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봉지 공주 비룡소의 그림동화 49
로버트 먼치 지음, 김태희 옮김, 마이클 마첸코 그림 / 비룡소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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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털털이 빈몸이 되어도 기쁜 ‘종이 봉지 공주’
 [그림책이 좋다 59] 로버트 문치+마이클 마첸코, 《종이 봉지 공주》



- 책이름 : 종이 봉지 공주
- 글 : 로버트 문치
- 그림 : 마이클 마첸코
- 옮긴이 : 김태희
- 펴낸곳 : 비룡소 (1998.11.26.)
- 책값 : 6500원


 (1) 옷이란, 우리 삶이란


 옆지기네 식구들이 살고 있는 일산집으로 찾아가려면 언제나 ‘탄현동 로데오거리’를 걸어서 가로질러야 합니다. 그 길을 가로질러야 나오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느 날에는 한갓지지만, 주말이나 명절만 되면 버스정류장에도 자가용이 겹으로 서고 사람으로 바글바글하여 마치 놀이공원에 사람들이 모여든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나 ‘새옷 사려는 사람이 많은가’ 싶어 놀라고, 그렇게 옷 사려는 사람이 많으니 옷집만으로도 길디긴 거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서울에서도 이화여대 앞 골목은 옷집으로 가득합니다. 꼭 로데오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나 이대 앞만이 아니라도, 서울이며 부산이며 어디를 가든 가장 많이 눈에 뜨이는 곳은 밥집과 함께 옷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밥과 옷과 집’,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만큼 옷집과 밥집이 많을밖에 없을 텐데, 때 되면 배가 고파지니 밥집이 많다고 하여도 때 되면 옷을 사야 하기에 옷집이 많을까요? 우리는 참말 입을 옷이 너무도 많이 있어야 하기에 옷집도 이토록 많아야 할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랑 우리 옆지기랑 아기랑 세 식구는 옷을 사입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아기 옷은 모두 이웃한테서 얻어 입힙니다). 한두 해도 아닌 열 해 남짓 입고 입고 또 입어 헐고 해지고 더 기워 입기 어렵다 싶을 무렵 비로소 한 벌을 새로 장만합니다. 이렇게 장만하지 않아도 틈틈이 이웃한테서 ‘못 입게 되거나 입을 겨를이 없어 내놓게 되는 옷’을 얻곤 합니다. 행사장에서 나누어 주는 옷이라든지 모임에서 주는 옷을 하나둘 챙기다 보면, 이런 옷가지들을 번갈아 입어도 죽는 날까지 다 못 입고 남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저한테는 아직 봉지도 못 뜯은 행사 기념 옷이 몇 벌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옷 갖춤새는 우리 식구 이야기일 뿐이지 싶습니다. 거리마다 넘치는 옷집들을 보면. 길거리 돌아다니는 젊고 늙은 사람들 반짝이고 빛나고 고운 옷차림을 보면.

 오늘날 우리들이 새로운 집으로 옮길 때에는, 무엇보다도 옷가지 짐이 가장 많게 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책은 몇 묶음이 없어도, 아니 책은 한 묶음조차 없어도 옷꾸러미는 몇 상자 나오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 엘리자베스는 아름다운 공주였습니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성에 살았지요. 그 성에는 비싸고 좋은 옷들이 많았습니다. 또 공주는 로널드 왕자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죠 ..  (2쪽)


 헌옷 모으는 통에 안 입는 옷을 모으면 다시쓰기가 된다지만, 좀더 깊이 돌아본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쓰기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덜 사고 덜 쓰고 덜 누려도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같은 옷을 날마다 빨아 날마다 갈아입어도 여러 해 너끈히 입을 수 있습니다. 옷 두 벌을 이틀 걸러 빨아 입어도 꽤 긴 햇수에 걸쳐 입을 수 있습니다. 옷 세 벌쯤을 사흘 걸러 빨아 입어도 오래오래 입게 됩니다. 한 주에 일곱 벌을 날마다 갈아입으면 훨씬 오래 간수하며 입을 수 있을 테고요.

 그러나, 날마다 빨아야 하는 옷이 아니요, 날마다 갈아입어야 하는 옷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로운 차림새로 다녀야 하는 우리들이어야 하나요. 날마다 새로운 차림새로 다닌다고 날마다 새로운 우리들이 되던가요. 겉차림이 새롭다고 마음차림도 새로울까요. 겉꾸밈이 새롭다고 속차림도 새로운가요. 하루쯤 덜 빨아 물을 아낄 마음을 키울 수 없는지요. 옷 한 벌 덜 사면서 지구자원을 적게 쓰려는 마음을 북돋울 수 없는가요.


.. 어느 날, 무서운 용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용은 공주의 성을 부수고, 뜨거운 불길을 내뿜어 공주의 옷을 몽땅 태워 버렸지요. 그리고 로널드 왕자를 잡아갔습니다. 공주는 용을 뒤쫓아가서 왕자를 구해 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옷이 몽땅 타 버려서 입을 것이 없었지요. 공주는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종이 봉지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공주는 종이 봉지를 주워 입고 용을 찾아나섰습니다 ..  (4∼6쪽)


 우리는 우리 스스로 껍데기만 키우고 알맹이는 내버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가 애써 벌어들인 돈으로 마음차리기는 못하는 가운데 겉차리는 데에 온힘을 쏟아붓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니, 우리는 날마다 새옷을 뽐내고 싶은 나머지, 새옷 장만하려고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돈벌고 죽어라 경제성장을 외치는 쳇바퀴에 갇혀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벌어 알맞게 우리 삶을 즐기는 길에서 멀리 벗어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운 삶보다 남 앞에서 자랑하거나 내보이는 치레에 매여 버리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2) 그림책 《종이 봉지 공주》


 그림책 《종이 봉지 공주》를 꺼내어 읽습니다. 몇 번씩 보고 또 보았으나, 볼 때마다 늘 새롭고, 덮을 때마다 늘 웃음이 터져나와 히죽히죽거리게 됩니다. 장난꾸러기인데가 욕심꾸러기인 용 한 마리는 ‘책에서 주인공인 공주’가 사는 성을 불태우고 무너뜨립니다. 배가 고파서 성을 통째로 구워먹는다고 하는데, 성만 구워먹지 않고 성에서 공주와 함께 혼인할 왕자까지 얌체처럼 붙잡아 갑니다. 그리고, 왕자만 붙잡아 가지 않고 공주가 입던 옷마저 홀랑 태웁니다.

 용으로 보자면, 공주를 안 잡아먹고 살려 두었으니 고맙다고 할 노릇일 텐데, 공주한테는 자기 집이며 왕자며, 거기다가 옷까지 빼앗겨 버렸으니 용처럼 괘씸한 녀석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공주는 용한테 앙갚음을 해 주고 왕자도 찾아오리라 다짐하게 되고, 씩씩하게 용을 찾으러 길을 나섭니다. 그러고는 아주 슬기롭게 용을 골탕먹이고 왕자를 살려냅니다(그렇지만, 용이 숲을 홀랑 태워 버리게 하는 대목은 퍽 슬픕니다. 애꿎은 숲……).

 아마 여기까지는 어디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모험 이야기요, 왕자와 공주 이야기라 할 텐데요, 다만 한 가지, 왕자가 공주를 찾으러 안 가고 공주가 왕자를 찾으러 간다는 대목에서 사뭇 다릅니다. 더구나, 공주는 용한테 옷까지 모두 빼앗겼으니(왕자로 치면 무기가 하나도 없는 맨몸), 도무지 맨주먹으로 무슨 앙갚음을 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이든 여자이든, 똑똑이이든 어리보기이든 빼어난 무기로만 용을 마주할 수 있지 않아요. 어리석은 머리라 해도 조금씩 생각을 하고 마음을 쓰면 얼마든지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무엇보다도 ‘용이든 무엇이든 다 나오라고 해!’ 하는 씩씩하고 튼튼한 넋이 있어야 할 테지요. 슬기로움에다가 씩씩한 넋, 이 두 가지는 바로 《종이 봉지 공주》에서 ‘종이 봉지를 입은 공주’가 우리한테 보여주는 가장 크고 굳센 힘입니다.


