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이야기 - 아주 특별한 사막 신혼일기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79 ―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사하라’를 사랑해
 : 싼마오, 《사하라 이야기》


- 책이름 : 사하라 이야기
- 글쓴이 : 싼마오
- 옮긴이 : 조은
- 펴낸곳 : 막내집게 (2008.7.21.)
- 책값 : 9800원



 (1) 겨우살이와 우리 길


 이제까지 제가 얻어서 살고 있는 집 가운데 따뜻했던 데는 아직 없습니다. 옆지기와 함께 살며 아기도 낳고 지내는 이 집 또한 겨울에는 춥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추위를 덜 탄다고는 하여도, 함께 사는 이는 추위를 안 탈 리 없고, 저는 그럭저럭 견디고 손이 얼어도 비비고 녹이며 산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이는 몸을 옹송그리다가 괴로울 텐데, 제가 알아보며 얻는 집은 하나같이 추위를 잘 견디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넉넉한 돈으로 움직이면서 알아볼 수 없는 집이고, 제가 늘 짊어지고 다니는 여러 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간수할 만한 자리를 헤아리자면, 사람 삶이 고단할밖에 없는 응달자리에서만 맴돌게 되는가 싶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좀 따뜻하게 몸을 뉘이고 녹이고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고 싶은데, 우리 형편에 우리 동네에서 이와 같은 집자리가 나올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이 동네가 오로지 높은층 아파트로만 다시 때려짓는 ‘구도심 재개발’로 허물리게 된다면, 우리가 갈 곳이란 고향동네에서는 아무 데도 없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떠나야 하는 살림이 아니라, 이를 앙다물고 떠나야 하는 판입니다.


.. 나는 까무러칠 듯 놀라 할아버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물었다. “위대한 예술가여, 이것들을 살 수 있나요?” 나는 손을 뻗어 사람 얼굴 조각을 집어들었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투박하고 감동적인 자연의 창작물이라니! 빼앗아서라도 갖고 싶었다 … 나는 그날 밥도 먹지 않고 바닥에 누워 그 위대한 무명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동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사하라위족 이웃들은 내가 이 예술품을 사는 데 1천 페세타나 썼다는 것을 알자 나를 마구 비웃고 백치 취급까지 했다 ..  (233∼234쪽)


 옆지기가 말합니다. 겨울에는 집을 두고 따뜻한 데를 찾아서 나들이만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백일이 채 안 된 갓난쟁이를 안고 업고 다니기에는 수월하지 않지만, 옆지기 말마따나 그리 떠돌아다녀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떠돌아다녀도 달삯은 나가게 마련이라 만만찮은 달삯이 허리를 휘게 할 터이나, 혼자 꾸리는 삶이 아니기에 옆지기 말을 흘려들을 수 없습니다.

 한편, 추운 날엔 추운 대로 받아들이고, 더운 날엔 더운 대로 맞아들이면서, 몸은 고달프더라도 마음은 느긋하게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겨울이니 찬물에 언손 녹이며 빨래를 합니다. 여름이니 시원한 물에 더위를 씻으며 빨래를 합니다. 겨울이니 집에서도 옷을 여러 벌 껴입으며 지내고, 여름이니 집에서는 반바지 하나만 걸치면서 지냅니다.

 다만, 우리는 고단함을 부러 찾아나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골목동네에서 골목집 한켠에서 옹크리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아파트 같은 데에 들어갈 마음도 없지만, 아파트 같은 데에 들어갈 만한 살림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형편이 이러하니 이만큼 살고, 무언가 더 얻거나 가지고픈 마음이 없으니 이 자리에서 흐뭇하게 여기며 살 뿐입니다.


.. (운전면허) 시험지에 적힌 문제는 이러했다. “1. 차를 몰고 가는데 빨간불이 켜지면? (1) 그냥 지나간다 (2) 멈춘다 (3) 클랙슨을 마구 누른다. 2. 차를 몰고 가는데 횡단보도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1) 손을 흔들어 행인이 빨리 지나가도록 한다 (2) 무시한 채 지나간다 (3) 멈춘다” 두 장의 커다란 시험지에 적힌 문제들은 모두 이렇게 배꼽 빠지는 것들이었다. 나는 꺽꺽 하고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억누르느라 사레가 들어 혼났지만, 번개처럼 답을 써 내려갔다. 맨 마지막 문제는 이러했다. “차를 몰고 가는데 천주교인이 성모마리아상을 메고 지나가면? (1) 손뼉을 친다 (2) 멈춘다 (3) 무릎을 꿇는다” ..  (193쪽)


 엊저녁, 옆지기가 묻습니다. “당신, 만들고 싶어하는 국어사전을 만들지 못하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아요?” “그다지. 만들 수 있으면 만들겠지만, 만들 수 없으면 못 만들 뿐이지.” “나도. 못 만들어도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을 것 같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이고, 이 꿈을 이루려고 더딘 걸음을 참 더디게 걷고 있는 ‘국어사전 엮기’입니다. 우리한테 있어야 하는 국어사전이라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낱말을 어떻게 그러모으고 어떤 풀이와 보기글을 다는 한편, 어떤 짜임새로 내놓아야 하는가를 밑그림을 마련해 놓기는 했지만, 이러한 꿈을 이루면 즐겁고, 이루지 못해도 아쉽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할 뿐이지, 할 수 없는데 억지로 밀어붙일 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대로 하지, 주어지지 않은 몫을 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 돈이 넉넉하게 있다 한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제 일을 거들 도움이가 많다 하여 이룰 일이 아닙니다. 내 살림 흐름과 세상 흐름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할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살아오며 차곡차곡 읽고 곱새기면서 간직해 온 여러 가지 책들을 마련해 놓은 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들을 알아보거나 즐기려고 꾸준히 찾아와 주는 분들이 있다면 고맙기도 고맙지만, 저한테 고맙기보다는 그분들한테 고맙습니다. 그분들한테는 새 세상을 열 책길을 만나고, 새 눈길을 틀 책눈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야, 우리 도서관 책을 더 널리 나누지 못하더라도 아쉬움이 없습니다. 알아볼 사람은 언제든 알아볼 책이었고,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앞으로도 알아보지 못할 책인데, 이 책들이 어떻고저떻고 미주알고주알 떠들면서 ‘책 좀 읽으시지?’ 하고 옷소매를 잡아당길 수 없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백만 번 외친들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겠습니까.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중얼중얼 읊조린들 우리가 깨우치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 믿음을 나누자면 하느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를 깨우치려면 도 닦인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책으로 살고 책으로 믿으며 책으로 길을 걷습니다. 그 모양 그대로 책이 삶으로 되어 도서관을 동네 한켠에 열었 놓았을 뿐입니다. 가슴에 품은 국어사전 엮는 일 또한, 내 삶이 말이 되고, 말이 삶으로 녹아나고, 말마디와 글줄과 삶자락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도록 살아가기 때문에 꿈 하나가 됩니다.


