 농장에는 왜 아이들이 없어요?”
 “글쎄다, 잉게. 하지만 엄마 아빠가 있잖니.”
 “흐응.”
 “흐응이라니?”
 “친구가 있으면 틀림없이 더 재미있을 거예요.” ..  (7쪽)


 그러나 이모저모 따져 보아도, 전자제품만 말썽거리가 아닙니다. 자동차만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화학성분 예방주사만 멀리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는 모든 이가 골고루 텃밭농사를 지을 만한 넉넉한 땅이 모자랍니다. 빈틈만 있으면 아파트를 짓느니 빌라를 짓느니 주차장을 만드느니 하는 판이니까요. 그나마 옥상이 있는 집에 세들어 살면 옥상 농사라도 짓는다지만 몇 사람이나 이렇게 하겠습니까.

 유기농을 하는 분들한테서 곡식을 사다 먹어도 동네 재래시장하고 발을 끊어야 하니, 사람 사는 마을에서 한식구로 어울리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문제에서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에요. 그냥 대충대충 살자고 할 수 없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을 아무나 대충 뽑아 놓고 어영부영 아무 정책이나 내놓든 ‘내 한몸 먹고살기에 빠듯하게 지내도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와 옆지기야 앞으로 서른 해나 마흔 해쯤 더 살면 더는 이 땅에 미련을 둘 일이 없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앞으로 쉰 해도 예순 해도 일흔 해도 살아야 할 이 땅 어린이들은 어찌하나요. 그리고 이 어린이들이 앞으로 자라서 낳아 기를 아이들은 또 어찌하지요?


 “이 숲에는 왜 아이들이 없어요?”
 “글쎄다. 하지만 필립, 넌 멋지게 살고 있잖니?” ..  (13쪽)


 틀림없이 힘들지만 바꾸어야 합니다. 누가 보아도 고달프지만 고쳐야 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달걀로 바위 치기 같지만, 한 걸음 두 걸음 걸어나가야 합니다. 얼핏 보면 우리 세 식구만 아둥바둥하는 듯해도, 예방접종 문제로 함께 머리를 싸매면서 슬기로운 길을 찾는 모임이 있으며(http://www.selfcare.or.kr), 유기농 곡식으로 우리 밥상을 깨끗이 지키며 시골 살림도 지키자고 마음 기울이는 모임도 많습니다. 찾아보면 나오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 더 단단해지며, 몇 안 되는 숫자라 해도 자기가 뿌리내린 동네부터 하나하나 바꾸려고 힘을 내면 눈에 도드라지게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우리부터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 식구가 달라지면 우리 아이가 뒷날 즐거울 수 있고, 우리 아이가 뒷날 즐겁게 된다면 우리 식구들을 둘러싼 이웃한테도 좋게 영향을 끼칠 테고, 머나먼 뒷날 우리 손주와 사위와 동무한테도 좋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 뒷날 아이 스스로 바꿀 수 있게끔


 “그런 건 따분해요. 전 한 번도 안 해 본 걸 하고 싶어요.”
 “거꾸로 날아 보거나 나비랑 놀아 보렴.”
 “그런 거 말고요. 돼지처럼 똥 속을 헤집고 다니거나, 물고기처럼 연못에서 헤엄을 치거나 …….”
 “우리가 보기에 넌 어리석고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제가 보기에 엄마 아빤 …….”
 “입 다물어라.” ..  (16쪽)


 그림책 《우리가 바꿀 수 있어》를 펼칩니다. 독일에서 1973년에 처음 나온 작품이라고 하는데, 서른다섯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 읽어도 가슴이 찡합니다. 참 훌륭하구나 하고 새삼 느끼며 두 번 펼치고 세 번 펼치다가 옆지기를 불러서 함께 펼쳐 넘깁니다.

 생각해 보니, 권정생 할아버지가 남긴 동화 〈강아지똥〉은 1969년에 쓴 작품인데 오늘날에도 나라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책이자 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안에서 첫손 꼽는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이 쓴 대표가 되는 작품은 하나같이 일제강점기 때, 해방 뒤, 박정희 독재정권 때 나왔습니다. 서른 해는 우습고 쉰 해 일흔 해 넘긴 작품들이 처음과 같이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습니다.

 어디에 그런 힘이 있을까, 어떻게 이런 작품이 될까, 여러모로 곱씹습니다. 어떤 생각과 마음을 글에 담았기에, 어떤 얼과 넋을 그림에 실었기에, 그토록 오래오래 수많은 아이들한테, 또 여러 나라 아이들한테, 또 세대와 세대를 넘어서까지 사랑을 받을까 생각해 봅니다.


 엄마 아빠 물고기가 놀라워합니다. “우리 하랄트가 요즘 성격이 아주 느긋해졌어요. 혹시 그 우스꽝스런 친구들 때문일까요?” ..  (30쪽)


 성경에도 적혀 있듯이 ‘어린이한테 읽힐 글이요 어린이한테 보여줄 그림이라서 어린이마음을 품고 어린이 눈길로 적어 내려가고 그려 내려갔기’ 때문일까요.

 어린이책이라 한다면, 어린이 눈높이가 되는 사람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니, 어린이부터 늙은이까지 두루두루 맛나게 곰삭여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욱 힘을 쏟았기 때문일까요.