.. 공주는 훌쩍 용을 뛰어넘어 동굴 문을 열었습니다. 동굴 안에는 로널드 왕자가 있었지요. 왕자는 공주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 너 꼴이 엉망이구나! 아이고 탄 내야. 머리는 온통 헝클어지고, 더럽고 찢어진 종이 봉지나 걸치고 있고. 진짜 공주처럼 챙겨 입고 다시 와!” ..  (22쪽)


 한 가지 더. 그림책 《종이 봉지 공주》에서 ‘무시무시한 용한테서 풀려난 왕자’는 아주 얼뜨고 건방진 말을 공주한테 건넵니다. 기껏 목숨을 살려 주었더니 하는 말이, 용이 뿜은 불이 공주 머리가 타서 냄새가 난다느니, 옷은 걸레짝 같다느니 하는.

 모르는 노릇이지만, 나라에서 힘있다고 뽐내는 분들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이와 같이 우쭐대거나 콧대 높은 말과 몸짓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느끼지 못하는 마음에 갇히고, 마땅히 받아야 할 선물을 받았다고 여기는 마음에 갇히며, 사랑과 믿음을 두루 나누기보다는 홀로 차지하려는 마음에 갇힌 셈입니다. 용한테서 풀려났지만, 몸뚱이는 풀려났어도 마음은 풀려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자기를 풀려나게 한 사람들이 얼마나 애를 쓰고 힘을 썼는가를 느끼지 않고 돌아보지 않습니다.

 용보다 괘씸하다기보다 딱합니다. 불쌍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좁살뱅이 마음인지 구슬프기까지 합니다. 공주로서는 이런 못난 왕자와 혼인을 꿈꾸고 있었다니 자기 눈이 삐어도 한참 삐었다고 느낄 만할 테고요.

 그런데, 어려움에서 빠져나온 철없는 사람들만 이렇게 고마움을 모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빠져 보지 않은 철없는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자기들이 입거나 받는 고마움이 무엇인지를 하나도 헤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기 둘레에 어떤 이웃이 있고 어떤 벗들이 있는지를 살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둘레 사람들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살아가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콩 한 톨을 나누어 먹는 마음을 모르고, 밥 한 숟갈 나누어 먹는 마음을 모르며, 이불 한귀퉁이 나누어 덮는 마음을 모르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어, 그림책 《종이 봉지 공주》는 마지막에 이릅니다. 마지막은, 건방지고 얼뜬 왕자한테 공주가 하는 말과 몸짓입니다. 공주는 왕자한테 무엇을 어떻게 할까요? 뺨을 한 대 갈길까요? 용이 왕자를 가둔 곳에 왕자를 도로 데려다 놓을까요? 왕자가 입던 옷을 모조리 벗겨 공주가 갈아입은 다음 종이 봉지를 왕자한테 씌울까요? 그래도 왕자가 시키는 말이니 어디에서든 새옷을 얻어입고 왕자한테 올까요?

 끝마무리는 어찌 보면 싱거울 수 있고, 아쉬울 수 있고, 밋밋할 수 있고, 그냥 그렇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리라 봅니다. 다만, 공주는 제 집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으며 옷이며 돈이며 모두 다 잃었는데에도 기쁘고 신나서 춤을 춥니다. 왜 신나서 춤을 추는지, 왜 빈털털이 빈몸이 되었음에도 기뻐하는지는 …… 그림책을 덮는 분들 스스로 가만히 헤아려 볼 노릇입니다. (4342.3.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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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 - KOICA와 함께한 730일
강제욱 외 지음 / 포토넷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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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읽고 나서 별 둘밖에 붙이지 못해 미안하지만, 책을 읽으며 들었던 느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밖에 없는 성격이라, 이렇게 아쉬우나마 느낌글을 적으면서, 다음에는 조금씩 나아질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자원봉사는 ‘조용히’ 우리 삶터에서 해야지요
 [잠깐 읽기 27] 강제욱,이명재,이화진,박임자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



- 책이름 :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 - KOICA와 함께한 730일
- 글사진 : 강제욱, 이명재, 이화진, 박임자
- 펴낸곳 : PHOTONET (2008.12.29.)
- 책값 : 12900원



 (1) 자원봉사란?


 ‘KOICA’라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이라는 사진이야기책을 보면서 이런 모임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알파벳으로만 적으니, 이곳이 한국에 있는 모임인지 나라밖에 있는 모임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을 죽 읽다 보면, 끄트머리에 이 모임을 찬찬히 알려주는 사진과 글이 실리는데, ‘KOICA’란 ‘한국국제협력단’을 줄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무상원조를 시행하는 정부출연기관으로서 해외봉사단 파견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원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바야흐로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났다는 뜻에서 이와 같은 모임이 꾸려졌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나라안에는 아직 찢어지게 못사는 사람이 많은 한편, 터지게 잘사는 사람 또한 많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나라안이 되든 나라밖이 되든 ‘넘치는 자원’과 ‘넘실대는 사람’을 나누어야 하기도 합니다. 일 나누기가 되든 자원봉사가 되든 공동체가 되든,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어찌 사는가를 들여다보면서, 내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보기도 해야 합니다.


.. 내 기억 속의 파라과이는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거나 원시의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처럼 삭막한 도시의 풍경과도 거리가 먼, 믿기지 않을 만큼 맑고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던 곳이었다. 안데스 지역의 고산 지대도 아니고 그렇게 매력적인 하늘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파란 하늘을 보며서 때레레를 마시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그곳이 망고나무 그늘 밑이라면 더욱! 파라과이는 어느 도시이건 그 안에 자연이 살아 있다 ..  (14쪽 / 강제욱)


 생각해 보니, 저도 꽤 자주 자원봉사를 합니다. 언제나 자원봉사라는 이름은 안 걸치지만, 몸을 바쳐서 일을 거들거나 함께하고 있으니 자원봉사가 맞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도움을 바라는 분이나 저 스스로나 서로가 자원봉사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로 돈을 챙겨 주는 이가 없으나, 딱히 돈을 받을 마음 또한 없습니다. 한 동네에 살기에 거드는 일이 아니라, 함께 그 자리에 있어 좋기에 일을 거들게 됩니다.

 동네 밥집 김치 담그기를 거드는 일은 알게 모르게 자원봉사입니다. 동네 밥집 할머니가 반찬을 한두 가지 더 챙겨 주는 일도 이래저래 자원봉사입니다. 성당에서 세례받는 분들 사진을 슬쩍 찍어 주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성당 다니는 이웃사람들이 술이나 밥을 가끔 사주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헌책방 사진을 찍어 선물로 드리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헌책방 아저씨가 때때로 500원이나 1000원을 에누리해 주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구멍가게 할배한테 빈병을 모아 드리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구멍가게 할매가 우리 옆지기 신으라고 떠 준 덧양말 한 켤레도 자원봉사입니다. 늘 자원봉사에 둘러싸인 삶입니다.


.. 가끔씩 아이들은 나를 ‘독재자’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서 ‘수업하지 말아요’, ‘TV 봐요’, ‘숙제 좀 적게 내 주세요’ 등등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거의 들어주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녀석들과 좀더 친밀하게 지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학생들의 생일에는 독재자인 나도 악동 제자들과 어울렸다 … KOICA 봉사단원으로 파견되어 한국어를 가르치면서도 처음에는 참 힘들었다. 학생들이 뭘 원하는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시간 안배도 안 되는 데다 머리속의 내용은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아이들의 질문에 “다음 시간에 알려 줄게요” 하는 날도 많았다. 집에 돌아오면 ‘아차!’ 잘못 가르친 것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 가르쳤던 아이들과, 고심하며 준비했던 수업 내용 자료 등은 여전히 내게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  (96∼97, 140쪽/이명재)


 아기를 돌보는 일도 자원봉사였을까요? 아픈 옆지기를 돌보며 집살림을 도맡아 꾸리는 일도 자원봉사였을까요? 제 몸을 아끼고 싶어서 손빨래를 하고 손걸레로 집안을 훔치는 일도 자원봉사였을까요?

