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세대 -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 양철북 청소년 교양 5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 / 양철북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하나 98 ― ‘푸르고 여린(청소년)’ 심지에 폭력을 들이대지 마셔요
 : 김진아 외 아홉 사람, 《열정세대》


- 책이름 : 열정세대
- 글 : 김진아 외 아홉 사람
- 펴낸곳 : 양철북 (2009.2.16.)
- 책값 : 9800원



 (1) 아이들을 폭력에 길들게 하는 학교


 엊저녁, 옆지기가 동생 머리카락을 잘라 주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처남(옆지기한테는 막내동생)은 오늘 학교에서 ‘두발검사’를 한다면서, 이때 걸리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아야 했는데 깜빡 잊었다고 합니다.

 열네 살 처남이 학교 다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학교 공부보다는 동무들하고 뛰어놀기를 훨씬 더 좋아하지 않느냐 싶던데, 아마도 학교에서 담임 교사가 ‘두발검사’를 한다고 알려주었어도 곧 잊어버렸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테지요.

 처남 머리는 그리 짧지 않습니다. 제가 다닌 중학교를 떠올리면, 더구나 제 고향이며 일터인 인천에서 중학생인 요즈음 아이들 머리길이를 살피면, 경기도 일산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처남 머리길이는 ‘인천에서는 고등학생 머리길이’라 할 만합니다.


.. 우선 가출이라는 용어는 항상 청소년에게만 사용되고 있어. 그렇지? 너 ‘가출 어른’이라는 말 들어 봤냐? 없지? … 어른들에게는 가출 대신 다른 멋들어진 단어가 사용되지. 독립. 음, 이 얼마나 장대한 말이냐 … 사실 학교 폭력은 학교의 폭력적인 구조와 문화 때문에 가능하거든. 일종의 폭력적 문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 거야. 그런데도 청소년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희석해 버리지. 그래서 폭력 청소년을 학교 바깥으로 쫓아내면 모두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야 … 가출하고 나서 나는 진짜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었어. 전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미래가 조금씩 명확하게 보익 시작했다 … 하지만 이 따스한 공간(집)이 가장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부모님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해서 바보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  (16∼19, 22쪽)


 옆지기가 처남 머리를 잘라 주는 동안, 때가 어느 때인데 학교에서 ‘머리길이 살피기’를 하는가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학교는 아이들 머리길이를 살피는 일을 ‘교육’이라고 여기는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지시사항을 내리는 교육부도 놀랍고, 이런 지시사항이 없었다면 학교장 스스로 이런 지시사항을 마련했을 테니 이 학교 교장 또한 더없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학교장이 이런 지시사항을 내렸다 하여도 담임을 맡은 교사 스스로 ‘터무니없을 뿐더러 해서는 안 되는 짓’을 곧이곧대로 따르며 아이들을 억누르는 셈이기 때문에 한 번 더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교사 되는 사람들은 ‘아이들 머리카락 길이를 짧게 맞추어야, 아이들이 바르고 착하고 얌전하고 슬기롭게 크리라’ 생각하고 있을까요? 이런 짓에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감동도 경제적 가치 앞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서글플 뿐입니다. 감동을 주지 못하고, 감동을 받지 못하는 사회와 삶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  (55쪽)


 제가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간 때는 1988년입니다. 이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인천에서) 중학생은 머리길이가 3센티미터가 넘어가면 안 되었습니다. 그나마 앞머리는 눈썹에 안 닿으면 된다고 했지만, 그예 빡빡이 머리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말이 3센티미터이지 빡빡 밀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머리통이 허옇게 드러나는 아이들이 우글우글 모여 학교에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모습은 조금도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런 모습이야말로 ‘참교육’이 이루어진다며 좋아한 분들이 있었겠지요).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단발령’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깜짝 놀라던 일이 떠오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머리카락이란 몸뚱아리와 마찬가지였기에,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하여 목숨을 끊은 사람이 나왔다고 했는데, 지난날 우리 삶자락을 헤아린다면, 중학교에서 우리들 머리카락을 이토록 밀어대는 일은 ‘우리가 스님이 될 생각’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습니다. 스스로 밀고 싶으면 밀며, 깎고 싶으면 깎도록 해야 할 뿐이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우리한테 이름을 빼앗고 말을 빼앗고 땅을 빼앗고 문화와 몸 모두를 빼앗은 아픔과 생채기를 목소리 높여 가르치던 교사들인데, 정작 이런 교사들이 가위를 들고 교실과 학교 구석구석 누비며 어디 숨은 ‘놈’이 없는지 샅샅이 뒤졌습니다. ‘두발검사’ 하는 날이면 교사들은 하나같이 새벽밥 지어먹고 학교 곳곳에서 눈알을 부라리며 지켜서곤 했고, 이렇게 지켜선 다음에도 운동장으로 죄다 불러내어 하나하나 자로 머리길이를 재면서 다시금 가위질을 해대었고, 조리로 돌을 솎아내듯 하루 동안 교실과 골마루와 뒷간에서 서너 차례 가위질을 해댄 다음에야 비로소 살얼음판 같은 가위질이 끝나곤 했습니다.


.. 문득, 어른들은 ‘십대 동성애자’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십대는 미성숙하고 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잖아 ..  (64쪽)


 가위질은 고등학교에 갔어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등학교에서는 3센티미터는 아니었습니다. 앞머리가 눈을 찌르지 말고, 옆머리가 귀를 덮지 않으며, 뒷머리가 옷깃에 닿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인천이라는 데에서는 ‘학교옷’을 안 입어도 누가 중학생이고 고등학생인지를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고, 신분증이 없어도 신분증처럼 알아보았습니다. 극장에 들어갈 때이든 전철을 탈 때이든 버스표를 살 때이든 머리길이만으로 우리 ‘신분’이 드러났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교사를 비롯한 모든 어른은 우리 ‘푸름이(청소년)’를 ‘한꺼번에 다스릴(일제단속)’ 수 있었습니다.

 시험점수에 따라 줄세우기 하는 짓만으로도 모자라, 아니, 줄세우기는 한 달에 한 번밖에 못하니까 심심했는지(?) ‘두발검사’에다가 ‘복장검사’에다가 ‘소지품검사’를 수도 없이 해댔고, 굵직한 몽둥이를 어깨에 얹고 다니는 교사들 가운데에는 중고등학생한테까지 ‘손톱검사’를 하면서 골마루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매질을 일삼는 사람이 어김없이 학년마다 한둘씩 있었습니다.


.. 처음에는 집으로 갔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차마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용돈 몇 푼 더 벌지 모르지만, 촛불집회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이유는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  (99쪽)


 어린 처남이 “아이! 내일 두발검사 하는데 어떡하지?” 하며 걱정을 하기에 옆지기는 머리를 손수 잘라 주었습니다만, 제 마음은 “얌마, 머리 그냥 그대로 두고 학교에 가. 가서 청소년 인권을 말하면서 따져!” 하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에 따르는 어떤 앙갚음을 교사들이 해댄다 할지라도, 아이들한테 ‘인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교칙만 있다’고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교사들한테,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른과 똑같은 사람이다’고 당차게 외쳐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2) 학교에서 폭력에 길들지 않고자


 그러나 처남한테 아무런 말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반항이 아닌 저항은 앞으로 언제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머리가 잘리지 않으면서 지내며 폭력에 조금이라도 물들지 않아야 하지만, 처남 스스로 이런 대목까지 살피는 눈길이 없기 때문에 섣불리 ‘인권’을 말하는 일은 샛길로 샌다든지 잘못 받아들일 걱정이 있습니다.

 차근차근 다루어야 하며, 혼자서 불쑥 튀어나오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머리길이를 살핀다고 하는 날 갑작스레 홀로 외치는 말이 아니라, 오래도록 차근차근 생각하고 돌아보고 동무들하고 이야기를 나눈 끝에 함께 움직여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처남 스스로 학급회의 같은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감을 꺼내어 교사가 함께하는 가운데 ‘인권이란 무엇이며, 학교란 어떤 곳이고, 교사가 할 일은 무엇인가’를 따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억지로 밀어붙이는 교칙은 터무니없습니다만, 깊은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말 또한 교사한테도 학교한테도 동무들한테도 살갗 깊숙하게 파고드는 이야기나 몸짓으로 스며들기란 어렵다고 느낍니다.


.. 청소년 시절에는 입시 위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해. 왜 전국의 청소년들을 성적순으로 등수를 매기고(일제고사), 아름다운 우리 말을 쓰지 못하게 하면서(영어 몰입 교육),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할 수 있는 자유를 주지 않는(0교시 수업, 야간 자율학습) 걸까? ..  (29쪽)


 그러면서 제가 중고등학교 때 해 본 저항을 떠올립니다. 처음에는 반항이었지만, 한낱 맞대꾸하는 일(반항)만으로는 제 뜻을 교사와 학교한테 알릴 수 없을 뿐더러, 동무들한테도 제대로 나눌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가벼운 맞대꾸나 철없는 맞대꾸를 딛고 서서, 차분한 맞섬이나 올바른 거스르기를 해야 교사도 생각을 고치고 학교도 다른 매무새로 나오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1988년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아직 세상을 제대로 모르던 때였기에, 전두환이 얼마나 나쁜 놈인 줄 몰랐고, 그때까지 학교에서 한 주에 한 번씩 거두던 ‘평화의 댐 성금’이라든지 다달이 거두던 ‘방위성금’이 어디로 들어가는 돈이었는지를 비롯해 ‘독재’라는 말도 몰랐습니다. ‘쿠테타’를 알 턱이 없었을 뿐더러, 어느 교사도 우리한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새마을운동 체험 독후감’을 쓰는 숙제를 ‘더 얻어맞지 않으려고 쓸’ 뿐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국민학교 6년을 마칠 때까지 쓰던 일기는 그냥 일기가 아니라 늘 ‘새마을일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갑작스레 머리를 빡빡이로 밀어야 하는 일은 제 마음에 깊이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왜 깎아야 하는데? 안 깎으면 깡패가 되나? 안 깎으면 공부를 안 하나? 깎으면 모두 천재라도 되나?

 더구나 한 달에 한 번씩 가야 하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을 때마다 거칠게 휘젓는 가위질과 마구 문지르는 머리감기는 고달플 뿐이었고, 머리 깎는 돈이 몹시 아까웠습니다. 늘 그렇지는 않았으나 국민학생 때에는 집에서 어머니가 머리를 깎아 주시곤 했는데, 중학생이 되건 고등학생이 되건, 머리를 깎아야 한다면 집에서 스스로 깎도록 하면 될 노릇이고, 저마다 제 머리와 몸과 마음에 따라서 간수할 노릇이 아닌가 싶었기에, 이 마음을 곰곰이 다스려서 토요일 학급회의를 할 때에 늘 안건으로 올렸습니다. 받아 주든 안 받아 주든 ‘안건으로 올려야 할 까닭’을 예닐곱 가지나 열 몇 가지씩 쪽지에 적어 놓고는 읽었고, 우리 학교는 우리 인권을 너무 짓밟고 있으니 이러한 일들을 고쳐야 한다고 거듭 외쳤습니다.


.. 이제 중ㆍ고등학교에서 풍물 동아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한가하게 동아리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도 부모들이 반대해 동아리실이 폐쇄되기도 한다. 학생은 오로지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이다 … “우리 학교가 생긴 지 1백 년이래요. 선생님들도 우리 학교 출신이 많아요. 그런데 문제는 선생님들이 자신들이 배운 교육 방식 그대로 우리를 가르친다는 점이에요.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예전 방식 그대로예요. 정말 심해요. 앞뒤가 꽉 막힌 선생님들이 많아서 친구들도 무척 힘들어 해요 … 제가 학교를 떠난 이유는 학교 안에만 있으면 많은 걸 놓칠 것 같아서였어요. 생각과 상상력이 고갈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학교라는 거대한 배가 흘러가는 방향대로 같이 흐르니까요 … 학교 안에서 상상하지 못하던 아이는 밖에 나와도 상상할 수 없어요. 그러면 그 아이는 아예 상상할 수 없게 되어 불행해지는 거예요 ..  (138, 144∼145쪽)


 나중에, 중고등학생 가운데 생각있는 학생이 모여 ‘대학생처럼 하는 학생운동 모임’이 있음을 알았는데, 이 모임에 있던 이들 가운데 우리 인권을 따진 동무들은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틀림없이 그런 모임이 있다 했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책도 읽는다 했는데, 물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반장을 뽑을 때 ‘전교 몇 등에 드는 테두리’에서 후보자를 고를 수 있던 일이라든지, 교사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질이 없어져야 한다는 외침 따위에는, 반 동무들이 뜻을 같이했어도 담임 교사는 언제나 ‘오늘 이 이야기는 이 교실에서만 있었던 걸로 한다’며 끝맺고는, 교감이나 교장한테 한 번도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학급회의 주제는 대충 아무것이나 바꾸어 적고 토론한 줄거리도 대충 채워 넣었습니다. 이를테면, ‘학교를 깨끗이 하자’라는 주제로, 청소를 잘하자라느니 쓰레기를 줍자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고 적습니다. ‘공부를 잘하자’라는 주제로, 다가오는 시험에서는 더 부지런히 공부하자라느니, 예습과 복습을 잘하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느니 하면서.


.. “청소년 운동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나라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나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현재 우리 나라 청소년들은 공무원도 될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어요. 또 원하기만 하면 군대도 갈 수 있고요. 그런데 유독 참정권만 없어요. 이건 좀 말이 안 돼요.” ..  (180쪽)


 중학교 세 해에 걸쳐 끝없이 싸우고 싸웠습니다. 맞으면서도 우리가 왜 맞아야 하느냐고 따졌고, 교사들이 잘못하면 우리가 교사를 때리면 되느냐고 따졌습니다. 소지품검사를 거스르고자 했으나 언제나 거스르지 못하게 되었고, 교과서 아닌 책을 빼앗아 갈 때면, 그 책이 무슨 불량불온도서라도 되는데 빼앗느냐고 따졌습니다. 자율학습이라면 자율로 하고픈 사람만 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보충수업은 보충해야 하는 아이들만 해야 하지 않느냐며 따졌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가지 달라지지 않았고, 어떤 한 가지도 나아지는 구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딱 한 번, ‘청소년 인권선언문’을 전지에 옮겨적어 한 주 동안 학교 문간에 세워 놓도록은 했는데, 한 주가 지난 다음에는 쓰레기통에 처박혔습니다.