 처음부터 이웃나라 아이들한테까지 보여준다기보다, 처음부터 온나라 아이들한테까지 골고루 보여준다기보다, 먼저 내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즐기자는 마음이었기 때문일까요. 내로라하는 어느 작품을 보아도 ‘우리 아이 아무개한테 바친다’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아마, 다른 아이보다도 내 아이가 먼저 재미있게 보고 신나게 받아들이며 기쁘게 몸으로 삭여낼 수 있을 때라야 다른 아이한테도 보여주면서 함께 웃고 울 수 있음을 깨닫는지 모를 일이에요.

 그렇잖습니까. 농사꾼 마음이 ‘우리 식구가 먹을 곡식’으로 생각하면 농약 한 방울 안 칩니다. 모두 손으로 일구고 거둡니다. 농사꾼 마음이 ‘더 많이 내다 팔아서 더 많이 돈벌어야지’가 될 때, 농약 잔뜩 치고 비료 듬뿍 쳐서 살이 오동통 오르는 곡식, 빛깔 반지르르하게 보이는 열매가 되도록 합니다.


 엄마 아빠 돼지가 놀라워합니다. “요즘 잉게가 아주 상냥해졌어요. 그 희한한 친구들 때문일까요?” ..  (31쪽)


 늘 느끼는데, 마음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꾸기 어렵다라는 생각이 아닌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더디 걸려 이백 해나 삼백 해가 걸리게 되더라도 바꾸어 나가도록 나부터 한 삽을 뜨려는 생각이어야지 싶습니다.

 서울과 수원에서 맨 먼저 ‘발바리(두 발과 두 바퀴면 넉넉하다 http://bike.jinbo.net)’ 모임을 이끌어 낸 자전거꾼들은, ‘하루아침에 우리네 길 문화를 자전거로 넉넉하고 즐겁게 출퇴근을 하고 학교를 오가고 저잣거리 마실을 하게 이끌어 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차근차근, 더디 가고 느리게 가더라도 한 사람씩 자전거 맛을 느껴 가면서 밑에서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그다지 읽히지 않는 글이라 해도 부지런히 써서 꾸준하게 잡지도 내고 책으로도 역는 글쟁이들 마음은, 자기가 끄적인 글 한 줄이 누군가한테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살이 되어서, 우리 삶터를 좀더 아름답게 보살피는 밑거름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배를 곯으면서 글을 쓰고, 곁방에서 눈치를 보면서도 죽는 날까지 고단한 삶을 놓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 새가 놀라워합니다. “우리 필립이 훨씬 명랑해졌어요. 어쩌면 그 괴상한 친구들 때문일까요?” ..  (32쪽)


 그림책 《우리가 바꿀 수 있어》를 다시금 펼쳐 봅니다. 그림책에 펼쳐지는 삶터는 어린이들(새끼 물고기, 새끼 돼지, 새끼 멧새)이며 어른들이며 몸 튼튼히 오붓하게 지내기에는 걸맞지 않습니다. 새끼 물고기가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는 연못 바닥에는 버려진 자전거며 수레바퀴며 갖가지 쓰레기가 가라앉아 있습니다. 돼지우리 둘레에는 늘 똥냄새입니다. 멧새 지내는 나무숲은 나무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그래서 이들, 새끼 물고기와 새끼 돼지와 새끼 멧새한테는 동무가 없습니다. 동무가 태어나 자라기 몹시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서 새끼 물고기와 새끼 돼지와 새끼 멧새를 기르는 어미 물고기와 어미 돼지와 어미 멧새는 당신들한테 하나 있는 아이를 끔찍이 돌보고 아끼고 키웁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바라고 있어요. 아이들 어버이는 참으로 좋은 분들이지만, ‘우리들은 동무를 사귀어 함께 놀고 싶다’고.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일지 모르나 아이들은 꿈을 꿉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목숨임에도 어깨동무를 하게 됩니다. 물고기는 돼지한테 걷기를 배우고, 돼지는 멧새한테 날기를 배우며, 멧새는 물고기한테 헤엄치기를 배웁니다. 여느 어른들, 아니 보수수의나 수구주의에 갇힌 어른들 눈에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집어던질지 모르는 그림책 《우리가 바꿀 수 있어》일 수 있지만, 아이들한테는 ‘참 그렇구나!’ 하면서, 동무란 마음이 맞으며 언제나 서로를 믿고 함께하는 사이임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손길을 내밉니다. 마음을 열어 꼬옥 안아 줍니다.

 그냥 그대로 살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저 그대로 억눌린 채 살고자 하지 않았기에. 그저 그냥그냥 외롭고 쓸쓸한 그대로 자기 삶을 허거프게 보낼 생각이 아니었기에.

