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세트 - 전2권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옛날에 태어났으면 살인자가 되었을까?
 [살가운 만화 37] 마츠모토 타이요, 《ZERO (1∼2)》



- 책이름 : ZERO (1∼2)
- 글ㆍ그림 : 마츠모토 타이요
- 옮긴이 : 김완
- 펴낸곳 : 애니북스 (2008.6.20.)
- 책값 : 한 권에 8000원씩



 (1) 사랑 없이 사람을 만나는 우리들 오늘날


.. “그보다 아저씨, 저 눈 좀 봐. 시합이 다가오면 늘 저래. 살이 빠져서 그런가? 이젠 익숙하지만. 기분 나쁜데. 살인자의 눈.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사람 꽤나 죽였을 거야, 저 양반.” ..  (1권 127쪽)


 만화책 《ZERO》에 나오는 ‘고시마’는 권투선수입니다. 경기를 한 번 치러서 이기면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어마어마하게 돈방석에 앉는 ‘프로’ 권투선수입니다.

 권투선수 ‘고시마’는 뒤에서 밀고 있는 부자가 있습니다. 부자는 고시마와 붙는 경기를 한 번 꾀할 때마다 고시마한테 퍽 많은 돈을 내어주지만, 부자가 손에 쥐는 돈은 훨씬 많습니다. 고시마와 붙는 선수한테도 많은 돈을 내어줄 테지만, 이렇게 쓰는 돈은 자기(부자)가 벌어들일 돈하고 견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 “이 세계에선 제로니 뭐니 불리며 우상처럼 숭배 받지만, 링을 내려가면 어떨 것 같아? 너한테 뭐가 남냐? 아무것도 없지. 사람이 그래서야 되겠냐?” “관 둬. 아라키. 내가 당신에게 배운 거라면 사람 때려눕히는 것뿐이야. 난 그걸 충실히 지켜 왔다고 생각하는데.” ..  (1권 206∼207쪽)


 권투선수가 다른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러니까 옛날에 태어났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군대를 이끄는 군간부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군간부가 되자면, ‘씨가 좋은 어버이’한테서 태어나야 합니다. 낮은자리 사람 집안에서 태어나 보았자, 부역이니 전쟁이니 끌려가서 칼받이(요즘은 총받이지만, 옛날에는 칼받이였지 않으랴 싶습니다)로 스러지지 않았을는지요. 힘 잘 쓰는 놈이니 ‘양반집에서 막 부려먹는 돌쇠’가 되지 않았을는지요. 스스로 무엇인가 뜻을 품었다면, 산속으로 들어가 화적패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거의 모든 여느 사람들 삶이 그러했듯이, 농사꾼이 되어 부지런히 땅 갈고 밭 일구면서 흙과 함께 살아가며 식구들과 오순도순 살아갔을까요.

 오늘날은 싸움 잘하는 일도 ‘짭짤한 돈벌이’가 됩니다만, 이를테면 적어도 깡패가 되어 동네에서 돈 뺏는 짓이나마 할 수 있고(하긴, 옛날에도 깡패는 있었겠지요), ‘운동경기가 된 격투기’ 선수로 뛸 수 있습니다. 요사이, 권투는 시들해지고 킥복싱과 케이원과 프라이드와 유에프시처럼 피 튀기고 관절 꺾으며 쓰러진 선수를 마구 밟거나 까부수어도 되는 ‘격투기’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으니, 처음부터 아예 격투기 선수가 되고자 싸움박질을 배우려고 땀흘리는 사람도 생겨납니다.

 ‘하늘이 내려준 단단하고 무시무시한’ 주먹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날에는 그렇게까지 기를 쓰고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하지 않더라도 ‘맞선이를 반죽음으로 몰아넣도록 두들겨패는’ 운동경기를 뛰면서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이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왜 자기 수명을 깎아먹으려 들지? 상대만 잘 고르면 앞으로 5년은 지킬 수 있는 타이틀인데!” “그렇게 지킨 챔피언 벨트, 죽을 때 배에 두르고 관에 들어갈까? 하하하.” ..  (1권 158쪽)


 그런데, 돈으로 움직이는 세상, 돈이 으뜸이 되는 세상에서는 무엇이든지 ‘내기’를 하고 ‘겨루기’를 해야 합니다. 한 배에서 나고 자란 형제 사이에서도 누가 젖을 더 많이 빨아먹느냐를 겨루어서 이겨야 좀더 잘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을 탁 열어 놓고 스스럼없이 사귈 동무는 없어도 되는 가운데, 혼자서 우뚝 선 다음 자기 뒤치닥꺼리를 맡아 줄 아랫사람을 부리면 되는 세상으로 빠르게 바뀝니다. 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따르면서 ‘더 잘 싸워서 더 옆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인간병기’로 거듭납니다. 어버이는 또래 이웃을 살피면서 당신들 아이가 얼마나 ‘이웃 또래를 잘 죽이거나 무찌르면서 더 높이 올라설 수 있는가’를 따지며 북돋우고 채근하고 기름을 칩니다.