 교사들은 버젓이 동무들 뺨따귀를 올려붙이거나 코피가 터져도 주먹질을 그치지 않는 일을 교실에서도 해댔습니다. 이런 학교를 다녔다는 일은 ‘내 창피’라고 여겨, 중학교 졸업사진책은 안 사기로 했습니다. 졸업장도 안 받으려고 했으나 어머니 얼굴을 생각해서 받기로 했습니다. 기껏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까요. 전교에 너 혼자만 졸업사진책을 안 산다니 말이 되느냐고 담임이 몇 번이나 달래고, 집에 전화를 걸어 부모님이 도장을 찍어 주십시오 하고 했어도 끝내 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어처구니 학교를 다닌 일을 돌아보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게 비싸게 팔아치우는 졸업사진책도 마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뒤, 연합고사를 마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입니다. 중학생 때에도 1학년 때부터 아침 여덟 시 이십 분부터 0교시를 해서 밤 열 시까지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이어졌는데, 연합고사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0교시와 자율ㆍ보충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런 수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는 교과서 진도를 나가지 않았고, 수업 때에는 비디오를 틀어 주었고, 때로는 운동장에서 나가 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끼리 웃고 떠들고 찧고 노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수학 교사 한 사람이 “왜 이렇게 떠들어!” 하면서 우리보고 책상을 들고 벌을 서라 했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저도 얼결에 책상을 함께 들고 벌을 받았지만(저는 동무들하고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맨 뒷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늘), 수학 교사가 비꼬듯 되뇌는 설교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더러, 네가 그동안 우리한테 한 짓이 있는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읊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십 분쯤 팔이 덜덜 떨리도록 책상을 들고 있다가, 이 수학 교사가 우리한테 한 시간 내내 책상을 들고 있으라고 하는 소리에 불뚝 성이 나서, 교단으로 책상을 냅다 집어던졌습니다. 동무들만 떠들었어도 나 또한 한 반 동무로 벌을 받기도 해야 할 테지만, 십 분 넘게는 벌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어차피 이 학교는 한두 달 뒤면 나하고도 인연이 끝인데, 너 같은 사람한테 입발린 설교는 듣기 싫으니 입을 다물라는 뜻으로.

 수학 교사 얼굴에 대고 책상을 던졌는데, 안타깝게도 수학 교사 얼굴은 살짝 스치고 칠판에 꽝 하고 박았습니다. 갑자기 날아온 책상에 놀란 수학 교사는 더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책상을 던진 저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를 쳐다보고 무어라 한 마디를 더 했으면, 이번에는 걸상을 들고 뛰쳐나가 휘둘렀을는지 모르니까요.

 수학 교사가 아무런 대꾸도 없고 시늉도 없기에 걸상에 털썩 주저앉아,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팔짱을 끼고 앉았습니다. 동무들보고 “야, 니들도 앉아. 저런 놈이 시키는 대로 할 게 뭐야?” 하고 말했는데, 다들 끽소리 없이 책상을 들고 있기만 할 뿐입니다.


.. “후문 개방 사건 이후로 생각이 많았어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데, 어른들도 학생들도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 어른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을 아무 생각이 없는 존재로 치부해 버려요. 고등학생도 그렇게 생각하니 중학생은 더하죠.” ..  (219, 224∼226쪽)


 마침종이 울리고 모두들 책상을 내리고 팔 빠져 죽는 줄 알았다느니 투덜투덜댑니다. 수학 교사는 교무실로 돌아갑니다. 아무 일도 더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학 교사가 학생과로 부르면 한판 몸싸움이라도 벌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이 일을 쉬쉬하고 끝냈습니다. 그리고 그날 뒤로 우리들 ‘연합고사 끝나고 나서 졸업 때까지 이루어진 수업’은 더 개판이 되었고, 교사들도 더는 몽둥이질을 해대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 중학생 때 일을 돌아보면, 조금도 잘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 철이 없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철이 없었기 때문에 당돌한 짓을 저질렀고, 저 또한 폭력교사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에 찌들고 길드는 바람에 ‘폭력에 맞서는 폭력’밖에는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폭력은 폭력으로는 어떻게든 이길 수 없음을 알지 못했을 뿐더러,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이음고리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로 읽으라 내준 책 가운데 이러한 이음고리를 보여준 책은 하나도 없었고, 이무렵 국민학교 교감 자리에 오른 아버지 또한 아들인 저한테 ‘사람됨 이끄는 가르침’이라든지 ‘사람다움을 보여주는 책’을 하나도 일러 주지 못했습니다.

 동무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폭력에 맞선 폭력을 ‘짱’이라느니 ‘멋있다’라느니 하는 말로밖에 바라볼 줄 몰랐고, ‘네가 잘못했어’ 하고 말해 준 녀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폭력은 폭력으로 이기려 해서도 안 되지만, 폭력을 굳이 이겨야 한다고 해서도 안 됨을 알 길이 없기도 했습니다. 제도권 학교 틀거리와 교과서로는 우리가 ‘틀에 잘 짜여진 톱니바퀴’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잘 따르고, 먹이는 대로 잘 먹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고 ‘민주시민’이 된다고 앵무새 말을 거듭 할 뿐이었습니다.


 (3) 푸름이 목소리를 푸름이 입으로


 이야기책 《열정세대》를 꼼꼼히 읽고 난 지 여러 달 지났습니다. 푸름이들 나이와 자리를 헤아리면서, 제가 그 나이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책을 찾고 어떤 공부를 하는 가운데 무슨 꿈을 키웠는가 곱씹습니다.

 우리를 낳아 기른 어른들은 우리를 보며 ‘너희는 전쟁도 겪지 않고 평화로운 세대야’라느니 ‘너희는 보릿고개도 부대끼지 않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배부른 세대야’라느니 하는 말을 일삼았는데, 어찌 보면, 어른들은 우리 푸름이를 ‘배부른 돼지’로 기른 셈 아니었으랴 싶습니다.

 틀림없이 당신들처럼 배를 곯거나 헐벗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당신들처럼 학교도 못 가고, 학교에서도 더 끔찍한 콩나물시루에서 더 모진 몽둥이질에 시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한테도 당신들처럼 고단함이 있었고, 허구헌날 운동장 돌 줍기를 해야 했으며, 날이면 날마다 매타작에 엉덩이와 허벅지와 뺨따귀가 성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고작 한 학년 위인 선배들은 건들거리면서 종아리를 걷어차거나 침을 찍찍 뱉었고 돈을 빼앗기는 동무가 많았습니다. 후미진 골목에서는 너구리 소굴 같은 하얀 연기가 피어났으며, 자유공원과 화도진공원 같은 데는 동네 양아치들이 학교옷을 구겨입고 술판을 벌여 이 옆으로 지나가기도 무서웠습니다.


.. 청소년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권리를 인정한다면 법으로 명시된 최정임금을 준수하는 건 기본이 아닐까? 그게 진짜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 아니겠냐고 ..  (24쪽)


 《열정세대》를 읽는 동안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눈을 뜬’ 아이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이 아이들한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어른이 한둘쯤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보았자 턱없이 모자란 손길입니다만,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두는 날까지 따뜻한 손길이라곤 ‘학교 둘레’에서 한 번도 못 받았던 제 삶을 생각해 보니, 부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잘되었다며 한숨이 나오기도 하며, 이렇게 살가운 어른이 있어도 좀더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어른들 모습이 보인다는 느낌에 아쉽기도 합니다.


.. “조중동의 문제는 자신들의 시선이 옳고, 전부이고, 객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들이 일부이고 하나의 관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만 옳고 다른 신문들은 틀리다’는 식이잖아요. 그게 가장 잘못된 점이죠 … 주위 친구들을 보면 지금 당장 자기와 상관이 없어 보인다고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뭐든지 세상과 연결되지 않은 건 없잖아요. 쇠고기 수입 문제, 쌀 수입 개방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들이 커다란 고리에서 보면 결국 자신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  (160, 165쪽)


 무엇인가 허전하구나 싶어 다시금 책을 들춰봅니다. 이 아이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 어슷비슷하게 생채기를 입어 보았던 어른이었기에 기꺼이 이 아이들한테 손길을 내밀 수 있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예전에 겪은 생채기하고 아이들이 오늘 겪는 생채기하고는 같지 않습니다.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하나도 같지 않습니다. 사회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며 경제가 다릅니다. 학교 시설이 다르고 교육제도가 다르며 입시지옥이 다릅니다. 지난날 같은 군사독재자가 나라를 어두움에 내몰지 않습니다만, 군인이 아닌 사람이라 하여도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교육밭이나 문화밭에 평화와 자유와 민주를 심지 않았습니다. 너나없이 돈벌이를 외치지만, 돈벌이를 왜 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못합니다. 자립형사립고니 교육평준화니 외칠 줄은 알아도, 이런 교육이 푸름이인 오늘 아이들한테 어떤 눈높이에서 다가가는 일인지를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가슴팍에 뜨거운 심지 하나를 붙안고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손길 내민 어른들 또한 어른들대로 가슴자리에 따뜻한 촛불 하나 꺼뜨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와 촛불이 제대로 만날 수 있다면, 심지와 촛불이 오래도록 어깨동무를 하면서 만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여린 심지가 무럭무럭 자라나서 열 해나 스무 해쯤 뒤 새롭게 커 나갈 더 작은 심지한테 촛불이 되어 다가설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 하나로 빈틈없는 끝마무리를 바라서는 안 될 노릇이요, 이 책 《열정시대》에서는, 심지와 촛불이 만나는 이야기를 읽어내면 넉넉하며, 이 심지와 촛불이 다음 심지와 촛불로, 또 다음 심지와 촛불로 꾸준히 이어나가면서 우리 손으로 차츰차츰 새롭게 일구는 우리 터전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하는 이야기를 새겨낼 수 있으면 즐겁다고 느낍니다. 그래, 한 걸음씩 아닌가?

 겨우 마음을 놓으면서 책을 덮고 책꽂이에 꽂아 놓습니다. 우리 처남이 이 책을 알아보면서 스스로 집어들어 읽을 날을 기다립니다. (4342.5.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애의 경제학
가가와 도요히코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103 - 가난한 이웃끼리 사랑을 나누는 살림살이, ‘생협’
 : 가가와 도요히코, 《우애의 경제학》


- 책이름 : 우애의 경제학
- 글 : 가가와 도요히코
- 옮긴이 : 홍순명
- 펴낸곳 : 그물코 (2009.2.10.)
- 책값 : 9000원


 (1)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옆지기 어머님이 지난해께였나, 인천 관교동에 다녀오실 때 그곳에 빼곡하게 들어찬 술집으로 이루어진 거리마다 자동차가 촘촘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은 듯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노동자날부터 어린이날까지 징검다리 쉬는날이 이루어졌습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일하는 곳에서 함께 일하는 어느 아주머니가 모처럼 나들이를 해 보려고 차편을 알아보는데 닷새에 걸쳐 예약이 꽉 차 빈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더라며,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하나도 안 그런’ 듯하다고 말씀을 잇습니다.

 이런 말을 따로 듣지 않더라도 배부른 사람들은 그야말로 배부른 삶을 이어갑니다. 배부른 사람이 몇 퍼센트이고 배곯는 사람이 몇 퍼센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라살림이 기우뚱하더라도 배터지는 사람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나라살림이 넉넉하더라도 배고픈 사람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우리 세상은 고르지 못하고, 우리 스스로 이웃과 고르게 나누려는 마음이 적습니다.


.. 오늘날 가난은 물질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풍부에서 생기고 있다. 물질이나 기계의 과잉생산, 과잉노동이나 지식층의 존재에서 오는 고통이다. 우리들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부는 아주 작은 한 줌 사람들의 손에 쌓여 있고, 사회의 일반 대중은 헛된 외침을 부르짖고 있다. 물자가 넘치는 창고 밖에는 한없이 많은 실업자가 굶주리고 있다 …  ..  (14쪽)


 자전거를 타고 인천과 서울을 가끔 오가곤 하는데, 이때마다 길거리를 가득가득 누비는 자동차물결을 구경합니다. 전철을 타고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동안에도 한강을 따라 이어진 찻길에는 자동차가 빼곡합니다. 때때로 서울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볼일을 보러 움직이노라면, 버스가 많이 막혀 제대로 못 가곤 합니다.

 기름값이 하늘 모르게 치솟는다 하여도 찻길을 오가는 자동차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기름 먹는 자동차만 달리는 길’을 새로 닦는 일을 그치지 않습니다. 지구자원을 걱정하는 마음도 없고, 제 살림을 줄이면서 모자라거나 어려운 이웃을 보듬으려는 마음 또한 없습니다.