 자기 마음을 먼저 바꾸고, 자기 매무새를 먼저 바꾸며, 자기 삶을 먼저 바꿉니다. 이러면서 바뀐 자기 마음에 동무 마음을 담고, 바뀐 자기 매무새에 동무 매무새를 배워 다스리며, 바뀐 자기 삶에 동무 삶을 두루 헤아리는 너그러움을 깃들여 놓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조차 힘들면 열 번에 한 가지씩. 열 번에 한 가지도 힘들면 백 번이나 천 번에 한 가지씩 느긋느긋, 차근차근. (4341.10.9.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 아빠는 어떻게 사는가] 아이를 낳아야 참 어른
 재워도 얼러도 잠들지 않는 아기를 가슴에 안고


 - 1 : 누런 반바지 -


 아기를 안고 어르며 기저귀를 갈아야 하기 때문에, 아기와 부대낄 때 입는 옷과 바깥일을 하거나 바깥나들이를 할 때 입는 옷을 갈라 놓습니다. 아기를 안을 때 입는 옷을 벗어서 빨아 놓은 뒤, 새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러고 조금 뒤 아기 몸씻이를 합니다. 물을 끓여서 통에 받아 놓은 다음, 기저귀를 끌르고 머리를 감길 무렵, 뿌지직 하면서 누런 똥이 불불불 흘러나옵니다. 또 한 번 뿌직뿌직 하면서 처음보다 더 많은 똥이 불불불 흘러나와 새로 갈아입은 반바지를 누렇게 물들입니다. 인석!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반바지에 묻은 똥얼룩은 내버려 두고 배냇저고리를 벗겨 아기 엉덩이를 닦은 다음 몸씻이를 할밖에. 허벅지와 반바지는 똥으로 범벅이 되고 똥내가 솔솔 피어납니다. 곧이어 오줌을 눕니다. 아기오줌은 몸씻이하는 물에 흘러도 괜찮다고 하여 그냥 씻깁니다.

 다 씻기고 나서 옆지기가 젖을 물리니 이내 잠드는 아기. 그렇지만 조금 뒤 깨어나 칭얼거리는 바람에, 똥 묻은 반바지를 벗을 겨를이 없이 다시 아기를 얼러야 합니다. 그렇게 두 시간쯤 흐르니 반바지에 묻은 똥은 바싹 말랐고 냄새도 안 난다는 느낌. 그래서 똥 묻은 채로 그냥 입기로 합니다.





 - 2 : 젖먹이기 -


 아침나절, 아기한테 젖을 먹이던 옆지기가 젖을 물린 채로 잠이 듭니다. 아기는 젖을 물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고, 옆지기도 그대로 잠이 들어 있습니다. 옆지기 옷섶을 내리고, 이불자락을 올려서 아기와 옆지기를 덮어 놓습니다.


 - 3 : 책읽기 -


 처음 한동안 아기한테 ‘책 읽어 주기’를 했으나 요사이는 못합니다. 요사이 읽어내야 하는 책들이 아기한테 영 걸맞지 않기도 했고, 몸이 고단하고 마음도 지친 탓입니다.

 평생 후원회원으로 도움주기를 하는 샨티 출판사에서 새로 책 하나 냈다며 《어린이의 다섯 가지 중대한 질문》을 보내옵니다. 아이한테 어버이가 바라는 종교를 우격다짐으로 믿게 해서는 안 되고, 아이와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 스스로 자기 종교를 고르거나 아무 종교도 고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줄거리를 담은 책입니다. 저도 읽어 보아야겠으나 옆지기가 먼저 읽으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옆지기한테 넘겨줍니다.

 옆지기는 매듭을 묶는 틈틈이 책을 펼쳐서 읽습니다. 때때로 소리내어 아기가 듣도록 읽기도 합니다. 저녁나절,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당연한 이야기를 꼭 논리를 써서 풀어내야만 할까’ 하고 말합니다. ‘우리한테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아직 모르거나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도 많지 않겠어요? 그러나, 당연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 책을 안 읽을 테고, 당연한 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이런 책을 읽으면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못하겠지요.’





 - 4 : 잠 -


 태어난 지 쉰 날이 넘어갑니다. 지난주쯤부터 아기가 밤에 잠을 안 자려고 하고 두어 시간씩 칭얼대며 어머니를 고단하게 합니다. 젖을 물려도 칭얼, 안고 토닥여도 칭얼, 도무지 칭얼칭얼칭얼일 뿐, 쉬 잠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복닥이다가 겨우겨우 잠이 듭니다. 아기를 얼르고 젖을 물리는 옆지기도 힘들고, 아기를 안고 토닥이는 저도 힘겹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잠이 들었다고 저 또한 함께 잠들 수 없는 노릇. 그동안 쌓인 기저귀를 빨아야 합니다. 다 마른 기저귀를 걷어서 개야 합니다. 이튿날은 무얼 해서 밥을 먹을까 생각하고, 어수선하게 온갖 짐이 널부러진 집을 어떻게 치워야 하나 걱정합니다. 날이 조금씩 서늘해져도 사그라들지 않는 모기를 잡아야 하고, 허리가 아파도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쳐야 합니다.

 이러구러 하는 사이 새벽 두 시가 되어 비로소 잠이 들고, 한 시간마다 깨어나 기저귀를 한두 번 갈고 나면, 두어 시간쯤 죽은 듯 깨어나지도 못하고 잠이 듭니다. 먼저 옆지기가 죽은 듯 잠이 들어서 홀로 깨어나 아기 기저귀를 갈고 얼릅니다. 그 뒤 두어 시간쯤은 제가 죽은 듯 잠이 들어서 옆지기가 홀로 기저귀를 갈고 달랩니다.

 조금 일찍 잠이 들게 된 날은 네 시쯤 부시시 일어나서 낯을 씻고 밤 사이 밀린 기저귀를 빤 다음 글을 조금 끄적거려 놓습니다. 조금 늦게 잠이 들게 된 날은 여섯 시나 일곱 시쯤 하품을 입이 째지게 하면서 일어나,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밀린 기저귀 빨래와 함께 아침을 맞이합니다.