 “돈도 있는” 세상이 아니라 “돈만 보는” 세상이 깊어가는 이 땅에서는, 이제 교과서와 책과 종교지도자 말씀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이 푸대접’을 다루지 않을 뿐더러 ‘농사꾼과 노동자가 되도록 이끌지 않는’ 이 나라로서는, 살결빛이 다르고 몸차림과 얼굴이 다르며 몸 어느 한 군데가 아프거나 절뚝거리는 사람들은 손쉽게 따돌릴 뿐더러 괴롭혀서 아예 일어설 수 없도록 밟아 버리고 있는 이 겨레한테는 눈에 아무것도 뵈지 않습니다.

 눈이고 마음이고 머리고 몸이고 돈만 들어차 있으니 사랑이 깃들 수 없어요. 입이고 어깨고 팔다리고 돈으로만 채워져 있으니 믿음이 스며들 수 없어요. 귀고 가슴이고 손발이고 돈으로만 발라 놓고 있으니 나눔이 자리할 수 없어요.


.. “토라비스는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그래야 해요.” “네?” “서두르지 않으면 고시마 씨에게 잡아먹힐걸요.” ..  (2권 55쪽)


 언뜻 보기에는 앞을 내다보고 가는 길 같지만, 조금도 앞을 내다보는 길이 아닌 삶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위를 올려다보며 가는 길 같지만, 하나도 위를 올려다보는 길이 아닙니다. 문득 보기에는 크고 높고 많은 무엇인가를 붙잡는 길 같지만, 어느 하나 크거나 높거나 많은 무엇인가하고는 멀어져만 갈 뿐입니다.

 이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고 재채기가 나오면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 병원에 갈 줄은 압니다. 그렇지만 생각이 더러워지고 가슴이 텅 비며 얼과 넋이 비뚤어지고 있음에도 ‘마음이 아픈’ 줄 깨닫지 못할 뿐더러, ‘마음앓이’를 어느 곳 누구한테서 고치거나 다스릴 수 있는가는 조금도 모르는 한편, 고칠 생각을 않습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그만이고, 인터넷을 열면 넉넉하고, 자가용 시동을 넣으면 끝이며, 카드를 긁으면 걱정이 사라집니다.


 (2)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살아갈 앞날


.. “옛날에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 “응?” “이 주먹은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그래, 고시마. 누구보다도 강하고 아름다운 이 주먹 말이다. 꽉 쥐어 보렴. 이 안에 신이 있단다.’ ..  (1권 117쪽)


  만화책 《ZERO》에 나오는 권투선수 ‘고시마’는 경기 날짜를 받고 네모난 싸움판에 오를 때, 비로소 자기가 살아가는 맛을 느낍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고시마가 듣고 보고 배우고 익힌 모두는 ‘네모난 싸움판에 올라 더 빨리 더 힘껏 눈앞에 있는 녀석을 무너뜨리는 일’ 하나였습니다.

 고시마는 손에 낫이나 호미를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옆에서 고시마 손에 낫이나 호미를 들려 보려고 했던 사람은 없습니다. 고시마는 연필이나 종이나 지우개를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이웃에서 고시마 손에 연필과 종이와 지우개를 들려서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도록 이끌었던 사람은 없습니다. 고시마는 자전거에 몸을 싣고 제 고향나라 고향땅을 실컷 누벼 본 적이 없습니다. 고시마한테 자전거를 내어주면서 몸소 자기가 발딛고 선 이 땅을 헤아려 보도록 가르친 사람은 없습니다. 고시마는 걸레나 도마를 손에 쥐어 보지 못했습니다. 고시마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손수 가꾸거나 갈무리하고, 자기가 먹고 마시는 밥거리를 손수 마련하여 살아가는 법을 듣지도 보지도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고시마한테는 실과 바늘도, 물과 비누도, 망치와 못도 스스로 겪어 보도록 마음을 써 주거나 도와주려 했던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딱 한 사람, 고시마 두 주먹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을 불러들일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 이 두 주먹을 더욱 세고 튼튼하게 키울 줄 아는 재주꾼 하나만 곁에 있었습니다.