 국어사전에 나온 뜻풀이를 보자면, “어떤 일을 대가 없이 스스로 하는 일”이 자원봉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집에서 집식구를 보듬는 일도 자원봉사라면 자원봉사가 아니랴 싶습니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니까요. 아무 갚음을 꿈꾸지 않는 나눔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사랑과 나눔 그대로 내 동무한테 똑같이 하고, 내 이웃하고 똑같이 어깨동무를 하니까요. 옆지기 부모님 댁에 가서 설거지를 해도 자원봉사이고, 중학생이 된 처남한테 책을 선물해 주거나 쓸돈 몇 푼 넌지시 책에 끼워 주어도 자원봉사가 아니랴 싶습니다. 길을 가다가 자전거가 고장나 옴쭉달싹 못하는 사람을 보고는 자전거를 손질해 주거나 구멍난 바퀴를 때워 주는 일도 자원봉사이리라 믿습니다. 길에서 동냥하는 분한테 천 원이나 이천 원 내밀어 주고, 길장사를 하는 분들 물건을 때때로 사는 일도 자원봉사가 되리라 믿습니다.

 나한테 돌아오는 사랑과 옆지기한테 돌아가는 사랑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아기한테 나누어지는 사랑과 동무네 아기한테 옮아가는 사랑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한 흐름이요, 한 동아리요, 한 모둠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풀포기와 나무 한 그루 모두 사랑합니다. 부모님을 믿는다면 파란하늘도 믿고 푸른 들판도 믿고 누렇게 익는 나락논도 믿습니다. 책이면 똑같은 책이지 헌책과 새책이 없듯, 사람이면 똑같은 사람이지 요 사람 조 사람 나눌 금이란 없습니다. 나라안 사람이든 나라밖 사람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우리 말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이주노동자를 만나든 살결 하얀 서양사람을 만나든, 저는 늘 똑같이 웃으며 한국말로 묻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움을 주든 받든 합니다.


.. 현지에 혼자 뚝 떨어진 내게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서툴기만 한 언어나 과중한 업무, 외로움과 향수병이 아니었다. 다름아닌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느냐 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외로움이 전혀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너무 외로웠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라도 먹고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 앞에서 외로움은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물론 내가 살게 될 집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곳의 직원들과 준비한 식료품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식료품을 보고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구입한 것은 쌀과 설탕 한 포대, 식용유 한 통 정도였다. 아침에 밥숟가락으로 설탕을 집어넣은 차를 마시고, 밥을 할 때 식용유를 부어 고소하게 만드는 그들의 음식 문화를 알게 되었을 때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도저히 그렇게 먹고살 수 없었다 ..  (159∼160쪽/이화진)


 무슨 시설에 가야만 자원봉사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어느 모임에 들어가 머나먼 어느 땅을 밟고 내 힘을 나누어야 자원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도에 가야만 데레사 수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티벳에 가야만 달라이 라마를 만나겠습니까.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목소리를 꼭 들어야 깨달음을 얻겠습니까. 백담사에서 백팔 번 절을 해야 몰록깨침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큰 아파트에 살아야 두 다리를 쭉 뻗겠으며, 우리가 빠른 차를 타야 서울에서 부산까지 즐겁게 달릴 수 있겠으며, 우리 주머니에 맞돈 백만 원쯤 들어 있어야 술 한잔 신나게 마실 수 있겠습니까. 두어 평 방 한 칸으로도 넉넉하고, 두 다리로 걸어도 즐거우며, 만 원짜리 한 장으로도 신납니다.


 (2) 무얼 말하거나 보여주겠다고 하는 젊은 넋이지?


 ‘자원봉사를 하는 기쁨’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는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을 읽어냅니다. 책을 처음 받아쥘 때부터 읽기를 마치고 덮을 때까지 속이 무척 답답합니다. 틀림없이 이 책에 사진과 글을 담은 젊은 네 넋은 나라밖에서 아름다움과 기쁨과 보람을 듬뿍 받아안았을 텐데, 그 아름다움이 무엇이고 기쁨이 어떠하며 보람이 어떻게 당신들 마음에 새겨졌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까마득합니다.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진인지 또렷하지 않습니다. 관광사진이나 홍보사진은 아닐 텐데, 또 풍경사진이나 예술사진도 아닐 텐데, 그리고 인물사진이나 다큐사진도 아닐 텐데, 무엇을 하자면서, 아니 우리한테 무엇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찍은 사진이고 보여주는 사진인지 딱히 느낌이 잡히지 않습니다. 살갗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살갗에 겉스치고 바스라지니 가슴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제 가슴 어느 한켠이라도 뭉클뭉클 건드려 주면 고마울 텐데,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뭐야? 벌써 끝이야? 할 말이 이게 다야?’ 하는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겠습니다. 책을 쥐어든 제가 외려 뻘쭘해지고 맙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해? 그냥 이렇게 놀다가 한국으로 돌아갈까!” 나는 결국 답답해서 짜증을 부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내가 조금 진정되자 말림은 차분하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마. 네가 지금 잊고 있는 게 하나 있어. 너는 2년 후 다시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잖아. 무엇을 많이 주고 간 화진으로 기억되는 것도 좋지만, 난 말이야, 좋은 친구 화진으로 남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가는 나라에는 그들만의 시스템이 있다는 걸 잊곤 한다. 어떤 때는 그러한 시스템이 말도 안 되고 답답해 보이지만 그것은 그 지역만의 자연환경과 역사, 사회적 환경, 국민성 등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잣대로 판단하고 그곳의 시스템은 낙후되었으니 무조건 바꾸고 새롭게 만들려다 뜻대로 안 되면 결국 현지인과 다투고 제 분을 못 이겨 힘들어하게 된다 ..  (177∼179쪽/이화진)


 나라밖으로 자원봉사를 나갔던 젊은 넋들이 ‘실패를 했다’는 이야기도 아니요, ‘뜻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어떤 자원봉사를 했는지’도 찬찬히 나오지 않는 가운데, ‘얼마 동안 지내고 무엇을 가르치거나 거들었으며’, ‘어떤 지역사람과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를 엿볼 수 없습니다. 파라과이든 우크라이나든 탄자니아든 중국이든, 사진이나 글에서 이와 같은 나라를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종잡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코이카 해외협력단 보고서’라도 되느냐 하면, 이 또한 아닙니다. ‘코이카 해외협력단 홍보글’이라도 되느냐 하면, 이마저 아닙니다.


.. 사실, ‘사진찍기’는 우크라이나와 의사소통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오해를 사진으로 풀기도 하고, 우크라이나 내면의 깊은 이야기들을 사진을 통해 듣기도 했다 ..  (142쪽/이명재)


 300쪽이 조금 못 되는 책을 읽는 내내, 딱 한 군데에서 ‘사진찍기’로 무엇을 하려 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의사소통을 했다고는 나와도 어떻게 무엇을 의사소통했는지 스스로 털어놓지 못합니다. 작은(?) 책 하나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었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담아낼 이야기를 먼저 펼쳐 보인 다음, 살을 하나하나 붙여야 앞뒤가 알맞지 않느냐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직 많이 젊은 나머지 세상구경도 덜 했고 자원봉사도 덜 했기에 속깊거나 마음넓게 헤아린 이야기를 못 보여준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얕거나 좁다면 섣불리 사진과 글을 우리 앞에 내보이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니냐 생각해 봅니다.

