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짜는 손목


 둘째 갓난쟁이 쉰 날째. 날마다 마흔 장쯤 똥오줌기저귀를 빨 뿐더러, 첫째와 옆지기 옷가지에다가 내 옷까지 빨고 걸레와 행주를 빤다. 저녁나절, 밥 차리느라 미룬 기저귀 열 장을 빨고 나서 물을 짜는데 손목을 못 돌리겠다. 찌르르 하고 아픈데 억지로 참으며 마무리짓는다. 이동안 새 오줌기저귀 두 장이 나오고, 빨래하다가 살짝 쉬며 첫째랑 둘째를 씻긴 다음, 둘째 배냇저고리를 더 빨자니 손목이 참 시큰거린다. 저녁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하는데, 빈 그릇 들고 부시기도 버겁다. 땀을 또 몇 바가지 흘린 터라, 찬물로 몸 좀 씻으려고 하니, 물을 담은 작은 대야 쥔 손이 힘겹다. 집일에 파묻힌 아버지가 제대로 놀아 주지 못해 심심한 첫째는 홀로 방바닥에 앉아 한 시간 즈음 그림책을 본다. 첫째가 재미있게 본 책을 아버지도 보라며 건네는데, 책을 받아 책장을 넘길 힘이 없구나. (4344.7.9.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더위 빨래


 집안에 넌 기저귀 빨래가 아주 금세 뻣뻣해지도록 마른다. 틈틈이 빨래를 해서 집안에 널어 둔다. 몹시 무더운 날, 이제 쉰 날을 살아낸 아이는 살이 접히는 데가 퍽 힘들 텐데, 장마철 사이에 날이 좋기 때문인지 하루하루 무럭무럭 잘 자란다고 느낀다. 도랑물 흐르는 소리와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는 마실을 자주 못하지만, 집안에 누워서도 들리는 뻐꾸기 소리와 바람결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고운 마음 고운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비손한다. 무더운 날씨라 하더라도 아이 오줌기저귀를 찬물로 빨고 나면 무척 시원하다. (4344.7.7.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쪽지 2011.7.2.
 : 담배꽃 언덕길



-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음성 읍내 장마당 마실을 나오려 하는데 빗물이 듣는다. 마당에 널었던 빨래를 바삐 걷는다. 빨래를 집에 넌다. 다시 바깥으로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살짝 비치려 한다. 다시 마당으로 빨래를 내놓을까 하다가, 어쩌면 날이 활짝 개면서 무더울는지 모르기에, 빨래는 집에 둘 때가 한결 나으리라 생각한다.

- 여느 날처럼 헐떡이며 넘는 숯고개에 이를 무렵, 오른편 담배밭을 바라보니 담배꽃이 피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아이한테 “저기 봐, 담배꽃이 피었네.” 하고 이야기한다.

- 음성 읍내로 들어서기 앞서,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은 모습을 보다. 아이는 “고양이가 저기 누웠네.” 하고 말한다. 고양이 곁에 자전거를 세우고는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양이 눈 없어.” 하는 아이 말. “아니야, 눈 있어. 차에 치여 죽어 그래.”

- 읍내에 닿아 먹을거리를 장만한다. 우리처럼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는 아이를 태운 아저씨를 한 사람 스치듯 만나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에는 인사를 하면서 수레를 태우고 다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과일집에 들러 수박이며 오얏이며 장만한다. 살구를 장만하고 싶었는데, 우리가 들르는 단골집에는 살구가 없다.

- 아이한테 오얏 하나를 쥐어 준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얏을 냠냠 깨물어 먹는다. 빵집에 들러 조금 비싼 얼음과자를 사 준다. 아이는 얼음과자를 막대기까지 쪽쪽 빨며 먹는다. “얼음과자 맛있어?” “응, 맛있어.” 용산리를 지나 큰못 오르막에 들어서기 앞서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잠든다. 배가 고프다 하기에 찐빵을 하나 더 주었는데, 찐빵을 문 채 잠들었다. 찐빵은 살며시 빼내어 봉지에 담는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이를 수레에 눕히기로 한다. 가장 느긋하게 쉴 수 있도록 하고 싶다.

- 아이가 앉은 채 잠든 수레를 끌 때하고 아이를 눕힌 수레를 끌 때하고 사뭇 다르다. 아이를 눕히니 훨씬 힘겹다. 자전거 발판을 밟기 꽤 벅차다. 누우면서 무게가 뒤로 더 쏠려 이렇게 되는 듯하다. 그렇지만, 예전이든 앞으로이든 아이가 수레에서 흔히 잠들기 마련인 만큼, 이렇게 눕혔을 때에도 자전거 발판을 씩씩하게 잘 밟아야 한다. 기운을 내자. 다리에 더 힘을 주자.

