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는 쉴 수 없구나

 


 아침 빨래를 마치고 나서,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떤다. 한창 바삐 손을 놀려 밥과 국과 고구마떡볶음을 마무리지어 밥상에 올리기만 하면 끝인데, 이장님 마을 방송이 흐른다. 마을회관에 낮밥을 차렸으니 마을 분들 모두 나와서 드시라고 이야기한다. 오늘 무슨 날이기에 마을회관에 모여서 밥을? 아이 둘한테 옷을 입히느라 한참 걸린다. 첫째는 머리도 제대로 안 빗은 채 이 바람 드센 날 엉터리로 옷을 입겠다고 억지이고, 둘째는 기저귀를 가는데 끝없이 울어대서 골이 띵하다. 어찌저찌 옷을 입히고 둘째를 안아서 마을회관으로 간다. 어르신들은 일찌감치 모이셨다. 할아버지들은 벌써 다 드시고 두 분만 남고, 할머니들만 남았다. 마을회관에 모이라는 방송이 나오면 언제나 우리 집이 꼴찌.

 

 할머니들이 오늘 동짓날이라 함께 팥죽을 먹는다며 어여 자리에 앉으라 말씀하신다. 그렇구나. 동짓날이라 다 함께 팥죽을 드시는구나.

 

 팥죽을 세 그릇 먹고 둘째를 다시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하고 복닥거리느라, 또 아침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듯 집일을 한 터라, 졸음이 가득한 두 아이를 재우면서 나도 자고 싶다. 그런데, 둘째가 똥을 눈다. 그래, 똥을 누었으면 똥을 치워야지. 아침에 두 차례 누고 낮에 한 차례 더 누네. 젖을 먹으면 젖 먹은 대로 똥이 나오겠지. 따순 물을 받아 밑을 씻긴다. 낯도 씻긴다. 똥기저귀는 바로바로 빨아야 똥물이 빠진다. 똥기저귀를 빨래한다. 빨래하는 김에 옆지기 두툼한 옷가지도 빨래한다. 옆지기 옷가지를 빨래하는 김에 아침부터 낮까지 나온 둘째 오줌기저귀도 빨래하고, 첫째 옷가지 여러 벌을 함께 빨래한다.

 

 바람이 드세고 온도가 똑 떨어진 탓에, 후박나무 빨래줄에 건 빨래는 얼어붙는다. 구름이 지나가 햇살이 나면 바람에 날아갈 듯 펄럭거리던 얼어붙은 빨래가 사르르 녹는다. 고흥은 겨울에 그닥 춥지 않지만, 겨울바람은 되게 드세구나.

 

 어제 해 놓고 다 말렸으나 아직 안 갠 빨래를 갠다. 첫째 아이가 곁에서 거든다. 아침에 해 놓고 다 마른 빨래를 갠다. 첫째는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논다. 나 혼자서 갠다. 그예 저녁까지 내처 집일을 한다. 열 시에 곯아떨어진다. (4344.1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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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장갑 빨래

 


 옆지기 말을 들어 고무장갑 빨래를 하기로 한다. 네 식구 손빨래를 하자니 하루에 서너 차례를 해도 금세 다음 빨래가 쌓다. 집에서 빨래만 하지 않으니 손에 물기 마를 새가 없다. 이러다가 손이 너무 트고 갈라지고 뻣뻣해지고 거칠어질 테니까 빨래를 할 때만큼 고무장갑을 끼어 보기로 한다. 1995년에 홀살이를 할 때부터 손빨래를 했으니까, 열여섯 해 만에 맨손 빨래 아닌 고무장갑 빨래를 하는 셈.

 

 그렇지만, 둘째가 똥을 누어 밑을 씻기고 나서 똥기저귀를 빨래할 때에는 으레 맨손 빨래가 된다. 둘째 밑을 고무장갑 끼며 씻길 수 없으니까. 부엌일을 하다가 빨래를 하거나, 첫째를 씻기고 나서 빨래를 할 때에도 으레 맨손 빨래가 된다. 손에서 물기를 말릴 몇 분이 아까우니 그냥 맨손 빨래가 된다.

 

 요 며칠 두 차례쯤 고무장갑 빨래를 한다. 그러니까, 요 며칠 예닐곱 차례는 그냥 맨손 빨래가 되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면, 물이 찬지 뜨거운지 잘 못 느끼겠다. 옷가지가 잘 비벼지는지, 때는 잘 빠지는지, 잘 모르겠다. 오래도록 맨손 빨래를 한 나머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는 아직 느낌이 와닿지 않는다.

 

 먼먼 옛날 사람들한테는 고무장갑이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내 어머니 젊을 적까지도 고무장갑이란 있을 수 없다. 빨래기계는커녕 고무장갑조차 없던 나날 집일을 도맡던 어머니들은 빨래를 하며 손이 까칠까칠해지고 트고 갈라지고 꾸덕살투성이가 되면서 어떤 마음 어떤 생각 어떤 꿈이었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남자가 여자한테 빨래기계 사 줄 돈은 없어 고무장갑 겨우 사 주며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에 곧잘 실리곤 했고, ‘고무장갑 사 줄 돈조차 없어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이나 동화책에 가끔 실리곤 했다고 떠오른다. 빨래기계 안 사 주어도 되고, 고무장갑 안 사 주어도 되니까, 좋은 보금자리 꾸려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함께 손빨래를 하면 즐거웠을 텐데. 집일을 서로 도우면서 하고, 아이를 함께 사랑하면서 보살피면 참으로 아름다웠을 텐데.

