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와 글쓰기


 네 식구가 살아갈 새 삶터를 찾는다. 네 식구가 오붓하게 지내면서 느긋하게 숨을 쉴 만한 터전을 찾는다. 옆지기한테뿐 아니라 두 아이와 나한테 포근할 시골자락을 찾는다. 오늘 살아가는 이곳 또한 시골자락이면서 다른 시골자락을 찾는다. 시골사람이래서 자가용을 타지 말아야 한다거나 기계를 안 써야 하지는 않다만, 자가용을 지나치게 자주 타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마을에서 차소리보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듣고, 기계를 돌리는 소리보다 손으로 연장을 놀리는 소리가 울리는 시골자락을 찾는다.

 새 삶터를 찾기로 하면서 두 달 즈음 책짐을 꾸렸다. 이제 며칠 더 책짐을 꾸리면 도서관 살림은 다 꾸리는 셈이고, 집살림을 꾸리면 된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집일이 부쩍 늘었는데, 부쩍 늘어난 집일을 옳게 건사하기 벅차 하면서 책짐을 꾸리자니 아주 죽을맛이다. 도무지 몸을 쉴 겨를이 없다.

 그런데,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책짐을 두 달 즈음에 걸쳐 죽을맛을 실컷 치르면서 꾸리는 나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 삶터를 얼마나 옳게 못 찾았으면 이렇게 애먹어야 하겠나. 나부터 애먹고, 내 살붙이들 모두 애먹는다. 쉽게 얻어 쉽게 옮기는 삶터일 수 없다. 한두 해를 살거나 열 해나 스무 해를 살면 될 터전일 수 없다. 나로서는 뼈를 묻을 만한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고, 내가 뼈를 묻고 나서 내 아이들이 ‘이제 어머니 아버지 다 없으니 우리가 구태여 여기에 있어서 뭐 하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만한 둥지를 찾아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여기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깃들던 곳일 뿐 아니라, 내가 예쁘게 깃들며 즐거울 곳이야.’ 하고 생각할 만한 삶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 집 살림으로 치자면 몇 만 권에 이르는 책과 일흔 개가 넘는 책꽂이에다가, 새터에서 더 들일 책과 책꽂이를 품을 만큼 넉넉한 터를 찾아야 한다. 도시를 떠나 시골자락을 찾을 때에 이만 한 데를 좀처럼 찾지 못해 너무 쉽게 너무 쉬운 삶터를 얻었으니까, 이렇게 꼭 한 해를 살다가 다른 삶터를 찾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쉽게 얻기에 쉽게 잃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우리 식구가 넷이기 앞서 셋일 때부터 셋이 앞으로 쉰 해이고 백 해이고 이백 해이고, 두고두고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갈 만한가까지는 살피지 못한 채 이곳으로 왔다. 도시에서는 코앞에 닥치는 달삯이 눈덩이와 같아 너무 무섭고 힘들었기 때문에, 허둥지둥 시골로 몸을 옮겼다.

 곰곰이 생각한다. 허둥지둥 시골로 몸을 옮겼으니까, 이제는 좀 숨을 쉴 만하고, 숨을 쉴 만한 이때에, 더욱이 아직 어깨와 등허리에 힘이 남아 두 달에 걸쳐 책짐을 꾸릴 수 있는 이때에, 바야흐로 우리 살붙이가 서로를 제대로 아끼면서 옳게 사랑할 아름다운 삶터를 찾아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삶터가 내 삶터다울 때라야 비로소 나부터 책을 따사롭게 사랑한다. 내 삶터를 내 삶터답게 따사로이 사랑할 때라야 비로소 내 따순 사랑을 담아 글 한 꼭지 길어올린다. 책짐 싸느라 바쁘고 힘겨워 책을 펼치지 못하는 삶은 너무 슬프다. (4344.7.27.물.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7-27 15:58   좋아요 0 | URL
몇만권의 책... 여기에만 딱 눈이 꽂히는군요.
부러워라, 저 책들과 저 책을 놓을 수 있는 장소와, 가장 부러운 것은
저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 하는 자유에 대하여........ 그 책들을 놓을 수 있는 장소와 자연과 함께 가족이 살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살고 계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유에 대하여.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마 저는 부러워만 할거 같습니다.
꼬옥 좋은 집 찾으셔야 할텐데, 비가 이리 오니 걱정입니다.

