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12.25.
 : 두 아이 태운 자전거수레

 


- 자전거수레에 아이 둘을 처음으로 태우다. 마을 웃집에 세 살 민준이가 찾아왔다. 민준이 어머님이 둘째를 낳고 몸풀이를 하시느라 민준이를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며칠 맡겼단다. 마을회관에 네 살 벼리를 데리고 찾아가서 함께 놀다가, 두 아이가 회관에서 심심해 한다고 느껴 논둑길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 집으로 함께 와서 몸을 녹이고 놀다가,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 날이 좀 쌀쌀하고 바람이 제법 불어 자전거마실을 멀리까지 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을 웃집 손자 민준이가 자전거수레에 탄 지 얼마 안 되어 꾸벅꾸벅 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잠든다. 아까부터 많이 졸린 얼굴이었으나 도무지 낮잠 잘 생각을 않더니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든다. 마치 우리 집 벼리를 보는 느낌이다. 벼리도 집에서 낮잠을 안 자려 들다가 자전거수레에 타고 함께 마실을 다니다 보면 어느새 꾸벅꾸벅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앞으로 푹 숙이곤 했다.

 

- 자전거수레에 앉으면 마냥 앉아서 달리니까 스르르 졸음이 오는지 모른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은 졸음이 올 수 없고, 앞에서 달리니 땀이 줄줄 흐른다. 아이 하나는 잠들고 다른 아이 하나도 잠들락 말락 한다. 어떡할까 하고 살작 생각하다가 면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수레에서 잠들었대서 바로 회관으로 돌아가 자리에 눕히면 금세 다시 깰는지 모른다. 면까지 다녀오면 우리 집 벼리도 사르르 잠들는지 모르고.

 

- 깊은 시골마을 면소재지는 일요일에 거의 다 문을 닫는다. 작고 깊은 시골마을 면소재지 밥집이라면 면사무소나 우체국 일꾼한테 장사를 할 테니, 애써 일요일까지는 안 연달 수 있으리라.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 벼리를 수레에 다시 태울 때에는 아이가 겉옷 맨 위 단추를 안 꿰려 한다. 수레에 태울 때에는 단추를 다 꿰었는데, 아이가 답답하다며 스스로 끌렀다. 면소재지 들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다. 졸릴까. 추울까. 시골길로 접어들어 볕이 잘 드는 조용한 데에서 멈춘다. 벗겨진 모자를 다시 씌운 다음 아이한테 단추 꿸까, 하고 묻는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추우니까 이런 날에는 단추를 다 꿰어야지, 단추를 안 꿰니 바람이 다 들어가잖아.

 

- 면으로 가는 길은 살며시 내리막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살며시 오르막. 면으로 갈 적에는 두 아이 태운 수레가 그리 힘들지 않다고 느끼나,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두 아이 태운 수레가 이렇게 무거우며 벅차다고 느낀다. 아이 둘을 수레에 태우며 다니는 분들은 허벅지와 등허리가 얼마나 딴딴하려나. 수레를 달아 끌려면 허벅지뿐 아니라 등허리가 튼튼해야 한다. 자전거도 사람도 모두 튼튼해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고 여름이 찾아오면 둘째 아이도 수레에 태울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 내 몸을 알뜰히 추스르고 다스려야겠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워 면내 마실을 다니자면 참말 튼튼하고 씩씩해야겠다.

 

- 호덕마을을 지날 무렵 우리 아이도 새근새근 잠든다. 그러나 집에 닿아 자리끈을 풀고 살며시 안아 방으로 들어가자니 잠에서 깬다. 아이 어머니가 말한다. “눈을 떴잖아. 벼리야, 안기지 말고 내려서 걸어.” 자리에 눕히면 다시 눈을 감고 잠들기를 바라며 살며시 눕힌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방에서 나와 땀으로 젖은 옷을 벗고 저녁 차릴 준비를 한다. 아이는 내가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갈 때에 다시 눈을 뜨고는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단다. 그냥 더 자면 덧나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1-12-27 13:14   좋아요 0 | URL
ㅎㅎ 아빠가 태워주는 자전거 그네로 아이들이 넘 좋아하겠네요.그나저나 한 겨울에는 좀 춥겠는데요^^

숲노래 2011-12-28 04:55   좋아요 0 | URL
지난해 더 추운 날에도 눈 맞으며 자전거를 탔는걸요~ ^^
 


 밤에 쓰는 글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겨우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마감하기까지 오늘을 어찌 보냈는가 돌아보며 눈을 감으며 등허리를 폅니다. 나한테 오늘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아이들한테는, 옆지기한테는 오늘 하루 어떤 나날이었을까요.

