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복호 사람들 - 김보섭 사진집
김보섭 지음 / 눈빛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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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부탁해’도 인천‘사람’은 못 담는데
 [잠깐 읽기 26] 김보섭 사진, 《수복호 사람들》



- 책이름 : 수복호 사람들
- 사진 : 김보섭
- 펴낸곳 : 눈빛 (2008.4.9.)
- 책값 : 2만 원
 





 (1)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지난주에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디브이디를 장만했습니다. 단돈 2000원에 나와 있기에 낼름 장만했는데, 셈틀에 넣어 돌리니 화질이 몹시 나쁩니다. 설마, 했는데 이 디브이디는 복제판이었구나 싶고, 그래서 헌책방에서도 5000원이 아닌 2000원에 거저 주듯 팔았구나 싶습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2001년에 개봉을 했습니다. 이 영화가 나올 무렵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나왔으며, 두 가지 모두 ‘시중 개봉관’에서는 그리 사랑받지 못하고 일찍 내려졌음에도, 몇몇 신문에서 끊임없이 소개하고 알리면서 차츰 사랑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시민모임에서 소매를 걷으며 영화 알리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무렵 여러 가지 신문기사를 얼핏설핏 읽으며 〈고양이를 부탁해〉가 얼마나 대단할까 궁금했습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때 회사사람하고도 보고 술동무하고도 보며 모두 세 번 극장에서 보며 눈가가 젖었기에, 〈고양이를 부탁해〉는 언젠가 디브이디를 얻건 아는 분 집에 놀러갔을 때 텔레비전으로 보건 볼 수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나날이 어느새 여덟 해. 영화가 나온 지 여덟 해 만에 비로소 집에서 옆지기와 아기와 나란히 앉아서 봅니다.

 영화에 나오는 다섯 여학생은 ‘인천에서 가장 좋다는 여상’인 인천여상을 나옵니다. 한 아이는 서울에 있는 회사에 일자리를 얻고, 한 아이는 아버지가 하는 찜질방 일을 돈 한푼 못 받으며 거듭니다. 한 아이는 중구 북성동 판자집에서 할매 할배하고 가난하게 살면서 텍스타일을 익힙니다. 다른 두 아이는 쌍둥이인데 화교학교 앞에서 길장사를 합니다.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살아가는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친 뒤’ 만날 일이 뜸해지고, 이 가운데 서울에서 일자리 얻어 살림집(자취방)까지 서울로 옮긴 아이는 더더욱 다른 네 아이 사이에 벽이 높아집니다. 인천을 고향으로 두었으나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일자리 얻어 살아가다가 살림집도 서울에서 마련한 제 둘레 선후배 동무들 또한 하나같이 ‘영화에 나오는 이 아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천에서 놀아 보았자 뭐 놀거리가 있느냐’ 여기고, 참말로 놀거리가 없는 인천이기도 하여 전철 타고 멀리 서울로 나들이를 가 보지만, 다시 인천으로 돌아올 전철은 저녁 열 시 반 무렵이면 끊기기 때문에 얼마 놀지 못하고 곧바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인천 중구 북성동 판자집과 골목길과 북성포구 들을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이때는 2000년일 텐데, 그 뒤로 꼭 아홉 해가 된 2009년, 얼마나 많은 모습이 남아 있는지 헤아렸을 때, 웬만한 모습은 안 남아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는 한편,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제법 많다는 데에 생각이 미칩니다. 시내버스는 달라졌고, 아이들(고등학교) 옷차림과 머리 모양은 바뀌었으며, 곳곳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는 그사이에 갑작스레 늘었습니다. 새 간판을 올린 가게도 많으나 예전 간판이나 처음 간판 그대로 빛바랜 채 고스란히 이어오는 곳도 많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흐른 영화를 보고 나서 ‘이게 끝이야?’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디브이디 겉에는, 그러니까 그때 나온 영화 포스터에는 틀림없이 “스무 살, 섹스 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고 적혀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네 갈래 모습 아이들한테서 ‘무엇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가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섹스 이야기’가 안 나왔을 뿐, 그러면 ‘무슨 이야기’가 나오느냐에서는 ‘글쎄?’ 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제 마음이 메말랐기 때문일까요. 제가 영화 보는 눈이 없어서일까요. 그러나, ‘인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인천에서 나고 자라다가 서울로 떠난 아이들’ 삶자락은 참 잘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떠돌고 맴돌고 하릴없는 모습들, 힘없고 풀죽고 여린 모습들, 고등학생 때까지는 막 기운이 넘치는 듯하다가도 학교를 마친 뒤 갈 곳 모르고 할 일 못 잡으며 쓸쓸해지고 낯빛이 어두워지는 모습들은, 어쩜 이렇게 인천사람 속내를 찬찬히 그려낼 수 있으랴 싶어 놀랍니다(그러나, 임순례 감독이 이 영화를 본 느낌을 적은 글(2001년, 한겨레신문)에서도 나타나듯, 저와 제 또래와 선후배들 학교 때를 돌아보면, 영화에 나온 아이들처럼 그렇게 까르르 우하하 웃으면서 놀았던 일이나 해맑은 듯 보여진 일이 거의 없었고, 늘 무엇엔가 눌려서 어두워야 했고 학교 안과 밖에서 교사와 깡패들한테 벌벌 떨면서 살아야 했던 일들이 줄줄줄 떠오르지만). 그런데, 어쩌면 인천사람 이러한 속내를 잘 담아낸 〈고양이를 부탁해〉라기보다는, ‘풋풋하고 싱그럽던 푸른 빛깔’이 학교를 마치고 저마다 다른 곳에서 고달픈 사회살이를 하면서 칙칙하고 쓸쓸해지는 모습과 느낌을 따오려고 인천이라는 데를 빌어 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인천 동구 만석동과 화수동, 중구 북성동과 송월동 둘레는 나라안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가난한 도심지 동네이면서, 예부터 부두 노동자와 조개와 굴 까는 아주머니들이 어렵사리 판자집 살림을 이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동화책이 나왔을 때, 이 책을 만석동 사는 동무녀석한테 선물해 주면서,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던 일을 떠올려 봅니다. 틀림없이 인천 만석동에서 ‘기찻길옆공부방’을 꾸리던 분이 인천 만석동이라는 데를 바탕 삼아서 살뜰히 여미어 낸 동화책이기는 하지만, 외로 치우친 눈길과 마음길 때문에 읽는 내내 거북했어요. 이야기 무대가 인천일 뿐,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자락’ 가운데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 이 삶자락으로 ‘이 땅 사람들 삶자락’과 어떻게 잇대어 이야기를 펼치려 했는지 갑갑했습니다. 만석동이며 화수동이며 송월동이며 송현동이며 송림동이며 창영동이며 금곡동이며 숭의동이며 관동이며 경동이며 유동이며 내동이며 전동이며 신포동이며 선린동이며 송학동이며 해안동이며 선화동이며 신흥동이며 도원동이며 화평동이며 항동이며 …… 코딱지 만하다고 할 만한 땅덩이가 조각조각 잘게 나뉜 이 오래된 동네 골목길은 ‘가난 = 어두움’만이 아니라 ‘가난하나 밝음’이 있고, ‘가난 = 괴로움’만이 아니라 ‘가난하기에 이웃과 더 나누는 마음’이 있으며, ‘가난 = 짜증 + 벗어나고픔’만이 아니라 ‘가난하면서 더 이웃사랑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 나름대로 이곳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려는 몸부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전에 앞과 뒤와 있다고 하듯, 골목길이라는 데에도 밝음과 어두움이 있습니다. 환함과 쓸쓸함이 있고 웃음과 눈물이 있습니다. 서러움과 흐뭇함이 있고, 반가움과 못마땅함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테두리와 울타리와 보금자리가 있는 우리 삶터입니다. 인천이든 서울이든 부산이든 대전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애틋하며 사랑스러운 이웃과 터전이 있는 한편, 고개를 돌리고 싶거나 내버리고 싶은 얄궂은 이웃과 터전이 함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이라는 데에서, 또 골목길이라는 데에서, 또한 인천 골목길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다니는 자그맣고 오래된 동네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얻어서 무엇을 우리들하고 나누려고 했을까요. 무엇을 나누게 되었을까요.
 





 (2) 사진책 《수복호 사람들》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사람과 인천땅 사진만 찍는 김보섭 님이 ‘인천 아닌 곳에서 전국을 무대로’ 책을 나누는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펴낸 사진책 《수복호 사람들》을 봅니다. 《청관》, 《한의사 강영재》, 《바다 사진관》 같은 사진책을 펴냈으나, 거의 눈길을 못 받았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인천 바깥’에서 눈에 뜨이어 이렇게 야무진 사진책 하나를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습니다. 지난 2008년 4월에.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책방에 들어가 ‘판매지수’라는 숫자를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웬걸. ‘0’이라는 대목에 그만 입이 벌어집니다. 그래도 그렇지, 나온 지 거의 한 해가 다 되어 가는 책인데, 판매지수가 ‘0’이라니. 아니, 인터넷책방 이곳에서만 판매지수가 0일 뿐, 다른 데에서는, 또 여느 동네책방에서는 사랑받고 있을지 모르는 노릇이겠지요.

