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70. 맛있는 고무신



  큰아이는 고무신 꿰기를 즐깁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고무신을 꿰고 함께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큰아이는 고무신이 즐겁습니다. 신거나 벗기에도 수월하고, 빨아서 곧 말릴 수 있어서 발가락이며 발바닥이 아주 상큼해 합니다. 그런데 시골 면소재지나 읍내만 하더라도 고무신을 꿴 어버이와 아이를 보는 사람들이 ‘요즘 시대에 뭔 고무신?’ 하면서 묻기 일쑤입니다. 시골에서조차 고무신은 신을 만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마당 한쪽 밭자락에서 까마중을 훑는 아이는 하얗게 눈부신 고무신 차림새입니다. 가랑잎이며 풀줄기며 까마중 까만 알이며 하얀 신이며 꽃치마이며 모두 곱습니다. 4348.10.1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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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50] 두 사랑



  내 손을 잡는 네 손

  네 손을 잡는 내 손

  함께 따스한 숨결



  한집에서 태어나 자라는 두 아이는 저마다 달라서, 두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받는 사랑은 언제나 조금씩 다릅니다. 때로는 크게 다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두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받는 숨결은 늘 같아요. 아이들이 어버이한테 나누어 주는 숨결도 늘 같고요. 두 아이는 저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넋이면서, 언제나 한마음이 되어 하루를 짓는 싱그러운 바람입니다. 4348.10.1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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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69. 가을날 시골아이



  가을날에 가을볕을 쐬면서 가을들을 걷습니다. 큰아이는 다섯 살 언저리에 저만치 앞장서서 달려가면서도 내 눈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한 데에 있었는데, 작은아이는 저만치 앞장서서 달려가다가 내 눈에서 사라져서 도무지 안 보이는 데까지도 신나게 그냥 달립니다. 층층논으로 이루어진 논둑길을 꺾어서 달리는 작은아이는 내가 미처 좇아갈 틈조차 주지 않고 사라지려 합니다. 오른무릎을 다쳐서 천천히 걸어야 하는 나로서는 작은아이 꽁무니를 좇기도 벅찹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몸이요 하루이기에 작은아이가 층층논 사이로 사라지려는 모습을 아스라이 바라봅니다. 사진 한 장 고맙게 찍습니다. 4348.10.1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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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소꿉

 

종이에
머리 눈 코 머리카락
몸 손 발 옷
차근차근 그린 뒤
크레파스로 빛깔 입혀
가위로 천천히 오리면
오직 하나뿐인
종이인형 놀이동무

 

처음 그린 종이인형은
동생한테 주고
다음 그린 종이인형은
아버지한테 주고
또 그린 종이인형은
어머니한테 주고
새로 그린 종이인형은
내가 가져서

 

다 같이 종이인형 소꿉놀이.

 


2015.10.15.나무.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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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68. 마지막 사진이 될 뻔하다



  백 날 동안 꽃이 차근차근 피고 진다고 하는 배롱나무입니다. 배롱나무는 꽃송이를 한꺼번에 터뜨리지 않고 그야말로 천천히 터뜨리지만, 여름이 저물면서 살그마니 가을빛이 퍼지려고 하는 때에 발그스레한 꽃빛이랑 살며시 노랗게 물들려는 들빛이 곱게 어우러집니다. 이무렵 이 빛물결이 사랑스러워 으레 아이들하고 자전거마실을 다녀요. 그런데 이 사진을 찍은 9월 2일,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논둑길을 달리며 들내음을 맡으려 하다가 그만 물이끼를 밟고 미끄러져서 크게 다쳤습니다. 다음 일은 알 수 없어요. 아늑한 사진을 찍고 나서 며칠 동안 사진기는커녕 숟가락조차 못 쥐고 드러누워 앓았으니까요. 자칫하면 내 마지막 사진이 될 뻔했습니다. 4348.10.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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