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식민지 도서관 (양장) - 아시아에서의 일본 근대 도서관사
加藤一夫 외 지음, 최석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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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재는 왜 이리 따분해야 하나?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6] 가토 카즈오+카와타 이코이+토조 후미노리,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



 엊저녁 고된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동인천 가는 빠른전철을 코앞에서 놓친 다음 한참을 기다리고 섰습니다. 십 몇 분이 지나 빠른전철이 다시 들어옵니다. 굳이 앉아서 갈 생각은 없었지만, 맨 앞줄에 섰으니 ‘오늘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철문이 열릴 무렵 갑자기 옆에서 웬 아주머니 한 분이 새치기를 하며 밀고 들어오더니 잽싸게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습니다. 그런데 비스듬하게 앉습니다. ‘이 아줌마 뭐하는 짓이래?’ 조금 뒤 손짓으로 누군가를 부릅니다. 함께 타는 동무 아주머니인데 옆자리를 당신이 맡아 차지하려고 이처럼 비스듬히 앉아서 다른 사람이 못 앉도록 한 셈이었습니다.

 두 아주머니는 새치기를 했기에 자리에 앉습니다. 제대로 줄을 섰다면 서야 할 분들입니다. 나란히 앉은 두 아주머니는 저를 잠깐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호호호!” 하고 웃습니다.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참 대단하신 분들이네. 아주머니들 나이를 보건대 틀림없이 아이 한둘쯤은 있음직한데 아이들 앞에서도 이렇게 살아가시나?’

 하루 지나고, 오늘 아침에 인천에서 서울로 길을 나설 때에도 어제와 같은 꼴을 겪습니다. ‘얼마나 다리가 아프고 졸립고 힘드시면 이렇게 새치기로 하루하루를 보내실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른 이한테 자리를 내어주고 싶지 않아 하는 이 가녀린 마음을, 이웃이고 무어고 하나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가벼운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알쏭달쏭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책을 펼쳐 읽습니다. 아주머니이든 아저씨이든 아가씨이든 젊은 사내이든 꼬맹이이든 할매이든 할배이든, 날마다 숱하게 겪는 새치기를 하는 이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바보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새치기를 않고 얌전한 사람도 많으나,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착하고 얌전한 마음이 자꾸자꾸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마음은 곧고 바른 쪽으로 가 있어도, 고달프고 지친 몸은 마음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본서는 일본의 점령 지역에서 일본인의 손으로 설치한 도서관의 발자취를 추적한 것이다. 왜 식민지에 도서관을 설치하였는가? 그 이유는 시대에 따라 강조하는 측면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식민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그 지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과학 기술 등의 정보 자료를 수집하여 정부나 군대가 이용할 수 있도록 조직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식민지의 일본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거류 일본인을 대상으로 학교교육을 보완하거나 식민정책을 주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셋째, 침략한 나라의 민중을 일본인화하는 정책, 소위 황민화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 전쟁의 발단과 원인이라는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청일전쟁과 10년 후의 노일전쟁도 무엇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었는지 현재의 일본인은 잊은 지 오래다. 동시에 명치정부에 의한 조선 침략의 목적을 위한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일과 노일이라는 이름이 그 본성을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  (14, 184∼185쪽)


 지옥철을 타고다닌 지 열 몇 해째가 되는 오늘날까지 돌아본다면, 한손에 책을 쥐고 전철을 기다리던 사람들 가운데 새치기를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 해서 더 착하거나 훨씬 얌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덜 바빠맞거나 덜 촐랑댄다고 느낍니다. 발을 밟고도 미안하다 말이 없는, 밀치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앞사람 등판이나 머리에 손전화나 신문을 턱 걸치고 게임을 즐기거나 주식시세표를 읽는, 땅위에 있는 전철역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책을 손에 쥐어 보는 사람은 아직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전철길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부터 새벽과 밤으로 고단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찾아가기 힘든 판인데, 여느 날은커녕 토요일과 일요일에라도 도서관 마실을 갈 겨를이 있을까 하고. 아니,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고단함 가득 쌓인 몸을 이끌고 도서관으로 찾아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책’으로 이루어진 바다에 풍덩 빠지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고. 더욱이, 담배 한 개비와 바깥밥 한 그릇과 술 한 잔과 노래 한 가락과 차 한 잔으로 고단함을 달래거나 잊어야지, 책을 읽으며 마음밥을 채우며 좀더 넉넉하고 너그럽고 따사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마음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고.


.. 조선에서의 도서관정책은 식민정책이지만 도서관은 설치하지 않으며 기존 도서관은 폐쇄한다는 것에 오랫동안 중점을 두고 있었다 … 그렇다면 왜 일본은 조선에 도서관을 설립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일까? 도서관을 세우는 대신 무엇을 한 것일까? … 합병 직후(1910년) 초대 조선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에 의해 ‘애국장서회진’이라는 분서가 단행되었다. 그 수는 수십만 책이라고도 전해지며, 헌병과 경찰이 조선인학교, 서점, 개인주택을 습격하여 압수하여 소각한 것이다. 내용이 민족적이라는 이유로 처분되었으며, 주로 역사서, 고전, 위인전, 지리서, 초ㆍ중등학교 교과서가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근대적 인쇄에 의한 대량 출판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그 후 조선의 문화 발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 러시아의 남하를 억제하면서 만주를 취하려는 일본으로서는 동쪽으로부터의 침략 루트인 조선반도는 단순한 발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하여 조선에 대해서는 토지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일본의 일부로 삼아버리는 ‘황민화’라는 식민정책을 세우게 되었다. 언어를 위시하여 일상 생활양식과 관습, 종교, 역사관, 기타 일본과 상이한 모든 것이 말살 대상이 되어 일본풍으로 바꾸도록 강제되었다. 언론 출판 활동과 도서관 활동도 철저하게 탄압되었다 … (세월이 흘러 1921년이 되어) 조선총독부는 조선에 도서관이 없음으로 인하여 우민화정책마저도 지장을 초래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조선총독부도서관을 설립하여 체면을 세우기로 작정하였다 ..  (181, 38, 188, 201쪽)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느긋하게 책을 읽기 어려운 우리 나라입니다. 이 나라 초등학생은 그냥 초등학생이 아닌 줄을 누구나 알고 있겠지요. 중고등학교를 다니면 책하고는 아예 담을 쌓아야 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중고등학교를 거친 분이라든지,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닌다든지 한다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테지요. 그런데, 대학생이 된다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회로 나온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습니다. 나라밖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고 책을 더 잘 찾아서 읽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돈 많이 버는 회사원이 된다고 책을 찾아서 읽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너무도 마땅한 소리인지 모르지만, 연속극이나 영화에 나오는 아리땁고 멋진 짝짝꿍들이 책방에서 말없이 마음밥을 냠냠짭짭하면서 사랑을 키우거나 북돋우는 모습을 보기란 더없이 힘듭니다. 연속극이나 영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부터 그렇습니다. 책방마실을 할 겨를이 없고, 둘레에서 “야, 우리 책방마실 좀 다녀오자!” 하고 손목을 잡아당기는 사람이 없어요. “야, 우리 ○○도서관에서 만나자. 일이 있어 늦으면 책을 보면서 기다리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야, 우리 ○○헌책방에서 만나자. 술 한잔 하기 앞서 서로한테 책 하나씩 사 주기로 하자.”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요. “야, 오늘 아무개 생일인제 책방에 가서 좋은 책 몇 권 사 주자.” 하는 사람이 남아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스스로 일본사람을 깎아내리며 일컫던 ‘경제동물’이라는 말마디를 우리한테 붙여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돈벌레’라고 이름을 살짝 고쳐서. ‘돈만 아는 바보’라고 살을 붙여서. ‘돈 없이는 살지 못하는 멍텅구리’라고 낱낱이 밝혀서.