.. “빨리 좀 몰아. 기숙사에 혼자 사는 친구들 불러다 저녁 먹자!” “생선은 절여 두고 먹을 거 아냐?” 호세가 물었다. “처음이니까 손님을 초대해 한턱 내자. 그 사람들 평소에 잘 못 먹잖아.” 호세는 무척 즐거워했다.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상자와 포도주 여섯 병을 사서 손님을 초대했다 … 여러 대의 자동차가 해안선을 따라 신나게 질주했다. 밤에는 야영을 하며 (물)고기를 구워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도 없이 나눴다. 이렇게 노는데 어찌 즐겁지 않을 수가! 돈을 모으려던 다짐은 알게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  (140쪽)


 (2) 앎 쪼가리와 사람 사는 길


 어제와 그제 밥을 태웠습니다. 이제껏 밥하기를 하며 밥을 태운 일이 없었는데, 밥을 태웠습니다. 밥을 하건 찌개를 끓이건 늘 옆에서 책을 펼쳐들면서 했으니 태울 일이란 없었는데, 어제와 그제는 방에서 언몸을 녹이면서 글쓰기를 하다가 밥을 태웠습니다. 그러나 탄밥은 탄밥대로 맛이 있었고, 까맣게 눌러붙지는 않았으니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다만, 어쩌다가 밥을 태울 만큼 마음을 놓고 말았나 싶어 속이 쓰립니다. 내가 이렇게 내 몸 하나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사나 싶어 허전합니다.


.. 하루는 이웃집 꼬맹이 라푸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집채만 한 낙타 시체가 문 앞에 놓여 있었고, 바닥은 시뻘건 피로 흥건했다. 나는 기겁을 했다. “엄마가 이 낙타를 아줌마네 냉장고에 좀 넣어 두래요.” 나는 고개를 돌려 조그만 냉장고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라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라푸, 엄마한테 너희 집 큰 방을 나한테 반짇고기로 쓰라고 주면, 이 낙타를 우리 냉장고에 넣어 준다고 해라.” 라푸는 곧바로 물었다. “아줌마 바늘이 어디 있는데요?” 당연히 낙타는 우리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라푸 엄마는 거의 한 달 동안 굳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단지 이 말 한 마디만 했다. “내 부탁을 거절하다니, 당신은 내 자존심을 건드렸어요.” ..  (122쪽)


 어제 우리 집에 온 《함께 웃는 날》이라는 잡지 3호를 보니, 장애 있는 아이를 둔 어느 어머님이 이런 말씀을 합니다. “만약 아이한테 장애가 없었으면 난 아주 극성스러운 엄마가 되었을 거다. 요즘 엄마들처럼 아이한테 마구 욕심을 부리며 괴로워하고 아이도 괴롭히지 않았을까. 다른 엄마들이 나보고 성격 좋다는 말 많이 한다. 그게 다 아이 덕분이다. 내가 겸손해졌다.(9쪽)”

 저도 느끼고 옆지기도 느끼지만, ‘남자’라고 하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삶이 얼마나 딱한지’ 모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못 느끼고 못 깨닫고 못 배우는 대목이 얼마나 많고 큰지 모릅니다. 세상 모든 일을 몸소 겪거나 부대껴야만 알지는 않아요. 그러나 말입지요, 몸소 겪거나 부대끼지 않을 뿐 아니라 눈길 한 번 두지 못하게 되는 매무새로 굳어져 가기 때문에 말썽입니다.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하고 길러 보지 못하니, 아이낳기와 아이기르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버릇합니다. 어린이를 어린이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여자를 여자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나라밖 사람들,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몸 한쪽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장애인을 장애인 그대로 껴안지 못합니다. 마음을 다친 사람들을 꾸밈없이 부둥켜안지 못할 뿐더러, 힘이 여린 사람과 돈이 모자란 사람과 이름이 없는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안지 못하고 맙니다.


.. 여자들은 모두 작은 돌멩이를 물에 적셔 몸을 문질렀다. 한 번 문지를 때마다 시커먼 때가 주룩주룩 밀렸다. 그들은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고 물도 많이 쓰지 않았다. 온몸의 때를 모조리 벗겨 내면 비로소 물을 끼얹었다. “4년 만이에요. 4년 동안 목욕을 못했어요. 난 샤이마에 살아요. 아주아주 먼 사막에 있는…….” … “당신은 왜 안 씻어요? 돌을 빌려 줄까요?” 그녀는 상냥한 표정으로 내게 돌을 건네주었다. “전 때가 없어요. 집에서 씻었거든요.” “때도 없는데 뭐 하러 왔어요! 목욕은 나처럼 3∼4년에 한 번씩 하는 거라고요.” ..  (92∼93쪽)


 우리 아버지를 보면서, 또 옆지기 아버지를 보면서, 또 동네뿐 아니라 서울이고 어디에서고 부대끼는 숱한 ‘남자’들을 보면서, 이이들이 얼마나 스스로 어리석은 줄도 모르고 이처럼 막나갈까 싶어 안쓰럽습니다. 지식으로만 알 때하고 몸으로도 알 때가 사뭇 다른데, 지식으로 좀 겉핥기를 해 보았다고 우쭐대는 사람이 많아서 놀랍니다. 겉핥기가 마치 모든 모습을 다 깨우친 일이라도 되는 듯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많은 모습을 보며 더 크게 놀랍니다.

 어쩔 수 없을까?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손을 놓아도 되느냐? 싶으면서도, 다 제멋에 따라 사는데 무어라무어라 할 수 있나? 싶으면서도, 나도 너도 우리도 누구나 다 지 잘난 줄 아는데? 싶으면서도, 숨이 자꾸자꾸 막힙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앞이 흐립니다.

 얼마 앞서 《논 생물도감》이라는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ㅂ출판사에서 농사일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나온 적이 있지만,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논농사’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게끔 다룬 책은 아직 우리 나라에서 한 번도 안 나온 줄 압니다. 그나마 밭농사 이야기를 다룬 책은 더러 있습니다. 감자 농사나 고구마 농사나 텃밭 농사 이야기는 좀 있습니다. 그리고 ‘뜰(정원) 가꾸기’ 책은 제법 많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늘 먹어야 한다고 하는 쌀을 어디에서 어떻게 가꾸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룬 일반교양책은 한 권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는 없어도, ‘전원생활’이나 ‘전원주택 생활’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는 있고, 꽤 팔리는 우리 형편하고 똑같습니다. 그래, 세상은 이렇게 돌아갑니다.

 늪을 다룬 책, 갯벌을 다룬 책, 산 이야기와 바다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많지만, 정작 논을 다룬 책은 참으로 드뭅니다. 논에서 농사짓는 이야기라든지, 논에 어떤 목숨붙이들이 살고 있는가를 다룬 책은 아예 눈씻고 찾아볼 수 없습니다.


.. 그리하여 우리는 현지 법원으로 가서 결혼 절차를 알아보았다. 법원 서기는 백발의 스페인 남자였다. “결혼하시게요? 아이고, 우리는 지금까지 결혼 절차는 한 번도 처리해 본 적이 없는데……. 당신들도 알다시피 여기 사하라위족은 자기네 풍속대로 결혼하니까 말이에요. 일단 법률책을 좀 찾아보고…….” 서기 선생은 책을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결혼 공증이라…… 아, 여기 있네요. 이겁니다. 출생 증명, 독신 증명, 거주지 증명, 법원 공고 증명…… 여자 분 서류는 대만에서 가져와야 하고, 다시 포르투갈 주재 대만 공사관에서 번역 증명을 받아야 해요. 증명이 끝나면 포르투갈 주재 스페인 영사관에서 공증을 받고, 그 다음에 스페인 외교부에서 심사를 받고, 심사가 끝나면 여기서 우리가 보름 간 공고를 하고, 다시 두 사람의 결혼서류를 마드리드로 보내 당신들의 과거 호적지 법원에 공고하고…….” ..  (26쪽)