.. “씨앗.” “응? 무슨 소리냐, 고시마?” “아라키가 버렸던 내 꽃 말야. 씨를 받아둘걸 그랬어.” “내가 버린 꽃?” “그럼 또 꽃이 필 거 아냐.” ..  (2권 116쪽)


 오래오래 담금질을 하던 권투선수 고시마는 조금씩 꽃봉우리를 틔웠고, 활짝활짝 꽃을 피워올렸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자기 스스로도, 또 이웃들조차도 고시마 마음에 씨앗 하나 여물게 하는 길을 찾게 하지 않았습니다. 꽃은 필 줄 알지만 열매는 맺을 줄 모르는 마음이 되고 만 고시마입니다. 이러니, 고시마는 꽃이 핀 다음, 꽃을 툭툭 꺾습니다.

 꽃이 피는 까닭은 열매를 맺으려 하기 때문인 줄을 모르니까. 그리고 열매를 맺어서 자기(꽃나무)가 이 열매를 먹지 않고 남한테 주는 줄을 모르니까. 더욱이 열매를 남한테 기꺼이 내어주어 냠냠짭짭 맛나게 먹힌 다음, 씨앗 하나 남아서 꽃나무가 태어난 흙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꽃나무로 자라게 되는 줄을 모르니까.


.. “응? 아라키. 우리 약속했잖아. 옛날에 한 약속, 잊어버렸어? 망가지지 않는 장난감.” ..  (1권 47쪽)


 고시마 마음에 심겨진 ‘돈과 이름과 힘을 얻는 주먹’은 잘 담금질이 되어서, 고시마를 키워 준 적잖은 사람들한테 셀 수 없이 많은 돈을 선사해 줍니다. 고시마 스스로도 죽는 날까지 쓸 수 없을 만한 돈을 모읍니다.

 그런데, 그날 그때(권투선수로서는 은퇴를 할 나이인 서른을 조금 넘어서는 때)까지 ‘돈버는 재주’ 하나만 익힌 고시마한테 앞으로 나아갈 삶이란 무엇이 될까요. 이제 고시마 스스로도 자기 몸이나 나이가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수 없게 됨을 깨닫게 되는 날, 고시마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자기한테 딱 한 가지 있는 재주인 ‘주먹으로 사람 때려눕혀서 돈버는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됨을 깨달은 다음부터, 고시마한테 남은 삶은 무엇이 될까요.

 어릴 적부터 ‘이웃사랑’을 말이나 동화책 가르침으로만 배우는 아이들이, 뒷날 큰돈을 벌고 높은 이름값을 얻는다고 해서 이웃사랑을 베푸는 일이란 없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수십 억, 수백 억, 수천 억 부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 부자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이웃사랑을 이루려고 자기 재산을 기꺼이 내놓았다고 하는 이는 없습니다. 부동산 수십 채로 앉은자리에서 떼돈을 벌어도 세입자한테 달삯을 깎아주는 부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난하게 살던 김밥할머니가 온삶 바쳐 모아 놓은 몇 억 원을 내놓았다는 소식은 드문드문 들리지만.

 어린 날부터 영어를 배우고 한문을 익히며 시험점수 높게 받아서 외국어고나 과학고에 들어간 다음, 나라에서 손꼽는 몇몇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는 아이들이, 대학교를 모두 마치고 나서 어떤 일자리를 찾게 될까요. 이 아이들은 일자리를 찾은 다음 어떤 사람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면서 살아갈까요. 이 아이들이 법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재벌회사 사장이 되고 의사가 되고 뭐가 되고 하면서, 이 아이들이 우리들한테 보여주는 모습이란 무엇인가요.


.. “고시마란 놈은 말이다, 타카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어.” ..  (2권 178∼179쪽)


 옆나라 일본에서 1991년에 나왔던 만화  《ZERO》가 2008년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지난 1991년, 일본사람들은 이 만화 《ZERO》를 재미나게만 보았을는지, 가슴에 바늘로 콕 찔렸다는 느낌으로 보았을는지,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마음으로 보았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 뒤 열일곱 해, 2008년 한국에서 《ZERO》라는 만화를 볼 분들은 재미나게 볼는지, 짜릿하게 볼는지, 뭐야 이거? 하면서 집어던질지, 송곳으로 어딘가를 후비고 있다는 느낌으로 볼는지 궁금합니다. (4341.7.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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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 희망제작소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총서 2
최엄윤 지음 / 이매진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63 ― 도시가 고향인 분한테 바치는 선물
 : 최엄윤,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



- 책이름 :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
- 글쓴이 : 최엄윤
- 펴낸곳 : 이매진(2007.9.21.)
- 책값 : 9000원



 (1) 골목 문화


 촬영작가로 일하는 분하고 인천 골목길을 걷습니다. 촬영작가는 ‘인천 배다리에서 용쓰듯 살아가는 한 사람’을 찍으려 한다면서 찾아왔고, 용쓰듯 살아가는 한 사람은 촬영작가를 데리고 골목마실을 합니다.

