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킬로그램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부터 군대에 가기 앞서까지 내 몸무게는 68킬로그램이었다. 이때 내 몸은 퍽 호리호리했고 어깨와 가슴만 크고 넓었다. 군대에서는 ‘괴물’처럼 살아야 하다 보니까, 군대를 마친 뒤 몸무게가 조금 불었고, 이 몸무게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래도 군대를 마친 뒤 신문딸배를 하면서 살았으니 69∼70킬로그램을 오갔는데, 신문딸배를 그만두고 출판사에 들어간 1999년 8월부터 몸이 꽤 불었다. 몸쓰기보다는 머리쓰기를 많이 하는 일이 되다 보니까, 74∼75킬로그램, 한때 78킬로그램까지 나가기도 했다.

 군대에서 80킬로그램이 된 적이 한 번 있는데, 75킬로그램이라는 무게를 넘어가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 여겨졌다. 몸무게만큼 힘은 더 잘 써서 무거운 짐도 너끈히 나를 수 있기는 하지만, 몸은 굼떠서 자전거를 타거나 가방 너덧 개를 몸에 주렁주렁 달고 여러 시간 거닐며 헌책방 나들이를 할 때면 퍽 고달팠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충주 산골짜기에서 일하게 된 2003년 9월 무려부터는 72∼74킬로그램을 오갔다. 가볍지는 않으나 무겁지도 않은 몸무게였고, 이 몸무게는 충주에서 서울로 자전거를 싱 하고 달리면 2킬로그램쯤 빠졌다가, 사나흘 쉬며 몸풀이를 하면 도로 제자리를 찾고, 다시 서울에서 충주로 자전거를 달리면 또 2킬로그램쯤 빠졌다가, 사나흘 느긋이 지내면서 다시 돌아오곤 했다.

 충주 살림을 접고 고향마을 인천으로 온 2007년 4월, 3.5톤 짐차로 석 대를 꽉꽉 눌러서 채운 책짐을 실어나르고 무거운 책장을 새로 들이고 책 자리를 새로 잡고 하는 동안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몸무게는 70∼72킬로그램 사이를 오가게 된다. 어느 하루도 몸 홀가분히 쉬는 날이 없으니, 책상맡에 앉아서 글을 쓰는 시간이 열 시간이 넘어간다고 해도 뱃살이 나올 겨를이 없다. 날마다 손빨래를 하고, 방바닥 걸레질을 하며, 밥하기와 설거지를 쉬지 않으니까, 내 몸에 군더더기살은 붙지 않는다. 게다가 틈틈이 자전거 마실을 하지, 서너 시간씩 걸으면서 동네 골목길 마실을 하지, 외려 얼굴이 말랐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올 팔 월 십육 일. 아기가 태어날 무렵. 옆지기와 함께 배앓이를 나누어 하면서 밤잠도 낮잠도 이루지 못하는 가운데 밥해 먹이랴 집 치우랴 무어 하랴 아주 바쁘게 돌아치는 동안 몸무게는 68킬로그램으로 떨어진다. 아기가 태어나고 기저귀 갈랴 빨랴 치우랴 밥하랴 청소하랴, 몸무게가 66킬로그램으로 떨어진다. 눈자위는 푹 꺼지고 눈밑이 꺼매진다.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면서 밥맛을 잃고, 밥을 먹지 못하면서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루에 한 시간 자기도 어려운 가운데 잠깐 드러누워 등허리를 펼라치면, “여보, 벼리가 오줌 누었어요.”나 “여보, 벼리가 똥 누었어요.” 하는 소리.

 아이를 막 낳은 어머니가 아기 기저귀를 갈 수 있으랴, 빨 수 있으랴, 더욱이 손수 미역국을 끓여먹을 수 있으랴. 옆에서 지아비 된 사람이 모든 시중을 들어야 한다. 옆지기는 깊은 밤 젖먹일 때를 빼놓고는 새근새근 잠이 들지만, 지아비는 맥주잔이라도 붙잡으면서 잠을 좇으며 기저귀를 갈고 빨고 널고 다림질을 한다.

 요 며칠, 일산 옆지기 어머님 댁에 와 있어서, 옆지기 밥해 주는 몫은 크게 덜었다. 어느 만큼 몸이 느긋해지니 마음도 풀어져서, 이른저녁에 일찌감치 눈을 감아 본다. 밤새 잠을 못 잘 테니까.

 그러나 한 시간 반쯤 눈을 붙였을까. 아기 오줌 기저귀를 한 번 갈아 받친 저녁 열한 시부터 새벽 여섯 시 삼십칠 분까지 내처 뜬눈으로 보낸다. 새벽 두어 시쯤 갑작스레 똥을 무더기로 내보낸 어린아기는 기저귀를 여섯 장 한꺼번에 쏟아내었고, 미리 다림질해 마련해 둔 기저귀가 꼭 한 장이 남았을 때가 새벽 여섯 시 삼십칠 분. 미리 빨아 널어둔 기저귀도 이즈음 거의 마르고. 아기도 더는 똥질과 오줌질을 하지 않으면서(그래도 한 시간에 한 번씩 꼬박꼬박 하지만, 그 뒤로는 왕창 쏟아내지는 않았다) 한숨을 돌렸는데, 새벽 네 시쯤 한창 힘들어 다문 십 분이나 삼십 분이라도 눕고 싶던 때, 옆지기가 나를 부른다. “여보, 착유기 좀 가져다 줘요. 아무래도 젖을 짜내야겠어요.”

 아기가 아무리 신나게 젖을 먹어도 한쪽 젖은 퉁퉁 불기 마련. 남자인 내가 젖몸살 아픔을 얼마나 알겠느냐만, 잠들지 못하고 눕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만 보아도 얼마나 아픈가를 살갗으로 느낀다.

 익숙하지 않던 젖짜기 기계를 안 아프게 쓰는 길을 어렵사리 알아냈고, 지아비 된 사람은 기저귀가 모자랄세라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도록 다림질을 한다.

