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쓰는 글

 


 아이들 자고 옆지기 자는 깊은 밤과 새벽에 잠을 잘 수 없다. 왜냐하면, 이동안 지난 하루 겪은 일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나 살아온 숱한 나날 되짚어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이 밤과 새벽이 더없이 고맙고 기뻐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때가 아니라면 나한테는 글쓰기 붙잡을 겨를이 없어 그만 잠을 쫓고야 만다.

 

 아니야, 아무리 이렇더라도 이래서는 안 되지. 오늘 하루 집일을 다 끝내지 못해 밀린 빨래가 있잖아. 얼른 빨래를 해야지. 그러고 나서 예쁘게 잠들어야 새로 맞이할 이듬날에 아이들 밥을 먹이고 집일을 새롭게 돌보면서 또 하루를 보내지. 이 밤에 잠을 안 자면 이듬날 아이들 어떻게 씻기고 어떻게 집일을 건사하겠니.

 

 아, 허리가 아파도 방바닥에 드러누워 허리 펼 1초가 아깝다. 팔뚝이 저려도 자판 두들기기를 멈추어 손목 주무를 1초가 아쉽다. 하고픈 말은 쏟아지고 짊어질 내 일거리는 어서 와 나를 치러 달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래, 이 밤, 이른 한 시에 아이들 옷가지 신나게 빨래해서 방마다 옷걸이로 꿰어 걸어 주리라. (4345.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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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똥빨래

 


 새벽 세 시 이십 분. 둘째 갓난쟁이가 똥을 푸지게 눈다. 밤 새벽 내내 칭얼거리며 옳게 잠을 못 드는 아이가 똥을 오지게 눈다. 밤 열두 시 조금 넘어 일어나 엊저녁 밀린 오줌기저귀 빨래 석 장이랑 똥기저귀 빨래 석 장을 해치운 아버지는 새벽 세 시에 똥기저귀 한 벌(기저귀 하나, 기저귀싸개 하나, 바지 하나)을 다시금 해치운다. 새해 첫날 엊저녁 일찌감치 몸이 힘들어 자리에 누운 보람인가. 일찍 잠자리에 들어 밤 열두 시에 깨어났기에 이렇게 밀린 빨래를 하고 밤에 똥을 실컷 눈 아이 뒤치닥거리를 할 수 있는가.

 

 둘째 밤똥빨래는 오랜만이라고 느낀다. 둘째며 첫째며, 여기에 옆지기에다가 나까지, 네 식구가 몸이 영 시원찮다. 나는 시원찮은 몸으로 집일 이것저것 돌본다. 이것저것 돌보다 보면 이내 지쳐, 밥을 먹고 나서 곧바로 드러눕고야 만다. 드러누워 한 시간쯤 허리를 펴면 다시금 이것저것 일손을 붙잡는다. 그런데, 몸이 힘들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꾸 골을 부린다. 아이한테 골을 낸다. 내 몸이 아이들 칭얼거림이나 투정을 받아주기 어렵다 할 만큼 참으로 삐걱거리기 때문일까. 삐걱거리는 몸뚱이로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아니, 삐걱거리는 몸뚱이인 만큼 한결 따사로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둘째가 왕창 눈 똥에는 땅콩 반 알이 섞인다. 너 언제 땅콩을 주워먹었니. 용하게 이 녀석이 똥과 함께 나와 주었구나. 이제 속이 조금 시원하니. 네 똥기저귀를 빨며, 네 아버지가 이틀째 똥을 못 눈 채 보냈다고 느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에 네 손발톱을 깎으면서 아버지 손발톱은 아직 몇 주째 못 깎는구나. (4345.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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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인사 글쓰기

 


 이웃과 동무가 손전화 쪽글로 새해인사를 띄운다. 나는 어느 누구한테도 먼저 새해인사를 띄우지 못했다. 아니, 새해라고 느낄 겨를이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내 어버이한테도 옆지기 어버이한테도 전화를 걸지 못했다. 이곳저곳 인사할 어른이 있으나 아무한테도 인사를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마을 어른한테조차 인사를 다니지 못하고, 오늘은 아침과 낮에 서너 시간 즈음 자리에 드러누워 보냈다.

 

 날마다 어김없이 맞이하는 삶이라고 여기기에 딱히 새해 첫날이든 태어난 날이든 무슨무슨 날이든 더 기리거나 헤아리지 않으며 살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퍽 어린 나날부터 나 태어난 날이든 무슨무슨 날이든 그닥 기리거나 헤아리지 않았다고 느낀다.

 

 내 어버이 두 분부터 무슨무슨 날이라 해서 옳게 기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명절이나 제사가 닥치면 여러 날 설밥이며 한가위밥이며 제사밥이며 장만하느라 허리가 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고 심부름을 했기 때문일까.

