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아버지한테 기어오는 둘째

 


 둘째 아이는 어느덧 꽤 재게 길 줄 알면서 혼자 이곳저곳 누비고 다닌다. 겨울날 방에만 있으면 그닥 누빌 만하지 않기 때문인지, 자꾸 방문을 밀치고 마루로 나갔다가 부엌에 갔다가 끝방에 갔다가 한다. 아버지는 아침 낮 저녁으로 세 차례 남짓 빨래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며칠 앞서부터 둘째는 아버지가 빨래하는 곳으로 볼볼 기어 찾아온다.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때리면서 기는 소리가 들릴라치면, 어느새 내 뒤에서 기웃기웃하며 들여다본다. 한 이십 분쯤은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린다. 자칫 떨어질까 싶어 문턱에 엉덩이를 디밀고 복복 비빔질 헹굼질 하다 보면, 둘째는 내 엉덩이와 등허리를 턱턱 잡으며 일어서며 들여다보곤 한다. 가만히 보니, 둘째는 문턱이나 문간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다. 스스로 제 몸을 잘 간수하는구나 싶다. 이렇게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 보았다 싶으면 또 방바닥을 철썩철썩 때리는 소리를 내며 마루로 간다.

 

 더 갓난쟁이였을 때에는 그냥 손으로 콱 쥐었으나, 이제는 손가락 하나를 뻗어 살 대 보곤 한다. 둘째를 안고 뒤꼍이나 마을 나무 가까이 다가서면서 ‘자, 여기 봄을 기다리는 새눈을 좀 보렴.’ 하고 이야기할 때에도 손가락 하나를 먼저 뻗어 살 댄다. 동백꽃 봉오리한테도 손가락 하나를 뻗어 살 댄다. 어머니가 숟가락에 떠서 내미는 젖떼기밥에도 손가락 하나를 뻗어 살 대기도 한다. 아버지가 빨래하는 씻는방에서도 손가락을 뻗어 빨랫물 흐르는 바닥에 손가락 하나를 살 대곤 한다. 둘째가 똥을 눈 다음 똥기저귀를 빨 때에도, 둘째는 아버지 허벅지에 안긴 채 몸을 뒤로 돌려 똥물 빠지는 기저귀 빨래를 들여다보다가는 손가락을 뻗어 똥물을 만지려 한다.

 

 참말, 만지고 입에 넣고 생각하면서 둘레를 헤아리는 어린이로구나 싶다. 첫째 또한 이렇게 자랐겠지. 첫째 때에는 내가 너무 모르는 한편, 어린이 넋과 꿈을 살피지 못해서 이 같은 모습을 꾸밈없이 바라보지 못하기 일쑤였다. 아이를 여럿 키우는 어버이라면, 밑으로 새롭게 태어나 크는 목숨하고 복닥이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다 다르면서 다 같이 깃든 아름다운 사랑과 삶을 읽으리라. 옆지기랑 아이와 함께 내 하루를 고맙게 여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345.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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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2.16.
 : 자장자전거

 


- 저녁 다섯 시 십 분. 자전거를 끌고 면내 우체국으로 간다. 이듬날 갈까 싶기도 하지만, 그냥 우체국만 얼른 들렀다 돌아오기로 한다. 첫째 아이는 어김없이 아버지를 따라나선다. 아버지가 바지를 갈아입고 양말을 신을 무렵 “나도 갈래. 나도 아버지 따라 갈래.” 하고 말하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긴다.

 

- 한낮을 지난 뒤 자전거마실을 아이랑 함께 할라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수레 한쪽에 기대어 잠들곤 한다. 가만히 앉아 수레에 이끌리는 동안 아침부터 쌓이고 밀린 졸음이 왈칵 쏟아지는구나 싶다. 수레에 앉아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이 자전거는 ‘자장자전거’인가?

