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근새근 산들보라 안고 쪽글 쓰기

 


 오늘 읍내마실은 버스때에 빠듯하게 맞추어 나온다. 여느 때에는 으레 옆지기가 둘째를 업고 마실을 나왔으나, 오늘은 바삐 나오느라 업을 겨를이 없어 내가 품에 안고 버스 타는 데로 먼저 나온다. 열한 시 십오 분 읍내 나가는 버스이지만, 우리는 열한 시 십팔 분에 나온다. 집에서 버스 타는 곳을 내다보며 짐을 꾸려 나오는데 열한 시 십오 분이 넘도록 버스는 지나가지 않았다. 버스 타는 데에 닿고 삼 분이 지난 열한 시 이십일 분에 군내버스가 들어온다.

 

 오늘 처음으로 첫째 아이가 어머니하고 나란히 앉는다. 첫째 아이는 어머니 곁에 찰싹 붙어서 내내 종알종알 이야기꽃 피운다. 나는 둘째를 품에 안고 자리에 앉는다. 자리에 앉아 앞가방에서 작은 빈책을 꺼내어 첫째 아이가 종알거리는 말마디 몇 가지를 옮겨적는다. 그러고는 조금 큰 빈책을 꺼내어 오늘 장마당에서 무얼 장만하면 좋을까를 미리 생각하며 적는다. 그리고, 이렇게 시골버스 타며 둘째를 품에 안고 마실을 나오는 느낌을 끄적인다.

 

 아버지 품에 안긴 둘째는 아주 얌전히 둘레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조용해지고, 이윽고 새근새근 잠든다. 나는 목에 건 사진기를 살며시 오른손으로 쥐고는 접사 기능으로 맞추어 한손으로 초점을 맞추면서 사진을 찍어 본다. 접사를 쓸 수 있으니 아이를 품에 안고도 아이 귀여운 볼살이랑 잠든 아이 받친 내 왼손과 내 왼손으로 쥔 볼펜이랑 빈책을 함께 담을 수 있다. 버스는 덜덜 떨리면서 신나게 잘 달린다. (4345.1.1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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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1-10 09:35   좋아요 0 | URL
헤에, 진짜 사랑스런 볼입니다.

숲노래 2012-01-10 09:58   좋아요 0 | URL
네, 참 예뻐요~

라로 2012-01-10 11:18   좋아요 0 | URL
5살정도 되니까 저런 볼이 사라져요,,ㅠㅠ

숲노래 2012-01-10 13:31   좋아요 0 | URL
이제 조금씩 사라지니까
세 살 가까이 되면,
또는 올 가을쯤에는
조용히 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마녀고양이 2012-01-10 19:20   좋아요 0 | URL
된장님,
샤름벼리랑 산들보라를 부를 때 전체 이름 다 부르셔요?
전 그게 궁금했답니다.

숲노래 2012-01-11 03:41   좋아요 0 | URL
다 부르기도 하고,
앞이나 뒤만 부르기도 하고
그래요~
 


 따사로운 겨울햇살 글쓰기

 


 겨울이라 해서 차가운 햇살이 아니에요. 봄에도 겨울에도 한결같이 따사로이 비추는 햇살이에요. 내 글에 앞서 내 삶부터 겨울날 따순 햇살 같은 꿈길이 될 수 있도록 오늘 하루 누리고 싶어요. 겨울햇살 따사로이 내리쬐며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서 둘째 갓난쟁이 기저귀 보송보송 말라요. 집식구들 겨울날 두툼한 이불도 곁에서 햇볕을 듬뿍 머금어요. 마당에서 마음껏 달리기하는 첫째 아이한테도 겨울햇살 넉넉히 드리워요. 봄햇살도 좋고 여름햇살도 좋으며 가을햇살도 좋아요. 겨울햇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으면서 고맙고 기뻐요. 겨울에 햇살이 없다면 얼마나 차갑고 쓸쓸할까요. 겨울에 햇살이 드리우지 않으면 얼마나 슬프며 어두울까요. 겨울에 햇살을 비추지 않으면 얼마나 외롭고 허전하며 갑갑할까요. 봄을 여는 햇살 같은 글도 좋아요. 여름을 빛내는 햇살 같은 글도 좋아요. 가을을 나누는 햇살 같은 글도 좋아요. 그리고, 나는 내가 태어난 십이월에 부는 차디찬 바람을 포근하게 달래는 햇살 같은 글이 무척 좋아요. 겨울아이인 나는 겨울날 하얀 들판을 따숩게 맑은 손길로 보듬는 햇살 같은 글을 쓰고 싶어요. (4345.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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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 다 널었으면 날아

 


 아버지가 아침마다 신나게 해서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너는 빨래를 바라보며 슬슬 좇아나와 함께 빨래널이를 하는 첫째 아이. 너도 일손 거들며 다 널었으면, 이제 신나게 마당을 달음박질치다가 껑충 뛰어 활짝 날렴. 너는 훨훨 날며 온누리를 마음껏 돌아볼 수 있겠지. (4345.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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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1-08 19:54   좋아요 0 | URL
행복한 따님입니다. ^^

숲노래 2012-01-08 20:12   좋아요 0 | URL
날마다 늘 즐거울 수 있도록
예쁘게 사랑하자고
날마다 다짐해요~
 


 손으로 쓰는 편지봉투

 


 2007년부터 1인잡지를 만들었습니다. 1994년 12월 29일부터 1인소식지를 만들었습니다. 새 잡지가 나올 때면 이 잡지를 받아보는 분한테 봉투에 책을 넣어 부쳤습니다. 처음에는 받는이 주소와 보내는이 주소까지 모두 손으로 적는데, 봉투를 쓰다 보면 손이 덜덜 떨리더군요. 나중에 보내는이 주소 찍은 봉투를 마련해서 손품을 줄였습니다. 그러나 받는이 주소를 타자로 옮겨 종이에 뽑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셈틀을 꼼지락거리며 뽑아서 가위질을 하나, 곧장 손으로 봉투에 주소를 적으나 품과 겨를은 서로 매한가지라고 느꼈어요.

