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이어져 있다 - 평화를 향한 이야기의 행진 낮은산 키큰나무 7
일본아동문학자협회 지음, 문연주 옮김 / 낮은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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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69 ― 전쟁을 반대해도 말하지 않으면 찬성이 된다
 : 일본아동문학자협회, 《하늘은 이어져 있다》



- 책이름 : 하늘은 이어져 있다
- 글 : 일본아동문학자협회
- 옮긴이 : 문연주
- 펴낸곳 : 낮은산 (2008.8.11.)
- 책값 : 1만 원



 (1) 전쟁을 불러 오는 우리 삶


 아침에 창밖으로 새소리가 들립니다. 옆지기가 무슨 새소리인지 궁금해 합니다. 참새가 아닐까 생각하며 내다봅니다. 전봇대 꼭대기 높은 자리에 앉은 조그마한 새가 보입니다. 박새입니다. 참새하고 조금 다른 소리라고 느끼긴 했으나, 박새 소리였군요. 창문가에 서서 살그머니 사진 몇 장 찍습니다. 사진 찍는 소리는 박새한테 들리지는 않을 테지만 조금 뒤 포로롱 날아갑니다. 전봇대 꼭대기에서 잠깐 머물다 날아간 박새한테, 우리 동네는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있는 터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골목길마다 열매나무가 있고, 가지 꼭대기짬은 사람 손이 닿지 않으니, 이 열매를 먹으면서 배를 불릴 수 있으며, 고무다라이에 심어서 가꾸는 키작은 대추나무든지 감나무든지 복숭아나무든지에서도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을 테지요. 방앗간에서는 때때로 길바닥에 곡식 부스러기를 뿌려 주곤 합니다.


.. 노인은 앞니로 문 이쑤시개를 위아래로 까딱대면서 심술궂은 눈길을 가즈키에게 던졌다. “그 전쟁포기 헌법, 일본인이 만든 게 아니니 바꾸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지.” “네?” “그치들 말에 따르면, 전쟁에서 일본을 패배시킨 미국이 만들어 놓은 헌법 초안을 당시 일본 정부가 그대로 가져와 썼다는 거야.” 할머니가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여성 참정권과 남녀평등을 미국이 지독하게 채근해서 헌법에 넣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가즈키는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그런 거예요? 전쟁포기란 게 일본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을 반성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정한 게 아닌가요?” “글쎄, 나야말로 알고 싶군. 그래도, 일본인만큼 전쟁의 끔찍함을 사무치게 느낀 국민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헌법이 만들어지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뿌리 깊게 생각이 박혀 있는 거겠지.” ..  (21쪽)


 박새가 짤막히 소리를 남기고 떠난 전봇대 둘레로, 저녁과 새벽에 술 체한 사람들이 제법 많이 지나가는 날이 있습니다. 두 시이고 세 시이고 네 시이고 가리지 않고 참 시끄럽게 떠들어댑니다. 이들한테는 골목집에 깃들어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생각할 까닭이 없으며 아랑곳 안 해도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아마, 아파트에서 이렇게 술 체한 사람이 있었다면 지킴이 아저씨가 달려와서 끄집어 냈으리라 봅니다. 술 체한 사람들 가운데 막 나가는 사람도 많아, 이들을 나무라거나 꾸짖기는 퍽 어렵습니다. 가끔 경찰을 부르기는 하는데, 경찰도 이들을 어쩌지 못하거나 내버려 둡니다. 동네를 도는 경찰도 술 체한 사람을 뻔히 보면서 지나칩니다.

 조용한 밤골목을 난데없이 지나가는 폭주족도 있습니다. 이들이 밤골목을 씽씽 내달리는 까닭이라면, 이곳에 다니는 차가 없고 조용하니까, 이 모두를 깨면서 즐기고 싶기 때문일까요. 자기들한테 사랑하는 옆지기가 있고, 옆지기가 갓난아기를 어르면서 겨우 잠이 들었다고 한다면, 이런 집 옆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를 내달리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한 동네 사람이요 한 마을 이웃입니다. 그렇지만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이웃으로 느끼고 있을까 그지없이 궁금합니다.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느끼는지,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뿐인 아름다운 목숨이라고 여기는지 궁금합니다.



(박새를 찾아라! 진짜 작은 새... ^^;;;;)


.. 이라크 문제는 어려웠지만 네 명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 가며 마침내 완성했다. 마지막 호답게 공을 들인 신문이었다. 복도에 붙었을 때, 네 명 모두 신문 앞에서 만족해 했다. 분명 화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화제는커녕 관심을 보이는 사람조차 적었다. 그저 며칠 뒤, 트레인신문 제호 앞부분에 누군가가 ‘폐품’이라고 낙서를 했을 때에는, 반 학생 모두가 좋아라 했다. 이렇게 하여 트레인신문부의 활동은 끝났다 ..  (82쪽)


 지난 토요일, 서울에 볼일이 있어 자전거를 끌고 갔습니다. 하늘이 꾸물거리다가 비가 퍼부어,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찻길을 달렸습니다. 굵은 빗줄기가 비옷에 튀기는 느낌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천천히 달리는데, 자전거가 지나갈 길섶은 울퉁불퉁하고 곳곳이 패여서 아슬아슬합니다. 익히 알고 있는 길 형편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이 길 형편이 나아지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빗길에도 자전거를 모는 사람이 드물지만, 빗길 아닌 맑은 날에도 자전거를 몰고 일터나 학교를 오가는 사람이 드물거든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목소리를 내어 ‘파인 길을 메워 달라’고, ‘자전거가 걱정없이 다닐 길을 늘려 달라’고 외칩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목소리는 정작 ‘길을 잘 골라야 하는 행정 부서 공무원’ 귀까지 들어가지 않기 일쑤입니다. 들어간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공무원 스스로 길 형편을 알아보거나 살펴보며 먼저 나서서 고르는 모습은 여태껏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거님길 돌을 갈아치우는 데에 쓸 돈만으로도 길섶을 얼마든지 고르게 할 수 있습니다. ‘도로정비’란 자동차가 다니기 좋도록 길을 고르는 일만이 아니라, 자전거와 사람도 걱정없이 다닐 수 있게끔 손질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공무원 스스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까, 공무원이 되기 앞서 학생일 때에도 자전거로 통학을 하지 않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사귀고 만나던 때에도 자가용으로 나들이를 다니기만 했지 자전거로 오붓한 나들이를 하지 않으니까,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장보러 자전거 타고 가는 일 없이 자가용만 끌고 다니니까,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갈 때쯤이면 아이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가도록 하거나 부모가 자전거에 태우는 일은 없이 오로지 자가용에 실어서 학교를 보내니까, 우리네 자전거 길 형편은 늘 제자리걸음이라고 느낍니다.


.. 선생님이 할 말을 잃은 순간, “차라리 외국으로 가면 어때요? 한국이나 중국이라면 국내 여행보다도 싸잖아요.” 교실 안이 떠들썩해졌다. “너희들 말이야.” 고릴라가 거칠게 말한 순간 다카시가, “중국이나 한국에도 전쟁의 흔적은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  (181∼182쪽)


 삶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지 못한다고 할까요. 삶을 부대끼는 몸이지만 스스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삶을 껴안는 마음을 더 넓게 가꾸지 못하면서 제 밥그릇 챙기는 데에만 머리를 쓰기 때문일까요.

 두 다리나 자전거가 아닌 자가용만 타기 때문에 더 많은 기름을 써야 하고, 더 많은 기름을 써야 하니 석유전쟁이 터집니다. 세 식구 최저생계비가 이백만 원쯤 된다고 하던데, 우리 세 식구 살아가는 데에는 백만 원이어도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국민소득 이만 달러가 되는 오늘날, 세 식구가 이백만 원쯤은 벌어야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를 살펴서, 안 쓰고도 즐겁게 살아갈 길을 찾는다면, 최저생계비 끄트머리에도 못 미치는 일삯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법에 매이지 않고 아름답고 재미나게 살림을 꾸릴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전쟁은 못난 지도자 몇 사람이 일으키지 않으니까요. 입시지옥은 기득권 몇 사람이 부추기지 않으니까요. 교통대란은 누가 일으킵니까. 한미자유무역협정이나 미친소 고기는 누가 일으킵니까.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시장이? 군수가?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 일으키고, 우리 스스로 더 많은 자원을 더 펑펑 쓰게끔 삶을 맞추어 놓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지금 우리 눈높이를 맞추거나 지키자면, 한국보다 못살면서 한국한테 싼값으로 자원을 대 주어야 하는 나라가 꼭 있어야 합니다. 전쟁무기가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이고,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꾸준히 일으키고 있습니다만, 미국 한 나라만 잘못해서 일어나는 전쟁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대학교 졸업장 꼬랑지를 놓지 않으니 전쟁이 터지고, ㅇ마트 ㄹ마트에 자가용 끌고 가서 장보기를 하니까 전쟁이 터지며, 한 번 쓰고 버리는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을 아무 생각 없이 쓰고 버리기 때문에 전쟁이 터집니다.