 나를 살리는 씀씀이와 이웃이 함께 사는 씀씀이를 헤아리는 눈썰미를 찾기 힘듭니다. 내 살림을 즐기거나 누리자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살피는 눈매를 찾기 어렵습니다. 내 앞날을 걱정하며 돈을 쌓아두는 손길은 있으나, 바로 오늘 걱정스러운 삶을 가까스로 잇는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손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 우리는 형제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날 도시 생활을 비참하다. 도시가 크게 될수록 범죄가 많아진다. 법률만으로 범죄자나 빈민가 소년들을 바꿀 수 없다. 그들의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일본에서 우리들이 농민조합을 만들고 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도둑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좋은 협동조합이 있으면 도둑질 하려는 욕망이 사라진다.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도 그렇다. 그들 나라에는 도둑이 적다. 그러나 미국에는 많은 경찰관, 감옥 그리고 범죄자가 있다. 좋은 국민실업보험, 노령연금, 큰 도시가 있으면 연기로 뒤덮인 문명이 있다. 그리고 좋은 협동조합운동이 있으면 그 나라에 절도가 사라진다 ..  (32쪽)


 그래도 이웃을 보듬는 손길을 아예 못 찾지 않습니다. 배부르거나 배터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만, 똑같이 배고프거나 배곯는 사람들 사이에서 손쉽게 찾아보곤 합니다. 이랜드 일반노조 사람들 목소리가 담긴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같은 책에도 나옵니다만, 예배당에 몇 억도 아닌 수십 수백 억에 이르는 돈을 척척 갖다 바칠 줄은 알아도,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안 쓰고 비정규직으로 쓰다가 내치려고 하는 기업주들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말해요 찬드라》 같은 책에도 나옵니다만, 똑같이 힘겨운 일을 하는 노동자 사이이지만,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가볍게 손찌검을 하고 자연스레 일삯을 떼먹는 일이 버젓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더 안쓰러운 일이라 한다면, 우리 스스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목아지까지 날아가 길거리로 쫓겨나기까지는 이런 얼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아니, 있는 그대로 느끼려 하지 않습니다. 정작 나 또한 길바닥에 내팽개쳐질 그때가 되어서야 ‘그렇구나. 이런 일이 거짓이 아니구나. 이렇게 길바닥으로 내몰리니까 악을 쓰며 내 권리를 찾으려 하고, 평등과 평화를 바라게 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진작 우리 스스로 정규직 자리에 있을 때부터 비정규직을 보듬으며, 어느 누구라도 똑같은 일에 똑같은 대접을 받는 평등과 평화를 이루려는 마음을 못 품습니다. ‘정규직이라는 이름이라지만 나 또한 당신처럼 힘들다’는 핑계 한 마디로 고개를 홱 돌릴 뿐입니다.


.. 중세의 길드는 착취 없는 경제활동의 조직화를 이루었지만, 그 조직은 비조합원까지 형제애를 미칠 수 없었다. 다른 한편, 현대 협동조합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그 서비스를 지역사회 전체에 확대하는 것이다. 옛 조합은 서비스를 자기 조합에 한정하였다 … 조합의 기본 신조의 하나는 정치와 종교 양쪽에서 중립하는 것이었다 … 그러나 현대의 협동조합은 단일한 조직 속에 일정한 사회집단의 모든 사람을 포함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런 단일 조직은 어느 땐가는 기능을 계속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 강제 협동조합에서는 개개인이 비밀 매매로 협동조합의 본질에 어긋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다 보면 시스템 전체가 헛돌게 되고, 계획경제는 무너지게 된다. 다른 한편, 자발적인 조직에서는 이런 유혹이 없을 것이다. 협동조합 경제의 진정한 모습은 착취 없는 계획된 경제체계라는 데 있다 … 소비자협동조합은 단지 먹을거리 잡화를 사기 위한 가게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협동조합이란 새 사회의 경제 단위이고, 조합원은 거기에 충실히 협력해야 한다. 설령 서비스가 조금 늦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조합원은 그 이익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 노동으로 생산한 상품을 소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목적의식적인 견실한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은 암초에 부딪쳐 버린다 … 조직된 조합 사회에는 형제애가 필요하다. 자본가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그들이 교정되도록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한다 ..  (94, 100, 105, 108∼109쪽)


 홍세화 님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나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같은 책에도 썼지만, 고리끼 같은 분은 일찌감치 《러시아 이야기》나 《이탈리아 이야기》 같은 책에서,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제 권리를 되찾고자 주먹 불끈 쥐며 어깨동무를 할 때에, 옆에서 이들이 손을 놓은 일 때문에 전차도 못 타고 가게에조차 못 가게 되더라도 얼굴 찡그리지 않고 똑같이 어깨동무를 해 주는 노동자 벗’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못 느끼는 일이지만, 지난날 이 나라에서 수없이 일어났던 ‘민란’이나 ‘소작쟁의’ 같은 일 또한,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어깨동무’가 아니었으랴 싶습니다. 지난날에는 낮은자리 사람들 이야기를 역사책에 적바림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까닭이라든지 이 움직임은 어떠했는가 같은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품앗이나 두레와 같은 모둠일을 헤아리면서, ‘있는 사람이 나누어 주는 고마움’보다 ‘없는 사람이 종이 한 장 맞잡는 나눔’이 훨씬 오래도록 이 땅 구석구석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벽과 낮과 저녁 사이 골목길 쓰레기를 줍는 할매와 할배 같은 손길이 바로, 없는 가운데 낮은자리에서 이웃을 생각하며 서로 돕는 매무새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 현재 노동조합은 소비자협동조합에 아무 주목도 하지 않고, 신용협동조합에 대해서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조합이 그와 같이 근시안적인 정책을 유지하는 한, 설령 정치권력에 아무리 이기더라도, 자본주의적 압제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 자본가가 파산을 하고 노동자가 실업에 빠졌을 때, 노동자들은 수요자인 자본가로부터 공장을 맡아 자기 임금을 조정하는 권리를 확보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전의 체제와 비교하여 수입은 줄었지만 실업은 벗어날 수 있었다 … 만일 사람들이 새 지하철 건설에 도시 공채 발행보다 협동조합 자본을 이용하면, 자본가들이 합법적 이익을 도시에서 빨아들이는 것을 막을 것이다 … 현재 시스템에서는 예를 들면, 철도나 항만, 시장이나 해운 등 자체 공익사업은 정치의 돈잔치가 된다. 정권과 정당이 바뀐다 해도 다음 선거 뒤에는 포기할지 모르는 계획이 세워지게 된다 ..  (116, 118, 132∼133쪽)


 새 살림집 보증금을 빌리려고 은행에 찾아가며 느꼈는데, 나라에서는 우리 식구 같은 사람한테 도움을 준다면서 ‘저소득자 전세자금 대출’이나 ‘무주택자 전세자금 대출’ 같은 제도를 마련했다고 합니다만, 정작 저소득이든 무소득이든 무주택자이든 영세민이든, 우리 같은 사람은 대출을 받을 수 없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저소득자라 하여도 ‘돈 좀 있고 정규직으로 느긋한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런 싼 대출, 이를테면 전세돈 천만 원이나 오백만 원을 빌릴 수 있었고, 다문 백만 원이나 이백만 원조차 빌려 주는 대출이란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 광고에서 수없이 떠드는 ‘대출 대부업’이 그토록 판치고 넘치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없는 사람은 은행문을 두드릴 수조차 없음을 익히 알기에 그런 대출 대부업이 넘칠 테지요.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은 그 같은 대출 대부업에 손을 뻗게 되면, 그날부터 죽는 날까지 빚잔치 하느라 살아가는 즐거움을 싹 잊고 주름살이 늘어갈 테고요.


 (2) 베푸는 삶, 나누는 삶


 자전거를 타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지 않더라도, 주안이나 부평 둘레에만 가도 우람한 예배당 건물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 중ㆍ동구 옛 도심지에도 비죽비죽 뾰족탑 높이 올린 예배당이 꽤 많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받이 꼭대기마다 천주교회나 성공회교회니 감리교회니 장로교회니 안식일교회니 또 무슨무슨 교회니 하면서 우람한 건물이 지붕 낮은 집을 내려다봅니다. 구멍가게 숫자와 맞먹는, 어쩌면 구멍가게 숫자를 훨씬 뛰어넘을 만한 예배당 숫자입니다.

 집없는 사람 많으나 예배당 어느 곳도 이들한테 사랑을 베풀지는 않습니다. 드넓는 예배당은 하느님 사랑을 노래하고 하느님 뜻을 따르겠다고 비손을 올리지만, 예배당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쳐다보지 않습니다. 길 가는 사람한테 티슈꾸러미를 안기며 교회 나오시라며 꾸벅하고 절을 할 줄은 알아도, 집집마다 어떤 근심과 걱정으로 하루하루 실낱 같은 삶을 붙잡는 줄 들여다볼 줄 모릅니다.

 예배당한테 가난한 사람들 눈높이에 서라고 하는 일은 처음부터 잘못이었을까요.


.. 일본에는 1800개 교회가 있지만 그 대부분이 도시에 있다. 시골에는 3천만 명의 사람이 있고 9천 개의 마을이 있지만, 그 사람들을 위한 전도소는 겨우 170개가 있을 뿐이다 … 예수 종교의 위대함은 그의 가르침이 우수한 데 있지 않고, 그의 의식이 하나님의 그것과 하나라는 것,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끝마친 짧은 삶에서 사람이 실현할 수 있는 모든 정신적 발달을 체현한 데 있었다. 실제로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사랑의 완전한 융합을 보인 것이다 ..  (23∼24, 38쪽)


 낡고 헐어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든지, 신자 숫자가 늘어 큰 건물을 지어야 한다든지 하는 말은 옳습니다. 거룩한 집을 새로 지어야 하기에 신자들이 돈을 바쳐야 한다는 말도 옳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집에 바쳐지면서 거룩한 집이 지어진 다음에, 이곳은 누구한테 문을 열어 놓습니까. 그 넓디넓고 따뜻하거나 시원한 거룩한 방 한 칸쯤 우리들한테 내어주면서 다리를 쉬고 몸을 뉘일 수 있게끔 열어 놓고 있습니까. 또는, 예배당에 쌓이는 돈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몇 해 앞서 몇몇 재벌회사 우두머리 되는 분들이 몇 천 억씩 턱턱 ‘사회에 바치겠다’고 내놓은 돈을 보면서, 그만한 돈을 일찌감치 나눌 수 없었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만한 돈이란 우리한테 입이 쩍 벌어지는 크기이지만, 그이들한테는 그리 큰돈도 아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이들은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고 할까요. 너무 많지만 너무 많은 줄 모르고, 탱자탱자 써도 다 쓰지 못할 그 끔찍한 돈에 갇혀 사람을 못 보고 사랑을 못 느낀다고 할까요.


.. 유감스럽게도 기독교의 정신은 사랑의 실천에 관여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귀의하는 데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 신앙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이 가능성을 믿는 그 자체가 인간의 행동을 요구한다 … 만일 하나님만 생각하고 인간을 무시한다면 종교는 무의미하게 되고 인간을 창조한 이유도 없게 된다 … 사실 사랑은 인간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활동이다 … 신앙이란 언뜻 봐서 약하게 보이는 사랑의 힘이 인간 폭력의 힘보다 위대함을 믿는 데 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하나님을 믿는 일은 같은 일, 하나의 일이 되어야 한다 … 그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 개신교는 신앙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을 제한한다. 한편 가톨릭은 사랑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제한한다 … 신앙을 단지 이론적인 것으로 알고, 삶 전체의 문제로 삼지 않는 신학자가 많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 햇볕을 받으면서 그것을 통과시키지 않는 유리창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  (40∼43, 46쪽)


 사랑을 베풀라고들 하지만, 사랑은 베푸는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랑은 나누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말장난이 아니라, 나눌 수 있으니 사랑이요 믿음이지, 베풀 수 있다면 사랑이나 믿음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나한테 넉넉히 있기에 베풀 수 있는 사랑이나 믿음이 아닙니다. 내 온몸으로 함께하고 싶기 때문에, 내 온몸으로 함께하는 삶이기에 나누게 되는 사랑이요 믿음이라고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이면서 얼마든지 나누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난하면서 조금도 안 나누는 분들이 있습니다. 때때로 조금 베푸는 척 시늉을 하지만, 그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아닌 자랑이 되기 때문에 이름을 팔고 얼굴을 팔 뿐인 겉치레로 그칩니다. 베푸는 사람은 저한테 넘치거나 많은 무엇을 덜어내지만, 나누는 사람은 ‘나누어 받을 사람한테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를 온마음으로 느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돈을 쥐어 주어야 할는지, 일을 거들어야 할는지, 밥상을 나란히 마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할는지를 그때그때 알맞게 느낍니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사랑이란 돈으로만 할 수 있지 않거든요. 이웃집 꽃그릇에 물을 주는 일도 사랑이요, 이웃집 할매 다리를 주물러 주어도 사랑이며, 이웃집 할배한테 책을 읽어 주어도 사랑입니다.


.. 오늘날 방탕에 쓰이는 막대한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에서 공인 매매춘과 사적 매매춘에 쓰이는 금액은 연간 10억 엔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쌀의 연간 소비는 15억 엔으로 그 금액의 1.5배에 지나지 않는다(1936년) … 거룩한 생활을 가르치기 위하여 종교단체가 늘어나, 미국에서만 건물 유지를 위하여 약 70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사용되고 있는가. 그 총액은 아무도 계산할 수 없다 ..  (60∼61쪽)


 하기는. 지나온 제 삶을 돌아보니, 먹고 입고 쓰고 마시고 하는 모두를 아끼거나 줄이면서 악착같이 살림을 꾸려 몇 천만 원짜리 전세집에서 산 적이 있는데, 이렇게 아끼고 전세집에서 살 때에는 이만한 ‘집크기’를 지키거나 ‘조금 더 큰 집자리’를 알아보려고 내 자리만 더 돌아보게 되지, 좀더 값싼 전세집으로 옮기면서 ‘그만큼 덜어진 돈’으로 이웃과 나누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저 한다는 생각이라면, 한 달에 십육만 원 벌면서 살던 때에는 오백 원이나 천 원을 동냥그릇에 넣으면서 나눈다고 하다가, 한 달에 백만 원 넘게 벌면서 지내니 만 원짜리나 오천 원짜리도 넣으면서 나눈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십육만 원 벌며 천 원을 내는 푼수라면, 백육십만 원을 벌 때에는 만 원을 내는 일이 ‘손 떨리는’ 일이 아닐 텐데, 손이 떨렸습니다. 몹시 우스꽝스럽지만 참말 그러했습니다.

