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칡꽃 나팔꽃 2024.9.7.

한낮까지 부산에 닿으려고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선다. 밤새우며 일하려다가 살짝 눈을 붙이기도 했다. 옆마을로 지나가는 첫 시골버스를 타려고 바지런히 논두렁을 달리다가, 줄줄이 핀 칡꽃을 보고 나팔꽃을 본다.

찰칵 담을까 하다가, 손끝으로 쓰다듬고서 눈이랑 마음에 담는다. 논두렁에 꽤 길게 퍼진 두 풀꽃은 새벽빛을 밝힌다. 소쩍새 노랫가락은 어느덧 잦아들었다. 시골버스여도 찬바람(에어컨)을 틀기에 바깥소리가 하나도 안 스민다. 찬바람을 살짝 껐구나 싶을 즈음 살며시 미닫이를 연다. 들바람에 실리는 참새소리랑 풀벌레소리를 귀로 살갗으로 맞아들인다.

나팔은 뭘까? 나풀거리고 나불거리고 팔랑이고 활개를 치고 훨훨 날면서 우리 숨빛과 모든 몸짓이 퍼진다.

둘레를 보고 들을 보고 숲을 품고 살림을 보고 사랑을 보면, 모든 말과 꿈과 이야기를 읽을 테지.

말이 깨어나고 자라난 이곳을 걷는다. 말씨가 일어나고 살아가는 저곳으로 나아간다. 하루는 하늘빛이요, 하늘숨은 바람결에 안겨서 우리 몸에 들숨에 날숨으로 드나든다.

수수하게 나누고 심는 말 한 마디가 숲을 그리면서 수수께끼가 돋고 크고 잇고 간다.

부산과 서울과 인천과 대전과 광주에도 나팔꽃은 피겠지. 어떤 빛깔일까? 그러나 칡꽃은 서울이나 인천이나 부산 같은 데에서는 못 보겠지. 아니, 사람들 발길에 채이지 않을 곳으로 숨어서 하늘을 보고 새를 반기겠지.

ㅅㄴㄹ
#살림말 #숲노래살림말 #숲노래 #나팔꽃 #고흥살이 #최종규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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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의 시간 창비시선 494
김해자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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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9.6.

노래책시렁 447


《니들의 시간》

 김해자

 창비

 2023.11.24.



  소쩍새가 둘 있으면, 둘이 내는 노랫가락은 두 가지입니다. 꾀꼬리가 셋 있으면, 셋이 내는 소릿가락은 세 가지입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넷 있으면, 넷이 내는 노래마디는 네 가지입니다. 온누리에 들숲바다가 있으면 온누리 갈래만큼 다 다른 들숲바다입니다. 이 나라에 마을이 있으면 모든 마을마다 다른 빛과 터와 삶입니다. 《니들의 시간》을 읽으며 무엇이 다르려나 헤아리지만 썩 종잡지 못 합니다. 글쓴이 이름을 가려 놓으면, 누가 쓴 글인지 모르겠구나 싶어요. 적잖은 글지기는 애써 다른 티를 내려고 영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옮김말씨를 뒤섞는데, ‘시집’으로 나온 꾸러미에 깃드는 영어나 일본 한자말이나 옮김말씨는 다 비슷비슷합니다. 어떤 하루를 살기에 글결이 닮을까 하고 돌아본다면, 사람들 옷차림부터 다 닮고, 사는 집도 다 닮고, 읽는 다른 책도 다 닮습니다. 담으려고 닮는다기보다, 닮아 보이려고 하면서 그만 닳는다고 느낍니다. 다가가려고 담은 몸짓이 아닐 테니까, 담벼락처럼 높다랗게 쌓아서 가로막기도 합니다. 소쩍새처럼 그저 노래하면 됩니다. 꾀꼬리처럼 마냥 노래하면 됩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처럼 언제나 노래하면 됩니다. 새를 곁에 놓는 삶자리라면, 입과 손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저절로 노래입니다.


ㅅㄴㄹ


가출했다 잡혀 온 내 손모가지 꽉 붙들고 / 엄마는 딱 한마디 했다 / 집에 가자이, / 아무 말 못하고 엄마 손에 끌려갔다 / 목표역 앞이었다 // 머를 좀 잘못 알았는갑소, / 잘 좀 알아보쇼이, / 우리 애기는 절대로 그럴 애가 아니랑께요, / 경찰서 안이었다 (모국어/18쪽)


동인천 중국인 거리에서 한잔하고 / 하인천 골목 우럭구이집에서 한담 나누는데 / 근처 율목동 사는 최원식 선생께서 / 인천에서 활동하던 조직 이름이 뭐였냐 물으시길래 / 우리는 이름이 없었다고 말하자 / 그거 재밌다 이름 없는 조직이라니, / 소년처럼 웃으시며 / 야아! 이름이 없다니 그거 대단하다 대단해, / 그 점잖으신 양반이 파안대소하시다 / 그런 시는 왜 안 쓰냐, 한 말씀 보태시는데 (이름 없는 조직/26쪽)