 (2) 전쟁에 등돌리는 우리 책


 아침 나절, 옆지기하고 책 하나를 들춰봅니다. 《달콤하고 살별한 음식의 역사》(2008)라는 책으로, 책 겉에는 ‘옥스포드(대학교 출판부)가 선물한 전 세계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나라와 겨레마다 먹을거리가 다르고, 때와 곳에 따라서 밥을 달리 해서 먹고 있음을 사진 몇 장과 글 몇 줄로 찬찬히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넉넉하고 짜임새가 돋보입니다. 이 책을 우리 말로 옮겨서 펴낼 만한 값과 뜻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출판부’는 이처럼 제 나라 아이들에다가 이웃나라 아이들이 너르고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도록 키우려고 애쓰는데, 한국땅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 출판부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나라에서 몇 손가락에 꼽을 만한 출판사에서는 아이들한테 어떤 책을 선물하고 있는지 알쏭달쏭해집니다.

 책은 참말로 우리들한테 마음밥이 되고 있는가요. 수많은 나무를 베어내고 자원을 쏟아부어야 빚어낼 수 있는 책은 그지없이 마음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나요. 훌륭하거나 아름답다는 줄거리를 담은 책은, 책을 집어들어 읽는 사람 모두가 훌륭하거나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까.


.. 내가 전쟁 반대 집회에 가고 싶다고 말하자, 아빠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펄쩍 뛰었다. “중학생이 갈 곳이 아니다.” “그럼, 엄마랑 갈게. 같이 가 주세요. 엄마, 전쟁 반대하지?” “바보,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아빠가 내뱉듯 말했다. “그럼, 왜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여러 가지로 어려운 문제란다.” “석유에 대한 권리 같은 거 땜에?” “그 문제보다도 너, 이제 곧 새 학기가 시작되잖아? 중2는 중요한 시기다. 괜찮은 거니? 제대로 공부는 하고 있는 거야? 애들은 전쟁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 가는걸요.” … 중학생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른이 되어서도 곤란을 겪지 않도록 기초학력과 지식을 몸에 익히는 것이라고 선생님도 부모님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말일 뿐이다. 그저 입시에서 실패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교사는 교사라는 이유로, 부모는 부모이기 때문에 ..  (131쪽)


 좋다고 할 만한 책은 틀림없이 꾸준히 나옵니다. 아름답다고 할 만한 책은 틀림없이 날마다 쏟아집니다. 제아무리 한국사람이 책을 몹시 안 읽는다고 하여도, 책 읽는 한국사람은 틀림없이 꽤 많고, 새책방에서 팔려나가는 책도 퍽 많습니다.

 그러면, 한 권이라도 책을 더 읽은 사람들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한 줄이라도 더 읽은 사람들은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서 이웃을 부대끼거나 만나고 있는가요. 한 푼이라도 돈을 더 가진 사람이 쓰는 돈은 무엇이며, 한 가지 힘이라도 더 가진 이들이 펼치는 힘은 어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요.


.. 에리는 책을 읽어도 알 수 없었다. 왜, 전쟁이 일어나는 걸까. 왜, 서로의 나라에 대해 알려 하지 않는 걸까. 답은, 아직 모르겠다 ..  (201쪽)


 초등학교 교과서는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교과서는 중학생 된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도록 이끌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고등학생 아이들이 자기와 이웃을 어떻게 살피고 돌아보도록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에서 어떤 일을 하는 분들이 교과서를 엮고 있나요. 이 나라에서 무슨 꿈을 품은 이들이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가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림을 꾸리고 돈벌이를 하는 이들이 어버이 된 몸으로 아이들을 먹여살리거나 돌보고 있을는지요.


.. 한편, 같은 도로의 반대쪽 차선에는 근처 마을에서 도망가는 세르비아인들이 자동차로 긴 행렬을 만들고 있었다. 그토록 심한 일을 당한 알바니아인이 돌아온다. 어떤 복수를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공포에 떠는 것은 세르비아인 차례였다. 거의 차가 움직이지 않았던 탓에, 곧바로 고함치고 치고받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알바니아인 가운데 한 남자가 자동차 운전석의 창을 열고, 건너편 트럭에 고함을 지른다. “어디로 도망친들, 우리는, 이 원한을, 앞으로 몇 백 년이고 잊지 않을 테다!” “흥! 이 땅은 바로 다시 우리 세르비아가 되찾을 것이다!” 말싸움이 이어진다. 서로의 눈이 증오로 불타오르고 있다 ..  (225쪽)


 (3) 어린이문학 《하늘은 이어져 있다》


 ‘전쟁이 우리 삶 어디까지 파고들어 있는가’를 찬찬히 짚은 어린이문학을 모은 책 《하늘은 이어져 있다》를 읽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 자위대가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함께하’자, 이를 반대하면서 입으로만 아닌 몸으로, 한두 마디 외침만이 아닌 문학으로 제 나라(일본) 아이들한테 참과 거짓을 보여주자는 문학가가 하나둘 뜻을 모두어 모임을 이루고, 이 모임에서는 꾸준히 작품을 써내면서 책도 하나둘 펴냅니다. 이참에 우리 말로 옮겨진 《하늘은 이어져 있다》는 그동안 나온 어린이문학 세 권에서 몇 가지 작품을 추려서 엮은 책입니다.

 《하늘은 이어져 있다》가 아니더라도, 적잖은 일본 문학이 한국말로 옮겨집니다. 흔히 말하는 ‘순수’ 문학도 많이 옮겨지지만, 전쟁 문제를 다룬 문학도 많이 옮겨집니다. ‘전쟁 문제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문학도 많이 나오는 일본이지만, ‘전쟁 문제에 등돌리지 않고 온몸으로 맞서는’ 문학도 많이 나오는 일본입니다.


.. 마사노리는 적당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상대가 갑자기 덮쳐 왔다면 이유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쏘아 버렸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는 해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왜 사람을 죽이는 걸까……. 죽임을 당한 사람의 평화는 어떻게 되는 거지 ……. 자기 자신들만 평화를 얻으면 그만이라는 건가 …… ..  (117쪽)


 곰곰이 생각해 보고 찬찬히 헤아려 보면, 한국 문학가들이 쓴 ‘전쟁’ 문학도 제법 많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 끔찍하게 전쟁을 겪기도 했지만, 가슴시린 식민지살이도 했고, 개화기라고 하는 때에 치러야 했던 아픈 일은 수두룩하고, 참 민주와 평등과 평화를 바라는 농사꾼들 일어섬도 잦았습니다. 그래요, 우리 한국 문학가들 스스로 이러한 우리네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문학으로 하나둘 여미었습니다. 틀림없이 ‘한국 문학가가 이룬 아름다운 전쟁 문학’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을 새롭게 살아가는 아이들한테 선물해 줄 만한 전쟁 문학도 꾸준하게 쓰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보는 책이기는 합니다만, 먹고살기 바쁘며 고된 회사일에다가 애 낳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어른들 마음을 건드릴 만한 전쟁 문학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해야 하고, 아이들을 먼저 헤아려야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어른들 스스로 자기 마음을 가꾸고 추스를 만한 마음밥은 어떻게 이루거나 맺어야 할까도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마음밥을 잔뜩 안겨 주면서, 우리 어른들 스스로 제 마음밥은 챙기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우리들 말을 다소곳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아이들만 마음밥을 먹고 어른들은 마음밥을 먹지 않는다면, 머잖아 어른이 될 아이들이 이 나라와 사회와 세상을 어떻게 느끼겠습니까.


