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얼얼 빨래


 집에서 먹는 쌀이 다 떨어져서 자전거를 타고 마을 어귀 보리밥집으로 가서 4.5킬로그램을 사다. 쌀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씻는다. 씻으면서 민소매 웃옷하고 아기 똥기저귀 한 벌을 빤다. 겨울에는 뼛마디가 꽁꽁 얼어붙는다고 느끼도록 차갑던 물은 이른여름을 앞둔 오월 끝무렵에는 손가락이 얼얼하다고 느낄 만큼 시원하다. 똥기저귀는 따순 물로 빨아야 하는데, 차디찬 물로 몸을 씻으면서 그냥 찬물로 북북 비벼서 빤다. 다른 똥기저귀가 두 벌 더 나오면 삶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 곧 여름이니 여름답게 차디찬 물로 손이 시리도록 빨래를 한 번쯤 해 보고 싶기도 하다. 아니, 이렇게 찬물로 몸을 씻을 때에는 내 몸에서 튕기는 차디찬 물이 똥기저귀로 후두둑 떨어지면서 저절로 헹구어지는 느낌이 좋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수도물이니까 여름이든 겨울이든 물온도가 엇비슷하다. 시골에서도 여름이든 겨울이든 물온도가 엇비슷하다 할 만한데, 시골물은 쓰면 쓸수록 물이 더 차갑다. 땅밑에서 길어올리는 물로 신나게 씻고 빨래를 하고 나면 몇 시간쯤 더위란 오간 데 없다. (4344.5.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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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물 기저귀 빨래


 종이달거리가 아니라 천달거리를 쓰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난다. 그렇지만, 기계빨래를 벗고 손빨래로 돌아오는 사람은 그닥 안 늘어나는 듯하다.

 모든 사람이 손빨래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몸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라면 기계힘을 빌 수 있다고 느낀다. 아프고 힘드니까.

 바쁜 사람들도 기계힘을 빌 만하다고 여기지만, 바쁜 사람들이라 한다면 더더욱 손힘을 누리며 빨래를 맞아들일 노릇이 아닌가 하고 느낀다. 바쁘니까.

 바쁘니까 바쁜 겨를을 쪼개어 책을 읽는다. 바쁜데, 바쁜 틈을 나누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꿈을 북돋운다. 바쁘기 때문에 내 손과 몸과 일과 삶을 아끼는 길을 걸어간다.

 요즈음 사람들은 기계힘을 빌면서 “빨래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기계힘을 빌리는데 빨래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옳게 말하자면 빨래를 하는 삶이 아니라 “기계를 쓰는” 삶이라 해야겠지.

 기계빨래라고 손쉽다고 느끼지 않는다. 기계빨래를 한대서 집일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느낀다. 집일은 늘 고만큼 있다. 집일이란 내가 살아가는 만큼 나 스스로 해야 하기 마련이다. 손을 써서 빨래를 하는 동안 내 손을 더욱 사랑할 수 있고, 손을 놀려 빨래를 하기에 내 옷과 빨래를 한결 사랑할 수 있다.

 옆지기 핏물 기저귀 빨래를 한다. 첫째를 낳은 지난 2008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핏물 기저귀 빨래를 신나게 했다. 핏물 기저귀 빨래를 마감한다 했더니, 이때부터는 천달거리 빨래가 이어졌다. 2010년 가을에 둘째를 밴 뒤로는 천달거리 빨래가 그친다. 2011년 오월에 둘째가 태어났으니 이제부터 핏물 기저귀 빨래가 다시 생긴다.

 핏물 기저귀이든 천달거리이든 북북 문지른대서 핏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핏물 기저귀는 그때그때 빨아 말려야 하니 늘 삶을 수는 없지만, 아침부터 낮까지 나오는 핏물 기저귀라면 두어 장 모아 삶을 수 있고, 아기 보랴 집일 하랴 눈코 뜰 사이 없으면 목초물 뿌린 물에 담가 둔다. 처음에 물을 조금씩 뿌리며 한손으로 핏자국을 살살 문지르면 제법 핏기가 빠지는데, 이렇게 핏기를 뺀 기저귀를 목초물 뿌린 물에 담근다고 하겠다. 삶을 때에도 목초물 뿌린 물에 한동안 담고 나서 삶으면 핏기는 더 잘 빠진다.

 집식구들 몸에서 나온 때를 내 손으로 느낀다. 살붙이 몸에서 나온 피를 내 손으로 받아들인다. (4344.5.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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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5.14.
 :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찾아가다



- 어린이날에도 생각하고 어버이날에도 생각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찾아가지 못했다.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한다. 둘째가 곧 태어나기 때문에 이 일 저 일 건사하느라 몸이 고단해서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이웃 생극면 도신리까지 가는 길을 못 가곤 했다.

