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가 나를 키웠어요 - 여자 축구 MVP 여민지의 꿈과 도전 이야기 명진 어린이책 18
여민지 지음, 이지후 그림, 이혜경 구성.정리 / 명진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축구스타 성공스토리’일 수 없는 ‘여민지 일기’
 [책읽기 삶읽기 37] 여민지,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


 축구선수 여민지 님은 발등으로 공을 톡톡 차는 훈련이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그저 공차기를 좋아하며 무럭무럭 컸습니다. 공차기를 하도 좋아하다 보니 축구선수가 되는 길을 걷고, 초등학생 때부터 ‘합숙 훈련’을 하면서 지냅니다. 공을 차는 선수는 하루라도 공 느낌을 잃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날마다 삼천 번쯤 ‘발등으로 공 튕기기’를 한다는데, 여민지 님은 이를 악물며 오천 번을 했다고 합니다. 성장통에다가 경기를 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수술을 여러 차례 했으나,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면서 오늘날처럼 한국에서 널리 이름난 선수로 우뚝 섭니다.

 이제 여민지 선수 움직임은 마치 연예인 움직임마냥 ‘실시간 인터넷 중계’가 되는 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여민지 님인데, ‘고향 방문 기사’가 뜨고, ‘연예인과 커플댄스 추는 방송’에 나오며, ‘청와대에서 불러 여러 운동선수와 함께 대통령을 만나’는 한편, 요즈막에 새로 펴낸 책 ‘출판기념 사인회’를 하기까지 합니다.


.. 일 주일 동안 훈련하면서 느낀 점 : 먼저 이론 공부. 많은 지식. 경게 대한 것을 많이 알게 되었고,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패스의 질과 테크닉 등 모든 훈련이 머리와 몸에 조금씩 터득한 것 같고, 원래 하던 운동과 달리, 다른 새로운 운동을 해서 재미있었고, 새로운 것도 많이 배웠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앞으로 하루하루가 아주 소중할 것이다. 감독 선생님께서 계속 계속 훈련시킬 것을 연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많이 배워서 하나하나씩 더 알고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지적해 주시는 점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리고 운동 시간에 집중력을 갖고 집중해야겠다 ..  (20쪽)


 여민지 님은 퍽 일찍부터 ‘축구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여민지 님한테 축구를 제대로 가르친 초등학교 축구감독이 그날그날 훈련하며 익힌 여러 가지를 ‘잘 한 대목과 잘 못한 대목’을 살피어 일기로 적어 보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축구를 하는 사람이니 아주 마땅히 축구일기를 써야 합니다. 야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야구일기를 써야 할 테지요.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일기를 씁니다. 운동선수 아닌 여느 초등학생이라면 ‘생활일기’를 씁니다. 곧,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 일기예요. 운동선수로서는 날마다 운동 경기나 훈련을 하니까 ‘운동일기’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아 일기를 안 씁니다. 일기를 안 쓰더라도 머리와 손과 몸과 마음으로 잘 갈무리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머리와 손과 몸과 마음으로 잘 갈무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글과 종이를 빌어 일기를 씁니다.

 지난날부터 이 땅에서 집살림을 도맡던 어머님들 가운데 ‘살림일기’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자한테 글을 가르치지 않았을 뿐더러, 글을 배운 여자는 살림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예나 이제나 온갖 집살림은 몸에서 몸으로 고이 이어집니다. 어디 종이나 책에 적어 놓은 이야기는 없는데, 손맛에서 손맛으로 손길에서 손길로 손품에서 손품으로 고스란히 이어옵니다.

 밥을 할 때에 쌀 몇 그램에 물 몇 그램을 넣어 불을 얼마만 한 크기가 되도록 장작을 얼마만큼 넣어 몇 분 동안 끓여서 뜸은 몇 분을 들이는가 같은 잣대가 적힌 일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밥솥은 크기가 어떠해야 하고, 밭솥은 어떻게 닦아서 건사해야 한다는 이야기 또한 한 차례조차 적힌 일이 없습니다. 걸레질은 어떻게 하고, 힘은 어떻게 주며, 바닥에 어떻게 꿇어앉아 어디부터 어디를 닦아야 하느냐 또한 ‘살림일기’ 같은 데에 적힌 적이 없고, 양반이나 지식인이 살림살이를 눈여겨보며 적바림해 준 적 또한 없어요.