.. “전쟁을 하고 싶은 사람은 있어. 전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전쟁을 하기로 정한 사람이 전쟁터에 가는 일은 없지. 모두 알고 있을 텐데 말이야, 말하지 않으면 찬성이 되어 버린다는걸. 내 나이(할머니) 정도의 사람들은 모두 비참한 경험을 했을 텐데도 말이다.” ..  (139쪽)


 전쟁을 반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지 않으면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뜻을 어떻게 몸으로 곰삭이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과 같은 꼴입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삶을 알뜰히 녹여내고 있으나 저 혼자만 녹여내고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삶을 바꾸어 내지 않는다면 이 또한 전쟁을 반대하는 일에서 한 걸음도 걸어가지 못하는 셈입니다.

 전쟁을 바라고 돈을 바라며 쇠밥그릇을 바라는 하늘은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평화를 바라고 사랑을 바라며 아름다운 삶터를 바라는 하늘 또한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느 하늘을 올려다보는 삶일까요. 지금 우리들은 서로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삶인가요. (4341.9.23.불.ㅎㄲㅅㄱ)

+++++

꼬리말 : 이 책에 별을 다섯 매기기는 하지만, 번역에서 엉성한 대목이 꽤 많다. 그리고, 전쟁을 주제로 한다고 하지만, 책으로 묶인 글 성격이 퍽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소재는 다르지만, 어쩐지 같은 글 같다는 생각이라고 할까. 세 권짜리 책에서 가려뽑아서 그리 되었나 싶기도 한데, 차라리, 일본에서 나왔다는 책을 세 권 모두 번역했다면 어떠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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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가 끊어지며 읽는 책
 ― 애 아빠는 책을 어떻게 읽는가



 - 1 -

 “더운데 씻어요?” “응, 이따 씻을게.” “아기를 만지는데 자주 씻어야 돼.” “흠, 알았어, 이제 바로 씻을게.”

 땀이 줄줄 흐르는 몸으로 아침나절부터 쉴새없이 아기와 옆지기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습니다. 옆지기가 씻고 나오면서 저보고도 씻으라고 했으나, 저는 좀더 일을 하고 땀을 뺀 다음에 씻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땀이 나면서 안 씻고 아기를 만지고 기저귀를 갈면 아기한테 안 좋다고 말하니, 저로서도 더 미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주 씻어야 합니다. 기저귀 빨랴 밥하랴 치우랴 뭐하랴, 하루 내내 온갖 일을 치르면서 땀을 줄줄줄 쏟아내니까요.

 이제 이른저녁이라고 할 만한 여덟 시를 조금 넘긴 때, 겨우겨우 밥을 먹고 나서 한숨을 돌리자니, 씻는방 대야에 담긴 기저귀가 한 가득. 몇 시간 눈감고 지나갔더니 또 이만한 일거리가 쌓입니다. 그리고 옆지기가 벗어 놓은 옷과 옆지기 기저귀. 흠.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쌓이는 빨래감을 보면서, 저는 속으로 다짐합니다. 내 빨래라도 줄이자고. 걸레 빨아 방바닥 훔치기에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고단해서 못하는 마당에, 내 빨래감이라도 늘면, 그 한 가지 하는 데에도 힘들다.

 참 그렇습니다. 아기가 제 옷(반바지)에 오줌을 누든 똥을 누든, 웬만하면 그냥 말립니다. 또, 젖은 옷을 벗고 갈아입을 겨를이 없습니다. 아기가 제 몸에 똥오줌을 누었다고 하여 아기를 집어던지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겠습니까. 칭얼대는 아기를 어르고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닦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이렇게 해 주어도 쉬 잠들지 않습니다. 아니, 속에서 뭔가가 밖으로 나가 주었기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해롱해롱 실실 샬샬 웃는지 뭐하는지 가벼운 얼굴로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부비적부비적 하느작하느작 꿈틀꼼틀. 움직임을 멈추지 않습니다. 놀아 달라고 합니다. 세상 어느 어버이가, 제 몸에 똥오줌이 범벅이 되었다 한들, 아기가 놀아 달라고 하는데 마다하고 씻는방으로 달려가서 씻을 수 있겠습니까. 빨래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아기를 안고 어르면서 등이나 머리에 땀이 배이지 않게 추스르노라면, 젖은 몸과 옷은 마릅니다. 어느새 마릅니다. 이리하여 제 몸과 옷은 아기 똥오줌 냄새가 짙게 배여 있습니다.


 - 2 -


 오늘은 모처럼 쉴까 싶은 날이었으나, 아기 젖병을 조금이나마 싼값으로 장만하려고 〈아름다운 가게〉에 옆지기와 함께 찾아갑니다. 옆지기는 걷기도 벅찬 몸이지만, 힘내어 겨우 가게에 닿고, 두 시간 가까이 이 물건 저 물건 살펴봅니다. 신발도 보고 옷도 봅니다. 그러나 옆지기 몸에 맞는 녀석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기를 안고 두 시간쯤 땀 뻘뻘 흘리면서 아기한테 땀띠가 날세라 걱정근심끌탕. 팔이 떨어질 듯한 고단함은 저리 가라이고, 아기가 걱정입니다. 겨우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먹을 때. 애 엄마 미역국은 가위로 자르면 안 되기에 손으로 마른미역을 뚝뚝 끊습니다. 이제 손바닥과 손가락 모두에 굳은살이 깊에 박여서 마른미역을 손으로 뚝뚝 끊어도 그다지 안 아프지만, 아예 안 아프지는 않습니다. 서너 달 더 이렇게 손으로 끊으면 앞으로는 아예 안 아플 날을 맞이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오얏과 감을 먹이고 감자 썰어 넣어 미역국 끓입니다. 누런쌀에 지은 콩팥밥을 국에 탑니다. 아기가 젖 달라고 합니다. 옆지기는 젖을 물립니다. 젖을 다 물리고 아기가 잠들 때까지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다 마른 기저귀를 갭니다. 그래도 아직 젖 물리기가 끝나지 않아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책을 주섬주섬 챙겨서 펼칩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책장을 넘깁니다. 옆지기가 말합니다. “그 책(오늘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헌책방에서 사 온 책) 닦았어요?” “아니…….”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서 걸레를 집어들고 책을 박박 닦습니다. 밥자리로 돌아옵니다. 허리가 참 아픕니다. 꾸역꾸역 밥을 먹다가 다 못 먹고 조금 남깁니다. 어쩔 수 없이 잠깐 돌리고 있는 조그마한 김치냉장고에 넣어 둔 맥주 한 병을 꺼냅니다. 뽕. 병나발로 한 모금 두 모금씩 마십니다. 크. 낡아서 잘 돌아가지도 않는 김치냉장고에 넣은 맥주는 그리 시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목마름은 조금 풀어 줍니다.

 그러나, 찜질팩을 새로 해 달라, 보리차 새로 끓여야 한다, 잠깐 아기 어르고 있으라, 뭐뭐뭐 하노라니, 따 놓은 맥주는 그대로 두면서 부리나케 움직입니다. 어제 낮에 동네 골목길에서 주워 와서 옥상마당에서 말리고 있는 서랍장도 걸레로 훔치고 집으로 들여야 합니다. 옥상마당에 널어 놓은 기저귀 빨래도 걷어야 합니다.

 그래도 뭐, 어찌어찌 이 모든 일을 다 치러 냅니다. 조금 쉴 만한 때에 옆지기가 “여보 ……” 하고 부르면 퍼뜩 놀라면서, 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슬며시 짜증이 일려고 하지만, 제 몸을 스스로 쓰기 어려워서 어렵게 부탁하는데, 함부로 짜증을 내서는 안 됩니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셔요. 제가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늘 혼자서 하던 일을 옆지기한테 부탁하거나 시켜야 한다고 할 때에, 우리 옆지기는 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그때에도 우리 옆지기가 저처럼 못난 마음으로 뿔을 내거나 짜증을 내겠습니까.

 철이 덜 든 저는 아무 말 없이, 옆지기가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을 다 해 줍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허리가 몹시 아파, 끊어질 듯 아파서, 이제 고작 서른넷밖에 안 된 주제에, 집안일을 할 때에도 지팡이를 짚고 하고프다는 생각이 날마다 끊이지 않습니다. 한손으로 한쪽 무릎에 힘을 실어 겨우 버티어 일어서거나 걸음을 옮깁니다. 작지 않은 소리로 ‘끙’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아이고’ 하는 말이 자꾸자꾸 튀어나옵니다. 쑤시지 않은 몸이 없고, 지끈거리지 않는 머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가올 깊은 밤, 아기가 내어놓을 기저귀더미를 헤아린다면, 바로 이때, 낮나절 쌓인 기저귀를 모두 빨아내야 합니다.