 이제 다시 아주 작은 살림을 꾸리고, 벌이 또한 아주 낮아진 이즈음에는, 때때로 만 원이나 이만 원 거들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손 떠는’ 일이 없습니다. 척척 바칩니다. 돈을 바쳐야 할 때에는 돈을 바치고, 몸을 바쳐야 할 때에는 기꺼이 자원봉사를 합니다. 더 있다고 베풀 수 없는 사랑이며, 아무것도 없다 하여 나누지 못하는 사랑이 아님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 일반적으로 현대의 입법부는 설령 사회민주주의 성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대중이 프롤레타리아트화하는 것을 막거나 그들을 공황과 불황에서 구출하는 데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의회의 기구가 주로 입법의 여러 문제에만 관심이 있고, 산업이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인 직업의 기본적 사항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즉, 기본적으로 생활의 여러 문제를 파고들지 못한다 … 산업조직은 윤리 의식이 부족할 수 있다. 그래서 의원들이 자기중심의 이윤 추구자가 되어, 국내 문제에는 공정한 법안을 가결하지만 국제관계에는 지나치게 국가주의가 되는 수가 있다 … 소는 잡초가 40퍼센트 이상이면 먹이로 할 수 없으나, 염소는 90퍼센트 잡초 사료로도 훌륭하게 자라난다. 덴마크에서는 젖 짜는 염소의 대규모 사육장이 72군데 있지만, 일본에는 한 군데도 없다. 사람이 염소 키우는 법을 알고 젖을 식재로 받아들이면 일본의 식량 공급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농업과 낙농 제품의 새로운 계획을 무시해 왔다. 우리가 현재 군비에 쓰는 돈을 그런 사업에 투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본 군인들은 이런 경제의 문제를 잘 모른다. 그들은 칼만을 절거덕절거덕 울리고 싶어 한다 … 유일한 해결은 경제 기획에 쓰는 돈을 더 늘리고 군사비를 줄이는 것이다 … 가난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개선해 가려면, 현재 군사비로 낭비되는 몇 백만 파운드 돈을 가난한 나라의 경제 상태 개선에 쓰는 것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  (140, 147, 166∼167, 174쪽)


 새로 옮길 달삯집에 아침에 찾아가 계약서를 쓰는 자리에서, 집임자 할매는 ‘십 년 전에도 월세를 30만 원 받았고, 이제도 35만 원 받는데, 더 달라고 하기가 힘들다’고 말씀합니다. 30이든 35이든 달삯을 낼 사람한테는 만만하지 않은 돈이지만, 두 어르신은 그렇게 삯 사는 사람이 쥐어주는 돈으로 고만고만하게 살림을 꾸립니다. 집임자라고 하나 자가용도 없고, 2층과 3층에 삯을 놓고 1층에서 마흔 해 남짓 살아오면서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집을 돌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말씀을 가만히 들으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당신들이 처음 이곳에 자리잡고 지낼 때에 둘레는 죄다 풀집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벌써 마흔이 넘은 딸아이도 이 집에서 키웠고 적잖은 사람들이 당신 집을 거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아홉 달짜리 갓난쟁이가 밤에 빽빽 울어댈지 모른다 하여도 ‘사람 사는 데에 다 그러하지 않느냐’면서 ‘삯집이 비니까 허전하고 심심하다’면서 ‘손주 뻘 애들 구경하는 일이 즐겁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도장을 안 갖고 가 손으로 이름을 적으면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로서는 달삯 35만 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이랄 수 있지만, 골목집을 곱게 가꾸면서 뿌리내려 온 이분들한테 앞으로도 튼튼하고 즐겁게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하면서 내어드리는 선물로 여긴다면 아무것 아닌 돈이라고도 여길 수 있구나 싶습니다. 우리 주제에 무슨 베풂이 있겠느냐만, 그저 이만큼이라도 나누면서 우리 어버이를 떠올리고, 우리 어버이와 비슷한 또래인 할매 할배를 생각하면서 하루 한삶을 고맙게 맞아들이자고 생각합니다.


 (3) 어깨동무하며 살아갈 길을 말하는 《우애의 경제학》


 1888년에 태어나 1960년에 세상을 떠난 ‘가가와 도요히켜(賀川豊彦)’ 님이 1936년에 내놓은 책 《우애의 경제학》이 나라안에 처음으로 옮겨졌습니다. 자그마치 일흔 해나 묵은 책입니다만, 여느 ‘고전’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묵은 세월’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깊고 너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이라고 하는 책이 천 해가 훨씬 넘은 세월을 ‘묵었’으나, 참말씀을 담고 있기 때문에 두루 읽히듯, 《우애의 경제학》 또한 사람이 슬기롭게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흔 해가 넘은 책임에도 기꺼이 옮겨서 읽을 만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 내 조상은 봉건사회에서 19개 마을을 다스리고 있었으며 커다란 집과 많은 하인을 두었다. 그러나 아무 사랑도 없는 커다란 집에 사는 일은 내게는 지옥이었다. 내 가족은 부자였으나, 그들의 행동양식은 가혹한 것이었다. 나는 밤낮으로 울면서 세월을 보냈다 ..  (18쪽)


 가가와 도요히코 님은 목사이면서 사회운동을 하는 분이었고, 가난한 이웃한테 전도를 하는 가운데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했습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던 때에는 반전운동을 하면서 옥살이를 했고, ‘가난을 떨치자면 노동운동과 농민운동만으로는 안 된다’고 깨달으면서, ‘올바른 소비자-생산자 운동’을 일으키고자 ‘생활협동조합’을 만듭니다.

 이 책 《우애의 경제학》은 바로 낮은자리 사람들이 어떻게 생협(생활협동조합)을 꾸려 서로 돕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밝힙니다. 생산은 어떻게 소비는 어떻게, 그리고 유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이러한 생협은 어떤 마음과 뜻으로 해야 하는지를 살펴봅니다.

 돈이 많다고 이룰 수 없는 생협이요, 또한 돈을 벌자고 하는 생협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생산자 스스로 참다이 생산을 하면서 일하는 보람을 얻고, 소비자 스스로 올바르게 소비를 하면서 제 삶을 한껏 넉넉하게 꾸리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더 있다고 더 잘할 수 있는 생협이 아니요, 빈손이라 하여 못할 수 있는 생협이 아님을 들려줍니다.


.. 우리들은 부자만을 의지할 필요가 없다. 자선과 교육에 관심을 갖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들의 지원 기초는 더 굳건하게 된다 … 우리가 있어야 하도록 생활하면 식량 결핍의 위험은 없다. 큰 위협이 되는 것은 탐욕이다. 사람은 사치와 미식을 갈망하고 돈을 갈망한다. 그것이 투쟁과 알력을 일으킨다 ..  (160, 167쪽)


 나라안에는 ‘우찌무라 간조’라는 이름은 제법 알려지기는 했으나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이름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알의 밀》이나 《신과 걷는 하루》 같은 책, 또는 《사선을 넘어서》 같은 책이 알려지고 읽히면서 ‘하느님과 예수를 따르는 믿음을 바탕으로 저마다 제 삶터에서 바른 길을 찾아 즐겁게 어우르는 일’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가 조곤조곤 스며들기도 했습니다. 비록 1990년대 접어들어 처음으로 《우애의 경제학》이 나오기는 했습니다만(1993년에 《사선을 넘어서》가 다시 옮겨진 뒤로는 이번이 첫 책).

 그리고, 이번에 나온 《우애의 경제학》은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분이 ‘하느님 사랑’만 외친 분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을 외치는 까닭’을 보여주는 첫 책이라 손꼽을 수 있고, ‘하느님 사랑은 어떻게 외쳐야 하는가’를 들려주는 첫 책이라 할 수 있으며, ‘하느님 사랑을 참되이 이루는 길이란 무엇인가’를 밝히는 첫 책이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을 키우는 믿음이 아닌 사람을 키우는 믿음이어야 하며, 모든 독재권력을 물리치는 믿음이어야지 사람을 억누르는 믿음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보여주는 첫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신조만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신조나 교리와 함께 사회에서 속죄애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 20세기에는 물질주의적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적 공산주의는 다함께 포기해야 한다 ..  (6∼7쪽)


 지금 우리 식구는 두 군데 생협에 회원으로 들어가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있습니다. 쌀은 홍성 풀무학교생협에서 받아 먹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생협 먹을거리를 먹지 않았습니다. 옆지기가 생협 물건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깨우쳐 주어, 뒤늦게 알아차리라 함께하고 있습니다.

 으레 생협 물건은 ‘비싸다’고 여기곤 하지만, 비싼 물건이 아니라 ‘생산자한테 알맞는 대가를 치러 주는 값’이 붙은 물건입니다. 우리 스스로 생산자한테 알맞는 대가를 치르면서 ‘싼 물건을 억수로 쟁여 놓고 먹지 않게 되’니, 몸이며 마음이며 살림살이이며 한결 넉넉하고 따뜻해진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알맞는 만큼 밥을 먹으면 되며, 우리 식구들한테 알맞는 만큼 돈을 벌면 됩니다. 조금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즐기고, 어느 만큼 넘치면 넘치는 대로 나누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더 먹으려 하고 더 가지려 하고 더 쓰려 하니까 생협 물건을 쓰기 어렵다고 느낄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더 나누려 하고 더 함께하려 하며 더 흐뭇하고자 한다면, 저절로 생협 회원이 되거나 생협 물건을 가까이하리라 믿습니다.

 이는 종교가 가르치는 슬기이기도 하지만, 종교 없는 사람 스스로도 옳고 바르고 착하게 살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참된 종교란 종교라는 울타리가 없고, 참된 사람이란 종교가 있건 없건 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참된 사랑이란 가난한 자리에 나란히 서면서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합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즐거움을 언제까지나 누리고 싶기에. (4342.5.6.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 배우는 자의 권리를 찾아서
츠지모토 마사시 지음, 이기원 옮김 / 지와사랑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하나 101 - 학교를 다니며 자유와 창조를 빼앗긴다
 : 츠지모토 마사시,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 책이름 :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 글 : 츠지모토 마사시
- 옮긴이 : 이기원
- 펴낸곳 : 知와사랑 (2009.3.30.)
- 책값 : 13000원


 (1) 자전거 타는 어린이는 자전거 타는 어른이 된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 집부터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무나 형이나 누나나 동생을 본 일이 없습니다. 자전거를 탄다 하면 집 둘레 골목길이나 아파트 주차장 같은 데에서나 탈 뿐이었습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집과 학교를 자전거로 오간 동무나 선후배를 본 일은 없습니다. 딱 한 번, 새벽에 신문배달 하는 동무가 자전거 타고 신문 돌리는 모습을 본 일이 있을 뿐입니다. 1994년에 잠깐 대학교에 들어가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둘 때까지 대학생 동무나 선후배 가운데 자전거로 학교를 오가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때때로 자가용 끌고 학교 오는 사람을 본 적은 있습니다.


.. 지금의 우리는 교육이라면 언제나 학교교육을 생각한다. 학교가 널리 보급되어 있고 서양의 근대 학문을 전제로 성립한 학교가 가장 보편적인 교육 수단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일본에서도 겨우 10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근대사적 산물이다 … 모든 아이가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는 근대 공교육 제도의 사상은 오랜 역사의 눈으로 볼 때 최근에 나타난 상당히 편협한 사상이다. 그렇기에 공교육 제도를 자명하다거나 최상의 교육 형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후에도 변함없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  (8, 196쪽)


 자전거를 타고 학교나 일터를 오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학생이나 회사원이 생각이 밝거나 훌륭하다고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집과 학교 사이, 집과 일터 사이가 십 킬로미터가 되지 않는다면 걸어서도 오갈 수 있는 한편 자전거를 타고 오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이와 같은 길은 자가용이든 버스든 전철이든 타고 오가기보다는 오로지 우리 두 다리를 믿고 오간다면 한결 낫지 않겠느냐고.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학교길이나 자전거를 타고 삼십 분 남짓 들이는 회사길은 조금도 시간을 ‘길에 내버리는’ 일은 아닐 터이라고.


.. 데나라이쥬크에 다닌다는 것은 어느 데나라이 선생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데나라이쥬크라는 교육 기관에 입학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학문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어느 선생의 제자로 들어갈지는 배우는 쪽의 의지로 결정하였다. 선생의 인격, 서도의 유파, 글솜씨, 사람들의 평판 등을 여러모로 고려했을 것이다 … 가이바라 에키켄은 데나라이 선생을 올바로 선택하는 것이 학습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에키켄은 선생에 대한 신뢰감이야말로 교육과 학습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본 것이다 … 교사와 아이의 관계는 결코 제도적인 관계가 아니라 신뢰와 존경으로 맺어진 인격적이며 개인적인 관계였던 것이다 … 쥬크는 정치적ㆍ사회적으로 어떤 규제도 없이 자유로웠다 … 아침 몇 시에 등교하는지 그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각자 가정의 생활시간 안에서 아침식사를 마치는 대로 등교한다 … 언제 무엇을 배울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배우는 이의 의사에 달렸으며 존중되었다. 교사는 학습하는 주체의 주문에 맞춰 그 기대에 부응하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  (30∼31, 33, 34∼35쪽)


 국민학교 적 동무, 중고등학교 적 동무, 대학교 적 동무, 그리고 군대와 회사에서 만난 동무 가운데 새롭게 ‘자전거를 타겠다’며 나선 사람은 다섯손가락으로 꼽지 못합니다. 모두 꼽으면 두엇쯤?

 곰곰이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때때로 자전거모임에 들어가면서 자전거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기도 하지만, 이와 같이 자전거모임에라도 나가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자전거모임에 나간다 하여도 자전거 사랑을 키우는 사람보다는 쉬는날에 가끔 자전거 굴리며 놀러다니는 테두리에 머무는 사람이 거의 모두입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자전거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올바르고 살가운 말’에 익숙하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올바르고 살가운 말을 나누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곤 합니다. 어릴 적부터 바른 말은커녕 알맞거나 마땅한 말을 듣거나 읽거나 말할 겨를이 없었다면, 나이가 들어 국어학자가 되고 교수나 강사가 된다 하여도 말씀씀이며 말매무새고 아름다운 쪽으로 거듭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 데나라이쥬크에서 아이들이 이혼장 쓰기까지 배웠던 것이다. 아이니까 아직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발상은 애당초 없었다.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 배우는 것이 원칙이었다 … 개별적인 자기학습 시스템이 일반적이었던 데나라이쥬크에서는 원칙적으로 경쟁 원리는 없었다. 모두들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배우면 되었다. 어느 정도의 학습이 필요한가는 아이들의 능력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과 환경, 부모의 생각 등에 따라 각기 달랐기 때문에 학습자는 스스로가 혹은 그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배우면 되었다 ..  (45, 48쪽)


 아이들이 어릴 적에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생각해 봅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제대로 배우기 어려울 뿐더러 여러모로 힘들기 때문에 어릴 적에 가르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면, 영어만 어릴 적에 가르쳐야 좋을까요. 영어 아닌 다른 이야기는 어릴 적에 가르칠 만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아이들한테 영어 한 가지만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다른 모든 이야기는 안 가르쳐도 괜찮을까요.

