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큰거리는 팔로 글쓰기

 


 저녁이 찾아오고 아이들은 졸리면서 잠자리에 누우려 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잠자리로 파고든다. 등허리를 펴고 누우니 팔뚝이 퍽 저리다. 팔뚝 주무를 힘이 없어 그냥 누운 채 눈을 감고 끙끙거리며 생각한다. 내가 오늘 하루 어떤 일을 얼마나 했다고 팔뚝이 저린가. 아이를 오래오래 안거나 업었기에 팔이 저린가, 빨래를 많이 해서 팔이 저린가, 집 안팎을 치우거나 갈무리했다고 팔이 저린가, 무얼 했다고 팔이 저린가.

 

 자리에서 부시시 일어나 빈책을 찾는다. 모로 드러누워 빈책 뒤쪽에 몇 글자 적는다. ‘시큰거리는 팔’이라고 적는다. 시큰거리는 팔이지만, 이 팔로 글을 몇 줄 적고 싶다고 생각한다. 몸이 고단하더라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자고 다시금 생각한다. 한숨짓는 나한테 옆지기가 묻는 말을 생각한다. 아무 대꾸를 못하고 생각만 하다가 어느새 잠들고 말았지만, 새벽에 다시 일어나 곰곰이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어느 만큼 어떻게 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아이가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생각한 적 있었나. 섣불리 어떤 틀을 지우지 말자고만 생각하면서, 막상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며 스스로 아름다운 길을 걸어야 좋을까를 잊거나 잃지 않았는가.

 

 나부터 내 삶이 어떠한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가 생각한다. 나부터 어떠한 사람 어떠한 꿈 어떠한 사랑을 꽃피우기를 빌며 글을 쓰는가 헤아린다. 아직 나부터 똑똑하거나 튼튼히 선 생각이 없기에, 내 옆지기와 우리 아이들 꿈과 사랑을 생각하지 못하며 흘러오지 않았느냐 싶다.

 

 팔이 시큰거리면 시큰거리는 대로 글을 쓰면 된다. 시큰거리는 대로 집일을 하고, 시큰거리는 대로 내 길을 걸으면 된다. 시큰거리는 팔이 말끔해진다면, 말끔해진 대로 집일을 하고, 말끔해진 대로 내 길을 걸으면 된다. 고단하면 고단한 대로 집식구들과 부대끼고, 홀가분하면 홀가분한 대로 집식구들하고 꽃피울 사랑을 찾으면 된다. 나 스스로 좋은 꿈을 즐거이 꾸면서 하루를 빛낼 때에 내 옆지기와 우리 아이들 예쁘게 살아갈 꿈을 마음속으로 알뜰살뜰 그릴 수 있겠지. 새 아침에는 새 마음으로 거듭나는 사람으로 살자고 생각하며 이 새벽을 누리자. (4345.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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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물 빨래

 


 찬물로 설거지를 오래 하면 손이 시리다. 그러나 푸성귀를 헹굴 때에는 찬물로 해야 한다. 김이나 매생이처럼 바다에서 나는 풀을 거둘 때에는 차디찬 바닷물에 고무장갑 낀 손으로 하나하나 건진다. 고무장갑 없던 지난날에는 바닷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김이나 매생이를 건졌을까. 굴이나 조개를 겨울철에 어떻게 캤을까. 흙일 하는 사람이 맨손으로 흙을 만졌듯, 바닷일 하는 사람도 노상 맨손으로 물을 만지지 않았을까.

 

 감자·고구마·당근 들을 맨손으로 찬물 헹구기를 하며 문득 생각해 본다. 둘째가 똥을 누었을 때 따순 물이 없다며 찬물로 밑을 씻겨야 할 때에는, 몹시 놀라고 싫겠지. 아이들 함께 살아가는 집에서는 늘 따순물을 쓸 수 있어야 하는구나. 빨래를 할 때에도 김이 폴폴 나는 뜨신 물이 아니라면 똥기저귀 똥이 제대로 빠지지 않는다. 오줌기저귀도 이와 마찬가지이고, 여느 옷가지도 이와 매한가지이다. 따뜻한 물로 빨래를 해야 때가 잘 빠진다.