 

 나는 네 식구 빨래를 도맡으면서, 네 식구 빨래하며 쓸 고무장갑도 내가 가게로 자전거 타고 마실하면서 장만한다. (4344.1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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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루빛 글쓰기

 


 누런쌀을 가루로 빻고, 누런쌀을 볶아 가루로 빻는다. 이 가루를 국그릇에 알맞게 담아 작은 상에 올린다. 옆지기가 이 가루를 먹고, 옆지기가 이 가루를 물에 알맞게 섞어 아기한테 먹인다. 첫째 아이는 제 어머니 곁에 앉아 이 가루를 먹는다.

 

 빛깔만 고운 가루일까. 따스한 손길 듬뿍 담긴 가루일까. 햇살과 바람과 맑은 물과 흙내음 고루 밴 가루일까.

 

 곡식가루는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곡식가루가 새로 불어넣은 숨은 사람을 살린다. 새로운 숨으로 살아나는 사람은 씩씩하게 두 발을 디디며 하루를 연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잠들던 꿈누리에서 깨어나며 빛나는 새날을 맞이하겠지. 나이 마흔이 된 어른이든 나이 여든이 된 어른이든,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언제나 빛나는 새날을 나란히 맞아들이겠지.

 

 오늘은 읍내 장날. 네 식구 함께 마실을 다녀올 수 있을까. 마실을 다닌다면 어떤 먹을거리를 장만하면 좋을까. 톳이나 물미역을 장만할까. 다른 싱그러운 먹을거리로 무엇을 헤아리면 좋을까.

 

 달게 잠을 자고 일어날 새 아침에, 어제 하루 쌓인 찌뿌둥한 기운이 말끔히 씻기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다. 내 몸과 마음에 고운 가루빛처럼 고운 생각빛이 천천히 움을 트며 자라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다. 나 스스로 따스한 생각빛을 키우면서 따스한 나날을 누릴 때라야, 내 손으로 짓는 밥이 따스할 수 있다. 고운 가루빛마냥 고운 생각빛을 북돋울 때에 비로소, 내 손을 거쳐 태어나는 글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하고, 따사로이 생각하며, 넉넉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자. 살아가는 결 무늬 내음 빛깔이 찬찬히 어우러지면서 꽃이 된다. 어떤 꽃이 되고픈지는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4344.12.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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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빨래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 때면 으레 대문 옆 동백나무를 바라본다. 참말 천천히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를 바라보며 가까이 서면, 먼저 곁에 있는 뒷간 똥내음이 나지만, 동백꽃에서 살그마니 퍼지는 꽃내음을 함께 느낀다. 뒷간 치우는 일꾼을 불러야 하는데 늘 깜빡 잊는다. 얼른 뒷간을 치우고 집손질도 마무리해야 하지 않나.

 

 집식구 옷가지가 햇살과 동백꽃 내음 함께 마시기를 바란다. 집식구 옷가지에 내 까끌까끌한 손길을 거쳐 스밀 사랑이 깃들기를 꿈꾼다. 집식구 옷가지가 시골마을 예쁘게 일구는 할매 할배 이야기를 조곤조곤 맞아들이기를 빈다. 집식구 옷가지에 이 보금자리에서 꽃피울 보배로운 열매가 녹아들기를 기다린다.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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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15 16:47   좋아요 0 | URL
아, 동백꽃이 피었나요.... 예쁘네.

숲노래 2011-12-15 18:18   좋아요 0 | URL
우리 집이 가장 늦게 피던데 ^^;;
가장 오래까지 피리라 생각해요~ ^__^
 


 꿈결 글쓰기

 


 꿈속에서 글을 썼다. 꿈속에서 나 스스로 눈물을 쏟을 만한 글을 썼다. 꿈속에서 쓴 글을 여덟 줄로 된 시. 이 시를 찬찬히 되읽으면서 참말 가슴이 벅찼다. 그러다 문득, 어, 내가 이 글을 볼펜을 쥐어 빈책에 끄적이지 않았네, 내가 꿈속에서 이렇게 글을 쓰네, 하고 생각하다가 퍼뜩 잠에서 깬다. 첫째 아이가 뒤척이며 동생 곁으로 데굴데굴 굴러 발로 동생 옆구리를 찌른다고 옆지기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눈을 뜨고 일어나니 꿈속에서 쓴 글을 모두 잊는다. 아니, 떠올리지 못한다. 가만히 떠올려 볼까. 꿈속에서 무슨 글을 썼기에 나 스스로 가슴이 벅차 눈물을 쏟을 만했는지 되새겨 볼까.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아마, 내 가슴에 아로새겨진 글일 테니까, 이 글은 언제라도 떠오르겠지.

 

 내 사랑을 글로 쓴다. 내 삶을 글로 쓴다. 내 사람을 글로 쓴다.

 

 나는 내 사랑을 억지로 만들지 못한다. 나는 내 삶을 거짓으로 꾸미지 못한다. 나는 내 사람을 아무렇게나 닦아세우지 못한다. 티없는 넋일 때에 쓰는 글이다. 거짓없는 얼일 적에 쓰는 글이다. 허물없는 꿈인 동안 쓰는 글이다.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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