 영화 〈고양이가 부탁해〉가 나왔을 때, ‘〈고양이를 부탁해〉 살리기 인천시민모임’이 최원식 교수를 앞장세워 일어나기도 했다는데, 동화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나왔을 때 ‘느낌표 책’으로 뽑히고 ‘기찻길옆공부방’이 전국으로 널리 알려지기까지 하며 크게 도움을 받았는데, 정작 인천이라는 데에 뿌리를 박고 인천이라는 데에서 밑바닥 삶을 꾸리던 사람들 자취가 담긴 사진책 《수복호 사람들》은 푸대접도 찬밥대접도 아닌 똥대접이라니.

 〈고양이를 부탁해〉를 아꼈다는 사람들 손길이라면,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눈물겹게 읽었다는 눈길이라면, 《수복호 사람들》에 담긴 바닷가마을 낮은자리 사람들 이야기에 조곤조곤 말을 붙이고 쫑긋쫑긋 귀를 세우며 토닥토닥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 아니,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 하는 풋생각일는지.


.. ‘조개 캐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1998년 인천 연수동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연수동은 갯벌을 흙으로 메워서 그 위에 만든 도시이다. 예전에는 물때에 맞춰 소달구지를 타고 나가 조개를 캐던 갯벌이었으나 삶의 형태가 바뀜에 따라 소 대신 트랙터를 타고 나가 조개를 잡던 곳이다. 인천이 고향인 나는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끈으로 묶은 장화를 신고, 양은 ‘다라이’를 끌고 다니며 열심히 조개를 캐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동구에 있는 만석동과 화수동엘 갔었다. 아직도 기찻길 옆에는 판잣집들이 남아 있고, 오래된 공장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서민들의 애환이 뒤엉켜 있는 곳, 그곳에는 이북 피난민들이 내려와 굴이나 조개를 캐던 생활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비닐로 벽을 삼은 작은 굴막에 들어앉아 끊임없이 굴을 까는 사람들의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곳은 인천의 과거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곳이었다 ..  (찍은이 말)
 





 찌뿌둥한 하늘이 비를 뿌릴 듯 말 듯한 낮나절, 옆지기 심부름을 받아 생협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자전거머리를 북성동으로 돌립니다. 답동에서 인현동으로 넘어가고,인현동에서 전동과 화평동을 스친 다음, 송월동1가로 접어듭니다. 그러면서 만석동과 잇닿은 북성동1가로 들어섭니다. 기차길과 고가도로가 맞닿아 있는데다가, 저 철길과 고가도로 건너편으로는 하늘을 뒤덮은 큰 굴뚝 공장이 가까이 바라다보이는 북성동에서 자전거를 내려, 고가도로로 올라가 보고, 천천히 골목을 거닐어 봅니다. 큰 개가 컹컹 짖어 더 못 들어가는 골목에서는 돌아나오고, 막혀 버린 골목에서도 돌아나옵니다. 굴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허물어져 가는 집을 쳐다보다가, 뒷짐 지고 걷는 할매 앞에서 꾸벅 고개를 숙이다가, 깃들인 사람 없어 비어 있는 집과 가게 앞에서 괜히 서성이다가, 조용히 사진 몇 장 찍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동일방직 들머리에서 잠깐 멈추어 다시 한 번 골목 안쪽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나옵니다. 우람한 공장과 창고 옆으로 올망졸망 붙어 있는 오래 묵은 집들 옆으로 자전거를 가볍게 스쳐 지납니다. 엊저녁에 본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떠올려 봅니다. 용케 이 동네 삶터를 잡아채어 참으로 살뜰하게 담아냈구나 싶으면서, 이런 삶터를 이런 동네를 이런 골목길 사람들을 무대로 삼은 생각바탕에 무엇이 있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고가도로에 올라서서 높직한 방음벽을 옆으로 하고 걷는 동안, 이 ‘산업도로 구실’ 고가도로를 지나는 컨테이너짐차와 원목짐차와 자동차짐차가 지나갈 때마다 덜덜 떨립니다. 고가도로 한켠에 서서 동네를 사진으로 담으려 하다가도 온몸이 덜덜 떨려서 도무지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저 무거운 짐차가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데에도 고가도로가 무너지지 않으니 용합니다. 그러면 이 고가도로 밑에서 살아가는 북성동 사람들과 만석동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한두 해도 아닌 기나긴 세월을 끔찍한 자동차 소음과 매연과 먼지들에다가 공장 소음과 매연과 먼지를 마시면서 굴을 까고 부두노동자로 일하고 중공업 공장과 유리공장과 제철소와 목재소에서 일했는데, 이 사람들 삶은?


.. 조그만 배로 인천 근해(경기도)에 조그마한 섬(무인도)을 다니며 굴(조개)을 채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복호를 타고 다니시는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이북에서 가족들과 피난 나온 분들이었고, 종종 전라도와 충청도 등에서 어렵게 사시다가 인천으로 올라오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아주머니들은 인천에서 굴을 따고 또 밤을 새워 굴을 까다가 연안부두에 나가 상인에게 팔고, 그 돈으로 쌀과 보리를 사서 생계를 이어오신 분들입니다. 그들이 싸 온 주먹밥은 보리쌀이 전부였고, 밀기울(밀겨)을 버무린 찬밥을 더운물에 말아 먹곤 하였습니다. 물론 당시는 경제가 어려워 온 국민이 어렵게 지내던 시절이었고, 수복호의 선장을 비롯하여 그 선박을 타고 다니는 아주머니들 모두가 어렵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다고 해서 불행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선장과 아주머니들 모두 한식구처럼 지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걱정해 주고 도와주고 슬픈 일에는 서로 위로해 주며 웃음을 잃지 않고 지내 왔습니다 ..  (머리글 / 수복2호 선주 최영식)


 지금 살고 있는 집이 4월이면 계약이 끝나는데, 만석동이나 북성동, 또는 송월동이나 화수동, 또는 화평동이나 송현동으로 옮겨 갈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남들은 살기 싫다고 나오는 동네이지만, 그래도 이 동네에는 아직 보증금 50에 월세 25만 원짜리 방, 보증금 100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 보증금 200에 월세 10만 원짜리 방이 있어요. 저는 보증금 100에 월세 10만 원짜리 방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4342.2.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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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자라는 물고기 - 목어 이야기 우리 문화 그림책 14
김혜리 글.그림 / 사계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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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문화’를 담는 그림책이라 한다면
 [그림책이 좋다 57] 김혜리,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



- 책이름 :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
- 글ㆍ그림 : 김혜리
- 펴낸곳 : 사계절 (2009.1.22.)
- 책값 : 9800원

 





 (1) 그림책을 펼치면서 즐거움


 절에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인 ‘목어’가 있습니다. 이 ‘나무물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교원청규》라는 책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두들기면서 마음닦이 하는 이들이 잠을 쫓고 마음을 맑게 다스리도록 도우려고 쓰는 나무물고기라고 합니다. 그림책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는 절에서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늘날 어린이들한테 절에서 흔히 보는 나무물고기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재미나고 싱그럽게 보여줍니다.

 어쩌면 오늘날 절은 산속 깊이깊이 들어가 있어서 이와 같은 나무물고기 하나를 눈여겨보기 어려울 수 있고, 절에 깃든 우리 옛 문화재를 이야기할 때에도 돌탑이나 대웅전이나 벽그림처럼 크게 앞세워지지는 않아 알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를 그려낸 분은 절집을 이루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에 담긴 애틋함을 잘 담아내었고, 이 애틋함을 돌아볼 만한 마음그릇이 되어야 비로소 절집에서 마음닦이를 하는 뜻을 스님들 스스로 돌아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책을 펴낸 ‘사계절’ 출판사에서도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우리가 찬찬히 헤아리지 못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우리 삶자락을 아이들이 하나하나 돌아볼 수 있게끔 해 주는 일을 하면서 어느덧 열네 번째 그림책을 선보입니다.

 저 또한 이 그림책을 보면서 절집에 매달린 나무물고기가 이러한 이야기에서 비롯했구나 하고 깨닫고, 나중에 절집에 가면 나무물고기를 좀더 애틋하게 쓰다듬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아기 엄마가 아기한테 이 그림책을 펼쳐서 보여주니, 아기도 크고작은 그림과 빛있고 빛없는 그림에 눈길을 보내면서 까르르 하고 재미있어 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또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혼자서 보기에 재미있는 한편, 아이 키우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함께 펼쳐서 보기에 즐거울 만한 그림책이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줄거리를 살펴봅니다. 그림책 주인공 이름은 ‘멋대로’입니다. 이 멋대로는 동자승이면서 큰스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고 허구헌날 장난만 치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장난과 못된 짓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병을 얻어 그만 일찍 죽었고, 죽은 뒤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는데 물고기가 되어서도 못된 짓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하늘은 다시 벌을 내려 이 아이 ‘멋대로’ 등에 나무가 자라게 하고, 이렇게 자란 나무 때문에 멋대로 물고기는 물속에서 움쭉달싹을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예전에 자기를 거두어 준 큰스님을 우연하게 만나서 잘못과 죄를 씻어내게 되고 ‘절에 매다는 나무물고기’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책 뒤에는 절집 문화와 역사, 그리고 나무물고기와 얽힌 이야기를 두 쪽에 걸쳐 실어 놓아서, 그림책을 보고 난 다음, 어버이와 아이가 ‘나무물고기’란 무엇이고 절집 문화와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를 찬찬히 살펴보도록 해 놓았습니다.
 