 생각해 보면, 가장 훌륭한 일기란 ‘글일기’ 아닌 ‘몸일기’라 할 만합니다. 몸에 아로새겨서 몸으로 곧장 움직이도록 이끄는 일기야말로 가장 아름답다 할 만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축구만 생각하는 선수라면, 아주 마땅히, 모든 축구 훈련과 경기를 머리와 몸에 아로새기겠지요. 꼭 축구일기를 써야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되지 않고, 축구일기를 안 쓰면 축구를 못하는 바보가 되지 않습니다.

 여느 자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린이나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기를 꼬박꼬박 쓴대서 하루를 슬기롭게 돌아보거나 가만히 뉘우치지 않습니다. 일기를 건너뛰거나 거른다 해서 하루를 엉터리로 보내거나 하나도 못 떠올리지 않습니다.

 삶을 읽을 줄 아는 눈매가 맨 먼저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매무새를 가다듬고, 내 삶을 아끼듯 내 이웃 삶을 아끼는 몸가짐으로 이어가도록 되새기자며 일기를 씁니다.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여민지 님이 이름난 선수가 되었기에 이 일기책이 사랑받을 만하지 않습니다. 여민지 님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든지 그닥 이름없는 선수로 마무리했다면, 이 일기책을 누가 눈여겨보거나 값있거나 뜻있다 했으려나요.

 되레, 여민지 선수한테는, 치르는 경기마다 족족 잘못투성이에다가 골은 못 넣으며 지기만 했다면, 이러는 가운데 일기를 참으로 꼬박꼬박 쓰면서 스물을 넘기고 서른을 맞이하며 마흔까지 나아갔다면, 한결 값있으면서 멋있는데다가 뜻있다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일기는 자서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성공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자랑이나 광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그저 일기입니다.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보면서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돌본 어버이와 동무와 선생님들이 나를 키웠어요”라 말해야 올바릅니다.


- 낙하지점 찾아가서 점프헤딩으로 높게 멀리 클리어하고, 그 동작까지 연결한다. 킥타이밍에 물러났다가 볼이 짧으니깐 다시 올라서면서 heading 클리어. (29쪽)
- pude up 후 발목을 이용해서 in side, out side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tuch. pude up 후 v자 형식으로 방향 바꿔 가면서 sole 으로 drak back. (32쪽)
- 오늘 내 play는 전혀 마음에 드는 play를 하지 못했다. 볼소유도 못하고 자꾸 뺏기고, 상대에게 걸리고 잘 풀리지 못했다. (34쪽)


 여민지 님 일기를 보면, 온통 영어투성이입니다. 나중에 나라밖 여자축구단에서 뛰고픈 꿈으로 영어를 배우려고 영어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낱말만 영어로 적는다 해서 영어 공부가 되지 않아요. 참말 영어 공부를 하자면 ‘문장을 송두리째 영어로 적어야’ 합니다. 영어 공부 아닌 ‘축구일기’ 쓰기라 한다면, 일기에 섣불리 영어를 드러내어 적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기야, 남한테 보여주는 글이 아니라 혼자서 돌아보는 글이니,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여민지 님 마음입니다. 그런데, 축구란 어떻게 하는 경기인가요. 이 일기책에도 나오지만, 축구는 혼자서 펼치는 운동일까요, 운동장에서 뛰는 열한 사람과 뒤쪽에 물러나 앉은 감독들하고 후보선수가 함께 펼치는 운동일까요. 일기를 어떠한 글로 적어야 아름다운가를 여민지 선수 스스로 슬기롭게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다시금 생각하면, 여민지 선수 둘레에서 축구를 가르치거나 삶을 나누는 어른들이 모조리 영어를 아무 데에서나 함부로 쓰니까, 여민지 선수처럼 어린 사람은 이런 어른들 말투를 그대로 받아들일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이 ‘play’를 말하니까, 여민지 선수도 따라서 익숙해집니다.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를 덮으며 한 가지를 더 생각합니다. 이 일기책은 여민지 선수가 쓴 일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앞쪽에는 여민지 선수 일기 가운데 몇 쪽을 통째로 옮겨서 사진으로 붙였고, 뒤쪽 5/6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신춘문예에 소설이 뽑힌’ 분이 ‘구성·정리’를 했습니다. 뒤쪽 5/6 또한 여민지 선수가 쓴 일기에 담긴 줄거리라 하지만, 뒤쪽 이야기는 여민지 선수 목소리나 숨결이 아닙니다. 뒤쪽 5/6은 ‘일기 아닌 성공담’을 보여주는 위인전이 되고 맙니다.

