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놀이 어린이


 빨래널대에 빨래집게를 가지런히 꽂는 아이는 이듬날 아침 아버지가 빨래널대에 빨래를 널고 난 다음 혼자서 빨래널대를 끌어서 세우고는 빨래를 옮겨 넌다. 빨래마다 빨래집게를 꽂는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바깥에 세우지 않고 집안에 두니까 빨래집게는 안 집어도 되지만, 아이는 이렇게 집으면서 빨래놀이를 한다. 이제 여느 날 빨래를 널러 마당으로 나가면 아이는 금세 따라 나오면서 아버지 일을 거든다. 젖은 빨래를 흙땅에 떨어뜨리는 일이 때때로 있지만, 아이 스스로 집어 아버지한테 건네거나 아이 스스로 옷걸이에 꿰어 빨래널대에 널기를 더 좋아한다. 아이 키에 맞는 조그마한 빨래널대가 있으면 하나 더 장만해서 아이 옷가지만 따로 널도록 하고 싶다.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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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으로 쓰는 글


 빨래를 하면서 손가락에 힘을 준다. 엊그제 책짐을 나르느라 새벽 한 시 가까이까지 너덧 시간 쉬지 않고 등짐을 날랐더니 이듬날에는 손가락에 힘을 넣을 수 없었고, 이틀째에는 그럭저럭 손가락을 쓸 만하다. 이듬날에는 빨래를 하기 벅찼으나 천천히 꾹꾹 누르며 했고, 아이들 씻길 때에도 아이고 아야 허리야 팔이야 하면서도 차근차근 쓰다듬으면서 씻겼다.

 손가락에 힘이 없으니 책을 부치려고 택배종이에 주소와 이름과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면서 적을 때에 몹시 고단하다. 혼자서 택배종이를 다 쓰려 했으나 끝내 옆지기한테 보내는이 주소는 적어 달라고 이야기한다. 손가락에 힘이 없는 만큼 팔뚝과 손목과 어깨에는 힘이 더 없다. 팔뚝과 손목과 어깨로 힘을 못 쓰는 만큼 등과 허리와 허벅지와 종아리와 다리로 쓸 힘 또한 얼마 없다. 이틀쯤 그저 푹 쉬고 싶으나, 느긋하게 쉬지 못한다.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쉬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내 몸에 따라 천천히 일하면서 몸을 푸는 길을 걸어야 한다. 집안일이건 집밖일이건 천천히 하면서 몸을 맞출밖에 없다. 책등짐을 나를 때에도 다른 일꾼은 담배를 물면서 몇 분 동안 쉬지만, 나는 이렇게 쉴 수 없는 몸이라 등짐 부피를 줄이고 천천히 걸어가면서 쉰다. 더 곰곰이 돌이키니, 군대에서 무거운 베낭과 소총과 탄통 들을 잔뜩 짊어지며 멧길을 걸어야 할 때에도 걷는 빠르기를 조금 줄이는 일이 쉬는 일이었다.

 손가락으로 글을 쓴다. 작은 공책에 손가락으로 글을 쓴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그때그때 겪고 느끼는 이야기를 조금조금 글로 옮긴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노라면, 네 살 첫째 아이는 어느새 아버지 곁에 붙어서 저도 글을 쓴다며 제 공책에 글그림을 그린다. 처음 글그림을 그릴 때에는 꼬물꼬물 그림이었는데, 곧 다섯 살 나이에 접어들 첫째 아이는 꽤 글꼴 티가 나는 글그림을 그린다. 곁에서 아이를 바라보며 참 멋지네 예쁘네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나는 내 아버지한테서 무엇을 보며 자랐을까. 나는 내 어머니한테서 무엇을 보며 컸을까.

 손가락으로 글을 쓰면서 우리 아이가 손가락과 손마디와 손바닥에 좋은 느낌을 좋은 사랑을 실어 받아들일 수 있기를 꿈꾼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면서 오늘 하루 고단한 삶을 마무리짓는 땀방울을 곱게 품에 안자고 다짐한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면서 머잖아 우리 집 살림이 시나브로 피면서 책을 잔뜩 쌓은 옛 흥양초등학교 건물과 터를 우리 집숲이자 책숲으로 일구는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꿈꾼다. 늦가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처음으로 면내마실을 다녀왔다. 좋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삶이 좋다. 발가락을 움직이는 삶이 즐겁다. 손가락으로 아이 머리를 감기면서 살며시 쓸어넘기는 결이 좋다. 발가락을 버티며 아이들 안고 시골길 걷는 동안 맡는 풀내음이 고맙다. (4344.11.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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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쓴다


 시를 쓴다. 좋은 사람이 앞으로 좋은 꿈을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마음 가득 바라면서 시를 쓴다. 좋은 사람 삶꿈을 헤아리며 쓴 시는 작은 종이에 천천히 적바림해서 선물로 준다.