 열 시쯤 아침을 먹고 아기하고 복닥이고 조금 숨을 돌리면 잠이 쏟아지는데, 아기는 또 잠잘 생각이 없어서 졸린 몸으로 안고 달래고 잠깐 눕힌 뒤 설거지하고 쌀과 콩 불리고 다시 안았다가 빨래를 하고 돌아와 얼럴럴 그러면 겨우 잠이 들어서,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아주 달게 낮잠을 잡니다.

 어제는 낮나절 몇 시간이나마 잠을 잤고, 젖먹을 때쯤 깨어 젖을 물리면 곧 잠들었느데, 오늘은 젖을 먹어도 잘 생각을 않고 그예 놀아 달라고만 합니다. 히유, 한숨을 쉬고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아이 배를 제 몸에 바싹 붙이고 안습니다. 그렇게 십 분 이십 분이 흐르면 숨소리가 가르랑가르랑하면서 잠이 들기에 품에 안은 채 살그머니 자리에 눕히는데, 눕히고 나면, 오 분이 지나지 않아 또 깹니다. “벼리야, 오늘 따라 왜 그러니, 엄마 아빠는 너무 힘들구나.” 하고 말해 보지만, 아기 귀에 이런 소리가 가 닿지는 않을 테지요.





 - 5 : 전화 -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번역가 ㅂ형한테 안부전화를 겁니다. 우리가 자주 다니는 헌책방 아저씨가 몸이 다친 일이 있었는데 아는가 싶어서. ㅂ형은 벌써 알고 있으며 문병도 다녀왔답니다. 헌책방 앞날과 우리 책마을 걱정과 근심을 몇 마디 나누는 사이, ㅂ형이 대뜸 한 마디, “최종규 씨, 이제 애 아빠가 됐으니 책임감을 느껴야 해. ㅈ일보에서 글 써 달라는 부탁이 들어와도 글 다 써 주고, ㅇㅁㅂ이 무슨 부탁을 해도 그러믄요 하고 다 해 줘야 한다고.” “하하.” 웃음으로 넘깁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아기를 어릅니다. 오늘은 옆지기가 몸이 많이 힘들다고 해서 거의 혼자서 안고 어르고 달래고 젖병 먹이기를 합니다. 아직 아기 몸에 황달 기운이 남아서 숯가루를 젖에 타서 먹이느라, 젖을 짜낸 다음 젖병으로 먹입니다. 숯가루를 타 주어도 아기는 신나게 잘 빨아먹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잘 먹은 다음에는 좀 눈을 감아 주어야 하는데, 말똥말똥 뜬 채 두리번두리번하다가, 지어미나 지아비가 가까이 없으면 빽빽 울어제낍니다. 하는 수 없이 아기를 가슴에 안고 이삼십 분씩 어르다가는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파서 자리에 앉아서 허벅지 사이에 이불을 깔고 앉힙니다. 그러면 아기 열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허벅지에는 땀이 배고, 아직 육 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아기임에도 허벅지와 다리가 제법 눌려서 고달픕니다.

 자꾸 보채는 바람에 젖병을 한참 물리게 됩니다. 셈틀 앞에 앉아서 한손으로는 젖병을 물리고 한손으로는 자판을 칩니다. 왼손으로 치다가 손목이 아파 오른손으로 바꾸고, 다시 왼손으로 바꾸고.

 옆지기는 바깥바람을 거의 못 쐬며 지내게 되어, 우체국 나들이를 하러 밖으로 나갑니다. 이렇게라도 걸어 주지 않으면 다리살이 다 빠질 듯합니다.

 한 시간 남짓 공알공알대던 아기가 드디어 새근새근 잠듭니다. 뻐근하던 한쪽 팔이 풀리고, 허리는 구부정하게 있어야 해서 아프기는 해도 뭔가 시원합니다. 이런 일 가지고 시원하다고 느껴도 되나 모르겠지만, 두 손을 홀가분하게 쓸 수 있으니, 또 품에 안긴 아기가 새근새근 자고 있으니, 비록 다리가 저리긴 해도 책상맡에 앉아서 글쓰기를 할 수 있음은 그지없는 고마움이라고 느낍니다.

 미리 책상맡에 둔 주전부리인 약과를 하나 뜯어서 야금야금. 바깥 나들이를 하는 옆지기는 좀 오랫동안 돌다가 올 듯한 느낌. 엊저녁에도 잠깐 나갔다 온다고 했으면서 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돌아왔는데 오늘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

 약과 한 입 물고 신나게 글쓰기를 하려는 때 전화 한 통. 멀리 전라도 광주에서 인천으로 마실 오신 분들이 있어서 도서관을 구경해 보고 싶다는 연락. 헉. 아기가 이제 막 잠들었는데! 집에는 나 혼자만 아기를 보고 있는데! 아기가 깰랴 나즈막한 목소리로 오늘은 때가 참 안 맞게 되어 미안하다고 말씀드리기.