 

 갓난쟁이 둘째는 이제 날마다 네 차례쯤 똥을 누는 몸으로 시나브로 굳어져, 언제부터였던가 날마다 똥기저귀를 넉 장씩 빨아야 합니다. 똥기저귀를 빨자면, 아이들을 씻기자면, 빨래를 널자면 걷자면 개자면 갈무리하자면, 하루하루 어떻게 흐르는가를 잊습니다. 그저 이 집안에서 보내는 오늘입니다. 달력에 어떤 날짜가 적힌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날이 춥다 한들 덥다 한들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누가 살았든 죽었든 나하고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 밥을 먹고, 새로 똥오줌을 누며, 새로 말을 배우고, 새로 삶을 누립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새삼스레 웃고 뛰고 박차고 달립니다.

 

 식구들 모두 잠든 밤에 퍼뜩 깹니다. 첫째 아이가 몸을 비트는 소리에 깹니다. 쉬가 마려운가, 오늘은 부디 혼자 일어나서 쉬를 누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래저래 생각하며 눈을 감은 채 기다립니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기에 아이를 부릅니다. 쉬 마렵니, 쉬 마려우면 일어나서 쉬하러 가자. 조용합니다. 부시시 일어나서 아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습니다. 일어날 낌새가 없습니다. 잠꼬대였나.

 

 그만 잠을 깬 바람에 그냥 일어나기로 합니다. 하루 가운데 몇 시간 살짝 조용하게 주어진 이 밤을 누리기로 합니다. 셈틀 화면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옆방에서 잠자는 세 식구를 깨우거나 잠 못 들게 하지 않기를 비손하면서, 이 밤에 글을 몇 꼭지라도 붙잡으려고 합니다. 낮에는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마음을 다잡으며 글을 쓰기 힘들다기보다, 낮 동안 아이들이랑 부대끼며 집일을 꾸려야 하니까 셈틀을 켤 수 없어요. 어제 하루 책읽기는 잠자리에 든다며 세 식구보다 몇 분 먼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드러누워 책 한 쪽 훑으며 끝났습니다. 고작 한 쪽 훑었을까 싶을 때에 두 아이도 이부자리로 찾아들었고, 이부자리에 찾아든 두 아이는 여느 때와 비슷하게 한동안 잠을 안 자면서 노닥거려요. 그래그래, 너희가 이래야 어린이답지, 너희가 이불을 뒤집어쓰기 무섭게 코를 골골 곤다면 어린이다울 수 있겠니. 돌이키면, 너희 아버지도 너희만 한 어릴 적 너희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잠들지 못하도록 이래저래 꽁알거리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겠니. 너희가 보여주는 온갖 몸짓과 목소리가 너희 아버지가 이 밤에 씩씩하게 일어나 글을 쓰도록 해 주는 힘이 된단다. 너희 어머니, 곧 내 옆지기가 이 밤에 꿋꿋하게 눈 부비며 두 손 비비고 글을 쓰게 이끄는 기운이 된단다. 우리 네 식구 살림살이가 아니라면 이 밤에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 네 식구 시골집이 아니라면 깊은 밤에 너희 오줌 누이거나 기저귀를 갈며 일어나 마당에 한두 차례 나와서 밤하늘 올려다보기를 했을까.

 

 고마운 하루는 지나갑니다. 고단한 하루는 마감합니다. 새로운 하루가 찾아옵니다. 새삼스러운 하루를 맞이합니다. 하루를 보내고 하루를 누리는 삶이기에 이 모든 이야기를 글로 빚을 수 있습니다. (4344.12.2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생각 못한 글쓰기

 


 옆지기하고 다섯 차례째 맞이하는 예수님나신날이라고 한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나하나 헤아리자면, 모든 일이 둘이 함께 다섯 차례째 맞이한다. 이제 며칠 뒤면 첫째 아이도 다섯 살로 접어든다. 다섯 차례째 겨울이 지나면 다섯 차례째 봄이고, 이 다음에는 여섯 차례째 여름이겠지. 다섯 차례째를 생각하지 못하며 살아간다면, 앞으로 맞이할 여섯 차례째나 일곱 차례째나 열 차례째를 생각할 수 있을까. 열다섯 차례째나 스무 차례째는 헤아릴 수 있을까.