 착한 마음씨랄지, 따순 마음결이랄지, 넉넉한 마음밭이랄지, 푸진 마음그릇이랄지, 깊은 마음씀씀이랄지를 어릴 적부터 온몸에 고이 배어들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꿰뚫어보도록 어릴 적부터 슬기롭게 이끌고, 사람을 사람 그대로 껴안을 수 있게끔 어릴 때부터 꾸밈없이 어루만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들 어른이 아이 앞에서 ‘교육’이라는 말을 꺼내고 싶다면 말입지요. 우리들 어른이 아이를 ‘학교’에 넣으려 한다면 말입지요. 이 나라에 ‘교육부’가 있고, 교육부장관이며 교육감이며 교장ㆍ교감ㆍ교사가 있다면 말입지요.


.. 내제자가 식사 시중을 드는 중에 스승의 마음을 읽는 것이 샤미센을 연주하는 것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물론 직접적으로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그러나 스승을 섬기면서 샤미센을 연주하는 스승의 리듬이나 숨소리, 그리고 마음의 움직임까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면 높은 경지의 예술에 오를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제자가 스승으로부터 깨달아 알아차리는 능력은 일상생활의 시중이든 예술의 수련이든 간에 차이가 없다. 예술을 수련할 때만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을 떠난 일상의 장에서도 끊임없이 스승의 숨소리까지 느끼려는 노력이야말로 내제자가 되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 스승은 실제로 해 보일 뿐이다. 그러고 난 후에는 제자가 직접 스승이 했던 것과 똑같이 해 보고, 생각하고 연구하며 노력을 거듭해 가는 수밖에 없다 … 스승이 가르쳐 주는 것을 제자가 기다렸다가 그것을 배운다는 수동적인 방법은 아니다 ..  (184∼186쪽)


 자전거 타는 어린이는 자전거 타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어린이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동무들을 사랑하며 어깨동무할 줄 아는 어린이는 세상사람과 이웃 모두를 사랑하며 어깨동무할 줄 어른으로 커 단다고 느낍니다. 어린 나날부터 거짓말이 아닌 참말로 생각을 나누고 키운 사람일 때라야, 뒷날 정치꾼이 되든 공무원이 되든 지식인이 되든 무엇이 되든, 거짓말 아닌 참말로 사랑과 믿음을 고이 베풀 줄 알게 된다고 느낍니다.


 (2) 맞고 자란 어린이는 때리는 어른이 된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교사한테 흠씬 두들겨맞았다고 떠올립니다. 더 어릴 적에도 어머니한테 얻어맞지 않았으랴 싶으나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초등학교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릅니다만, 제가 떠올리는 1980년대 인천 국민학교는 1학년이고 6학년이고 가리지 않고 머리박기나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나무막대기나 밀걸레막대가 부러지도록 두들겨팼습니다. 손바닥이나 종아리는 아주 가벼운 매질이었고,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를 놓고도 ‘평등’이라 할 분이 있을까 궁금한데, 매질 앞에서는 늘 평등이기는 했습니다. 다만, 공부 좀더 잘하는 아이와 학교 임원인 아이와 뭔가 있는 아이를 빼놓고는.


.. 근대가 되면서 아이와 부모는 학교 시간에 맞춰 자신들의 생활시간을 결정해야 했다 … 지금의 학교 수업은 일제수업 시스템으로 등교 시간이 제각각이면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다 … 일제수업은 가르치는 쪽이 정한 커리큘럼을 따른다. 그것은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반면, 아이의 학습을 아이 자신이 아니라 가르치는 쪽이 정하게 된다 ..  (33∼35쪽)


 중고등학교 때에 ‘체벌 아닌 매질’을 놓고 학급토론 비슷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 교사는 우리한테 역사를 가르치며 ‘일본사람은 조선사람을 두들겨패야 말을 잘 듣는다고 말했다’며, 이런 말이 얼마나 우리를 바보로 만들었는가 하고 이야기했습니다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우리한테 휘두르는 매질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라는 데에 한동안 몸담을 때에 선배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얼차려를 시켰고, 군대에서는 계급에 따라 아주 마땅하다는 투로 주먹다짐이 이루어졌습니다. 사회로 돌아와 회사에 다닐 때에는 얼차려나 주먹다짐은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푸대접이 있었으며, 귀에 거슬리는 욕설과 인신공격이 있었습니다.

 모습을 조금씩 달리할 뿐, 어린 나날부터 이날까지 제 둘레에는 온통 폭력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은 주먹질이 될 수 있고, 국가보안법이 될 수 있으며, 어처구니없는 집임자 폭리일 수 있으며, 난데없는 재개발과 철거일 수 있는데다가, 날벼락 같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될 수 있습니다.


..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익숙해진 습관으로 몸에 배인 것은 선이든 악이든 자각적인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 소유한 천성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에키켄은 행동은 선천적인 천성이라기보다는 습관, 즉 생후 교육에 의해 몸에 배는 것이 많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는 분명한 자각 없이 이루어지는 모방과 숙달의 과정이야말로 인간 형성의 가장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했다 … 아이에게 부모는 최초이자 최대의 환경이지만,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이 인적 환경이 아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본다면 부모가 자각하여 스스로의 행동양식을 규제하면서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150, 156쪽)


 크고작은 폭력에 길들고,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폭력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들은 우리를 억누르는 힘에 눌리기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보다 여린 이웃을 억누릅니다. 우리보다 고단한 이웃을 들볶습니다. 우리보다 낮아 보이는 이웃을 등처먹거나 울궈먹습니다. 우리보다 못 배운 이웃을 깔보고 업신여깁니다.

 오래도록 폭력에 길들다 보니, 주먹질 폭력과 입질 폭력과 따돌림질 폭력 따위가 수없이 판치고, 이러한 폭력을 우리 아이들한테까지 차곡차곡 물려줍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아이를 낳아 기를 때 ‘엄마 말 안 듣는다’느니 ‘아빠 말 안 듣는다’느니 하면서 아이 스스로 싱그러이 피어나는 꽃망울을 밟거나 찢거나 꺾고야 맙니다.

 왜 아이들은 ‘엄마 아빠 말을 고스란히 들어야’ 할까요. 왜 아이들은 엄마 말이든 아빠 말이든 ‘옳은 말이면 옳게 받아들이고 그른 말이면 그릇되었기에 바로잡거나 고쳐서 곰삭일’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가요. 왜 아이들은 어느 누구 말이라 하든 ‘아름다운 말과 살가운 말을 찾아나서거나 알아볼’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가요.


.. 커다란 책가방과 다 들어가지 못한 교재를 몇 개의 손가방에 나누어 담고는 무거워 보이는 가방들을 밑으로 축 늘어뜨린 채 등하교하는 조그마한 일본의 초등학생들을 보라 ..  (201쪽)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 몰아놓고 가르치자니 교과서를 쓰게 됩니다.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쓰자니 시험점수에 목매달게 됩니다. 시험점수에 목매달게 하자니 교칙을 세우고 교복을 입히고 도덕을 가르치면서 국민의례를 시킵니다. 이러는 동안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한 가지 틀에 얽매이게 됩니다. 홀가분한 삶터를 못 보게 됩니다. 정답이라는 올가미에 갇힙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과 슬기를 모두어 어깨동무하는 물줄기를 못 보고야 맙니다.

 그런데 그토록 아이들을 다잡아 놓는 교과서는 고등학교를 마치기만 하면 쓰레기로 내버려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하느님처럼 떠받들리던 교과서이건만, 입시를 치르고 나면 헌신짝이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옳고 바르며 알맞다는 이야기를 담아 아이들 누구한테나 가르쳐야 하는 책이 교과서라면, 예수님 믿는 사람이 성경 하나를 온삶 바쳐 거듭 읽듯, 교과서 또한 내 아이한테까지 물려주면서 가르칠 만한 앎이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 결국 대학 관계자는 물론 국민 대다수는 내심 지금의 대학 입시와 그것을 위한 공부를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닐까? 현행 입시는 학습 능력이 높은 학생을 선택하는 시스템으로서 매우 유효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 수험 세계는 경쟁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거기에서 습득하려는 실력이란 수험 실력 외에는 없다. 그 실력의 배후에 사상적인 의미 부여 같은 것은 없다. 일류 대학에 합격할 정도의 공리적인 목표가 설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일본의 학교 교사는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아이들 측에서 보면 교과서를 배우는 일이 목적이므로 교사는 그를 위한 가이드에 지나지 않는다 … 사실 교사도 ‘교과서를 가르치는’ 편이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 그러나 결국 그것이 교사를 나타하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  (205, 222, 229∼232쪽)


 맞고 자란 어린이는 때리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옳게 배우며 자란 어린이는 옳게 가르치며 나누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이 배우며 큰 어린이는 아름다움에 사랑과 믿음을 담뿍 싣는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제길과 제자리를 어릴 때부터 스스로 찾도록 배운 어린이는, 어른이 된 다음 맑은 윗물이 되어 아랫물 또한 맑게 흐르도록 뒷배하는 착한 이가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건 안 보내건, 우리들 어른 된 사람한테 주어진 몫이라면, 우리 어른 스스로 올바른 어른으로 살아가는 가운데 아이들 스스로 올바른 어린이로 살아가도록 손을 맞잡는 데에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어른을 보고 배우는 어린이일 테니까요. 어른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흉내내는 어린이요, 어른들이 나누는 사랑을 고스란히 따르는 어린이이며, 어른들이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사랑하면 아이들 또한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크고자 하는 어린이일 테니까요.


 (3)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라는 책


 일본에서 나올 때 붙은 책이름은 “배우는 자의 권리를 찾아서”였다고 하는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라는 책을 읽습니다. 우리가 굳이 일본사람이 예부터 공부해 온 길을 알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만, 우리 스스로 우리 길을 찾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는 “배우는 사람이 누릴 권리를 찾는” 일은 틀림없이 값이 있다고 느끼면서 집어듭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교육이 뒤틀렸다고 느낍니다만, 일본 또한 일본 스스로 일본 교육이 뒤틀렸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 책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는 우리한테 우리 앞길을 살며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습니다.


.. 서점의 앞쪽에는 언제나 수험 참고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수험 참고서는 전부 자습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시험 공부에서 강조되는 것은 오직 텍스트를 반복하는 학습이다 ..  (203쪽)


 저는 일본에 꼭 한 번 가 보았습니다. 저한테 돈이 있다면 몇 번 더 가 보고 싶은 일본인데, 둘레에서 일본을 다녀온 분들 말씀을 듣거나 제가 보았던 일본을 떠올리면, ‘일본 책방에서 수험 참고서는 그리 안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를 쓴 분은 “서점의 앞쪽에는 언제나 수험 참고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기는, 이렇게 말할 까닭이 있습니다. 일본 교과서를 보신 분이 있는가 궁금한데, 일본은 교과서를 아주 빼어나게 잘 만듭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가장 재미없고 따분하게 만든 책이 일본 교과서’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 교과서는 어떠하느냐? 일본 교과서 발가락 때만큼도 좇지 못합니다. 일본사람이 한국이라는 나라 교과서를 들여다보아야 ‘일본 교과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터이나, 일본사람들은 제 나라 일본이라는 ‘앞선 책나라’를 헤아린다면 ‘교과서를 너무 못 만든다’고 늘 뉘우치면서 고쳐 나가려 합니다. 이와 달리 우리 나라 한국에서는 ‘교과서를 제대로 만드는지 안 만드는지’조차 헤아리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가 또한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만, 엉터리 줄거리를 담는다 하여도 한결 슬기롭고 알차고 싱그럽게 엮어내는 손길마저 없어요.


.. 모두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일본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신체상의 구제를 사소한 부분까지 정해 놓고, 교칙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복을 정하고, 일정한 두발 형태를 강요하고, 혹은 여학생의 치마 길이나 주름의 숫자, 남학생의 바지 형태나 길이, 신발이나 양말의 형태, 색깔 등을 규제하고 있다 … 의복이나 머리 모양 등은 본래 아주 기본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에 대한 통제가 교칙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개성 존중 교육을 추구하면서 이와 정반대로, 학교생활에 대한 통제와 관리가 용인되고, 그것을 모순이라고 느끼지 않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 단체수업의 방법으로 아이들 수십 명의 개성을 어떻게 육성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그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개인의 의사에 따라 서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도로 규정된 우연적인 관계이다 ..  (242∼243, 256쪽)


 아이들한테 사입혀야 하는 학교옷이 수십만 원이라면서, 학부모 된 분들은 한결같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러면,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안 입히면 됩니다. 학교옷을 왜 입혀야 하느냐고 따져야 하며, 꼭 학교옷을 입혀야 하면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옷을 나눠 주고 입도록 하라고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어버이도 아이들한테서 학교옷을 벗기지 않습니다. 먹혀들지 않을 소리로 생각하기도 할 테지만, 미운털 박히기 싫을 뿐더러 아이들 스스로 ‘예쁘고 멋지고 다리 길어 보이는 이름난 회사’ 학교옷을 입고 싶어합니다.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입히고, 머리길이를 따지며, 신발이 어쩌고저쩌고 배지와 이름표가 이러쿵저러쿵하는 나라에서는 자유란 없습니다. 한국 아이들은 일찌감치 그 푸른 나날을 학교에서 지내는 사이 ‘빼앗기는 자유’를 느끼지 못합니다. 스스로 자유뿐 아니라 민주와 평화와 평등과 창조와 통일을 빼앗기고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더욱이, 아이 부모 된 분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이토록 한 나라 사람들 모두를 바보로 삼으려고 하는 ‘겉보기 자유민주주의’ 나라는 일본하고 한국 두 나라만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아이들 옷을 ‘틀에 가두어’ 놓겠습니까. 세계 어느 겨레에서 아이들 몸을 ‘틀에 매어’ 놓겠습니까.