.. 북해도는 아이누의 자유로운 대지였지만 이 선주민족을 어떻게 ‘일본인’화할 것인지가 과제였다. 이를 위하여 근대교육이 중요시되었고 사회교육 기관으로서의 도서관을 그 속에 놓았다. 아이누 사람들은 정책난민 상태에 놓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소수민족으로서의 생활환경과 문화가 해체되었다 … 철저한 동화정책으로 아이누 사회는 해체된다. 근대 북해도는 그 위에서 출발한 것이다 … (대만에서는) 선주민족의 반란을 억제하고 인심을 모아 일반 대중을 사회 교화의 대상으로 하기 위한 사회교육 행정이 이때(1919년)부터 강화되게 되었다 ..  (63, 88쪽)


 대학교재로 쓰는구나 싶은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391쪽짜리 책이요 책값은 3만 원입니다. 카도 카즈오, 카와타 이코이, 토조 후미노리라고 하는 일본사람 셋이 함께 쓴 책입니다. 책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우리 나라는 일본한테 식민지로 눌려살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겪어야 한 생채기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93쪽을 보면, 1928년에 일본 내무국장이 “도서관을 통하여 내지의 문화를 주입시킴과 동시에 국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실립니다. 196쪽을 보면, 일본 문부성이 “(1) 고등교육은 정신적 욕구, 특히 자유에 대한 희구를 높이기 때문에 조선인에게 좀더 높은 교육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형편을 나쁘게 하는 일이다. (2) 조선인을 일본인보다 열등하다고 보고 싶다. (3) 조선인의 교육을 위해서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다. (4) 조선인이 최하층 일본인의 역할을 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내놓았다는 대목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문헌정보학(지식정보학)을 배우는 대학생들이 교재로 이 책을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옮긴이 최석두 교수는 일본사람 이름을 ‘암창구시’나 ‘대구보리통’이니 ‘목호효윤’이니 ‘이등박문’이니 ‘구미방무’라고 적습니다. ‘문무대보’니 ‘전중불이마’니 ‘문부이사관’이니 하고 적으며 옆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 이름을 밝혀 놓는데, 2000년대 한국땅 지식사회에서 일본사람 이름을 이렇게 읽어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학과도 아닌 문헌정보학과에서 이렇게 사람이름을 가리켜도 되는지 궁금하고, 이런 번역투와 엮음새는 이 나라 대학생한테 어떤 지식을 나누어 줄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이라고 하는 책은 “아시아에서의 일본 근대 도서관사”라고 밝혀 놓았으나, ‘근대 도서관’이 어떤 몫을 맡았고 어떻게 꾸려졌으며 어떤 책을 갖추어 어떤 일에 이바지했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첫머리에 “왜 식민지에 도서관을 설치하였는가?” 하고 스스로 물으며, “침략한 나라의 민중을 일본인화하는 정책, 소위 황민화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하고 밝히는데, 이 말마디를 넘어서는 생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학문하는 대학생하고 대학교수한테는 어떠할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도서관을 꾸리는 사람한테든지 식민지 역사를 파헤치거나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한테든지 도서관 발자취를 좇고픈 사람한테든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든지, 이 책이 어느 만큼 보탬이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대학교재는 이렇게 따분하게 엮어도 되는 책인지 모르겠고, 이렇게 써낸 일본사람 책을 우리가 굳이 옮겨내야 했을까 하는 궁금함을 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일제강점기 한국 도서관 발자취”를 그러모은 자료가 거의 없지 않느냐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며, ‘그렇구나. 이만한 책조차 우리한테 없구나.’ 하며 고개를 떨굽니다. (4342.10.6.불.ㅎㄲㅅㄱ)


┌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한울 펴냄,2009)
├ 가토 카즈오+카와타 이코이+토조 후미노리 씀 / 최석두 옮김
└ 책값 :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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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칸타빌레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7
윤진성 지음 / 텍스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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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랗고 작은 책에 담긴 한 사람 삶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5] 윤진성, 《다시, 칸타빌레》