 - 6 : 아기와 내 삶 -


 아기 돌보고 옆지기 몸 챙기고 하노라면, 제 몸 하나 챙기기 몹시 어렵습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책을 펼치자는 생각보다 쪽잠이라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좋아하는 책방 나들이를 마다 하게 되고, 그 즐기던 골목마실을 거의 못하면서 지냅니다. 옆지기는 저보고 책방 나들이를 못하게 되어서 어떡하느냐고 걱정입니다. 그러나 책방 나들이 몇 달 못하게 되더라도, 옆지기가 아기와 함께 백일을 맞이하는 때까지 몸을 잘 추스를 수 있도록 곁에서 보살피는 몫이 지아비한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사람은 너무 바빠서 다를지 모릅니다만, 지난날 시골에서 농사짓던 우리 어버이들을 보면,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가 모든 집안일을 백일을 맞이할 때까지 해내셨다는 이야기를 곧잘 들었습니다. 모든 집안에서 이렇게 하지는 않았으나, 뜻이 있고 생각이 있는 집안에서는 아비 된 사람이 아비 몫이 무엇인지를 또렷하게 깨닫고 있었다고 느낍니다.

 세이레란 괜히 세이레가 아니라, 아기도 애 어머니도 함부로 몸을 움직여서는 안 되는 세이레입니다. 아기를 낳느라 엉치뼈가 다 벌어져 있을 뿐 아니라 온몸이 뒤틀리게 되었기 때문에, 벌어지고 뒤틀린 뼈가 제자리를 천천히 찾아서 올바르게 아귀가 맞도록 하자면, 짧아도 보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기와 애 어머니 모두 몸에서 기운이 많이 빠져나갈 뿐더러, 아기는 어두운 곳에만 있다고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눈을 다칠까 걱정이 되어서, 어두운 방에서 두 사람만 모셔 놓고 조금씩 빛을 밝히면서 눈을 감싸 주었습니다. 애 어머니 아랫도리를 괜히 쑥기운으로 달래 주지 않았으며, 애 어머니한테 굵은 미역을 손으로 뜯어서 국이든 날로든 먹이는 일도 괜히 하지 않았습니다. 아기와 애 어머니는 괜히 조용한 곳에서 지내야 하지 않습니다. 애 어머니는 괜히 ‘농약과 비료 안 친 깨끗한 먹을거리’로 몸을 다스려야 하지 않습니다. 학문으로 파고들지 않아도, 생물학이나 유전학을 파헤치지 않아도, 농약을 친 과일을 먹인다면, 자연에서 거둔 미역이 아닌 양식으로 거둔 미역을 먹인다면, 유전자조작을 한 곡식을 밥으로 지어 먹인다면, 아기한테 젖을 물릴 어머니 몸은 어떤 영향을 받겠습니까.

 아기를 낳으면 이고 지고 나를 짐이 많아서 큰차를 뽑아서 굴리게 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참말, 아기를 안고 돌아다니려면 짐이 한가득입니다. 그러나 유모차 끌고 아기가방 메고 뭐 하고 하니까 짐이 한가득이고, 그러다 보니 차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딱 알맞게만 가지고 다니면, 기저귀 몇 벌과 손수건과 빈 가방을 사뿐하게 들면, 한 사람이 등에 메는 가방 하나로도 넉넉합니다. 아기는 아주 어리면 안으면 되고, 조금 크면 둘이 서로 번갈아 안으면 되며, 더 크면 걸리면 됩니다.

 자동차를 끌 때 나오는 배기가스는 우리 삶터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아기 키우는 집이라면, 이 대목을 찬찬히 돌아보아 주어야지 싶습니다. 아기 보살필 짐을 실은 차를 끌면 몸이야 홀가분할 수 있다지만, 정작 그 자동차 때문에 아기며 애 어머니가 마셔야 할 공기가 더러워지지 않습니까. 1회용 기저귀를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애 어머니나 애 아버지 손이 덜 간다고 하지만, 살림돈 갉아먹는 일을 떠나서 1회용 기저귀가 죄 쓰레기가 되어 우리 땅을 더럽히는 일이 우리한테 다시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를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지 않습니까.

 아기한테 분유를 먹이는 일은 분유에 멜라민이 들어갈 수 있고 또 뭐가 말썽이 되고 하는 일 때문이 아닙니다. 분유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도 아닙니다. 사람 아기한테는 사람젖이 가장 좋습니다. 송아지한테는 소젖이 가장 좋습니다. 새끼 염소한테는 염소젖이, 강아지한테는 개젖이, 새끼 돼지한테는 돼지젖이, 새끼 고양이한테는 고양이젖이 가장 좋아요. 다른 어떤 젖으로도, 또 우유로도 영양소를 채워 줄 수 없습니다. 저마다 다 다른 목숨붙이를 살찌울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엄마 몸에서 나오는 엄마젖은 ‘공장 하나 안 돌려도 얻을 수 있는 아기 밥’입니다. 분유 하나 마련하자면, 우리가 가게에서 돈 주고 사는 일을 떠나서, 가게에 갈 때 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을 테지요. 분유 한 통이 가게로 가자면 누군가 짐차에 가득 싣고 옮겨와야 할 테지요. 공장에서 분유를 만들자면 수많은 기계를 세우고 들여야 할 테며, 분유에 들어가는 원료를 얻고 실어나르고 전기를 쓰고 기계를 돌릴 석유를 쓰고 뭐를 쓰고 ……. 분유 하나에 들어가는 지구자원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분유에 들어갈까 걱정이 된다는 멜라민보다, 분유 한 통 만드는 데에 지구자원을 너무 많이 갉아먹고 무너뜨리기 때문에 큰일입니다.