 (2) 그림책을 덮으면서 아쉬움


 다만, 책을 덮으면서 몇 가지 아쉽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엿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줄거리와 짜임새와 그림결’이기는 하나, 제멋대로 군다고 하는 ‘멋대로’라고 하는 아이는 왜 다른 아이와 달리 절집에서도 제멋대로 구는가 하는지가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에는 제대로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꼭 담아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듯한 주인공’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만, 그리고 이런 이야기까지 담자면 그림책이 너무 길어진다고 할 테지만, 그림책을 덮는 마지막까지 이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여 그림책이 그리 길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처음부터 못된 아이는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아야 한다는 느낌’을 넘어서, ‘이 아이가 제멋대로 굴게 되고 절집에 동자승으로 들어왔지만 큰스님이 큰스님답게 좀더 너그러이 아이를 보듬고 키우면서 애쓰는’ 이야기를 살며시 집어넣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애를 썼어도 멋대로라는 아이는 자기 삶을 찬찬히 되짚지 않고 더 제멋대로 까불면서 이웃을 괴롭히게 되었고, 이런 괴롭힘은 뒷날 고스란히 자기한테 돌아오게 되고, 이렇게 되돌아온 괴롭힘을 뼛속 깊이 느끼면서 ‘스님이 되어 마음닦이를 하는 뜻’뿐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서로서로 이웃과 동무가 되어서 살아가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짚는 데까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았나 싶어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림책 하나에 이 모두를 담아내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태여 이런저런 대목까지 짚어내야만 하지는 않아요.

 그저 그림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동자승으로 있는 아이들이 어떤 까닭에 아빠 엄마와 어릴 때부터 헤어져 절집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그처럼 제멋대로 굴던 아이였는지 나타나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을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한두 줄로도 얼마든지 살을 입힐 수 있으니까요. 군말이지만, ‘멋대로’라고 하는 아이가 이렇게 제멋대로로 굴 때, 동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아이한테 마음을 안 쏟게 되는 흐름, 또 큰스님도 이런 대목을 짚지 못하는 대목이 섭섭하지만, 이런 섭섭함을 담아내자면 ‘나무물고기’라는 그림책은 나올 수 없었겠지요. 덧붙여,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아이가 잘못에 따른 벌을 받고 뉘우치면서 나무물고기로 다시 태어난다는 옛이야기를 고스란히 살려야 이 그림책이 마무리될 테고요.

 그렇지만 이 그림책이 옛이야기에 새옷을 입힌 창작물임을 헤아리기 때문에, 여러모로 아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 아이가 마냥 멋대로 굴다가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아 마땅한 놈이 되고, 이리하여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았는데 다시금 잘못을 저지르고, 그런 다음 더 큰 벌을 받고서야 비로소 잘못을 뉘우치고 거듭 사랑을 받아 새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줄거리만을 보여주어도 될까 하는 생각 또한 문득문득 듭니다. 이만한 이야기로는 굳이 새 옷을 입혀 빚어내는 그림책으로는 좀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그래도 뜻있는 출판사에서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고 내걸기까지 했는데, 좀 아쉽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옛이야기에 바탕을 두어야 비로소 나무물고기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기도 할 터이나, 옛이야기에 살을 붙이면서 남다른 재미를 보탤 수 있는 한편, 우리 둘레에서 얄궂은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마음자리를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개구쟁이나 말괄량이가 아닌 ‘멋대로’가 되어 버린 아쉬움을 그저 따끔하게 꾸짖기만 하거나 아예 등돌리고 따돌리는 줄거리가 펼쳐지는데,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어른이나 동무 하나 없는 외로운 ‘멋대로’라고만 자꾸자꾸 느껴집니다. ‘외로운 아이가 외로움을 어찌하지 못하면서 그 외로움을 씩씩거리며 둘레에 화풀이를 해대는데, 이 화풀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 주거나 껴안아 주는 이웃이나 어른이나 동무가 하나 없어 더 외롭고 더 까불고 더 나대는 모습’이 아니랴 싶은 생각이 자꾸자꾸 듭니다. 마음닦이에 들어서는 스님들한테 가르침을 베풀고자 지어낸 나무물고기 이야기를 함부로 손대거나 어줍잖게 뜯어고쳐서는 안 됩니다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려는 생각이 앞서면서 정작 우리 삶과 사람을 더욱 따뜻하고 애틋하게 보살피거나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놓쳐 버릴 걱정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야기 끝에 가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대목에서도 ‘등에 갑자기 나무가 자라서 옴쭉달싹 못하는 괴로움을 겪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괴로움을 겪기까지 한 번쯤 살을 더 입혔더라면, 옛이야기 틀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한결 부드럽고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새이야기’로 태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을 더 들어 본다면, 그림책에 나오는 동자승 옷차림이 꼭 ‘우리 아이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때는 틀림없이 조선시대이고, 아이들은 절접 동자승입니다. 그리고 동네사람도 한복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승사자 옷차림만 ‘펑퍼짐한’ 옷이고, 발목을 동인 매무새이고, 동자승이나 동네사람이나 ‘발목이 훤히 드러나는 짧고 통 좁은 바지’입니다. 웃도리도 몸에 쫙 달라붙는 옷을 입은 동자승이요 동네사람입니다. 그런데 절집사람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 웃도리와 아랫도리가 이렇던가요? 우리 옷차림이 이렇게 ‘쫄티나 쫄바지’ 느낌이 나는 옷이었던가요?

 우리 한복은 ‘몸에 찰싹 달라붙도록 입지 않음’을 헤아린다면, 그리고 동자승한테도 ‘몸에 꼭 끼는 옷을 입히지 않음’을 돌아본다면, 비록 ‘그림책에 담는 새 창작 그림’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대목을 살리고 그 나름대로 북돋웠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책은 ‘그냥’ 그림책이 아닌 ‘우리 문화’ 그림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면 ‘우리 옷’이 우리 옷답게, ‘우리 집’이 우리네 집답게, ‘우리 사람’이 우리 사람답게 그려질 수 있는 바탕에서 새로운 창작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342.2.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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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84 ― 하루에 2분만 들이면 세상을 바꾼다
 : 마조리 램, 《2분 간의 녹색운동》


- 책이름 : 2분 간의 녹색운동
- 글 : 마조리 램
- 옮긴이 : 김경자, 박희경, 이추경
- 펴낸곳 : 성바오로출판사 (1991.6.10.)



 (1) 아기를 생각하는 삶


 며칠 앞서입니다. 어느 소설쓰는 분을 만난 자리에서 이 소설쓰는 분을 아끼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술잔도 부딪혔는데, 제 앞에 앉으신 분은 아이를 둘 키우는 아주머니였고, 두 아이를 모두 천기저귀를 손빨래 하며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신한테 돈이 더 많았다면 그렇게 천기저귀를 쓰지 못했으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천기저귀 손빨래를 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할 일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기저귀 빨래만 해도 된다면, 천기저귀 빨래가 수월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할 만할 수 있지만, 아버지 된 이는 아이 키우는 일에 팔짱을 끼고 있는 가운데 두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가르치고 하자면 어머니 된 이는 몸이 죽어납니다. 그러니 저절로 ‘한 가지라도 손이 덜 가는 일’을 찾을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종이기저귀를 사다 쓰는 일도 고달픕니다. 부지런히 저잣거리 나들이를 해야 하며,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다 보면 군물건에 눈길을 빼앗길 뿐더러, 꽤 긴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아기를 업고 안고 무거운 종이기저귀를 들고 오기도 벅차, 자동차를 끌게 됩니다. 자동차를 끌면서 길에 기름값을 버리게 되고, 또 자동차에 들어가는 보험삯이며 다른 돈이며 ……. 돈이 있어도 할 만하지 못한 일이 ‘종이기저귀 쓰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종이기저귀를 쓰면서 나오는 이 쓰레기들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 삶터를 더럽히고 맙니다.