 잘 익은 감을 먹으면 굵고 딱딱한 감씨가 나옵니다. 이 감씨를 심으면 무엇이 싹틀까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감 열매 얻는 감나무는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아는 이는 몇이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감을 안 먹는 한국사람 드물고 감잎차 안 좋아하는 한국 지식인 드물 텐데, 감씨를 심어서 무엇이 나오는지를 아는 사람은, 감잎이 어찌 생겼고 감꽃은 어떤 빛깔 어떤 크기 어떤 맛인지 아는 지식인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최순애 님이 지은 어린이노래 〈오빠생각〉을 아기한테 불러 주곤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잘못 알려진 노래말을 바르게 고쳐서’ 불러 줍니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댕기 사 가지고 오신답니다.” 이원수 님이 지은 어린이노래 〈고향생각〉도, 당신이 살아 계실 때 그리 고쳐졌으면 하고 바랐지만 사람들이 워낙 입에 굳어서 고치지 못하니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고 했던 아쉬움을 털어서 한 군데만 고쳐서 부릅니다. “우리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사람들 누구나 부르는 노래입니다만, 뜸북새를 본 젊은 사람은 이 나라에 없을 테고, 살구꽃 봉오리를 쓰다듬어 보면서 얼마나 곱고 향긋한가를 느끼고 나서 살구비누를 써 보는 사람도 이 나라에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저는 살구나무며 살구꽃은 보았어도 뜸북새는 못 보았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 나라에서는 뜸북새를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논에서 사는 뜸북새인데, 논에 비료와 농약 안 치는 농사꾼이 얼마나 됩니꺼. 뜸북새가 살려면 농사꾼이 낫으로 벼를 베어야 하는데, 기계 안 쓰며 가을걷이를 하는 농사꾼이 얼마나 됩니꺼. 우리 먹는 쌀에 농약과 비료가 얼마나 듬뿍듬뿍 쳐지고 있는 줄 압니꺼.


.. “언젠가 우리는 이 황량한 벌판에서 죽고 말 것 같아.” 나는 한숨을 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왜?” 차는 덜컹거리며 질주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달리면서 사막을 못살게 굴었잖아. 그의 화석을 캐고, 그의 식물을 뽑고, 그의 짐승들을 쫓고, 사이다병이며 종이 상자며 온갖 쓰레기를 그의 몸 위에 버려대고, 또 차바퀴로 마구 짓밟고 다니잖아. 사막은 그러는 게 싫대. 그러니까 우리 목숨으로 배상하래. 이렇게. 우우우우…… 우우우우…….” ..  (68∼69쪽)


 모르는 일은 잘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알면서 움직이지 않는 일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가지를 붙이고 싶습니다. 허튼 앎 찌끄레기를 잔뜩 붙잡으면서 맑은 앎 알맹이를 하나도 붙잡을 마음이 없는 일 또한 잘못이면서 더없이 큰 잘못이라고.

 교육이 말썽인 줄 안다면, 자기 딸아들한테 입시교육을 시킬 수 없는 데다가 섣불리 대학교에 보낼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교육이 말썽인 줄 알기에 사회와 정치도 말썽인 줄 알아야 하고, 사회와 정치가 말썽인 줄 알기에 경제가 말썽인 줄 알아야 하며, 경제가 말썽인 줄 알기에 문화와 예술도 말썽인 줄 알아야 합니다. 문화와 예술이 말썽인 줄 알기에 과학과 기술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하고, 과학과 기술이 말썽인 줄 알기에 환경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하며, 환경이 말썽인 줄 알기에 말과 글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합니다. 말과 글이 말썽인 줄 안다면 다시 교육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 돌고 돕니다. 어느 한 가지에서 고이거나 그치거나 맴돌지 않습니다. 교육비평을 할 줄 안다면 영화비평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영화비평을 할 줄 안다면 문화비평을 할 줄 알아야 하며, 문화비평을 할 줄 안다면 정치비평 또한 할 줄 알아야 하고, 정치비평을 할 줄 안다면 우리 말과 글 비평까지 할 줄 알아야 하는 가운데, 우리 말과 글을 비평할 줄 안다면 교육비평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다’는 사람은 무엇을 알고 있으려나요. 사하라에 사막이 있는 줄은 아나요. 그러면 사막이 왜 있는 줄은 아나요. 사막에는 누가 사는 줄 아나요. 사막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삶을 꾸리는 줄 아나요. 사막에서 살 때에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줄 아나요.

 한국땅에는 무엇이 있는 줄 아나요. 한국땅에서 살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나요.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으로서 즐겁게 살자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놀이를 하며 어떤 이웃과 동무삼으면서 살아야 하나요. 한국에서 꾸리는 삶이란 무엇인가요.


.. “축하! 축하!” “어? 천리안이 달렸나?” “감옥 옥상에 있는 죄수들이 말해 줬어.”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람들이 울타리 밖의 사람들보다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정말 나쁜 사람은 마치 전설 속의 용처럼 마음대로 커졌다 작아졌다, 숨었다 나타났다 하기에 붙잡을 수도 없고 가둬 둘 수도 없을 것이다. 점심 준비를 하는 사이에 호세더러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 콜라 두 상자와 담배 두 보루를 가져다주고 오라고 했다. 그들은 마치 고적대처럼 나를 응원해 주었다. 나는 그들을 깔보지 않았다. 나나 그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으니까 ..  (197쪽)





 (3) 사막을 사랑한 사람들 이야기


 1인 출판을 하는 ‘막내집게(인터넷 블로그 : blog.naver.com/makzip)’에서 첫 번째 책으로 《사하라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읽는(어쩌면 예전에 읽고도 잊어버렸을 수 있지만) 대만문학 ‘싼마오’ 작품인데, 출판사 블로그에 적힌 글을 살피니, 1990년대에 여러 번, 그리고 2001년에 마지막으로 옮겨지곤 했던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앞서 나온 싼마오 책은 모두 판이 끊어진데다가 정식계약을 해서 나온 책은 따로 없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1인 출판 길을 걷게 된 펴낸이이자 옮긴이께서는, 얼결에 출판등록을 해서 갑작스레 이 책을 옮겨서 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차례 나온 적이 있음에도 굳이 이 책을 다시 펴내는 까닭, 아니 새로 우리 말로 옮기고 새 옷을 입혀서 펴내는 까닭이 있습니다. 펴낸이이면서 옮긴이로서는, 당신이 “좋아하는 책”을 즐겨읽으면서 사랑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옮겨냅니다. 당신 마음을 사로잡았던 좋은 책이었기에 앞으로도 오래오래 많은 이들한테 사랑받으면서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 옮겨서 펴냅니다. 누구보다도 글쓴이 싼마오를 그리워하고 아끼기에 책을 낼 수 있고, 꿋꿋하게 출판사 문을 열고 있는 동안에는 다시는 《사하라 이야기》가 숨을 거두어 사라지는 일이 없을 테지요. 번역 글월도 ‘자기가 아끼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 땀을 들이고 마음을 쏟아서 알뜰히 여미어 내게 됩니다. 펴낸이와 옮긴이 두 가지 몫을 함께하고 있는 분은 “도대체 왜 싼마오가 호세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지? 중국어에는 존댓말도 없고, 둘은 오랜 친구 사이였는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 “우리에겐 왜 가구가 꼭 있어야 할까? 왜 사하라 사람들처럼 평생 자리 하나만 깔고 살 수는 없는 걸까?” “우리는 그들이 아니니까.” “왜 우리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지?” 나는 세 개의 판자를 껴안은 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면 그들은 왜 돼지고기를 안 먹을까?” 호세가 웃으며 반문했다. “그건 종교적인 문제지, 생활방식의 문제는 아니잖아.” “그럼 당신은 왜 낙타도기를 안 먹어? 기독교 신자는 낙타를 먹으면 안 되나?” “내 종교에서 탁타는 바늘구멍에 밀어넣는 데나 써먹지 다른 데는 안 쓴다네.” “그러니까 우린 가구가 있어야만 생활이 비참하지 않아.” ..  (218∼219쪽)


 사막을 사랑한 싼마오이고, 이런 싼마오를 사랑한 투박한 스페인 사내 호세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한테 따습고 넉넉할 보금자리를 사막에 마련했습니다. 누구 보란 듯이 마련한 삶터가 아닌, 서로 즐기려고 마련한 삶터입니다. 싼마오가 남긴 글 《사하라 이야기》는 사람들한테 읽히려고 쓴 글이라 할 테지만, 남들한테 읽히기 앞서 싼마오와 호세 둘이 보낸 발자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그저 두 사람 삶자락을 적바림해 놓았다고, 꼭 일기를 쓰듯 남겨 놓았구나 싶습니다.

