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가연님의 "럭키짱에서 삶글에 이르기까지."

국어사전에서 '톺아보다'라는 낱말을 찾아보셔요.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고 '오자'라고 말한다면, 어쩐지 너무 싱겁네요.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거나 살피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일은 어려울는지 모르지만, 마음을 기울여 생각한다면, 말에 담을 넋을 살필 수 있어요.

 

 님이 쓰신 글에서 한 가지만 짚어 본다면, '마찬가지'라는 낱말은 외따로 쓸 수 없어요. '이와 마찬가지'처럼 쓰든지 '그와 마찬가지'처럼 쓰거나 해야 올발라요. 그런데, 이런 말씀씀이를 둘레에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둘레 사람들도 제대로 모르니까, 모두들 잘못 말하거나 글쓰는 줄 모르면서 얄궂거나 뒤죽박죽이 되고 만 말로 넋을 담아내요.

 

 말과 글로 사랑을 빚지 못하기 때문에, 말과 글로 사랑을 빚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제 생각으로는, 에세이를 굳이 삶글로 바꾸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냥 수필이라 하면 돼요. 삶글로 쓰고 싶으면 삶글이라 하면 되지요. 시를 포엠이라 할 까닭이나 소설을 노블이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기면, 수필은 그냥 수필이라 하고, 때로는 산문이라 하면 넉넉하니까, 에세이를 이야기할 까닭이 없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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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3-25 06:53   좋아요 0 | URL
왜 '톺아보다'가 '잘못 적은 글'이라고 여길까? 왜 '돌아보다'를 잘못 적었다고 여길까?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처음 듣거나 보는 낯선 낱말'이 있다면, 나 스스로 아직 배우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한 낱말이구나 하고 여기면서, 국어사전 한 번 들추어 새로 배우면 즐거울 텐데, 왜 한국사람은 스스로 한국말을 넓고 깊으며 새롭게 배우려 하지 못할까.

'톺아보다'가 '잘못 적은 글'이 아니라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한 낱말'이라고 여길 수 있는 가슴이라면, 책 하나를 읽을 때에도 더 새롭게 거듭날 수 있겠지.
 


 천천히 읽고 천천히 쓰고

 


  삶을 천천히 읽고 글을 천천히 씁니다. 삶을 후딱 보내며 글을 후딱 씁니다. 삶을 메마르게 바라보는 동안 글을 메마르게 씁니다. 삶을 사랑하는 내 손길을 살려 글을 사랑하는 내 손길로 즐거운 나날을 누립니다.


  책을 읽는 마음이란 삶을 읽는 마음입니다. 삶을 읽는 마음이란 사람을 읽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읽는 마음이란 사랑을 읽는 마음입니다.


  나는 어떤 책을 찾으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가 돌아봅니다. 나는 어떤 삶을 누리고 싶어 오늘 우리 집 살붙이하고 복닥이는가 되새깁니다. 나는 어떤 사랑을 꽃피우고 싶어 오늘 이곳에서 어떤 살림을 돌보는가 곱씹습니다.


  좋은 꿈을 누리고 싶어 책읽기인가요. 좋은 꿈을 나누고 싶어 글쓰기인가요. 좋은 꿈을 이루고 싶어 삶읽기인가요. 좋은 꿈을 보듬고 싶어 사랑읽기인가요.


  철에 따라 날에 따라 아침이면 알맞게 해가 뜹니다. 알맞게 바람이 불고, 알맞게 풀과 나무가 자라며, 알맞게 구름이 흐릅니다. 봄을 맞이해 봄꽃이 피어나고, 겨울을 맞이해 뭇꽃 뭇풀이 시듭니다. 모든 삶이 천천히 흐릅니다. 모든 이야기가 천천히 태어나고 스러집니다. 천천히 둘러보고 천천히 가슴에 담습니다. 천천히 어루만지면서 천천히 살아갑니다. (4345.3.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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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을 뜯는 마음


  첫째 아이를 데리고 논둑으로 가서 쑥을 뜯을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첫째 아이가 바지를 몰래 벗고는 치마만 입고 돌아다니기에 이 녀석, 이렇게 치마가 입고 싶은가 싶다가도, 빗줄기 아직 그치지 않아 서늘한 이 날씨에, 이렇게 바지 입으라는 소리 하나 안 듣고 몰래 바지를 벗는 아이를 데리고 쑥을 뜯으러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둘째 아이를 데리고 나가자고 생각하는데, 둘째 아이 기저귀를 들여다보니 똥을 누었습니다. 그래, 똥 치우고 가자. 둘째 아이를 안습니다. 기저귀를 벗기고 밑을 씻깁니다. 새 기저귀를 대고 새 바지를 입힙니다. 우산을 들고 논둑에 섭니다. 쑥이 흐드러지던 논둑인데 며칠 사이에 논둑이 휑뎅그렁합니다. 아뿔싸. 논둑을 태우셨구나.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쑥이 무럭무럭 자라날 때까지 지켜보자고 했는데, 그만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잿더미가 된 논둑이지만, 이 잿더미 사이사이 제비꽃 봉우리가 보입니다. 너희는 이 불더미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니. 너희는 용케 불더미에서 몸을 비껴 꽃을 피울 수 있는 셈이니.