 새벽 한 시 반에 잠에서 깨었지만, 이때 일어나서 밀린 글을 쓰고 기저귀 빨래를 하면 한 번 잠들어야 하고, 그러다가는 아침에 못 일어날 듯해서 다시 잠듭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아기 기저귀를 갈고 밀린 글을 씁니다. 그러나 글은 두 꼭지 겨우 다듬다가 그치고, 이따가 한글학회에 일을 나가서 해야 할 일을 붙잡습니다. 글을 쓸 만큼 마음이 느긋하거나 풀어지지 못했으며, 곧 집을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괜히 바쁩니다. 뭣도 하고 뭣도 챙기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벽 여섯 시 반쯤까지 학회 일을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이런, 아까 머리를 감았어야 다 마르는데.’ 오늘은 머리를 안 감기로 하고 빨래를 하자고 생각합니다. 어제 아기하고 옆지기가 씻고 남은 물로 기저귀 여덟 장을 빨고 한 장은 삶는 빨래를 담는 통으로 옮겨 놓습니다. 그제부터 담가 놓고 못 빨고 있던 포대기도 빱니다. 포대기는 물이 떨어지니 씻는방 빨래줄에 널어 놓습니다. 기지개를 켜며 마루로 나오니 아침 일곱 시 이십이 분입니다. 빨래하는 데에 오십 분쯤 걸렸습니다. ‘늦었구나.’ 서두르다가 또 뭔가 놓치고 갈까 싶어 느긋하게 마음을 추스르며 가방을 꾸리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두 사람한테는 먼발치로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섭니다. 말리려고 어젯밤에 펼쳐 놓은 우산을 접어서 문간에 들여놓습니다. 대동문구상가 앞까지 달려갑니다. 이곳부터는 걷습니다. 그냥 달려도 되지만, 고등학생 아이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올라가는 이 길을 거슬러 달리기보다는 여느 걸음으로 마주 걸으며 아이들 차림새를 눈여겨봅니다. 지난해에 일민미술관에서 ‘청소년’을 사진감으로 삼는 사진찍기 일을 맡은 뒤로 청소년 아이들하고 스칠 때에는 잠깐 스칠지라도 곰곰이 살피거나 눈여겨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전철역으로 들어서니 오늘은 ‘차 없는 날 행사’를 한다며 전철삯을 안 받는답니다. 처음에는 표 끊는 데에 다 종이로 뒤집어씌워 놓았기에 망가져서 이러나 하고 놀랐는데, 무슨 알림판이라도 세워 놓든지 알려주는 일꾼(또는 공익)이라도 나와 있든지 해야지, 이렇게 하면 어떡합니까. 부랴부랴 전철 타는 곳으로 올라갑니다. 용산 가는 빠른전철이 문을 닫고 막 떠납니다. ‘이런, 된장. 표 끊는 자리에 저거 없었으면 곧바로 올라와서 탔을 텐데. 1500원 아껴 준다며 차를 놓치게 했네.’

 서울처럼 전철이 자주 있지 않은 인천이니, 앞으로 칠 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서울은 출퇴근 때에는 전철이 바로바로 있지만 인천은 안 그렇습니다. 그나마 출퇴근 때이니 칠 분만 기다리지, 출퇴근 때를 넘기면 십오 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씁쓸하게 서 있는데 김밥 파는 아주머니가 보입니다. ‘도시락도 못 싸고 나왔는데 김밥을 사라는 뜻인가?’ 마음을 느긋하게 먹자고 다짐합니다.

 코앞에서 전철을 놓쳤으니, 칠 분 뒤에 들어오는 전철은 자리를 얻어서 앉습니다. ‘뭐, 이렇게 자리를 얻어도 나쁘지는 않군. 그러나 일터에는 조금 늦겠네.’ 인천에서 서울 가는 지옥철은 다른 날과 다름없이 어마어마하게 손님들이 들어차고 저마다 밀리고 밀고 밟히고 밟으며 이런저런 끅끅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자리에 앉았으나 사람들은 서로 밀고 밀리며 제 무릎 위까지 앞사람 몸뚱이가 포개질랑 말랑입니다. 서 있어도 책을 읽기 어렵지만 앉아 있어도 책을 읽기 어렵습니다. 그저 눈 딱 감고 잠들기만 해야 합니다.

 몸은 고단하고 잠은 모자랍니다. 그러나 겨우 몸을 살짝 비틀며 책장을 펼치고 한 줄이라도 더 읽으려고 악을 씁니다. 그야말로 악과 깡으로 ‘지옥철 책읽기’를 이어갑니다.

 역곡을 지나 구로를 거쳐 신도림에 닿으니 비로소 숨통을 틉니다. 어제는 신도림역에서 전철이 망가져 이십 분 가까이 오징어떡이 된 채로 멈추어 있어서 죽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다른 말썽이 없습니다. 늘 이렇게 말썽이 없어야 하지만, 출퇴근길에 곧잘 전철이 망가져서 점검하고 고친다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말썽이 없는 날은 한숨을 돌리며 ‘오늘은 잘 지나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 내 기억에 H를 처음 본 것은 그날이었으나 나중에 듣고 보니 그는 나를 입학식이 있기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봤다고 했다. 1박 2일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은 나에게 무척 지루한 것이었다. 모두들 술에 취해 못 일어나고 있는 이른 아침에 혼자 공터로 나가 그네를 탔는데, 그네 타는 나를 멀리서 지켜봤다고 했다 ..  (8쪽)
 


(아기가 아빠도 제대로 못 보고 고생이 많다! -_-;;;; 옆에서 엄마가 참 힘들구나!)


 지난주까지는 신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서 서대문역에서 내렸습니다. 어제부터는 용산역까지 가서 1호선으로 갈아타 시청역에서 내립니다. 아무래도 신길역 기나긴 길을 걷기보다는 용산역에서 구름다리 건너 시청역부터 걷는 길이 제 몸이나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산부터 시청까지는 거리는 짧은데 사람들 붐비기는 여의도를 지나는 5호선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어디냐?’ 싶고, 제법 널널하기에 퍽 느긋하게 책을 펼칩니다. 지난 7월 29일에 처음 손에 쥔 《다시, 칸타빌레》라고 하는 책을 서울역을 지날 무렵 다 읽고 덮습니다. 야금야금 맛보듯 읽다가 갑작스레 서울로 일하러 나오면서 한동안 못 읽고 있었는데, 오늘 비로소 마무리를 짓습니다. ‘그래, 오늘도 한 권 아침에 다 읽었나? 아침저녁으로 고달프지만, 그런 가운데 아침저녁으로 책을 한 권씩 읽어치울(?) 수 있어서 기쁘지?’