 

 둘째 아이 기저귀를 갈 때에 함께 잠에서 깬다. 옆지기가 쉬를 누고 오는 동안 둘째 아이를 안고 달랜다. 밤에 기저귀를 갈 때면 왜 이리 우니. 너도 네 누나하고 똑같구나. 다시 자리에 눕는다. 이윽고 첫째 아이도 쉬가 마렵다고 말한다. 혼자 스스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꼭 불러서 함께 가야겠니. 그러나, 이렇게 함께 가는 일도 앞으로 몇 해 뒤면 시나브로 사라지리라. 여섯 살 일곱 살 여덟 살이 되면 저 스스로 쉬를 보겠지. 아니, 예닐곱 살쯤 된다면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바깥으로 나와 뒷간에서 쉬를 눌 수 있으리라.

 

 이제 한 살을 더 먹으면, 글을 쓰며 살아온 지 열여덟 해째 된다. 내 삶 가운데 반토막 즈음 글쓰기로 살아온 셈이다. 이제껏 내 글이 시끌복닥하게 팔린 적 없으나, 네 식구 밥술을 뜨면서 살아간다. 나는 글을 쓰면서 어떤 삶을 일굴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나는 내가 참으로 써야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일까.

 

 아이들은 나와 옆지기를 어버이로 맞이하리라 생각했을까. 두 아이는 나와 옆지기가 저희 어버이인 삶이 흐뭇하거나 즐거웁거나 아름다울까. 아침에 읍내 장마당 다녀오는 버스길, 읍내로 갈 때에는 자리에 앉고 집으로 올 때에는 서서 왔다. 아이는 서서 오며 아버지 바짓가랑이만 붙잡는다. 할머니들이 같이 앉자고 불러도 안 간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함께 버스를 탄 이웃 할아버지한테서 능금 한 알을 얻었다. 제 주먹보다 훨씬 큰 능금을 꽁꽁 언 손으로 들며 싱긋 웃는 아이를 바라본다. 나는 이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줄 생각이나 했을까.

 

 나는 어떤 책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시골마을 보금자리를 얻어 어느 땅뙈기에 어떤 씨앗을 심을 수 있을까. 나는 우리 책들을 어느 터에 예쁘게 건사하면서 슬기로운 책쉼터를 꾸밀 수 있을까. 네 식구 살아가는 이 시골마을에 어떤 도시 어느 이웃이 시끌벅적한 도시살이를 훌훌 버리고 찾아오도록 이끌 수 있을까.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나요. 시골에서 땅을 파고 글을 파며 사랑을 일구고 꿈을 꽃피우면 즐겁지 않나요. 별빛이 좋아요. 한겨울 찬바람에 기저귀가 꽁꽁 얼어붙다가는 따사로운 햇볕에 스르르 녹아 금세 마르니 좋아요. 억새와 갈대가 이루는 밭이 좋아요. 자전거로 신나게 달리는 조용한 시골길이 좋아요. 아이들 손을 잡고 자동차 걱정 없이 마음껏 넓은 길을 거니는 느낌이 좋아요.

 

 내가 누릴 좋은 삶을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내가 치를 고된 삶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언제나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나날이에요. 모두 남김없이 맞아들이는 삶이에요. 내 코가 냄새를 못 맡을 줄 처음 목숨 얻어 태어날 때에 어찌 알았겠어요. 냄새를 못 맡는 코이다 보니, 중·고등학교 다니며 똑같은 밥·반찬인 똑같은 도시락을 먹어도 물리거나 질리는 일이 없었겠지요. 홀살이를 하던 때에도 늘 같은 밥·반찬만 마련해서 먹고, 네 식구랑 살아가면서 새로운 밥·반찬을 스스로 먼저 떠올리지 못하고 말아요. 옆지기가 일깨우는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어도 이렇게 일깨우는 말을 들었을까 궁금하고, 나는 내 옆지기한테 어떤 목소리로 어떤 삶을 일깨우며 지내는가를 돌아봐요. 좋은 새날 고마이 누리는 하루라면, 좋은 글 새로 써서 적바림하는 하루로 보내고 싶어요. (4344.12.25.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전거쪽지 2011.12.13.
 : 포근한 겨울날

 