+


《니들의 시간》(김해자, 창비, 2023)


몸빼와 꽃무늬 스웨터

→ 일바지와 꽃무늬 털옷

→ 꽃바지와 꽃무늬 털옷

10


논바닥 위로 쌓여가는 눈 위에 눈

→ 논바닥에 쌓여가는 눈에 눈

11


울지 못한 울음 그의 등짝이 젖고 있었다

→ 울지 못한 그는 등짝이 젖는다

→ 울지 못한 채 등짝이 젖어든다

13


마사토와 진흙 잡석 사이

→ 굵모래와 진흙과 돌 사이

→ 굵은모래 진흙 잔돌 사이

16쪽


경찰서 앞이었다

→ 살핌터 앞이었다

→ 지킴터 앞이었다

18쪽


탁발 순례 마치고 큰오빠 집으로 간 지 한달 만에 영영 가셨다

→ 동냥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끝내 가셨다

→ 모심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그저 가셨다

→ 꽃손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내처 가셨다

→ 섬김길 마치고 큰오빠집으로 간 지 한 달 만에 아주 가셨다

19쪽


집 우(宇) 집 주(宙)

→ 집과 집

→ 온과 누리

19


아직도 근무 중인가 독서대에 세워진 책을 투과하여 벽을 째려보는 것 같다

→ 아직도 일하나 읽기판에 세운 책을 비추어 담을 째려보는 듯하다 

→ 아직도 일하는가 책판에 세운 책을 꿰뚫어 벼락을 째려보는 듯하다

22


딸은 시방 면벽(面壁) 수행 중

→ 딸은 막 담바라기

→ 딸은 이제 마주담

22쪽


오리들의 창가(唱歌) 허공을 두드려대는 북소리

→ 오리노래 하늘을 두드려대는 북소리

→ 오리가락 높이 두드려대는 북소리

25쪽


그 점잖으신 양반이 파안대소하시다

→ 점잖으신 어른이 활짝 웃는다

→ 점잖으신 분이 껄껄댄다

26쪽


중구난방 회합장이 된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들끓며 나누는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흩날리며 같이하는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춤추는 모임터가 된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 오락가락 만나는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42쪽


무력한 자들의 입은 얼마나 가벼운가

→ 힘없는 입은 얼마나 가벼운가

→ 기운잃은 입은 얼마나 가벼운가

46


하얀 어둠 속에서 잊어버린 말들이 방문했다

→ 하얗게 어두운데 잊어버린 말이 찾아온다

→ 하얀밤에 잊어버린 말이 다가온다

51


다시 시작해도

→ 다시 해도

→ 다시 가도

53


듣고도 모른 척한 말들이

→ 듣고도 모른 척한 말이

56


깨진 돌의 말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깨진 돌이 하는 말로 그대를 모십니다

→ 깨진 돌이 말하니 너를 부른다

58


페이지만 달라질 뿐

→ 쪽만 다를 뿐

86


인간은 어디까지 자율적일 수 있을까요

→ 사람은 어디까지 스스로 할까요

→ 우리는 어디까지 마음대로일까요

86


천개의 언덕 위에서

→ 즈믄 언덕에서

9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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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사랑이 아니니 2024.7.26.쇠.



사랑이라면 누구를 흔들지 않고, 누구한테서 흔들리지 않아. 사랑이 아니니 누구이든 흔들고, 누구한테서나 흔들려. 네가 스스로 사랑일 적에는 이 모두를 알 테지. 네가 스스로 사랑이 아니기에 이 모두뿐 아니라 자그마한 어느 하나도 알 길이 없어. 자, 이따금 ‘너’가 아닌 ‘둘레’를 물끄러미 보렴. 네 둘레에 있는 누가 “사랑으로 빛나는 눈”이니? 지치거나 바쁘거나 걱정하거나 부아나거나 괴롭거나 고단한 눈이지 않아? 웃고 노래하는 눈이란 없이, 눈치를 보거나 딴청이거나 팽개질이나 팔짱질인 눈은 아니니? 사랑인 사람이라면, 어떤 쇳덩이(자동차)를 어디에서 몰든 사랑으로 몰아. 사랑이 아니니, 언제 어디에서나 사납고 고약하고 괘씸하지. 사랑이란, 속에서 고요히 피어나서 온누리를 따사로이 품은 꽃빛이야. ‘사랑척’이나 ‘사랑시늉·사랑흉내’라면, 시끌벅적하거나 왁자지껄하거나 어수선하단다. 사랑이기에 부드럽고 넉넉하고 즐거워. 사랑척이나 사랑없는 메마른 눈이기에 퀴퀴하고 얽매인 굴레를 잔뜩 짊어지지. 나무는 나무인 척하지 않아. 구름은 구름인 척하지 않아. 나비는 나비인 척할 까닭이 없지. 나무는 풀을 흉내내지 않고, 구름은 바위를 따라하지 않고, 나비는 잠자리를 닮을 마음이 없어. 네가 사람이라면 사랑을 할 노릇이야. 네가 사람일 적에는, 푸르게 우거지는 숲빛으로 살림을 지으면서 언제나 해맑게 사랑을 하는 하루이겠지. 사랑이 아니니 숲을 등지거나 잊거나 몰라. 사랑이기에 어깨동무하는데, 사랑이 아니니 고개를 돌릴 뿐이란다. 사랑하기에 사람이고, 사람이기에 사랑한다면, 사랑이 아니니 사람이 아니겠지. ‘사람척’이나 ‘사람시늉·사람흉내’를 하는 얼뜨기를 알아보기를 바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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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매연 2024.7.31.물.