.. 물론 번교에 따라 작은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학생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영민함과 둔함의 차가 있었고 진도도 다르고, 사용하는 텍스트나 학습 부분도 다르기 때문에 일제수업은 불가능했으며 단시간의 개별 지도와 혼자 행하는 비교적 장시간의 자습 활동이 기본이었다. 이 점은 어떠한 번교라도 마찬가지였다. 근대 학교처럼 연령, 학년에 따라 정해진 일정한 커리큘럼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람마다 이해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각자의 속도로 학습하며, 차이에 따라 개별의 학습과 지도가 부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75쪽)


 앞으로 누군가 쓸는지 모르는데, “한국사람은 어떻게 배웠을까?” 같은 책이 나올 날을 기다려 봅니다. 그리고,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에 걸쳐, 우리들 한국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도록 길들여지는가를 살피는 가운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 줏대를 찾거나 키우면서 바르고 곱고 맑은 사람이 되자면 어찌해야 하는가를 다룰 만한 우리 이야기책을 기다려 봅니다. ‘의무 교육’이 아닌 ‘자유 교육’으로 우리한테 ‘의무’가 아닌 ‘자유’를 심는 배움길에서 우리 손으로 새 세상을 힘차게 가꾸고 일으킬 빛줄기가 우리들 누구한테나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4342.5.2.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102 - 삶이 되지 못한 사진이라면 돈벌이나 겉멋일 뿐
 : 김영갑,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 책이름 :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 글 : 김영갑
- 펴낸곳 : 하날오름 (1996.9.10.)
- 1996년에 처음 나올 때에는 김영갑 님 글만 모아서 묶었습니다. 2004년에 ‘휴먼&북스’에서 사진을 넣어 새판으로 다시 펴냈고, 2007년에는 ‘김영갑 2주기 기림’판으로 새로 펴냅니다. 저는 이 가운데 1996년에 처음 나온 판으로 만나서 읽었습니다.



 (1) 만화에서 느끼는 사진


 준코 카루베라는 일본 만화쟁이가 그린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열 권이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이듬해 2001년에 뒷이야기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 열두 권이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가 나올 무렵에는 얼른 알아채고 열 권을 모두 장만해서 기쁘게 읽었는데, 뒷이야기까지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그만 놓치고 말았고,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는 금세 판이 끊어졌습니다.

 이리하여, 헌책방에 이 만화가 들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린 끝에 지난달 가까스로 열두 권을 장만했습니다. 마침 골목마실을 하며 지나는 길에 본 ‘문닫은 대여점’에서 값싸게 내놓은 책꾸러미 가운데 이 녀석이 있었어요. 이 만화책을 갖추어 놓은 대여점이 있었구나 싶어 놀라면서 즐겁게 장만했는데, 열두 권에 이르는 만화책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를 읽는 동안, ‘이 만화는 대여점에서 거의 안 읽힌 듯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어느 책이든 사람들이 찾아서 읽으면 읽은 자국이 남습니다만, 이 만화책 열두 권은 아주 깨끗했습니다. 2001년에 나온 만화임에도 먼지가 그리 내려앉지 않았고요.

 참으로 오래도록 기다린 끝에 만난 만큼 한 번 보고 그칠 수 없어 거듭 펼치고 다시 넘기고 합니다. 7권을 보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가 초등학생 딸아이를 앞에 놓고 “찌주루(딸아이 이름), 그 착한 마음은 어디에서 가져온 거니? 엄마는 뽐내고 있었단다. 찌주루의 모든 걸 엄마가 낳았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찌주루가 가지고 와 준 거야.(25∼26쪽)” 하고 생각합니다. 꾀병을 부리던 딸아이가 참말로 몸이 아프지만 어머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말 않고 꾹 참는데, 아이 어머니는 “숨겨도 소용없어. 엄마는 다 알고 있는걸. 찌주루의 일은 전부. 왜냐면 찌주루를 너무너무 사랑하니까.(8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 “며칠 동안 머물며 찍은 사진하고, 몇 년 기다려 찍은 사진하고는 다르겠죠. 취미로 사진하는 게 아니거든요.” … 한 장이라도 감동적인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는 집념으로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동안, 정작 부모님의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다 … 많은 이들을 사진으로 감동시킬 수 있으면 글로도 감동시킬 수 있다 ..  (13, 127, 204쪽)


 더없이 착하디착한 만화인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와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에는 마음씨 나쁜 사람은 나오지 않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은 엇비슷합니다. 어쩌면 모두 똑같다 하여도 틀리지 않습니다. 때때로 심통을 부린다 할지라도 금세 풀어지거나 누그러뜨립니다. 아프거나 괴롭게 하는 이야기란 나오지 않습니다. 슬프거나 힘겹게 하는 이야기 또한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만화책을 넘기는 내내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가슴속 깊은 자리까지 스며들면서 콕콕 찌르는 뭉클함이 있어, 눈물 없이 만화를 볼 수 없습니다.

 다 읽고 덮으면서도 뭉클뭉클함이 고이 남아서 책등을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이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사진기를 들고 골목마실을 나가면, 눈이 한결 맑아지고 손길은 더욱 부드러워집니다. 착한 만화를 보면서 제 마음이 착해지는 가운데 제가 담아내려는 사진 또한 착해진다고 할까요.

 저 스스로 좋아하는 이야기는 착한 이야기이고, 이처럼 착한 사람들 나오는 만화에 더욱 눈길이 쏠리는 한편, 저 스스로 즐기면서 이웃하고 나누고픈 사진이란 다름아닌 착한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골목동네와 헌책방동네라고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착한 이야기와 착한 그림과 착한 사진처럼, 저 스스로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제 삶터를 착한 마을로 일구는 일에 손을 거들고 싶다고 할까요.


..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의리나 배신, 명예나 권력, 돈, 이 모두는 나와 무관하다. 나의 삶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에서 제외됐다. 설명될 수도 없는 사생활,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삶, 움막에 틀어박혀 허구한 날 알을 품은 채 하품하는 일상들. 일 년 내내 혼자 지내며 흘린 눈물도, 웃음도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오랜 세월 열과 성으로 품었던 알에서 탄생된 생명인데도 나의 사진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람들은 극적인 드라마를 원한다. 눈물겹고 재미있는 감동의 드라마만을 원한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는 행복한 드라마를 원한다. 성공했다 실패하고,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나 성공하는 영광의 드라마를 원한다. 나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내가 껴안은 드라마는 처음부터 감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  (45쪽)


 거의 모든 사진기자와 사진작가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찍는 사진을 보면 어둡기 짝이 없습니다. 어수선하기 그지없습니다. 때로는 책을 몹시 거룩하게 드높이는 사진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아주 천덕꾸러기처럼 다루고, 옛추억에 잠기게끔 하려는 모양새로 다룹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담아내지 못합니다. 지금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오늘과 내일과 어제가 어떻게 달랐으며, 책이 살아온 오늘과 어제에다가 내일은 또 어떻게 다를는지를 헤아리고자 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사진기자와 사진작가가 골목마실을 하면서 찍는 사진은 헌책방을 찍는 사진하고 어슷비슷합니다. 꼭 닮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모두들 제 깜냥껏 바라보는 셈입니다. 제 깜냥껏 좋은 책을 알아보면서 고를 뿐입니다. 눈이 더 밝다면 더 많은 책이 좋음을 알아차리고 더 많이 읽고 장만하는 헌책방마실이 될 테지요. 눈과 생각이 한결 밝다면 골목마실을 하면서 골목사람 삶자락을 더욱 깊숙이 껴안으면서 녹아드는 가운데 사진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담아낼 테지요.

 무엇보다도, 헌책방이나 골목길에서 따로 사진 한 장 찍지 않더라도, 두 곳에서 우리한테 나누어 주려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리라 봅니다. 사진이란 찍어도 좋지만 안 찍어도 좋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부지런히 단추질을 해도 즐겁지만, 사진기를 들고 있으면서도 어깨에만 얌전히 걸치고 있어도 즐겁습니다. 사진에 우리 삶을 담는다 하면, 필름에 앉혀 종이로 찍어내는 사진이 되지 않고, 눈을 거쳐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언제나 ‘그림을 그리듯 떠올리는 우리 발자취’로 간직하고 있어도 사진이 됩니다.


.. 자연을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 일기예보는 참고나 할 뿐 그들 방식대로 하늘을 보고, 바람 부는 방향과 강약 그리고 느낌을, 바다의 물결이나 색감을 보고 내일을 준비한다 …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은 자연의 변화를 읽지 않고는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가 없다. 대가가 사용했던 명품의 카메라를 가졌다고 해도, 사진가가 원하는 상황을 맞이하지 못하면 좋은 사진을 기대할 수 없다 …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친 사진가들과는 시대도, 환경도, 가치관도 다른데 그들을 흉내내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부끄럽고 고통스러웠다 … 누구도 나에게 사진에 대해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  (169∼170, 190∼191쪽)


 그러고 보면, 김수정 님 만화책을 해마다 한 번씩 통째로 되읽는 데에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김수정 님 만화는 잡지에 이어실리는 대로 다 보았고, 학교(초중고등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낱권책을 장만해 놓고 거듭 보는데, 그무렵 일은 오늘날까지도 환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수정 님 만화에는 그무렵 1980년대 사람들 삶자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단출한 줄이 이어지며 이루어진 만화이지만, 구석구석 꼼꼼하게 우리 동네 골목이 살아숨쉬고 이웃 동네 골목이 펄떡펄떡 뛰고 있습니다.


.. 어둠에 묻힌 정원은 어두운 대로 좋고, 달빛에 드러나는 정원은 그대로 좋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눈이나 안개에 묻히면 묻히는 대로, 나를 매혹시킨다 … 사진가들 중에 사진의 우연성에 필요 이상 과대포장을 하려 한다. 사진의 미학 중에서 우연성이 사진의 전부인 양 착각한다 … 마라도는 일 년에 십만 명 정도 관광객이 다녀간다. 그 중에 사진가들도 많다. 이 사람 저 사람 카메라 들이대다 보니 주민들은 카메라만 보면 고개를 돌린다 … 현실을 상대하여 작업하지만 사진가의 마음에 여과된 것이다. 사진가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진은 사뭇 다르다. 사진 속의 현실은 사진가의 마음에서 여과된 현실이지, 있는 그대로 복사된 현실이 아니기에 사진이 예술일 수가 있다 … 감동을 주는 사진은 우연히 만나 촬영할 수도 있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는 불가능하다 … 잔재주를 피워 쉽게 작업을 마무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사진을 기대할 수는 없다 ..  (57, 180, 182, 198쪽)


 오늘날 만화를 보면 ‘배경 잘 그려 주는 도움 만화가’가 꽤 많아, 거의 사진을 옮겨놓았다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빈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전 만화처럼 싱그럽지 않아요. 잘 그리기는 솜씨있게 잘 그렸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예전 만화는 배경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만화를 보았다고 느꼈으며, 다시 보고 또 보면 지난번에는 못 본 모습이 곳곳에 나타나는데, 요새 만화는 배경까지 들여다보고픈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냥 사진 찾아보면 되지?’나 ‘내가 몸소 거기에 가면 되지?’ 같은 마음만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채우려 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할까요. 만화를 즐기는 사람이 ‘만화를 왜 즐기는가’를 헤아리지 않고 기술자가 되어 버렸다고 할까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 나라 사진작가 숫자가 대단히 늘어나기는 했어도 근심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모두들 사진‘작가’라기보다는 사진‘기술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찍는 솜씨’는 빼어난데, ‘찍는 마음’은 하나도 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착한’ 만화를 좀더 좋아해서 사진도 착한 사진을 더 좋아할는지 모릅니다만, 착하지 않은 만화라 하여도 ‘울림’이 있으면 반갑습니다. ‘찡함’이 있고 ‘움직임’이 있으면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아무 맛이 없다면, 멋만 가득하고 예쁘게 보이기만 한다면 달갑지 않아요. 이런 만화는 만화가 아니요, 이런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만화가 되든 사진이 되든,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 우리 눈길을 저절로 그곳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2) 책에서 느끼는 사진


 아침에 골목마실을 다녀왔습니다. 요즈음은 일산과 인천을 오가느라 몸이 고단하여 골목마실을 제대로 못 다니는데, 도서관 문을 열어 놓는 금토일 사흘에 걸쳐 아침저녁으로 틈을 쪼개어 사진마실을 나갑니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용현동이나 학익동으로 나가 보려고 했는데, 그만 도원동과 선화동에서 붙잡힙니다. 도원동과 선화동 골목길에 피어나는 꽃과 나무가 몹시 싱그럽고 좋아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맙니다.

 다른 때에도 이와 같아서 아예 눈을 감듯 자전거로 씽하고 달려 다른 동네로 가야 비로소 그곳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어제도 찍고 그제도 찍었어도 그예 지나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어제 본 모습과 그제 본 모습은 오늘 본 모습하고 같지 않기 때문이에요. 어제는 어제대로 좋고 그제는 그제대로 좋으며 오늘은 오늘대로 좋기 때문이에요.


