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맞는 빨래


 하루하루 나이를 더 먹으면서 이제는 더 젊을 적보다 힘을 더 쓸 수 없다고 느낍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며 ‘늙는’ 아버지는,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며 ‘한창 젊은’ 때로 접어드는 두 아이 빨래를 하면서 생각합니다. 첫째를 낳아 첫째 기저귀를 빨 때처럼 둘째를 낳고 살아가는 이즈음 첫째 기저귀를 빨 때처럼 빨래를 하지 못합니다. 첫째 때에는 오줌기저귀 한두 장만 쌓여도 새벽 한 시이고 두 시이고 세 시이고 네 시이고 그때그때 빨래를 했습니다. 이제는 새벽에 한두 차례 겨우 빨래를 합니다. 때로는 새벽 내내 그저 대야에 오줌기저귀를 담근 다음 아침에 일어나서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 몸에 맞게 빨래를 합니다. 제 빨래에 제 몸을 맞추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당신들 몸을 당신들 빨래한테 맞추거나 당신들 빨래기계에 맞춥니다.

 책을 읽을 때에 책에 내 몸을 맞출 수 없습니다. 딱딱하며 메마른 글로 싱거우며 덧없는 이야기를 담은 책에 내 몸을 맞출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삶을 알뜰살뜰 일구고픈 내 몸에 맞는 책을 찾아서 읽고 싶습니다. 억지로 온갖 지식을 내 머리에 쑤셔넣거나 억척스레 갖은 정보를 내 몸에 꿰어맞추고 싶지 않습니다.

 어버이 틀에 맞추어 아이를 키울 수 없습니다.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라고 느끼면서 아이는 아이 몸에 맞게 하루하루 즐거이 맞아들이도록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내 몸에 맞게 빨래를 즐깁니다. 나는 내 몸에 맞게 책을 읽습니다. 나는 내 몸에 맞게 아이하고 살아갑니다. 나는 내 몸에 맞게 자전거를 타고, 장마당 마실을 하며,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고, 좋은 벗님을 사귑니다.

 아침에 빨래를 하면 첫째 아이가 도와줍니다. 빨래를 다 마치고 통에 담아 마당으로 나오면 아이는 싱긋 웃으며 조용히 따라나옵니다. 마당에 놓은 걸상에 빨래통을 올립니다. 아이는 앙증맞은 손으로 빨래를 한 점씩 집어 아버지한테 건넵니다. 아버지는 빨래를 한 점씩 빨랫줄에 넙니다. 빨랫줄에 줄지어 앉던 잠자리가 날아오릅니다. 빨래를 널 무렵, 첫째 아이는 빨래집게를 둘 집어 아버지한테 건넵니다. 아버지는 빨래집게를 받아 천천히 빨래에 집습니다. 우리 아이도 차츰 크서 팔뚝에 힘이 붙고 키가 더 자라면, 아버지가 많이 힘들거나 고단할 때에 빨래를 맡아 해 주겠지요. (4344.8.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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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 물짜기


 아이들 외삼촌이 놀러왔다. 아이들 외삼촌이 빨래를 해 주었다. 살짝 만져 보니 축축하다. 물이 방울져 떨어지겠구나 싶어 얼른 집어서 슬슬 비트니 물이 주르륵 흐른다. 열여섯 외삼촌은 아직 손빨래를 잘 해내지 못한다. 물이 방울져 떨어질 만큼 얕게 짜면 안 되지만, 얼마만큼 더 짜야 하는가를 느끼지 못한다. 날마다 빨래를 하다 보면, 또, 이렇게 빨래를 날마다 하면서 살다가 빨랫대 밑으로 흥건히 고인 물에 책이 젖는다든지 옷이 젖어 보아야 비로소 빨래를 마치고 나서 물짜기를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 있겠지. 끝까지 짜서는 안 되는 옷가지는 빨랫대에 넌 다음 밑에 그릇이나 걸레를 받쳐야 하는 줄을, 웬만하면 물이 방울져 떨어져도 괜찮을 너른 마당이나 흙땅에 빨래를 널어야 하는 줄을, 앞으로 언제쯤 어떻게 깨우칠 수 있을까. 스스로 느껴서 알아야 한다. (4344.8.1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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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과 겨울, 빨래


 여름철, 아침 낮 저녁으로 새로운 빨래가 나온다. 땀에 흠뻑 젖은 딸아이 옷을 벗겨 씻기면서 딸아이 옷을 빨래한다. 옆지기가 씻을 때에도 새로운 빨래가 나온다. 요즈음, 옆지기는 시골에서 살아가며 멧자락 마실을 즐기는 동안 차츰차츰 몸이 좋아졌기에 제 빨래랑 아이 빨래를 즐거이 해내곤 한다. 나는 내 땀에 젖은 옷을 하루쯤 묵히거나 이틀쯤 버티다가 빨래한다. 자전거로 읍내마실을 하고 나서는 빨래하는데, 이때에 맞추어 땀에 절은 옷을 묵혔다가 마실을 하며 입는다 하겠다. 그러니까 여름철 빨래란 쉴새없이 빨고 말리며 또 빨고 다시 말리는 삶이다. 비라도 퍼붓는다든지 장마가 끊이지 않을 때에는 죽어난다. 날마다 몇 차례씩 빨래를 하고 또 해도 제대로 마르지 않는 빨래가 옷 집안에 가득 걸린다.