‘차방귀’라고 할 ‘배기가스’를 맡으면서 튼튼하거나 푸를 나무나 풀은 없어. 매캐한 배기가스를 늘 마시면서 멀쩡할 집이란 없어. 뿌옇게 휩싸는 배기가스를 누가 언제 얼마나 내뿜는지 돌아보렴. 자동차가 내뿜기 앞서는 ‘싸움수레(전차·탱크)’에 ‘싸움배(군함)’가 내뿜고, 온갖 배와 날개(비행기)가 내뿜었어.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곳마다 내뿜고, 기름돌(석탄)을 때면서 내뿜었지. 배기가스를 내뿜는 둘레에 들이나 숲이 있을까? 오늘날 서울을 보렴. 서울에 무엇이 있니? 이제 시골을 보렴. 시골에서 사라지는 숲만큼, 시골에 자동차와 아파트가 늘어나는구나. 얼마나 자주 많이 멀리 빨리 오가야 하고, 쓰고 버려야 하고, 기계를 돌려야 하기에 배기가스와 매연이라고 하는 죽음재를 쏟아내야 할까? 서로 북돋우면서 살리는 길은 어디일까? 살림길을 잊은 채 죽임길을 내달리면서, 어떻게 숨을 마시고 뱉는 하루일까? 숨을 이루는 바람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잊는다면, 네 삶이란 무엇일까?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을 읽지 않으면서, 숨을 느끼지 않는다면, 너는 오늘을 어떻게 보내는 셈일까? 자동차가 끝없이 달리는 둘레는 배기가스와 먼지로 새까맣지. 공장과 전쟁무기가 가득한 둘레도 배기가스와 먼지로 새까맣구나. 마을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나라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지? 집에는 어떤 바람이 흘러야 할까? 힘(총칼·폭력)으로 억누르려는 무리는 한 줌일 뿐인데, 사람들을 꾀고 홀려서 허수아비로 세운단다.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짓는 오늘을 잊은 채 우두머리를 쳐다보며 하루가 지나가. 네 눈길이 가는 곳에는 네 꿈씨앗이 자랄 틈이 있을까? 네가 숨을 불어넣어야 씨앗이 깨어난단다. 배기가스는 씨앗숨을 다 가로막아서 죽이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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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협회 2024.8.1.나무.



누구나 스스로 길을 내어 나아간단다. 가깝든 멀든 제 발로 걸어서 가지. 그래서 누구나 길손이면서 길잡이야. 누가 알려주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디디고 밟고 느끼면서 배우거든. 어렵거나 힘들거나 땀빼는 일이 없다는 꽃길만 걷는다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울까? 아마 매우 얕을 만해. 이 꽃길조차 가마에 몸을 맡긴 채 간다면, 어떤 꽃길인지 모를 테고, ‘꽃길이라는 터전’조차 모르게 마련이야. 가시밭길을 걷기에 안 나빠. 가시밭길이 눈앞에 있기에, “가시밭길에서 아프지 말라”고 다 걷어내거나 치우면 어찌 될까? 스스로 걷지 않은 가시밭길이라면, 남이 맡아 준 가시밭길이라면, 무엇을 알거나 배울까? 혼자 하기에는 버겁거나 힘들 만하다고 여겨서 모임(협회)을 꾸리곤 한단다. 한우물을 파거나 한길을 가는 여러 사람이 뜻을 모을 만하지. 모임이라고 한다면, “길을 가는 마음”을 함께 보고 살피고 느끼면서 “여러 눈썰미를 나눌” 적에 뜻이 있어. 그러나 숱한 모임(협회)은 ‘여러눈’이 아닌 ‘외눈’으로 기울기 일쑤이구나. 모일 적에는 모든 숨빛으로 새로 하나라는 길을 볼 적에 아름다울 텐데, 어쩐지 모임은 자꾸 닫아걸면서 끼리끼리 놀려고 하네. 어린이가 춤추고 놀도록 틔우는 자리여야 모임이야. 어린이가 실컷 말하고 노래하도록 여는 곳이어야 모임이야. 나이든 이들이 ‘자리’를 거머쥐고서 힘을 부리는 데라면, 허울은 모임이지만 속내로는 담벼락이지. 갈수록 여기저기에 ‘협회’라는 허울이 늘어나는구나. 여러 사람이 여러 목소리를 고루 내면서 여러 길을 고루 살피는 눈을 찾아보기 어렵네. “모여서 살아가는 길”을 어우르려는 마음을 잊은 탓이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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