- 충청북도 멧골집에서는 택배 부칠 일이 있을 때에 으레 우체국에 전화를 걸었다. 가깝다 싶은 우체국조차 칠 킬로미터 넘게 자전거를 달려야 하니까.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책꾸러미를 실으며 이만 한 길을 달리기란 그닥 힘들다 할 수 없지만, 수레에 아이랑 책꾸러미를 싣고 멧등성이를 넘다 보면 무게가 자꾸 뒤로 쏠린다. 몸이며 자전거며 몹시 고단하다. 전라남도 시골집에서는 택배 부칠 일이 있을 때에 딱히 전화를 걸지 않는다. 가까운 면 우체국까지 이 킬로미터만 달리면 되기도 하지만, 이만 한 길은 수레에 아이와 책꾸러미를 태우고 사뿐사뿐 달리며 즐겁다. 책꾸러미 무게가 제법 되어도, 옆 마을을 살짝 에돌며 달리곤 한다. 더구나 십이월 한복판에 접어들었으나 날씨가 포근하다. 아이는 수레에 가만히 앉기만 하니까 찬바람 때문에 추울까 걱정스러운데, 면에 닿으니 아이는 “나 더워. 옷 벗을래.” 하고 말한다. 참말 날이 포근하다.

 

- 우체국에 닿아 책꾸러미를 부친다. 아이를 수레에 태워 문방구에 갈 즈음, 지죽 가는 길목에 있는 도화헌미술관 아저씨하고 스친다. 도화헌미술관 아저씨는 새로 하는 전시를 알리는 책자를 들고 이곳 우체국까지 왔다. 그렇구나. 고흥군을 두루 돌면서 도화헌미술관 전시를 알리는구나. 나는 자가용 없이 자전거로만 다니는데, 자전거를 몰며 우리 도서관 행사를 알리러 다닐 수 있을까.

 

- 약국에 들른다. 뜨거운 국에 손을 온통 덴 둘째한테 쓸 천을 산다. 문방구로 간다. 문에 바를 창호종이를 사려 한다. 그런데 문방구는 문이 잠겼다. 벌써 밥때가 되었나. 아직 열두 시가 안 되었는데 문을 잠그셨네. 어떻게 해야 하나 한동안 망설인다. 아이가 걷고 싶다 하기에 걸으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버스역 옆 가게에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싶어, 아이한테 자전거에 타라 이르고는 그리로 간다. 가게 앞에 갑오징어며 여러 물고기를 늘어놓은 가게 아주머니한테 여쭌다. 창호종이가 있다. 한 장에 800원씩 한다. 여섯 장 산다.

 

- 더 볼일 없겠지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집에서 전화가 온다. 둘째가 붕대 감긴 손을 이래저래 휘두르다가 붕대가 쏙 빠졌단다. 부지런히 집으로 달린다. 땀이 비질비질 난다. 이맘때 인천에서 자전거를 몰면 으레 손이 시리니 장갑을 끼는데, 이곳에서는 아직 장갑을 끼지 않는다. 장갑을 끼지 않아도 손이 시리거나 차갑지 않다. 따스한 날씨는 그야말로 고마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 식구들 다 함께 보건소 마실을 한다. 집에서 보건소까지는 걸어서 오 분쯤.

 

- 집으로 돌아와 헌 수레에 앞바퀴를 붙인다. 새로 받은 수레는 자전거에 붙인 채 그대로 둔다. 벌써 일곱 해째 나와 함께 달린 수레는 그야말로 애 많이 썼다. 이 수레는 그동안 길을 얼마나 달렸던가. 짐을 얼마나 실었던가. 서울에서 두 딸아이 자전거수레에 태우던 아저씨가 쓴 수레를 받았다. 두 딸아이는 벌써 중학생이라 하던가. 중학생이니까 수레에 탈 수 없겠지. 우리 집 첫째는 아버지가 일찍부터 자전거에 붙이고 끌고 다니던 수레에 오래오래 탔고, 둘째는 머잖아 이 수레에 함께 타겠지. 나중에 우리 둘째가 무럭무럭 크고 나면 이 새 수레도 퍽 헐거나 닳으리라. 그때에는 이 수레도 헌 수레처럼 더는 달리기 힘들 때를 맞이하겠지. 더 달릴 수 없을 만큼 낡고 닳으면 깨끗이 닦아서 도서관 한쪽에 세우고는 예쁘게 꾸며 주리라.