 시를 쓴다. 나한테 선물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로 쓴다.

 또 시를 쓴다. 옆지기와 아이들한테 선물하고픈 이야기를 시로 쓴다.

 이 나라 모든 아이들이 함께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시를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나라 어느 아이들을 만나더라도 찬찬히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시로 담자고 생각한다. 맨 먼저 내가 함께 살아가는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 두 아이들이 앞으로 마주할 온누리 아이들을 떠올린다. 모두들 사랑스러운 꿈과 결과 눈빛과 손길로 어깨동무할 좋은 누리가 어떤 모습일까 하고 곱씹으면서 시를 쓴다.

 시를 하나 써낼 때면 기운이 많이 빠진다. 내 기운을 써서 담는 글줄이니까. 내 사랑을 들여 엮는 글월이니까.

 시를 쓰고 난 다음 자리에 드러누워 생각에 잠기다 보면, 어느새 새 기운이 돋고 새 사랑이 자란다. 해마다 맛난 열매를 베푸는 나무들처럼, 시쓰기란 해마다 맛난 마음밥을 나누는 일이로구나 싶다.

 푸성귀와 나무는 한 해에 한 차례 제 몸을 바친 선물을 몸밥으로 내준다면, 사람은 시를 쓰면서 언제라도 제 마음을 온통 쏟은 선물을 마음밥으로 나누는구나 싶다. 시를 쓰기로 다짐하면서 참 좋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호미질일 테고, 바로 이 시쓰기이다.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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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삿날 걸레 빨기


 어제 낮, 충청북도 충주 멧골집 살림짐 꾸리기를 마무리짓는다. 여태껏 숱하게 살림집을 옮기면서 짐차 들어오기 앞서 모든 짐을 다 꾸린 적은 처음이다. 언제나 이삿날까지 짐을 다 꾸리지 못해 허둥지둥했다. 이제 처음으로 아주 느긋하게 이삿날을 맞이한다.

 내가 더 많이 땀흘리고 더 많이 품을 들였으니까 살림짐 꾸리기를 마무리지었다고 할 수 없다. 먼저, 옆지기가 아이들하고 새 보금자리에서 씩씩하고 즐거이 여러 날 지낸다. 다음으로, 옆지기 아버님과 어머님이 자잘하며 손 많이 가는 일을 기꺼이 해 주셨다. 내 둘레 좋은 사람들이 크고작은 손길을 보태어 우리 도서관 새로 여는 일에 큰힘이 되어 주었다. 이 모두가 어우러지기에 나는 아주 홀가분하게 책짐과 살림짐을 꾸렸고, 오늘 새벽 드디어 이 짐꾸러미를 커다란 짐차에 가득 싣고 새 보금자리로 떠날 수 있다.

 옛 멧골집에서는 물을 쓰지 못한다. 물을 쓸 수 있으면 걸레를 바지런히 빨아 집 청소를 할 텐데, 물을 쓸 수 없으니 먼지만 얼추 훔치고 만다. 나중에는 흙먼지를 한쪽으로 몰아 놓기만 한다. 여관으로 걸레 여덟 장을 챙겨 온다. 여관에서 몸을 씻으며 걸레 여덟 장을 빤다. 짐을 꾸리며 한 번도 못 빨며 쓰던 걸레였기에 시커먼 구정물이 끝없이 나온다. 한참을 빨아 구정물이 거의 안 나오도록 한다. 여관 방바닥에 가지런히 펼친다. 걸레들은 금세 마른다.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는다. 이제 이 걸레들은 새터에서 짐을 끌르며 다시 제몫을 해 주겠지. 고맙다.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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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녹여서 쓰는 글


 힘겨운 아픔을 삭여서 쓰는 글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아요. 고단한 나날을 울면서 쓰는 글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아요. 괴로운 눈물을 곱씹으며 쓰는 글이라고 해서 나쁠 수 없어요. 다만, 힘겨운 아픔을 쓰든 고단한 나날을 쓰든 괴로운 눈물을 쓰든, 따순 사랑을 녹여서 쓰는 글일 때에 가장 좋아요.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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