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 글쓰기

 


  손으로 빚는다. 손을 놀려 빚는다. 손은 내 마음에 따라 움직인다. 내 마음이 따사로이 흐를 때에 내 손은 따사로이 움직인다. 내 마음으로 착한 꿈을 담을 때에 내 온몸은 착한 이야기 차곡차곡 담으며 살가이 움직인다.


  아이한테 입힐 옷 뜨는 어버이는 나쁜 넋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아이한테 먹일 밥 차리는 어버이는 궂은 얼로 칼질을 하지 못한다. 아이한테 말 한 마디 건네는 어버이는 모진 생각으로 살림을 꾸릴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한테 읽히고픈 마음일까. 글을 쓰는 사람은 이 글을 읽을 사람이 어떤 마음이 되면 좋거나 기쁘거나 아름답거나 예쁘거나 사랑스럽거나 믿음직스러우리라 생각할까. 누군가를 북돋우는 글을 쓰든, 누군가를 안쓰러이 바라보는 글을 쓰든, 누군가하고 어깨동무하는 글을 쓰든, 누군가하고 꿈을 나누는 글을 쓰든, 글쓴이는 읽는이하고 어떤 삶을 꽃피우고 싶을까.


  뜨개질을 하는 손은 언제나 알맞춤하다. 익숙하면 재게 놀린다지만, 칼질이 익숙한 사람은 손이 안 보일 만큼 빠르. 뜨개질을 하는 손은 늘 정갈하다. 익숙하면 가벼이 놀린다지만, 비빔질이 익숙한 사람은 빨래를 척척 금세 해낸다. 뜨개질을 하는 손은 노상 차분하다. 익숙하면 이야기꽃 피우며 손을 놀린다지만, 어머니들은 아기한테 젖을 물리거나 아이 뒷머리를 묶으면서도 이야기꽃 예쁘게 피운다.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기에, 누군가는 글꽃을 피우며 온누리에 어여쁜 빛과 내음과 열매와 무늬를 베푼다.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삶이기에, 누군가는 글화살을 쏘며 이웃과 동무 가슴에 생채기를 내려 한다. 마음에 따라 거듭나는 삶이기에, 누군가는 글밭을 일구며 서로 맛나게 먹을 푸성귀와 곡식과 열매를 돌본다. 글이란 왜 쓰는가. 글을 누가 쓰는가. 글이란 어디에서 쓸 때에 빛날까. 글을 어떤 삶으로 써야 글답게 싱그러울까. (4345.5.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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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시골 글쓰기

 


  좋은 시골을 누리는 줄 늘 느끼면서 글을 씁니다. 식구들과 함께 바다를 보려고 읍내부터 군내버스를 타고 오십 분을 달려 지죽리에 닿습니다. 지죽리에서 우리 식구가 맨발로 거닐 모래밭까지 만나지 못했지만, 낮 한 시 이십 분에 닿은 버스가 낮 두 시에 돌아 나간다고 해서 사십 분 동안 천천히 바닷가를 거닐며 먼바다를 내다 봅니다. 먼바다를 내다 보면서 봄햇살 누리고 봄바람을 쐬기만 해도 참 좋구나 싶습니다. 지죽리 바닷가에서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면 소재지로 옵니다. 마을마을 골골샅샅 천천히 누비는 군내버스는 이십 분 남짓 달려 면 소재지 곁을 스치고, 우리는 면 소재지에서 내려 이십 분 즈음 풀밭에서 뒹굴며 쉬다가,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동백마을 우리 보금자리로 오 분 즈음 달려 돌아옵니다.