 이틀 동안 한 번도 씻지 못했다. 씻을 겨를이 없다. 잠깐 아기가 우리한테 평화를 선사하는 때에는 씻을 힘이 없어서 그냥 드러누워서 눈을 붙인다. 그렇지만 ‘으 끙 끄’ 하는 나즈막한 외마디소리를 듣고 화들짝 깨어나서 똥기저귀와 오줌기저귀를 간다. ‘어차피 다시 땀으로 젖을 텐데 뭐 하러 힘들게 씻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찬물로 기저귀를 빨지만 하나도 안 시원하다. 널어 놓은 기저귀는 보송보송 말라 가는데, 내 목덜미며 허벅지며 때가 밀릴 만큼 땀이 범벅이 되었다.

 날이 밝고 한잠도 이루지 못한 가운데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나서 옆지기 어머님이 아기방을 치우자고 이야기한다. 방에 먼지가 많을 테니 아기한테 안 좋으니까 쓸고 닦잔다. 아기를 옆방으로 옮긴다. 옮길 때 햇볕으로 눈이 부시지 않도록 잘 가리고, 옆방에서도 햇볕을 쐬지 않게 가려 놓는다.

 부지런히 쓴다. 신나게 걸레질을 한다. 걸레를 빤다. 다시 걸레질을 한다. 이불을 턴다. 팡팡팡 두들기며 턴다. 또다시 온몸을 땀으로 씻어냈다. 낮 열두 시 십 분. 옆지기가 배가 많이 고프다고 한다. 낮밥을 먹기로 한다. 벌써 밥때인가? 옆지기 부모님 사는 집으로 온 다음부터, 밥때를 놓치기는 해도 끼니를 거르는 일은 없다. 좋다. 밥 먹고 보자.

 밥상 차릴 즈음 후다닥 씻는다. 씻는 김에 똥오줌 기저귀도 빤다. 옆지기 기저귀도 함께 빤다. 부랴부랴 씻고 빨래한 뒤 널고 말리면서 밥술을 든다. 밥술을 뜨기 앞서 아기방에 들어가 엉덩이에 살며시 손. 촉촉하다. 오줌이군. 기저귀를 간다. 겉싸개 기저귀는 다리미로 말린다. 다리미로 말린 겉싸개 기저귀가 이번에는 엉덩이 기저귀가 된다. 엉덩이 기저귀는 씻는방 대야에 담긴다. 밥먹고 나서 빨자.

 빨아 둔 기저귀가 다 말랐다. 하나하나 걷는다. 이제 또 다림질을 해야지. 그러는 동안 또다시 똥오줌 기저귀는 새로 나올 테고, 빨래감은 또 나올 테며, 새로 너는 빨래는 자꾸자꾸 나오리라. 아기는 때맞춰 똥오줌을 누고 젖을 먹으며, 지아비 된 사람은 밀리지 않고 빨래질을 해낸다. 한 번 밀리면 죽음은 아니고, 두어 번 밀린다고 해서 기저귀가 모자라지 않는다. 다만, 여러 차례 밀렸을 때에는 어김없이 똥벼락이 내려서 기저귀가 바닥이 날 때가 있기에, 한 번이라도 빨래를 밀리지 않으려고 한다.

 갈고 빨고 다림질하고 어르고 안고 달래고 쓰다듬고 하는 데에 한 시간 가운데 오십 분쯤 쓴다. 한 시간에 10분쯤 쉴 틈이 난다. 이때에는 수첩에 아기 매무새와 움직임 들을 적어 놓는다. 옆지기 가슴 주무르기를 한다. 팔다리 주무르기를 한다. 이러다 보면 ‘빼기 시간’이 되어서, 다음번 기저귀 빨래 시간을 갉아먹는다. 가끔가끔, 아기는 한 시간에 한 번이 아닌 두 시간에 한 번 오줌을 지리면서 빨래감을 줄여 주곤 한다. 이때에는 얼마나 고마운지 넙죽 절을 하게 되고, ‘빼기 시간’으로 갉아먹었던 모자람을 넉넉히 채우게 된다. 잠깐이나마 마루에 나와 허리돌리기를 하고 기지개를 켜며 효소를 타서 물 한 잔 마신다.

 그런데 이렁저렁 하루를 보내는 동안 책 한 번 펼치지 못한다. 옆지기 어머님이 세탁기로 한 집식구들 빨래가 마루에 나오면, 옆지기 어머님도 바빠서 미처 개키지 못하는데, 초등학교 6학년 다니는 어린 옆지기 동생은 빨래 개기를 안 한다. 시키면 할 테지. 이래저래 바쁜 가운데 빨래가 마루에 널브러진 지 두 시간쯤 지나서 겨우 짬을 내어 빨래를 갠다. 빨래를 개면서 ‘집안일로도 이렇게 바쁘고 할 일이 많으신데, 우리가 아이를 데려와서 더 힘드실 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할 일이 많아도, 옆지기 어머님도 할머니가 된 즐거움을 누리는 맛’이 힘듦보다 더 크지 않으랴 싶다. 오늘 아침에도 아기를 씻기면서 옆지기 어머님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아기 돌보기를 더 거들어 주고 싶어하는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저러나, 나도 옆지기도, 또 옆지기 어머님도 책을 읽지 못한다. 모든 일을 다 끝난 늦은 저녁에는 몸이 고단하니 책장을 못 넘기고, 햇볕 좋은 아침과 낮에는 이 일 저 일 부대끼느라 책장을 못 펼친다. 나 또한 밤늦게 다림질을 하고 겨우 숨을 돌리면서 불빛에 기대어 책장을 한두 쪽 넘기는데, 그러다가 기저귀 갈이를 하다 보면, 책은 어느새 덮어놓게 된다.

 책 좀 읽고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책 좀 읽으며 내가 아직 모르는 세상 이야기를 배우고 싶어도, 책 좀 읽으며 여러모로 어리숙한 내 마음밭을 푸근히 가꾸고 싶어도, 책과 가까워지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끈은 놓지 않는다. 아직은 책을 펼치기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은 책과 떨어진 채 지내야 하지만, 우리 아이가 책이요 우리 옆지기가 책이며 우리 옆지기 어머님이 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달려가자. 어제그제는 그나마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잠을 더 자 주었다고 몸무게가 2킬로그램 늘어서 68킬로그램이 되었다. (4341.8.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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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8-30 09:24   좋아요 0 | URL
읽어가며 제가 다 힘이 드네요.ㅎㅎ
벼리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더운날 고생이 많으세요. 이렇게 도와주시는 남편 잘 없어요.
옆지기님이 아주 고마워하고 계실겁니다.