.. 나는 베이비붐 세대였으나 생활습관은 공황시대에 성장한 나의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분들로부터 얻은 교훈들은 다음과 같다. 새옷을 사는 것을 보류하고 낡은 것을 기워서 입는다. 애채는 직접 재배해서 저장한다. 작은 나무조각이나 종이조각, 쇳조각도 쓰이는 곳이 있다. 적게 사들이고 수리를 많이 한다. “직접 만들어라, 낡을 때까지 입어라, 끝까지 사용해라.” 어릴 적의 인상적이었던 검약의 필요성이 환경 시대에서는 미덕이 되었다 … 정치가와 정부와 기업이 무엇인가 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단정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자신의 집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해야만 한다 ..  (14∼15쪽)


 아기를 안고 업고 나들이를 다니는 우리 식구를 보는 이웃 분들은 ‘그러지 말고 작은 차라도 한 대 장만하지?’ 하고 말을 합니다. 예전에 저 혼자서 책방 나들이를 하며 가방이 미어터져라 책을 장만하면서 땀 뻘뻘 흘리고 나르는 모습을 볼 때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우리는 자동차를 장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들 수 있을 만큼 책을 장만하여 들 뿐이고, 아기와 함께 다닐 때 챙겨야 하는 기저귀 짐보따리는 마땅히 어버이로서 짊어질 보따리이거든요. 그만한 보따리 하나 몸뚱이로 짊어질 수 없다면, 어버이 되기를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방이 미어터지든 가방으로 모자라 두 손으로 더 챙겨 들어야 하든, 스스로 짊어지거나 들고 나를 만큼만 책을 사들이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종이기저귀 생산자나 소비자들은 그 편리성을 떠들어댄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편리할까? 종이기저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장에 갈 때마다 기저귀를 사야 한다. 기저귀를 다 쓰면, 그것을 사러 일부러 시장까지 가기 일쑤다. 천기저귀를 쓰면, 세탁기에 집어넣는 1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면 되는데, 이렇게만 하면 2년 반 동안 아이는 계속 기저귀를 차게 되는 셈이다 … 종이기저귀를 쓰기 위해 얼마만한 시간 동안 일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36∼37쪽)


 인천에서 일산까지 나들이를 다니는 길은, 자동차를 얻어 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리고, 전철로 돌고 돌아 버스 타고 들어가면 세 시간이 넘습니다. 자그마치 두 시간 넘게 벌어지는 길이라, 옆지기 부모님을 만나뵙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충북 음성에 있는 제 부모님 만나뵙기도 꽤나 벅찹니다. 대중교통으로는.

 그렇지만 이 거리를 자가용으로 움직인다고 치면 몹시 가깝습니다. 고속도로나 고속국도가 아주 잘 뚫려서 금세 씽 하고 찾아갈 수 있어요. 다만, 이 가까이 잘 뚫린 길로 다니는 대중교통은 없습니다. 시골사람들은 옆마을에 살아도 서로 느긋하게 오갈 차편이 없어요. 차를 타면 3∼5분 거리인데, 걸어가면 한 시간이 넘습니다. 버스를 기다리자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도 음성에 가며 버스 기다리기 힘들어 끝내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삯이 만칠천 원이 넘게 나와, 인천에서 음성까지 기차나 버스 타고 가는 삯보다 훨씬 더 나왔어요.

 나라에서는, 또한 지역자치정부에서는, 우리들이 대중교통으로는 움직일 수 없도록 하는 셈입니다. 오로지 자동차를 장만해서 굴리라고 하는 셈입니다. 자동차 굴릴 돈을 벌고, 자동차에 넣을 기름값을 벌며, 자동차 유지관리비와 보험삯 모두 벌라는 셈입니다.


.. 새로운 유행이 나오면, 신분을 의식하는 사회에서는, 필요하지 않아도 구입하게 된다. 옷감 가게는 여러 가지 테두리나 장식품들을 갖추고 있어야만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자동차회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마다 한 대씩 최신형 자동차를 만들고, 해마다 다른 모델을 생산하는 생산조직을 재정비한다. 당신이 새 차를 운전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그 차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아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도시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대중교통수단보다 자가용으로 더 쉽게 시내에 진입하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52주 중 1주 반 동안만 이것을 실행한다면 무엇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우체국까지 항상 자동차로 간다면 그곳을 자전거 타고 가는 지점으로 정하라. ‘직장까지 자전거로’ 가는 주일을 정하는 것은 어떨까? 안전하게 자전거를 세워 놓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달라고 직장에 건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주차장이 있는 직장이라면 자전거를 세워 놓을 장소 제공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  (60∼63쪽)


 일산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리고 일산 나들이를 하려고 집에서 떠날 때, 요즈음은 여행가방에 아기 기저귀와 옷가지를 그득그득 채우고 끕니다. 여행가방 바퀴는 플라스틱이라 오돌토돌한 길을 끌 때면 극극극 끌리는 소리가 참 큽니다. 왜 여행가방 바퀴에 고무를 대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걸어다니는 길이 ‘겉으로 보기에는 예뻐 보일’ 뿐, 정작 우리가 다니기에 안 좋다는 뜻입니다. 여행가방을 끌 때 극극극 큰소리가 나는 길에서는, 우리가 아기수레를 끌고 다닌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수레에 탄 아기는 덜덜덜 떨리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아야 합니다. 게다가 턱이나 계단이 오죽 많습니까. 1층 건물에도 턱이나 계단을 만들어서 ‘멋스럽게 꾸민’다고 합니다. 용산역이나 서울역 같은 데에는 자동계단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자동계단으로는 아기수레를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승강기라도 찾아보아야겠는데, 어디에 붙었는지 찾기가 퍽 어렵습니다.

 이웃에서 ‘아기수레 드릴 테니 쓰셔요.’ 하고 말씀하는 분이 여럿 되지만, 이러저러한 길 형편을 헤아릴 때, 우리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길이 이러저러해서 우리는 안 쓰려고 해요. 죄송해요.’ 하면서 손사래를 칩니다. 가방 짊어지고 아기 안고 다니자면 팔 빠지고 등허리 쑤실 노릇이지만, 어버이 몸이 좀 고달프다고 해서 갓난아기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세상이 이토록 ‘걷는 사람’을 헤아리지 않도록 내버려두거나 팔짱을 끼거나 모르쇠로 지냈던 우리 스스로를 탓하면서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 고달픔입니다.


.. 점심시간 후에 학교 쓰레기통을 본 일이 있는가? 넘쳐나지 않는가? 환경에 친숙한 학교 도시락에는 한 가지 간단한 법칙이 있다. 버려야 할 것은 도시락에 넣지 말라. 몇 가지 물건으로도 아이들은 몇 년 동안 쓸 수 있다. 플라스틱 봉투, 종이봉투, 개인용 음료수통, 그리고 플라스틱 랩을 사용하는 대식 플라스틱 점심그릇이나 헝겊 도시락가방이나 단열 혹은 진공병을 쓰도록 하라 … 아이들을 학교 시절에 일찍 바로잡아 놓으면 학창 시절을 거친 누구라도 녹색기준을 고수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있다 … 아직 멀쩡한 옷, 차, 그리고 살림집기들을 해마다 모조리 버리는 것을 우리는 어디서 배웠는가? 일찌감치 학창 시절의 영향으로 시작된 것일까? … 내 생각에 아버지는 가장 값있고 영원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주셨는데, 새 설계를 위해, 쓰던 물건을 간직하고, 이미 가지고 있으면 새 것을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 북아메리카에서 우리는 자원이 무한히 많은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쓰레기 치우는 날이면 어김없이 길가에 놓여 있는 값나가는 물건을 많이 보는데 모두 쓰레기 매립장으로 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  (117∼124쪽)


 늘 느끼는데, 더도 덜도 말고 내 아이를 생각해 보면 세상이 나빠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내 아이만 생각해도 세상이 나빠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는 내 아이를 생각하고, 어버이를 모시는 사람으로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나 아이가 없으면 동무와 이웃을 생각하면 됩니다. 나와 내 이웃과 내 동무가 다 함께 즐겁게 살아갈 세상이라 한다면 우리 세상은 어찌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꾸려야 하겠습니까. 어떤 물건을 쓰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놀이를 즐겨야겠습니까. 내 어버이와 아이와 이웃과 동무를 떠나, 내 몸 하나만 생각한다고 하여도, 우리들은 1회용품이란 어느 한 번이라도 쓸 수 없습니다.
 





 (2) 책을 생각하는 삶


 《2분 간의 녹색운동》이라는 그리 두툼하지 않는 푸른빛 책을 처음 알게 되어 읽은 때는 2000년 가을입니다. 책을 펴낸 곳은 ‘성바오로출판사’이고, 이곳은 천주교 책을 부지런히 내는 데이지만, ‘분도출판사’와 마찬가지로 ‘종교 테두리를 넘어서면서 사회와 삶과 사람을 돌아보는’ 책을 꾸준히 냈습니다. 요즈음은 꽤 뜸하게 되었지만.

 1991년에 나온 《2분 간의 녹색운동》은 이런 흐름, ‘종교를 믿는 사람도 읽어야 하지만, 종교를 안 믿는 사람도 즐겁게 읽을 만한 책’으로 나온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쉽게도 《2분 간의 녹색운동》은 ‘바오로딸’ 책방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안 팔리고 남은 책이 있는 ‘바오로딸’에는 있겠지만, 시중 새책방에서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오로지 헌책방에만 남은 책이 되었습니다. 더 아쉽게도 이렇게 좋은 책이 천주교회에서 두루 읽히지 못하는데, 어쩌면 천주교회 스스로 이 책이 판이 끊어지지 않도록 미사 때 알리고 교리 공부 하면서 함께 나누지 않은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말이지요.