 무르익지 않은 가운데 구태여 사진과 글을 우리 앞에 내보이려 했다면, 사진으로든 글로든 무언가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 생각합니다. ‘나, 어느 나라에 자원봉사 다녀왔어요!’ 이 한 마디를 하려고 300쪽에 이르는 ‘총천연색 사진이야기책’에 사진과 글을 싣지는 않았을 테지요? 우리 나라가 이제 개발도상국에서 아주 훌훌 털고 일어나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음을 뽐내고자 이러한 책을 내놓으려 하지는 않았을 테지요? (4342.3.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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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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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92 ― 자유롭지 못한 넋이라면 죽은 목숨
 : 싼마오, 《흐느끼는 낙타》


- 책이름 : 흐느끼는 낙타
- 글 : 싼마오
- 옮긴이 : 조은
- 펴낸곳 : 막내집게 (2009.2.11.)
- 책값 : 9800원



 (1)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세 식구가 옮겨갈 살림집을 알아보려고 수봉공원 둘레로 찾아갑니다. 아기는 아빠가 등에 업습니다. 옆지기는 나날이 몸이 안 좋아지고 있어, 아기를 안거나 업고 걸을 수 없습니다. 배다리 한켠에 있는 우리 살림집에서 나와 도원역을 지나 숭의동 109번지 골목을 가로질러 제물포역에 닿습니다. 역 앞으로 나오니 1000원짜리 호박엿을 파는 할머니가 우리를 부릅니다. 그러나 아기 몸에 아토피가 나는 가운데 젖을 먹여야 하는 옆지기는 길에서 파는 엿을 먹을 수 없습니다. 못 들은 척 지나가면서 미안합니다.

 저 멀리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옵니다. 아기 업고 뛰기에는 벅차기에 건널목에 미처 안 닿았음에도 찻길을 건넙니다. 우리처럼 건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아 그 김에 섞입니다. 옆지기는 그리 건너지 말자고 했지만, 차 싱싱 다니는 길에서 신호 기다리며 서 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 업고 서 있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아기 무게가 조금씩 느껴집니다.


.. “사막의 어떤 게 당신을 그렇게 사로잡았어요?” 샤이다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어떤 게 나를 사로잡았냐고요? 높은 하늘과 넓은 땅, 뜨거운 태양과 거센 바람 …… 고적한 생활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어요. 이 무지한 사람들에게 사랑도 느끼고 원망도 느끼고요. 뒤죽박죽 헷갈리네요. 에이! 나도 분명히 모르겠어요.” “만약 이 땅이 당신 고향이라면 어쩌겠어요?” “아마 당신처럼 간호를 배우지 않았을까요. 사실 …… 내 고향이 아닌 곳과 고향인 곳을 어떻게 가르겠어요?” ..  (108쪽)


 천천히 천천히 거닐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 살아야 좋을지를 이야기 나눕니다. 가장 좋은 집이라면 도시집이 아닌 시골집인데, 우리가 도서관까지 함께 옮겨서 꾸릴 만한 살림집이 있을 시골이 어디일까는 쉽게 종잡지 못합니다. 강원도로, 지리산으로, 제주로, 익산으로, 음성으로, …… 아는 이들 있는 곳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지만, 아는 사람만 보고 옮길 살림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만 권에 이르는 책들을 즐거이 나눌 마을사람이 있는 터와 공장이나 고속도로 따위가 깃들지 않을 조용한 시골마을까지 살펴야 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런저런 일과 책을 떠나, 무엇보다도 사람이 사람다움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생각한다면. 아이도 아이다운 삶과 생각을 지키며 어버이도 어버이다운 삶과 생각을 지키자면. 옳게 먹고 옳게 일하고 옳게 놀고 옳게 생각하고 옳게 이야기하며 옳게 어울리고 옳게 죽어 흙으로 돌아갈 나날을 헤아리면.


.. 우리는 결혼하면서 서로 동료가 되어 주기를 바랐을 뿐, 피차 무리한 요구나 집착은 없었다. 내가 호세를 선택한 것은 그에게 의지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평생 독신으로 살까 하는 걱정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건 나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호세가 나를 원한 것도 밥하고 빨래해 주는 여자가 필요해서는 아니었고, 미인 아내를 원했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바깥의 세탁소와 음식점은 값싸고 서비스도 좋았고, 지지배배 재잘대는 여자들은 집에 있는 이 사람보다 상냥했다. 그런 데 쓰는 돈을 다 합쳐도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비용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 ..  (215쪽)


 한 시간 남짓 아기를 업고 걸으니 아기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아기를 업은 등판과 이마로 땀이 살짝 돋고 흐릅니다. 수봉공원 기슭 숭의동 8번지 골목집 사이를 걷습니다. 비어 있는 집이 많이 보이고, 동네는 무척 고즈넉합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우리가 깃들 만한 데가 있으려나. 인천 같은 도시에서도 가까이 산이 있기는 하다만, 이곳은 우리 식구가 머물 만한 집자리가 되어 줄 수 있으려나.

 인천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쉼터에서 잠깐 숨을 돌립니다. 옆지기는 걷기도 벅차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택시를 타야겠습니다. 잠든 아기까지 세 식구는 말없이 해지는 시내를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온통 시멘트로 올린 집과 아파트만 빼곡한 시내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골목길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꽃그릇이 있고, 손바닥 만한 땅뙈기에 심어 가꾸는 나무가 있기는 하지만, 인천 도시행정이 마련한 조각숲이나 조각공원은 하나도 안 보입니다.

 도시란 데가 워낙 나무며 흙이며 풀이며 꽃이며 없는 데라고 하지만. 산이며 냇물이며 바다며 파란하늘이며 볼 수 없는 곳이라 하지만. 그래도 참으로 쓸쓸합니다. 더없이 서늘합니다. 그지없이 팍팍합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푸나무 없이는 사람이 숨을 쉴 수 없다’고 배우는데. ‘비료나 풀약에 더럽혀지지 않은 흙이 없으면 사람이 먹고살 수 없다’고 배우는데.

 아니, 이제는 이렇게 안 배우는지 모르지요. 푸나무 없이도 공기청정기를 쓰고, 튼튼한 흙 없이도 식품공장에서 먹을거리를 쏟아내니까요. 돈을 많이 벌면 걱정없이 맑은 물이며 시원하거나 따뜻한 바람이며 배부른 밥이나 빠른 차나 큰 집이나 넉넉하게 품에 안을 수 있다고 배우는지 모르지요.


.. 창녀, 내 눈에 비친 이 여인에겐 직업도 도덕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무감각하고 습관적인 일이었다. “사실 여기서 기숙사를 청소하는 사람도 매월 2만 페세타는 벌 수 있어요.” 나는 부자연스럽게 한마디 했다. “2만 페세타? 청소하고 침대 정리하고 빨래하고, 죽도록 고생하고 고작 2만 세페타를 버는 일을 누가 해요!” 그녀는 깔보듯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야말로 고생스러워 보이는데요.” 나는 느릿느릿 말했다. “하하하!” ..  (30쪽)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문을 연 부동산집은 없습니다. 유리창에 붙인 쪽글을 읽습니다. 보증금 100에 달삯 10 받는 집이 없을까 생각하며 눈알을 굴립니다. 200에 15나 100에 20짜리 집은 몇 군데 보입니다.

 둘레에서 우리보고 ‘나라에서 해 준다는 전세금 대출 지원’을 받으라며 따뜻한 말씨로 알려주곤 합니다. ‘6000을 받아 다달이 25만 원씩 이자로 내고 여섯 해 뒤에 갚으면 되고, 못 갚아도 다시 이으면 된다’면서,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이 돈으로 아파트에 들어가서 지내야 하지 않느냐고들 합니다.

 그런 말씀을 들으며 ‘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립니다만, 참말 아이를 생각하는 길이라면 물과 바람과 흙이 맑은 곳에서 살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나라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걱정한다면 ‘전세금 대출 이자’를 받으려 하기보다, 전세금와 이자돈 없이도 걱정과 근심을 털어내고 지낼 만한 대책을 내놓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보다는,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개발바람에 속썩이지 않는 가운데 맑은 숨과 물을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 쇠고기를 먹을 자유’를 생각해 주시면서 나라밖에서 이러한 고기를 들여와 주셔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맑고 튼튼한 농사로 일군 좋은 푸성귀와 곡식을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먼저 생각해 주셔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전에는 다들 휘파람 말을 할 줄 알아서 멀리서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그런데 외지의 경찰이 들어와서 자기네가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휘파람 말을 못 쓰게 했어요.” “당신들이 휘파람 말로 그들을 속여 넘겼군요.” 내 말에 그들은 깔깔거리며 말했다. “당연하죠. 경찰이 범인을 잡으러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이 인적 드문 골짜기에 숨어서 계속 휘파람 말로 경찰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준 거죠. 그러니 어떻게 범인을 잡겠어요.” 가게 주인이 말했다. “젊은이들이 휘파람 말을 배우려 들지 않아서 세계에서 유일한 휘파람 말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어요. 오직 우리 섬에만 있는 말인데. 이렇게 섬세한 휘파람 말이 사라지다니 정말 안타깝죠!” ..  (169쪽)


 택시를 타고 우리 집 있는 동네로 돌아옵니다. 집 가까이에서 내립니다. 잠에서 깬 아기를 품에 안고 걷는데, 옆지기가 “엄마나 할머니가 차려 준 밥을 먹고 싶다”고 혼자말처럼 말합니다. 열흘쯤 푸성귀를 빻아 우린 물하고 김하고 능금 몇 쪽에다가 콩밥 몇 숟갈만 먹고 지낸 터라, 궁금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겠지요. 적게 먹으니 속은 홀가분하다는데, 아기한테 젖을 물려야 하고 날마다 씨름을 해야 하니 고달프기도 할 테고요.