 비가 오는 낮, 한 사람은 비옷을 입고 비옷 안쪽에 사진기를 가리며 걷습니다. 한 사람은 모자를 눌러쓰고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걷습니다. 인천시장이 ‘송도 새도시와 청라 새도시를 1자로 죽 잇는 길’을 낼 생각으로 뚫으려고 하는 ‘너비 50미터 넘는 산업도로 공사 예정터’ 울타리가 높이 가로막은 골목길을 걷습니다. 숱하게 걸은 이 길을 또 걷습니다. 서울 옥수동과 금호동 쪽에서 살다가 중학교 적부터 아파트에서 살았다는 촬영작가한테 이 오래된 골목길은 옛생각을 떠오르게 해 줄지, 아니면, 그냥 사진으로 담아내기에 그럴싸하게 다가갈 모습일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는 고즈넉한 동네로 느껴질 모습일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있는 그대로 느끼기를 바라면서 함께 거닐 뿐입니다.

 울타리는 어른 키보다 높아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울타리 바로 옆으로 죽 잇닿은 골목집마다 크고작은 텃밭을 가꿉니다. 텃밭이 없으면 꽃그릇에 꽃과 풀을 심어서 가꿉니다. 가지가 달리고 고추가 맺히고 상추가 웃자라며 깻잎이 우거집니다.

 산업도로 공사터를 들여다볼 개구멍을 찾는데 모두 막혀 있습니다. 시청 공무원이 어느새 나와서 죄다 막아 놓았군요. 다시 뜯어내지 못하게 아무 야물딱지게 조이고 동여 놓았습니다.

 이 동네에서 ‘바로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볼썽사나운 울타리를 쳐 놓아 햇볕도 제대로 들지 않게 합니다. ‘곧 재개발로 쓸어낼 동네에서 안 떠나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햇볕 쬘 권리’조차 없구나 싶습니다. 한 몫 사람 대접을 바랄 수 없구나 싶습니다.





.. 문화 활동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스스로의 가치마저 쉽게 외면해 버리는 대표적 공간 중 하나는 바로 ‘철거지역’이다. 근대문화의 가치들에 대한 평가는 전혀 없고 부동산의 가치만이 존재할 뿐 아니라, 대부분 철거지역은 도시 빈민이 밀집한 지역인 경우가 많아 문화 활동 공간 역시 전무하다 ..  (9쪽)


 금곡동과 창영동을 지나 큰 찻길을 건너 유동으로 접어듭니다. 골목에서 찻길로 나오니 시끄럽습니다. 차 다니는 소리가 귀가 멍멍합니다. 차를 모는 분들은 차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못 느끼지 않으랴 싶습니다. 차에서는 노래를 듣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볼 테지요. 이런저런 소리에 갇혀서, 차가 뿜어내는 소리와 차가 뱉어내는 방귀와 먼지와 차가 쏟아내는 뜨거운 기운이 거님길을 오가는 사람한테 옴팡 뒤집어씌워지는 줄 느끼지 못합니다.

 유동을 가로질러 율목동으로 접어들 무렵, 무슨 모임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듯한 할머님과 마주칩니다. 길을 내어 드리고 옆으로 지나갑니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좁은 골목을 지납니다. 낮은 천장을 따로 줄기를 뻗는 덩굴을 보고, 여름내 고추를 말리려고 마련해 둔 길다란 말림대를 봅니다. 올망졸망 붙어 있는 집들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텔레비전 소리일지 밥하는 소리일지 식구들이 얘기하는 소리일지 아이들한테 숙제하라고 채근대는 소리일지 전화하는 소리일지 어렴풋하게 헤아려 봅니다.

 차 다니는 길로 나옵니다. 두찻길로 된 두 찻길을 따라 하염없이 서 있는 차들, 그리고 이처럼 서 있는 차 사이로 삐쭉빼쭉 머리 디밀며 빠져나가려는 차들. 그리고 이 차들한테 치이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비키면서 길을 건너는 사람들.