 겨울철, 보일러가 도는 때에 맞추어 빨래를 한다. 겨울철에도 하루에 여러 차례 빨래를 하는데, 되도록 새벽에 많이 한다. 새벽에 많이 해서 따뜻해지는 방에 널었다가 아침에 해가 난다 싶으면 해가 비치는 마당에 내다 넌다. 겨울철에는 잠자리에 들면서 빨래를 마저 한다. 잠들면서 방에다 너는 빨래는 보일러가 자주 돌며 물기가 다 마르는 집안을 보듬는 노릇을 한다. 어는 손이 곱는 아픔을 느끼며 빨래를 하며 생각한다. 이제 머잖아 따순 봄이 찾아오면 차디찬 물로 멱을 감으면서 빨래를 신나게 해치울 수 있겠지. 그러니까 겨울철 빨래란 햇살을 그리는 애틋한 사랑이 감도는 삶이다. 눈이라도 퍼붓는다든지 온 집안이 꽁꽁 얼어붙도록 추운 날씨가 되면 참으로 고약하다. 한낮에 해가 잘 드는 마당에 빨래를 널어도 얼어붙기 일쑤이니까. 그나마 겨울철에는 아이가 옷을 여러 벌 껴입으며 여러 날 지내니까 날마다 옷가지가 끝없이 안 나와서 좋기는 한데, 한 번 옷을 빨자면 두껍고 길다란 옷가지가 잔뜩 쏟아지니 등허리가 휜다.

 백 번 즈믄 번 입이 아프도록 되풀이하지만, 나와 옆지기는 빨래기계를 들일 마음이 없다. 고달픈 빨래를 해내면서 하루하루 살아숨쉬는 맛을 느끼는걸. (4344.8.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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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과 글쓰기 2


 바람 소리에 모든 숲 소리가 잦아든다. 물결치듯 바람이 불고, 소나기 몰아치듯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태풍 끝자락이 일으키는 바람일까. 모기장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땀이 식는다. 등줄기가 시원하다. 새 보금자리 알아본다며 엿새 동안 시외버스와 자가용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겼더니 몸이 아주 무너져내렸다. 나는 시골집에서 받아들이는 이 바람이 좋다. 기름을 태워 돌리는 에어컨 바람이 아닌, 멧자락을 타고 부는 이 바람이 좋다. 비가 오더라도 바람을 안은 비가 좋고, 더위를 가시며 잎사귀 나부끼는 소리를 머금는 바람이 좋다. 바람은 눈에 안 보인다고 하지만, 눈으로 보지 않는 사람한테는 먼 옛날부터 살결로 느끼며 마음으로 마주하던 벗님이다. 온누리를 눈으로만 보거나 느낄 수 없다. 코로 맡으며 느낀다. 귀로 들으며 느낀다. 혀로 맛보며 느낀다. 살로 부비며 느낀다. 마음으로 헤아리며 느낀다. 바람은 잘 보인다. 바람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고 느낀다. 찬바람하고도 살고, 더운바람하고도 산다. 산들바람도 맞고, 회오리바람도 맞는다. (4344.8.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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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랑 글쓰기


 생각을 곰곰이 가다듬으면서 작은 수첩을 꺼내어 글을 몇 줄 적는다. 첫째 아이가 아버지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제 공책을 찾아오더니 저도 끄적일 볼펜을 달라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잘 찾지 못하기에 아이가 쓸 볼펜을 한 자루 찾아서 건넨다. 아이는 빨간 머리핀 하나를 앞머리 몇 가닥에 꽂고는 볼펜을 단단히 쥐어 공책에 그림을 그린다. 아이는 무엇을 그릴까. 아이는 무엇을 그리고 싶을까. 볼펜을 단단히 쥔 손으로 그리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는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깜빡 잊는다. 아이는 아버지를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글쓰기를 하고, 아버지는 아이를 살며시 들여다보다가 글쓰기를 잊는다. (4344.8.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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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06 23:26   좋아요 0 | URL
볼펜도 바르게 잡고, 그림도 잘 그리네요.
빨간 핀을 꽂고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이뻐요.

숲노래 2011-08-07 04:20   좋아요 0 | URL
요사이는 주렁주렁 핀꽂기를 좋아하더군요... 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