 ‘사막으로 오셔요. 사막은 참 좋답니다!’ 하고 외치는 책이었다면 곧바로 덮거나 집어치웠을 텐데, ‘나는 사막이 좋아. 그래서 사막에서 살지.’ 하고 조곤조곤 말문을 여는 책이기에 책상맡이나 잠자리에 얌전히 놓고 쉬엄쉬엄 읽었습니다. 제 손을 떠날 이 책은 곧 ‘사막과 고래를 좋아하는’ 우리 옆지기 손에 쥐어질 테고, 옆지기는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아기한테 또박또박 읽어 주면서 함께 가슴으로 받아들이리라 봅니다.


.. 처음으로 사하라를 가로지르며, 우리는 둘 다 사막이 만든 사랑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이 황야를 결코 떠날 수 없게 되었다 ..  (225쪽)


 어느새 날이 밝아 자판이 다 보이게 되는군요. 이제 곧 해가 나면 집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질까요. 새벽바람은 쌀쌀하니 보일러 살짝 돌리고 밀린 기저귀 빨래를 해야겠습니다. (4341.11.19.물.ㅎㄲㅅㄱ)

***
중국 현대문학에서 손꼽히는 싼마오는 1943년 중국 쓰촨 성 충칭에서 태어나 대만으로 옮겨서 살았습니다. 마음 넓고 넉넉한 부모와 함께 살다가 틀에 박힌 학교에서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고 난 뒤 가정교육을 받았습니다. 스물네 살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고, 1973년 북아프리카 서사하라에서 스페인 사내 호세와 혼인하여 살아갑니다. 이곳에서 살던 이야기를 쓴 첫 작품이 《사하라 이야기》이고, 이 책에 쏟아진 사랑에 힘을 얻은 싼마오는 부지런히 글쓰기를 하게 됩니다. 그 뒤 《흐느끼는 낙타》와 《허수아비의 수기》와 《너에게 말 한 필을 보낸다》 들을 펴냈습니다. 그러다가 1979년 호세가 잠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싼마오는 대만으로 돌아옵니다. 문화대학에서 문학창작을 가르치며 글쓰기와 강연을 이어갔는데, 《곤곤홍진》을 마지막으로 1991년에 마흔여덟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대만 황관출판사에서 모두 스물일곱 권에 이르는 전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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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 3


 볼일이 있어 옆지기와 아기까지 함께 전철을 타고 서울 외국어대 있는 데까지 나들이를 합니다. 퍽 먼길이라서 아기도 걱정이고 옆지기도 걱정입니다. 이러한 걱정은 용산역에서 내려 뒷간을 갈 때부터 조금씩 불거지고, 서울역부터 땅밑으로 파고드는 전철을 타고 달리는 내내 깊어집니다. 아기도 힘들고 옆지기도 힘겨워, 같이 나들이를 하자고 이끈 아빠는 참 바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듭니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길기 때문에, 책을 세 권 가방에 챙겼지만, 머나먼 길을 오가는 동안 책은 겨우 두 번 펼칠 뿐입니다. 그나마 돌아오는 길에 아기며 옆지기며 고단한 잠에 깊이 빠져들었기에, 두 사람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책을 펼쳤습니다.

 갓난쟁이하고 나들이를 가야 할 때에는 책 펼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니면 두 사람을 돌보면서 둘 모두 새근새근 잠들고 나서야 비로소 애 아빠는 잠을 좇으면서 그 작은 틈을 쪼개어 책을 펼쳐야 하는지. (4341.1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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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 2


 차소리 시끄럽지, 손전화 소리 귀 따갑지, 사람들 수다 쟁쟁거리지, 우리 스스로 부처님처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책읽기는 어렵습니다. 자리에 앉기 쉽지 않으나 자리에 앉아도 옆에 앉은 이들이 밀거나 다리 벌리거나 신문 펼치면 고달픕니다. 서서 책을 읽는 동안, 밀고 치는 사람들한테 부대낄 때에도 힘이 듭니다. 잠깐 눈을 쉬고자 고개를 들면 수많은 광고판으로 눈이 아프고, 고개를 숙여 창밖을 내다보면 이번이 어느 역에 서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역마다 역이름 적어 놓은 자리가 너무 작고 글씨도 너무 작습니다.

 덜컹거림은 버스와 견주면 많이 적다고 할 전철일 텐데, 아예 없지 않을 뿐더러 썩 밝지 않은데다가 깜빡거리는 다 된 형광등이 제법 많고, 땅밑으로 들어가면 형광등 불빛은 흐려서 눈이 아픕니다. 더군다나 공기는 얼마나 나쁜지요.

 그렇지만, 바쁜 도시사람들로서는 일터에서 책을 못 읽고 집에 가도 책을 못 펼칩니다. 일을 마치고 책을 구경할 책방 나들이를 해 볼 엄두는 얼마나 낼 수 있을는지요. 그나마 저녁에 술 한잔 걸친 뒤에라도 전철에 몸을 싣고서 겨우겨우 책 한 쪽이나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달파도 벗이요 힘이 들어도 동무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사람들 북적이고 담배 냄새며 화장품 냄새며 갖가지 냄새가 범벅이 된 타는곳에 멀뚱멀뚱 다리 아프도록 선 채로 지하철이나 전철을 기다리며 책장을 펼치고 있으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온갖 힘겨움과 고달픔을 잊고 책나라로 뛰어듭니다. 그러다가 사람물결에 휩쓸려 전철칸으로 빨려들어가서 손잡이 하나 못 잡고 허우적거리노라면 애써 펼치고 있던 책은 구겨지고 몸도 구겨지고 마음도 구겨집니다. 그나마 나 혼자 구겨지지 않고 전철에 탄 모두가 구겨지니 마음을 달랠 수 있으려나요. 뭐, 조금도 마음을 달랠 만한 일은 아닙니다만.