 살금살금 길을 건너면서, 시멘트벽을 하얗게 바른 골목집 앞에 자라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낯익은 잎사귀인데 무슨 나무인지 아리송하다고 느끼려는 이때, 푸른빛 싱그러운 뾰족뾰족 가시가 눈에 뜨입니다. 밤송이입니다.


.. 다시 한 번 여쭈었다. 왜 재개발에 동의할 마음이 없으신가요? 그제야 할머니들이 말씀하시는 이유는 첫째, 재개발을 하면 서로 얼굴을 못 본다는 것이다 … 둘째, 이천맨션이 아무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 셋째, 이천맨션의 위치가 백화점, 재래시장, 시내 중심부에서 가깝고 다양한 버스노선이 있어 매우 편리하다는 것이다 ..  (27쪽)





 밤나무구나. 이름으로만 ‘밤나무골(栗木)’로 남은 율목동이 아니라, 이렇게 밤나무를 기르는 집이 있구나.

 이 골목집은 언제부터 밤나무를 길렀으려나. 바닥은 온통 시멘트로 발라져 있어 흙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골목집에 깃든 분은 열 스물 남짓 되는 온갖 꽃그릇에 흙을 옮겨담아서 갖가지 풀과 꽃과 나무를 기릅니다. 율목동 골목집 밤나무도 땅이 아닌 꽃그릇에서 자랍니다. 그러면서도 풋밤송이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있습니다.

 참 용하지. 어쩜 이렇게 야무지게 밤송이를 달 수 있을까. 이 집은 밤을 사다 먹지 않겠지. 집에서 길러 먹는 밤맛하고 사다 먹는 밤맛이 같을 수 없으니까.


.. 이천동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재미는 화분들이다. 골목은 공동의 정원이라고 했던가? 많은 주민들이 개인의 화분을 골목에 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서를 전해 준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은 찾을 수 없다. 그저 우리의 골목일 뿐이다 ..  (37쪽)


 좀더 안쪽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깊은 골목에는 바깥 소리가 모두 막혀 있습니다. 아주 호젓합니다. 호젓한 골목으로 들어서니 그리 넓지 않은 골목 담벼락을 따라서 꽃그릇이 한 줄로 죽 이어져 있습니다. 자동차가 지나다닐 만한 넓이로 된 골목에는 꽃그릇이 거의 하나도 없지만,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에는 꽃그릇이 수두룩합니다. 이곳에 자전거가 지나다닐 일도 없이 사람만 드문드문 오갈 터이니, 한 사람 지나갈 너비만 남기고 쪼르르 꽃그릇을 놓을 만하구나 싶습니다.

 흙땅이 없으니 풀이 자랄 수 없고, 풀이 자랄 수 없으니 싱그러운 바람결을 마실 수 없는 도시이지만, 골목마실을 하며 꽃그릇으로 이루어진 꽃골목을 지나면서는, 늘 소담스러운 바람을 들이쉬고 냄새를 맡습니다.




.. 어느 날 재개발의 무지막지한 폭격이 우리를 공격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오늘을 즐겁게 살며 도시의 옛 고향, 이천동에 문화의 작은 씨앗들을 뿌려갈 것이다 ..  (99쪽)


 율목공원 조금 못 미친 제법 가파른 골목길. 한쪽은 계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계단이 없다면 겨우내 얼어붙는 길에 모두 미끄러지겠지요. 길게 이어지는 계단 한쪽에 플라스틱통이 놓여 있고, 이 통에는 고양이밥으로 보이는 사료가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 길고양이 굶지 말라고 밥을 놓아 두었네요.

 계단을 하나둘 밟으며 올라갑니다. 낮은 빌라 앞에 마련한 꽃밭 앞에 꽃그릇이 한 줄로 놓였고, 이 꽃그릇은 ‘이마트 끈’으로 버팀나무를 엮여 있습니다. 무슨 꽃을 심으셨나 둘러보는데 보라빛 도라지꽃이 보입니다.

 아직 익으려면 더 있어야 하는 토마토 꽃그릇을 봅니다. 무궁화 심어 놓은 꽃밭을 지납니다. 덩굴풀에 매달린 풋열매를 봅니다. 이제는 꽃망울을 떨군 봄꽃들은 푸른 잎사귀만 남겨 놓습니다.