숲노래 2008-08-30 16:4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제대로 못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더구나, 제가 일이 많아서
일산과 인천을 오가야 하니 더 고달픕니다.
인천에서만 아기를 낳고 돌볼 수 있기를 바랐으나,
이 일이 어그러지면서
참 쉽지 않은 부모요 아이가 되었어요.

에구... 아무튼 고맙습니다 ^^
 


 책으로 보는 눈 61 : 아기 돌보기와 책읽기



 지난 8월 16일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옆지기가 스물네 시간 배앓이를 겪은 다음 낳았습니다. 집에서 낳으려고 했으나, 새벽녘 쏟아진 비 때문에 날씨가 갑자기 나빠지며 옆지기 몸 또한 나빠지는 바람에, 부랴부랴 산부인과로 옆지기를 옮겨서 10분 만에 낳았습니다. 이날 뒤로 열흘이 훌쩍 지나고 두 주가 가까워 옵니다. 머잖아 세이레를 맞이하면서, 바깥사람한테도 아기를 내보이면서 축하를 받고 백일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낳이를 하려고 집을 꾸미고 이래저래 알아보고 배우는 동안, 또 아기낳이를 한다며 배앓이하는 옆지기를 돌보는 동안, 그리고 아이를 낳고 옆지기와 아이를 돌보는 동안, ‘여태껏 하루도 손에서 멀리해 본 적이 없던 책’을 멀리하게 됩니다. 멀리한다기보다 손에 들 겨를이 없습니다. 기저귀 갈랴, 기저귀 빨랴, 기저귀 널어서 말리다가 다림질하랴, 다시 기저귀 갈랴, 또 기저귀 빨랴, 또다시 기저귀 널어서 말리다가 다리랴.

 그러나 책 한 권 손에 쥘 틈이 없으면서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슬프지 않습니다. 괴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들뜹니다. 즐겁습니다. ‘옆지기와 아이를 돌보는 가운데에도 손에 쥘 만한 책이 무엇이냐?’를 되새겨 봅니다. 그냥저냥 읽던 책은 이렇게 고달프고 바쁠 때에는 아예 젖혀 놓게 됩니다. 그지없이 아름다우며 훌륭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면, 손에 물기 마를 새 없는 요즈음 같은 때에 졸린 눈을 비벼 가면서 읽을 수 없습니다.

 옆지기 부모님이 사는 일산으로 살림을 잠깐 옮겨서 옆지기와 아이를 돌봅니다. 그래서 저 혼자 이틀에 한 번씩 아침 일찍 인천으로 돌아와서 볼일을 보고 저녁에 부리나케 일산으로 갑니다. 고단함과 졸림이 겹치며 몸이 축납니다. 그래도 이렇게 오가는 동안 버스나 전철에서나마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억지로 눈가를 비비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다른 책은 거의 읽을 마음이 나지 않고 딱 두 가지,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는 책과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읽습니다. 요사이 나온 다른 책들도 집어들어 보지만 이내 하품이 나와서 다시 덮어놓습니다. 별 서넛을 붙일 만한 책은 ‘애 아버지’ 마음속 깊은 데까지 와닿지 못합니다. 별 다섯을 붙이고 하나를 덤으로 더 얹어 주고픈 책이어야 비로소 ‘애 아버지’ 눈을 번쩍 뜨게 해 줍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애 아버지’보다 몸이며 마음이 훨씬 지쳐 있는 ‘애 어머니’는 별 다섯에 덤으로 하나 얹어 줄 책조차 펼치기 힘드리라 봅니다. 별 다섯에 별 다섯을 붙일 책마저 넘기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배앓이를 하고 젖먹이기를 하는 동안, 그 어느 책에서도 다루지 못하거나 않은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애 어머니’ 마음밭에 차곡차곡 심기고 자라지 않겠느냐 싶어요. 책 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 두 사람이, 책을 가까이하지 못하면서도 마음이 푸근한 이맘때입니다. (4341.8.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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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잘잘잘 옛이야기 마당 1
이미애 지음, 백대승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옛이야기’는 어떻게 다시 펴내면 좋을까?


- 책이름 :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 글 : 이미애
- 그림 : 백대승
- 펴낸곳 : 미래아이 (2008)
- 책값 : 12000원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우리 옛이야기 가운데 ‘호랑이(범)’ 이야기 한 가지만 골라서 엮은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라는 책은, 사람이 아닌 짐승을 빌어서 우리 삶을 돌아보도록 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이야기 한 자락마다 모두 다른 빛깔로 그림을 담아낸 품새 또한, 흔히 떠돌고 웬만큼 퍼져 있기에 언뜻 지루해 보일 수 있는 ‘호랑이 이야기’를 재미나게 즐기도록 이끕니다. 시원시원한 판짜임은, 이 그림책을 볼 아이들을 널리 살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어느 한편으로 바라본다면, 좀더 수수하게 엮으면서 책값을 낮출 길을 찾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옛이야기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책 말투를 보면 한결같이 판박이로 되어 있습니다. 보리출판사에서 펴낸 ‘서정오 님 이야기책’부터 퍼진 ‘입말 투’라 할 텐데, 입말 투는 ‘똑같은 토씨로 끝나는 일이 드뭅’니다. 처음에는 이런 입말 투가 무척 새로우며 놀랍다고 느꼈는데, 똑같은 말투가 자꾸만 되풀이되면서 더 나아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또 우리 입말 투가 무엇인가를 깊이깊이 파고들어가는 동안, 다른 작가나 서정오 님 스스로도 ‘자연스러운 입말 투’에서 멀어진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서정오 님 옛이야기 책이나 다른 분 옛이야기 책이나, 거의 판박이처럼 ‘-했어’, ‘그랬어’, ‘그랬지’ 하고 말끝을 맺습니다. 입말 투라고 하면서 ‘-다’가 아닌 ‘-어’나 ‘-지’로 끝맺는데, 우리들 입말 투는 ‘-다’로 끝맺을 때도 있고 ‘-어’나 ‘-지’로 끝맺을 뿐 아니라, ‘-구나’라든지 ‘-네’라든지 ‘-구만’으로 끝맺기도 합니다. 낮춤말도 아니고 높임말도 아닌 어설픈 입말 투로 이야기를 펼치기보다는, 차라리 높임말을 쓰면서 아이들을 섬기는 매무새를 보여줄 때가 한결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입말 투는 ‘것(거)’을 함부로 자주 붙이지 않습니다. ‘말했던 거야’나 ‘그랬던 거야’나 ‘먹었던 거야’가 아니라 ‘말했지’나 ‘그랬거든’이나 ‘먹었네’처럼 붙여야 올바릅니다.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는 이 어설픈 틀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바람직하지 않은 ‘순화대상 낱말’이 곳곳에 보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만한 그림이야기책을 싼값으로 조촐하게 꾸민다고 하면, 요새 어머니들은 외려 이 책에 깃든 보물을 못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판사로서도, 독자로서도, 또 우리 형편으로도 단출한 판짜임과 엮음새보다는, 어딘가 무지개빛이 가득가득 수놓인 엮음새가 보기에 좋다고 느끼고, 큰 판이 더 나은 그림책인 듯 생각하며, 옛이야기도 ‘입말 투로 보이는 말씨’로 되어 있어야 좋은 듯 알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호랑이’라는 말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왜 호랑이한테는 ‘무섭다’는 생각을 심어 줄까요? 더군다나 오늘날 어느 곳에서 ‘호랑이를 본다’고, 호랑이는 무서운 짐승이라는 듯 이야기를 풀어 나갈까요? 지난 먼 옛날,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마음결을, 오늘날 우리들은 얼마나 차근차근 되돌아보면서 이와 같은 이야기책을 펴내고 있을까요? 이제는 “무서운 공무원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나 “무서운 법관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나 “무서운 전투경찰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같은 책을 내어야 알맞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이들한테는 처음 마주하는 호랑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동물원에서나 겨우 보는 호랑이라는 짐승을 머리로 헤아려 보면서, ‘무서운 짐승한테도 따순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가르침 하나는 얻을 테고요.