 언제나 머나먼 전철길을 달리기 때문에(인천으로 돌아올 때는 끝에서 두 번째), 오징어가 된 채로 웬만큼 시간을 보내고 나면 숨통이 트이고 책을 펼칠 자리도 넉넉해집니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몸 고단함이 크기 때문에 책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어서 눈이나 감고 잠들어 버리고 싶은데, 감기는 눈을 부릅뜨거나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새힘을 북돋우면서 글줄 하나라도 읽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책 하나에 담긴 빛접은 줄거리를 새기자고, 달콤한 알맹이를 맛보자고, 시원한 이야기에 젖어들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십 분, 또는 이십 분, 이렇게 눈 부릅뜬 채로 책에 묻히고 있으면 어느새 없었던 힘이 차츰 솟습니다. 구부정했던 어깨가 펴집니다. 후들거리던 다리에도 힘이 오르고, 뒤숭숭하고 띵하던 머리도 살살 깨어납니다. 이윽고 마지막 역에 닿아 마지막 사람물결과 함께 전철역을 빠져나오면, 개미새끼 하나 없이 어둡고 고즈넉한 골목길. 홀로 골목길을 거닐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옆지기나 아기하고는 함께 나들이를 할 수 없던 날, 혼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빠는, 옆지기한테든 아기한테든 무어 선물할 만한 것 하나 손에 들고 있지 못합니다. 그저, 다시 찾은 맑은 마음과 몸뚱아리 하나로 집 문을 따고 들어가서, 하루 내 아기와 씨름한 옆지기를 달래고, 칭얼거림으로 엄마를 들볶은 아기 기저귀를 갈고 빨고 널고 말리고 개고 씻기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4341.9.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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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글쓰기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가 아버지한테 했다는 소리. “글을 쓰려면 그렇게 하지 마라!” 글쓰기란, 배부른 가운데 할 수 없고, 어깨에 힘주면서 할 수 없으며, 머리속에 든 지식을 자랑하면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들 된 사람으로서 아버지를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느냐만, 아버지가 글쓰기에 마지막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을 하셨다면, 나 또한 “아버지는 글을 쓸 생각이라면 이렇게 하시면 안 되지요!” 하고 말씀드리고 싶다. 글쓰기란 자기 삶을 낯모르는 사람들 누구한테나 숨김없이 내보이는 일이기 때문에. 글쓰기란 제 모든 피와 살을 남김없이 발라내고 도려내는 일이기 때문에. 글쓰기란 밥을 하듯 빨래를 하듯 걸레질을 하듯 품과 땀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일값을 알아주는 사람 없고 일삯을 쳐주는 사람 또한 없기 때문에. 글쓰기란 이 나라 농사꾼과 공장 노동자처럼 일한 대가인 품삯은커녕 밥푼이나 얻어먹을 만큼도 돈을 벌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가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앞으로도 그러고 살 거냐?” 글써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고된 줄을 당신 마흔 해 넘는 ‘글쓰기 삶’이 찬찬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나처럼 된다.”는 당신 말씀처럼, 아직 어려만 보이는 조카 같은 아이가 걱정스럽기 때문에. 나야 글줄 붙잡는다고 깝죽을 떨기는 할 터이나, 옆지기와 딸아이 앞날은 어둡고 배고프고 힘겨울 수 있기 때문에. 나야 글쓰며 나누는 보람을 얻을지 모르지만, 애써 쓴 글에 서린 땀방울을 알알이 느끼거나 받아먹어 줄 사람은 이 나라에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나야 내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고 할 테지만, 돈이 안 되는 글은 거들떠보지 않을 뿐더러, 시가 시 아닌 대접을 받듯, 우리 말 이야기나 헌책방 이야기 따위는 한물도 아닌 두물 세물 네물 닷물이 간 이야기인데다가, 세상 흐름과 거스르게 된다고들 여기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하고 처음으로 막걸리잔을 부딪히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 뻗어 버리고 새벽 세 시 오십사 분에 일어나서 차가운 마룻바닥에 놓은 셈틀 앞에 앉아서 아침 여덟 시 오십일 분까지 쉼없이 글을 쓴다. 어제 하루 내 못 쓴 글을 부지런히 쓰고, 오늘 하루 쓰고자 마음먹고 있는 글을 내 딴에는 야무지게 붙잡으며 쓴다.

 그러나 글만 쓸 수 없어서, 언손을 비비다가는 옆지기와 아기 자는 방에 불을 넣고 나서, 뒷간에서 따순 물이 나오니 기저귀 담근 빨래통에 물을 받아서 ‘손 녹이기 빨래’를 한다. 겨울이 다가오는 쌀쌀한 날씨에, 방에 불을 넣고 나면 보일러가 물도 덥혀 놓고 있기 때문에 이 물을 쓰면 빨래가 한결 손쉽고, 글을 쓰면서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 가는 손가락에 보드라운 기운을 입힐 수 있다.

 아직도 펄펄 날뛰는 모기 몇 마리를 잡다가는, 이제 나도 더 버틸 수 없어서 잠이 들어야겠는데, 잠을 잔다 해도 얼마나 자는 셈일까. 자기 앞서 콩과 쌀과 보리를 씻어서 불려 놓아야겠다. (4341.11.1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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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군대위안부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39
요시미 요시아키 지음, 이규태 옮김 / 소화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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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65 ― 일본은 ‘성노예’, 한국은 ‘성폭력’
 :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군 군대위안부》



- 책이름 : 일본군 군대위안부
- 글 : 요시미 요시아키
- 옮긴이 : 이규태
- 펴낸곳 : 소화 (1998.8.20.)
- 책값 : 6700원


 (1) 어머니 일과 집안일과 남자


 아기 손발톱을 자릅니다. 아기는 손톱이 길면 얼굴을 할퀼 수 있기 때문에 조금만 자라도 가위도 잘라 주어야 합니다. 어른들 쓰는 손톱깎이로는 아기 손톱을 깎을 수 없습니다. 여느 때에는 자를 수 없고, 아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을 때, 아니면 엄마젖을 물고 있을 때 자릅니다. 그러나 잘 때에는 발가락이 간지러워서 깨기도 하기에, 웬만하면 젖을 물 때 자릅니다.

 아기 손발톱을 자른 뒤, 옆지기 손발톱을 깎습니다. 아기를 낳은 뒤부터 오늘까지 아흔 날 하고도 이틀이 지났으나, 옆지기는 아직 제 몸을 되찾지 못합니다. 식사장애가 있는데다가 산부인과에서 받은 아픔이 모두 가시지 않기도 했지만, 갓난쟁이하고 늘 붙어 있어야 하다 보니, 집 바깥으로 바람 쐬러 나들이를 하기조차 힘들어서 마음이 지치는 바람에 몸이 함께 지칩니다.

 이리하여 손발톱을 깎아야 한다고 스스로 말은 하지만, 깎기 힘들어서 아기한테 젖을 물린 채 벽에 기대어 잠듭니다. 지아비는 옆지기 손톱과 발톱을 차근차근 깎습니다. 다 깎은 손발톱을 보는 옆지기는 “되게 바짝 깎네.” 하면서 “나는 이렇게 못 깎는데.” 합니다. “그다지 바짝 깎지도 않았는데.” 하고 대꾸하니, “바짝 깎아도 빨래를 못하니 손톱이 지저분하네.” 하고 이야기합니다.


.. 이 책은 종군위안부와 그 제도의 역사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서문에서 지적하듯이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는 그 실태를 은폐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일본군 성노예’ 또는 ‘군용 성노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전후 약 50년 간 무시되어 왔기 때문에, 그 본질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 이 책의 커다란 목적의 하나이다 … 문제가 되는 것은 위안소에서 강제, 미성년자의 사역, 징집시의 강제와 그에 대한 일본 국가의 책임이다. 나아가, 위안소 제도라는 군용 성노예 제도를 만들어 운영했다는 것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의 논쟁은 단지 위안부 문제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일본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인의 자긍이란 무엇인가라는 일본인의 역사 인식과 아이덴티티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의 민족주의적인 언설의 배경에는 한일 간 또는 일본인과 다른 아시아인과의 역사 인식의 차이를 좁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  (7, 8, 9쪽)


 두 여자 손발톱을 자르고 깎은 뒤 제 손발톱을 깎다가 잠깐 멈칫합니다. ‘빨래를 못하니 손톱이 지저분’해진다고?

 물끄러미 제 손톱을 들여다보고 발톱을 만져 봅니다. 참말 제 손발톱에는 때가 하나도 없습니다. 남들보다 손을 자주 씻는다고 할 수 없고, 아니 손을 씻는 일도 드문데, 손발톱에는 때가 조금도 없습니다.