숲노래 2011-07-27 18:01   좋아요 0 | URL
다음주에 청주와 전주와 남원을 거쳐 고흥으로 찾아가요.
아마 즐겁게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어요~~ ^^
 

자전거쪽지 2011.7.25.
 : 배달음식은 어디까지?



- 둘째를 낳은 옆지기는 몸이 예전보다 훨씬 나쁘다. 예전에는 가끔 기저귀 빨래를 하거나 밥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홀로 이 일 저 일 도맡자니 몸을 많이 써야 하고, 저절로 살이 많이 빠진다. 둘째와 함께 산 지 두 달이 지나면서 생각한다. 옆지기와 두 아이도 옆지기와 두 아이대로 씩씩하고 튼튼하게 잘 살아야 할 테지만, 나는 나대로 내 몸을 잘 추슬러서 더 힘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 인천에서라면 생협에 찾아가 돼지고기라도 조금 사서 먹는다지만, 이곳에서는 생협 가게를 찾을 수 없다. 여느 고기집에 가서 돼지고기를 살까 하다가, 옆지기가 기름진 무언가를 먹고 싶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닭튀김을 사자고 생각한다. 며칠 앞서 읍내 장마당 마실을 할 때에, 새로 문을 열었다면서 하나로마트 앞에서 전단종이를 나누어 준 닭집이 있다. 어디까지 날라다 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이 있는 광벌까지는 아니더라도 용산4리 숯고개 언덕받이라든지 용산6리 느티나무 있는 정류장까지라도 가져다준다면 한결 수월하리라 생각하며 전화를 건다. 닭집 아저씨는 아직 길을 잘 알지 못한다면서, 용산4리 숯고개까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용산6리 느티나무 있는 시골버스 서는 데까지 와 달라 이야기한다. 읍내 가게에서 푸성귀랑 배추 한 포기와 통밀가루 두 봉지와 재활용 빨래비누 여섯 장을 사서 가방에 챙기며 달린다. 느티나무 있는 시골버스 서는 데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를 내린다. 아이는 시냇물 흐르는 마을 어귀 정자에 맨발로 올라서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한다. 아버지보고도 위로 올라와서 함께 뛰잔다. 아버지는 무더위에 땀을 많이 흘리며 자전거를 몰았기에 그냥 그늘에서 쉬겠다고 말한다. 16시 25분까지 오겠다고 하던 오토바이는 16시 29분에 닿는다. 늦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조금 더 다리쉼을 한 셈이니까. 예까지 가져다주는 아저씨는 저수지 너머 마을에도 닭튀김을 나른 적 있다면서, 아직 길을 잘 몰라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예까지 날라다 준 일만으로도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아저씨는 다음에는 저주시 위쪽 오르막을 조금 더 올라가는 데까지 날라다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 아이를 수레에 앉힌다. 아이한테 닭튀김 상자를 잘 들어 달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한손으로 닭튀김 상자를 꼭 잡고, 다른 한손으로 수레를 잡는다. 아이는 수레에 앉을 때부터 꾸벅꾸벅 졸더니, 조금 달리고부터는 아예 고개가 푹 꺾인다. 이제까지 졸음을 참으며 놀았기에 금세 쓰러지는가 보다. 그렇지만, 고개가 이리 쏠리고 저리 쓰러지고 하면서도 닭튀김 상자를 쥔 손을 놓지 않는다. 집에 거의 다 닿을 무렵에는 아슬아슬했지만, 떨어뜨리지 않고 잘 왔다. 집에 닿아 닭튀김 상자를 내리고, 아이를 번쩍 안는다. 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기면서 잠에서 깨지 않는다. 잠자리 평상에 고이 누인다. 그대로 새근새근 잘 잔다. 아이 몫을 남긴 다음, 아버지는 물로 씻고 어머니하고 나머지를 먹는다. 아이는 한 시간쯤 달게 잔 뒤에 제 몫으로 남긴 닭튀김을 먹는다. 곰곰이 생각한다. 올해 들어 닭고기이든 닭튀김이든 처음으로 먹었다.
 