 

- 수레에 앉아 아버지랑 마실을 다니는 아이는 늘 조잘조잘 떠들거나 노래를 부른다. 수레에 앉은 아이가 조용하다면 졸립다는 뜻이다. 졸릴 때에는 아주 조용하며 얌전하다. 이러다가 어느새 고개를 톡 떨군다.

 

- 자장자전거를 타고 늦은 낮잠을 자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수레끈을 푼다. 안아서 방으로 들이려 하는데, 아이 어머니가 나와서 아이를 안는다. 나는 대문을 닫는다. 자전거랑 수레는 집 한쪽에 기대어 놓는다. 땀을 식히고 물 한 잔 마신다. 자전거마실을 하며 이제 날이 따스해지려나 생각해 보는데, 따스해지려다가 다시 찬바람 불고, 찬바람 불다가 살짝 포근하고, 이럭저럭 되풀이한다. 곧 따스한 바람만 부는 철이 찾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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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2.7.
 : 된바람

 


- 어떻게 된바람 부는 날 우체국을 다녀온다. 그렇다고 이 된바람이 가라앉고 나서 우체국에 갈 수 있지도 않다. 보내야 할 편지가 있으면 우체국에 다녀와야 하는데 바람이 너무 모질어 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하루나 이틀쯤 지나고서 바람이 가라앉으면 고맙지만, 하루나 이틀을 기다리지만 바람이 잦아들지 않으면, 그냥 길을 나설밖에 없다.

 

- 면내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도 된바람이 드세다. 참 드세다. 나야 자전거를 몬다지만 수레에 앉아서 함께 가는 아이는 아주 춥겠다. 햇살은 따사로이 비추지만 바람은 자전거가 휘청거리도록 분다. 그래도 면내로 가는 길은 얕은 내리막이기에 그렁저렁 달린다. 우체국에 들른 다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어를 높이고 선 채 힘껏 발판을 밟아도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용을 쓰면서 한 발 두 발 구른다. 걸을 때보다는 조금 더 빠르다는 생각으로 겨우 자전거를 끈다.

 

- 바람이 되게 드세기 때문에 수레 덮개를 내리기로 한다. 뒷거울로 살피니 아이는 몸을 앞으로 폭 숙인다. 바람이 너무 불기 때문이리라. 웬만한 바람에는 아랑곳하지 않던 아이인데. 덮개를 내리려고 자전거를 멈추니 아이가 몸을 일으킨다. 바람도 바람이지만 졸립구나. “바람이 너무 불어 덮개를 내릴게. 덮개 내릴 테니까 코 자.” 덮개를 내리며 달리는데 아이는 멍한 눈으로 바깥을 바라본다. 이러다가 이내 한쪽으로 고개를 기대고는 잠든다.

 

- 고작 2.1킬로미터 길이지만 바람이 드세기에 한 번 다리쉼을 한다. 어쩜 이런 날 자전거를 끌고 나오나 싶지만, 이런 날 우체국에 들러야 하니까, 봄을 기다리는 겨울 들판이랑 파란 빛깔 하늘이랑 하얀 빛깔 구름이 얼크러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둘째가 제 두 다리로 걸어다닐 무렵이면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다닐 테니, 머잖아 끌 ‘두 아이 수레’는 이만 한 무게를 버틸 수 있게끔 하늘이 날 담금질한 셈으로 치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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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하늘 빨래줄, 하얀 기저귀

 