 집에 거의 다 와서 발걸음을 돌립니다. 동네 밥집으로 갑니다. 집밥이 생각날 때면 가끔 들르는 곳입니다. 밥 한 상과 오징어데침을 시키고, 막걸리 반 주전자도 시킵니다. 밥집 할머니가 막걸리 안주로 먼저 내어준 김치 한 접시를 먹는 옆지기는 아주 맛있다며, 이런 집김치를 먹고 싶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밥집에서 ‘백반’을 먹어 볼 일이 거의 없는 옆지기는, 밥집 할머니가 차려 주는 반찬이 아주 많다면서, 이렇게 받아먹어도 되느냐 묻습니다. 그러나 백반은 으레 이처럼 차려주는걸요. 아기는 잠깐 엄마젖을 물다가 그만두고, 밥집에 있는 다른 손님과 할매 할배한테 눈웃음을 칩니다. 엄마와 아빠는 반찬그릇을 모두 깨끗하게 비웁니다. 속이 든든해진 옆지기는 시원한 게 당긴다고 합니다. 얼음과자 사러 구멍가게로 찾아갑니다. 저는 제 몫으로 보리술 한 병을 삽니다.

 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기 양말 한 짝이 없습니다. 오는 길에 흘린 듯합니다. 구멍가게까지 오던 길을 거스릅니다. 동사무소 앞 골목 네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양말을 줍고 아기 발 한쪽을 담요로 더 똘똘 감싸며 걷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옆지기는 우리가 도시에서 더 살려면 다른 동네로 가서 이웃 하나 없는 데에 있기보다 지금 이 동네에서 찾아야 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그쪽이 낫다고 느낍니다. 얼른 새 살림집을 찾아 옮기고, 옆지기 다른 피붙이들이 살고 있는 용현동이며 포천이며 거창이며 나들이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싼마오, 이리 와 봐.” 호세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꼬치를 내려놓고 따라갔다. “저 아이는 노예야.” 호세는 아이가 듣지 못하게 나지막이 말했다. 나느 깜짝 놀라 입을 가리고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아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노예라니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아리에게 차갑게 물었다. “그들은 대대손손 노예예요.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흑인의 얼굴에 씌어 있었나요? 나는 노예라고?” 나는 아리의 갈색 얼굴을 들여다보며 추궁했다. “당연히 아니죠. 잡아 온 거예요. 사막에 사는 흑인을 보면 잡아다 때려서 기절시키고 도망치지 못하게 한 달 간 밧줄로 묶어 놔요. 온 식구를 잡아 오면 더더욱 도망칠 수가 없죠. 이렇게 대대로 내려오면서 재산이 된 거예요. 지금은 사고팔 수도 있어요.” 내 불편한 기색을 보고 아리는 곧바로 덧붙였다. “우리는 노예를 학대하지 않아요. 저 아이는 저녁에 부모가 있는 천막으로 돌아간다고요, 마을 밖에 있는. 아주 행복한 거죠. 날마다 집에 가는데.” ..  (37∼38쪽)


 아기 얼굴을 씻기고 풀물을 바릅니다. 젖을 물려 재웁니다. 그러고 우리 두 식구는 인터넷을 켜고 ‘미디엄’이라는 미국 연속극 5부를 챙겨 봅니다. 우리 말로 옮겨진 5부 다섯째를 보니, ‘피 안 섞인’ 손녀 때문에 ‘피 섞인’ 딸을 죽이고 마는 할머니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 섞인 딸은 어떤 까닭에서인지 간호사로 일하던 때 한 번 사람을 죽이고(자기가 혼인하려는 남자 아내), 나중에는 그 집 어린 딸아이도 얼음과자에 약을 타서 차츰차츰 말려죽이려 합니다. 할머니는 이를 알아채고는 딸아이를 불러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 외려 당신이 딸아이를 죽이고 땅속에 파묻는데, 주인공은 이를 알게 되지만 끝내 할머니를 고발하지 못합니다. 주인공 또한 세 딸을 키우는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슬픔과 아픔이 더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도 해서가 아니랴 싶습니다.

 그렇지만, 셈틀을 끄고 잠든 아기를 꽁꽁 싸매고 함께 자리에 누워 잠이 들면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연속극 이야기라고 하지만, 왜 그렇게들 제 배속을 챙기면서 다른 이 삶을 밟거나 괴롭혀야 하는지, 왜 다른 이 삶을 끝장내면서 제 삶만 이으려고 하는지. 함께 살아갈 길은 그예 찾을 수 없는지, 서로 웃고 함께 울면서 어깨동무할 삶은 찾을 길이 없는지.


.. “외투를 입어요! 당신들에게 국립공원을 구경시켜 줘야지. 나는 수도 없이 다녀 봤다오.” 과연 높은 산 험준한 고개 속에 기개가 넘치고 비범한 소나무숲이 펼쳐졌다. 운전사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조근조근 설명해 주었다. 차에 탄 시골 사람들은 아무도 원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 역시 자기네가 사는 아름다운 땅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 더없이 평온하고 정겨운 광경이었다. 시간마저 멈춘 듯했다. 천만 년 전에도 천만 년 후에도, 이 들판은 이 모습 그대로 변치 않을 것만 같았다 ..  (173∼174쪽)


 길지 않은 밤, 아기가 칭얼댈 때 틈틈이 깨는 가운데 꿈을 꿉니다. 아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꿈인데, 아침에 일어나면서 영 개운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둘레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이 하나도 달갑지 않을 뿐더러, 달가울 만한 목소리나 손길을 느끼기 어려운 탓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기는 해도 아기가 좀더 자라서 어느 만큼 자기 어릴 때를 떠올릴 수 있을 무렵까지는 이곳 인천이라는 데에서 터잡으면서 살아내고 싶은데, 얼마나 살아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도시 아닌 시골에서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살기를 바라고 있으나, 도시라는 데에서도 지금 우리 동네 같은 골목길 같은 데는, 여느 도시 삶자락과는 사뭇 다름을 느끼게 한 다음 도시를 떠나고 싶은데, 아기가 살짝 철이 들 무렵까지 얼마나 인천 골목길이 골목길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낮은자리도 아닌 밑바닥자리에서 복닥복닥 치고받고 하여도 살가움을 나누고 있는 이 골목집 사람들 삶을, 모자라다기보다 아예 없는 가운데에도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나누는 사랑이 있는 이 골목동네 사람들 삶터를, 이 나라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이 끝내 모르게 되더라도 우리 아이가 이런 느낌을 살갗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어느 만큼 견디며 발붙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2) 사막을 사랑한 싼마오가 살아온 이야기, 《흐느끼는 낙타》


 《사하라 이야기》에 이은 싼마오 님 두 번째 산문모음 《흐느끼는 낙타》를 읽습니다. 《사하라 이야기》를 읽던 때와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못한 넋이라면 죽은 목숨이라고 여기고 있구나 싶은 싼마오 님 이야기책은 중국에서 스물여섯 권짜리 전집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몇 권쯤 더 옮겨질 수 있을까요.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언론매체에서는 하나도 안 다루어 주지만, 책 좋아하는 이들은 입소문으로 퍼뜨리고 나누면서 새로운 싼마오 님 문학이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이와 같은 흐름은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가게 될까요.