 

(최종규 . 사름벼리 / 201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pjy 2011-07-26 10:59   좋아요 0 | URL
해수욕장까지 배달되는 음식들을 보면 정말 대단한 생각이 듭니다^^ 전 봄여여름가을겨울 역시 닭튀김이 젤 좋아요~

숲노래 2011-07-27 04:05   좋아요 0 | URL
해수욕장에서 닭튀김을 시켜 보셨나요?
오오... @.@

마녀고양이 2011-07-27 16:03   좋아요 0 | URL
옆지기 님께서 회복이 늦으시나보네요.
큰일입니다. ㅠㅠ. 공기 좋은 곳에서 빨리 추스리면 좋을텐데.

된장님께서도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숲노래 2011-07-27 18:02   좋아요 0 | URL
늦게 살아난다기보다...
워낙 아프고 늘 아픈 몸이다 보니...

그저 더 조용하면서 착한 곳에서 살고 싶어요~
 



 빨래집게 어린이 2


 첫째 아이는 퍽 일찍부터 걸상을 옮겨 올라갈 줄 압니다. 자칫 미끄러지거나 넘어질까 걱정할 수 있지만,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빼고는 넘어진 일이 없습니다. 아이는 키가 작으니 걸상이나 무언가를 받쳐야 올라섭니다. 마당에 넌 빨래줄을 잡고 싶어도 콩콩 뛴다 한들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걸상을 들고 와서 올라가면 가까스로 잡을 만합니다.

 열흘쯤 앞서 아이는 드디어 빨래줄을 붙잡습니다. 걸상을 딛고 올라가서 아슬아슬하게 붙잡습니다. 이때 뒤로 열흘 즈음 지나서는 빨래집게를 혼자 쥐고는 동생 기저귀 빨래를 콕콕 집습니다. 팔을 쭉 뻗어 살며시 집습니다. 이쪽을 다 하면 걸상에서 내려와 걸상을 옆으로 옮기고는 다시 올라서서 집습니다. 빨래줄이 높아지는 데에는 손이 닿지 않으니, 아버지가 아이 손을 잡고 함께 집습니다.

 아버지 혼자 척척 집으면 금세 끝나는 일이지만 가만히 서서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아이가 빨래집게 담은 통을 들고 제가 한손에 하나씩 집어 내밀 때에도, 그냥 아버지 혼자 척척 꺼내면 빨리 끝낼 일이지만 빨래 앞에 가만히 서서 아이가 집어서 가져다주기를 기다립니다. 한 달쯤 지나고 나면, 또는 두 달이나 석 달쯤 지나고 나면, 아이는 이제 혼자서 걸상에 올라선 다음 빨래를 빨래줄에 널 수 있을까요. (4344.7.23.흙.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7-23 15:00   좋아요 0 | URL
빨래 집게를 잡을 정도로 손에 힘이 생겼네요.
아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이뻐요.
참.. 정갈한 마당, 정갈한 빨래, 그리고 천사같은 따님이예요.

숲노래 2011-07-24 05:45   좋아요 0 | URL
마당은 그닥 정갈하지 못해요 ^^;;;;
사진에 마당이 잘 안 나오도록 찍어서 그렇지요 ^^;;;;;;;
 

자전거쪽지 2011.7.17.
 : 앞에서 이끄는 사람



- 장날, 혼자 길을 나서기로 했다. 장마가 끝난 뒤 햇볕이 그야말로 불볕이다. 이런 날 아이가 수레에 앉아 마실을 하면 틀림없이 땡볕에 시달리겠지. 장마당 장사하는 분들이 이 무더위에 아이를 데려올 수 없겠다며 걱정해 준다.