 옛날이야기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어떻게 다시 들려주면 좋을까 하는 대목에서는 깊이 있게 돌아보지 못했지만, 호랑이 그림 하나는 참 잘 그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남습니다. ‘왜 옛날사람이라고 하면서 죄다 조선 후기 사람만 그리고, 더구나 양반들만 그리고 있는지’를 뒷통수 좀 긁적이면서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가난한 선비는 어떤 신을 신었을지’, ‘산골 깊숙한 마을 집은 어떤 모양일는지’, ‘우리 나라 깊은 산골 나무는 어떤 모양 어떤 크기일는지’도 가만히 되새기면서 창조와 상상력을 북돋운다면 한결 나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4341.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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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조막손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 지음, 고향옥 옮김, 노베 아키코 외 그림 / 우리교육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아이를 키우는 마음과 ‘다름’을 헤아리는 마음
 [잠깐 읽기 12] 다바타 세이이치, 《마법의 조막손》



- 책이름 : 마법의 조막손
- 그린이 : 다바타 세이이치
- 글 : 선천성 사지장애아 부모회, 노베 아키코, 시자와 사요코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우리교육 (2008.8.4.)
- 책값 : 9500원



 (1) 아이를 키우는 마음


 사회가 조금씩 발돋움을 하고 있는지, 요즈음 들어서 ‘다름’을 말하는 사람들을 부쩍 자주 봅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말하면서 더 널리 껴안는 마음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다름’은 늘 ‘눌리거나 짓밟히거나 빼앗기거나 들볶이는’ 쪽에서 말하지, 누르거나 짓밟거나 빼앗거나 들볶는 쪽에서 말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재개발만 해도, 정작 ‘재개발이 되어 떠나야 하는 주민들 생각’을 찬찬히 듣고 묻고 알아 가면서 하는 재개발이란 없습니다. 보증금 100만 원에 달삯 10만 원을 내고 살아가는 수수한 식구들이 깃들어 있는 조그마한 골목집 사람들이, ‘재개발이 끝난 뒤에도 이만한 돈으로 깃들 만한 집을 새로 지어 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한 평에 1천만 원도 아닌 2천만 원이나 3천만 원이나 하는 아파트만 새로 지으려고 하면서 ‘주택보급’을 이야기합니다. 서민들은 엄두를 낼 수 없는 비싼 아파트를 지으면서 ‘주거환경 개선’을 외칩니다. 이런 모습도 ‘다름’일까요?


.. 마리가 깜짝 놀라며 말했어요. “내가 엄마야!” “아냐, 오늘은 나야. 나도 엄마가 하고 싶단 말이야!” 마리는 얼굴이 새빨개져 씩씩거리며 말했어요. “넌 엄마 못 해! 손가락 없는 엄마가 어딨어!” 옆에 있던 유키랑 나오코도, “맞아!” “말도 안 돼!” 하고 말했어요 ..  (10∼12쪽)


 이제 열흘 동안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린 딸아이 기저귀를 갈고 똥오줌을 빨아내어 털어 널면서, 또 아직 덜 마른 기저귀를 부지런히 다림질을 하며 말리는 새벽 두어 시에 홀로 생각합니다. 병원(산부인과)에서는 이 어린 목숨붙이한테 ‘40 + 8 검사’를 해 준다고 하더군요. 나라에서 뒷배하여 1만 원만 내면 해 주는 검사가 여덟 가지이고, 8만 원을 더 내면 병원에서 마흔 가지 검사를 더 해 준다고.

 그래서 병원 간호사한테 물어 봅니다. 나라에서 해 준다는 여덟 가지 검사가 무엇인지, 또 병원에서 한다는 마흔 가지 검사가 무엇인지.

 간호사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저처럼 물어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네? 여덟 가지가 황달하고 혈액형하고 또 뭐 해서 여덟 가지예요.” “그러니까 그 여덟 가지 검사가 무언데요?”

 옆에서 다른 간호사가 알파벳으로 휘갈겨진 서류를 한 장 내보이면서, “영어로 적혀서 못 알아보겠지만, 이렇게 여덟 가지 검사예요.” 하고 앵돌아진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알아볼 수 없게 적은 검사 항목’을 보여주어서 어쩌겠다고. 알 수 없는 검사를 왜 받아야 하는데?