 사람들이 붐벼 몸뚱이로는 기지개를 못 켜고 마음으로만 기지개를 켭니다. 시청역에서 내리니 다시금 숱한 사람들이 우루루 몰리고, 밖으로 나와도 사람물결은 출렁입니다. 조선일보사 앞을 지나고 면세점 옆으로 지나다가 안쪽으로 틉니다. 늘 그늘 자리로만 걸었는데, 오늘은 볕을 쬐는 뒷길로 걷습니다. 뒷길에는 사람이 뜸하고 조용합니다. ‘광화문 한복판에 이런 뒷길이 다 있네?’ 그러나 담배 태우는 사람이 하나 지나가자 확 담배 냄새가 끼치며 재채기가 납니다. ‘제기랄 양복쟁이들! 담배 먹고 얼른 하늘나라로 떠나 주시지!’ 다시 큰길로 나오니 건널목 불이 바뀌어 뜀박질로 건넙니다. 1층에 앉아 있는 지킴이 아저씨한테 인사를 하고 계단을 타고 5층으로 올라갑니다. 9시 3분. 3분 늦었습니다. 가방을 내리고 물병에 물을 뜨고 낯과 손을 씻은 다음 자리에 앉습니다. 오늘도 눈 아프고 머리 지끈거리는 일을 엽니다.


.. 그 너구리 인형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아직도 나와 함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너구리 인형에 대한 기억보다 그 인형을 사 줄 때 자랑스럽고 뿌듯해 하던 아빠가 더 생각난다. 아빠는 백화점에서 인형을 사 줄 수 있는 처지가 된 자신이 매우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  (49쪽)


 낮밥 먹을 무렵에 마음을 쉬고 몸을 다스립니다. 숨을 한번 크게 쉬고, 텅 빈 일터에서 신문도 슬쩍 들춥니다. 정운찬 님 소식을 신문사마다 어떻게 기사로 다루는지 넘겨보다가 아침에 챙겨 온 책을 살짝 펼쳐 봅니다. 이달까지는 마무리지어 넘겨야 하는 책 원고를 살핍니다. ‘나는 이렇게 일을 한다며 나와 있지만, 옆지기는 아기한테 꼭 붙들려 일이고 놀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할 테니 얼마나 갑갑할까?’ 작은 학회나 일터에서는 ‘아이 돌보는 방’을 따로 마련할 수 없다지만, 아이가 어버이 있는 일터에 함께 나와서 어울리거나 쉴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어른이든, 집하고 식구가 가까운 곳에 있는 일터를 나가거나 일터에서 ‘일터와 가까운 데에 있는 집’을 얻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참, 꿈 같은 꿈이나 꾸고 있군.’


.. 천천히 걸으며 물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나뭇가지나 이파리들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내 걸음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 비닐하우스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 좋았다. 어떤 음악도 필요없었다. 노동이 주는 침묵과 비가 주는 음악으로 충만한 하루였다 …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노래를 들으니 내가 절로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겼다 ..  (97, 166, 170쪽)


 아침에 다 읽은 《다시, 칸타빌레》를 다시 들춥니다. 글쓴이 동무가 제주섬에서 귤농사를 짓고 있는데, 제주섬 동무네 어머님이 글쓴이한테 복을 빌어 주며 “조만간 큰돈이 들어올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며, 글쓴이는 “혹시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이 아주 잘 팔리는 건 아닐까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171쪽)”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칸타빌레》는 영 안 팔리는 줄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글쓴이 스스로도 생각했겠지만, 곧바로 이렇게 말을 돌립니다. “나는 초 사진을 보고 마음이 든든했다. 큰돈이 들어온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누군가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 때문에 넓고 평평한 곳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기분을 느꼈다(171쪽).”

 연극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쓰는 윤진성 님은 이 책 《다시, 칸타빌레》에서 연극과 같지만 연극하고 다른 당신 삶이 어떠했는가를 조곤조곤 풀어 놓았습니다. 웃음도 풀어 놓고 눈물도 풀어 놓았습니다. 기쁨도 풀어 놓고 슬픔도 풀어 놓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품은 꿈을 풀어 놓았고, 당신이 접은 꿈을 풀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새로 품거나 끝까지 껴안을 꿈을 들려줍니다.


.. “머뭇거린다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어요. 한 번 더 생각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윤진성이라는 사람이 타인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윤진성이 맡은 배역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신경 쓰죠.” ..  (192∼193쪽)


 《다시, 칸타빌레》는 ‘책이야기만 하는 잡지’ 〈텍스트〉를 펴내는 ‘텍스트’ 출판사에서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라는 이름을 붙이며 펴낸 일곱째 책입니다. 이 책에 앞서 《신호등 건너기 게임》(신민영), 《그늘 속을 걷다》(김담),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한윤형), 《멜로드라마 파이터》(김남훈), 《출발, 3%》(김종철), 《붕어빵과 개구멍》(서영교)까지 여섯 권이 나왔습니다. 다음달쯤 ‘기선, 배만호, 김민하, 황승미’ 네 분 이야기가 잇달아 나오지 않으랴 싶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스물∼마흔 사이) 삶과 생각과 말을 돌아보는 책묶음으로, 앞으로 100권이나 200권, 또는 300권이나 400권까지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 앞에 선보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더 젊거나 어린’ 사람들한테, ‘젊은 또는 늙어 가는 사람’으로서 ‘남들과 똑같이 안 살’고 ‘내 깜냥껏 내 길을 내 마음’에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껍데기 노란 자그마한 책입니다. 원고지로 치면 700쪽쯤? 책 쪽수는 200쪽 남짓? 책값은 9000원 안팎(아직까지는 9000원이지만 종이값이 오르면 오를 수 있겠지요)?

 우리 세상에 크게 이름이 나 있지 않은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책이라, 한비야 님 책처럼 잘 팔릴 리 없고, 공지영 님 책처럼 수많은 기자들이 소개해 줄 리 없으며, 전여옥 님 책처럼 숱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리 없습니다. 다만, 때때로 술동무가 되어 주는 이야기벗이 되어 주는 책이며, 길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 반가운 옛동무 같은 책이요, 나 스스로 조용히 좋아하면서 품에 꼬옥 안을 수 있는 책입니다.

 책은 꼭 많은 사람이 사서 읽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4342.9.22.불.ㅎㄲㅅㄱ)


 ┌ 《다시 칸타빌레》(윤진성 씀,텍스트 펴냄/2009)
 └ 책값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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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지는 알라딘에서 안 파는가 보다. 정기구독만 받는가?)