  집에 닿으니 아침에 넌 빨래는 모두 마릅니다. 다 마른 빨래를 걷습니다. 멧새와 들새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풀잎과 나뭇잎을 바라봅니다. 가까운 곳도 조금 멀리 나가는 곳도 푸른 빛깔이 흐드러집니다. 나는 푸른 이야기를 누리며 푸른 삶을 생각합니다. 나는 푸른 숨결을 마시며 푸른 꿈을 돌아봅니다. 내가 살아가는 곳은 내 생각이 솟는 샘물이로구나 싶습니다. (4345.5.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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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보는 마음

 


  사람을 볼 때에는 이름표를 보지 않습니다. 누군가 당신 이름표에 어떤 이름을 적어 넣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군가 당신 이름표에 ‘진보’나 ‘혁명’이라는 낱말을 적어 넣었대서 대단하지 않습니다. ‘평화’나 ‘자유’나 ‘민주’라는 낱말을 당신 이름표에 적어 넣었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때에 주민등록증을 보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보다 한 해 일찍 태어났대서 우러를 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났대서 얕볼 만하지 않습니다. 띠가 같은 웃나이라 하든 아랫나이라 하든 조금도 남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때에 주름살이나 눈썹을 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때에 종아리나 목덜미를 보지 않습니다. 사람을 볼 때에 귓불이나 발가락을 보지 않습니다. 그저 그 사람을 오롯이 봅니다. 그예 그 사람 삶과 넋과 사랑을 봅니다.


  어떤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어느 한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력서나 소개서가 어느 한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든 이녁이 들려주는 말마디마다 삶이 묻어나고 사랑이 깃들며 꿈이 드러납니다. 어느 한 사람이든 이녁이 보여주는 몸짓마다 생각이 샘솟고 믿음이 퍼지며 빛이 번집니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킨텍스에서 모임을 하건, 전남 고흥 시골마을 밭둑에서 모임을 하건, 사람들 스스로 살아가는 매무새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도시 한복판 커다란 시멘트 건물에서 모임을 하기에 더 나쁘지 않습니다. 시골 한복판 들자락에서 모임을 하기에 더 좋지 않습니다. 생각을 하는 사람일 때에 생각이 빛납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일 때에 마음이 빛납니다.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일 때에 사랑이 따스합니다.


  입으로 이루어지는 진보는 없다고 느낍니다. 땀방울로 이루어지는 진보가 있을 뿐이요, 온몸으로 흙내음 누리며 빚는 진보가 있을 뿐이라고 느낍니다. 이 나라에는 온통 기름밥 진보와 아스팔트 진보만 판칩니다만, 기름밥이건 아스팔트이건 날마다 몸속에 밥 한 그릇 넣어 주지 않으면 목숨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책상물림이건 노동조합이건 햇볕을 누리고 바람·물·흙이 없을 때에는 삶을 거느리지 못합니다.


  아름답다고 느낄 때에 무엇이든 이루어집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며 바라볼 때에 내가 좋아하며 사귀는 사람이구나 싶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나 스스로 내 살림집을 마련할 마을을 찾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동안 내 하루 내 온 기운 쏟아 예쁘게 돌봅니다. 밤새 내 가슴에 엎디어 자던 아이가 새벽부터 내 무릎에 누워 잡니다. 이 아름다운 잠보 얼굴을 살살 어루만집니다. 새벽을 부르는 들새와 멧새는 우리 집 둘레에서 기쁘게 노래합니다. 새날 새 볕살이 스밉니다. 따스한 기운이 집안으로 깃듭니다. 진보운동이든 평화운동이든 민주운동이든 하는 분들이 도시에서 더 많은 사람을 일깨워 더 빨리 온누리를 바꾸려고 땀흘리는 일도 좋으리라 느끼지만, 이에 앞서 진보와 평화와 민주를 바라는 꿈 그대로 이녁 스스로 날마다 좋게 누릴 삶을 빛낼 삶터를 찾아 호젓하게 웃음꽃 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슬픈 일 되풀이되는 데에서는 진보도 평화도 민주도 없습니다. 자가용을 버리고 두 다리와 자전거로 예쁜 이웃이랑 오순도순 살아갈 만한 데에서, 진보모임이나 평화모임이나 민주모임을 꾸린다면 참 홀가분할 텐데 싶습니다. (4345.5.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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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5-15 07:03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이네요. 오늘따라 마음에 와닿습니다.