.. 십 년을 줄곧 섬에서 생활했는데도 지금도 나는 뭍의 것들 속에 포함된다. 섬 것들 속에 포함되려면 삼대가 지난 뒤에야 자연스레 섬의 것들 속에 포함될 수 있단다. 나도 이제는 섬사람이라고 고개를 세우고 되물으면 섬의 토박이들은 고개를 흔들며 웃는다 …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변방이라 부르던 시절 토박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피눈물을 흘렸다. 인내와 희생만을 요구하던 시절을 살다 간 토박이들의 땀과 눈물을 채우고 있다 … 내가 작업하고 싶은 사진만을 작업하며 생활하는 그 자체로 만족한다. 사진작가로, 예술가로 인정받아야 할 이유도, 까닭도 없어졌다 ..  (166∼167쪽)


 요 몇 달에 걸쳐 《빅토르 하라》를 읽는데 아직 끝마치지 못합니다. 《말괄량이 삐삐》나 《국가는 폭력이다》나 《식민주의와 언어》나 《지로 이야기》 같은 책은 진작에 다 읽었으나 느낌글로 갈무리하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다 읽은 책이 책상맡에 한아름 쌓이고 두 아름 쌓입니다. 그렇게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흐르기도 하는데,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얼른 이 책을 마치고(졸업) 다른 책으로 뻗어 가야지’ 하는 생각을 잇고 잇다가 ‘두 번 읽고 세 번 읽게’ 되는 이 책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늘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지난번에 읽으며 놓친 대목이 이번에 읽을 때 눈에 뜨입니다. 지난번에 읽으며 잡아챈 대목이지만 이번에 읽을 때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러는 동안 ‘어, 이 책 느낌글을 일찍 썼다면 너무 아쉬웠겠는걸’하고 생각합니다. ‘이 책 느낌글을 마무리짓지 못한 까닭은 따로 있었구나’ 하고 느끼고, ‘더디 읽어야 할 책은 더디 읽어야’ 하고 ‘더디 새겨야 할 책은 더디 새겨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적어도 열 해쯤은 해야’ 무언가를 한다는 시늉이라도 낸다고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보통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기에 가끔은 방송사나 잡지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어떤 기자는 그저 흥미 위주로 묻기도 하고 어떤 기자는 꽤 심각한 질문만을 골라 던진다 … 대부분 기자들이 나 같은 풋내기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 얻는 것은 없겠지만 성의없는 태도를 보이면 나도 하품이 난다. 아무리 풋내기 사진가라지만, 상대가 무성의하게 질문하면 나 또한 무성의한 대답을 할 뿐이다. 그러나 예의를 갖추고 질문하면 나도 진지하게 임한다. 나에게도 나만의 가슴속에 묻어 둔 눈물, 한숨, 기쁨이 있다.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이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공염불이다 … 내가 배고프면 남도 배고프고, 내가 슬프면 남도 슬픈 줄 안다. 모든 것을 내 자신의 눈높이로 이해하고 해석하려 한다. 늘 떠돌아다녀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가끔은 곤혹스럽고, 긴장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얼굴 마주하고 나의 깊은 곳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게끔 인간적으로 나를 대한다. 진실에는 진실이 제격이다 … 여유있는 사람들의 서재에서 먼지가 쌓여 가는 값비싼 작품집이기보다는 손과 손에서 옮겨다니며 구겨지고 찢어지는 엽서와 카드이길 원했습니다 … 구한말 이 땅의 중요한 사건이나 사회의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것은 외국의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미 사진이 이 땅에 들어왔지만,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사진집으로 묶여 나온 것들이 대부분 외국인이 찍은 사진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정서와 역사를 모르는 이들이 작업했기에 호기심에 의한 기념사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정서와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을 하려면 직장을 가지게 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 언론이 보여주는 세상만을 보고 세상을 한탄할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보여주는 세상에 의지해서 세상을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찾아가 보고 난 후에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밝은 세상, 착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만나 내 자신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깨닫고 나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그들을 닮아 보고, 흉내라도 내 보고 싶었습니다 ..  (81∼90쪽)


 오늘날 쏟아지는 책들을 살피면 글에 곁들이는 사진이 퍽 많습니다. 사진 없이 글로 이루어진 책은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사진을 보면서 ‘굳이 넣어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사진을 넣는다고 책을 더 잘 읽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글은 글이고 그림은 그림이며 사진은 사진이거든요.

 글에 보태려고 그림이나 사진을 넣을 수 없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더 잘 알도록 한다며 글을 붙일 수 없습니다. 글은 글대로 홀로서야 하고, 그림과 사진은 그림과 사진대로 홀로서야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뭘 잘 알거나 깨달아서 이런 이야기를 끄적이지는 않아요. 그저 스무 해 가까운 세월을 책과 함께 뒹굴다 보니 어느 결엔가 저도 모르게 툭툭 내뱉게 되는 말마디였을 뿐입니다. 사람들하고 술잔을 부딪히며 책이야기를 하다가 난데없이 이런저런 말마디가 와르르 쏟아지곤 합니다. 집으로 비틀비틀 해롱해롱 돌아와 자빠진 이튿날, ‘어제 내가 뭔 소리를 지껄였지?’ 하며 머리가 아플 때가 있으나, ‘어제 내가 했던 이런 말은 섣부르거나 부끄럽지 않았나?’ 하며 머리가 맑아지는 때가 있습니다.

 삶이 되면 알게 된다고 할까요. 삶이 되니 글을 쓸 수 있고, 삶이 되니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삶이 되니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할까요. 사진하고 함께 산 지는 아직 스무 해가 못 되었으나 책하고 함께 산 지는 스무 해쯤 되다 보니 ‘책이란 이렇구나’ 하고 혼자 싱긋 웃을 때가 잦습니다. 이런 느낌을 곧바로 사진으로 이어 ‘책이 이러하면 사진도 이러할까?’ 하고 생각하는데, 책과 그림과 사진이, 그러니까 글과 그림과 사진이 서로 다르지 않구나 싶어요. 모두 한 흐름이요 한 줄기요 한 뿌리이구나 싶어요.


.. “곱쌍헌게 여편네 같쑤다.” 인물이 훤한 양반이 머리는 왜 묶느냐고 걱정을 한다. 머리 묶은 덕에 노인들과 어렵지 않게 말문이 열린다. 아이들도 노인들도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남자답고 사내라고들 생각한다. 남자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우려한다. 만나는 이들마다 한 마디씩 한다 … 낚시꾼들이 포인트를 찾아 무인도에서 무인도로 옮겨 다니듯 사진가들도 분주하게 촬영지를 찾아나선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곳을 찾아 해외로 떠나려 한다 ..  (158, 182쪽)


 글쓰기를 가르치자면 글로 가르쳐야 하고, 그림을 가르치자면 그림으로 가르쳐야 하며, 사진을 가르치자면 사진으로 가르쳐야 한다고들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글로도 글을 가르치지만 그림으로도 글을 가르친다고. 사진으로도 글을 가르치고, 글로도 사진을 가르친다고. 왜냐하면, 글이 삶이 되면 무엇으로든 글을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림이 삶이 되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그림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게 되니까요. 사진이 삶이 되면 누구하고 있더라도 모두 사진으로 바라보고 사진으로 삭이게 되니까요.

 어릴 적에는, 그러니까 제가 철부지일 적에는 하나도 몰랐습니다. 요즈음도 아직은 철부지가 아닌가 싶은데, 예전만큼은 철부지가 아닌지 모릅니다만, 아무튼 예전이나 이제나 똑같은 철부지라 하여도 요사이는 새로 느끼는 이야기가 많아요. 철부지인 주제에 깨닫는 셈입니다만, ‘온힘 쏟아 책 하나 펴낸 사람이 모두 잊고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글은 한 줄도 안 쓰면서 새로 배우는 일’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저이들이 뭣하러 저렇게들 하나 알쏭달쏭하기도 했고, 배불러 저러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저이들이 ‘지난날 스스로 오른 제자리에 머물지 않으려’고 그렇게들 애쓰는 몸짓이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모를 일이지요. 철부지 머리로 헤아릴 뿐이니까요.


.. 섬 구석구석 아스팔트 길이 트이고 시멘트 건물이 늘어나면서 토박이들은 신명을 잃었다. 할망당이 없어진 자리에 대신 교회가 들어섰다. 하늘길이 열린 후 사람들이 몰려오자 인정도 사라졌다 … 마라도를 이해하는 데 태풍을 경험해 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마라도 사람들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바람을 경험해 보지 않고는 마라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 아주 작은 섬이지만 자연의 교향악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아주 감동적이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라도에서는 한 철을 혼자 살아도 그리운 사람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온종일 바다로 하늘로 공허한 마음을 채운다 … (사람들은)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건물 짓고 기념비를 세운다. 마라도가 오염돼 환경이 파괴되면 왔던 손님도 되돌아간다. 볼 것이 없고 느낄 것이 없으면 마라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사람이 마라도를 잊어버리는 날 민박집, 교회, 절이 폐가가 되어 주춧돌만 덩그러니 남을 것이다. 시절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사람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건물도 도시도 오래되면 늙는다. 늙으면 죽는다. 늙어도 죽지 않는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매혹시키는 것이 마라도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부각시키는 개발이 아니면 그 개발은 실패작이다.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그 무엇을 보존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외면한다 ..  (21, 185∼186, 200쪽)


 예나 이제나 아직 철부지이며, 이런 철부지이니 철부지로서 책을 펼치고 그림을 즐기고 사진을 맛봅니다. 철부지이니 아쉽거나 모자라지만,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받아들이고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맞아들입니다. 섣불리 더 뻗댈 마음이 없으며, 괜시리 숨기거나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늘 제 마음그릇 그대로 드러내면서 온몸으로 껴안고 싶습니다.
 





 (3) 김영갑 님 사진삶을 담은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사진으로 감동시킬 수 있으면 글로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밝히는 김영갑 님 사진삶이 담긴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를 읽습니다. 204쪽짜리 자그마한 책 마지막을 채우는 말마디입니다. 이 말마디 앞에는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었는데 글로 표현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한 줄로 밝힐 수 없다면 백 줄로도 살을 붙일 수 없고, 백 줄을 채우지 못한다면 한 줄로 간추릴 수 없다는 이야기와 매한가지일 테지요.


.. 아버지에 대한 미움, 증오가 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나는 긴장한다. 내 자신을 반성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내가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만큼 내가 내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했다 … 사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내 자신을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보는 사람을 위한 사진이다 ..  (140, 173쪽)


 김영갑 님은 오로지 제주섬 중간산을 찍었습니다. 루게릭병이 찾아들어 더는 사진기를 손으로 못 찍고 마음으로만 찍게 된 뒤부터는 두모악갤러리를 만들었고, 이곳 두모악갤러리는 당신 뜻을 잇는 분이 야무지게 꾸리고 있습니다. 제주섬마실을 하는 분들은 우도나 마라도에 들르듯 으레 이곳에 들르고, 김영갑 님이 온삶을 바친 사진을 고개를 끄덕이며, 또는 눈물을 흘리며 바라봅니다. 또는, ‘저게 뭐야? 나도 찍겠는걸?’ 하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쉰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마흔을 조금 넘기고부터 병이 찾아들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앞서 여러 매체와 만나서 남긴 이야기를 살피니, ‘쉰조차 못 되어 이슬이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쉰 살 가까이 살아남은 나는 얼마나 고마운’ 노릇이냐고 밝혔더군요.

 그래, 쉰은커녕 마흔이나 서른에, 또는 스물이나 열에 떠난 넋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스스로 못 느낄 뿐이지만, 우리는 이 젊거나 어린 넋들이 있었기에 오늘처럼 우리 목숨을 고이 여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앞에 길을 마련한 숱한 땀방울이 있었기에 우리들 누구나 잔걱정 덜하면서 세상살이를 해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정신나갔다고 혀를 찬다. 그래도 나는 웃는다.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밥벌이도 못한다고 핀잔을 주어도 웃는다. 그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뭐했냐고 다그쳐도 나는 웃는다. 십 년 세월 동안 밥벌이도 안 되는 일에 몰두했지만 드러내 보일 것이 없다. 뚜렷한 결과는 없지만 부끄럽지 않으려 나만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  (160쪽)


 김영갑 님이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를 펴내던 해는 1996년이고, 이때 당신 나이 마흔이었으며, 제주섬에 흘러든 지 열두 해째입니다. 이 책에 스스로 적은 해적이를 보면, 이무렵까지 20만 장 넘게 제주섬 중간산을 찍었다고 했는데, 김영갑 님은 여느 필름이 아닌 파노라마사진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찍어댔습니다. 숨돌릴 틈 없이 찍었고, 오늘 어제 내일 가리지 않고 찍었습니다.

 한 장을 얻으려고 찍은 사진이었다 할는지 모르나, 제가 느끼기로는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20만 장을 얻으려고 찍은 20만 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뒤로 더 찍어 50만 장을 이루었다면 50만 가지 모습을 나누고 싶어 50만 장을 찍었으리라 봅니다. 김영갑 님한테 제주섬 중간산에 살며서 사진찍는 일이란 당신 삶이었으니까요.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삶이고, 하루도 놓칠 수 없는 삶이었으니까요. 아니, 하루조차 아닌 한 시간도, 한 분도 한 초도 잊을 수 없는 삶이었으니까요.

 한때 한때 사진으로 담아 한삶을 이룹니다. 그러나 이렇게 담은 한삶을 스스로 돌아볼 겨를이 없었는데, 얄궂게 찾아든 병 때문에 당신 사진을 당신 스스로 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당신한테 병이 찾아들지 않았다면 언제까지나 사진기만 붙잡았을 테며, 당신은 훨씬 더 많이 사진을 남겼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이 모인 사진은 당신 스스로나 다른 사람 누구나 짐을 질 수 없을 만큼 되었으리라 봅니다.

 당신을 부른 뜻이 하늘나라 뜻인지 모르겠지만, ‘제주섬 중간산을 제주섬 중간산 그대로 담아내는 일은 이제 그쯤이면 넉넉하구나. 이제부터는 있는 그대로 느끼며 담아낸 제주섬 중간산 모습을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끔 갈무리해야 하지 않느냐’ 하면서 김영갑 님한테 병을 내려주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김영갑 님 스스로 아쉽거나 모자란 대목을 느낀다면, 그 아쉬움과 모자람은 사람들이 당신이 남긴 사진을 보면서 깨달으면 된다고 헤아렸을지 모르고요.