 

 살아가는 즐거움이나 보람 하나를 오래도록 놓거나 놓친 채 한 해 두 해 보내며 서른여덟을 맞이했는지 모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들한테 살아가는 즐거움이나 보람을 옳게 물려주지 못하는지 모른다. 아버지 몸이 고단하다는 빌미를 들어, 이 아이들이 조금 더 넓거나 깊게 이웃과 동무를 사귀면서 인사하는 매무새를 들이도록 이끌지 못한다 할 수 있다.

 

 새해인사를 하자면 몸부터 튼튼하고 씩씩해야 하는구나. 새해인사를 하자면 하루하루 새롭게 되새기며 고마이 여길 줄 알아야 하는구나. 새해인사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날마다 기쁜 빛과 사랑을 한가득 누리는 사람이구나. (4345.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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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05 03:24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바람입니다.
된장님 글 보다보면, 너무 짜안할 때가 많단 말이예요.
제발 건강하시고,,, 손빨래도 좋지만, 너무 고되어 보이신단 말이예요.
그러니 털털이 세탁기라도 좀 장만하셔요.
문풍지랑 창호지 붙이다 몸살나시고, 지난번에는 집보러 다니시고 몸살나시고. ㅠㅠ

저두 걱정하는데, 옆지기님과 어린 딸은 얼마나 앞으로 걱정하시겠어요!
새해에는 된장님 가족 모두 슈퍼맨처럼 튼튼하시기 바랍니다. ^^

숲노래 2012-01-05 08:22   좋아요 0 | URL
튼튼하고 씩씩하며 즐거이 잘 살아야지요.
ㅜ.ㅡ

고맙습니다~~
 


 넷이 쓰는 글

 


 혼자 살아가는 때에는 혼자서 생각하고 밥먹으며 쓰는 글입니다. 둘이 살아가는 때에는 둘이서 생각하고 빨래하며 쓰는 글입니다. 셋이 살아가는 때에는 셋이서 생각하고 마실하며 쓰는 글입니다. 넷이 살아가는 때에는 넷이서 생각하고 복닥이며 쓰는 글입니다.

 

 네 사람은 서로 한식구이지만 서로 다른 목숨입니다. 네 사람은 함께 한 집에서 지내지만 서로 다른 몸과 마음으로 움직이며 집일을 건사합니다. 네 사람은 네 가지 빛깔로 무지개를 그립니다. 네 사람은 네 가지 꽃을 피우고 네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넷이 쓰는 글은 넷이 일구는 삶입니다. 넷이 읽는 글은 넷이 사랑하는 삶입니다. 넷은 서로서로 안고 부빕니다. 넷은 서로한테 안기고 새근새근 잠듭니다. 넷은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로 손을 내밀며 서로 눈을 맞춥니다. 좋은 날을 맞이하면 좋은 생각을 빛냅니다. 좋지 못한 날을 맞이하면 좋은 생각으로 잘 타이릅니다.

 

 두 살, 다섯 살, 서른세 살, 서른여덟 살, 이렇게 네 사람은 새해 첫날을 엽니다. 아침 일찍 똥을 두 차례 푸지게 눈 두 살 아기는 서른여덟 살 아버지가 씻기고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넙니다. 다섯 살 아이랑 서른여덟 살 아버지는 감 여덟 알을 썰어서 먹습니다. 두 살 아이는 서른세 살 어머니 품에서 젖을 물며 잠듭니다. (4345.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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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은 손으로 쓴다

 


 글은 손으로 쓴다. 연필을 잡고 쓰는 글이 아니고, 자판을 두들기며 쓰는 글이 아니다. 이 손으로 살아가는 결이 고스란히 글로 다시 태어난다. 이 손으로 집식구를 따스히 쓰다듬거나 어루만진다면, 이 손으로 내 이웃과 동무를 따스히 쓰다듬거나 어루만지는 글을 빚는다. 이 손으로 집식구 맛나게 먹을 밥을 마련해서 차린다면, 이 손으로 내 이웃과 동무한테 맛나게 즐길 마음밥 될 글을 빚는다. 이 손으로 내 살붙이 고마운 옷가지 정갈히 빨래한다면, 이 손으로 내 이웃과 동무 누구나 아프거나 고단한 마음을 달랠 정갈한 사랑씨앗 깃드는 글을 빚는다. 이 손으로 집식구 따스한 보금자리 포근히 보살핀다면, 이웃과 동무 어우러지는 터전 포근히 보살피는 넋 북돋우는 글을 빚는다.

 

 다섯 살을 하루 앞둔 아이가 플라스틱칼로 빵을 썬다. 서툴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손놀림으로 빵을 썬다. 아이는 아이 손에 맞게 빵을 썬다. 아이는 손을 거쳐 제 몸을 움직인 하루를 깊이 아로새기겠지. 아이는 온몸으로 글을 쓰고, 온삶으로 글을 빚으며, 제 열 손가락 고루 움직이면서 글을 쓴다. 글은 손으로 쓴다.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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