 율목동 고갯마루에 자리잡은 구멍가게 앞에는 낡은 장판으로 바닥을 댄 평상이 하나 있습니다. 평상에는 꽃그릇 두엇 놓여 있고, 꽃그릇 옆으로 소주병 하나 막걸리병 하나 놓여 있습니다. 골목집 어딘가 사는 분이 잠깐 들러서 한 병씩 들이킨 다음 조용히 자리를 뜨셨나 보군요.

 이럭저럭 걷는 사이 신흥동2가 골목. 걷는 길에는 이곳이 ‘율목동’인지 ‘유동’인지 ‘신흥동2가’인지 ‘신흥동1가’인지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골목이며 이웃집입니다. 길그림책으로는 뚜렷하게 금으로 갈라진 길이고, 행정을 맡는 공무원한테는 동호수와 번지수로만 나누어질 집일 터이나, 이 언덕받이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숫자나 금으로 나눌 수 없는 삶터입니다.

 신흥동2가 22번지 골목네거리에 섭니다. 오른쪽으로는 지은 지 몇 해쯤 된 아파트숲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집을 허물고 주차장을 짓는다는 공사터가 보입니다. 그 건너편 집 지붕에 모여 있는 고양이 너덧 마리 보입니다. 웬 고양이가 저렇게 모여 있을까 생각하면서 사진기를 들어서 몇 장 찍으려는데, 할머니가 불쑥 고개를 내밀며 빗자루를 저어서 고양이를 쫓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쫓기지 않고 옆으로 살짝 다시 옆으로 폴짝 하면서 놉니다. 할머니가 저를 알아보고 손짓하며 부릅니다.





.. 건축이 예술로서의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건축물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일 것이다 … 역사적 유적을 보존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겠지만, 우리는 1950년대 이후의 근대사에 대해서는 기간이 짧다고 하여, 그 보존을 허술히 한다. 특히 한 마을이 사라져 버리는 일은 단 몇 개월도 걸리지 않는 일이 돼 버렸다 ..  (121, 122쪽)


 ‘야생동물보호협회 같은 데에서 일하는 분’이 아니냐 생각해서 부른 할머니는, 당신이 이 집에서 사는 스물 몇 해 동안 ‘처음에는 이쁘다고 기르다가 길에 내다 버려서 외톨이가 된 불쌍한 고양이’한테 밥 주는 일을 해 왔다고 합니다. 아까 본 고양이밥도 이분이 놓은 밥통이었습니다.

 이웃집에서는 왜 고양이 기르냐며 욕을 해댄답니다. 고양이를 내다 버린 어느 집에서는 ‘자꾸 밥 주지 말라’고 하더니, 어느 날에는 할머니가 준 밥에 몰래 세제를 풀어서 굶주리던 고양이를 싹 죽여 버리기도 했답니다. 어미고 새끼고 그냥 세제물 먹고 죽었답니다.

 우리를 붙잡고 한참 고양이 이야기를 하시던 할머니는 몸소 우리를 이끌어서 당신이 밥 주는 자리를 하나하나 알려줍니다. 율목공원 안쪽에 숨어서 밖으로 나올 생각을 못하는 고양이 세 마리도 소개합니다. 공원 바로 앞 빌라에 사는 젊은 부부가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 이 고양이들은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풀숲에서 쫄딱 맞는다고 합니다.




 (2) 아파트 집값


 고양이 할머님은 ‘야생동물보호협회’ 연락처를 알고 있지만 아직 전화를 걸어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도심지에 버려진 길고양이가 한두 마리가 아닐 텐데, 이 고양이를 거두어 갈 수도 없을 테고, 또 어떤 마음좋은 수의사라고 해도 길고양이마다 붙잡아서 불임수술을 시켜 줄 수 있겠느냐며, 그예 고양이 밥주기만 부지런히 하신답니다. 이야기를 듣는 저로서도 할머니한테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 깃든 길고양이 두 마리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이 길고양이는 좀처럼 우리 집을 떠날 생각을 안 합니다. 벌써 저희끼리 집을 나가서 꿋꿋하게 살아갈 법도 하건만.

 밤마다 집 밖으로 다녀 보기도 했을 테지만, 아무래도 길고양이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팍팍하거나 힘겹다고 느껴서, 우리 집에서 주는 먹이를 냠냠짭짭하면서 남은 삶을 보내지 않으랴 싶습니다.

 할머니는 ‘아직은 이 동네에 살고 있으니 고양이한테 밥 주고 살지만, 이 동네를 다 재개발해서 아파트로 새로 지으면 고양이는 어디 가서 사느냐’고 걱정입니다.