.. 사람들은 사진 공해 속에서 살면서도 사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텔레비전, 신문, 잡지 …… 고개를 들면 사방에 사진이다. 문밖을 나서면 골목에도, 지하도에도, 전철에도, 버스에도 사진이다. 그런데도 무관심이다 ..  (69쪽)


 2006년에 나온 《김영갑 1957∼2005》(다빈치)라는 사진책이 떠오릅니다. 이 사진책이 나온 지도 벌써 세 해가 되었고, 김영갑 님이 세상을 떠난 지도 네 해가 되었습니다. 참 빠르구나 싶으면서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싶습니다. 《김영갑 1957∼2005》를 들춰봅니다. “중간산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빛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간산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 내가 한라산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 대신 웃는다.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벌써 다른 곳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뭔가 설명할 수 없기에 한라산 자락에서 이렇게 세월을 허비한다 …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한라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보다 빼어날 수 없다.” 같은 글줄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제주섬 중간산은 김영갑 님과 한몸으로 있던 삶이었군요. 비록 ‘세 대에 걸쳐’ 살지 않아 ‘제주 토박이’가 되지는 못했으나, 당신 그 삶으로 한몸이 되는 길을 찾았군요. 그러니, 돈벌이 사진이 아닌 두모악갤러리를 마지막으로 남겼고, 죽기 얼마 앞서 찾아온 기자 앞에서도 ‘기자 양반,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그때는 사진 찍기를 배우라’고 스스럼없이 말했군요. (4342.5.3.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카르페디엠 12
토마스 야이어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도권학교는 아이들을 전쟁 미치광이로 만든다
 [잠깐 읽기 32] 토마스 야이어,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 책이름 :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 글 : 토마스 야이어
- 옮긴이 : 신홍민
- 펴낸곳 : 양철북 (2009.3.25.)
- 책값 : 9800원



 (1) 제도권학교와 정치


 4월 29일 국회의원 재보선을 마치면서, 인천 부평을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뽑히고, 울산 북구에서는 진보신당 후보가 뽑혔습니다. 인천에서는 안상수 인천시장이 시민들한테 지난 1월 편지를 띄우며 ‘새 차를 살 때 대우 자동차를 사면서 지역경제를 살려 주십시오’ 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자동차 공장 한 곳이 지역살림을 크게 움직이는 셈이라 할 테지만, 이 편지를 받아 읽는 마음은 가볍지 못했습니다. 왜 자동차 공장을 살려야 지역살림이 산다고 하는가 싶어서. 기름을 먹는 자동차는 석유값이 끝없이 오를 뿐 아니라 오래잖아 석유가 마르면 그예 깡통이 되어 버릴 텐데, 더구나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동안에는 자동차 배기가스가 공기를 더럽히는데, 지역살림 살리기를 오로지 ‘대우 자동차 한 대 더 사며 살리기’로만 해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 “우리 아버지 머리속에는 미식축구밖에 없어. 우리 아버지에게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가 세상의 중심이야.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남편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따라. 어떤 때는 우리 어머니가 앨라배마의 촌구석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우리 아버지하고 결혼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  (15쪽)


 울산 북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뽑힌 조승수 님은 진보신당으로서는 첫 번째 의원입니다. 꼭 어느 정당 첫 번째 의원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정치밭에 진보정당 사람이 발을 디딛기 어려운 모습을 돌아본다면 좀더 뜻있게 이와 같은 소식을 다루어 줄 법하지만, 옆지기 식구네 집에서 모처럼 텔레비전으로 이런 소식 저런 소식 찾아 들어 보아도 딱히 눈길을 끄는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인터넷이나 종이신문 소식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온통 ‘여당-야당’이라는 두 갈래길만 있고, 두 갈래길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목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학입시를 앞두고 ‘대학교 가는 아이들’만 신나게 다룰 뿐, ‘대학교 안 가는 아이들’은 거의 한 번조차 다루지 않는 모습과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잡지 들은 ‘수험생 아이를 둔 독자님’을 생각한다며 ‘수능 문제’를 따로 찍어서 나누어 주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에 꽤 넓은 자리를 내주며 입시 이야기를 실어 놓습니다. 그러나 입시가 아닌 ‘초중고등학교 삶’을 다루는 일이란 없으며, ‘대학교 안 가고 사회에 첫 발을 디딜 청소년한테 도움이 될 삶’을 다루는 일 또한 없습니다.


.. “나, 린다 코르먼은 모든 적군에 맞서 미합중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보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 린다는 의식에 맞추어 진지하게 대령의 말을 복창했다. 심지어 장교가 금빛 소위 계급장을 건네주며, “이 세상 끝까지 행운을 빈다.”고 했을 때는 눈물을 흘렸다. 린다는 멋진 외출복 차림을 한 자기를 보고 몹시 자랑스러워 할 아버지를 생각했다 ..  (54쪽)


 열네 살 처남은 다섯 해 뒤면 선거권을 받습니다. 어쩌면, 처남한테는 어느 날 갑자기 선거권이랍시고 뚝 떨어지는 셈일 텐데, 그때까지 학교나 집에서나 ‘정치란 무엇이고 선거란 어떤 일인지’를 제대로 배울까 궁금하곤 합니다. 아니, 가르칠 일이란 없을 테지요. 학교 공부 시키는 데에도 바쁠 테니까요. 처남한테는 학교 공부보다도 놀기에 바쁘기도 할 테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신문이든 잡지든 다른 어느 매체이든, 아이들한테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 이야기만 들먹일 뿐입니다. 적어도 ‘대학교에 들어갈 아이들이 정치 바라보기’를 어찌 해야 하는가를 들먹이지도 못합니다. 대학생이 되면 대학 공부를 비롯해 동아리라든지 학생운동도 있기 마련이지만, 토익-토플, 학과공부, 사랑, 놀이를 빼고 이 아이들한테 세상과 사회와 나 스스로를 읽도록 이끄는 이야기는 조금도 들먹이지 못합니다.

 하기는. 언론 탓을 하기 앞서 어버이 탓을 해야 할 노릇이요, 학교 교사 탓을 해야 할 노릇입니다만. 제도권교육 틀거리를 탓할 노릇이요, 교과서를 탓할 노릇이지만.


.. 데비는 지미가 어떤 교실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오래전부터 데비는 종종 학교를 더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한껏 차려입고 하루 종일 ‘미식축구팀의 화끈한 남자아이들’과 외모와 옷에 대해서 수다를 늘어놓는 치어리더들을 만날 때는 더 그랬다 ..  (153쪽)


 지금은 어떠한 과목으로 이름이 바뀌었을는지, 또는 그대로 과목이 남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정치ㆍ경제’라는 과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과목 이름은 이러하여도 ‘고등학생인 제가 겪는 이 나라 정치와 경제’를 곧바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고등학생인 우리한테 선거권이 있다 할 때에 선거 후보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공약을 내놓는지를 알 수 없었고, 안다 할지라도 이런 발자취와 다짐을 어떻게 지켜보아야 할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세상은 우리들(고등학교를 마칠 사람)을 교과서 지식으로만 머리가 가득 차도록 하고 나서 사회로 내보낸다고 해야 할까요. 기껏 아는 재주라 해 보았자 시험풀이 하는 재주요, 몇 가지 자질구레한 지식쪼가리뿐입니다. 실업계학교는 인문계학교하고는 달라 바로바로 회사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우리들이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할 수 있는 일이라 한다면 찻집에서 물잔 나른다거나 공사판에서 잔심부름 하기쯤? 이를테면 삽질 호미질 낫질조차 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아니, 학교에서 이러한 일매무새를 가르칠 까닭이 없다고 여긴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세상 보는 눈을 슬기롭게 키우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도록 거들지 못하고,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을 우리 스스로 찾아나서면서 일솜씨를 하나하나 가다듬도록 북돋우지 못했습니다. 학교는 우리들을 ‘책상물림 지식인’으로만 키우는 공장하고 같다고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 밤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물었다. “베트남은 어땠니?” “더웠어요.” 린다가 대답했다 ..  (307쪽)


 대통령을 뽑는 1992년 선거를 지켜보던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들한테,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정주영 백기완 이러한 분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해 줄 만한 교사는 없었습니다. 집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분들이 저마다 어찌 다른 공약을 내놓았는지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란 고작 ‘선거에서는 가장 나쁜 사람을 하나씩 덜어내어 마지막 사람을 뽑아야 한다’에 머물 뿐이었고, 그렇게 덜어낼 ‘나쁜 사람’이 누구이냐고 물으면 ‘모두 다’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비판적 지지’라지만, 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비판’은 없이 ‘지지’만 있는 채로 ‘1번 찍기’와 ‘2번 찍기’에 그치도록 하는 우리네 학교교육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르는 일이긴 하나, 아이들을 낳은 어른이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키우는 어른 모두 ‘슬기롭게 비판하는 정치눈’을 다스리지 못한 탓에 아이들 앞에서도 옳고 바른 눈썰미를 기르도록 못 가르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맞고 자라던 교사가 오늘날 학교에서 때리며 가르치는 쳇바퀴가 이어지듯, 어릴 때부터 정치눈을 기르지 않으며 얕은 생각에 허우적거리던 어른이 오늘날 아이들을 당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들이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2) 전쟁 미치광이 미국을 이야기하는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


 청소년문학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읽습니다.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거짓되이 베트남전쟁을 일으키면서 허울좋은 평화로 사람들 눈을 속이는가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꾼과 군인이 말하는 평화란 ‘돈많은 미국 시민권자 평화’일 뿐, ‘미국사람 모두가 누릴 평화’조차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1등으로 세계경찰 노릇을 해야 할 미국이 지구에서 지켜 주는 평화’이지, ‘1등이나 꼴등에 매이지 않으며 스스로 조촐하게 살림을 꾸리는 크고작은 뭇나라마다 애틋하게 어깨동무하는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싸움터에서 총에 맞아 죽는 군인한테 훈장을 주는 미국입니다. ‘평화를 지키려 했’기 때문에 상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평화를 지키려다가 다치거나 죽었으니 ‘동료 군인을 비롯한 미국사람들은 우리를 괴롭히는 적을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숱한 주검과 핏물을 바라보면서 ‘왜 이런 싸움이 벌어졌고, 이 싸움은 누구를 지켜 주는 일인가’는 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저 ‘원수! 돌격!’ 두 가지만 생각하게 됩니다.


.. “당신은 악마예요.” 린다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잔인한 악마! 당신들이 우리 병사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내 눈으로 봤어요.” 린다는 자기가 수술한 수많은 부상자들과, 희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로 분류해 옆으로 제쳐 놓았던 병사들을 생각했다. “당신들이 어떻게 우리 마을을 파괴하고, 우리 식구들을 살해했는지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그 사람(베트콩)이 비난하듯 물었다. “미군 장군들은 딴소리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전쟁을 시작한 건 우리가 아니에요.” ,,  (225쪽)


 공산주의가 퍼지지 않도록 막는다고 했지만, 미국이든 한국이든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를 사람들한테 옳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이기는 하나, 사회주의란 참말로 어떠한 틀거리인가를 바르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라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있을 뿐 아닐, 집회ㆍ시위ㆍ결사 같은 자유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언론한테 재갈을 물리고, 제 생각과 뜻을 펼칠 자유란 민주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녀는 평등해야 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평등해야 하며, 학력에 따라 일삯을 달리 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언제나 말에서 그칩니다. 우리 나라에는 자유도 없고 민주도 없고 평화도 없으며 평등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길들어 버립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 공무원이 되고 교사가 되고 회사 정규직이 되면, 그만 제 이웃과 동무를 싹 잊습니다. 금을 그어 놓습니다. 울타리를 쌓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미국은 총칼을 들고 힘여린 나라에 군화발로 쳐들어갔지만, 우리들은 전쟁 미치광이 나라가 하는 짓에 손뼉을 치고 나팔수가 되는 한편, 우리 스스로 ‘총칼만 안 든 전쟁 미치광이 짓’을 똑같이 되풀이합니다.


.. 미 공군이 작전을 도맡아 이 지역에 있는 베트콩의 보급로에 샅샅이 고엽제를 뿌렸다.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벌건 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231쪽)


 그런데, 이 청소년문학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이 나라 청소년 가운데 얼마나 속속들이 알아보거나 느끼면서 가슴으로 받아안게 될까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어떠한 나라인지 하나하나 배우지 못할 청소년들 아닙니까. 한국 사회와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에는 눈길조차 안 둘 뿐더러 슬기롭고 바르게 가르치는 어른이 없는 우리 청소년들 아닙니까. 청소년들한테 보여지는 이야기란 〈꽃을 든 남자〉요, 우리 어른들 스스로 이 이야기에 똑같이 얼이 빠져 버리지 않습니까. 〈꽃을 든 남자〉를 좋아하는 일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꽃을 든 남자〉에만 묻히며 우리 눈에 흐리멍덩해지고 우리가 걸을 길과 우리 이웃이 걷는 길을 모두 놓쳐 버리면 우리 삶이 어찌 되겠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 군은 부상병들을 세심하게 돌보지 않았다. 여섯 달이 지난 뒤에도 건강이 회복되지 못한 사람은 퇴원 조치되어 친척과 친구들 손에 맡겨졌다. 그 사람들은 팔다리가 없고, 목 아랫 부분이 마비되고, 급히 임시방편으로 꿰맨 탓에 얼굴과 상처 부위가 기형이 되고, 자기 이름조차도 모르는 정신 장애인이 된 절망스런 남자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베트남에서 청춘을 잃고, 무기력한 불구자가 된 20대 남자들이었다 … 그 남자들은 따뜻한 정을 절실하게 바랐지만 받지 못했다. 아들이 보훈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 마치 무슨 치욕이라도 되는 듯, 부모들이 거의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들과 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이미 오래전에 그 남자들 곁을 떠났다 ..  (338∼339쪽)


 《그리운 매화향기》(2001)라는 어린이문학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나라가 우리 삶터를 어떻게 옥죄었는가를 깊이있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2008)이라는 어린이문학이 하나 있습니다. 전쟁 미치광이 나라를 잊고 지내던 우리들이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바보가 되어 무너졌는가를 너른 눈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2003)라는 어린이문학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전쟁에는 가해자 나라와 피해자 나라가 나뉘지 않고, 힘센 이가 힘여린 모두를 찍어누를 뿐임을 환하게 밝히는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배경 지식’이 좀 모자라거나 없더라도 작품으로 말하는 이야기에 어렵잖이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는 우리네 아이들한테는 좀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경 지식’도 있어야 할 테지만, 문화와 삶자락이 아주 다른 서양 청소년 눈길에 따라 그려지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 흐르는 빛줄기는 틀림없이 ‘전쟁이 싫고 평화가 좋다’입니다만, 그리고 이 빛줄기가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우리 청소년과 어른 들한테도 고운 목소리로 다가오겠지만, “미국은 말 그대로 전쟁 미치광이 나라이지. 자, 그러니 그 미치광이 짓이 무언지 차근차근 살펴볼까?” 하면서 우리 목소리와 눈높이와 마음결에 알맞게 맞춘 작품을 우리 스스로 빚어내어 주는 어른들이 있으면 얼마나 더 기뻤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번역 백 권이 나오는 동안 좋은 창작이 한 권이라도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2.4.30.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