- 바람 제법 불지만 따스한 토요일, 오늘은 꼭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 두툼한 겨울옷 한 벌을 빨고 나서 수레에 태운다. 아침부터 아이한테 할머니 뵈러 가자고 말해 두었다.

- 자전거를 달리면서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한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신다며, 얼른 오라고 말씀하신다. 곧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온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헤엄터에 가시는데, 오늘 미리 전화를 하지 왜 이렇게 갑자기 오느냐고 말씀하신다. 어머니(아이 할머니)는 오늘 헤엄터를 안 가기로 했다며 집에서 기다리신단다. 어머니, 죄송해요.

- 바람이 퍽 세게 분다. 광월리 집에서 생극면 가는 길은 야트막한 내리막인데 페달을 밟으면서 힘이 든다.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도 맞바람이지는 않겠지.

- 인천에서 살아갈 때에 골목꽃을 보러 바지런히 마실을 다녔지만, 곳곳에 조용히 깃든 꽃과 나무가 겨우 목숨을 이을 뿐이었다. 시골에서는 한참 신나게 달리더라도 이리로도 숲이고 저리로도 푸른 멧자락이다. 두 다리로 걸어서 멧길을 오르든, 이렇게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든, 어디에서나 푸른 바람을 쐴 수 있는 곳이 더없이 시원하면서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겠지.

-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닿다. 문간에서 단추를 눌러도 소식이 없다. 어디 가셨나 했더니 꽃밭에서 일하시는구나. 아이는 이내 할머니 손을 잡고 꽃밭 사잇길을 걷는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밥 먹었어요?” “네. 밥 먹었어요.” “무슨 반찬 먹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와 먹었어요.” 뜬구름 잡는 대꾸이지만, 아이는 차츰차츰 말수가 늘어난다. 할머니가 닭장 앞으로 데려가 준다. 집 둘레에는 어른 닭만 있고 새끼 닭, 곧 병아리가 없는데, 할머니 닭장에는 중병아리가 있다. 할머니가 열무김치 담가 보라며 손수 다듬어 주셔서, 자잘한 잎사귀를 아이와 함께 들고 닭장으로 가져가서 내려놓는다.

-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아이가 할아버지 따라가느라 바쁘다. 할아버지가 아이한테 “문 닫고 와야지.” 하니, “네.” 하고 뒤를 돌아보다가는 한눈으로는 할아버지한테 달라붙고 싶어서 “아버지가 문 닫아. 파리가 들어가잖아.” 하고 외친다.

- 집으로 들어가 아이를 찍은 사진을 아이한테 쥐어 주며, 아이보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드리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이러한 심부름을 곧잘 해낸다. “응, 뭐야?” “사진이요, 벼리 사진이요.” 할머니가 “우는 사진 있네. 왜 울었어?” 하고 묻는다. “말 안 들어서 울어요. 밥 안 먹어서, 벼리가.” 언제 왜 이렇게 울었는가를 아는구나. 용한 녀석. 그런데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오기 앞서, 집에서 밥 잘 안 먹었잖니?

- 할아버지가 “벼리 짜장면 먹을 줄 알아? 짜장면 좋아해?” 하시더니, 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말씀한다. 아버지가 타고 온 자전거와 수레를 접어 할아버지 자동차 짐칸에 싣는다. 모처럼 수레까지 접어 본다. 덮개 단추를 떼고 등받이를 뗀 다음 왼편과 오른편 칸막이를 안쪽으로 눕히면 끝. 바퀴도 뗄 수 있지만, 짐칸에 넉넉히 들어가니 떼지 않는다.

- 무극 읍내 짜장면 집에 들어간다. 아이는 퍽 졸립지만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노느라 졸음을 잘 참는다. 배는 그닥 안 고프기에 얼마 안 먹는다. 사이에 할머니한테서 얻어먹은 까까가 좀 많았으니까. 이제 우리 집까지 태워 주신다고 하기에 고맙게 얻어탄다. 집으로 돌아가자며 차에 타니, 아이는 할머니 품에서 금세 잠든다. 이제껏 잠을 잘 참았구나. 벼리야, 오늘은 네가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 일곱 시 반까지 안 자고 놀다가 고작 한 시간 잔 다음에 이렇게 나왔으니까 곯아떨어지지.

- 아이는 세 시간쯤 낮잠을 잔다. 낮잠에서 깨어나 일어나자 마자, “어, 할아버지 어디 있어?” 하고 묻는다. “할아버지가 벼리 집까지 태워다 주셨어. 할아버지하고 할머니는 다음에 또 찾아가서 뵈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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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5.5.
 : 수레에서 이불을 걷어내다



- 오늘부터는 수레에서 이불을 걷어내기로 한다. 걷어낸 이불은 빤다. 날이 제법 폭하기 때문에 이불을 안 덮어도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아이는 수레에 앉으며 가야 하니까 아빠 두툼한 겉옷은 한동안 그대로 둔다.