.. 어느새 한국의 아파트들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의 올림픽 정신처럼 급성장해 이제 15층은 고층아파트 축에 끼지도 못한다. 20년도 안 된 도시를 부수어 금세 새로운 아파트를 지어 올리고 이 아파트들은 곰팡이처럼 빠른 속도로 전국적으로 퍼져서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  (25∼26쪽)


 할머니가 들려주는 걱정을 듣다가 가슴이 움찔합니다. ‘고양이 걱정’? 그래, 고양이 걱정. 길고양이뿐 아니라 길개도.

 장난감처럼 수십만 원씩 주고 샀다가 아무 미련 없이 내다 버려서 떠돌이 삶을 보내는 짐승들. 이 짐승들한테 우리가 무엇을 해 주고 있는가 가만히 돌아봅니다. 불쌍하다면서 없는 살림 털어서 밥을 주고 있는 분들이 몇몇 있지만, 이분들한테 ‘쓸데없는 짓해서 동네 더럽히지 말라’며 욕을 해대는 분들이 퍽 많습니다. 동사무소와 구청에서는 길고양이와 길개가 ‘쓰레기봉투 찢어 놓아서 못살겠다’면서 모조리 붙잡아서 안락사를 시킨다고 합니다.

 골목 동네를 재개발한다고 할 때에는, ‘많지는 않아도 모자라지도 않게 꼭 알맞는 만큼’ 살림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대책 하나 세우지 않고 밀어붙입니다. 지금은 서른 평짜리 집에서 느긋하게 살지만, 아파트로 재개발 하면 열 평짜리 전세집에도 못 들어갈 만하게 바뀌어 버리는 골목사람들 앞날을 헤아리는 공무원이나 개발업자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길가에 자라는 꽃과 풀과 나무를 걱정하는 사람, 그리고 길에서 살아가는 개와 고양이와 비둘기 들을 근심하는 사람이 나올 수 없을 테지요. 공무원과 개발업자한테 그런 따순 마음을 바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골목사람 스스로도 이렇게 가녀린 짐승과 푸나무한테 마음을 기울여 주기를 바랄 수 없었을까 싶습니다.





.. 더구나 이 구역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은 고령의 일용직 노동자들로 보증금 100∼200만 원에 5∼1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내면서 생활하는데, 재개발로 철거가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쪽방 등지를 찾아가야 하는 형편이다. 결국 도시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주민들의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 당국의 장삿속만 보인다는 이야기다 ..  (33쪽)


 율목동 언덕받이에서 내려옵니다. 경동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고욤나무집 옆을 지나다가, 좀더 안쪽 깊숙이 가 볼까 하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몇 시간째 쉬잖고 걸어서 다리가 꽤 아프고 발가락도 부었습니다. 그러나 어그적어그적 걷습니다.

 비오는 날임에도 빨래를 밖에 널어 놓아 비를 쫄딱 맞힌 몇 집을 봅니다. 에그머니. 다시 빨아야 할 텐데.

 아는 사람만 아는, 아니 이곳 골목사람만 아는 골목인 경동 5번지 안쪽으로 슬그머니 들어옵니다. 오가는 사람은 이 골목에 사는 사람뿐이라 매우 조용한 길입니다. 발자국 소리를 더 죽이면서 사뿐사뿐 걷습니다.