 

 따순 바람이 온누리를 살가이 보듬고, 따순 물이 집일 하는 사람 손을 살뜰히 보듬는다. 따순 사랑이 사람들을 포근히 감싸며, 따순 글과 이야기가 사람들 넋을 예쁘게 어루만지겠지. (4345.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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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고 싶은 글, 읽고 싶은 글

 


 깊은 밤이나 새벽에 부시시 일어나 글을 쓸 때면 자꾸자꾸 ‘내가 혼자 살던 나날’이 떠오른다. ‘네 식구 함께 살아가는 나날’에는 이 책 저 책 눈에 뜨이는 책들이 있어도 선뜻 손에 쥐어 읽지 못한다. 더욱이, 이러한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어도 막상 쓸 겨를이 없다. 그러나, 네 식구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내가 혼자 살던 나날에는 옳게 들여다보지 못하던 대목을 찬찬히 들여다보곤 한다. 혼자 살던 나날에는 애써 장만하지 않아도 될 만한 책을 이냥저냥 장만해서 이냥저냥 읽었을 테지만, 네 식구 함께 살아가는 나날에는 그야말로 복닥복닥 바쁘고 벅찬 틈바구니에서 나와 살붙이들 삶을 나란히 밝히거나 보듬을 만한 책을 가려서 읽자고 생각하곤 한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저희 아버지가 쓴 글을 읽을 날이 있으리라. 그렇지만, 굳이 아이들한테 읽히려고 쓰는 글이 될 수는 없다. 아이한테 읽힐 수 있는 글이기도 하겠지만, 이보다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며 마음으로 우러나 기쁘게 온 사랑 쏟는 글이 되어야지 않겠느냐 싶다. 참말 먹고 싶은 밥을 먹고, 참말 꾸리고 싶은 삶을 꾸리며, 참말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겠지. 착하게 사랑하는 길을 즐거이 걷고, 맑게 살림하는 길을 신나게 거닐며, 예쁘게 글을 쓰는 길을 차근차근 가자. (4345.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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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1.31.
 : 시골집 달밤 촉촉한 길

 


- 해 떨어진 저녁나절 첫째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에 다녀오기로 한다. 오늘은 집에서 저녁밥 차리지 말고 바깥밥을 먹자고 생각한다. 시골마을 면내에서 사먹을 만한 바깥밥은 마땅하지 않아, 중국집과 닭집과 빵집, 이 셋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 중국집과 닭집은 전화로 시킬 수 있고, 빵집은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야 한다. 어느 쪽으로 할까 하다가 빵집으로 고른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한 지 퍽 되었다고 느껴, 한겨울 1월 저녁나절이지만 자전거를 몰고 싶다. 겨울철 자전거마실은 찬바람 듬뿍 마셔야 하지만, 전라남도 고흥은 한겨울에도 꽤 따스하다. 오늘 저녁은 바람이 그닥 안 부니까, 낮까지 비가 흩뿌려 길바닥이 젖었어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예전에 쓰던 수레에 달린 등불을 뗀다. 새로 쓰는 수레에 등불을 달려 한다. 그런데, 등불 받침대가 톡 하고 부러진다. 드라이버로 받침대를 풀어 새 수레에 달려고 조이다가 이 모양이 되다니. 자전거에 붙이는 등불 받침대가 쇠붙이라면, 또는 스테인리스라면 얼마나 좋을까. 플라스틱은 너무 잘 부러진다. 하는 수 없이 등불만 수레 뒤쪽에 유리테이프로 붙인다.

 

- 밤길을 달린다. 한겨울이라 하지만 이곳은 늦가을과 같다. 살짝 서늘하면서 손이나 얼굴이 얼어붙지는 않는다. 풀벌레 소리는 듣지 못하나, 자전거 달리는 소리만 듣는다. 수레에 탄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저기 달이 떴네. 구름이가 깜깜하지 말라고 달이 하얗네.” 하고 말한다. 자전거가 달리니 “달이 따라오네.” 하고 말한다.

 

- 굽이진 길에서 뒷거울로 아이를 살피다가 깜빡 굽이를 놓치며 미끄러질 뻔하다. 옆으로 미리 꺾어야 했는데, 등불 없는 시골길을 달리면서 굽이에서 미리 돌지 못한 탓에 서둘러 꺾다가 살짝 삐끗했다. 마주 달리는 자동차이든 뒤따르는 자동차이든 하나도 없기 때문에 건너편 찻길까지 넘어가면서 오른돌이를 한다.

 

- 수레에 앉은 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등불 없이 깜깜한 시골길에 아이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혼자서 마실을 한다면 그냥 싱싱 빨리 달리겠지만, 이처럼 아이를 태운 저녁나절 마실길이니 느긋하게 달리면서 노래를 즐길 수 있다.