 옆지기 말을 미루어 보니, 날마다 퍽 긴 시간을 아기 기저귀를 빨고 옆지기와 제 옷을 빠느라 보냅니다. 새벽마다 콩과 쌀과 여러 곡식을 씻어서 불려 놓습니다. 밥하기와 설거지하기를 도맡고 있습니다. 날마다 한 번씩 아기를 씻깁니다. 한두 주에 한 번씩 이불이나 담요를 한 장씩 빨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날마다 하지 못하기는 하나, 걸레를 빨아 방이며 나무벽이며 훔치고 닦습니다. 딱히 손을 씻는 때는 없지만, 참으로 긴 시간을 물을 만지면서 삽니다. 손에서 물기 가실 겨를이 없으니, 어쩌면 이러저러하는 동안 손발톱에도 때가 앉을 겨를이 없는지 모릅니다.


.. 일본이 개시한 전쟁은 대의명분이 없는 침략 전쟁이었고, 또 승리의 전망이 없는 무모한 전쟁이었다. 이와 같은 전쟁에 휴가 제도도 불충분한 채로 장기간 전장에 장병을 묶어 놓기 위해서 성적 위안이 필요하다고 일본군은 생각했던 것이다 … 일본군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육해군 전부가 전시에는 휴가를 주지 않았다. 더구나 병영 내에서 병사의 인권은 완전히 무시된 채 상관의 엄격한 감시와 사적인 제재가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  (65∼66쪽)


 우리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제 손은 제 국민학교 적 어머니 손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제 국민학생이었을 때 어머니 나이였는데, 어머니는 당신 나이와 견주어 다른 동무네 어머니보다 손이 누렇게 뜨고 마디가 굵고 주름이 많이 잡혀 있었습니다. 어머니 손에서 물기 마를 날은 거의 없었고, 잠깐이나마 자리에 앉아 쉬는 때는 거의 못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참 힘들게 살림을 꾸리시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어머니가 무엇 하나 심부름을 시켜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속썩이거나 근심하시지 않도록, 또 어머니 부업을 거들 수 있으면 거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왜 어머니(여자)들은 우리 어머니뿐 아니라 이웃 어머니들도 그토록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버지 술동무가 집으로 놀러오면 ‘왜 어머니들만 그렇게 술시중을 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머니한테도 술동무가 있어서 서로 놀러다니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녀차별’이나 ‘남녀평등’이라는 이름을 모르던 때이고, ‘성차별’이나 ‘성평등’이라는 낱말은 들어 본 적이 없던 1980년대에, 인천 제2부두 앞 조그마한 집에서 우리 집 돌아가는 흐름과 이웃사람 꾸려가는 삶을 지켜보면서, 내가 남자로 태어나 부끄러운 노릇이 아니냐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로 태어났어도 그리 좋은 꼴은 못 보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그만큼 내가 할 몫이 있다는 뜻이 아니랴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나는 우리 아버지, 또는 이웃 아버지, 또는 학교 남자 교사, 또는 동네 아저씨나 할아버지 …… 둘레에서 보고 부대끼는 숱한 남자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런 멋없고 짜증스럽고 안쓰러운 삶으로 내 앞길을 얼룩지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군인으로부터 성병을 옮겨 받은 것은 위안부들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더구나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성병에 걸려도 대단한 것은 아니라며 콘돔을 사용하지도 않고 습격해 오는 군인들도 적지 않았다 ..  (171쪽)


 또렷하게 언제부터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퍽 어릴 때부터였는데, 조그맣게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앞으로 커서 제금나게 될 때, 그리고 뒷날 누군가와 짝이 맺어져 함께 살게 될 때에는, 모든 집살림을 내가 하겠노라고.

 이런 꿈을 꾸면서 어머니가 하는 일을 찬찬히 돌아보게 됩니다. 동무네 집에 놀러가면, 동무네 어머님이 하는 밥과 반찬을 하나하나 살핍니다. 처음 보는 밥거리를 보면 어떻게 하는지를 꼭 여쭙니다. 집을 어떻게 꾸미고 사는지 둘러보고, 우리 집 꾸밈새와 다른 꾸밈새는 더욱 눈여겨봅니다.

 버리는 물건이 없도록 살고, 작은 물건 하나도 세월이 흐르면 역사가 된다고 느끼고 있어서, 과자봉지 하나도 안 버리고 모아 두는 버릇이 일찍부터 배어 있습니다. 딱히 다시쓰기를 한다고 배우지는 않았는데, 어머니가 다시쓰기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이 얼음과자 막대기는 어디에 다시 한 번 쓰고, 요 라면봉지는 어디에 또다시 쓸까 하고 머리를 굴렸습니다. 이것도 안 버리고 저것도 안 버리면서 모읍니다. 종이조각 하나도 책갈피로 쓰면 되고, 종이접기를 해서 갈무리를 해도 됩니다.

 한 번 혼인하고 한 번 헤어지고, 다시 한 번 혼인하여 살고 있는 이즈음, 혼자 살 때이든 둘이 살 때이든 집식구 빨래는 거의 제 몫입니다. 하기는, 집식구 밥도 제가 차려 주니까요. 옆지기가 아기를 배었든 배지 않았든, 부모님 집을 나와서 혼자 살던 1995년 4월 5일부터 이제까지, 혼자서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혼자서 집을 치우고 꾸미며, 혼자서 집일을 갈무리하고, 혼자서 밥차리고 쓸고닦고 손빨래하고 살았으니, 서른네 해 삶에서 열네 해 삶이나 집일과 밖일을 함께하는 셈입니다.
 

.. 일본 정부와 군은 조선ㆍ대만에서의 여성 징집에는 국제법상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하여, 조선과 대만을 위안부 공급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선인 여성이 위안부 징집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조선의 인구가 대만보다 몇 배 많고, 나아가 중국이 일관된 주요한 전장이었기 때문에 중국인의 동포인 대만인보다는 조선인이 위안부로 삼기에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 또 1956년 일본은 민간인 억류자의 사적 청구권을 해결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에 1000만 달러를 지불하였다. 그러나 억류자가 약 11만 명이었기 때문에 한 사람당 91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  (182, 208쪽)


 집일은 사회에서 거의 아무런 대접을 받지 않습니다. 다른 이 집에서 밥어미로 일한다면 달마다 100만 원은 쳐주기는 할 텐데, 자기 집에서 살림꾼으로 일하면 돈 한푼이 없습니다. 집살림은 따로 돈이 되기를 바라며 하는 일이 아니니, 돈으로 값을 칠 수 없으며, 돈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있어요. 보람도 있고요. 그러나 집일을 도맡으면서 밖일을 함께하기란, 이 나라 한국에서는 대단히 힘듭니다. 잠이 모자라고 손이 딸리고 몸이 축납니다.

 그래서 새삼스레 깨닫고 알게 되는 일이 많아요. 왜 이 나라 한국에서는 ‘여자 학자’가 드물고 ‘여자 지성인’이 드물며 ‘여자 글쓴이’가 적고 ‘여자 정치꾼’을 찾기 어려우며 ‘여자 사장’을 만나기 힘든지. 왜 ‘남자 무엇무엇’만 넘치는지.