 ‘비장애인’은 ‘장애인’ 이야기책을 참 안 읽는다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4] 장애ㆍ비장애 아우르는 잡지 《함께 웃는 날》



 지난 토요일에 인천에서 서울 군자역까지 전철을 타고 갑니다. 서울사람한테 군자역은 가까운 동네일는지 아닐는지 모르겠는데,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은 까마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길을 날마다 전철로 오가며 일터나 학교에 몸담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날마다 지옥철에 시달리고, 언제나 고단함에 절고 저는 삶이라 할 텐데, 체력이 대단하든 견디는 힘이 대단하든 놀라운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인천역에서 빠른전철을 타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몸이 안 좋은 옆지기가 자연건강회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입니다. 생채식을 하려 했지만 남편이 갑작스레 서울로 일을 나가면서 아무것도 못하느라 힘에 겨운 옆지기는, 익히 책으로 읽고 스스로 알아보고 해 왔기에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되풀이되지만, 그래도 한번 가서 들으면 다르다고 여깁니다.

 맞는 말이지요. 지식으로 갖출 때하고 몸으로 받아들일 때는 다르니까요. 또한, 같은 길을 걷는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요.

 전철이 부평을 지날 무렵 길손이 부쩍 늡니다. 토요일 아침이지만 일하러 가는 분이 퍽 많은 듯합니다. 이런 아침에 전철을 타고픈 마음이 없으나 아홉 시까지 맞춰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저는 주말이나마 지옥철에 안 시달리고 싶어 더없이 괴롭지만, 이만한 괴로움이란 참아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아기가 고달플 테지요. 이틀째 똥을 못 누는 아기한테는 집에서 느긋하게 쉬거나 놀지 못하게 하는 엄마 아빠가 싫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녀석은 ‘오랜만에(?) 전철을 타서’ 재미있는지 소리치고 웃고 뜁니다. 참 용하구나 싶고, 아기라서 다른가 싶습니다. 아기는 스스로 많이 졸립고 힘들어도 둘레에 사람들이 있으면 같이 놀자며 눈자위가 벌개져 있어도 안 자려고 버팁니다.

 이렇게 아기를 어르고 같이 놀고 토닥이고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옆으로 붙어 앉으면 한 사람 앉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여기는 아기 자리입니다.” 하고 조용히 말씀드립니다. 아기가 몸피가 작다지만, 틀림없이 아기 하나와 아기 엄마하고 아빠하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으니까요.

 제가 앉은 자리라도 내어 드리고 싶지만, 아기하고 이렇게 움직일 때에는 저도 되도록 자리에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릴 때에는 ‘아기 엄마는 한 자리만 차지하고 앉으면 젖을 물리기 몹시 힘듭’니다. 두 자리를 차지하면서 아기를 가슴에 안은 채로 반쯤 양반다리를 하며 아기를 받치고 있어야 하거든요. 이런 매무새로 십 분 남짓 있어야 하니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엄마는 누구나 다리가 저리기 마련이고, 이때 옆에서 아기 아빠가 ‘다리 저린 애 엄마’를 거들거나 아빠 허벅지에 아기 머리를 올려놓으면서 다리풀기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주머님께서 다리쉼을 하고프신 마음은 알지만, 어른은 조금 서서 가더라도 갓난아기를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요, 갓난아기를 돌보는 엄마한테 좀더 마음을 쏟을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나이든 분들 가운데에는 “거, 애는 엄마가 무릎에 앉히고 있으면 되지, 왜 두 자리나 차지하고 있어?” 하면서 불뚝 성을 내는 분이 많습니다. 이런 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아 우리 세 식구는 ‘노약자영유아보호자동반자석’이라는 이름이 길게 붙은 자리에 앉지 않으나, 사람들은 앉는 자리에 ‘영유아’뿐 아니라 ‘보호자가 동반해서 앉아’ 있으며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줄을 까맣게 잊습니다. 당신 스스로 갓난아기를 돌보지 않으니까 모르고, 아주머니와 할머니 들은 지난달 당신이 갓난아기를 돌보며 얼마나 고되고 벅차 했는지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 (장애아이) 누리가 시켜 준 특별수업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가족들일 것이다. 나나 남편 모두 누리를 키우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평범한 아이인 나래를 대하는 것도 한결 느긋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처음엔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웠지만, 그냥 부모 노릇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어느 한쪽이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누리를 키워 보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태어난 나래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낄 일도 별로 없었을 거고, 누리보다 훨씬 복잡한 욕망과 감정이 있고, 그래서 더 괴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다 ..  (6권 8∼9쪽)


 자연건강회 강의는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일곱 시를 넘길 때까지 이어집니다. 아기는 그럭저럭 견디면서 엄마젖 물고 두 번 잠들어 줍니다. 낮에는 한 번 똥을 푸지게 누기도 합니다. 강의를 듣는 틈틈이 오줌기저귀와 바지를 빨아서 걸상에 걸치고 말립니다. 종이기저귀를 쓴다면 이렇게 번거롭지 않겠지만, 조금 번거롭더라도 종이기저귀를 쓰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기는. 하루일을 마치고 축 늘어진 몸으로 다시금 지옥철에 시달리며 인천으로 돌아와서 하루 내 밀린 빨래를 하고 있으면 ‘오늘 저녁 새로 쌀과 곡식 씻어서 불려 놓는 일’이 까마득하다고 느끼는 가운데, 마룻바닥과 방바닥은 또 언제 닦고, 내 글쓰기는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뜻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하여도 이렇게 몸이 지쳐 버리면 내 마음 또한 지쳐서 뒤틀려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오늘 아침 전철길에서도 새삼 느끼는데, 비오는 날 전철길은 맑은 날 전철길과 견주어 몇 곱으로 고달픕니다. 우산을 든 사람들이 오징어떡처럼 밀리고 깔릴 때에는 옆사람 우산이 내 옷이나 몸에 착 붙으며 ‘비를 안 맞았어도 몸은 빗물에 젖어’들고 맙니다. 그렇다고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는 사람이 바닥에 우산을 내려놓을 수 없으며, 짐칸에 올려놓을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은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당신 자리만 넓히면 그만이라는 아저씨가 한 사람 옆에 서는 바람에 훨씬 고달픕니다. 그 옆으로 서며 제 가방을 미는 아가씨는 당신 자리가 퍽 널찍하지만 당신 자리를 조금 줄이며 옆에 찡긴 사람한테 마음을 써 주지 못합니다. 제 오른쪽에 선 아가씨 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서로서로 너무 힘들고 고달픈 나머지 당신 몸 하나만 돌볼 뿐이요, 당신들이 고달프고 짜증나 하듯 옆사람 누구나 고달프고 짜증나게 느끼는가는 깨닫지 못합니다.


