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에서 빨래하기


 여관은 방 하나 빌려 잠을 자는 집입니다. 잠을 자도록 하는 곳이기에 이곳 임자는 손님이 빨래를 즐거이 하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비데나 씻는통이나 에어컨이나 침대에는 마음을 기울일 테지만, 손빨래를 하도록 크고작은 대야 하나 마련해 두지 않습니다. 물꼭지를 낮은 자리에 하나 빼서 빨래하기 좋도록 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살든 여관에서 머물든 갓난쟁이는 똥오줌기저귀를 내놓습니다. 버스를 타든 길을 걷든 갓난쟁이는 쉬가 마려울 때에 오줌기저귀를 내놓습니다. 물을 쓸 수 있는 곳에서 바지런히 오줌기저귀를 빨고 헹구어야 합니다. 잠을 자는 곳에서 신나게 빨래를 해서 방 곳곳에 옷걸이에 걸쳐 널어야 합니다. 옷걸이를 스무 개쯤 챙겼으나 하루 내내 나오는 갓난쟁이 기저귀에 첫째 아이와 옆지기 옷가지에, 옷걸이 스무 개로는 모자랍니다. 세 사람 빨래를 하면서 내 몫 빨래는 뒤로 미룹니다. 옷걸이에 넌 빨래가 줄어들 깊은 밤에 비로소 내 몫 빨래를 합니다.

 여관 시설이 어떠하든, 여관 씻는방이 어떻게 생겼든, 날마다 주어진 몫만큼 빨래를 합니다. 벽이나 창가가 얼마나 옷걸이를 널기 괜찮은가를 아랑곳할 수 없습니다. 어찌 되든 빨래는 다 해야 하고, 다 한 빨래는 널어야 합니다.

 시골집에서는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 빨래를 하고 글을 쓰다가는, 새벽 여섯 시 무렵에 또 빨래를 했지만, 여관에서는 밤 열한 시 무렵 빨래를 마치고는 곯아떨어져 새벽 여섯 시에 끙끙거리며 등허리 토닥여 일어나서 빨래를 더 합니다. 부디 두 아이가 아침 아홉 시 반까지는 새근새근 자면서 고단함을 털면 좋겠습니다. 고단함을 말끔히 털고 나서, 새 보금자리 찾는 힘겨운 새 하루이지만, 다시금 기운을 내어 바지런히 돌아다닐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4344.9.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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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살다


 살아가는 터전에서 글을 쓴다. 살아가는 사람하고 글을 쓴다.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과 내가 꾸리는 살림을 글로 쓴다. 살아가는 사람하고 어울리는 나날을 글로 쓴다.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나는 시골집 시골다움을 글로 담는다. 시골집에서 네 식구 짐을 꾸려 먼 마실을 나와 새 보금자리를 찾는 동안, 시골집 아닌 여관에서 묵는다. 여관에서 묵는 내내 내 귀로 들리는 소리는 자동차랑 텔레비전 울리는 소리와 에어컨이나 냉장고나 정수기가 전기를 먹으며 끄르릉 끓는 소리. 우리 식구 지난 한 해 살아온 시골집은 텅 비었을 테지만, 시골집 둘레로 갖은 풀벌레가 새벽부터 밤까지 고즈넉히 울겠지.

 귀를 기울이자. 내 마음을 열며 귀를 기울이자. 읍내 여관에서 묵을지라도 냉장고 꼬르륵 소리에 묻히는 저 먼 멧골자락 풀벌레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마음을 열면 이 소리를 고즈넉히 들을 수 있으리라. 마음을 열지 못하면 길가 풀섶 작은 풀벌레 소리조차 못 들으리라.

 나는 내가 먹는 밥과 내가 입는 옷과 내가 자는 보금자리 기운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면서 글을 쓴다. 나는 내가 딛는 땅과 내가 마주하는 살붙이와 내가 사랑하는 하늘땅을 고스란히 맞아들이면서 글을 쓴다. 내 글은 내 사랑이어야 한다. 내 글은 내 삶이어야 한다. 내 글은 내 눈물과 웃음이어야 한다. (4344.9.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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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벼락, 이불빨래


 갓난쟁이가 이불에 똥을 질러서 빨래한 지 이틀 만에 쉬를 크게 했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빨지 못하고 말려서 쓴다. 이러고 하루 만에 다시금 똥을 눈다. 한창 뒤집기를 하려고 바둥거리던 갓난쟁이는 똥을 질펀하게 누고 나서 뒤집는다고 용을 쓰다가 그만 기저귀가 풀려 똥이 이불과 평상에 줄줄 흐르고 만다.