 그러나 또 하나 새삼스레 깨우치고 알아차리는 일이 있습니다. 이제는 퍽 많은 여자들이 집밖에서 일거리를 찾으면서 움직이고 있는데, ‘남자가 집일을 몰라서는 안 되지만, 여자 또한 집일을 몰라서는 안 됨’을 말입지요. 집일은 한 사람이 옹글게 바로서고자 할 때에 몸과 마음에 새겨야 하는 일이라, 여자한테만 떠넘겨서는 안 될 뿐더러, 남자들이 손사래쳐서도 안 되지만, 집밖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남자든 여자든 멀리해서는 안 됩니다.

 왜 옛날부터 스승 된 분들이 제자한테 어떤 재주를 물려준다고 할 때면, ‘세 해는 빨래하고, 세 해는 밥을 하고, 세 해는 걸레질을 하고, 그러면서 부지런히 논밭을 갈게 하면서 아홉 해를 보내야 비로소 조금씩 일을 가르쳐 준다’고 했는지를 느껴야 합니다.


 (2) 살아내야 나누게 되는 성평등


 세 식구 손발톱을 자르고 깎자니 꽤나 긴 시간이 듭니다. 옆지기는 몸이 나아지만 제 손으로 제 손발톱을 깎을 테지만, 딸아이는 앞으로 얼추 열 살쯤 될 때까지는 지아비나 지어미가 깎아 주어야 합니다. 귀지가 쌓여서 파 주어야 할 때에도 지아비나 지어미가 파 주어야 합니다. 신발끈을 아이가 스스로 묶자면 이 또한 오래 걸릴 노릇이고, 양말 신기나 옷입기 또한 적잖은 세월이 흘러야 합니다. 이불 개기, 제 밥그릇 제가 설거지하기, 빨래하기와 개기, 걸레 빨기와 방바닥 훔치기, 밥하기와 찌개 끓이기 들은 언제쯤 스스로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은, 어버이 된 이 가운데 누가 아이한테 물려주거나 가르쳐 줄까요.

 우리 집에서야 아빠와 엄마가 함께 물려주고 같이 가르쳐 줍니다. 늘 서로 도와 일하고 함께 놀고 같이 나들이를 다니니, 아이는 엄마아빠 손을 하나씩 잡고 같이 나들이를 다니며 함께 놀고 서로 도와 일을 할 테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가 만날 또래동무들은 어떠할까요. 우리 아이가 차츰차츰 크는 동안 만날 손위 언니 오빠나 손아래 동생들은 어떠할까요.


.. 이미 검토한 바와 같이, 군이나 장교의 기록에 의하면 점령지에서의 강간 사건 방지 및 성병 예방이 위안소의 설치 목적이었다. 그럼 그 설치 목적은 달성되었을까 … 위안소 제도 도입이 강간 방지에 별로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위안부 제도란 특정 여성을 희생으로 삼는 성폭력 공인 시스템이며,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것이다. 한편으로 성폭력을 공인해 두면서, 또 한편으로 강간을 방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강간 사건을 방지한다는 본질적 해결에 이를 수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였다. 원래, 강간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범죄를 일으킨 군인을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먼저 행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육군 형법 규정 자체가 강간죄에 대해 관대하였다 ..  (56∼57쪽)


 혼자 살 수 없을 뿐더러, 혼자 살지 않는 세상이니, 내 몸과 함께 이웃 몸을 살펴봅니다. 사람 몸뚱이와 함께 자연 삶터며 자연 목숨붙이를 들여다봅니다. 나와 이웃이 모두 아늑하면서 느긋하게 살아야 하고, 사람과 자연이 모두 넉넉하면서 오순도순 지내야 합니다. 우리 나라와 이웃나라 어느 쪽에서도 힘이나 돈이나 이름값으로 올라서려 한다든지 깔아뭉개려 한다든지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남자와 여자, 또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이와 어른, 또는 어른과 아이, 장애인과 장애인 아닌 사람, 또는 장애인 아닌 사람과 장애인, 나라밖 사람과 나라안 사람, 또는 한국사람과 이주노동자, 배운 이와 못 배운 이, 또는 고졸 밑인 사람과 대졸자 들이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높은 다른 대접도 안 되고 낮은 다른 대접도 안 됩니다. 버스를 타건 전철을 타건 교통카드에는 똑같이 900원이 찍히는데, 우리들 일자리에 따라서 받는 일삯이 달라진다면, 세상 어느 누가 ‘일삯 적게 주는 쪽’에 일하려 하겠으며 ‘일삯 적게 주는 자리’를 고마이 여기겠습니까.

 사회가 골라야 삶이 고릅니다. 세상이 골라야 남녀 사이가 고릅니다. 정치와 경제도 골라야 하지만 교육과 문화도 골라야 여남 사이가 고릅니다. 사회가 고르지 않아 삶이 고르지 않을 때에는, 남녀 사이가 뒤틀리는 한편 명문대 바라보기 제도권 입시교육을 털어낼 수 없습니다. 세상이 고르지 않아 남녀 사이가 고르지 않을 때에는, 가난 푸대접과 일자리 푸대접이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휘감으면서 살맛 안 나는 하루하루가 됩니다.


.. 이러한 증언에서 분명해지는 바와 같이, 거의 대부분의 소녀들은 집이 가난하기 때문에 괴롭고 희망 없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그녀들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또한 여성 차별 속에서 충분한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1930년의 조선 국세 조사에 의하면 조선인 남성의 식자율은 36%이고 여성은 불과 8%였다 ..  (110쪽)


 옆지기와 저는 우리 딸아이한테 ‘사름벼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성운동에 뜻을 두거나 남녀평등에 마음을 두는 분들은 으레 ‘부모 성 함께쓰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와 같은 ‘부모 성 함께쓰기’가 뒷날 아이한테 끼칠 영향을 헤아리니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은 ‘부모 성’이지만, 알고 보면 모두 ‘아버지 성’일 뿐입니다. 우리네 어머니 성이라고 해 봐야, 어머니를 낳은 그 위 어버이 가운데 아버지 성입니다. 그렇게 이 나라 남자든 여자든 모조리 ‘남자 성’만을 물려받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부모 성 함께쓰기’를 한다고 해 보아야, 모두들 ‘아버지 성 겹쳐쓰기’가 될 뿐입니다.

 그래, 이런 어이없는 참모습이 그지없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뾰족한 수가 있고 힘이 있어서 이런 틀거리를 깰 수 있으랴 싶어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러면 “우리는 부모 성을 아예 안 쓰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나왔고, 법으로는 새로운 성을 만들 수 없을 뿐더러 성을 안 쓰면서 살 수도 없지만, 우리는 우리 집에서만큼은 성을 안 부르고 살기로 다짐합니다.

 딸아이 이름 ‘사름벼리’에서 ‘사름’은 아이한테 성이 되는 대목입니다. ‘벼리’는 이름이 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사름벼리’라고도 부르고, ‘사름이’라고도 부르고, ‘벼리’라고도 부릅니다. 다만, 아이 성이 ‘최’라고는 붙이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딸아이는 ‘사름벼리’일 뿐입니다.

 ‘사름’은 모내기를 할 때 첫 모가 며칠이 지나면서 처음으로 오르는 싱그러운 푸른빛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벼리’는 고기잡이를 할 때 쓰는 그물에 달린 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름’은 농사일을 소담스레 여길 줄 알라는 뜻이고, ‘벼리’는 바닷일을 알뜰히 헤아릴 줄 알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 가운데 먹고사는 대목, 농어촌을 고루 보듬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딸아이 이름에 담았습니다.