 간호사는 이런저런 말로 대충 얼버무린 다음, “아기한테 장애 검사를 하는 ……” 하면서 말을 잇습니다. 한참 듣다가, “저희는 그런 장애 검사는 안 받겠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병원에서 생각하는 ‘장애’란 무엇인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아이한테 장애가 있으면 그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이고, 장애가 없으면 없는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아이 혈액형이 A형이면 어떻고, O형이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다 알게 될 혈액형 아니겠습니까. 굳이 벌써부터 알아야 할 까닭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혈액형 모르고 살아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텐데. 아기한테 정작 베풀어 줄 일은 ‘장애가 있는 아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버이가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보듬어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직 이어갈 수 없는 이 가녀린 목숨을 사랑해 주기일 텐데.


.. “학교에 들어가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손가락이 생겨?” 삿짱은 엄마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어요. 엄마는 두 손으로 삿짱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어요. “삿짱, 네 손은 말이야, 학교에 들어가도 지금이랑 똑같아. 언제까지나 똑같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삿짱. 너에게는 소중하고 소중한 손이란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딸의 예쁘고 예쁜 손이야…….” 삿짱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어요. “싫어, 싫어, 이딴 손 싫어!” 엄마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  (24쪽)


 기저귀를 하루에 마흔 장 남짓 빱니다. 아기가 사흘을 지낸 때에는 스무 장쯤 빨았는데, 나날이 빨랫거리가 늘어납니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부터는 쉰 장까지도 빨아야지 싶습니다. 왜 ‘방수천’이나 ‘방수담요’를 쓰는지 알 만합니다. 젊은 어머니들이 왜 ‘1회용 기저귀’를 쓰는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 목숨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어버이한테 내맡기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은데, 그 짧은 시간이나마 어버이로서 똥기저귀를 빨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노릇, 아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제 몸이 느낍니다. 아이가 살아갈 이 삶터가 1회용 기저귀 때문에 더 더러워지고 있는데, ‘어버이로서 조금 고단하다고’ 하면서 돈 몇 푼으로 1회용 기저귀를 사서 쓰면, 어버이한테도 나쁘고 아이한테는 더 나쁠 일이라고 느낍니다.

 옆지기가 스물네 시간 아파하면서 나온 목숨인 딸아이인 한편, 저도 옆에서 똑같은 시간을 함께 아파하면서 옆지기를 주무르고 돌보면서 낳은 딸아이입니다. ‘여느 사람 말’은 아니라 할 터이나, 아기가 ‘으’ 하고 외마디소리를 나지막히 내뱉을 때, ‘끄’ 하고 외마디소리를 낮게 내뱉을 때, 지금 ‘내(딸아이)가 오줌을 지렸으니, 아버지는 얼른 기저귀 갈아 주셔요’ 하는 이야기건넴이라고 알아차립니다. 장모님이나 다른 분들은 이 소리를 못 알아채지만, 저는 마음으로 느낍니다. 설핏 잠이 들어서 쓰러져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기저귀에 손을 대 보고는 촉촉함이나 물컹함을 느끼고는 서둘러 갈고 새 기저귀를 깝니다. 가슴에 살며시 제 손을 대고 다시 잠들도록 기다린 뒤, 젖은 기저귀를 들고 뒷간에 가서 신나게 빨아 목초액에 담가 놓습니다. 손이며 몸이며 아기 똥오줌 냄새가 짙게 배었는데, 이 냄새가 ‘세상에 찌든’ 제 몸을 부드럽게 감싸 줍니다.

 비빔질을 하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살짝살짝 베어서 다친 손가락이 쓰라립니다. 1센티미터쯤 살짝 찢긴 살점이지만, 물이 닿으면 쓰립니다. 그래도 꾹 참고 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아이를 생각합니다. 기저귀를 갈 때, 기저귀를 갈고 나서 아이와 눈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건넵니다. “벼리(딸아이 이름)야, 아버지가 이번에는 기저귀를 좀 늦게 갈아 주었구나. 꿉꿉한데 얼른 갈아 주었어야 했는데. 엉덩이에 묻은 오줌도 닦고 발에 묻은 오줌도 닦고, 조금만 기다려 주셔요.”


.. 불쑥 삿짱이 말했어요. “아빠, 나도 엄마 될 수 있어?” 아빠는 깜짝 놀라, 삿짱을 바라보았어요. “나, 손가락 없어도 엄마 될 수 있어?” ..  (33쪽)


 옆지기 어머님이나 아버님은, 저보고 아기 기저귀를 뭣하러 다리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말없이 웃습니다. 너무도 마땅한 이야기라서, 굳이 대답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냥 웃을 뿐입니다. 어른인 저도, 빨아서 말리기만 한 천기저귀하고, 빨아서 말린 뒤 다림질을 한 천기저귀하고 느낌이 사뭇 다른데요. 어른 살갗이 아닌 아기 살갗은 더 날카롭게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처럼 어린 아기한테는 잠을 좇으면서 더 뽀송뽀송하고 부드럽게 기저귀를 마련해서 대어 주는 일이, 어버이로서 할 몫이 아니랴 싶습니다. 말을 못하는 아기가 아니라,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아기인데, 이 아기 말을 제대로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 어머니로서, 또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제 몫을 못하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손가락이 다쳐서 아프면서도 아픔을 꾹 참고 기저귀를 빠는 새벽나절, 마음으로 딸아이한테 이야기를 건넵니다. ‘벼리 아버지가 조막손일 수 있는데, 아버지가 조막손이라 해도 벼리한테는 똑같은 아버지일 테지요?’