 아기를 키우는 어버이라 한다면, 사촌동생이든 선후배 아이든 둘레에서 아기를 보고 귀여워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간다면, 이런 세상 얼거리를 읽어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 키우기나 정치혁명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 돌보기나 사회운동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 키우기 하나가 세상을 바꾸고, 아이 돌보기 하나가 우리 삶을 거듭나게 합니다. 우리 눈을 트게 하고 우리 마음을 열게 하며 우리 몸을 새로워지게 합니다.

 아기를 고이 재우느라 허벅지에 눕혔기에 허벅지뿐 아니라 이제는 엉덩이도 쑤시고 온몸 안 아픈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이불 깔아 놓은 방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이 고운 목숨을 느끼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뜨거운 핏덩이가 꼼지락꼼지락 제 나래를 펴려고 숨쉬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옛 어른들은 다른 뜻에서 말씀하셨겠지만, ‘아이를 낳아야 참 어른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을 새삼 느낍니다. ‘세상을 아는 어른’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를 비로소 온몸으로 느낍니다. (4341.10.7.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문화도시 -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유승호 지음 / 일신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도시는 ‘재개발’ 아닌 ‘사람사랑’ 먹어야 자란다
 [잠깐 읽기 15] 유승호, 《문화도시》



- 책이름 : 문화도시,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 글쓴이 : 유승호
- 펴낸곳 : 일신사 (2008.7.9.)
- 책값 : 2만 원



 (1) 버린 삶, 거두어들인 돈


.. 문화도시는 ‘고립’이 아닌 ‘고독’을 즐기면서 세계와 평평히 연결되는 것이다. 미국의 아르코산티도,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도 모두 작고 ‘고독’한 도시들이나 전세계의 사람들이 몰려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인생과 세상을 함께 호흡한다 ..  (머리말)


 우리 나라 서울은 너무 큰 도시입니다. 남쪽에 있는 부산도 너무 큰 도시입니다. 가 볼 수 없어 모르지만, 북녘땅에서 평양도 너무 큰 도시가 아니랴 싶습니다. 서울이나 부산만큼은 아니지만 대전과 대구도 큰 도시입니다. 인천과 광주와 울산도 그에 버금가는 큰 도시입니다. 수원, 천안, 부천, 춘천, 안양, 구미, 마산, 통영, 진주, 전주, 익산도 자꾸자꾸 커다란 도시로 탈바꿈하고자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크게 되고자 하는’ 도시는 밖에서 내다보는 크기로는 커다랗게 되기는 할 터이나, 도시다운 빛깔은 하나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남다른 도시라는 빛깔, 이곳 아니면 볼 수 없다는 빛깔, 강원도면 강원도 전라도면 전라도 충청도면 충청도라고 하는 빛깔을 거의 보여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서울 빛’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부산 맛’이란, 대구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대구 냄새’란 무엇일까요. 따로 있을까요. 따로 있는가요. 부산에서 고갈비를 먹고 인천에서 삼치를 먹는들, 부산다움과 인천다움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천안은 왜 천안이고 청주는 왜 청주이며 남원은 왜 남원일까요.

 가만히 보면 도시만 도시빛이 없지 않습니다. 시골도 시골빛을 잃습니다. 시골사람 농사짓기는 더 많은 돈을 더 빨리 벌어들이는 데에 뜻이 있지 않았습니다만, 오늘날 우리 사회와 살림살이는, 시골도 시골답지 않게 도시도 도시답지 않게 바꿔 놓습니다.


.. 나폴리는 우리 나라의 부산과 달리 항구의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도시 내 건물의 크기와 규모를 제한하였다 … 도심재생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볼로냐는 1985년부터 도심을 6구역으로 나눠 역사적 건축물의 보존과 복원, 활용방안을 세밀하게 수립한다 ..  (18쪽)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만, 시골 기차역(간이역)은 시골 기차역이었기에 좋았습니다. 건물을 비슷비슷하게 지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시골 기차역은 가는 데마다 모두 다른 느낌이요 저마다 다른 빛깔이요 곳곳이 다른 냄새로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고속철도가 뚫리지 않던 때를 돌아보고, 고속도로가 나지 않던 때를 헤아려 보면, 우리 나라 전국 어디를 가도 ‘사람마음이 따뜻했다’고 했습니다. 한자말로 하면 ‘인심(人心)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돈 한푼 없이도 전국을 걸어서 돌아보았다는 말을 곧잘 들었고, 잠자리가 마땅하지 않아도 곁방 하나 어렵잖이 얻어서 지낼 수 있었다는 소리를 퍽 들었으며,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놓으면 된다는 밥나눔 이야기를 으레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전국 어디를 가도 돈이 없으면 이야기동무도 잠자리도 밥도 얻기 어렵습니다. 돈이 없으면 만나 주지 않고, 돈이 없으면 손사래치고, 돈이 없으면 거지를 왜 먹여살리느냐는 소리가 나옵니다.