 - 3 -

 오늘은 보리술 두 병. 금세 비워 버린 보리술 두 병. 한두 병 더 마시고픈 생각이 꿈틀대지만, 살림돈도 아끼고 내 몸도 생각해야 하며, 밤새 아기 치다꺼리 하자면 더 마시면 안 됩니다.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굽니다.

 그리고 씻는방. 허리가 끊어지려고 하니 쪼그려앉아서 어그적어그적 걸음을 옮기면서 빨래감을 하나씩 바닥에 깔고 비누질하고 비빔질하고 헹굼질을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오늘도 어느덧 스무 장 가까운 기저귀를 빨았습니다. 다른 빨래도 꽤 있었습니다. 밤새 나올 기저귀까지 더하면, 날마다 서른 장 남짓 되는 기저귀를 빠는 셈입니다.

 요만큼 쓰는 사이 아기가 오줌을 한 번 눕니다.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 둘레를 닦습니다. 조금 뒤 옆지기가 기지개를 켜면서 어깨죽지가 아주 아프다고 합니다. 어깨죽지를 주무릅니다.

 저도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주무르고 싶은데, 제가 제 몸을 주무를 겨를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기와 옆지기를 생각하면 아주 튼튼한 몸이고, 두 사람은 저를 많이 부려먹으면서 조금씩 몸풀이를 하고, 하루이틀 몸에 살이 올라야 합니다.


.. 병원으로 뛰어가 본들 자식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서 모기만 한 가느다란 숨을 내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를 향해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좀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는 부모가 있을까? 아마 ‘부디 살아만 다오’라고 애원을 할 것이다. 그것 말고는 다른 어떤 소원도 없을 것이다. 부모는 그처럼 자식의 생명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으로 생각한다 ..  《고맙구나, 네가 내 아이라서…》(제이북,2003) 16쪽


 없는 틈을 쪼개어 책을 읽습니다. 참말 책 읽을 겨를이 없으니 아무 책이나 펼치지 못합니다. 어설픈 책은 이내 덮어 버립니다. 그러면서 ‘아이 키우기(육아)’를 다룬 책에 눈길이 많이 갑니다. 그야말로 없는 틈을 또 쪼개고 다시 쪼개어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몇 가지 ‘아이 키우기’ 책을 장만하여 읽습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도 읽던 책이 많고, 갓 스물을 넘긴 때에 읽던 책도 많으나, 아직까지 못 본 책이 훨씬 많습니다. 저한테 ‘아이 키우기’ 책은 세상을 좀더 깊이 살피고 널리 돌아보도록 이끌어 주었기에, 늘 가까이하는 책이 됩니다. 아이 낳을 생각이 없던 때에도, 여자친구조차 없고 혼인할 꿈도 꾸지 않던 때에도 ‘아이 키우기’ 책을 읽으며, 내 몸으로 아이를 낳지 않아도 내 이웃에 아이가 있을 테니까, 내 이웃 아이한테 어버이가 되는 마음으로 되새기자고 하면서 읽었습니다.

 하느님이 ‘어린이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듯, 어린이 마음이 되려 하고, 어린이와 어깨동무를 하려고 하며, 어린이 삶을 돌아보고자 애쓰는 어른이 되어야 비로소 하느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성경만 천 번 만 번 읽어서는 부질없다고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몸소 한 번 치르는 일만큼 커다란 일도 없고요.


.. 내 아이가 몇 시에 자고, 보통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에 기뻐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아버지는 드물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것을 개성으로 인정하고 있는가라는 말이 나오면 완전히 손을 들어 버린다. 육아라는 것은, 자신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것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한 아기도 부모를 통해서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  《칭얼대는 아이와 허둥대는 아빠》(투영,2001) 126쪽


 책을 읽다가 자꾸 덮습니다. 다른 일거리가 많아서 덮기도 하지만, 책과 삶이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덮습니다. 우리 아기는 두 시간(짧으면 한 시간 반이나 한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는데, 책에는 서너 시간에 한 번 젖을 물리라고 나옵니다.

 책은 평균치만 나온다고 할 텐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 아기하고는 참 다릅니다. 그러나 아예 도움이 안 되는 책은 아닙니다.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다섯수레,2001)도 여러모로 도움될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 아기를 낳아서 기르려는’ 우리한테는 그다지 도움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예방접종 문제를 다룬 책은 눈씻고 찾아보기 어려웠고(한 가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기가 걸리는 병을 ‘병원에 가서 고치지’ 않고, 집에서 고치는 길을 일러 주는 책은 이제까지 못 봅니다. 아기를 배면 병원에 가고, 아기가 칭얼대도 병원에 가면 그만일까 궁금합니다.

 아이 키우기란 그저 ‘자가용 장만해서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갈 채비를 해 놓으면’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처럼 유모차를 안 쓰고 업거나 안거나 걸리게 하려는 어버이들한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내일을여는책,1999)에서 길잡이를 얻었으나, 그 뒤로는 더 없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유모차 장만하기’도 마땅히 해야 하는 일로만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예방접종을 왜 맞아야 하는지, ‘비.시.지’가 뭔지, 예방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되고, 예방주사를 맞으면 무엇이 나은지를 알려주는 책이나 이야기도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산모수첩’을 주고 있으나, 이 산모수첩에는 ‘예방접종을 언제 맞아야 하느냐’만 적혀 있을 뿐, 왜 맞아야 하고 어떤 효과가 있으며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주사를 맞고 나서도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들은 한 줄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비.시.지’뿐 아니라 ‘디.티.피’가 도무지 뭘 가리키는 주사인지는 인터넷에서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산부인과 간호사들도 잘 모르는 듯했습니다. 실제로 ‘비.시.지.’ 주사를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놓았다고 하기에, 그 주사가 뭐냐고 물었더니 ‘비.시.지 주사를 놓았다’고만 대꾸할 뿐, 알파벳 줄인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야기해 주지 못했습니다. 어물어물하다가 그만이었고, 나중에라도 알려주지 않더군요. 다만 한 가지, ‘비.시.지. 주사는 앞으로 두 번 더 맞아야 하는데, 그때를 지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 4 -


 요사이 새로 장만한 책을 모두 덮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짤막짤막 도움이 되는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큰틀에서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책을 구태여 파고들 까닭은 없다고 느끼면서, 사람들은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나누고자 책을 펴내려고 할 텐데, 이렇게 도움이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까, 누군가 나서서 새로운 책을 쓰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꾸 모자람과 아쉬움을 깨달으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엮어 나가니 책마을은 차츰차츰 발돋움할 수 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모자람을 못 느끼고 아쉬움을 안 느끼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자람과 아쉬움을 채워 주는 책이 새로 나와도 알아보지 않을 뿐더러, 모자람과 아쉬움이 가득 담긴 책에 매여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참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스스로 한결 나은 삶으로 옮겨가려고 하지 않고, 이웃사람이 조금이나마 나은 삶으로 거듭나려고 애쓸 때 거들지는 못하더라도 헤살을 놓지 않을 만한 우리들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문득, 허리가 아파 죽겠으면서 괜히 책을 뒤적이다가 시간만 잡아먹고 아기는 아기대로, 책은 책대로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살피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채 보내는 하루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냥 좀 드러누워 쉬어야겠습니다. (4341.9.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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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아이들과 머털도사
문용포.곶자왈 작은학교 아이들 지음 / 소나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떤 곳인가

 [잠깐 읽기 14] 문용포와 아이들, 《곶자왈 아이들과 머털도사》


- 책이름 : 곶자왈 아이들과 머털도사
- 지은이 : 문용포와 ‘곶자왈 작은학교 아이들’
- 펴낸곳 : 소나무 (2008.5.1.)
- 책값 : 1만 원