 (2) 아쉬움 몇 가지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을 읽습니다. 금세 읽고 덮은 다음, 두어 번 다시 읽어 봅니다. 일본에서는 1985년에 나온 작품입니다. 스물세 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한국땅에서 나옵니다. 한국에서 옮겨 낼 만한 값과 무게가 있으니 예쁘장하게 꾸며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한국에도 장애를 안고 있는 어린이가 몹시 많을 텐데, 왜 한국땅에서는 ‘한국땅 장애 어린이’ 삶과 생각을 담은 이야기책은 보기가 어려울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법의 조막손》(일본책 이름은 ‘삿짱은 조막손’)은 틀림없이 훌륭하게 엮은 책이기 때문에 한국뿐 아니라 중국이나 대만이나 필리핀에서 옮겨내어도 좋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어이하여 한국사람들은 이만한 이야기책이나 그림책을 한국 삶과 삶터와 사람에 맞추어서 스스로 빚어내지 못할까 싶습니다. 우리 땅에도 장애 때문에 눈물 흘리는 아이가 많고 어버이가 많은데, 왜 우리 스스로는 이런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담아내지 못할까 싶습니다. 한국땅에서 ‘그림 작가’라고 내세우는 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글 작가’라고 뽐내는 분이 두셋이 아닙니다. 그러하오나, 어이된 셈인지 장애 어린이 이야기는 눈 씻고 찾아보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어렵게 한 권 세상에 나와도 ‘참 안 팔립’니다. 《마법의 조막손》 또한, 훌륭한 이야기와 줄거리와 짜임새와 그림결로 애틋한 사랑과 믿음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거의 사랑받지 못하고 몇 해가 지난 뒤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동화작가라는 분들이 눈길을 두면서 쓰는 글감을 보면, 그림책작가라는 분들이 마음을 기울이면서 그리는 그림감을 보면, 어째 우리 나라는 제자리걸음으로 우려먹는 일을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놀랍습니다.

 아파하는 사람들 이야기, ‘다르게 사는’ 이야기는 어인 일인지 제대로 다루어지는 일도 없지만, 겉핥기로나마 다뤄지는 일조차 드문지 궁금합니다.

 우리 딸아이는 ‘집에서 낳기’를 하려다가 뜻을 못 이루고 말았지만, 왜 아이를 ‘병원에서 낳아야’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집에서 아이 낳는’ 일은 미친 짓(?)처럼 바라볼까요.


.. 드디어 엄마가 아기를 낳았어요. 삿짱도 아빠 따라 병원에 갔어요. 아기는 요람 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어요 ..  (30쪽)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에서도 ‘병원에서 아기 낳기’가 나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다르다면, 일본에서는 아기 엄마 곁에 요람을 놓고 둘이 함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 줍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신생아실’이라는 이름으로 아기들을 어머니하고 떨어뜨려 놓고 분유를 먹여서 ‘아기 때부터 엄마젖을 못 먹게’ 만들어 버리는 데다가, 1회용 기저귀로 꽁꽁 싸매어 놓습니다. 더구나 아기 머리 위로 형광등이 바로 따갑게 내리쏘고 있는걸요.


.. 삿짱은 씩씩대며 서 있었어요.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갔어요. “엄마, 왜 내 손은 다른 애들이랑 달라? 왜 다른 애들처럼 손가락이 없는 거야? 왜 그래?” ..  (18쪽)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다르게 살아갈 뿐입니다. 다르게 살든 똑같이 살든 모두 소중한 목숨붙이입니다. 대통령 뽑을 때 이명박 씨한테 표를 주었든 권영길 씨한테 표를 주었든, 모든 사람은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했건 대학원까지 나왔건, 두 사람은 ‘나뉘어진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뿐 아니라, 인기 연예인과 비인기 연예인이 다른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팔 하나가 있든 팔 하나가 없든 똑같은 사람입니다. 벌이가 한 달에 오십만 원도 되기 어려운 살림이든, 한 달에 오억 원을 버는 살림이든, 모두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남 아이가 소중하고, 내 목숨이 사랑스러운 만큼 남 목숨이 사랑스럽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들은 남을 생각하기에 앞서, 나 스스로를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는 아닐까 싶어요. 나 스스로를 제대로 알면서 사랑하지 못하니까, 내 둘레에 있는 남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푸대접을 하거나 깔보지 않느냐 싶어요.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은 ‘책에 쪽수가 없는’ 이상한 편집을 하고, 쪽수가 많지 않은 그림책치고 책값이 너무 비싸며, 책이름을 너무 뭉뚱그리셔 붙인 대목이 아쉽습니다(일본에서 처음 나올 때에는 수수하게 “삿짱은 조막손”이라고 했지 ‘마법’ 같은 말은 넣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우리 스스로 이만한 이야기조차 빚어내지 못하니 눈물까지 날 판입니다만, 모자라나마 이 그림책 하나로 우리가 자꾸만 잃거나 내버리고 있는 ‘다름이 아름다운 까닭’과 ‘다름이 사랑스러운 삶’을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으니, 이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삿짱’이라는 아이는 조막손이어도 삿짱이고, 조막손이 아니어도 삿짱입니다. (4341.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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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9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8-08-29 17:4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일본말로 볼 때, 처음에 "삿짱"이라고 나와서 뒤에 적힌 히라가나가 "조막손"을 뜻하리라고 넘겨짚고 일어사전을 안 뒤적여 보았는데, 그 한 마디를 더 찾아보았어야 했는데, 도움글 고맙습니다. 일어사전 한 번 덜 찾아본 탓에, 저로서도 이 글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했군요 ㅠ.ㅜ

흠... 일부러 쪽수를 안 적는다니... 쪽수란 아무런 뜻이 없을 수 있지만, 또 그렇게 하는 뜻도 있을 텐데, 책을 읽으면서 무척 번거롭게 되어서, 읽으면서 손으로 쪽수를 매겨 가게 됩니다... -_-;;;;

그런 버릇도 '다름'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모르겠네요. 에궁...
 


 ‘아이 키우는 아저씨 작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 ‘작가로 걷는 길’과 ‘기저귀 빠는 길’과



 - 1 -

 지난 8월 16일 새벽 다섯 시 사십육 분에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낳기는 옆지기가 낳고, 저는 옆지기 진통을 함께 받았습니다. 스물네 시간 진통을 하는 동안 옆에서 부축이고 주무르고 양수와 피를 닦았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옆지기가 찬 기저귀를 빨고 밥을 떠먹였습니다. 이제 옆지기는 자기 손으로 밥과 국을 떠먹을 수 있을 만큼 되었지만, 아기를 안아 올리기에도 힘이 모자란 형편. 얼추 한 주쯤 지나면서 혼자서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볼 수는 있으나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일을 시켜서도 안 되지요. 예부터 세이레라는 말은 괜히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낳는 진통과 아이낳기와 아이 돌보기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또 제가 손수 거들면서,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을 넉넉한 시간에 걸쳐서 느긋하게 쉬도록 마음을 기울이면서 돌보아 주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며 다른 집식구들이 애먹을 수밖에 없겠다고 새삼 느낍니다. 예전에는 머리속에 깃든 지식으로만 알던 이야기를, 이제는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으로 깨닫습니다.