 

 내가 혼자 만드는 잡지를 받아보는 분이 오백 사람을 넘고 천 사람이 넘는다면 차마 손으로 봉투를 다 쓰지 못할 테지요. 봉투 천 장 넘게 받는이 주소를 적는다 생각하면 손이 남아나겠느냐 싶습니다. 아마 이쯤 된다면 잡지 부치는 일을 도맡을 일꾼을 한 사람 두어 품과 겨를을 나누어야겠지요.

 

 고흥집에서 조그맣게 마련한 잡지를 부치려고 봉투에 주소를 하나하나 적습니다. 봉투에는 우리 집 옛 주소가 찍혔기에 옛 주소를 죽죽 긋고 새 주소를 적습니다. 새 주소는 옆지기가 고맙게 적어 줍니다. 한참 이렇게 하다가 아무래도 옆지기 손까지 너무 힘들게 하는구나 싶어 새 집 주소를 종이로 뽑아 봅니다. 앞으로도 몇 백 장을 이렇게 해야 할 테니까요.

 

 주소 다 적고 풀을 발라 마무리한 편지꾸러미를 가방에 차곡차곡 담습니다. 손글씨 편지봉투를 우표 붙여 보내고 싶어 우체국 일꾼한테 묻습니다. 시골 작은 우체국까지 우표가 내려오지 않아 우표로는 붙이지 못한다고 얘기해 줍니다. 셈틀로 직직 뽑는 딱지만 쓴다고 합니다. 일이 수월하기로는 셈틀 딱지가 수월할 텐데, 나로서는 혼자 소식지 만들어 혼자 봉투 쓰고 혼자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서 붙이던 1995년부터 하던 일을 언제부터인가 우표 없이 보내기만 하니, 손으로 쓴 봉투가 참 멋쩍습니다. 나는 손으로 주소 적은 봉투에 우표를 붙여 띄운 편지가 눈물나게 고맙다고 느껴, 나도 봉투에 손으로 주소를 적고는 우표를 붙이고 싶은데, 언제나 우표붙이기에서 척 하고 걸립니다. 다음에 읍내에 갈 때에는, 읍내 조금 큰 우체국에 우표가 있느냐고 여쭐 생각입니다. (4345.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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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1-06 05:43   좋아요 0 | URL
1인 잡지도 만드신다니, 참 많은 일을 하시네요~~~
아~ 작은우체국에는 우표가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손으로 쓴 편지를 받는 것도 즐거운 일이죠.^^

숲노래 2012-01-06 07:13   좋아요 0 | URL
1인잡지 만든 지는 참 오래되었어요.
1인소식지를 1994년부터 만들었으니까요 @.@

gimssim 2012-01-06 15:33   좋아요 0 | URL
한 자 한 자, 장인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역설의 삶을 사시는 님의 저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숲노래 2012-01-06 17:27   좋아요 0 | URL
손으로 글을 쓰면 느낌이 참 좋아요.
책이란, 손으로 쓴 글을 담아
사람들한테 사랑을 들려주는 이야기꾸러미라고 느껴요.
 


 눈이 와도 빨래널기

 


 충청북도 멧골집에서 겨울을 나던 때가 떠오르지 않는다. 빨래가 꽁꽁 얼어붙더라도 해가 마당으로 따숩게 비칠 때에 내다 널었던가. 날마다 빨래를 여러 차례 하면서 늘 오늘 빨래만 돌아보거나 살필 수 있지 않느냐 싶다. 그래도 인천 골목동네에서는 여러 해 살았기 때문인지, 바깥마당에 내다 널던 빨래는 그럭저럭 떠오른다. 워낙 해가 잘 드는 집에서 살았으니 빨래널기는 걱정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살림집 될 보금자리를 고를 때에는, 첫째로 해가 얼마나 잘 드는가이다. 무엇보다 해가 잘 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빨래할 자리가 넉넉해야 한다. 한쪽에서 아이가 씻고 한쪽에서 아버지가 빨래할 만해야 한다. 부엌을 넓게 쓰면서 부엌 한켠에서 식구들 앉아 밥을 먹도록 한갓져야 하는 줄은 옆지기랑 함께 살고부터 배웠다. 혼자서 오래 살다 보니 부엌 넓게 쓰기는 그닥 안 헤아리곤 했다.

 

 고흥에도 눈이 내려 쌓이기도 하는구나 하고 처음으로 느낀 엊그제, 눈이 쌓이든 말든 빨래는 해서 해바라기를 시키려고 생각한다. 다 마친 빨래를 바가지에 담아 마당으로 나온다. 아이가 곁에서 거드는 척하다가 눈놀이를 한다. 하나하나 빨래줄에 넌다. 아이들 옷가지가 후박나무 빨래줄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시름이 다 가신다. 그나저나, 빨래를 널기 무섭게 바람이 되게 매몰차게 분다. 이러다 기저귀 다 찢어질라. 하도 되게 부는 바람이라 해가 나도 기저귀 빨래는 금세 얼어붙는다. 겨울이 춥디추운 데에서 살던 북녘땅 옛사람은 아이들 기저귀 겨울 빨래를 어떻게 했을까. (4345.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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