 이른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이불을 빨고 평상을 닦아 마당에 내놓아 말린다. 이윽고 갓난쟁이는 두 번째 똥을 푸짐하게 눈다. 참 푸짐하게 눈다. 배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응가’ 하는 말을 되풀이한다. 갓난쟁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갈 때에는 똥을 더 눈다는 뜻이요, 핏기가 천천히 가시면서 까르르 웃을 때에는 시원하게 다 누었다는 뜻이다.

 다시금 갓난쟁이를 안고서 엉덩이를 씻긴다. 방바닥에 살며시 눕히고 새 기저귀를 댄다. 푸짐한 똥을 떠안은 기저귀를 따순물로 빨래한다. 앞서 나온 오줌기저귀를 함께 빨래한다.

 아기는 아침부터 똥벼락이다. 아마, 어제 음성 할머니 댁에 마실을 다녀오며 바깥에서 오래 보내고 택시를 여러 차례 타느라 많이 힘들었기에, 이렇게 하루를 지낸 아침에 똥벼락을 치는지 모른다. 똥벼락을 선물한 갓난쟁이는 조금 놀다가 어머니 젖을 물고는 새근새근 잠든다. 이러고 나서 첫째 아이가 잠에서 깬다. ‘추워’ 하고 말하면서 바지를 안 입겠다는 아이를 이리 달래고 저리 나무라면서 바지를 아이 앞에 내려놓는다. 아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바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는다. 치마만 입고 싶다고 칭얼거리지만, 저 스스로 춥다고 느끼기에 어머니 웃옷을 커다란 겉옷처럼 껴입었으니 바지를 안 입을 수 없겠지. 이제 첫째 아이랑 부대끼다 보면 어느새 식구들 아침 먹을 때가 되리라. 또다시 눈코를 뜰 수 없이 빙글빙글 도는 새 하루를 맞이한다. (4344.9.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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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다


 새벽 한 시 사십이 분에 깨다. 둘째 기저귀를 살피고 나도 쉬를 한 다음, 한가위 지난 며칠 뒤까지 밝고 맑은 달빛을 느끼고 나서, 조용히 다시 잠들 만하다. 그러나 셈틀을 켠다. 무언가 한 줄이라도 끄적이고 싶다. 아이들이 새근새근 잘 때가 아니면 글을 쓸 수 없다. 삼십 분쯤 지나는 동안, 머리가 도무지 맑아지지 않아 글쓰기를 못하겠다고 느낀다. 아무래도 잠을 자야겠다고, 오늘은 글을 못 써도 어쩔 수 없겠다고 여긴다. 이러다가 갑작스레 마음에 불이 켜지고, 이윽고 두 시간 즈음 더 불꽃을 지피면서 글을 쓴다. 더없이 엉터리이고 그지없이 바보스러운 글과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진일기를 적바림하는 공책에 몇 줄 끄적인다. 참 그렇다. 참말 엉터리이구나 싶은 사진을 볼 때면, 나도 이런 엉터리이구나 싶은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똑바로 살아가며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그러니까, 깊은 새벽녘, 더없이 엉터리인 글을 하나 읽고, 그지없이 바보스러운 사진 몇 장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타올랐다. 이 불길을 한동안 살리고 싶어 보리술 한 모금을 홀짝거린다. 누구는 담배 없이는 글을 못 쓴다 하는데, 나는 맨 마음으로 쓸 글은 다 쓰지만, 잠이 쏟아지는 힘겨운 새벽녘에는 보리술 한두 모금 홀짝이면서 몸에 불을 지핀다. 고마이 붙잡은 글발을 마무리지을 때까지 몸이 버티어 줍사 하고 비손을 드리듯, 사랑스레 나누고픈 글줄을 꽃피우기까지 마음이 따사롭게 이어가 줍사 하고 절을 하듯, 땅콩 몇 알과 보리술 한 모금. (4344.9.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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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편지를 쓰면


 손으로 편지를 쓰면 팔과 팔뚝이 저리다. 찌잉 하고 저릿저릿 울리면서 즐거이 너그러워지는 팔저림이다. 나는 손으로 글을 쓰든 처음부터 자판으로 글을 쓰든, 늘 텍스트파일로 글을 여민다. 누리집에 올려서 셈틀 화면으로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이 글조각에 내 마음조각이 깃들리라 믿는다. (4344.9.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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