 처음 진통을 하던 8월 15일 새벽부터 오늘 8월 23일 아침까지, 제가 잠든 시간이 얼마나 되나 손꼽아 봅니다. 한 주 동안 다문 열 시간이나마 잠을 잤나 모르겠습니다. 자리에 눕기로는 열 몇 시간은 누워 있은 듯하지만, 제대로 잠든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쯤밖에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기를 낳는 동안 아파하는 옆지기를 돌볼 때에는 돌본다고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아기를 낳은 뒤에는 몸을 쓰지 못하는 옆지기를 돌본다며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이즈음은 옆지기와 아기 시중에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나마 옆지기가 기운을 차려서 조금 움직이며 아기 기저귀를 갈아 주는 낮나절 잠깐 눈을 붙일 뿐, 그 앞과 뒤로는 쉴 겨를이 없습니다. 아니, 쉴 겨를이 아니라 잠들 겨를이 없습니다.

 하루에 열둘∼스무 번 똥와 오줌을 지리거나 누는 아기입니다. 좀 자라면 덜할지 모를 텐데, 그때는 덜하더라도 누는 똥과 오줌이 늘 테지요. 지금으로서는, 젖을 먹으면서도 오줌이나 똥을 누고, 젖을 먹고 잠든 다음에도 오줌이나 똥을 누며, 칭얼거려서 가슴에 안아 줄 때에도 오줌과 똥을 지립니다.




 아기 낳기 앞서, 동네 할머님과 옆지기 집에서 천기저귀를 얻어서 갖추어 놓았습니다. 아기 사타구니에 차는 하나와 등에 받쳐서 싸는 하나, 이렇게 두 장을 날마다 열두 번에서 스무 번을 써야 하니까, 날마다 빨아야 하는 기저귀는 스물 넉 장에서 마흔 장입니다. 그리고 옆지기는 앞으로 한 달 남짓 아랫도리에서 피를 흘릴 터이니, 옆지기 기저귀도 날마다 두어 장씩 빱니다.

 기저귀만 빨면 그래도 낫지만, 아기가 드러눕는 바닥 담요와 포대기도 빨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죄다 빨다가 너무 힘들고 빨래감이 많아서, 포대기는 하루에 한 번만 빨기로 하고 똥오줌 지린 데만 물로 헹구고 살짝 빨아서 다림질로 말린 뒤 다시 씁니다. 담요는 한 주쯤 쓴 다음 빨아야지요. 담요도 젖는 틈틈이 다림질을 해서 말립니다.

 이러는 동안, 옆지기가 배고프다고 하면 밥을 해서 먹여야 하니 밥을 합니다. 밥을 하는 사이 “여보, 아기가 오줌 쌌어요.” 하고 부르면, “네.” 하고 쪼르르 달려가서 기저귀를 갈고 아기 엉덩이 닦고 바닥 포대기 살짝 빨아서 다림질을 합니다. 그러고 다시 밥을 해서 쟁반에 받쳐서 대접을 하고, 그런 다음 뒷간 빨래통에 담가 놓은 기저귀를 빱니다. 빨아도 빨아도 끝이 없기는 하지만, 어제는 비가 내내 그치지 않아 집안에 널어 놓은 빨래가 좀처럼 마르지 않았습니다. 안 마르는 빨래에 부채질을 하고 다림질을 하는데, 이러고 있으면 또 “여보, 아기가 똥 쌌어요.” 하고 부릅니다. “네.” 하며 포르르 달려가서 기저귀 갈고 엉덩이 닦고 포대기 또 빨아서 다림질을 하고 내려놓는데, 이십 분 뒤에 또 오줌을 지립니다. 오늘 아침에도 새로 갈아 준 기저귀를 사타구니에 받치고 누운 지 이십 분 뒤 또 오줌을 지렸습니다. 옆지기가 웃으면서, “벼리야, 아빠 이제 막 자리에 누웠는데 또 일으켜서 기저귀 갈아야 한다. 아빠 보고 한 번 웃어 줘라.” 하고 말합니다. 푸석푸석한 얼굴로 아기를 째려보다가는 코로 볼을 한 번 눌러 준 뒤 기저귀를 갈고 포대기를 빨아서 다림질을 한 다음 눕힙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며칠 아기 돌보기를 도와주었을 때에도 일감은 많았는데, 옆지기 어머님도 당신 댁을 돌봐야 해서 돌아간 뒤에는 일감이 훨씬 많아서, 하루 스물네 시간이 왜 이리 짧으냐 싶습니다. 일은 고되게 하면서도 밥맛이 돌지 않아 밥을 못 먹습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밥때를 챙기지 못합니다. 밥때를 챙기지 못하니 어느새 배고픔이 가라앉고, 나중에는 힘이 빠져 먹을 마음을 잃습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여러 날 잠을 못 자면서 빨래하고 뭐 하고 하느라 몸 균형이 깨진 듯합니다. 여느 때 71∼72킬로그램 하던 몸무게가 오늘아침에는 65.5킬로그램까지 줄었습니다.

 오늘 새벽 네 시 오 분에 기저귀를 갈고 나서 다섯 시 십구 분까지 빨래를 하고, 다섯 시 사십오 분까지 다림질을 하다가 아기 기저귀를 또 한 번 갈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지 않는다. 유홍준 씨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했으나, 이 말은 옳지 않다. 사람은 겪은 만큼 볼 뿐이다. 겪지 못했으니까 지식으로 머리속에 있어도 살갗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느낌(감동)이 없다. 때때로, 겪어 보지 않고도 (사물 속살을 꿰뚫어) 보는 이가 있는데, 자기 스스로 바로 그 일을 겪지는 않았으나, 자기가 겪은 다른 일을 미루어 살갗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는 사람은 지식으로 보는 사람이다. 겪은 만큼 보는 사람은 삶으로 세상을 보고 가슴으로 세상을 껴안는 사람이다. 우리(나와 옆지기)가 천기저귀를 마련해서 손빨래를 하고 아기한테 어머니젖을 먹이는 까닭은, 돈을 아끼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를 생각하기 때문이요, 우리 삶을 가꾸고 싶기 때문이다. 천기저귀와 어머니젖으로 자란 아이하고, 1회용 기저귀와 가루젖으로 자란 아이하고 몸이며 마음이며 같은가. 하루를 온통 바쳐도 모자랄 만큼 갖은 일에 허덕이지만, 이렇게 보내는 나날은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과 견주면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얼마 안 되는 나날을 아이와 우리 자신을 더 헤아리면서 이처럼 보낼 수 있다면, 서로한테 더욱 힘이 되고 즐거웁지 않겠는가.’