 그런데, 천주교회뿐만이 아닙니다. 기독교회나 불교에서는, 또 천도교회에서는, 우리 삶과 세상을 돌아보는 책을 얼마나 가까이하면서 속깊이 받아들이거나 나누고 있을까요. 지율 스님이 《초록의 공명》과 같은 책을 펴냈을 때, 불교를 믿는 분들은 얼마나 이 책을 가슴으로 껴안으면서 받아들여 주었을까요. 아니, 찾아서 한 줄이나마 읽기라도 했을는지요. 알도 레오폴드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책을, 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책을 기독교회 사람들은 얼마나 가까이하면서 가슴으로 새기고 있을는지요.


.. 새로운 땅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물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물을 잘못 사용한다는 것은, 깨끗한 물의 원료가 없어진다는 말과 같다 … 물 절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라 : 매일 필요로 하는 물을 전부 내가 집까지 운반해 와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머리 위에 항아리를 이고서 … 우리가 집에서 사용한 세제들의 대부분은 배수구로 빠져 하수구로 흘러나가, 우리의 마실 물이 될 호수와 강, 하천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  (18, 28, 38쪽)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2분 간의 녹색운동》이 보이면 일부러 더 장만합니다. 저는 일찌감치 읽었지만, 옆지기한테 읽히려고 한 권 더 사고, 옆지기 어머님한테 선물하려고 한 권 더 사며, 우리 동네에 있는 송림동성당 신부님과 수녀님한테 선물하려고 한 권 다시 삽니다. 그러고도 또 보이면 또다른 이웃한테 선물하고자 집어듭니다.

 다만,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그날 바로 사지는 않습니다. 몇 번 나들이를 하면서 ‘우리 말고 다른 분들이 이 책을 알아보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립니다. 몇 달을 기다리고 나서 그예 안 팔리고 얌전히 꽂힌 모습을 본 다음, ‘어쩔 수 없네. 우리가 사서 선물해 주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 새하얀 것을 선호하는 것이 미덕인가? 이상하게도 심술궂은 인간행동 중의 하나가 누군가 청소를 쉽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면, 청결도의 기준을 높인다는 점이다. 진공청소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먼지가 침대 밑이나 옷장 뒤에 요즘보다 훨씬 더 많이 쌓여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 ‘춘계 대청소’를 하면서 그동안 쌓인 때나 먼지를 닦아냈다. 요즘은 매주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한다.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한 번 입어서가 아니라, 옷에 때가 있어야 세탁을 했다 … 어머니는 집의 구석구석을 문지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늘 네 명의 수선스런 아이들의 과제물, 학교 연극, 인형 만들기, 성쌓기 등을 도와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 덕분에 누구나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 인생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 볼 수 있는 시각을 유지하도록 하자. 창문테가 깨끗하지 않다고 친구들이 우리를 덜 좋아할까? ..  (42∼43쪽)


 새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사서 선물해 주는 책도 있습니다. 《씨앗의 희망》이나 《수달 타카의 일생》이나 《회색곰 왑의 삶》 같은 책은 헌책방에 잘 안 들어오기도 하지만(많이 안 팔리니까), 오래도록 꾸준하게 새책방에 남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틈틈이 선물해 줍니다. 또는, 쪽지에 ‘이러저러한 책이 있는데 참 좋아요. 책방 나들이를 하시면서 한번쯤 둘러보시고 괜찮으면 사서 읽어 보셔요.’ 하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흔히 《오래된 미래》나 《침묵의 봄》이나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나 《육식의 종말》 같은 책만 알고 다른 훌륭한 생태환경책에는 눈길을 못 돌리기 일쑤입니다. 《모래 군의 열두 달》 같은 책조차 제대로 알려지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그나마 잡지 《녹색평론》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두루 독자를 얻고 있는데, 잡지를 꾸준히 찍을 수 있을 만한 독자수일 뿐이지,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가다듬거나 새로워지도록 다스릴 만한 독자수는 아닙니다.

 어쩌면, 이런 독자수와 책 팔림새가 오늘날 우리 모습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눈높이요 우리 얼굴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움직임이요 매무새가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스스로 한결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스스로 더 물질문명에 젖어드는 사람이 되려는, 속보다 겉에 훨씬 더 마음을 쏟는 우리들 삶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 음료수 판매대에 가면 선택을 해야 하는데, 다양한 포장 때문에 혼란을 느낀다. 회수가능한 유리병, 회수불능 유리병, 재생가능 플라스틱병, 재생불가능 플라스틱병, 재생가능 캔 등이다.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첫 번째 선택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음료수를 사지 않는 것이다 … 헬스클럽의 회원이거나 스포츠센터의 직원인가? 회비를 냈다고 해서 자원을 남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다니는 클럽에서도 일회용 면도기의 사용을 권하는가? 집에서는 수건 한 장이면 될 것도, 거저 쓸 수 있다고 몸을 닦는 데 세 장씩 수건을 쓰는 건 아닌지? 수건 한 장마다 세탁하고 건조시키는 데 에너지가 든다. 회비에 포함됐다고 해서 20분 동안 샤워하지는 않는가? ..  (79, 92∼93쪽)


 저는 동네에서 ‘사진책 도서관’이라고 이름을 내걸며 꾸리고 있지만, 정작 제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책은 ‘생태환경책’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좋아하고 아끼면서 차곡차곡 그러모아 보아도 생태환경책으로는 책꽂이 두어 칸을 채우기 어렵습니다. 잡지를 빼고 낱권책으로는. 시중에 나오는 모든 책이 아닌 제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이웃하고 나눌 책으로는. 아니, 제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쯤 되면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까지 다 하더라도.

 참말로 오늘날 한국땅에서 생태환경책은 출판사에서 잘 안 냅니다. 잘 안 팔리니 잘 안 낼밖에 없는데, 오늘날 어느 누구라도 ‘환경 문제가 아주 큽니다’ 하고 말을 하지만, 정작 환경 문제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라고 해 보면 ‘쓰레기 안 버리기’를 넘어서기 어렵고, 요즈음은 ‘이명박 대운하’쯤을 겨우 건드릴 뿐입니다. 스스로 환경책을 읽어 보지 못했을 뿐더러, 어떤 환경책이 있는 줄 모르고, 우리 삶을 살리는 환경 문제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20세기 많은 질병들은 현대 건축자재들이 발명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집이나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콘크리트, 합성카펫 등 기타 물질들에서 방출되는 증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 우리들의 집과 아파트에는 플라스틱, 접착제, 페인트, 프롬알데히드, 용제, 방부제, 살균제, 살충제 등 유독물질이 함유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새 집에 어떤 유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  (136쪽)


 성당 반모임을 하러 이웃집에 찾아가 보면, 이웃집에 계신 분들 밥은 모두 하얗습니다. 오로지 흰쌀로만 밥을 짓습니다. 찌개며 반찬이며 조미료를 많이 치는 분도 있고, 조미료를 안 친다지만 유기농 곡식으로는 장만하지 못하곤 합니다. 으레 ‘비싸서 안 쓰지’ 하고 말하지만, 유기농 곡식이 비쌀 일이란 없는데, 이런 흐름을 붙잡지 못합니다. 성경에 적힌 좋은 말씀을 받아먹는 가슴이지만, 이 좋은 말씀을 자기 삶으로까지 녹여내지 못합니다. 신부님이 스스로 당신 삶을 바꾸며 ‘환경을 생각하는 밥먹기’를 말씀하고 알려주어도 이를 몸으로 받아들여 고치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오래도록 굳어진 버릇이라 못 고쳐지는지 모르지만, 믿음 앞에서는 ‘오래도록 굳어진 버릇’이 없음을 돌아본다면, 밥먹기에서도 이 땅과 사람을 헤아리는 매무새로 너끈히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친소 고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 ‘안 미치고 여물 먹고 자란 소 고기’를 먹자면, 이 땅에서 유기농 곡식을 빚어내고자 애쓰는 농사꾼들 땀방울을 도시사람이 즐겁게 사서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도 제 고향 인천은 천주교구 테두리에서 ‘대운하 반대’를 공식으로 내걸어, 몇 군데 성당과 답동 교구청에는 크고작은 걸개천을 내겁니다. 다른 지역교구에서는 이렇게 안 하지만. 또 다른 교구뿐 아니라 이 나라 수많은 기독교회와 절집에서는 아무런 걸개천도 안 내걸지만(종교 이야기를 들었지만, 천주교회에서도 몇 군데에서만 이렇게 ‘대운하 반대’를 공식으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걸개천까지 내걸지 않은 기독교회와 절집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도 합니다).
 