 여민지 선수 일기를 책으로 묶은 명진출판사는 “제2의 반기문, 제2의 오바마를 키웁니다”라는 목표를 내걸며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만든다고 책 앞머리에서 밝힙니다. 곧, 이 일기책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는 “제2의 박지성” 뜻을 이룬 ‘축구스타 여민지’를 다룬 책이요, “제2의 여민지”가 태어나도록 하겠다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앞으로 여민지 님처럼 공을 잘 차면서, 공차기 하나로 좋은 뜻을 이루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하나둘 태어나는 일은 반갑습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합니다. 여민지 님을 축구선수로 키워 온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은 여민지 님한테 ‘공만 잘 차면 된다’고 했던가요. 김은정 코치님이 여민지 선수한테 했던 이야기(110∼111쪽)를 떠올린다면,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라는 책은 짜임새나 얼거리나 만듦새 모두 슬프며 안타깝습니다. 여민지 선수는 ‘잘난’ 축구선수가 아니라 ‘씩씩한’ 축구선수요, ‘이름난’ 대표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하며 즐겁게 놀 줄 아는’ 푸름이입니다. (4344.1.27.나무.ㅎㄲㅅㄱ)


―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 (여민지 글,이혜경 구성,이지후 그림,명진출판 펴냄,2011.1.1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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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71] 그린 화장실

 그냥 화장실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여기며 남달리 ‘그린 화장실’이라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한글로만 ‘그린 화장실’이라 적으면, 이곳이 어떠한 데인지 제대로 알릴 수 없겠지. 그나저나, 이곳까지 찾아와서 똥오줌을 눌 외국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모를 노릇인데, 외국사람이 ‘GREEN RESTROOM’이라는 이름을 바라본다면 무엇을 생각하려나. (4344.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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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70] GB, Good Bus

 식구들이 인천마실을 마치고는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우리 옆으로 재빠르게 지나가는 고속버스 한 대가 보여, 뭐 이렇게 빨리 달리는 버스가 있담 하고 놀라다가는, 버스 뒤꽁무니에 적힌 이름을 보며 더욱 깜짝 놀란다. 어마어마하 빨리 달리던 그 버스는 “GB, Good Bus”였구나. (4344.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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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20] ‘가장 많이 본 뉴스’와 ‘Best CLICK’

 ‘NAVER’에서는 ‘가장 많이 본 뉴스’라는 말을 쓰고, ‘PRESSian’에서는 ‘Best CLICK’이라는 말을 씁니다. 어떤 말을 쓰든 말을 하는 사람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글로 적든 한자로 적든 알파벳으로 적든, 적고픈 사람 마음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날, 신문이름을 한자로 적거나 알파벳으로 적는 ㅈㅈㄷ을 놓고 적잖은 ‘진보 좌파’가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꽤 예전부터 진보 좌파라 스스로 일컫는 이들은 글을 쓰든 잡지를 내든 강의를 하든 한자말을 버리고 영어를 즐깁니다. (4344.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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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사랑말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는 읍내 장날에 맞추어 바깥마실을 합니다. 읍내 마실을 한다고 읍내 모든 곳을 두루두루 누비지는 않습니다. 읍내로 마실을 할 때면 새삼스레 보거나 느끼는 모습도 많아요.

 저번에는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함께 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음성읍 끝자락에 자리한 ‘무지개 아파트’를 보았습니다. 시골 읍내에도 아파는 참 많으며 새로 짓는 아파트 또한 많은데, 이 가운데 수수하며 시골스러운 이름이 붙는 곳이 더러 있어요. 시골 아파트라 하면 영어보다는 토박이말을 사랑할 듯하다고 여길 만할까요? 시골 아파트라 해서 토박이말을 잘 쓰지는 않아요. 되레 영어나 한자말 이름이 많다 할 수 있어요. 도시 아파트라 해서 영어나 한자말 이름이 많을까요? 외려 ‘개나리 아파트’라든지 ‘진달래 아파트’라는 이름을 만나기도 합니다.

 다만, 아파트 이름으로 ‘무지개’나 ‘개나리’나 ‘진달래’를 쓰는 곳은 크기가 작아요. 영어나 갖가지 바깥말을 섞어서 쓰는 ‘xi’나 ‘來美安’ 같은 아파트들은 크기도 큽니다. 요사이는 ‘에코메트로’나 ‘에코빌’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더라고요.