 아이 둘을 낳아 함께 살아가는 나날이 아니었으면, 여느 골목집 사진에 널쩍하게 펼쳐진 하얀 기저귀천이 바람에 흩날리는 사진을 바라보며 ‘어, 여기 아기가 있구나. 참 복닥거리며 바쁘고 재미나겠구나.’ 하고 느끼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 오줌기저귀를 빨아 햇살 머금는 마당에 내다 널며 파란하늘을 올려다볼 때에, ‘이렇게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나오면서 햇살을 느끼고 햇살을 기저귀에 담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첫째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나서 둘째 아이를 맞이했습니다. 어느덧 다섯 해째 기저귀 빨래를 잇습니다. 둘째가 기저귀를 떼자면 이태는 있어야 하니, 앞으로 두 해를 더해서 일곱 해 동안 기저귀 빨래를 하며 살아간다 하겠군요. 그즈음 셋째를 낳는다면 아마 열 해 남짓 기저귀 빨래로 한삶을 누리겠구나 싶은데, 셋째를 낳을는지 못 낳을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넘치는 빨래를 어찌 짊어지느냐 싶으나, 생각해 보면 첫째 때와 견주어 둘째 기저귀 빨래는 한결 수월하게 해요. 셋째가 우리한테 찾아오면 셋째 기저귀 빨래는 두 아이 기저귀 빨래보다 조금 수월하게 하리라 생각해요.

 

 마당에 드리운 후박나무 빨래줄에 대나무 바지랑대를 겁니다. 기저귀가 한결 잘 마르라고 바지랑대를 받치고는 기지개를 켭니다. 기지개를 켜면서, 기저귀 말려 주는 파란하늘 햇살이 참 곱다고 느낍니다. 파란하늘 사이사이 하얗게 붓질하는 구름을 바라보며,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누런 흙땅 사이사이 하얗게 펄럭이는 기저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햇살을 머금고 바람을 마시며 흙내음 맡는 기저귀는 아이가 엉금엉금 기는 나날 곁에서 예쁘게 어루만지는 포근한 손길이 되어 주기를 빕니다. (4345.2.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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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2-17 16:42   좋아요 0 | URL
햇살이 참 따스해요 보여요,

숲노래 2012-02-17 18:07   좋아요 0 | URL
오늘 어제도 햇살은 따스한데
바람은 싱싱 부네요.. ㅠ.ㅜ

하늘바람 2012-02-17 18:17   좋아요 0 | URL
참 이쁘네요. 하늫도 기저귀도
그런데 빨아 쓰시기 참 힘드실텐데
정말 대단하셔요

숲노래 2012-02-17 18:52   좋아요 0 | URL
빨래는 그리 힘들지 않아요.
이래저래 하다 보면,
아이들하고 더 오래 더 따스히
놀 겨를을 제대로 못 내는 일이
미안해요..
 


 무엇을 쓰는가

 


 나는 무엇을 먹는가 생각합니다. 내가 먹는 밥과 내가 읽는 책과 내가 쓰는 글은 언제나 한동아리가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터 어떤 마을 어떤 보금자리에서 살림을 일구느냐고 생각합니다. 내가 꾸리는 살림과 내가 읽는 책과 내가 쓰는 글은 늘 한몸 한마음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길을 걷는지 생각합니다. 내가 걷는 길과 내가 읽는 책과 내가 쓰는 글은 한결같이 만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글로 쓰느냐는 무엇을 먹느냐입니다. 무엇을 글로 엮느냐는 어디에서 사느냐입니다. 무엇을 글로 빚느냐는 어떤 길을 걷느냐입니다.

 

 살아가는 길에 따라 글을 쓰기 때문에, 무엇을 쓰느냐 하는 일로 골머리를 앓지 않습니다. 더 잘난 삶이 없고 더 못난 삶이 없기에,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더 뛰어난 일이나 더 어리숙한 일이 없는 만큼, 어떤 이야기를 글로 담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는 삶이 될 때에 나 스스로 사랑하는 꿈을 싣는 글을 씁니다. 나 스스로 기쁘게 누리는 하루가 될 때에 나 스스로 기쁘게 나눌 글을 씁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몸속에 품으며 글쓰기를 배웁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글 한 줄을 씁니다. 큰아이는 마당을 뒹굴면서 글쓰기를 가르칩니다. 작은아이는 아침저녁으로 똥을 푸지게 누며 기저귀 빨래를 내놓으니 글을 예쁘게 읽습니다. (4345.2.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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