 (3) 덮지 않고 꽂지 않고 책상맡에 놓는 책


 다 읽고 또 읽는 책도 많지만, 다 읽고 또 읽은 다음 책상맡에 놓는 책도 제법 있습니다. 여러 번 거듭 읽어 줄거리를 꿰고 있기는 하지만, 늘 가까운 자리에 놓고는 둘레에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책을 소개할 때면 곧바로 집어들어서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2분 간의 녹색운동》은 저로서는 언제나 책상맡에 놓아 두면서 가끔 펼쳐 보기도 하고, 손님들한테 보여주기도 하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 나는 내 딸의 인생이 특별한 인생이기를 바란다. 나는 그 애가 맑은 공기를 숨쉬고 맑은 물을 마시며 건강한 음식을 먹고 푸른 지구를 즐기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아이들, 손자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같은 것을 원하고 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모두가 매일 작은 일 한 가지씩만 실천한다면 우리는 함께 지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  (16쪽)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옮긴이가 여럿이라 그러할는지  모르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두루 읽기에는 알맞지 않은 옮김말이 보이고, 얄궂은 말투가 많습니다. 제대로 가다듬어지지 못한 글월입니다. 또한, 미국에서 어느 만큼 잘사는 분이 자기 삶을 잣대로 삼아서 썼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한국에서 2분만 들이며 할 푸른운동”을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 같은 책처럼.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같은 책처럼. 그러나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는 ‘삶’보다 ‘지식과 운동’이라는 느낌이 짙고,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는 ‘스스로 문제라고 느끼지만 못 고친다’고 하는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서 ‘도시계획 대안찾기’에 머물고 말아, 일본사람 후쿠오카 켄세이 님이 쓴 《즐거운 불편》하고 견주어도 한참 뒤떨어집니다.

 우리한테는 ‘일본판 《즐거운 불편》’과 ‘미국판 《2분 간의 녹색운동》’을 ‘한국판 무엇무엇’이라고 내놓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책으로 새롭게 꾸며내도록, 우리 스스로 삶을 바꾸고 생각을 북돋우며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잔디밭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았는가? 잔디밭은 자연스럽지 못한 생태계이다. 단 하나의 종-잔디-을 넓은 지역에 기르기 위해 다양성을 사랑하는 자연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무성한 처녀림이 수천 종의 식물과 동물을 번성하게 하고 지탱하는 것처럼, 자연은 잡초와 벌레 그리고 다른 식물과 동물 들을 잔디밭에 자라게 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패배시키려고 한다. 우리가 잔디를 제외한 모든 것을 죽인다면 지구를 건강하게 하는 생명의 다양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잔디밭을 줄여서 얻는 이익은 잔디 깎는 일이 줄어들고, 유지하는 데 힘이 덜 들고, 물을 적게 주고, 창 밖에 흥미있고 다양한 경치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 우리가 사슴이나 비버, 물고기의 집을 마구 침입한다면 그 동물들은 우리가 떠난 후의 상태에 대해서 무어라고 생각할까? 인간들이란, 손님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며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을까? 야생의 자연이란 몇몇 눈에 띄는 동물들뿐만 아니라 수천 종류의 생명체들의 집이며, 그 중에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미생물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는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풍부하고 충만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 전에는 늘 호수에서 머리를 감았으나 나는 올해부터 머리감기를 그만두었다. 미생물분해가 가능한 샴푸를 쓸지라도 물속에 샴푸를 집어넣는 짓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호수에서 헤엄을 치고, 사람들은 낚시를 하며, 새들은 호숫가에 집을 짓고 물가를 따라서 물풀들이 자라고 있다. 샴푸는 해양생태계에 본래부터 있었던 자연적인 요소가 아니다 ..  (167, 180∼181쪽)


 혼자 살아가는 땅이 아니니까요. 혼자만 잘살면 그만인 터전이 아니니까요. 혼자면 잘되면 즐거운 삶이 아니니까요. 전우익 님 책이름 그대로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입니다. 이오덕 님 책이름 그대로 “나무처럼 산처럼” 꾸려갈 우리 삶입니다. 권정생 님 책이름 그대로 “하느님의 눈물”을 받아먹으면서 나누어야 할 사랑입니다. (4342.2.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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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놀소동
전수일 지음 / 작가마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89 ― 돈바라기 삶이 ‘페놀소동’과 ‘경부운하’ 부른다
 : 전수일, 《페놀소동》



- 책이름 : 페놀소동
- 글 : 전수일
- 펴낸곳 : 작가마을 (2008.12.20.)
- 책값 : 1만 원



 (1) 물과 바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서 아버지가 자동차를 장만하신 뒤부터, 우리 집은 수돗물을 안 마셨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이끌고 큰 물통 여럿을 차에 싣고는 약수터를 찾아다녔습니다. 차에 물통 여럿 가득 채워 돌아오면, 4층에 있는 집까지 나르는 일은 형과 제 몫이었습니다. 이웃집들은 그냥 수돗물을 마시는데 우리 집만 아버지가 남달리 약수터 나들이를 하며 물을 떠와서는 큰소리로 우리를 부를라치면 이웃집 들을라 부끄러웠습니다. 다들 먹는 수돗물 똑같이 먹으면 되지, 왜 저렇게 기름 쓰고 시간 버리면서 약수터까지 다녀온다고 그러시는지 하면서.


.. “이 기사는 냄새가 느껴집니까?”흠, 흠, 조금 느껴지는 것도 같고, 이 정도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머금었던 수돗물을 뱉어내며 이준성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렇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수돗물이 멈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정상기나 이준성, 두 사람 모두 기준치를 초과한 수돗물이지만 정지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후가 되자 정수계장 마규현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정상기의 뇌리에 맴돌던 막연한 불안감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하여 현실화되어 갔다. “정 기사, 수돗물은 그냥 묵어도 되는 기가?” “예,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수돗물을 날로 먹는 사람도 없으니까.” ..  (21쪽)


 몸을 더 튼튼하게 지키려면 수돗물은 안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셈이었을 테지만, 이러는 한편으로 ‘자가용 없고 수돗물만 마시는 다른 집 앞에서 자랑하려는’ 매무새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그 뒤로 줄곧 약수터 물만 드셨고, 제금나와 사는 저는 홀로 살림을 꾸리는 동안 수돗물만 마십니다.

 그러나 수돗물을 마시면서 이 수돗물이 우리 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흘러서 저절로 깨끗해지는 물이 아니라 약품으로 다루어 맑게 보이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우리 나라는 예부터 ‘물 맑고 산 좋은’ 나라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우리 나라 어디를 가도 물 맑거나 산 좋다고 하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산골 깊숙하게 들어가면 골짜기 물을 마실 수 있고, 땅밑에서 물을 뽑아올려 마시기도 하지만, 돈과 집이 없는 여느 사람한테는 꿈꾸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나마 가게에서 먹는샘물을 사다 마신다면 ‘조금이라도 나은 물’을 마시는 셈이라 할 텐데, ‘조금이라도 나은 물’을 뽑아올리느라 이 나라 땅이 푹 꺼지지 않을까 근심이 되고, 울릉도 앞바다 밑에서 퍼올린다는 물이나 제주섬에서 길어 온다는 물도 걱정스럽습니다. 제주는 물이 모자란 땅인데 그렇게 모자란 물을 자꾸자꾸 바깥으로 빼내어 돈벌이를 해도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 페놀유출사건을 규탄하는 아우성이 사라질 무렵 또다시 구미의 선도전자에서 페놀이 유출된다고 보도되었다. 유출 이유는 페놀 저장탱크 수리와 선도전자가 독점 생산하는 제품이 중단되면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실이 따른다는 것이다. 낙동강가의 주민들은 또다시 아우성을 쳤다. “이 기사, 나라가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아무리 선도전자가 독점하는 제품을 생산하드라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상기가 흥분하자 이준성도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서울사람들은 낙동강 물 안 묵는다 이거지요.” 정상기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낙동강이 하수처리장입니까? 저장탱크가 하나만 있으란 법도 없고, 여의치 않으면 희석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 선도전자는 높은 데하고 모두 이야기됐으니까 걱정없다 이 말 아닙니까?” “그렇지예, 국가 자체가 환경에 대한 개념정의가 없습니다.” ..  (57쪽)


 어릴 적, 1980년대 첫머리에도 인천 앞바다는 수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쓰레기물 때문에 그리 안 맑았습니다. 그러나 갯가에서 망둥이를 낚거나 쏘가리를 낚곤 했고, 영종도 갯벌은 꽤 깨끗했습니다. 오늘날 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곳에다가 새로 짓는 아파트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저한테 영종도는 섬을 한 바퀴 빙 걸어서 돌기도 하고 갯벌에서 놀기도 하다가 아무 바닷가집에나 “계셔요, 물 좀 얻어 마실게요!” 하고 소리지르곤 들어가서 무자위를 길어 등목을 하고 물 얻어마시고 하던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영종섬에 두루 걸쳐 있던 넓디넓은 소금밭.