.. 지금 한창 기대를 안고 열심히 치료나 학습을 하고 있는 후배 엄마들이 듣고서 섭섭하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 소통 능력이나 사회성은 청년이 되어서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꼭 세상 잣대에 맞게 고쳐야 하나, 그냥 그대로 받아 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의 문제보다는 그걸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나는 내 아이를 가르쳤지, 치료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아이를 아픈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장애를 극복의 대상이 아닌 아이의 개성으로 보자. 아이의 부족한 면만을 보지 말고 장점을 보자. 어떻게 하면 아이를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지 말고,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아이를 보자 ..  (6권 27, 36쪽)


 왼쪽 오른쪽 앞뒤로 밀리고 찡기는 가운데 책 하나를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아니, 이렇게 찡기기 때문에 더더욱 책을 놓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책을 펼쳐 앞사람 입김을 막을 수 있으며, 겨우겨우 한 줄 두 줄 읽는 가운데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하나라도 더 깨달은 사람이 좀더 이웃한테 마음을 쓰자’는 아닙니다. ‘한 줄이라도 더 읽은 놈이 더욱더 이웃 아픔을 느껴 보자’ 또한 아닙니다. 그저 이 고단함을 잊고 싶습니다. 책에 빨려드는 내 마음은, 바로 이곳에서 몸뚱이가 아프고 괴로운 내가 마치 어디에도 없는 듯 느끼고 싶습니다.

 마침 오늘은 《함께 웃는 날》이라는 잡지를 집어들었습니다. 6호부터 정기구독료를 새로 내야 하는데 깜빡 잊고 아직 안 보내고 있는데, 출판사에서는 고맙게도 6호를 먼저 보내 주었습니다.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면 얼른 한 해치 책값을 부쳐야겠습니다.

 《함께 웃는 날》이라는 잡지는 대안교육을 이야기하는 《민들레》라는 잡지에서 함께 엮고 있습니다. 《함께 웃는 날》은 ‘장애와 비장애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잡지를 정기구독할 때에도 느꼈지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같은 모임이 있기는 있어도, 장애인 이야기를 다루는 매체는 아주 드물고, 이런 매체에서 소식지나 책을 펴냈을 때에 제대로 알아보면서 장만하고 읽고 삭이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고쳐 나가는 사람이 대단히 드뭅니다.

 우리 나라에서 어느 ‘힘없고 권리 앗긴 사람들’ 목소리가 낮을 뿐 아니라 막대접과 푸대접이 아니겠느냐마는, ‘장애인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와 책’은 그야말로 아무런 대접을 못 받습니다.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 스스로도, 장애 있는 사람 스스로도, 장애 없는 사람 어느 누구도, ‘장애인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와 책’은 들여다보지 않기 일쑤입니다. ‘내 일’이 되기까지는 그야말로 모르쇠입니다. 나 스스로 다치거나 망가지거나 내 식구나 동무가 다치거나 망가지지 않는다면 장애인 이야기이든 권리이든 삶이든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따로 장애가 없다지만, 비장애인한테 계단이나 거님길 턱이나 건널목이나 지하도나 숱한 교통시설과 문화시설이 ‘우리 누구나 얼마나 쓰기 좋도록 마련되어 있는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 “장애인이라고 무시당할까 봐 걱정하지는 않으세요?” “별로 걱정 안 해요. 설사 상대가 저를 무시하는 일이 보이더라도, 저도 같이 그 사람을 무시해 버리면 되니까요. 비장애인도 잘 보면 어떤 종류의 장애든 조금씩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절 무시하면 저도 그 사람을 무시해 버리죠.” ..  (6권 70쪽)


 《다르게 보는 아이들》 같은 책이나 《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 같은 책은, 몸소 장애가 있거나 식구 가운데 장애 있는 사람만 읽을 책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장애인이 1/10이라고 하지만, 한두 다리 거치면 내 이웃이나 동무나 피붙이 가운데 장애인이 없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우리 스스로 내 이웃이나 동무나 피붙이를 좀더 살뜰히 들여다보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담아내는 책을 우리 스스로 참 안 찾고 안 읽습니다. 아이들한테 학습지 안 사 주는 어버이 없고, 아이들한테 교과서와 문제집 안 읽히는 교사는 없으나, 아이들한테 삶다운 삶을 보여주는 어버이는 꽤 드뭅니다. 아이들한테 책다운 책을 읽히려는 교사 또한 더없이 드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책다운 책하고 동떨어진 길을 걷습니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삶다운 삶을 저버리는 쪽으로 뻗어나갑니다. 우리는 우리 두 다리로 우리가 사랑할 터전을 밟고 일구고 가꾸는 길로 걸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4342.9.21.달.ㅎㄲㅅㄱ)


 ┌ 함께 웃는 날 : ‘민들레’ 엮고 펴냄
 └ 한 해 구독 : 24000원 (http://mindle.org), 02-322-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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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99 : 책잔치와 책방과 도서관

 지난 9월 5월과 6일 이틀에 걸쳐, 강원도 춘천시 실레마을에서는 ‘책잔치’가 조촐히 열렸습니다. 춘천 실레마을에는 조그마한 기차역인 ‘신남역’이 있는데, 이곳은 2004년부터 ‘김유정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세종로나 퇴계로, 또 박지성길 같은 곳이 있다지만, 버스역이나 기차역 들에 사람이름이 쓰이기로는 나라안에서 처음입니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김유정역’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여 준 일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춘천 실레마을 조그마한 기차역 둘레에 ‘김유정문학마을’을 이루어 낸 여느 사람들 힘 또한 대단합니다. 아니,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목소리가 차근차근 모였기에 비로소 ‘김유정’ 하나로 문화와 삶과 역사와 행정이 한마음이 되었다 할 테지요. 춘천 실레마을 책잔치는 ‘물건과 원고와 식구 하나 남기지 않은’ 김유정이라는 옛사람을 기리는 넋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 깜냥껏 우리 새터에서 우리 새삶과 새빛을 일구자는 작은 움직임입니다.

 9월 마지막 주말에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어김없이 책잔치가 마련됩니다. 지난 1950년대부터 헌책을 팔아온 책장수들 스스로 돈과 품과 땀과 마음을 모두어서 마련한 이 책잔치는 벌써 여섯 해째 이어오는데, 처음 마련한 해부터 지난해까지 아주 힘겹게 이어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헌책방 대접은 푸대접조차 아닌 똥대접이나 막대접인 터라, 시청과 구청 공무원을 비롯해 기자들 눈길과 손길은 ‘그깟 헌책방이 뭐?’였고, 중앙 언론매체는 ‘서울도 아니고 부산인데 뭐?’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올해에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부산에만 있고 세계에 내로라할 만한 관광명소 14곳’에 넣어 주시는(?) 한편, 시에서 여러모로 뒷배를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헌’책이 아닌 책을 되살리고 아끼던 책장수들 땀방울과 손품이 조금이나마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할까요.

