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글쓰기

 


  새가 지저귄다. 개구리가 운다. 경운기가 지나간다. 바람이 분다. 두 아이가 조잘대며 노래한다. 빨래가 마른다. 후박나무 꽃송이가 천천히 터진다. 마을방송이 울려퍼진다.


  소리를 듣는다. 방문을 닫으면 바깥소리가 거의 안 들린다. 그러나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창호종이 바른 문 사이로 개구리와 들새와 꽃송이와 바람과 햇살과 밭흙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글을 쓴다. 나는 내가 듣는 소리를 몸으로 삭히며 글을 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가려서 듣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소리를 얼결에 듣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나한테 찾아오는 온갖 소리를 가만히 듣곤 한다.


  뭇소리가 내 글을 이룬다. 뭇소리가 내 삶을 빛낸다. 뭇소리가 내 꿈을 건드린다. 뭇소리가 내 사랑을 속삭인다. (4345.4.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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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없는 글쓰기 (익명 글쓰기)

 


  국어사전에서 ‘익명(匿名)’이라는 낱말을 찾아본다. “이름을 숨김”을 뜻한다 한다. 문득 생각한다. 한자말로 ‘익명’이라 적는 일이 나쁘다 느끼지 않으나, 새로운 한국말로 ‘이름숨김’이나 ‘숨긴이름’처럼 빚을 수 있으리라고. 또는 ‘이름감춤’이나 ‘감춘이름’처럼 새 낱말 빚을 수 있겠지.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예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글’이라 하는 좋은 그릇이 있다 하더라도 이 그릇에 담을 어여쁜 낱말을 빚지 못한다. 한글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낱말이란 으레 한자말이거나 영어가 되기 일쑤이다. 요사이는 아예 한자로 적거나 알파벳으로 적을 뿐 아니라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로까지 적기도 한다.


  쉽게 헤아려 보고 싶다. ‘익명’이라 하는 한 번 감춘 낱말이 아닌, 말뜻 그대로 생각을 나타내는 ‘이름을 숨긴’이나 ‘이름을 감춘’이라는 쉽고 또렷한 한국말로 곰곰이 헤아려 보고 싶다.


  사람들은 제 이름을 숨기거나 감춘 채 글을 쓰기도 한다. 지난날에는 문학을 하는 이들이 제 이름을 숨기거나 감추었다. 스스로 알쏭달쏭하게 보이려 하는 뜻이 있었을는지 모르나, 이름을 숨기거나 감추면, 글쓴이가 ‘몇 살이요, 남자냐 여자냐, 학교는 어디를 얼마나 다녔나, 어느 마을에 사는가, 한국사람인가 외국사람인가, 재일조선인인가 연길사람인가, 어린이인가 푸름이인가, 밥벌이로 삼는 일거리는 무엇인가’ 같은 모든 그림자가 사라진다. 문학을 읽을 사람은 이 모든 껍데기나 허울을 생각하지 않고 글만 읽는다. 곧, 문학을 문학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제 이름을 숨기거나 감추며 문학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누군가는 이름을 숨기며 인터넷에 글을 쓸 때에 남을 해코지하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들볶는다. 모진 말이나 거친 말을 일삼기도 한다.


  왜 남을 해코지해야 하나. 왜 모진 말을 일삼아야 하나.


  이름을 숨긴 채 글을 써도 된다. 이름을 밝히며 글을 써도 된다. 어떻게 하든 내 글이다. 이름을 숨겨서 다른 사람이 ‘누가 썼는가’ 알아보지 못한대서 내 글 아닌 다른 사람 글이 될까. 내 글 아닌 다른 사람 글처럼 보일까.


  어느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 이름을 숨겨도 누구나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는 소리란, 모든 마음을 활짝 열고 즐겁게 생각을 나누자는 이야기라고 느낀다. ‘익명’이라는 그늘에 스스로 갇히면서 슬프며 억지스러운 논리라는 틀에 사로잡히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을 숨기며 글을 쓸 적에는 사람들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 뒷모습이 드러난다. 이뿐 아니다. 뭇사람 앞에서 제 이름을 숨긴 채 뭇칼질 같은 글을 함부로 쓰는 일이란, 누군가를 비아냥거리거나 헐뜯거나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다. 바로 ‘이름 숨긴 채 글을 쓰는 나’를 비아냥거리거나 헐뜯거나 깎아내리는 일이 된다.