 중학교에 다니던 1990년까지, 아버지는 장봉섬 작은 분교에서 교사로 일했기에, 어머니와 형과 저는 방학 때면 함께 섬에 들어가서 살았고, 한 달에 한 번쯤 주말을 잡아 섬 나들이를 했습니다(어머니는 주마다). 이때면,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배를 타고 들어간 다음, 섬 버스를 잡아타고 삼목도까지 갑니다. 그런 뒤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쯤 들어갔는데, 영종도에서 막 배에 내려 섬 버스를 타고 사십 분 남짓 구비구비 섬을 구석구석 돌아서 가는 길에는 언제나 소금밭에 또 소금밭이었습니다. 그때는 사진으로 이런 모습을 찍는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꽉 찬 버스에서 운전사 자리 바로 옆에 겨우 낑겨 타며 버스 앞창으로 내다보는 마을 모습은 제 눈과 머리와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 두 사람이 주위를 살펴도 하수구와 연결된 옥계천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물 흐르는 소리는 들렸다 … 어젯밤의 소나기로 옥계천에는 황토물이 고르게 밀려오고 고물상 뒤편으로 하수관 두 개가 매복호의 총구처럼 두 사람을 겨누고 있다. “야아, 절묘하네, 절묘해. 저런 곳에 하수구를, 정말이지 보이지 않는 살인을 위한 총구 같아.” 이웅찬의 감탄에 정상기의 흥분된 목소리가 강물처럼 쏟아졌다. “오폐수의 무단방류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살인행위지. 이 나쁜 놈들이, 한두 번도 아니고 비만 오면 무단방류를 해. 예상 강수량이 삼사십 밀리미터 이상 되면 틀림없이 폐수를 방류하지. 그날도 주말에다 일기예보에 한 삼 일 동안 비가 온다고 하니까 미리 계산해서 마음 놓고 페놀을 내뿜은기라. 그런데 이튿날 비가 그치는 바람에 들통이 났지. 이 나쁜 놈들, 그래도 물어 보면 저거만 재수가 없어 들켰다 그럴끼라.” ..  (152∼153쪽)


 1993년 어느 날, 원자력발전소 쓰레기(핵폐기물)를 모으는 곳을 안면섬에 짓겠다고 하여 어마어마한 싸움이 벌어진 적 있습니다. 이때 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바로 이듬해인 1994년에 이 원자력발전소 쓰레기를 인천 앞바다에 있는 ‘굴업도’라고 하는 작은 섬에 짓겠다는 대책을 정부에서 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인천이란, 온갖 화학공장 제철소 제강소 유리공장을 비롯해 쓰레기물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내는 공장이 꾸역꾸역 지어져도 시민들 입 하나 벙긋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혐오시설’이라 일컫는 시설을 지어도 주민들은 ‘철거민’이 되어 내쫓길 뿐 군소리를 못한 곳이었거든요. 그리 많지 않은 안면섬 주민은 저렇게 싸워서 원자력발전소 쓰레기를 못 들이게 막았다지만, 인천이라는 데는 막을 수 있을까 알 수 없었고, 더구나 고작 일곱 사람만 살던 작은 섬 굴업도를 후보지로 삼았다고 했으니.

 그때 일은 지금 와서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천을 모르고 인천 앞바다를 모르는 다른 곳 사람들은 ‘인천 앞바다는 어차피 똥물인데 그깟 핵폐기물쯤이야 인천 앞바다에 있는들 무슨 대수냐?’ 하고들 대꾸했습니다. 대학교에서 진보니 사회운동이니 환경이니 이야기하는 선배나 동기 들도 하나같이 시큰둥해 했고, ‘거긴 워낙 지저분한데다가 외진 곳이니 괜찮지 않냐?’ 하는 대꾸뿐이었습니다. 인천에 사는 동무는 ‘우리가 막는다고 막아지겠니? 뭐, 인천은 옛날부터 그랬잖아.’ 하면서 싸우기 앞서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몸으로 겪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그나마 아버지가 장봉섬 같은 데에서 여러 해 일한 탓에, 그 장봉섬 물이 ‘인천 앞바다임에도 얼마나 맑고 파랗던가’를 잘 알았습니다. 굵기가 팔뚝 만한 도라지를 섬에 있는 얕은 산에 올라 캘 수 있었고, 섬에 사는 아이들은(그땐 저도 아이였으나 저보다 어렸던 아이) 맨손으로 갯벌에서 낙지를 잡았으며, 섬에서 기르는 김은 ‘진짜 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일 돕는 섬 아저씨는 ‘우리 선생님네 아이들이 왔으니 아주 귀한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면서 호미로 땅을 파더니 구더기를 잡아서 ‘이거 드셔 보셔요. 얼마나 맛이 좋고 몸에 좋은지 몰라요’ 하고 건네주었습니다. 아저씨가 주시니 먹기는 먹어야겠지만 차마 못 먹었는데, 저 또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몸이니 꺼렸을 뿐, 살이 통통하게 오른 하얀 구더기는 고기를 거의 먹을 수 없는 섬에서는 참말 ‘귀한 음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장봉섬은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뭍사람한테 ‘여름철 피서지’로 소문이 나게 되었고, 관광객이 수십 수백 수천 사람 몰려오면서 깨끗하던 물과 모래밭과 산과 나무는 ‘놀러온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잔뜩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분교살이를 마치고 뭍으로 돌아오고 몇 해 뒤 다시 장봉섬 옹진분교를 찾아간 적 있는데, 이때 본 분교는 ‘여름철 피서객과 교회 젊은이들이 깨뜨린 유리창과 더럽힌 건물과 운동장과 ……’ 차마 더 돌아볼 수 없을 노릇이었습니다.


.. 정상기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보고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 일과를 마치고 세 단체(정수장 공무원, 페놀유출 회사 직원, 시민단체)의 저녁식사 모임에 앞서 정상기는 수도과에서 여비를 받았다. 특별하게 지급될 조건도 아닌 관내 출장업무인데 많은 돈이 봉투에 들어 있었고 신길태의 여비도 똑같았다. 페놀 피해 조사를 실시하는 날 저녁회식은 언제나 선도그룹에서 주최하였다. 밥과 술 그리고 대화를 나누면서 친목을 다지는 순서였다 …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선도그룹에서 택시비가 지급되었다. 일인당 이만 원이었다. 마산의 끝자락 댓거리에서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까지의 택시요금은 삼천 원이 채 못 나온다. 시민단체 회원들의 거절 표시에도 이산두의 끈질긴 노력으로 택시비는 빠짐없이 전달되었다. 떠나는 택시에 손을 흔들고 직원들이 모인 곳으로 의기양앙하게 돌아온 이산두는 절도 있는 손동작을 보이며 소리쳤다. “돈 앞에는 장사 없어요.” ..  (164∼168쪽)


 나고 자란 곳이지만 새파랗게 젊던 때는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곳인 인천에서 보고 듣고 겪는 온갖 모습은 예나 이제나 그리 달라지지 않습니다. 국민학교 여섯 해 동안 걸어서 오간 학교길에는 늘 제일제당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제일제당 옆으로는 개천 하나가 바다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개천은 늘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가득하여, 이 길로 걸어다니는 사람은 몹시 드물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길에 이 길로 안 가고 돌아가면 곱배기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자면 ‘옐로우하우스’ 앞을 거쳐 가야 했습니다. 또다른 길은 연안부두에서 인천제철이니 유리공장이나 제재소니 하는 월미도공단으로 큰짐 실어나르는 산업도로 옆이라서 이쪽으로는 더욱 가기 싫었습니다.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가나 마찬가지였기에, 공장에서 내뿜는 온갖 빛깔 쓰레기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다가는, 코를 막고 몇 초 동안 숨을 안 쉬고 이 더러운 개천 옆을 지나갈 수 있는가 시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시험을 해 보면 늘 미처 다 지나가지 못하고 캑캑 재채기가 나와 더 많이 구린 냄새를 들이켜야 했습니다. 비라도 온 날은 냄새뿐 아니라 질척거림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제일제당을 지나가고 난 다음에 지나가야 하는 연탄공장에서 까만 연탄재를 맡으며 몸을 털곤 했습니다.

 딱히 ‘환경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고, ‘환경 지키기’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1991년에 낙동강에 페놀이 흘러들어 크게 이야기거리가 되었을 때 속으로 피식 웃으며, ‘뭐야? 우리 집과 학교 옆으로는 허구헌날 저렇게 코를 찌르는 쓰레기물이 흐르고 있는데?’ 하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국민학교 때에는 ‘연탄공장과 식품공장 옆에 있는 학교 본 적 있어?’ 하는 생각을 했고, 중고등학교 때에는 화학공장과 원목처리장이 학교 둘레에 있어서 ‘우리는 화학공장 옆에서 온갖 매캐한 연기 다 마시고 사는데 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집과 학교 옆으로 흐르던 쓰레기물은 ‘정수장으로 흘러들어 수돗물과 섞이지 않’고 ‘인천 앞바다로 흘러가 인천 앞에 있는 섬 갯벌을 더럽히고 바다에 사는 목숨붙이를 죽일’ 뿐이어서 이야기거리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나 싶은데, 바다로 흘러든다고 해서 우리가 안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이 물을 마시고 우리는 이 물고기를 잡아먹으니 똑같이 ‘쓰레기물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꼴’입니다. 인천 앞바다로 흘러나가는 쓰레기물은 연평섬 둘레 게한테도 조기한테도 갈치한테도 실치한테도 영향을 끼치고, 이 물이 흘러흘러 남쪽으로 내려가 수많은 또다른 물고기와 바다목숨한테도 영향을 끼칩니다.