- 어린이날을 맞이해 아이한테 자전거를 태워 주기로 한다. 아이는 저 혼자서 제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하루하루 다리힘이 쑥쑥 붙는 아이는, 이제 아주 조금씩 달릴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자전거를 달린다기보다 엉금엉금 몇 발짝씩 긴다고 해야 맞다. 이렇게 엉금엉금 기는 나날을 하루이틀 보내다가 어느 날 비로소 슬슬슬 저 가고픈 대로 자전거를 굴릴 수 있겠지.

- 아이는 수레에 앉아 마을길을 지나면서 마을 어르신한테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마을 어르신은 자전거 뒤에 붙인 수레에서 아이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니 깜짝 놀라면서 금세 웃음꽃을 피우며 “어머 귀여워라. 그래, 안녕!” 하고 인사를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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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와 글쓰기


 새벽 다섯 시 십이 분에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옵니다. 하얗게 동이 튼 하늘을 올려다보며 푸른 잎사귀 나부끼는 숲을 바라봅니다. 깊은 시골이건 얕은 시골이건,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푸른 빛깔을 맞아들입니다.

 텃밭 가장자리에 쉬를 누고 들어가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텃밭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날마다 무당벌레를 잡고 또 잡아도 새 무당벌레가 잔뜩 보입니다. 토마토 잎이나 줄기에 붙어 갉아먹는 녀석, 감자 잎이나 줄기에 붙어 뜯어먹는 녀석을 톡톡 쳐서 흙바닥에 떨군 다음 작은 돌로 뭉갭니다. 우리 살림집 텃밭은 참 조그맣고, 조그마한 텃밭 푸성귀는 몇 가지 안 됩니다. 널따란 밭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이 벌레란 얼마나 무시무시하거나 끔찍할까요.

 영화 〈로빙화〉를 보면 차밭 벌레를 잡으며 애먹는 흙일꾼이 어렵사리 풀약을 얻어 차밭에 좌아악 뿌릴 때에 시원하게 활짝 웃습니다. 흙일꾼뿐 아니라 고아명과 고차매 남내도 활짝 웃습니다. 돈이 없어 여태껏 손으로 벌레를 하나하나 잡아서 죽였는데, 이제 벌레 걱정에서 조금은 시름을 덜었거든요. 새로 온 곽운천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끌고 차벌레 잡이를 거들기도 했으나, 이렇게 몇 차례 거든대서 잡아 없앨 수 있는 차벌레는 아닙니다. 잡으면 또 있고, 다 잡았다 싶으면 또 기어오르는 차벌레입니다. 풀약 안 쓰는 깨끗한 농사를 이루기란 가난하고 힘겨우며 일손 모자란 집에서는 아득한 꿈입니다.

 흔히들, 풀 먹는 일, 이른바 ‘채식’이란 ‘몸뚱이 큰 목숨을 먹지 않으려 하’면서 ‘목숨을 더 사랑하는 일’이라 여깁니다만, 풀을 먹는대서 목숨을 안 먹는 일이 아닙니다. 고기를 먹어도 목숨을 먹는 일이고, 풀을 먹어도 목숨을 먹는 일입니다. 고기가 되는 짐승을 잡을 때에 고기짐승이 끔찍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든지, 눈물을 흘리는 눈망울을 바라보아야 한다든지,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며 살을 발라야 한다든지, 이러한 모습이 보기 나쁘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푸성귀를 길러 먹을 때에도 풀을 다듬습니다. 풀을 다듬고 씻어서 손질합니다. 목숨이 깃들지 않은 풀은 메말라서 먹을 수 없습니다. 풀이든 고기이든 모두 목숨이요, 모두 다른 목숨이 내 몸으로 스며들며 내 목숨이 어이지는 흐름입니다.

 더욱이, 사람 몸을 더 아끼거나 살린다 하는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저농약이 될 때에는 수많은 벌레를 잡아서 죽어야 합니다. 온갖 목숨을 죽이고 나서야 바야흐로 풀먹기를 할 수 있습니다. 시금치 한 묶음, 감자 한 알, 오이 하나, 배추 한 뿌리를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벌레를 죽여야 하는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목숨을 더 사랑하려는 뜻에서 한다는 풀먹기’가 어떠한 뜻이나 값이 되는가를 모르는 셈입니다.

 좋거나 훌륭하거나 거룩하거나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줄거리를 다루는 글이라 해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지식을 보여주거나 밝히는 글은 부질없습니다. 삶을 깨닫고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하루하루 즐길 수 있도록 어깨동무를 하는 글이 되어야 비로소 사랑스럽습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랑을 빛내는 책 하나입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랑을 빛내는 책을 살가이 이루는 글입니다. (4344.5.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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