 틀림없이 오랜 옛날과 견주어 우리들 살림살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나아졌으며, 우리 주머니는 그지없이 넉넉해졌고, 우리들 집크기와 차림새는 참으로 말쑥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물질만큼 우리들 마음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들 마음은 더 나아질 꼭대기가 없이 서로 오붓하고 조촐했을지 모르는데, 이 마음을 우리 스스로 버리고 주머니 채우기에만 바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유럽문화도시 프로그램의 성과를 보면,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럽의 문화도시 사업은 유럽 전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국에 문화도시를 지정함으로써 지역분산화를 이루었다 … 문화도시의 시초는 자연환경과 문화재를 바탕으로 눈에 띄는 랜드마크를 만들어서 도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관광객들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 바스크정부가 장기간 수립한 도시 재개발 전략은 고유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주거 지역을 보호하면서 관할 15개의 크고 작은 중소도시들을 각각의 지역 특성에 맞게 특화하는 균형적 발전을 유도했다 ..  (74, 93, 97쪽)


 지붕이 낮을수록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인사가 오가게 됩니다. 아파트로 바뀌어 층수가 올라갈수록 이웃과 멀어지게 되고 남남으로 갈리게 됩니다.

 굴리는 자동차가 없이 두 다리로 걸을 때에는 자기 마을을 두리번두리번 살피게 되고 꼼꼼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굴리는 자동차가 빨라질수록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지게 되고 동무조차 나 몰라라 하게 됩니다.

 주머니가 가난하니 나만큼 주머니가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머니가 두둑하니 두둑한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불리거나 키울까 하고 마음을 쏟게 됩니다.

 배운 것 많지 않으니 못 배운 대로 꾸밈없이 말하고 쉽게쉽게 풀어 나갑니다. 배운 것 많으니 배운 대로 꾸며서 말하고 갖가지 지식 섞인 말로 어렵디어렵게 비비꼽니다.

 낮은자리에 있으니 낮은자리 동무나 이웃을 눈여겨보며 서로 돌보고 서로 보살피게 됩니다. 높은자리에 있으니 높은자리 경쟁자 눈치를 살피며 서로 선물을 돌리고 서로 다른 이 자리에 눈독을 들입니다.

 돈을 얻고 싶으면 사랑을 버리라 했고, 힘(권력)을 얻고 싶으면 믿음을 버리라 했으며, 이름값을 높이고 싶으면 이웃과 나누지 말라고 했습니다. 돈하고 사귀니 사람하고 사랑을 하기 어렵습니다. 힘(권력)하고 사이가 좋으니 사람들과 믿음을 나눌 수 없습니다. 이름값에 따라 움직이니 이름없는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고 맙니다.


 (2)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곳


..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는 걸으면서 사색할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즐거움의 공간이 공존하는 도시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추구하는 일상적인 삶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  (260쪽)


 제가 사는 동네는 몇 해 앞서부터 ‘재개발’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고향 삶터만 바람 잘 날이 없지 않습니다. 서울도 부산도 대구도 제주도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재개발이 수없이 있고, 재개발에 따라서 보상을 해 주느니 분양값이 어떠느니 하는 말이 끊임없이 떠돕니다. 여태껏 당신들 집자리를 보금자리로만 여겨 온 분들이 몇몇 사람 쑤석거림에 하나둘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서, 이제 ‘집 = 보금자리’가 아니라 ‘집 = 돈굴리기 투자대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살 집이 아니라 좀더 비싸게 내다 팔 투기대상이 되어 가면, 자연스레 잃어버리는 집다움입니다. 집이 집다움을 잃은 마을에서는 사람이 오가는 길이 길다움을 잃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집과 학교를 오가며 느긋하게 걷던 골목길마다 짐차며 학원차며 자가용이며 마을버스며 끊이지 않고 오락가락합니다. 동무와 손잡고 나란히 걷던 길이, 골목집 담벼락에 바싹 붙어서 걷지 않으면 안 될, 때때로 아예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차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무섭고 메마른 길이 되고 맙니다. 시골길에도 길섶이 없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읍내나 면내 마실을 다니기 어렵지만, 도시 골목길에도 넉넉한 거님길이 없어지면서 어르신뿐 아니라 어린이도 젊은이도 아슬아슬한 찻길이기만 합니다.


.. 이렇게 바스 시는 온천 하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토양을 개발해서 관광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문화를 한자리에서 향유하게 하였다. 이 같은 사례는 현재 도시가 보유하고 있는 인적 자산이 무엇인가를 먼저 파악하여 이를 육성하고 관리하는 것이 물질적인 자산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148쪽)


 지금도 찻길이 많지만 더 많은 찻길을 자꾸만 늘리고 있는 우리 정부입니다. 늘어나는 자동차에 찻길을 댈 수 없음에도, 차를 줄이기보다 찻길을 늘립니다. 자꾸자꾸 새로운 차를 만들어서 자꾸자꾸 길바닥에 굴리게 해야 세금도 많이 걷히고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여기기 때문일 테지요.

 지금도 빈 아파트가 많지만 더 많은 아파트를 자꾸만 늘리고 있는 우리 정부입니다. 쏟아지는 빈집에 들어갈 사람이 모자람에도, 작고 소담스러워서 돈적은 이들도 걱정없이 살아갈 집이 아니라, 부동산 값 뻥튀기하는 데에 쓸모 많은 층수 높고 평수 넓은 비싼 아파트만 끝없이 지어대고 있습니다. 재개발을 해야 예산도 많이 쓰고 떡고물도 많이 나오고 세금도 자연스레 많이 걷힐 뿐더러 경제가 산다고 여기기 때문일 테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자동차가 늘어나고 아파트만 올라서는 땅에는 아무런 문화가 서리지 못합니다. 자동차 문명과 아파트 문명은 있을 테지만, 사람 사는 문화와 마을이 엮어내는 문화란 깃들지 못합니다.