.. 사회운동ㆍ여론ㆍ의회 등 여성의 인권을 옹호하는 소리가 없는 한, 군대 그 자체가 위안소와 유사한 시설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일본이 특수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  (221쪽)


 요즘 우리 세상에 참 많이 떠도는 말을 몇 가지 꼽아 보라면, 첫째로 ‘생태환경’이 아니랴 싶습니다. 조금도 생태하고는 가깝지 않음에도 ‘생태’를 붙이고 ‘환경’을 붙입니다. 출판사들 가운데에도 생태환경 책에는 한 번도 눈길을 둔 적이 없음에도 세상 흐름이다 보니까 시늉 삼아 한두 권 내면서 환경책을 사랑하는 듯 생색내기도 합니다. 자동차에 넣는 기름을 만드는 회사에서는 ‘깨끗한’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는데, 휘발유가 깨끗하다면 얼마나 깨끗한지, 또 휘발유가 ‘자연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많이 떠돈다고 느껴지는 말은 ‘자유’와 ‘민주’입니다. 더욱이 우리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라고 내세웁니다. 정당 이름에 ‘자유’며 ‘민주’며 으레 들어가지만, 이분들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자율’학습을 시킨다고 하는데, 자유와 마찬가지로, ‘자율’ 또한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이 따위 이름을 지었는지 그예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계 곳곳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갖가지 끔찍한 전쟁무기를 수없이 만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민주주의를 퍼뜨리고 지키는 나라’라도 되는 양 여기면서 떠받드는 이 나라입니다. 총칼을 든 민주도 있는지, 몽둥이를 든 자유나 자율도 있는지, 저로서는 하나도 알 길이 없습니다.

 셋째로 많이 떠돈다고 느껴지는 말은 ‘인권’과 ‘평등’입니다. 사람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들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담도 높낮이도 없다고 하는데, 아무리 둘러보고 살펴보아도, 돈나라(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허울뿐인 인권이요 껍데기뿐인 평등만 도사리지 않느냐 싶어요. 이론으로 따지는 인권이 아니고, 지식으로 가리는 평등이 아닙니다. 삶으로 따지는 사람 권리이고, 몸과 몸으로 부대끼는 고른 자리입니다.

 생태이든 환경이든, 자유든 민주이든, 인권이든 평등이든, 이 모두는 우리가 이 모습 그대로 살아내는 가운데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생태를 살고 환경을 살아야 생태를 말하고 환경을 말할 수 있구나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유를 살고 민주를 살아야 비로소 자유가 무엇이고 민주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인권을 살고 평등을 살아야, ‘아하 인권과 평등이 이렇기 때문에 아름답구나!’ 하고 뼛속 깊이 받아들이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 종군위안부 제도라는 성적 노예제를 가능하게 한 의식은 현재 어느 정도 극복되어 있는 것일까. 공창제는 없어졌고 민법ㆍ형법도 개정되었으나, 전자는 개실이 딸린 목욕업으로, 풍속 관련 영업으로 형태를 바꿔 사실상 잔존하고 있다. 일본인의 해외 매춘관광이나 일본에 돈을 벌러 온 외국인 매춘부 등을 보면, 본질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성에 대한 사고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지 않다. 텔레비전ㆍ주간ㆍ만화잡지 등에 범람하는 누드나 노골적인 성 묘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성에 대한 규제가 없어진 정도에 비례하여 욕망이 무절제하게 표출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군과 비교해 보면 일본군에게는) 무기도 간식도 변변하게 없었지만, 매춘부는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인간으로서의 처절함은 본질적인 것이야.”라는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성에 대한 의식ㆍ문화는 전쟁 전과 전쟁중과 전후를 통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용인하는 점에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일본인, 식민지 여성, 점령지 여성을 불문하고 모두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학교 교육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받지 못한 여성들이었다. 매춘부 출신 일본인 위안부도 가정이 경제적으로 곤궁했었기 때문에 위안부가 되기 이전에 이미 미성년의 나이에 부모가 팔았든가 아니면 부모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졌던 것이다 ..  (245∼246, 248쪽)


 (3) 성폭력 나라와 성노예 나라


 일본사람이 쓴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읽어내고 거듭 새기면서 곱씹습니다. 이 책을 쓴 일본사람은 ‘일본은 씻을 수 없이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깨닫는 마음이었기에, 이와 같은 책을 엮어냈다고. 씻을 수 없이 부끄러운 짓이었기에, 이 일을 자기 스스로 안 잊고 자기 뒷사람 또한 안 잊게 하려고 책 하나를 야무지게 엮어냈다고. 일본사람으로서 앞으로 슬기롭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살아가고픈 마음이라서 이러한 책에 자기 삶을 바쳐서 엮어냈다고.

 한국사람이 쓴 ‘일본군 군대위안부’와 얽힌 책을 거의 모두 읽었고, 손에 닿는 대로 사서 집에 갖추어 놓았습니다. 저부터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와 함께 살아갈 우리 집 식구들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우리 형편으로 보건대 이런 이야기를 담은 책은 머잖아 하나같이 판이 끊어지리라 내다보았기에, 눈에 뜨이는 족족 사모았습니다.


.. 종군위안부 존재 그 자체는 전쟁이 참가해 본 경험이 있는 일본 군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그러나 이 문제가 여성에 대한 중대한 인권 침해이며 국가 범죄ㆍ전쟁 범죄로 연결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 전후 50년 간 사죄ㆍ명예 회복ㆍ개인 배상의 문제가 완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일본 정부의 이러한 자세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패전에 직면해서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공문서를 파기ㆍ인멸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 때문에 국가가 관여한 증거가 없다고 하여 이러한 발언이 가능했던 것이다 ..  (11, 12∼13쪽)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안 읽히고 안 팔리고 안 얘기 되는 책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람 사는 데에 더없이 소담스럽다고 할 만한 책은 어김없이 안 읽히고 안 팔리고 안 얘기 된다고 느낍니다. 이 가운데 ‘일본군 군대위안부’로 몸과 마음이 다친 분들을 다룬 이야기책은 참 안 읽힙니다. 안 팔립니다. 얘기도 안 됩니다. 더구나 이러한 이야기책을 엮으려는 사람마저 몹시 드뭅니다.

 한국땅 대학교에 역사학과 없는 학교가 드물고, 인류학과와 사회복지학과와 교육학과, 그리고 역사교육학과까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루거나 파헤치면서 우리 삶을 보듬으려고 하는 젊은이 눈길과 마음길은 너무 모자라거나 얕습니다.

 ‘일본군 종군위안부’가 되어야 했던 사람은 어디 먼 나라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 할머니였을 수 있고 이웃집 할머니였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야 했던 수많은 이 나라 여성들은 이 가시밭길에서 허덕여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맞이한 해방과 오늘날까지, 몸이며 마음이며 남성들한테 굴레가 씌워진 채 숨을 죽이며 울어야 했습니다.


.. 육군성 경리국 건축과와 육군군수품 본부는 공동으로 해외파견군에게 콘돔을 진중용품으로 보내고 있었다. 하야시의 연구에 의하면, 1942년 중에 보낸 수는 밝혀진 것만도 3210만 개나 된다 ..  (84∼85쪽)


 아무래도 우리 나라는, 이 나라 한국은, ‘성노예’를 만든 일본보다도 끔찍하다고 할 만큼, 모질다고 할 만큼, 여느 삶자락부터 ‘성폭력’이 휘둘러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일까요. 엉덩이를 쓰다듬고 가슴을 주무르는 성폭력만이 아니라, 우리 삶자락 구석구석 여성을 찬밥 대접할 뿐더러 밥어미로만 여기면서 깎아내리는 성폭력으로 말입니다. 집살림을 아주 하찮은 듯 여기면서, 이제는 젊은 남자도 젊은 여자도 집살림을 벗어던지려고만 하면서 말입니다. (4341.11.1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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