 아기 기저귀를 또 갈고 다시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니 여섯 시 삼십이 분. 이제 잠깐이나마 눈을 붙일까 했으나, 옆지기가 “여보, 나 배고파요, 밥 줘요.” 하고 부릅니다. “네.” 하고 대꾸하며 미역국을 뎁힙니다. 잠자는 방에서 날뛰는 모기를 잡고 이렁저렁 있는 사이 아기는 다시 똥을 지리고, 저는 다시 기저귀 빨래를 하니 여덟 시 사십사 분. 히유, 하고 한숨 돌리며 바닥에 드러누워 허리를 펴지만, 또다시 밀려드는 ‘기저귀 갈기와 빨기와 다림질’.

 아기와 함께 산 지 오늘로 엿새째인데, 이제 아기가 어떤 소리를 내느냐에 따라서, 기분이 좋은지 꼬리한지, 또는 오줌을 지렸는지 똥을 누었는지 알아차립니다. 아기는 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윽’ ‘끙’ ‘끄’ 외마디를 아주 나즈막하고 짧게 내뱉습니다. 마루에서 다림질을 하다가 이 소리를 듣고 후다닥 달려와서 이불 밑으로 손을 넣으면 촉촉하거나 물컹합니다. 기저귀 안 젖은 쪽으로 손을 닦고 다른 쪽으로 엉덩이를 살살 닦으면서 기저귀를 갈아 줍니다. 생각해 보면, 또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저런 돌봄이 노릇은 고단하고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 말이 아닌 제가 겪는 일을 돌아보아도 참으로 고단하고 힘듭니다. 그러나 이 고단하고 힘든 일을 누구한테 맡길 마음은 없습니다. 빨아 놓은 기저귀는 안 마르고 아기는 또다시 오줌과 똥을 지리면 그지없이 까마득해서 부리나케 덜 마른 기저귀를 부랴부랴 다림질을 해서 대어 주는데, 꼭 ‘아버지가 되는 느낌’이어서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 삶이구나, 사람 삶이구나, 우리 삶이구나, 하는 느낌이어서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지난주에는 옆지기 양수 냄새가 제 몸에 듬뿍 배어 있었고, 이주부터는 아기 똥오줌 냄새가 제 몸에 잔뜩 배어 있습니다.




 - 2 -

 아기가 아버지한테 잠깐이나마 ‘평화’를 선물해 주는 아침 열 시 반무렵. 조용히 옆방으로 와서 셈틀을 켭니다. 잠을 자고 싶지만, 지금 잠을 자면 아예 셈틀을 켤 수 없기 때문에 눈 둘레를 주물러 주고 등허리를 주무릅니다.

 뒷간에 갈 때를 빼놓고는 책장 한 번 펼치기 힘든 요즈음, 셈틀을 켜고 글 한 줄 쓸 틈은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걸려오는 전화 받기는 귀찮을 뿐더러 짜증스럽기도 합니다. 한창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전화가 오면 짜증부터 덜컥 납니다. 맞은편에서는 제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길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얼른 끊고 싶으나, 자기 볼일을 마쳐야 전화를 끊어 주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전화 받기 몹시 힘들어요.” 하고 말해도 ‘얼마나 힘든 줄’을 거의 못 느끼지 싶습니다.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우리 어머니가 책을 읽는 모습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언제나 일하는 모습만 보았습니다. 집에만 계신 어머니이지만, 어머니가 해야 할 몫은 늘 끝이 없었지 싶습니다. 제가 철이 든 뒤에도 그러했으니, 제가 막 태어난 아기였을 때에는 일감이 훨씬 많았으리라 봅니다. 그때 우리 어머니께서는 아무런 ‘육아책’을 못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볼 겨를도 없지만, 볼 꿈도 못 꾸었겠지요. 그리고,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볼 마음을 품어 본 적이 있으셨을까요, 없으셨을까요. 있으셨어도 하루하루 바쁘고 고단해서 연필 들어 일기장 적을 힘이 없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연필을 들 힘이 있으면 빨래 한 점을 더 하거나 걸레질 한 번을 더 한다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싶고, 몸져누운 할아버지를 여러 해 동안 수발해야 했기에, 어머니 당신한테 ‘작가가 되는 꿈’이 있었다고 해도,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이웃 동네에 사는 할머니 시인인 정송희 님 말을 들으면,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막내 아이가 혼인하기까지 ‘시인이라는 이름은 젊은 날 걸치고 있었으나 시를 쓸 틈과 힘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서른 해 남짓 접어놓은’ 채 사셨더군요.




 - 3 -

 여기까지 쓰는데 아기가 울어서 안아서 어르고, 조용해지면 밀린 기저귀를 빨고 다림질을 하고, 모처럼 해가 나서 빨래를 앞마당에 옮겨 널고, 옆지기 수박 잘라 주고, 똥 눈 아기 엉덩이 씻기고 하니까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아버지도 밥을 먹어야 하건만 밥때를 챙길 겨를이 없고, 밥을 챙겨 줄 손이 모자랍니다. 이제 막 옆지기가 아기 젖을 물렸으니 이십 분이나 삼십 분은 숨통을 틀 듯합니다. 후다닥 저잣거리 마실을 다녀와서 제 먹을거리를 챙기고, 남은 기저귀를 빨고 다려야겠습니다.

 새삼스레 ‘아줌마 작가’가 드물고 ‘아이 키우기와는 멀리 떨어진 채 살아가는 남성 작가’만 많은 우리네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아이 키우는 아저씨 작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4341.8.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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