 (1) 학교와 사람


 지난 2005년부터 법이 바뀌어,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예방접종 주사를 맞았다’는 근거자료를 학교에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맞아야 할 예방접종 주사는 비시지, 비형간염, 디티피, 소아마비, 홍역ㆍ볼거리ㆍ풍진, 수두, 장티푸스, 일본뇌염까지 모두 여덟 가지로,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뜨리면 ‘학교에 들어갈 수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여덟 가지 예방주사이지만, 병이름을 살펴보면 모두 열두 가지 병 때문에 맞힙니다. 이 열두 가지 병은 돌림병이라 다른 아이한테 피해를 끼칠 수 있다고 여기어 이처럼 예방접종을 꼭 하도록 할 텐데, ‘예방접종을 꼭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 예방주사가 어떤 병을 앓게 되기에 맞으며, 이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되고, 또 예방주사를 맞아도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며, 주사를 안 맞고도 튼튼하게 아이를 다스리는 길은 무엇인지, 또 예방주사 부작용은 어떠한지 들은 한 마디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도록 받아 주는 산부인과에서도 그렇고 보건소에서도 그렇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예방주사는 꼭 맞아야 해요’ 하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예방주사 부작용도 적지 않고, 예방주사에 쓰이는 화학물질이 아기 몸에 오히려 나쁘다는 생각과 사례에 따라서 ‘안예모(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이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만들어져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그러나 이런 모임이 있는 줄, 또 예방접종 부작용이 그리 큰 줄, 또 예방접종을 맞지 않고도 아이는 얼마든지 튼튼하고 씩씩하게 키울 수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주사 한 방이야 그냥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미리 주사 한 방 놓아 두면 아기한테도 좋은 일 아니냐고 으레 여기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기는 태어난 지 고작 한 달이 되었을 뿐인데 ‘병원에서 우리도 모르게 놓아 준 비형간염 예방주사’ 때문에 부작용으로 ‘아기 황달’에 걸렸습니다. 이 아기 황달은, 그저 병원에 데려가서 입원시켜야 한다는 소리만 들었으나, 안예모 같은 모임에서 도움을 얻어, 집에서 다스리는 길을 배웠고, 이 길대로 아기를 씻기고 돌보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 곶자왈 작은학교는 곶자왈처럼 고마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아이들과 느끼며 놀기 위해 만든 학교야. 쓸모없어 보이는 곶자왈이 큰 숲을 만들고 수많은 생명을 자라나게 하듯이 곶자왈 작은학교에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며 친구들과 다정하게 어울릴 줄 알고,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라지 ..  (9쪽)


 생각해 보면, 지난날 우리 부모님들은 병원이라는 데가 있는 줄 몰랐고, 또 병원도 없었으나 우리들을 잘 키우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을 낳고 기른 부모님도 그렇습니다. 한 목숨이 새로 태어나는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느끼면서, 한 목숨을 좀더 애틋하게 보듬고 사랑하는 길을 스스로 찾고 느끼고 열었습니다.

 지난날에 없기로는 병원과 아울러 학교도 없었습니다. 학교라는 데가 없었어도 아이들은 어른들한테 세상을 배우고 말을 배우고 마을을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일과 놀이를 배웠습니다. 학교에서 지식을 얻지 않았어도 세상을 살아갈 지식을 깨우칠 수 있었고, 학교에서 도덕과 철학을 가르치지 않았어도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매무새를 갈고닦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처럼 병원도 있고 학교도 있는 세상은 어떠한지요. 병원이 있어서 아픈 사람 없이 튼튼하고 즐겁게 살아가는지요? 학교가 있어서 못 배우는 사람 없이 똑똑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지요?


.. 어린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값이 비싸고 농약투성이인 제철에 나지 않은 과일을 더 좋아하고, 나쁜 재료와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가공식품을 즐겨 먹고 있어. 나쁜 재료나 화학물질을 사용한 음식으로 인한 피해는 당장에는 나타나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어. 우리 몸을 야금야금 병들게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땅과 바다를 조금씩 망가뜨리고 말 거야 ..  (132쪽)


 학교 급식에서 아이들한테 가공식품을 주거나 화학물질에 찌든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일은 없다고 봅니다. 모르지요, 우리 아이가 나중에 학교 갈 때가 되면, 가공식품이나 지엠오 곡식 아니고는 아이들이 먹을 밥과 반찬이 없을는지도.

 더 많이 거두어들여 더 많이 돈을 벌겠다고 하면서 쓰는 농약과 비료인 만큼, 농사짓는 분들이 농약과 비료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농사꾼 스스로도 농약과 비료가 ‘겉보기로 더 많이 거두어들이게 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땅심이 줄어서 나중에는 농약과 비료를 안 쓸 수 없게 되고, 또 농약값과 비료값, 여기에다가 비닐값까지 치면 농사지어서 돈 남기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립니다. 더군다나 나라에서는 기계농을 외치면서 농삿집에서 기계로 농사짓도록 이끌다 보니까 수천만 원이나 되는 기계를 장만하려고 허리가 휩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농사짓는 사람은 아주 적은데, 도시에서 농사 안 짓고 2차와 3차 산업에 몸담고 돈만 버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 나라 농사꾼이 거두는 곡식만으로는 한국사람 밥상을 다 채울 수 없는데, ‘한국산이 아닌 중국산’ 곡식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데, 이와 같은 큰 식량위기를 살갗으로 못 느낍니다. 아직은 값싼 곡식처럼 여겨지는 수입 곡식이지만, 나라밖에서 사들여 오는 동안 뿌리는 방부제를 헤아린다면, 또 나라밖에서 농사지을 때 뿌릴 농약과 비료를 떠올린다면, 더욱이 제 나라에서 거두지 않고 다른 곳에서 길러서 배에 실어 옮기느라 들어가는 자원소비를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처럼 무역에만 기대고, 아이들을 오로지 ‘지식 많은 회사원’으로 기르고 가르치는 학교교육이 우리 아이들 앞날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는지는 뻔한 노릇입니다.


 (2) 자연학교는 초등학교에서만 그쳐야 하는가


 이야기책 《곶자왈 아이들과 머털도사》를 읽습니다. 섬마을 제주에 깃든 조그마한 작은학교인 ‘곶자왈 작은학교’를 찾아오는 아이들과 이곳에서 아이들을 반기는 문용포 님이 복닥복닥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제주라는 섬마을이 ‘관광하러 놀러가는 데’만이 아님을 이곳 작은학교에서 배웁니다. 아이를 자연학교로 보내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잠깐이나마 자연과 벗삼고 지내면서 무엇을 얻고 느끼고 배우면서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찬찬히 깨닫습니다.

 자연학교라는 곳에서 며칠이나마 지내 보면서 ‘맨발로 흙을 밟는 느낌’이 무엇인지, ‘땀을 흘려서 김을 매고 손수 곡식과 푸성귀를 거두는 느낌’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바람과 햇볕과 물을 껴안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 갑니다. 여태껏 책으로만 익히던 자연을, 이제까지 교과서로만 익히던 세상 이야기를, 비로소 책을 놓고 지식세계를 떠나면서, 자기들이 나온 곳이 자연이고 자기들이 돌아갈 곳도 자연임을 어렴풋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 아직 찬바람이 불기도 하니까 풀꽃들은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이렇게 낮게 자랍니다. 꽃이 아주 작으니까 쪼그려 앉아 들여다봐야 그 예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지요. 봄의 풀꽃들과 인사해 보세요 ..  (38쪽)


 그렇지만 자연학교는, 또 자그마한 학교는 거의 모두 ‘초등학교 아이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곳이곤 합니다. 중학교 아이들이 복닥일 만한 자연학교는, 고등학교 아이들이 북적일 만한 작은학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바라도 어른들이 안 보냅니다. 초등학생일 때에는 좀더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한다면서 자연학교에도 보내고 뭣도 보내고 수많은 책을 아이한테 사 주면서 읽힙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생이 되면, 무섭고 끔찍한 수험공부에, 입시교육에 내몹니다.

 그나마 학원에 보내지 않고, 입시교육에 찌들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뜻있는 어머님과 아버님을 만납니다. 참 드물지만, 이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중학생인데에도 밤 열 시나 열한 시까지 붙잡아 매는 학교교육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이를 지켜 주려는 어머님과 아버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른은 아주 적고, 아이가 ‘몇 손가락으로 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 주기를 바라는 어른이 너무 많습니다.