 처음에 ‘에코메트로’나 ‘에코빌’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에는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이 또 얄궂게 이름을 붙이는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에코라이프’니 ‘에코우먼’이니 ‘에코러브’라느니 ‘에코북’이라느니, 더구나 ‘에코북시티’라는 말까지 나돌아요.

 환경운동이란 자연 터전만 곱게 지키자는 흐름이 될 수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란 자연과 사람과 삶이 한결같이 아름다우면서 참답고 착하도록 이끄는 흐름이 되어야 올발라요. 그런데 ‘환경사랑’조차 아닌 ‘에코러브’라 하거나 ‘푸른환경’이 아닌 ‘그린에코’라 하거나 ‘환경책’이라 않고 ‘에코북’이라 하면 어떻게 될까요. ‘환경마을’이나 ‘환경사랑마을’에서 살 수는 없을는지요. ‘푸른마을’이나 ‘푸른책마을’이나 ‘푸른꿈책마을’이나 ‘푸른사랑책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綠色’은 일본 빛이름입니다. ‘草綠’은 중국 빛이름이에요. 한국 빛이름은 ‘푸름’이나 ‘풀빛’입니다. ‘綠色’이란 ‘풀(綠) + 빛(色)’이고, ‘草綠’이란 ‘풀(草) + 푸름(綠)’이에요. 우리들이 이 나라에서 이 터전과 이 겨레를 사랑하면서 벌일 환경운동이라 할 때에는 참다이 한겨레 삶터에 걸맞게 어깨동무하는 일마당이 될 수 있어야 아름다워요. 삶과 터와 사람과 사랑과 말과 글을 한동아리로 살필 수 있어야 슬기롭습니다.

 참다운 살림집이란 사랑스러운 살림집이라고 생각해요. 착한 환경운동이란 믿음직한 환경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고운 말글이란 따스한 말글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들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만 예쁘장하게 꾸밀 노릇이 아니라, 우리 삶을 꾸밈없이 사랑하거나 아끼는 가운데 말과 글 또한 꾸밈없이 사랑하거나 아껴야 한다고 느껴요. 우리 스스로 내 삶을 꾸밈없이 사랑하거나 아끼는 결을 고스란히 환경운동으로 옮기고 책읽기로 옮기며 공부와 살림살이로 옮겨야 한다고 느껴요.

 두 가지 사랑말을 곱씹어 봅니다.