 

- 면에 닿아 빵집에서 빵을 산다. 가게에 들러 마실거리를 산다. 집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등불은 없다. 아이는 이 깊은 시골 저녁 자전거마실을 어떻게 느끼려나. 우리 시골에서는 이맘때, 그러니까 저녁 일곱 시를 살짝 넘은 이맘때만 되어도 그냥 깜깜한 밤이다. 도시에서라면 저녁 일곱 시는 한창 불 밝히며 번쩍번쩍할 때라 하겠지. 아침을 빨리 열고 저녁을 일찍 닫는 시골 터전이, 풀과 나무와 사람과 들짐승 모두한테 가장 걸맞다 할 보금자리가 아니겠느냐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 집으로 돌아가는 깜깜한 찻길에 마주 달리는 자동차를 둘 만난다. 이 자동차는 어쩐 일로 이 외진 시골을 구비구비 돌며 달릴까. 그나저나, 이 자동차 두 대는 등불을 위로 치켜든 채 달린다. 앞에 자전거가 마주 달리는 줄 뻔히 알면서 등불을 밑으로 내리지 않는다. 왼손으로 눈을 가린다. 마주 달리는 자동차가 불을 치켜들면 자전거를 모는 이는 길을 볼 수 없다. 길이 더 깜깜해진다. 밤에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마주 달리는 자동차나 자전거가 있을 때에 마땅히 불을 내리깔아야 한다. 걷는 사람이 있을 때에도 불을 내리깔아야 한다. 마주 달리는 자전거와 사람을 가장 헤아리는 이라면 아예 불을 끈다. 예전에 여덟아홉 시간쯤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다 보면, 아주 드물게 ‘등불을 끈 채 마주 달린’ 자동차를 만났다. 이처럼 마음을 살뜰히 쓰는 운전자는 한국에서 만나기 너무 힘든가. 아니, 자동차를 모는 이로서 밤에 등불을 내리까는 일은 ‘밑마음’이 아닐까. 등불을 내리깔 줄 모르는 운전자라 한다면, 운전면허를 취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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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는 아버지 곁으로 기어오기

 


 둘째를 씻긴다. 씻긴 아이를 방으로 안고 간다. 씻긴 아이한테 옷을 새로 입힌다. 둘째는 방에 두고 아이 씻긴 물이 가득한 씻는방으로 간다.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한다. 한참 비빔질과 헹굼질을 하는데, 뒤에서 방바닥 척척 때리는 소리가 난다. 뭔가 하고 뒤돌아보니 둘째가 기어서 씻는방으로 다가온다. 곧, 씻는방 문턱에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다가는 바닥 물 흐르는 자리에 손을 대려 한다. 물을 만지고 싶구나. 그러나 빨래하는 아버지는 아이가 바닥에 손을 대지 않게 허벅지를 내밀며 막는다. 이런 모습으로 빨래를 잇는다. 아이가 아버지 허벅지에 두 손을 척 대고 발을 버티어 선다. 허벅지에 닿은 아이 손이 차갑다. 아이구, 이렇게 차가운 손으로 물놀이를 하겠다고? 여름이면 몰라, 겨울이잖니. 아버지는 허벅지로 버티며 빨래를 더 한다. 네가 씻은 이 물이 아직 따스할 때에 빨래를 해야 하거든. 둘째는 아버지 허벅지에 기대어 선 채 빨래 구경을 한다. 옳거니, 네 아버지가 네 옷가지랑 기저귀를 어떻게 빨래하는지 보고 싶니. 그러면 잘 보고, 무럭무럭 자라서 네 누나랑 함께 너희 옷가지를 신나게 빨렴. 너희 이불도 너희가 기쁘게 빨렴. 어느덧 빨래를 다 마칠 무렵까지 아버지 허벅지에 기대어 서며 구경하던 둘째는, 이제 다 되었다 싶을 때에 허벅지에서 손을 내리더니 뒤돌아선다. 두꺼운 겉옷은 씻는방에 걸어 물이 떨어지도록 하고, 나머지는 바가지에 담는다. 이제 방에 널려고 하니, 아이도 아버지를 따라 척척 긴다. 방으로 들어가 옷걸이에 빨래를 꿰어 널 때에, 첫째가 일을 거든다. 아버지가 열 몇 점을 꿰고, 첫째가 석 점을 꿴다. (4345.1.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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