.. (어린이 글) 머털도사 말대로라면 쓸모없는 사람을 보고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하는 건 이상한 것 같다. 지렁이만 해도 지렁이 똥은 땅을 기름지게 해서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 주는데 말이다. 벌레들은 다 부지런하고 중요한 역할이 있는 것 같다. 개미도 그렇고, 벌도 그렇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게으른 친구가 있으면 이렇게 말해야겠다. “야, 벌레처럼만 좀 해라.” ..  (48쪽)


 아이들은 왜 대학교에 가야 할까요. 아이들은 대학교에 가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아이들은 대학교를 나온 다음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요. 아이들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놀이를 즐기면서 세상을 부대끼거나 껴안아야 할까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지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삶터에서 어떤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아가기를 꿈꾸는지요.

 우리 아이들이 애틋하게 품어야 할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나누어야 할 마음은 무엇일까요. 우리 아이들이 다소곳하게 껴안을 땅은 어디일까요. (4341.9.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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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j9279 2009-01-0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소나무 출판사입니다.
책을 만드는 노동이 궁극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과 지식, 정서, 마음을 통하고
의견을 나누고, 나아가 삶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독자님들과 소통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꾸리고 있습니다.
자연과 교육과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물음이 솟아나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더 많은 분들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소나무 홈페이지로 퍼갑니다.
http://www.sonamoobook.co.kr/
들어오셔서 글과 마음을 나누는 마당을 함께 만들어주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
 
청개구리
이금옥 지음, 박민의 그림 / 보리 / 200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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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곳에 사는 개구쟁이 ‘청개구리’
 [그림책이 좋다 51] 이금옥(글)+박민의(그림), 《청개구리》



- 책이름 : 청개구리
- 글 : 이금옥
- 그림 : 박민의
- 펴낸곳 : 보리 (2007.3.30.)
- 책값 : 9800원





 (1) 옛이야기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옛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들려주었는가 헤아려 봅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려주셨는가 떠올려 봅니다.

 우리 아버지는 저나 형한테 옛이야기를 얼마나 이야기해 주었는가 돌아봅니다. 우리 할머니는 형이나 저한테 옛날이야기를 한 자락쯤 들려준 적이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저한테든 형한테든 옛날 옛적 이야기를 얼마만큼 이야기해 주었나 곱씹어 봅니다.

 형한테는 들려주었는지 모르고, 저도 들었는지 모릅니다만, 어머니한테나 아버지한테나, 또 할머니한테나 할아버지한테나 옛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디선가 듣고 자란 옛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제 둘레에 책이 얼마 있지 않았으나 옛날이야기를 제법 읽어서 알기도 했습니다.


청개구리네 마을은 강둑 아래.
바람이 속삭이는 푸른 갈대숲.
청개구리 집은 포근한 갈대 밑.
아침 하늘
별하늘
아름다운 곳. (4쪽)


 집에는 동화책 한 권 마땅히 없었어도 학교에는 학급문고라고 해서 백 권쯤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국민학교 때에는 학급에 있던 책 백 권도 참 ‘많은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학년이 올라가면 그 학급문고하고는 손 흔들며 헤어져야 하는데, 한 해 동안 백 권에 이르는 책을 다 읽어내기란 몹시 어렵거든요. 죽어라 다 읽어내 보자고 부딪혔으나 쉰 권까지 겨우 읽고 두 손을 들었던 일이 어렴풋하게 떠오릅니다. 한 반에 그 학급문고를 거의 다 읽은 계집아이가 있어서, 어린 마음에 ‘나도 저 아이처럼 부지런히 읽어야지’ 하는 눈치를 보며 꾸역꾸역 읽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저는 딱히 책읽기가 좋아서 읽은 책이 아니었기에, 읽기는 징하게 읽었어도 마음에는 하나도 안 남았습니다. 아니, 아예 안 남지는 않았습니다. 나도 운동장에 나가서 놀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책읽기에 푹 빠진 동무아이를 보면서, ‘책에 무슨 재미가 있기에 저렇게 얌전하게 앉아서 책에 빠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고, 더운 여름날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확 몰려들고 하얀 커튼이 나부끼는 가운데 창가에 앉는 동안, ‘책읽기란 이런 느낌일까?’ 하고 돌아보곤 했습니다. ‘뭐, 오늘 뛰놀지 못한 만큼 내일 신나게 뛰놀면 되지’ ‘오늘 못 논 만큼 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동네 동무들하고 숨바꼭질 하고 놀면 되지’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청구개리 엄마는 부지런한 엄마.
아침부터 늦게까지
어이구, 너무 바빠.
짤까당 가다닥 짤까당 가다닥
쉴새없이 베를 짜고
바느질 하고요. (6쪽)



 그 어릴 때 읽은 몇 가지 책 가운데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야기는 바로 〈청개구리〉입니다. 어느 분이 고쳐쓴 옛이야기인지 모릅니다만, 이제 와서 가만히 돌아보면, 이원수 님이나 이주홍 님이 고쳐쓴 옛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좋습니다. 어느 분이 고쳐쓴 옛이야기이든 괜찮습니다. 저로서는 〈청개구리〉는 열 번을 읽어도 열 번 모두 그때그때 모습만 눈에 선하면서 새롭게 읽었고, 끝에 이르러 왜 이처럼 눈물겹게 마무리가 되어야 하나 싶어서 한숨이 푹푹 나왔습니다. 내 삶은 얼마나 청개구리인가 하고 뉘우치기도 했는데, 이렇게 뉘우친다고 해 보아야, 그 어린 마음은, 이내 개구쟁이 짓을 뉘우친 일을 잊어버리고는 또 개구쟁이 장난질이 펼쳐졌습니다. 고무줄 끊기는 안 했지만(다른 이 재산을 다치게 한다는 생각에), 몸으로 할 수 있는 장난질은 참 짓궂게 했습니다. 이를테면, 교단으로 불려가는 아이 엉덩이를 몰래 겨냥해서 똥침 놓기 따위를. 이렇게 하면 그 녀석은 날 때려 주고 싶고 짜증을 부리고 싶어도 못하니까. 그러나 쉬는 시간이 되면 그 녀석이 날 죽이려고 우락부락한 얼굴로 쫓아올 때 안 잡히려고 교실바닥을 휘저으며 내빼야 했고.


청구개리는 장난꾸러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아, 너무 신나.
연줄 끊기, 편싸움, 돌 던지기.
맨날 동무들을 울리기만 했어요. (8쪽)






 그나저나, 청개구리는 왜 그리도 어머니를 속썩이는 짓만 골라서 했을까요. 어머니는 왜 그리도 청개구리를 다그치지 못했을까요. 하루이틀이 아니고 한 번 두 번이 아닌 장난질은 왜 그리도 깊어만 갔고는지. 어머니는 아무리 바쁘고 힘들다 하여도, 아이를 따끔하게 꾸짖거나 나무라지 못할 까닭이 있었을는지.

 처음 〈청개구리〉를 읽던 지난날부터 그림책 《청개구리》를 펼치는 이제까지, 아이와 어머니 사이를 곰곰이 되짚습니다. 어머니도 어릴 때에는 자기 아이처럼 말괄량이였을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약도 듣지 못하는 병에 걸려 쓰러지고 마는 어머니 몸처럼, 아이한테도 어떤 꾸지람이나 타이름은 들을 수 없는 노릇이었을는지요. 한쪽 어버이가 없이 홀몸으로 살림 꾸리랴 아이 키우며 가르치랴 몹시 고되고 벅찼기에 그만 손을 못 쓰고 말았는지요.

 청개구리네 이웃집 어르신들은 왜 이웃 아이 청개구리를 바르게 다잡아 이끌어 가지 못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웃집 사람들은 모두 제 삶 꾸려 나가기에 바빠서 청개구리네가 이러하든 저러하든 남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면서 살았는지요.

 열 번 읽고 백 번 읽고 천 번쯤 읽은 〈청개구리〉인데, 읽을 때마다 볼 때마다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가슴이 저립니다. 이 뻔한 이야기에 뻔한 줄거리가 어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으면서 언제까지나 무겁게 하는가 싶어서.