- 집으로 돌아가는 숯고개 언덕길에서 생각에 젖는다. 내리막에서는 오르막을 오르느라 흘린 땀을 바람에 씻느라 생각에 젖거나 둘레를 살펴볼 겨를이 없다. 오르막에서 낑낑거리며 오를 때에 비로소 온갖 생각에 젖어들면서 둘레를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 길바닥에 널브러진 나비 주검과 잠자리 주검을 바라본다. 내리막에서는 이들 주검을 볼 수 없다. 자전거도 자동차 못지않게 몹시 빨리 내리꽂으니까. 판판한 길이나 오르막일 때에 비로소 길바닥 주검을 바라볼 수 있다. 수레에 앉은 아이도 길바닥 주검을 볼 수 없겠지. 그러고 보면, 자동차 뒷자리에 앉는 사람도 길바닥을 볼 수 없다. 자동차를 달리는 사람이 멈추어서 차에서 내려야 비로소 길바닥 주검을 본다. 자전거 또한 달리기를 멈추고 수레에서 아이를 내려야 아이 또한 길바닥 주검을 본다. 앞에서 이끄는 사람, 곧 어른이나 어버이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 스스로 얼마나 걸을 만한 길을 즐겁고 씩씩하게 걷는가를 헤아리는 삶이어야 한다. 장마가 끝난 무더위에 뱀 주검과 개구리 주검은 그저 길바닥에 찰싹 달라붙으며 바싹 마른다. 얼마나 많은 목숨이 아스팔트길에서 죽을까. 얼마나 많은 목숨이 아스팔트길을 까는 동안 끽소리 못 내며 죽을까. 사람들은 덩치가 큰 짐승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죽음을 알아보기 힘들단다. 

- 무덥지만, 파란 빛깔 하늘과 하얀 빛깔 구름이 어여쁜 하루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7-22 12:59   좋아요 0 | URL
어제 말이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아이들이 열심히 잠자리 채를 휘두르더라구요.
벌레 통을 보니, 벌써 잠자리 십여마리를 잡아서 그 안에....
나중에 그녀석들을 날려보내줄지 다른 행동을 할지 궁금했고
잠자리에 대해 측은한 맘이 들었지만, 결국 그냥 지나쳤답니다. ㅠ

숲노래 2011-07-22 17:09   좋아요 0 | URL
아이들한테는 잠자리를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일로도 고마운 노릇이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자주 으레 보지 못하니 많이 잡기만 할 뿐일 텐데, 나중에라도 깨달아 주면 좋겠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잠자리를 '만지기'까지는 하면서 이 느낌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불을 빨래하는 등허리


 장마철이 끝나고 해가 난대서 이불을 석 채 빨았더니 등허리를 펴기 어렵다. 하루에 한 채씩 빨아야 했을까. 눈부시게 따사로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이 햇볕을 고이 맞아들이고 싶었는데, 석 채째 빨았을 때에 도랑가에서 이불을 들어올리기 몹시 힘들었다. 끄응 하고 겨우 들어올려 물을 짠 다음 빨랫줄에 넌다. 투두둑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빙 돌아가며 물기를 더 짠다. 먼저 빨아서 넌 이불은 뒤집는다. 한 시간에 한 번쯤 다른 이불도 뒤집는다. 저녁 일곱 시까지 널어서 말린다. 장마가 끝나고 맞이한 첫 날이라 그런지 이불이 아주 보송보송 마르지는 않는다. 하루 더 해바라기를 시키면 구석구석 보송보송 잘 마르겠지. 첫째 아이 이불까지 빨았으니, 제대로 따지면 하루에 이불 넉 채를 빤 셈이다. (4344.7.19.불.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양철나무꾼 2011-07-19 10:22   좋아요 0 | URL
물 한모금 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처럼,
이불 한채 빨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하셨어야죠~^^

빨아 넌 이불을 향하여도,
아이의 등허리를 향하여도,
햇살은 고루 넉넉한 것이 욕심부리지 않아도 되니...같이 여유로워지네요~

숲노래 2011-07-19 14:14   좋아요 0 | URL
오늘은 읍내 우체국에 갔다 와야 하기에...
내일 더 빨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