- 숯고개 꼭대기에 닿으며 살짝 숨을 돌린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문지른다.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을 곰곰이 생각한다. 요즘은 여느 집마다 아이를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넣는다. 어린이집에서는 일찍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집에서도 여느 어버이들은 영어 그림책을 읽히고 영어 비디오나 만화영화를 보여준다.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 아이들은 영어를 꽤 쏼라쏼라 읊는다. 어린 나날부터 영어를 듣고 익히는 아이들은 앞으로도 영어를 여느 말마디에 쉽게 섞겠지. 자랑이나 뽐내기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영어로 느끼지 않으면서 쓰겠지. 나는 우리 집에서 이 아이한테 영어를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착하면서 더 쉽고 더 바른 말을 쓰도록 이끌려고 힘을 쓴다. 옆지기도 함께 힘을 쓴다. 그러나 우리 둘레 이웃이라든지 동무라든지 여느 어른들은 영어를 비롯해 말답지 않은 말을 너무 쉽게 쓰고야 만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자가용에 태우는 일도 나로서는 하나도 달갑지 않다. 아이는 뛰어놀아야 한다면서 왜 아이를 자가용에 태울까. 어른부터 스스로 자가용을 멀리하거나 안 타면서 아이한테 뛰어놀라 이야기해야 옳지 않을까.

- 숨이 턱에 닿은 채 집으로 돌아오다. 아이를 살며시 안아 집으로 들어간다. 자리에 눕히니 아이가 잠에서 깬다. 그냥 더 주무셔 주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나절, 아이는 마당에 놓은 제 자그마한 자전거를 타면서 논다. 얼른 다리힘을 키우고 키도 크렴. 앞으로 몇 해 뒤에는 너 스스로 자그마한 자전거를 몰며 아버지 곁에서 함께 달려 주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쪽지 2011.6.30.
 : 집일에 치이는 일꾼이 장마당 마실



- 요즈음 들어 몹시 갑갑하다고 느낀다. 둘째가 태어난 뒤로 더없이 오래도록 집일에 얽히기 때문이 아니다. 집일을 도맡기로는 첫째가 태어난 뒤로도 이와 같았다. 돌이켜보면, 집에 아이가 둘일 때에는 아이가 하나일 때보다 훨씬 고되다 할 만한데, 집일이 많고 끝없기 때문에 고되지 않다. 둘레 사람들이 집일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고되면서 갑갑하다. 내 몸이 힘들거나 벅차기에 집일을 하며 기운이 빠지지 않는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남자가 집일을 도맡는’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다가 ‘여자라 해서 집일을 더 잘 알지’ 못한다. 생태와 환경을 걱정한다는 일꾼이라 해서 집일을 더 아끼거나 사랑한다고 느끼지 못한다. 진보와 평화와 평등을 바라는 일꾼이기에 집일을 더 즐기거나 좋아하면서 얼마나 고된 한편 보람이 가득한가를 느끼지 못한다. 나로서는 말로만 읊는 남녀평등이나 여남평등은 달갑지 않다. 가사노동분담이라는 말마디도 내키지 않는다. 집안일을 나누어 할 수 없다. 집안일은 누구나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집에서 살아가는 식구라면 서로서로 집안일을 해야 한다. 어른은 어른대로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할 집일이다. 집에서 한솥밭을 먹는 살붙이라 하면서 집일을 모른다면 집식구라 일컬을 수 없다고 느낀다.

- 사람들은 왜 집일을 모를까. 사람들은 왜 집일을 헤아리지 않을까. 사람들은 왜 집일을 하찮게 여길까. 사람들은 왜 집일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갈까.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 맡아야 할 집일이다. 하루 한두 시간을 거든다든지, 서너 시간을 거든대서 집안 모양이 나아질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꾸준히 보살피거나 건사해야 할 집일이다.

- 날마다 열두 시간은 들여야 비로소 집이 집다울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열두 시간까지 들이지는 못한다. 다른 일이 있기도 하고, 집식구 밥벌이를 해야 하며, 요사이에는 살림집과 도서관을 옮겨야 하는 터라 책짐을 싸느라 집일에 알뜰히 품을 들이지 못한다.

- 애 엄마 미역국을 끓여 먹이고, 장마철 사이 살짝 하늘이 갠 때를 살펴 기저귀를 잔뜩 빨아 바깥에 넌 다음, 둘째를 씻기고 나서 장마당 마실을 생각한다. 너무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자전거를 마당에 내놓고 아이를 태운 때는 네 시 반.

- 부지런히 달린다. 집으로 돌아올 때가 늦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허둥지둥 다니고 싶지는 않다. 차근차근 발판을 밟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금왕 읍내로 가는 오르막을 달리면서, 아이가 뒤에 앉아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다. 오르막에서 땀이 뻘뻘 나지만, 왼쪽과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푸성귀밭과 능금밭과 복숭아밭을 바라보면서, 이 밭에는 무엇이 있고 저 나무에는 무엇이 열린다고 꾸준히 이야기한다. 지날 때마다 거듭 이야기하고, 볼 때마다 새삼스레 이야기한다.