엄마의 딱 한 가지 소원은
봄이면 진달래꽃 복숭아꽃 피고
새들이 훨훨 즐겨 찾아오는
양지바른 산언덕에
조용히 잠드는 것이었어요. (21쪽)


 청개구리네 어머니는, 밤낮 힘껏 일하며 살림이 조금 피게 되면, 후유 한숨을 돌린 다음 아이를 다독이려고 했을까요. 저 또한 아이 아버지가 되면서 느끼지만, 하루 내내 아이와 어울리고 뒤치다꺼리를 하노라면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습니다. 잠은 잠대로 잘 수 없으면서 일거리는 일거리대로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버지인 저와 어머니인 옆지기도 밥을 먹어야 하고, 씻어야 하고, 밥벌이 될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한테는 자기가 밥벌이할 까닭도, 자기 밥을 자기가 차릴 일도, 자기 옷을 자기가 빨 일도 없을지 모릅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면. 또 아직 나이가 많이 어리면. 신나게 놀기를 바라고, 즐겁게 뛰놀기를 바라며, 그지없이 뒹굴기를 바랍니다.

 청개구리 장난이 좀 짓궂기는 했어도, 아이 때에는 자연스럽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 두 번 했다가 이내 맛이 들리고 재미가 납니다. 또, 또래 동무들이 자기하고 어울려 주지 않으면 부러 못살게 구는 장난을 생각해 냅니다. 청개구리가 저지른 장난은 못된 장난이기는 했어도, 자기와 살갑게 놀아 주는 동무가 없으니, 차츰차츰 마음 한구석이 비뚤어지게 되면서 동무들을 괴롭히고, 또 집에서도 어머니 타이름하고는 어긋난 쪽으로 자꾸자꾸 나아가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툭 터놓고 참된 사랑과 믿음으로 청개구리한테 다가오지 않으니, 청개구리 스스로도 마음을 열지 않을 뿐더러, 더욱 모질게 장난질에 매일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객객, 엄마.
마지막 부탁만은 꼭 들어 드릴게요!”
청개구리는 물이 찰랑거리는 강기슭에
엄마 무덤을
정성껏 만들어 드렸답니다. (26쪽)



 기다림만한 약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다림만한 선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다림만한 보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청개구리네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때에, 자기 기다림을 놓았습니다. 진작에 했어야 할 아이 다스리기를, 숨을 거둘 때에 이르러서야 하고 마니까, 마지막때에 비로소 눈을 뜬 청개구리는 어머니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합니다. 온삶을 눈물로 보내며 기다리던 어머니도, 온삶을 장난질로 보내며 제 모습을 잃었던 아이도, 또다시 눈물바람으로 뒷삶을 잇게 됩니다.

 “아침하늘 별하늘 아름다운 곳”에서 딱 두 식구뿐이지만 오붓하게 살던 청개구리네인데. 비록 가난하고 살림은 팍팍했어도 마음속에 곱고 따뜻한 사랑을 잃지 않으며 살았던 청개구리네인데.





 (2) 재일조선인한테서 받는 선물


 《청개구리》는 재일조선인이 글을 새로 쓰고 그림을 알뜰히 넣으며 이루어낸 그림책입니다. 고향나라를 잃고 딴나라에서 살지만, 딴나라에서 살더라도 똑같은 목숨붙이인 이웃 일본사람한테까지 우리 겨레 아름다운 옛이야기를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 마음이 열매를 맺어서 태어난 그림책입니다.

 고향나라 아닌 딴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고유한 우리 옷을 즐겨입을 뿐 아니라, 요즘 삶에 걸맞게 잘 고쳐서 입고 있는 재일조선인들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 그림책입니다. 재일조선인도 한국사람이요 한국땅 한겨레도 한국사람이며 중국땅과 러시아땅 한겨레도 똑같은 한국사람임을 깨닫는 한편, 저마다 다 다른 생각으로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음을 찬찬히 살피고 있는 마음결로 빚어낸 그림책입니다.

 《청개구리》를 보면, 수많은 ‘어른 청개구리’와 ‘아이 청개구리’가 나오는데, 어느 하나 똑같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옷차림도 어느 하나 같지 않습니다. 키도 다르고 몸도 다르고 얼굴도 다릅니다. 옷차림이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를 테고, 즐기는 놀이가 다른 만큼 속에 품은 꿈도 다를 테지요.

 무엇보다도, 〈청개구리〉라는 옛이야기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한겨레들이 오래도록 입에서 입으로 물려서 내려온 삶임을 고이 느끼도록 해 주는 글이요 그림이 담긴 그림책 《청개구리》입니다.


.. 아득한 옛적, 어머니께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낯선 땅 일본에서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옛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  (글쓴이 이금옥) / .. 나는 재일 조선인 2세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다섯 남매를 모두 조선학교에 보냈는데, 조선학교 선생님들이 옛이야기를 참 많이 들려주셨어요. ‘청개구리’ 이야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들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이야기에 얼마나 가슴아팠는지, 집에 돌아와 엄마 얼굴을 보고서야 마음놓인 일은 아직도 생생해요 ..  (그린이 박민의)


 서민이라고도 할 테고, 백성이라고도 할 테며, 낮은자리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터입니다. 논밭을 일구고 베틀을 밟으며 손으로 빨래를 하는 여느 사람들입니다. 물에서 놀고 고샅에서 놀며 논밭이랑 산과 들에서 노는 사람(아이)들입니다. 흙으로 벽을 바르고 풀로 지붕을 덮으며 맨발로 땅을 밟고 햇볕과 바람을 먹고 자라는 이 땅 사람들입니다.

 조용히 꾸리는 삶이며, 호젓하게 가꾸는 삶이고, 다소곳이 닦아 온 삶입니다. 이 삶을 옛이야기라는 틀에 담았습니다. 도란도란 밤을 밝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지아비나 지어미가 지은, 또는 지아비와 지어미도 당신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듣고서 자란 옛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러는 동안 조금씩 세상에 눈을 뜨고 사람 일에 눈을 뜨며 제 삶에 눈을 뜹니다.

 옛이야기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 스스로 자기 삶을 가만히 되새기게 해 주는 한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아이들 스스로 짧지만 이제까지 보내 온 삶을 되짚으면서 앞으로 꾸려 갈 삶을 내다보게 해 줍니다.

 퍽 흔히, 꽤 자주 새롭게 고쳐지고 다시 나오는 옛이야기 〈청개구리〉인데, 재일조선인 두 사람이 엮어낸 그림책 《청개구리》는 두 분 재일조선인이 낯선 땅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뼛속 깊이 맛보는 동안 몸에 아로새기진 눈물과 웃음이 고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씨앗은 아프면서 새로 태어나고, 사람도 아프면서 큰다고 하는데, 아픔을 먹은 사람들은 외려 기쁜 눈물을 흘리도록 하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참 아름답도록. 거룩하도록. (4341.9.1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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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와 빨래와 책읽기


 - 1 -

 아기가 8월 16일에 태어났습니다. 한가위 명절인 오늘은 9월 14일. 한 달이 서른 날이기도 하고 서른한 날이기도 하니, 오늘은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는 갓 태어난 아기, 갓난아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명절에 어디로 가지 못합니다. 아니, 가려고 해도 갈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아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옆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전거는 잘 타지만, 제 자전거 짐수레에는 아이만 둘 태울 수 있지 어른은 태울 수 없습니다. 옆지기만 시외버스를 타고 부모님 댁에 찾아갈 수 있을 터이나, 옆지기는 집이 아닌 병원에서 아이를 낳게 되면서 회음부를 자르는 바람에 몸이 많이 다치고 아파서 자리에 앉지도 못합니다. 서기는 하되 걷기도 힘들고 앉기도 힘든데 시외버스에서 자리를 얻어 앉는다고 하여도 두 시간 넘는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제가 자가용을 몰 줄 알고, 자가용을 끌고 간다고 해도 못 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세 식구는 한가위 명절을 우리 살림집에서 조용하게 보냅니다. 집에 텔레비전을 들여놓지 않고 사니까 텔레비전을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집에 텔레비전이 있었다 한들 들여다볼 틈이 없습니다. 아기를 낳아 길러 본 분이라면 누구나 알 테지만, 갓난아기를 돌보는 데에는 하루 스물네 시간 꼬박 옆에 붙어서 아기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어디 텔레비전에 눈이 갑니까. 더구나, 갓난아기한테 텔레비전 전자파를 쏘이게 하면 안 되지요.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어야 하는 아기는, 시간마다 옆지기와 나란히 누워서 젖을 빱니다. 이동안 저는 씻는방에서 아기 기저귀와 옆지기 기저귀와 우리 옷가지를 빱니다. 오늘은 아기와 옆지기가 덮는 담요까지 석 장 빨아냅니다.