  예부터 ‘때린 사람은 잠 못 이룬다’고 했다. 왜냐하면, 때린 사람은 ‘때린 느낌’이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지기 때문이다. 때린 느낌이 때린 사람한테서 지워질 수 없다. 이름을 숨긴 채 뭇칼질 하듯 글을 쓰면, 이 글은 ‘이름 숨긴 채 글을 쓰는 내’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지워지지 않는다. 곧, 이름을 숨기든 이름을 드러내든, 나 스스로 쓰는 모든 글은 내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지면서 ‘내 생각’과 ‘내 삶’이 된다.


  입에 발린 고운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이는 참말 ‘입에 발린 고운 듯 보이는 삶’에서 허덕인다. 속알맹이까지 알차도록 어여삐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이는 참말 ‘속알맹이까지 알차도록 어여삐 삶’을 일군다. 막말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막삶을 보내고 만다. 거친 말이란 거친 삶이다.


  사랑을 꽃피우는 삶을 바란다면, 내 이름을 숨기거나 드러내거나 내 사랑을 흐드러지게 꽃피우도록 글을 쓸 노릇이다. 이 땅에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가 자리잡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스스로 언제나 평화로운 넋과 평등한 꿈과 자유로운 사랑과 민주다운 얼을 빛내는 글을 쓸 일이다.


  평화롭지 않은 말이라면 평화롭지 않은 넋이며 평화롭지 못한 삶이다. 자유롭지 못한 글이라면 자유롭지 않은 마음이며 자유롭지 못한 삶이다.


  이름을 숨기며 쓰는 글은 ‘딴 사람이 안 본다’고 여기며 용두질을 하는 모습과 같다. 딴 사람이 보든 안 보든, 풀숲이나 길바닥에 쓰레기가 떨어졌으면 아무렇지 않게 주워 치우거나 쓰레기통으로 옮길 노릇이다. 누가 ‘당신은 참 착한 일을 했소’ 하는 말을 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말고, 나 스스로 마땅히 할 몫을 하면 된다. 스스로 착하게 살고 스스로 참답게 생각하며 스스로 아름답게 꿈꾸면 된다.


  이름은 한낱 허울이기만 하지 않다. 이름은 사람 몸뚱이처럼 대수롭다. 다만, 이름과 몸뚱이가 아무리 대수롭다 하더라도 알맹이와 마음에 앞설 수 없다. 이름으로 누리는 삶이 아니라 알맹이로 누리는 삶이요, 겉치레로 꾸미는 삶이 아니라 온마음 기쁘게 누리는 삶일 테니까.


  이름을 사람들 앞에서 숨긴들, 누구보다 나 스스로 내 글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글을 안다. 나는 내 글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짓을 고스란히 바라본다. 내가 내 짓이 미운 줄 느끼며 바라본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갉아먹거나 깎아내리는 꼴이다. 한자말로 일컫자면, ‘자위’란 ‘자해’일 뿐이다. ‘자위’하듯 ‘익명’으로 글을 쓰는 일은 스스로를 ‘자해’하는 글이 될 뿐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글을 쓰면, 언제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삶이 된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글을 쓰면, 이름을 숨기건 밝히건 늘 내 마음 따사롭게 돌보며 어여삐 빛난다고 느낀다. (4345.4.25.물.ㅎㄲㅅㄱ)

 

 

***

 

알라딘서재 논쟁에서 더없이 부질없구나 싶은 '익명 글'로 스스로 갉아먹으려는 분이 곧잘 보여, 이 같은 글을 한 자락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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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한사람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논쟁의 진짜 이유..."

익명으로도 말해도 된다고 하는 이야기란, 모든 마음을 활짝 열고 즐겁게 생각을 나누자는 소리예요. 익명이라는 그늘에 스스로 갇히면서 슬프며 억지스러운 논리라는 틀에 사로잡히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참모습(진면목)'을 본다기보다 스스로 사람들 앞에서 감추던 '뒷모습'을 볼 테지요. 그만큼, 사람들 앞에서는 겉치레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아무 의견'이라는 핑계를 내걸며 자위행위와 똑같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댓글을 붙이는구나 싶군요.

 

..