 (2) 소설 《페놀소동》과 우리 삶


 소설 《페놀소동》을 읽습니다. 금세 읽어냅니다. 소설을 펴내 준 출판사에서 교정교열을 제대로 보지 못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뿐 아니라 문장부호 잘못된 곳이 참 많이 눈에 뜨이는데, 이런 아쉬움은 훌훌 털어 버릴 만큼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글쓴이 전수일 님은 문학쟁이가 아니라 아직 글 여밈새는 어수룩한 곳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어수룩함이야 이분이 처음으로 내놓은 문학작품인 만큼 앞으로 얼마든지 탈바꿈하면서 한결 나아지리라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도 전수일 님 당신이 몸소 겪고 치러낸 ‘페놀소동’ 이야기 속내로 빠져듭니다.


.. 한국 같으면 복개하여 주차장이나 도로 같은 또 하나의 커다란 실적을 쌓았을 (일본 오사카) 시내 중심가 하천에서 푸른 물이 폭포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상큼한 물 냄새까지 솟아올랐다. 마산의 하천이라면 쥐새끼가 먹이를 찾아 재빠르게 움직여야 할 자리에 버섯 모양의 하얀색 기구가 촘촘히 장치되어 있다. “저기 뭐이고?” 마규현이 좀더 가까이 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면서 소리쳤다. “소형 폭기조 같은데?” … 더 많은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복개되는 하천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코를 박고 누워 있다. 정상기는 자기도 몰래 얼굴이 찌부러졌다. 어릴 적 고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도심 하천은 이제 이룰 수 없는 우리의 꿈이 되는가? 무산보다 더 복잡하고 현란한 오사카의 밤거리를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머리속에 울려나온다. 오사카의 도심 하천을 넋 빠지게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에 정상기는 짜증이 났다 ..  (127, 173∼174쪽)


 책을 덮으면서 일본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님이 쓴 《소설 복합오염》이 떠오릅니다. 일본사람 하라다 마사즈미 님이 쓴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가 떠오르고,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슬픈 미나마타》가 떠오릅니다. 세 가지 모두 일본에서뿐 아니라 일본 밖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한 ‘환경문학’이라고 하는데, 소설 《페놀소동》은 이에 못 미치지만, 곰곰이 읽고 생각하고 되짚을 우리 삶이 아니냐 싶습니다.

 문득, 일본은 일본대로 끔찍한 ‘환경 재앙’을 겪고 치르고 이겨내면서 새로운 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구나 싶은 한편, 우리는 우리대로 수없이 끔찍한 ‘환경 재앙’을 겪고 있지만, 한바탕 ‘소동’으로만 그치고 있어서, 우리 스스로 제대로 문학으로 꽃피우지 못하는가 싶습니다. 소동이 터지는 그때부터 얼마 동안 세상을 뒤흔드는, 그러니까 바람 따라 지나가는 이야기거리로만 그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정 기사님, 우리 실장님은 맑은 물보다 돈을 더 좋아합니다.” ..  (114쪽)


 일본이든 한국이든, 또 미국이든 러시아든, 또 유럽이든 아시아든, 환경을 업신여기면서 일어나는 모든 아픔은 돈 때문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벌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리고 돈 앞에 다른 모두를 눈감은 매무새 때문에, 또한 돈을 휘두르는 이 앞에서 꼼짝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똑같은 일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되풀이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원진병과 온산병은 똑같고, 온산병과 페놀오염은 똑같으며, 페놀오염과 중금속오염은 똑같습니다. 중금속오염은 예방주사에 들어가는 수은 문제와 똑같고, 예방주사 수은은 식품회사에서 ‘이제는 MSG를 더는 안 쓴다’고 밝히지 않으면 장사가 안 된다고 느끼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 “정 기사님, 지금도 낙동강 원수에서 페놀이 잡힙니다. 비가 오면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  (201쪽)


 참말로 우리는 돈을 벌려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애써 번 돈은 어떤 놀이를 즐기면서 쓰고 있을까요. 돈을 버는 동안, 또 돈을 쓰는 동안 우리 삶터는 어떻게 뒤바뀌고 있는가요. 우리는 저마다 땀흘려 일을 하고 신나게 웃으면서 놀고 있는데, 이런 ‘아름다운’ 삶을 꾸리는 동안 우리 터전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뚫으려는 물길은, 나라를 살리는 물길이 아니라 나라를 집어삼키는 돈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 삶을 살찌우는 돈푼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잡아먹는 돈벌레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마음자리에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니라 돈과 이름과 힘만 쌓아 놓으면서 물길을 파고 있음을 꿰뚫어보았기에 거침없이 돈바라기 물길을 뚫으려고 하며, 이런 물길트기를 손뼉치며 반기는 사람도 꽤 많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4342.2.14.흙.ㅎㄲㅅㄱ)


글쓴이 전수일 님은
1955년에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고, 영남대학교에서 공과대학을 마친 뒤 1983년부터 남해군 보건소에서 일하다가 1987년에는 마신시 칠서수자원관리사무소 실험실에서 일했고,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청수환경’ 대표로 일했다. 소설 《페놀소동》은 전수일 님이 현장에서 몸소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환경 문제에 등돌리고 있는 잘잘못을 파헤치면서 고발하고픈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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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76 : 헌책방에 안 가 보니 헌책방을 모른다

 헌책방에 가 보지 않은 분은 헌책방에 어떤 책이 있고 어떤 이야기를 얻고 어떤 마음밥을 먹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도서관에 가 보지 않은 분이 도서관 얼거리나 책갖춤을 모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헌책방이고 도서관이고 찾아가 보도록 일러 주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고 이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어버이 스스로 헌책방이나 도서관 나들이를 못하거나 안 합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는 회사일 하랴 바쁘고, 회사 다니기 앞서는 대학교에서 학점 따랴 사랑놀이 하랴 바쁘며, 대학교 다니기 앞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입시싸움 치르랴 바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겨우 틈이 나는데, 이무렵 아이들 손을 잡고 헌책방과 도서관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는 얼마쯤 될까요. 우리가 어린이였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 되는 분들도 ‘지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우리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먹고사느라 바빠 제때 제곳에서 아이들을 못 챙기지 않았을는지요.

 골목동네에 살아 보지 않은 분은 골목동네에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이야기가 있으며 어떤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지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골목동네를 알기 어렵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는 으레 아파트에서 삽니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빌라에 살며, 골목에서 이웃집과 문과 담을 마주하면서 늘 얼굴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이가 아니기 일쑤입니다. 햇볕에 빨래를 말리고, 골목길 안쪽 모퉁이나 차가 뜸하게 다니는 너른 볕바른 자리에 놓인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동네 할매 할배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재미를 모릅니다. 사진으로는 보고 말로는 들을지언정, 살갗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되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나도 왜 ‘철거민이 생존권을 외치’는지, ‘보상 받고 떠나면 될 일을 왜 저리 난리법석’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파트 삶터는 고향이 아닌, 돈굴리기를 하고자 잠깐 머무는 곳이거든요. 스무 해조차 채 버티지 못하는 곳은 집도 보금자리도 아닙니다. 부동산일 뿐입니다.

 지난주에 동네 헌책방 마실을 하면서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전파과학사,1985)이라는 작은 책을 장만했습니다. 글쓴이는 장학사를 하면서 여러 국민학교(옛날이니까) 자연시간 시찰을 나가며 겪은 일을 적어 놓는데, 요오드 실험을 하는 아이가 틀림없이 검은빛으로 나왔음에도 “녹말가루에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리면 보라색으로 변하니까요.” 하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교과서에 나온 대로’ 말하더랍니다. 알코올램프가 넘어지면 물을 부어야 하는 줄 모르는 교사들 이야기를 보면서, 주먹구구요 점수따기 주입교육만 되풀이되는 예전 이런 모습이 오늘날이라고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하지만 그예 슬플 뿐입니다.

 아침에 구청(인천 동구청)에서 열린 ‘동인천 재정비사업에 따른 주민설명회’라는 데에 다녀왔습니다. 주민 숫자가 몇 만 사람임에도, 걸상을 고작 150개 갖다 놓았고, 골마루까지 북적인 주민들 앞에서 ‘돈없는 사람한테까지 재정착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대놓고 합니다. 두어 시간 내내, 재개발 정책을 꾸리는 분은 자기 사는 동네를 재개발로 밀어없애는 일을 할까 안 할까 궁금했습니다. (4342.2.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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