 손빨래는 제가 혼자 살림을 하던 1995년부터 이제까지 줄곧 이어왔습니다. 여태껏 모든 빨래는 손빨래로 너끈히 해냈고 이불빨래든 뭐든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기 기저귀 빨래 앞에서는 두 손을 듭니다. 청바지를 한 날에 여러 장 빨았어도, 추운 겨울날 군대에서 얼음물로 야상을 빨았어도 아프지 않던 손바닥이요 손가락인데, 기저귀 빨래 한 달 만에 손가락 마디마디 저리지 않은 데가 없고, 팔뚝과 어깨죽지까지 몹시 결립니다. 씻는방 바닥에서 비빔질을 하는데 이거야 원,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억지로 억지로, 온몸을 던져서 겨우 비빕니다.

 엊그제부터 손가락이 다시 아픕니다. 기저귀 빨래 며칠 만에 손가락과 손바닥이 아프더니 새 굳은살이 돋았는데, 이번에는 세 번째로 아픔이 찾아오면서 세 번째로 새로운 굳은살이 손가락 마디마디와 손바닥에 배입니다. 맨손으로 온갖 일을 하고, 책을 수만 권 나르고, 자전거를 열 몇 시간을 타면서도 이렇게까지 굳은살이 박인 적이 없습니다. 신문딸배를 하면서도 이렇게 굳은살이 박이지 않았습니다. 새 목숨을 부여받고 태어난 아기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지아비한테 이런 어마어마한 빨래감을 선사하면서 ‘여태까지 해 온 빨래는 웃음거리밖에 아녀라. 내 기저귀 빨래쯤 치러내야 참 빨래지.’ 하고 깨우쳐 주는 듯합니다.





 - 2 -

 아기 기저귀를 빨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생각을 새삼스레 합니다. 나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꼭 여쭐 생각인데, 우리 아버지가 우리 형이나 내 기저귀를 손빨래로 빨아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집에 세탁기를 들인 때는 제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가운데 무렵. 그러니까 그때까지 우리 집은 손빨래만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떠올리기로는, 집안 빨래는 모두 어머니가 하셨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모습 가운데 하나는 제 국민학교 때 본 우리 어머니 손입니다. 그때 저는 열 살 남짓이었고 어머니는 서른 가운데무렵이었지 싶은데, 그때 제 생각으로는 어머니가 나이가 참 ‘많았’습니다. 제 또래동무들 어머님이 퍽 젊었기에 우리 어머니는 서른 가운데무렵밖에 안 되었어도 나이가 많다고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저러나, 그때 우리 어머니 나이는 지금 제 나이와 얼추 비슷했을 텐데, 어머니 손은 아주 누랬습니다. 핏기를 찾아볼 수 없도록 누랬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손은 왜 이렇게 누래?” 하고 여쭈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말씀이 없이 쓴웃음인지 빙긋웃음인지 웃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어머니 나이쯤 되면 우리 어머니 손 빛깔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

 올해 나이 서른넷. 아기가 백 일이 지나고 며칠 있으면 서른다섯. 날마다 하루 1/4쯤 빨래하는 데에 들이면서 제 손은 지난날 우리 어머니 손마냥 거칠고 누런 빛을 띄면서 굳은살이 몇 겹으로 박입니다. 자잘한 생채기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칼질을 하며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비비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아기 낳기 앞서까지는 날마다 방바닥을 걸레질로 훔쳤는데, 요사이는 방바닥 걸레질도 못합니다. 걸레질할 짬도 안 나지만, 힘도 없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 옛날, 내 어릴 적에 온갖 집안일을 다하시면서도 방바닥을 꼬박꼬박 날마다 걸레질을 하면서 훔치셨다고. 그러는 가운데 바람이 들어 자리에 누워 꼼짝을 못하는 할아버지 똥오줌 받아내기에다가 수발까지 다 하셨고.





 - 3 -

 아침나절, 아기가 죽어라 울어댑니다. 왜 우는지는 우리 두 사람이 알 길이 없습니다. 하두 똥을 지려서 똥구멍이 아파 우는지, 날이 많이 더워 우는지, 동네 공기가 나빠(동네에 공장이 많고 차도 많으니) 코가 막혀 우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씻기는 동안, 아기가 배고파서 울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두 시간에 한 번 젖을 먹는 아기이지만, 꼭 두 시간 만이 아닌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만에도 젖을 먹고 싶을 테니까요.

 낮나절, 아기는 아주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도 깨지 않습니다. 하긴, 두 시간에 한 번 젖을 먹는다고 해서 꼭 두 시간을 맞추지는 않고, 세 시간에 한 번 먹기도 하니까요.

 옆지기는 아기 옆에서 책을 읽습니다. 모처럼 이루어진 평화로운 때, 책장을 가만가만 넘깁니다. 그러나 잠도 자야 할 텐데. 밤에 아기가 오줌이나 똥을 눈 다음 보채면 젖을 물려야 하는데,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이렇게 책을 읽어도 되나.

 그러나 지아비 된 사람은 또 지아비 된 사람대로 낮나절에 잠들지 못합니다. 지아비 된 사람도 책을 펼치고 글을 몇 줄 끄적입니다. 그러다가는 밤 사이 밀린 기저귀 빨래를 해치웁니다. 다른 빨래도 확 해 버립니다.

 졸린 몸이었어도 이렇게 빨래를 해치우고 보면 졸음이 싹 달아납니다. 그러면서 보리술 생각이 납니다. 흘린 땀방울만큼 뭔가 속으로 집어넣고 싶습니다. 맨마음으로는 잠이 오지 않고, 보리술 한두 잔 몸속에 집어넣어야 달게 잠이 듭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나마 달게 잠을 자야 비로소 밤에도 아기하고 신나게 기저귀 다툼을 치를 수 있습니다.


.. 그러다가 2003년에 이라크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친구들은 온통 이라크에서 전쟁을 중단하자는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보내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매달려 있느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있으며,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써야 할 자원까지 고갈시키고 있다. 전쟁이 있는 곳에는 환경보호란 있을 수 없으며 파괴만이 있을 뿐이다. 기후변화 같은 중요한 문제와 산업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정부는 국가 안보가 위협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며 국가 방위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러나 석유 같은 자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정부의 책임인가? 석유회사의 책임인가? 군수산업체의 책임인가? 자동차회사의 책임인가? 자동차 판매상의 책임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의 책임인가? ..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그물코,2008) 282∼283쪽


 모든 빨래와 일거리를 끝낸(그러나 아주 잠깐 동안만 끝낸) 다음,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멍가게로 찾아가서 보리술 석 병을 사 옵니다. 몸을 씻고 나서 한 병씩 꺼내어 마십니다. 한 병씩 마시면서 책을 읽습니다. 아기는 깨어나지 않습니다. 싱긋 웃으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 병으로 괴로워하다 죽었기 때문에 실패한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병이 낫도록 그것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면 낫지 않은 것은 사실상 실패가 될 것이다. 하지만 병을 그대로 인정하고 마지막을 신에게 맡기기 위해 기도했기 때문에 괴로움 속에서도 감사로 가득 찬 마음과 평온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고맙구나, 네가 내 아이라서…》(제이북,2003) 41쪽


 오늘은 모처럼 꽤 많이 읽습니다. 몸은 고되지만 아기가 이처럼 오래도록 조용히 잠든 때, 저나 옆지기나 퍽 오래 책읽기에 마음을 쏟을 수 있고, 저도 자전거를 타고 구멍가게 마실을 할 수 있으며, 잠깐이나마 밀린 일거리를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기가 오래도록 젖을 물지 않으니 옆지기는 젖이 불어서 괴롭습니다. 얼른 아기가 깨어나서 젖을 물어야 할 텐데 하면서 아픔을 참습니다. 잘 잠든 아기를 억지로 깨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보채도 걱정이지만, 보채지 않아도 걱정입니다. 그러나 이 아기는 누구를 닮았겠습니까. 지아비와 지어미를 닮았을 테지요. 그리고 지아비와 지어미가 살아가는 대로 물려받아서 자기도 그처럼 살아갈 테지요. 우리 두 사람이 우리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부대끼고 껴안느냐에 따라서, 이 아이도 제 나름대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부대끼고 껴안을 테지요.

 이제 저녁을 먹고 밤새워 새벽까지 아기하고 신나게 기저귀 다툼을 치를 때가 다가옵니다. 읽던 책을 모두 덮습니다. (4341.9.1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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