.. 그는 석상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음료수를 조금 마시고 자기가 가져온 마른 빵을 먹었을 뿐, 다른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벙어리 노예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일어나서 손짓을 했다. “화내지 말아요. 집에 가져가서 아내랑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어서 안 먹었어요.” … 그는 내가 봉투에 음식을 담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움과 기쁨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보고 나는 울컥했다 … 사소한 음식을 얻고도 저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벙어리 노예는 자신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틀림없었다. 분명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 벙어리 노예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자기의 피부를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그는 또 미소를 지으며 자기의 가슴을 가리켰고, 새를 가리키며 날아가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내 마음은 자유로워요.” ..  (46, 50쪽)


 《사하라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싼마오 님이 남달리 사막을 사랑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산문모음 《흐느끼는 낙타》를 읽으며, 싼마오 님은 사막뿐 아니라 섬도 사랑하네 하고 생각합니다. 다만, 도시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싫어하거나 꺼려하지 않으나, 복닥이는 사람물결은 반가워하지 않을 뿐더러 멀리멀리 떨어지고자 합니다. 전기제품을 쓰고 자동차를 몰지만 이런 물건을 쓰기도 할 뿐이지, 이런 물건에 매이지 않습니다. 아무런 물건 없이 얼마든지 살림을 꾸리고 어떠한 물질을 두 손에서 놓더라도 홀가분합니다.

 이웃사람은 모두 꺼리고 놀리고 들볶는 사막 노예한테 처음으로 말을 걸며 동무로 사귀는 싼마오요, 싼마오네 남편 호세입니다. 노예 몸을 자유롭지 못하고 얽어맨 이들은 한껏 자유를 누리는 듯하지만 외려 마음은 갇혀 있을 뿐이고, 몸이 갇혀 있어도 마음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노예한테 삶을 배우고 슬기를 듣는 싼마오요, 싼마오네 남편 호세입니다. 이 둘은 그 무엇으로도 서로를 옭매지 않는 가운데, 둘레 다른 사람을 옭매고픈 마음이 없는 한편, 사회나 나라가 사람을 옭매는 일을 거스릅니다.


.. 스페인 정부가 이곳(그란카나리아 섬)을 자유항으로 개방한 이후로 가전제품, 사진기, 시계 등 무거운 세금이 부과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거리거리 가득 늘어섰다. 난잡한 도시는 꼭 홍콩 같은 분위기였고, 벌떼처럼 거리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로 복잡하고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언젠가 대만 어업계의 대가 추 선생에게 그란카나리아 섬의 인상이 어떤지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어선 일로 해마다 몇 번씩 이곳을 다녀갔는데, 이렇게 대답했다. “개성이 없어요. 아주 조잡하고.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  (183쪽)


 아무래도 싼마오며 호세며, 그리고 또다른 숱한 ‘싼마오와 호세’ 들은 저마다 다 다른 삶임을 깨닫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다르고 네가 다른 삶임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름을 아니까 껴안을 줄 압니다. 다름을 알기에 사랑할 줄 압니다. 다름을 알고 있으므로 어깨동무할 줄 압니다. 다름을 알려 하니 기꺼이 손길과 눈길을 내밉니다.

 다름을 모를 때 어깨동무를 못합니다. 다름을 모르는 가운데 사랑이란 없습니다. 다름을 모르면서 믿을 수 없고, 나눌 수 없으며, 함께할 수 없습니다. 다름을 모르니 막개발이 이루어지고, 다름을 짓밟으니 독재자가 일어서며, 다름을 내리누르니 군사쿠테타가 일어납니다.

 다름을 깨닫는 어른이라면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을 선물하지 않습니다. 다름을 깨달은 어른이라면 돈바라기 정치나 경제를 펼치지 않습니다. 다름을 깨달으려는 어른이라면 지식으로 권력을 세우지 않습니다.

 산 사람이 되고자 하니 서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산 넋이 되고자 하니 서로를 꾸밈없이 맞아들입니다. 죽은 사람이 되었기에 서로 똑같이 되려는 겨루기를 하면서 1등으로 올라설 꿈을 키웁니다. 죽은 넋이 되었기에 서로서로 겉치레와 겉꾸밈으로 뭔가 돋보이거나 남달리 보이려고 애쓰고 맙니다.


.. 낯선 곳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과 완전히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마구 사진을 찍어대는 것은 무례한 짓 같아서 사진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  (62쪽)


 자유를 사랑했기에 사막을 사랑한 싼마오입니다. 평화를 사랑했기에 섬을 사랑한 싼마오입니다. 평등을 사랑했기에 아름다운 사람을 찾고 만나고 어울리며 스스로도 아름다워지고자 한 싼마오입니다. (4342.3.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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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09-03-1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끔와서 읽고 갑니다
님 글 보면서 우리가족이 왠지 같이 생각이 들어서 흐흣
아무튼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숲노래 2009-03-1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구 고맙습니다.
곰돌이 님 식구들
언제나 즐거우면서 씩씩하고 튼튼하시길 빌어 봅니다~~~
 



 소설쓰는 공선옥 아줌마, 1:20으로 수다 떨기
 ― ‘문학동네 인터넷방’에 ‘소설 1일 연재’ 하는 공선옥 님과 독자들 모임



 출판사 문학동네 인터넷방(http://cafe.naver.com/mhdn)에 올 2009년 1월 12일부터, 소설쓰는 공선옥 님 작품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날마다 실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실리는 공선옥 님 작품에는 날마다 서른 꼭지 안팎으로 댓글이 달리면서, 공선옥 님 작품을 놓고 독자들마다 이런저런 느낌과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날마다 이어실리는 소설은, 신문에 날마다 실리는 소설하고 마찬가지로 여길 수 있으나, 신문소설과는 사뭇 다른 ‘인터넷방 이어쓰기’가 된다고 느낍니다. 신문에 실리는 소설에도 독자들은 편지로 당신들 느낌과 생각을 나누게 되지만, 인터넷방에 이어실리는 소설에는 그날그날, 아니 그때그때 독자들 느낌과 생각을 주고받게 됩니다. 소설을 쓰는 분으로서는 독자들 느낌과 생각이 어떠하든, 당신 스스로 이어나가려는 흐름을 고이 지킬 수 있는 한편, 독자들이 느끼거나 생각하는 줄기를 곰곰이 되짚으면서 당신 소설을 조금씩 다르게 추스를 수 있기도 합니다. 문학은 작가 혼자서 외로운 방에 틀어박혀서 머리를 짜내어 이루는 이야기이지만은 않으니까요. 외로운 방에 틀어박혀서 뽑아내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방에 들어가기 앞서까지 수많은 사람을 부대끼고 숱한 세상살이를 치러내야 하니까요.

 이를테면, 3월 6일에 올라온 38회치 작품에 달린 댓글을 죽 돌아보면 이렇습니다.