- 어느새 첫째 꼭대기에 닿다. 이제 서른일곱 나이로 아이를 수레에 태우며 다니기란 퍽 만만하지 않은데, 요즈음 한 주에 두 차례쯤 아이랑 읍내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가만히 돌아보면, 처음 아이랑 다닐 때보다 한결 수월하게 잘 다닌다고 느낀다. 오르막에서 기어 넣기도 꽤 가볍다. 곧 마흔 나이가 되는데, 마흔 나이가 되더라도 자전거를 달리는 기운은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셈인가. 만화영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퍽 늙은 할아버지인데에도 홀로 나무를 베고 지며 갖은 일을 도맡는다.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느냐에 따라 몸 또한 잘 따라오는 셈일까.

- 오르막이 힘들면 길면서 가파르다고 느낀다. 오르막이 썩 힘들지 않으면 짧으면서 판판하다고 느낀다.

- 눈으로는 앞을 보거나 뒷거울로 자동차들 움직임을 살핀다. 발로는 내가 달리는 이 길이 내 몸에 어떠한가를 느낀다. 발판이 무겁다고 느끼면 안장에서 일어나 더 힘을 낸다. 이렇게 하고도 발판이 무거우면 기어를 넣는다. 눈으로 앞을 바라볼 때에 언덕이나 오르막이라서 기어를 넣어서는 안 된다고 자꾸 생각한다. 다 아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때그때 다시금 생각한다. 언덕은 자전거 발판을 밟은 내 다리가 언덕이라고 느껴야 언덕이다.

- 뒷거울로 아이를 바라보다가 노래하며 노는 짓이 귀여워 뒷거울을 사진으로 찍어 보자고 생각한다. 흔들리기도 하지만 한두 장쯤 살릴 수 있겠지.

- 금왕 읍내를 오가자면 네찻길을 다니는 자동차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이 네찻길에서 자동차들은 ‘빨리 달리기 내기’라도 하듯 무시무시하게 달린다. 자전거 곁을 너무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오르막에서 기운이 빠지며 손목이 살짝 삐끗하다가 왼쪽으로 조금 꺾이면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자동차에 받힐까 걱정스럽다. 수레에 앉은 아이도 아버지가 이렇게 느끼는 줄 똑같이 느끼리라 본다.

- 금왕 읍내 장마당에서 느타리버섯과 알배추와 두부와 새우살과 양배추를 산다. 따로 더 살 먹을거리는 없다. 빵집에 들른다. 아이가 케익을 보더니 케익 노래를 부른다. 돌이켜보니, 오늘 6월 30일은 우리 식구가 인천을 떠나 시골자락으로 살림집을 옮긴 날이다. 케익을 언제 먹었는 지 생각나지 않는데, 오늘 모처럼 사 볼까.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무척 졸리면서 잠을 안 잔다. 수레에서 자꾸자꾸 “케익 먹고 싶은데.” 하고 말하기에 “집에 가서 어머니하고 함께 먹어야지.” 하고 이야기한다. 몇 번 더 “케익 먹고 싶은데.” 하다가는 “케익 어머니하고 먹어요?” 하고 묻더니, 이내 “케익 집에 가서 어머니하고 먹어요?” 하고 묻는다. 오르막에서 땀을 비오듯 쏟는데, 이때에도 아이는 다시금 묻는다. 물이 되어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로 범벅이 된 얼굴은 아마 시뻘겋겠지. 헉헉대는 숨을 몰아쉬다가 살살 고르며 “집에 가면 어머니하고 먹을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주셔요.” 하고 말한다.

- 마을 어귀에 들어서다. 비닐을 씌우지 않은 감자밭은 장마비에 흙이 다 쓸리면서 감자가 다 죽고 만 듯하다. 비닐을 씌운 곳은 장마비에도 흙이 쓸리지 않는 듯하다. 이제 시골마을에서는 비닐을 안 쓰면 흙을 일굴 수 없을까.

- 집에 닿다. 두 아이를 씻기고 나서 아버지도 씻는다. 밥상을 차리느라 부산을 떠는데, 아이는 케익을 먹고프다며 끝없이 노래를 부르고 케익 상자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만 케익을 엎는다. 아버지는 아이를 꾸짖고, 아이는 서럽게 운다. 밥상을 다 차리고 나서 밥을 먼저 먹은 뒤 케익을 먹는다. 케익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니 언제 울었느냐는 듯한 얼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조선인님의 "옥주현이 맞은 돌은 몇 개인가"

텔레비전이 없기에 나가수가 무언지 모르지만,
옥주현 님이 옥타브는 잘 올라가지만,
노래는 옥타브로 부르지 않아요.

임재범 님도 노래를 잘 부르고,
저도 임재범 님을 좋아하지만,
나가수라 하는 데에, 임재범 님하고 조덕배 님이 함께 나온다면
어떻게 될는지는 모를 일이에요.

옥주현 님하고
민해경 님이 함께 나온다면...
'노래를 성적표처럼 성적 매기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쉽게 알겠지요.

똑같은 노래 하나를 놓고,
가수마다 어떠한 개성과 결로 즐기는가를 보여주도록 한다면,
방송을 보는 사람들도 '생각이 조금은 바뀌'면서
노래를 즐기거나 받아들이는 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누구를 더 좋아하거나 팬이거나 하는 일보다,
노래가 가수 삶과 내 삶에서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방송이니 언론이니 뭐이니에 휘둘리지 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