 

[붙임말]

익명으로 글을 쓰는 일은 재미있지 않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 이름을 숨긴 채 글을 써 보았자, 하늘은 다 알고, 땅 또한 다 알기 때문이다. 어떤 글이 누군가한테는 이름이 보여지지 않는다지만, 마음을 열면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슬픈 삶인가를 읽어낼 수 있다.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가. 껍데기 아닌가. 껍데기도 사람 삶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지만, 껍데기에 얽매여 알맹이인 삶을 내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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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님의 "[코멘트]나는 왜 책을 읽고 (알라딘에서) 글을 쓰는가"

저로서는 적립금 받는 일조차 참 드문데... 받는다 하더라도, 제가 책값에 쓰는 돈으로 치면 1/30이나 1/50도 안 되기 때문에... @.@ 그야말로 아무 느낌이 없어요. 제 마음에 드는 제 좋은 꿈을 담는 글을 쓰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반갑지 않거든요. 그런데 하나, 가끔 무슨무슨 당선작으로 제 글이 뽑힐 때가 있는데, 뽑힌 글 가운데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마음으로 쓴 글'은 몇 안 돼요. -_-;;; 그렇다고 어느 글은 더 마음을 담고, 어느 글은 덜 마음을 담고, 하는 일은 없어요. '당선작'을 놓고, '당선 안 된 다른 내 글'을 보았을 때, '어, 왜 이 글을 뽑아 주지? 뽑아 주려면 다른 글을 뽑아 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늘 들더군요. .. 아무튼, 논쟁이든 투쟁이든 무슨무슨 말다툼이건 이야기꽃이든... 서로 가장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울 대목을 즐겁게 짚으면서 좋은 생각을 나눌 수 있기를 빌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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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2-04-23 22:07   좋아요 0 | URL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적립급 받기 힘들죠 일주일 내내 천원도 안되는 요즘 그래도 가끔 책을 읽다보면 꼭 소개하고 싶은 구절이나 이야기하고 싶은 책들은 한번쯤 끄적이게 되는
내 시간 써가며 쓰는데 그래도 이런 책은 한번쯤 이야기하고 싶기도 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들 요즘 읽고 있는 방과후 미스테리,마토바 히토미 댄스 때때로 탐정 같은 미스테리 소설은 읽고나서 리뷰를 남기고 싶은데 요즘통 못남기고 있네요 돈을 뒤로 하고 어차피 얼마되지도 않는데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글을 쓰다는 생각이드네요

숲노래 2012-04-23 23:22   좋아요 0 | URL
스스로 좋아하니까 쓸 뿐이겠지요. 모두들.

그래서, 어쩌면, 남을 비판하거나 비난한다며,
또 논쟁한다며 쓰는 글 또한 모두
스스로 좋아하니까 쓰는 셈 아닌가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글을 쓰겠지요 !.!

카스피 2012-04-23 23:22   좋아요 0 | URL
ㅎㅎ 워낙 리뷰를 잘쓰시는 분들이 많으시니 전 그냥 패쑤하지용~~~
 


 멧개구리 글쓰기

 


  네 식구가 마을 뒷산으로 나들이를 옵니다. 풀밭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데, 첫째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며 말합니다. “여기 개구리 있어.” “개구리가 있다고?” “응. 아빠 개구리하고 누나 개구리 있어.” 뒷산 풀숲에 무슨 개구리가 있겠느냐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데, 아이가 또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처럼 몸을 웅크리고는 “어디에 있어?” 하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 하고 말합니다.


  한참 들여다보니 비로소 조그마한 개구리가 보입니다. 푸른개구리보다는 조금 큰 옅은흙빛 개구리입니다. 아, 멧개구리로구나. 그래, 논에는 논개구리이고, 메에는 멧개구리이지.


  작은 개구리는 작은 풀잎만 한 몸뚱이를 작은 풀잎에 바싹 붙여 옹크린 채 꼼짝하지 않습니다. 작은 아이는 작은 눈알 굴리며 작은 몸을 풀밭에 가만히 옹크린 채 작은 개구리를 오래오래 바라봅니다. 딸기꽃 하얗게 피고 감잎 싯푸르게 새로 돋는 풀숲에서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를 한 줄 조용히 끄적입니다. (4345.4.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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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4-23 06:22   좋아요 0 | URL
숨은 그림 찾기 했네요. 찾았어요 ^^

숲노래 2012-04-23 07:13   좋아요 0 | URL
금세 찾아낼 수 있으면,
이 개구리는 숲에서
금세 잡아먹힐 테니까
살아남을 수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