 [뒷북소녀] 다행히 정신이는 기사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됐군요. 환이가 상처 받은걸까요? 그럼, 안 되는데...^^;;
 [서울아이] 아..어쩌죠, 어쩌죠.. 환의 소박함이 소심함이 아니기만을...
 [렌] 설마! 환이 소심남은 아니겠지요? 저렇게 가 버리면 어떡해!
 [설해목] 진만이 이 나쁜넘의 쒜이.... 어쩌자고 남의 가난한 행복에 재를 뿌리고.... 우이씨.. 열받네.. 그니까 니가 좋아하는 여자도 제대로 못 잡는 것이다.. 이것아.. 라고 해금이 대신 말해 줘야지..-.-
 [렌] 근데 아이디는 '뒷북소녀'신데 일등이시네요 ㅎㅎ
 [미망] 아...순식간에........ 사라진 내 가난한 행복..... 어쩜좋아~~~
 [설해목] 렌님.. 음~~~~ 그거 유머라고 하신 건 아니죠? ^^;; 아닐거야.. 설마~~~
 [hoolahoop] "진만이 이 나쁜넘의 쒜이.... " 직접 듣고 시포...ㅋㅋㅋ
 [hoolahoop] 승희에게 따뜻한 밥 해먹이던 진만이... 그의 상처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에요. 그래도 넘 심하게 삐뚫어졌는데요...-_-
 [해라] 내 가난한 행복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ㅜ.ㅜ 어쩌죠. 이 모든 건 진만 때문이야!!! ㅜ.ㅜ
 [뒷북소녀] 렌님... 제 닉네임은 그 뒷북이 아니라 다른 뒷Book이랍니다... :)



 바로바로 올라오는 댓글은, 소설을 쓰는 분한테뿐 아니라 소설을 싣는 매체 분들, 그러니까 출판사 편집자와 기획자한테도 ‘앞으로 펴낼 작품을 독자들이 어떻게 헤아리거나 받아들이는가’를 곱씹게 되는 좋은 도움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출판사 일꾼도 여느 독자와 마찬가지로 독자가 되어, 자기 일터에서 나오는 작품과 작가로서가 아닌 가깝고 반가운 마음으로 작품에 좀더 깊숙하게 빠져들 수 있을 테며, 이렇게 ‘작가-독자-출판사’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문학 하나가 우리 삶으로 한결 깊숙하고 푸근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지난 2월 18일 저녁 일곱 시에, 서울 서교동 ‘별 포차’라는 술집에서 “1차 오프라인 독자모임 : 공선옥 선생님과 술 한잔 어때요?”를 엽니다. 독자들이 공선옥 님을 만나뵈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기도 했고, 소설쓰는 공선옥 님 또한 인터넷 댓글로만이 아닌 바깥자리에서 소주 한잔 부딪히며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도 독자와 똑같은 사람이며, 똑같이 술을 좋아하고, 똑같이 사람 사귐을 좋아하는데다가, 똑같이 조촐한 만남을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이리하여 독자 스무 사람과 소설쓰는 공선옥 님은 첫자리와 둘째자리를 이으면서 술 한잔을 주고받았고, 소설쓰는 공선옥 님은 소설읽는 스무 사람하고 1:20 수다 떨기를 했습니다. 한손에는 소주잔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담배를 들면서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바지런히 옮겨 다니면서 “내 소설보다 댓글 보는 게 더 재미있어.” 하고 말하면서 이가 훤히 보이도록 시원하게 웃습니다.

 “(인터넷에 일일연재를 하면) 독자들이 ‘이런 얘기 넣어 주세요’ 하고 요구하기를 바라는데, 그런 게 없어서 …… 오늘은 독자들 의견을 듣고 취합해 보고 싶어서 왔어요.” 하는 공선옥 님은, 둘레에 앉은 독자들한테 손수 술잔을 채워 주면서, “오늘 원고를 넘기는데, (소설에 나오는) ○○이가 고뿌도 아니고 글라스에 원샷을 하다가 푹 쓰러져 버렸어 …… 아니, 나는 내가 쓰면서도 혼자서 막 웃어.” 하면서 또 즐겁게 웃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소설 줄거리를 “오늘 이 자리에 나오셨으니까 특별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하면서 살며시 귀띔을 하고,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름을 놓고는, “시골사람들이 봉석이를 봉섹이라고 해.” 하고 덧붙이고, 손 한번 잡자는 독자하고 뜨겁게 손을 맞잡으면서, “아유, 독자의 손을 잡아 보고, 웬 영광이냐.” 하면서 너스레를 떱니다. 뒤이어, “이게 연예인으로 치면 팬미팅을 하는 거죠?” 하면서 다시 웃고, 둘러앉은 독자와 출판사 분들이 모두 함께 웃으면서 술잔을 거듭 비우게 됩니다.

 서로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는, “저기, 나는 나오는 인물을 얘기를 (이 자리에서 독자들한테) 다 해 주고 싶어.” 하면서, 어느 독자가 ‘공선옥 선생님이 생각하는 문학은 무엇이느냐’고 여쭈는 말에는, “나는 (내가 쓴 소설이) 많이 안 팔리더라도, 몇 사람이더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또는 마음이 흔들리기까지는 않더라도 마음을 울리면 좋겠어요. 사실은 (소설에 나오는) 해금이 아버지가 몸이 아퍼. 고문 받았어. 처음에 끌려갔잖아 …… (앞으로 나올 이야기 살짝 귀띔) …… 그 시대 상황이 아버지가 너무 힘든 거야.” 하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해금이네) 아버지가 농사를 아주 잘 지어 놓으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감나무가 너무너무 잘 자랐는데 …… 그래서 해금이가 글을 쓰는 거야. 이건 내가 쓰는 게 아니고 해금이가 글을 쓰는 거야. 내가 쓰는 게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해금이가 글을 쓰는 거지. 작가가 되는 거지.” 하고 덧붙입니다. 당신이 쓰는 소설은 당신 글만이 아닌, 당신 삶만이 아닌, 당신 둘레에서 살아가는 마음아프고 가슴시린 모든 이웃들 삶임을, 그 이웃들 삶을 당신 이름 석 자를 빌어서 쓰게 됨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독자가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 문학은 죽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여쭙자, “소설이 참 좋은 게, 어떤 삶이든 다 이해하고 싶고, 다 용인이 돼. 시는 삶을 깊이 한다면,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을 넓게 해 주는 거 같아. 쓰는 사람도 타인의 삶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거잖아. 어떤 삶도 이해가 돼. 당장에는 소설이 너무 힘도 발휘를 못하지만, 나중에는 다 발휘를 하게 돼.” 하면서 문학과 소설 모두 앞으로도 크든 작든 우리를 살찌우는 힘을 펼쳐 보이면서 널리 나눌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고는,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 소설은 범죄예요. 타인의 삶을 차단시켜요. 자기 마스터베이션이라고 할까. 순간의 껌이에요. 순간으로 즐기고 끝내면서 타인과 나를 차단시키는 치명적인 마약이에요. 이런 판타지 소설을 좋아할 사람이 누구겠어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할 사람은 바로 정치인이에요. 판타지 소설 그것이 당신과 나하고 삶을 이어주지 않아요.” 하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자연스레 공선옥 님 당신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조곤조곤 풀어놓습니다. “내 글을 보고 우울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도스토예프스키하고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을 보고 우울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인간의 진실이기 때문이에 우울해도 좋은 문학이에요. (우리 삶의) 본질을 보니까.”

 이어서 마지막말을, 이제부터 좀더 신나게 술과 삶과 이야기에 빠져들자면서 한 마디 마무리말을 붙입니다. “살아 있을 때, (문학을 하면서) 생명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를 보내는 거지. 나의 생명을, 최대한의 축복을.” 그리고 ‘다 함께 짠!’

 밤은 깊어가고 술도 깊어가고 사람과 사람 사이 만남과 이야기도 깊어갑니다. 집이 먼 사람은 일찍 일어나고, 집이 멀지만 오늘 만남이 반갑고 즐거운 사람은 새벽 첫차가 올 때까지 마주앉아 깊은 밤을 함께 지새웁니다. (4342.3.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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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솜털 1
오자와 마리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삶이 바로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이 바로 만화
 [살가운 만화 43] 오자와 마리, 《민들레 솜털》



- 책이름 : 민들레 솜털 (1권∼ )
- 글ㆍ그림 : 오자와 마리
- 옮긴이 : hiyoko
- 펴낸곳 : 북박스 (2008.10.24.∼ )
- 책값 : 한 권에 3500원씩


 아귀힘이 세어지며 한손으로 책을 잡아채어 입으로 가져가는 아기는, 머잖아 책은 ‘먹을거리’가 아닌 ‘읽을거리’임을 알아채리라 믿습니다. 다만, 아직은 손수건이며 옷이며 연필이며 밥그릇이며 숟가락이며 오로지 입으로만 가져갑니다. 저도 살아 보겠노라 발버둥을 치는 셈인지, 몸부림을 치는 셈인지 모릅니다만, 아기니까, 아기라서 그렇다고 느낍니다.