숲노래 2012-05-15 10:14   좋아요 0 | URL
통합진보당인지 진보통합당인지... 쳇바퀴 도는 모습이 온갖 매체에 시끌벅적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쓴 글이에요... 이분들이 부디 입으로 떠드는 진보 굴레를 털어낼 수 있기를 빌어요.

고흥 옆 순천에서 진보당 국회의원이 된 분조차 '당권파'로 막말과 폭력을 한몫 거든 모습이 참 안쓰럽습니다...

pourquoi28 2012-06-11 16: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된장님의 서재 드나들며 아껴가며 글 잘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그날 실황중계 지켜보며 느꼈던 아픔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거 같은데..
마음의 상처에 약이 되는 글, 너무 잘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2-06-11 18:03   좋아요 0 | URL
우리 스스로 좋은 삶을 사랑하며
재미나게 살아가면
가장 좋은 길이라고 느껴요.

언제나 좋은 날 누리시기를 빌어요
 


 노래하며 재우는 마음

 


  두 아이를 재우려고 하나는 가슴에 얹고 하나는 한 팔로 감싸면서 한 시간 반 즈음 노래를 부르자면 힘들기는 꽤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두 아이를 달래면서 목이 살짝 쉴락 말락 노래를 하다 보면 내 마음이 따사롭게 달라진다. 내 마음이 넉넉하게 바뀐다. 내 마음이 차분하게 거듭난다.


  아이들이 제아무리 짓궂거나 얄궂다 싶은 짓을 일삼았어도 이 아이들 곁에 끼고 노래를 부르며 재우다 보면, 그래 그래, 아이들이잖아, 예쁜 아이들이잖아, 예쁜 아이들이 더 놀고 싶고, 더 얼크러지고 싶고, 더 살을 부비고 싶어 이렇게 나한테 말을 걸거나 눈길을 보내며 하루를 보냈겠지. 고맙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오래오래 한결같이 서로 아끼면서 어깨동무하자, 하는 마음이 되어 노래를 부른다.


  오늘 저녁, 옆지기가 두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주며 재운다. 쳇, 오늘은 두 아이랑 노래하며 재우는 즐거움을 혼자 차지하는구나. 그러나, 옆지기가 두 아이를 재워 주면서 나로서는 저녁나절 일거리를 홀가분하게 끝마칠 수 있다. 우리 두 어버이 노래가 아이들 가슴으로 차곡차곡 스며들기를 빈다.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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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선물한다

 


  마음으로 사귈 만한 님한테 시를 한 자락 써서 드린다. 짤막하게 적은 글월이 되든 길디길게 늘어놓는 푸념이 되든 모든 글은 시라고 느낀다. 때때로 따로 ‘시’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 조그마한 쪽종이가 되든 널따란 그림종이가 되든 짧은 글월이나 싯말 몇 마디 적바림한다. 마음으로 사귈 만한 님한테 내 좋은 넋을 실어 보낸다.


  나한테는 싯말이 있기에 시를 선물한다. 내게는 시노래가 있으니 시를 보낸다. 이웃 할아버지는 감알을 선물한다. 이웃 할머니는 시금치를 선물한다. 옆지기는 뜨개옷을 선물한다. 두 아이는 웃음과 수다를 선물한다. 들꽃은 푸른 잎사귀를 선물한다. 천천히 굵어지며 우람하게 뿌리내리는 나무는 거룩한 삶발자국을 선물한다. 깊은 밤 온 들판 맑게 울려퍼지는 밤새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내 마음을 실어 옮길 수 있는 한 가지가 무언가 하고 느낄 때에 내 삶이 사랑스럽다. (4345.5.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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