 9월 18일부터 서울 홍익대 앞에서는 ‘와우북페스티벌’이라는 책잔치가 열립니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온갖 영어를 뒤섞어 내놓아야 비로소 사람들이 몰려드는 책잔치마당이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지만, 우리들 생각힘을 좀더 뻗어 나가게 할 수 없는가 싶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책잔치 하나 서울에서도 벌이니 반가운 일인데, 이와 같은 책잔치 자리에 가 보면 돛데기시장처럼 ‘책 싸게 팔기’ 판만 잔뜩 벌여놓고 있어, 책마을에서 일한다는 분들 생각밭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나 싶어 서글픕니다. 책을 책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책을 읽은 우리들 매무새와 삶이 새로 태어나도록, 책 하나에 깃든 사랑을 고이 받아먹도록 손길을 내밀기는 그토록 어려운가 싶어 쓸쓸합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하면, 우리 나라 도서관이 책잔치에 함께 나서는 일은 드뭅니다. 출판사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책잔치에 책을 싸게 내놓아 ‘책을 제값대로 팔아야 하는’ 동네책방은 씨가 말라 버리게 합니다. 이제 교보와 영풍 아닌 책방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문득 돌아보면, ‘책이 죽지 않도록 책잔치를 연다’고 하나, 책이 죽은 일은 없습니다. 언제나 ‘작은 책방이 죽고’ 있을 뿐이며, 실레마을 책잔치를 함께 기획하고 마련한 춘천시립도서관 같은 도서관이 나라안에 거의 없을 뿐입니다. (4342.9.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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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조용히! - 풋내기 사서의 좌충우돌 도서관 일기
스콧 더글러스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풋, 도서관 사서가 땡땡이치며 글을 썼구나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 스콧 더글러스, 《쉿, 조용히!》



 오늘은 여느 때보다 조금 일찍, 십 분 남짓 앞당겨 집에서 길을 나섭니다. 일곱 시 십 분이 될 무렵 가방을 메고 나오는데, 아까부터 깨어 있던 아기가 아빠한테 와서 안깁니다. 어쩌는 수 없이 아기를 안고 엉덩이를 토닥이다가는 옆지기한테 넘겨주려고 하는데, 아기가 엄마 얼굴을 안 보고 홱 고개를 돌립니다. 아빠한테서 떨어지기 싫다는 뜻입니다. 아침에 아기가 자고 있을 때 길을 나서야 하는데, 그만 깨고 말아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조금 더 어르며 안고 있다가 살그머니 엄마한테 넘겨줍니다. 아직 졸음기가 있으나 뚱한 얼굴입니다. 아까 깨어났을 때에는 씻는방에서 빨래를 몇 점 했는데, 아기는 빨래하는 아빠 옆에 바싹 붙어 쭈그려앉은 채 말끄러미 비빔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빨래를 헹구려고 작은 대야에 담은 물에 제 조그마한 손을 담그더니 얼굴에 묻힙니다. 제 손으로 낯을 씻겠다는 소리입니다.

 “헤!” 하면서 입을 벌리고 혀를 살짝 내미는 모양이 재미있습니다. 아빠가 헹굼질을 끝낼 때까지 아기는 옆에서 낯을 씻는 시늉입니다. 아직 낯씻기를 제대로 하지 못할밖에 없으니, 아빠가 큰손으로 목덜미와 겨드랑이까지 씻겨 줍니다. 아기는 얌전하게 가만히 있습니다. 이렇게 아빠가 씻겨 주던 하루하루를 아기는 오래도록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이 손길이 무엇이었다고 떠올릴 수 있을까요.

 엄마 품에 안겨 손을 흔드는 아기를 따라, 차츰 멀어지는 아빠도 왼손을 머리 위로 길게 뻗친 채 골목이 끝나는 데에까지 흔듭니다. 골목 안쪽으로 아빠가 사라진 다음에도 아기는 손을 흔들고 있었을까요. 다시 칭얼거렸을까요. 그러다가 엄마젖을 물고 밀린 잠을 마저 자려고 할까요.

 걸음을 재촉하며 걷다가 아침햇살을 받고 있는 분꽃과 나팔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 두 장 찍어 놓습니다. 아침 또는 새벽에 나팔꽃을 사진으로 담을 때면 언제나 ‘모닝글로리’라는 문구회사가 떠오릅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1988년)이었을 때부터 이 회사 공책을 썼는데, 이때에는 영어를 처음 배우던 때라 ‘모닝글로리’가 ‘나팔꽃’을 가리키는 줄을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아도 배우면서 재미있어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토박이말로 이름을 붙인 ‘바른손’팬시 이름도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아직 철이 덜 들던 때라 ‘바른손’ 다음에 ‘팬시’라고 붙인 대목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으며, ‘모닝글로리’라는 곳이 왜 ‘나팔꽃’이라는 좋은 이름을 안 쓰려 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열 해쯤 지나 국제통화기금 일이 터질 무렵 ‘모닝글로리’는 회사이름이 영어로 되어 있어 나라안 회사가 아닌 나라밖 회사인 줄 사람들이 잘못 알고 몹시 힘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회사가 이름을 토박이말로 바꾸려나? 다른 회사는 하나같이 영어로 이름을 바꾸지만, 이 회사는 토박이말로 이름을 바꾸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나?’ 하고 꿈을 꾸었는데, 모닝글로니는 그예 모닝글로리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영어로 지은 회사이름을 모조리 잊어버렸습니다.