 아기를 안고 아기랑 함께 보다가 지루해져서 바닥에 팽개쳐 둔 만화책을 아기가 꼬물꼬물 기어가다가는 덥석 집어들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으로 덥석 뭅니다. 이빨도 없는 주제에 우걱우걱 씹기를 좋아합니다. 그 만화책은 ‘아빠며 엄마며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아기 침이 범벅이 되어도 내버려 둡니다. 책한테 더없이 미안한 노릇이지만, 아기가 즐겁게 놀이감으로 삼으니, 이런 대로 보람이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지난 2월 18일 서울 나들이를 하며 들른 만화책방에서 《민들레 솜털》이라는 새로 나온 만화 1권과 2권을 장만했습니다. 이 만화책은 저로서는 재미있게 여기는 터라 아기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으면서 옆지기한테도 읽어 보라 건넵니다. 옆지기는 그다지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았다면서, 그저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빠랑 엄마랑 좋아하는 만화가 다를 테지’ 하면서 서운한 마음을 달랩니다. 그냥 그저 그럴 뿐인가, 너무 뻔하게 흐르는 줄거리인가, 그림결이 썩 내키지 않은가 …… 여러모로 헤아려 보면서, ‘어쩌면 나나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만 좋아할는지 모르겠구나’ 싶은 한편, 《민들레 솜털》을 그린 분이 좀더 발돋움할 앞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어떤 문화며 예술이며 공연이며 마찬가지이지만, 한 자리에 머무는 법이란 없습니다. 한 가지 틀에 매여 있으란 법은 없습니다. 그예 똑같이 흘러가는 글과 그림과 사진도 많으나, 나날이 조금씩 새로워지면서 거듭나는 글과 그림과 사진도 많아요. 만화 《민들레 솜털》을 그린 오자와 마리 님 책을 여러 해에 걸쳐 여러 작품을 보아 오면서, 이분은 이분 나름대로 남다른 그림결을 잘 간직하는 가운데, 이분 아니면 펼쳐 보일 수 없는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낸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크게 돋보이거나 널리 도드라지지는 않습니다만, 언제나 한결같은 자리에서 꾸준함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려 하고 있어요.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는, 아주 수수한 동네사람만이 ‘오자와 마리’ 님 만화에 나오는 이들이고, 이들은 돈이 많거나 이름이 높거나 무언가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 골목길을 거닐면서 으레 스쳐 지나가는 동네사람이 만화에 나오고, 역사며 문학이며 학문이며 어느 자리에서 제 이름 석 자를 돋을새김할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이웃사람이 만화에 나옵니다. 어쩌면, 로또복권 같은 데에 뽑히지도 않으나 이런 복권을 아예 사지도 않는 털털한 사람들이 만화에 나온다고 할까요. 앞에 있지 않으나 뒤에 있지도 않고, 왼쪽에 있지 않으나 오른쪽에 있지도 않은 사람, 얼핏 보면 냄새도 맛도 빛깔도 없으리라 여길 수 있습니다만, 이러한 모습과 매무새야말로 고즈넉한 냄새요 맛이요 빛깔이라 할 만한 사람이 만화에 나온다고 할 수 있어요.


.. 그때 옛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학교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민들레를 따서 입원 중이던 엄마 병문안 갔을 때, 창밖을 바라보며 엄마가 ‘언젠가 토마가 어른이 되면 저 민들레 솜털처럼 자유로운 세상으로 날아가겠지’라고 했던 말이. “난 안 갈 거야. 계속 엄마 곁에 있을 거니까.” “가도 돼.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토마가 원하는 곳이라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꽃을 피우는 걸 엄마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토마가 어디 있든, 엄마는 언제나 토마를 응원할 거야. 그걸 잊지 마.” ..  (2권 14∼15쪽)


 오자와 마리 님 다른 만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완전판 8권으로 마무리)을 한 해에 걸쳐 보는 동안(1권부터 8권까지 모두 나오는 데에 꼭 한 해가 걸려서), 처음에는 ‘아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음악이라며, 그 음악을 언제 들려주려고 하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5권 6권 7권째 넘기면서, 그리고 마지막 8권을 덮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란, ‘세상에서 가장 흔한’ 노래이며, ‘세상에서 가장 손쉽게’ 듣는 노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아름다움’이 깃든 노래라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임을, 믿음은 믿음일 뿐임을, 나눔은 나눔일 뿐임을 이야기하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라고 할까요. 겉꾸밈이나 겉치레가 아니라, 우리 사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래요 춤이요 글이요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라고 할까요. 멀디먼 나라에서 찾을 즐거움이 아닌, 바로 우리가 선 이 자리에서 즐거움을 찾자고 손을 내미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라고 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짝사랑해도 사랑이요, 힘을 내어 털어놓아도 사랑이며, 털어놓았는데 그이가 손사래를 쳐도 사랑입니다. 돈 잘 버는 일자리를 얻든, 돈 못 버는 일자리를 얻든, 제 땀을 기꺼이 바칠 만한 일자리를 얻으면 그때부터 누구나 제 삶자락을 아름다이 가꿀 수 있습니다. 바깥밥을 사먹어야만 맛이 아니며 선물이 아니며 잔치밥이 아닙니다. 집에서 된장찌개나 나물무침으로 차린 단출한 밥상으로도 얼마든지 맛이요 선물이요 잔치밥입니다. 백만 원짜리 옷만 따뜻하지 않고, 손뜨개 옷 한 벌도 따뜻합니다. 몇 만 원짜리 십자가를 벽에 걸어 두어야 하느님을 모실 수 있지 않고, 나무토막 하나를 서툴게 깎고 다듬어 벽에 걸어 두어도 하느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삶이 바로 노래이고 노래가 바로 만화임을, 삶이 바로 기쁨이요 기쁨이 바로 만화임을, 삶이 바로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이 바로 만화임을, 부드러운 붓끝으로 보여주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오자와 마리 님 다른 만화책에도 하나둘 손을 뻗치게 됩니다.

 《니코니코 일기》라든지 《퐁퐁》이라든지,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민들레 솜털》이라든지.


.. “하루키, 밥 안 먹으면 천국에 엄마가 슬퍼한다? 엄마는 하루키가 이 세상에 태어나길 그 누구보다 기다렸단 말이야.” “정말?” “그럼! 아, 맞다 그게 어딨더라? 아, 여기 있다! 이것 봐, 하루키. 이건 하루키가 꼭 지킬 걸 엄마가 써 놓은 노트야. 지금부터 형이 엄마 대신 읽어 줄 테니, 엄마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들어. ‘밥은 남기지 마세요♡ 엄마는 하루키가, 음, 하루키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답니다.’라는데? 알았어, 하루키?” “응! 알았어! 잘 먹겠슘다!” …… “형아.” “응?” “오늘도 읽어 줄 거야? 엄마 노트?” “그래. 음, 에헴, ‘밤늦게 자지 말 것.’” “그게 다야?” “음, ‘일본 속담에 잘 자는 아이는 쑥쑥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동안 성장호르몬이 활발히 움직여서 뼈와 근육이……’라는데?” “……(쌔근)” ..  (1권 59∼63쪽)


 방이 갑자기 조용해져서 아기 쪽을 바라봅니다. 딸랑이를 손에 쥐고 입으로 씹으면서 꿍얼꿍얼대던 아기가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서.

 아기는 노란 베개에 새겨진 곰돌이한테 잠깐 꽂혀 있다가 바닥에 굴러다디던 종이조각 하나를 씹고 있습니다. 그런데 낯빛이 좀 얄딱구리합니다. 기저귀를 만져 보니 물컹. 똥을 누었구나. 똥을 누고 조용해진 셈이로군.

 물을 덥혀 엉덩이와 잠지를 닦아 주고 새 기저귀싸개와 기저귀를 댑니다. 이제 또 한 번 기저귀 빨래를 해야겠군요. 아직 하늘에 해가 걸려 있으니, 저 햇볕에 기저귀싸개와 기저귀가 보송보송 마를 수 있도록. 아침부터 바람이 무척 찬데, 너무 늦지 않게 옆지기랑 아기랑 다 함께 바깥마실도 잠깐 다녀와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한테 아름다울 노래를 찾아서. (4342.3.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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