 

- 첫째 아이 벼리가 앞바퀴 붙은 헌 수레를 밀면서 마당에서 논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1-12-23 08:47   좋아요 0 | URL
벼리는 확실히 치마를 좋아해요 ^^
그런데 둘째는 어쩌다가 손을 데었나요 에구...

숲노래 2011-12-24 06:35   좋아요 0 | URL
치마돼지랍니다... -_-;;;

뜨거운 국에 손을 척 담갔거든요 ... @.@
 

자전거쪽지 2011.12.22.
 : 동짓날 자전거

 


- 생각해 보니 곧 예수님나신날이요 새해이다. 한 해 끝무렵에는 우체국 일꾼이나 택배 일꾼 모두 바쁘다. 이맘때에 편지를 띄우자면 서둘러야 한다. 부랴부랴 소포꾸러미 여럿을 싼다. 경기도 일산에서 살아가는 옆지기 어버이와 충청북도 음성에서 살아가는 내 어버이한테 보낼 우리 집 두 아이 사진을 꾸린다. 우체국에 전화를 건다. 택배를 가져갈 수 있느냐고 여쭌다. 오늘은 가져가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 가져갈 수 있단다. 접수가 늦으면 택배도 늦게 가겠지. 동짓날을 맞이해 바람이 대단히 드세게 불며 온도가 뚝 떨어졌지만, 이 바람을 뚫고 우체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 집을 나서려 하는데 옆지기가 “버스 타고 가요.” 하고 말한다. “아, 버스?” 버스 지나가는 때를 살핀다. 읍내에서 16시 40분에 나오는 버스가 있다. 그렇다면 17시 00분에 우리 마을에 지나가겠구나. 시계를 보니 딱 17시 00분. 문을 열어 내다 본다. 아직 버스 지나가는 소리 없고 버스 지나가는 모습 보이지 않는다. 부리나케 가방을 메고 양말을 신고 신을 꿰며 달음박질을 한다. 십 분을 기다린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 집으로 돌아온다. 버스가 오늘은 일찍 지나간 듯하다. 자전거에서 수레를 뗀다. 자전거로만 면에 다녀오기로 한다. 대문을 나서려다가 아차, 발목끈을 묶지 않았다. 바보스럽군. 다시 집으로 들어가 발목끈을 한다. 또 빼먹지 않았겠지, 살피며 벙어리장갑을 끼고 달린다.

 

- 옛 흥양초등학교 옆을 지날 무렵, 몹시 드센 바람으로 귀가 시리다고 느끼다. 그래, 이런 날은 털모자를 써서 머리와 귀를 가려야지. 장갑만 끼어서 되나.

 

- 면으로 가는 길은 살그마니 내리막이라 퍽 빨리 달릴 만하다. 우체국 때에 늦지 않는다. 가게에 들러 땅콩을 산다. 신집에 들러 털신을 산다. 6000원. 지난해와 견주어 1000원 오른다. 나는 2004년부터 고무신을 신었고, 이때부터 지난해까지 털신 값은 5000원이었다. 고흥에서는 고무신만으로 겨울을 날 수 있으려나 생각했는데, 동짓날만큼은 발이 시려 안 된다. 지난겨울까지 신던 털신은 쥐가 쏠아서 못 신기에 새 털신을 산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살그마니 오르막. 더군다나 더욱 드센 맞바람을 가르며 달려야 한다. 아주 힘겨이 발판을 밟는다. 맞바람이 대단히 드세기에 자전거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도, 걸을 때보다는 한결 빠르지 않니?’ 하고 생각하며 힘을 낸다. 용을 쓰며 맞바람을 뚫었고, 드디어 마을 어귀에 닿는다. 파란대문 우리 집 앞에서 자전거를 내린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자전거에 수레를 다시 붙인다. 바람이 많이 부니 자전거랑 수레를 붙여야 넘어지지 않는다. 벙어리장갑은 퍽 좋다. 둘째가 무럭무럭 크면 쓰라고 미리 산 벙어리장갑인데, 나한테는 살짝 작으나 손가락장갑보다 한결 따스하다. 자전거를 달릴 때에는 손가락을 나누어 잡는 장갑보다, 이렇게 손가락이 하나로 모이는 장갑이 살과 살이 서로 닿으며 더 따스하다고 느낀다.

 

- 이제 바깥문을 밀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골이 띵해 비틀거린다. 찬바람이 너무 셌나 보다. 골도 띵하고 뒤꼭지도 아프다. 다음에는 털모자 쓰기를 꼭 잊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