 이른아침부터 학교 가는 발걸음이 바쁜 아이들을 돌아봅니다. 동인천역에 들어서니, 지하상가 철거에 반대하는 분들이 쳐 놓은 천막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장사한 분들이 한뎃잠을 자며 버티고 있으나, 시에서는 딱히 어떤 대책이나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동인천역 건물에 깃들던 다른 가게는 모두 나간 지 오래이고, 동인천역 건물 바깥은 ‘공사중’을 알리는 커다란 그물을 몇 해 동안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표를 끊고 타는곳에 들어섭니다. 여느 날보다 십 분 남짓 일찍 집에서 나오니 전철을 탈 때에 앉을 자리가 납니다. 제가 타는 전철역은 인천 맨끝이라 그럴 테지만, 맨끝 역이라 해도 7시 32분 차를 타면 자리를 얻기 아주 힘듭니다. ‘앞으로는 오늘보다 5분 더 일찍 나와 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처럼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읽겠구나 생각했으나, 제 옆에 앉는 양복쟁이 남자 어른은 팔짱을 낀 채 자려고 해 제 옆구리를 찌르고 아주머니 또한 팔짱을 끼고 몸을 부풀리며 앉느라 오늘도 여러모로 고달픈 출근길이 됩니다. 어느 누가 전철길에 고달프지 않으랴만, 스스로 고달프다고 느낄 때에는 다른 이도 고달플 터이니 다리 벌리기나 팔짱 끼며 ‘내 자리 더 넓히기’는 안 해 주면 좋으련만.
 





.. 지난달 우리는 폐관을 위한 행사를 기획했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거의 오십 년 동안 배우고, 읽고, 사랑하게 된 이 작은 건물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픈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였다. 나이든 이용자들은 이 도서관 이름이 된 초대 사서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했고, 십대들은 자신들이 첫 걸음마를 겨우 뗄 무렵 동화 낭독을 들으러 왔던 기억을 공유했다. 누구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이야기를 하나쯤 품고 있었다. 그 한 달 내내 모든 기억들이 모였다. 누구도 도서관이 문을 닫게 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들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모두가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더 나아지기 위한 폐관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건물은 그들만의 도서관이었다. 와서 배우고 성장한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이 지금 없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  (198쪽)


 신길역에서 갈아타고 서대문역에서 내립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사람들이 붐빕니다. 그리고, 이렇게 붐비는 사람 가운데 자동계단 아닌 돌계단을 타고 오르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한 사람쯤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서대문역쯤 되는 깊이라면 모두들 ‘걷지 않으려’고 합니다.

 서대문역이나 이대역이나 신금호역 같은 곳은 계단이 깊기도 깊다 하지만, 장애인이 아닌 사람이라면 이만한 계단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걸을 만합니다. 그리고, 이만큼은 걸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숱한 회사원과 학생들이 ‘하루 동안 걸을 일’이 참 드물거든요. 밥을 먹어 몸에 기운을 얻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라지만, 정작 몸을 움직이며 살아 있음을 느끼고 서로 어울리는 일이란 퍽 드물거든요. 운동이 모자라 헬스클럽을 다닌다든지 주말에 어디를 다닌다든지 하는 일도 나쁘지 않으나, 여느 때에 두 다리로 걷고 계단도 성큼성큼 디딜 수 있으면 그리 걱정되지 않습니다. 집에서 세탁기를 돌려도 그릇되지는 않으나, 웬만한 빨래는 손으로 빨고 걸레도 손으로 빨아서 무릎 꿇고 방다닥을 슥슥 문질러 훔치면 운동이 모자랄 일이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면 아이하고 신나게 놀고, 아이가 많이 자라 어린이나 젊은이가 되었다 하더라도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면서 어깨동무하면서 나들이를 다니고 한다면, 이 또한 운동이 모자랄 까닭이 없습니다.


.. 도서관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다.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든다. 그들이 없으면 신성함도 사라진다. 그저 책이 있는 건물에 불과하다 … 이삿짐 센터 사람들은 짐을 함부로 다뤘다. 도서관 안에는 한 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없는 막노동꾼들 같았다. 그들은 책을 다룰 줄 몰랐다. 그들은 책을 상자에 넣기 위해서 함부로 던지고 책에 낙서를 했다 … 그동안 본 적도 없는 백인들이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와서 관심 있는 척하고 있었다. 나는 시장을 바라봤다. 그의 입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정치 선전에 불과했다. 그는 한 번도 도서관에 온 적이 없었다. 물론 이 남자를 위해 도서관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는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다른 도시에서 사다가 읽을 것이다. 그는 이 도서관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이 도시의 부촌에 있는 대저택에 살고 있다 ..  (210, 214쪽)


 오늘 아침은 여느 날보다 조금 일찍 길을 나섰지만, 새벽 여섯 시 사십 분에 깨어나는 바람에 밥을 못했습니다. 전철역 앞에서 김밥 파는 아주머니한테서 김밥 석 줄을 삽니다. 3900원입니다. 김밥을 가방에 넣습니다. 일하러 나온 길에 읽은 책도 가방에 넣습니다. 그제와 어제와 오늘 아침까지 해서 즐겁게 읽은 책은 이제 마감합니다.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며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꾸밈없이 적어내려간 《쉿, 조용히!》라는 책인데, “도서관 사서가 들려주는 도서관 이야기”라기보다는, “도서관에서 일한 수수한 한 사람이 내 삶과 이웃 삶을 돌아본 발자취”라는 느낌이 짙습니다. 도서관 공무원으로 있으며 ‘용케 땡땡이 잘 치며 글도 재미나게 썼네?’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렇게 ‘도서관에서 일할 때에 일 안 하고 도서관 이야기를 글로 쓴’ 모습이 밉지 않습니다. 도서관에 책손이 뜸하며 조용할 때에는 도서관 사서라 하더라도 책에 앉은 먼지를 털거나 책만 읽기보다는, 이러한 짬에 스스로 내 삶 이야기를 적바림한다면 더없이 즐겁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할 수 있으니까요.

 생각을 열려고 하면 눈길이 열리고, 마음을 열려고 하면 따순 손길을 두루 뻗칠 수 있겠지요. 눈길을 열면서 우리 둘레 삶터를 한결 넉넉하게 바라보면서 글 한 줄로 담아낼 수 있고, 따순 손길을 두루 뻗치면서 좀더 사랑스러운 말 한 마디를 나눌 수 있겠지요. 우리 나라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공무원이 이야기책을 하나 쓴다면 어떤 모양새가 될까 궁금합니다. 아니, 우리 나라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공무원들은 땡땡이를 칠 때에 무엇을 할는지 궁금합니다. (4342.9.17.나무.ㅎㄲㅅㄱ)


 ┌ 《쉿, 조용히!》(스콧 더글러스 씀,박수연 옮김/부키,2009)
 └ 책값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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