  둘째 아이를 한손으로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우산을 받습니다. 제비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쑥을 뜯습니다. 거의 모두 잿더미와 함께 사라졌지만, 이곳저곳 쑥은 싱그럽게 잎줄기를 뻗칩니다. 빗소리를 듣고 빗방울을 맞습니다. 빗방울 살포시 안은 쑥줄기를 작은 그릇에 담습니다. 작은 그릇 하나만큼 뜯으면 한 끼니 쑥국 끓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더 많이 뜯어 더 많이 먹을 수 있지만, 꼭 요만큼 한 끼니로 삼자고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바지는 안 입고 치마만 입은 첫째 아이가 마루문을 열어 줍니다. 아이야, 너랑 한결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웃음으로 날마다 서로 마주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4345.3.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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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는 사진

 


  두 아이를 씻기고 빨래를 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빨래나 밥하기나 청소처럼, 집에서 날마다 으레 자주 하는 일거리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고 생각한다. 마침 첫째 아이가 통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기에 얼른 사진기를 가져온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 이렇게 씻기면서도 막상 아이 사진을 찍자고 생각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하루 내내 아이랑 복닥이며 아이들 온갖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왜 아이들 씻길 때에는 사진을 찍자고 생각하지 못할까. 아무래도 후다닥 씻기고 재빨리 빨래를 마쳐야 다른 집일을 더 일찍 끝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사진으로 찍자면 가장 쉽게 가장 흔히 찍을 만한 집일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막상 ‘사진쟁이가 가장 안 찍는’ 모습이 바로 집안일 하는 삶. 저마다 집에서 날마다 으레 하는 일을 사진으로 담아서 나눈다면 얼마나 재미날까. 다 다른 살림새와 다 다른 이야기를 꽃피우며 얼마나 앙증맞고 놀라울까.


  이른바 ‘생활사진’이니 ‘다큐멘터리’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 사진을 들여다보아도, 빨래하는 삶이나 밥하는 삶이나 밥먹는 삶이나 설거지하는 삶이나 아이들이랑 노닥거리는 어버이 삶이나, 이런저런 흔하고 수수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일이 아주 드물다. 골목길 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는 사람들조차, 골목집 빨래줄마저 사진으로 그닥 안 찍기 일쑤이니, 이 나라에서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셈일까. (4345.3.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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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손

 


  바야흐로 따뜻한 날을 맞이하니, 여러모로 할 일이 많다. 그러고 보면, 어느 시골집이나 겨울철에는 곰이나 다람쥐가 겨울잠을 자듯 웅크리며 느긋하게 쉬고, 들꽃 흐드러지는 새봄부터 차츰 바빠지기 마련이다. 언제나 맞아들일 집일은 날마다 같은 크기요, 우리한테 논은 없으나 뒤꼍 땅뙈기가 있어 밭으로 삼자면 일거리가 꽤 될 테고, 이제부터 도서관 책꽂이랑 책을 알뜰히 갈무리해야 한다. 첫째 아이는 아주 쉬잖고 뛰어놀아야 할 나이요, 둘째도 무럭무럭 자란다. 마음을 제대로 건사하지 않는다면 이 숱한 일을 치르지 못한다.

 

  봄맞이 빨래를 실컷 하느라 손가락 마디가 쩍쩍 갈리지며 트는가 하고 생각했다. 가만히 보니 빨래는 빨래대로 두툼한 겉옷을 많이 빨아야 하니 팔뚝이 저리기까지 하지만, 다른 일거리가 줄줄이 잇다는 만큼, 손가락이며 손바닥이며 손목이며 쉴 겨를이 없다. 글을 쓴다는 일이란, 어떤 삶을 꾸린다는 이야기가 될까. 밥을 마련하고 옷을 짓고 집을 돌보는 손으로 글까지 쓴다고 하는 일이란, 어떤 사랑을 펼치겠다는 이야기가 될까. 옆지기를 아끼고 아이들을 어루만지는 틈을 다시금 쪼개어 글을 쓴다고 하면, 어떤 꿈을 이루려는 나날이 될까.


  이제 시골마을 흙일꾼이라면 누구나 실장갑을 끼고 일한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실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가락 마디마디 트고 갈라지며 쑤시지 않은 데가 없으리라. 헌책방 일꾼은 실장갑을 여럿 끼고, 실장갑 사이에 비닐장갑을 덧낀다. 하루 내내 쉴 짬이 없을 뿐더러 물을 자주 만져야 하는 일꾼들 손이란, 한결같이 숨을 들이마시는 염통처럼, 한결같이 핏망울 흐르는 핏줄처럼, 한결같이 움직이는 온몸 힘살처럼, 목숨 하나 받아 마지막 숨을 쉬고 고요히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씩씩하고 튼튼하게 일하는 손이라 하겠지.


  문득 아이 손을 잡는다. 아이 손이 참 작다. 아직 어리니 손이 작을 테지. 하루하루 손이 커질 테고, 머잖아 아버지 손보다 커질 수 있겠지.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손을 얼마나 잡아 주었을까 궁금하다. 나는 내 아이들과 옆지기 손을 얼마나 자주 오래 따사로이 잡는지 궁금하다. 서로서로 손마디와 손가락과 손바닥과 손등을 따사로이 느끼며 저녁나절 곱게 접으며 잠자리에 든다. (4345.3.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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