1. 책사랑 : 저는 책을 만들거나 쓰거나 읽는 일을 해요. 좋은 짝꿍하고 살림을 꾸리기도 하고, 어여쁜 아이를 돌보기도 하지만, 일찍부터 해 온 일은 책마을 책손으로 지내다가 책마을 일꾼이 되며 책을 만지는 일이에요. 저로서는 ‘책사랑’이라는 낱말을 퍽 예전부터 즐겨썼습니다. 저한테는 책사랑일 텐데, 아마 말사랑벗한테는 영화사랑이나 그림사랑이나 사진사랑이 될 수 있어요. 게임사랑이라든지 농구사랑이나 야구사랑이나 배구사랑이 될 수 있겠지요. 탁구사랑이나 수영사랑이 될 수 있고, 가야금사랑이나 기타사랑이 될 수 있어요. 노래사랑이나 춤사랑도 있습니다. 연극사랑이나 손말사랑이 있어요. 하느님사랑이나 부처님사랑이 있을 테고, 교회사랑이나 학교사랑도 있겠지요. 동무사랑이나 스승사랑이 있고, 동네사랑이랑 마을사랑이 있어요. 걷기사랑이나 자전거사랑이 있을 테며, 여행사랑이라든지 빨래사랑이라든지 있을 테지요. 말사랑벗한테는 어떤 사랑이 가장 애틋한가요. 말사랑벗이 가장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외국어사랑을 할 만하고, 누군가는 역사사랑을 할 만합니다. 철학사랑이나 과학사랑을 해 볼 만합니다. 문학사랑이나 로봇사랑도 좋아요. 엄마사랑 아빠사랑 누나사랑 언니사랑 동생사랑 오빠사랑 모두 좋고요. 사랑을 하기에 ‘사랑’을 한다고 이름을 붙입니다. 어쩌면 말사랑벗 가운데에는 이름 두 글자가 ‘사랑’인 벗이 있겠네요. 최사랑이나 송사랑이나 김사랑이나 박사랑이나 전사랑이나 이사랑이나 고사랑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이름은 어릴 적에도 예쁘고 푸름이일 때에도 예쁘며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어도 예쁘다고 느낍니다. 듣는 사람부터 즐겁고, 말하는 사람 또한 기뻐요. ‘사랑’ 두 글자를 혀에 얹어 살며시 내보낼 때에 보드라우면서 따사로운 기운이 서린다고 할까요. 저는 책사랑을 하는 가운데, 헌책방사랑을 함께 합니다. 그래서 헌책사랑이라는 말도 쓰고, 한동안 〈헌책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 조그맣게 소식지를 낸 적 있어요. 마땅한 노릇일 테지만, 〈우리말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소식지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짝꿍사랑인 사람사랑을 하고, 우리 집 두 아이를 아끼는 아이사랑을 합니다. 이와 함께 저와 옆지기를 낳아 길러 주신 어버이를 헤아리는 어버이사랑을 해야지요. 제가 뿌리내리며 지내려는 시골마을을 아끼는 시골사랑과 멧골사랑을 할 생각이며, 땅사랑 흙사랑 텃밭사랑 고구마사랑 감자사랑 나락사랑 배추사랑 무사랑도 하면서 살아야지요. 집식구들 함께 끓여 먹을 동태찌개를 앞에 둔다면 찌개사랑이 될 테고, 그러고 보니 날마다 밥사랑을 하는군요. 설거지사랑도 하고 걸레사랑도 하며 기저귀사랑도 합니다. 아, 이곳저곳 둘러보고 돌아보노라면 온통 사랑이네요. 버스를 타면 버스사랑이고 기차를 타면 기차사랑입니다. 이웃을 마주하면 이웃사랑이요, 제주섬 마실을 하면 제주사랑이며 섬사랑인데, 인천 골목동네 마실을 하면 인천사랑이자 골목사랑입니다. 사랑 아닌 일이란 없고, 사랑 없이 이룰 일이란 없어요. 이처럼 내 삶이 온통 사랑인 가운데 말사랑을 하고 글사랑을 합니다. 이야기사랑을 꽃피웁니다. 


2. 사랑편지 : 일본사람이 빚은 예쁜 영화에 붙은 이름은 ‘Love Letter’입니다. ‘러브레터’조차 아닌 ‘Love Letter’입니다. 일본사람은 한국사람 저리 가라 할 만큼 영어를 사랑합니다. 아마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라부레또’라 했겠지요. 그나저나 이 일본사람 영화를 한국사람이 즐기도록 들여오면서 ‘Love Letter’라는 이름을 고스란히 살렸고, 한글로 적어도 ‘러브레터’일 뿐입니다. 우리말로 알맞게 ‘사랑편지’라 적바림하지 않아요. 그래도 요사이에는 ‘사랑편지’라는 낱말을 그럭저럭 쓰기는 쓴다는데, ‘러브레터’라는 낱말처럼 두루 사랑받으면서 쓴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러브레터’라고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무언가 사랑스러운 마음을 나눈다고 여기지, ‘사랑편지’라는 이름으로는 썩 사랑스럽다고 느끼지 못하는가 봐요. 참말로, ‘사랑소설’이라는 이름조차 없이 ‘연애소설’입니다. ‘사랑영화’나 ‘사랑연속극’이라는 이름은 없고 ‘멜로물’이나 ‘애정영화’입니다. ‘사랑노래’는 낡고 ‘러브송’은 싱그러운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를 사랑해요”는 시답잖고 “알러뷰 코리아”는 귀여운지 알쏭달쏭합니다. ‘사랑라디오’는 고리타분하기에 ‘러브 에프엠’이라는 이름이 붙는지 아리송해요. 왜들 이렇게 우리 스스로 사랑을 나누지 못하며 살아가나요. 왜들 이렇게 나부터 사랑을 길어올리면서 오순도순 나누지 못하며 지내는가요. 이 나라가 사랑나라로 거듭나고, 이 누리를 사랑누리로 추스르며, 이 터를 사랑터로 가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담아 사랑글을 쓰고, 사랑글을 엮어 사랑책을 내놓으며, 사랑책으로 사랑넋과 사랑얼을 함께할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제 조그마한 사랑꿈과 사랑빛을 담아 사랑편지 몇 줄 적바림합니다. (4343.12.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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