 자동차와 아파트에 어떤 개성이 있습니까. 모두들 똑같은 회사원이 되고, 똑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사무직으로만 일한다고 할 때에, 그 도시에 어떤 개성이 있습니까.

 대물림하여 구멍가게를 꾸릴 수 있어야 도시에 개성이 있습니다. 대물림하여 이발소를 꾸리고 대물림하여 과일집을 꾸릴 수 있어야 도시에 빛깔이 생깁니다. 수십 수백 억을 들여서 짓는 도서관이 아니라, 역사 깊은 기와집이나 벽돌집을 잘 손질해서 동이나 면 하나마다 조그맣게 꾸리는 도서관이 될 때 비로소 마을 문화가 서리게 됩니다. 교보문고 무슨 지점과 영풍문고 어디 지점이 아니라, 동네에 고유한 작은 새책방과 헌책방이 골골에 뿌리내릴 수 있어야 비로소 마을 문화가 싹트게 됩니다.

 영어만 내세우는 특성화 고등학교나 영재 고등학교가 지역 교육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지역 문화를 북돋우겠습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는 집값이 넘실거리는 ‘새로 재개발하여 꾸미는 도심지’가 생명력을 품에 안을 수 있겠습니까. 길어야 열 해나 스무 해 지나면 다시 낡아버려서 또 재개발을 해대는 통에 길이 막히고 먼지 풀풀 날리게 되는 그 ‘새도시(신도시)’가 무슨 중심지가 되고, 무슨 일류도시 거점이 되겠습니까.


.. 어느 도시가 아름답다고 한다면, 이것은 도시의 어떤 특정한 부분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  (240쪽)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곳입니다. 공사를 하든 개발을 하든, 사람이 사는 곳을 ‘그동안 살던 사람’과 ‘앞으로 살아갈 사람’이 즐겁고 오붓하게 어우러지는 자리로 가꾸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만 살 수 있는 살림터가 아니라 돈이 적은 사람도 살 수 있는 살림터이어야 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한테만 즐거운 살림터가 아니라 적게 배운 사람한테도 살가운 살림터이어야 합니다. 자가용 모는 사람한테만 마음 기울이는 살림터가 아니라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모두 걱정없이 오갈 수 있는 살림터이어야 합니다.


 (3) 더 깊이 엮어내지 못한 책 《문화도시》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겠다면서 나온 책 《문화도시》를 읽습니다. 읽다가 몇 번씩 책을 덮고 책상맡에 밀어 두게 되었는데, 마지막 쪽을 넘기고 이제 더는 펼칠 일이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다 보니, 이 책은 여느 사람들이 읽을 책이 아니라 대학교재로 쓰려고 엮은 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행물윤리위원회 9월에 읽을 만한 책’ 열 가지 가운데 하나로 뽑히기도 한 책입니다만, 책장을 넘기는 내내 이 책을 누구한테 추천하고 누구한테 선물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라기보다는 유럽과 미국과 일본)에서 ‘문화도시’라 할 만한 곳을 몇 군데 뽑아서 짤막하게 소개해 주면서, 그 도시들이 어떠한 대목에서 훌륭하고 어떠한 대목에서 모자란가를 다루어 줍니다. 그러나 이 소개와 풀이가 여태까지 여러 가지 낱권책(다른 사람들이 쓴 낱권책 또는 논문)에서 찬찬히 다루어진 이야기를 간추렸다는 느낌이 들 뿐, 그 문화도시들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우리 사는 이곳에서는 ‘우리 나름대로 어떤 길을 찾으’며, 세계 곳곳에 있는 ‘문화도시는 그 나라에서 어떤 값과 뜻으로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꼼꼼하게 짚어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학문 열매로 ‘문화도시’를 풀이내리겠다는 글쓴이 마음은 읽을 수 있습니다만, 지금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한테 들려주려는 ‘한국문화와 한국도시’를 바라보는 눈썰미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문화를 보지 못하면서 한국도시를 꿈꿀 수 없고, 한국사람 문화와 삶을 찬찬히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 ‘한국 문화도시’가 나아갈 길을 짚을 수 없을 텐데, 왜 이러한 대목에서는 글쓴이 스스로 자기 길을 열지 못했을까 싶어 아쉽습니다.

 나라밖 학자들 학설을 소개하는 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낱권책 여러 권과 논문으로 흩어져 있던 이야기를 한두 쪽에 걸쳐 짤막하게 간추려서 모두어 보여주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이름부터 《문화도시》라고 내걸고,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겠다고 내세우고 있다면 아니지요. 두루뭉술한 학문탐구로, 또 나라밖 사례 가볍게 소개하기로 272쪽을 채우기에는 너무 모자라거나 엉성하거나 어설프지 않나 싶습니다.

 이 글을 마치며 판권을 살펴보니, “이 책의 출판은 교육부 누리사업의 교재출판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라는 굵은 글씨가 보입니다. 그렇군요. 대학교재 맞군요. 그러면 대학생들한테 읽히려고 쓴 책이라는 소리인데, 대학생들은 이 교재를 읽으면서 ‘문화도시’를, ‘한국문화’를, ‘한국도시’를, 그리고 ‘한국땅에 걸맞는 문화도시’를 어떻게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받아들여야 할까 걱정스럽습니다. ‘문화도시’는 책상 앞에 앉아서 넘기는 책과 자료에 있지 않을 텐데요. (4341.10.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