 한 집에서 내다 놓은 긴 나무걸상 옆에 섭니다. 촬영작가한테 말문을 엽니다. “이 나무걸상은 스티커를 붙여놓았으면 쓰레기예요. 그렇지만 이렇게 잘 닦아서 길 한쪽에 내놓으면 좋은 쉼터가 돼요. 이런 골목길 때려부수고 아파트 지은 다음에 돈 수 억 들여서 근린공원이라고 짓잖아요. 그 근린공원은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술담배 피는 우범지역이 되다시피 하지만, 이 골목길 작은 쉼터는 어느 곳도 우범지역이 되지 않아요. 아파트숲 근린공원에는 아이들을 꾸짖거나 가르치는 어른도 없지만, 아이들이 무서워서 꾸짖지도 않거나, 그저 남 일로 여겨 나 몰라라 하지요. 그러나 이곳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그렇게 마구 놀면 바로 뛰어나와서 예끼놈 하면서 꾸짖어요. 아이들을 가르치지요. 여기는 남이 아닌 우리가, 자기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가꾸고 깨끗하게 가꿉니다. 그런 대목이 골목길하고 아파트가 달라요. 지금 우리 세상은 모두들 돈만 바라보고 있어서, 집을 지어도 사람이 살 만한 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돈이 될 만한 집이냐 아니냐로 따집니다. 세상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우리들이 골목에서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던 모습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이 마음을 간직해 줄 수 있으면서 아파트에서 살아간다면 좋겠어요. 여기 앞에 송림동 달동네를 허물며 주공아파트 2700세대를 지으면서 그곳 꼭대기에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라고 지었어요. 달동네 집을 다 허물고 수십 억 들여서 달동네 집을 다시 만들어 놓고 박물관이라고 꾸몄지요. 서울 송파구 거여동도 그곳 달동네를 싸그리 밀어붙인 다음에 송파구에서는 거기다가 ‘달동네 박물관을 복원’한다고 하더군요. 웃기지 않아요? 돈벌려고 아파트 짓는다며 때려부수는데, 그 때려부순 집을 되살려서 박물관을 만든다니까.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그 달동네 집을 고이 간수하고 손질해 놓으면 돈도 안 들고, 살아 있는 박물관이 돼요. 그리고 그곳 달동네에서 민박을 치면서 ‘민속마을’처럼 꾸미면 돈도 벌 수 있어요. 골목집 사람들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요. 돈 한푼 들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돈을 벌 길이 있는데, 이런 길로는 안 가요. 다 함께 나누려는 길이 얼마든지 많은데 그런 길을 찾는 데에는 머리를 안 기울이고, 몇몇 기득권이 더 큰 돈을 벌어들이는 데에는 그 뛰어난 머리를 모으고 있어요.”


.. 프랑스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대체적으로 그 가족들은 몇 세대에 걸쳐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집은 물론 가족들의 작은 소품들까지 몇 대를 이어 전해져 내려오면서 가족의 역사를 보존하는 모습 속에서 집을 방문한다는 것이 마치 작은 개인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집이란 이처럼 그 속에 살고 있는 혹은 살았던 사람들의 이미지와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진 작은 그릇이다 … 집의 분위기는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경험과 흔적들이 집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과 어울리면서 이루어진다 … 대구, 서울, 부산, 인천 등등 전국 큰 도시들에는 어김없이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사람이 다니는 길보다는 차들이 다니는 길이 더욱 넓어지고, 인공공원을 조성하면서도 난개발로 생태환경을 점점 파괴해 가는 모순적인 모습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다 … 오래된 낡은 건물 하나가 도시 역사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도시민들의 삶의 발자취가 묻어나고 그것이 오늘에도 이어지는 도시의 다양한 표정들이 바로 문화 도시를 위한 기초인 것이다 ..  (117, 120쪽)





 정보산업고등학교를 마주보고 선 골목집 옆으로 걷습니다. 골목집 벽과 문에 판박이가 붙어 있습니다. 아마 이 집 꼬맹이들이 새겨 놓았겠지요. 또는 이 동네 꼬맹이들이 새겨 놓거나.

 꼬맹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된 뒤에도 이 집에서 살아간다면, 자기들이 어릴 적 해 놓은 자국을 보면서 쑥스러워 할까요. 아니면 자랑스러워 할까요. 다른 곳으로 집을 옮겨 살다가 오랜만에 옛 동네를 찾아와 보다가 이 판박이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 느낌은 어떠할까요.


.. 우리에게 집이란 그저 돈의 가치로 환산될 뿐, 그 아파트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설계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나타나지 않는다 ..  (132쪽)


 태어난 곳이 아파트이고 자란 곳이 아파트인 아이들한테는 고향이란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증에 새겨지는 숫자로 그칩니다. 짧으면 몇 해, 길어도 스무 해가 지나지 않아서 자기 고향이자 옛집인 ‘아파트’는 모두 헐리기 때문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파트인 아이들한테는 놀이터가 없습니다. 아파트도 사람 사는 곳이지만, 사람이 걸어서 움직이기 좋도록 짓지 않고, 자동차가 드나들기에 좋도록 꾸며 놓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차에 치일까 걱정이 되어 코딱지만한 아파트 놀이터에조차 놀지 못하게 막습니다.

 태어나 자라는 동안 아파트 밖으로 가 보지 못한 아이들한테는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이나 이웃사랑을 ‘책 읽히며 따로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수도꼭지 틀면 물이 촬촬 넘치고, 단추 하나 누르면 뜨신 물이 여름겨울 가리지 않고 흘러나옵니다. 통에 휙 집어던지면 잘 빨려서 말려 나오는 빨래기계가 있고, 돼지코만 꽂으면 알아서 바닥을 쓸고 닦는 청소기계가 있습니다. 누워서 똑딱 하고 누르면 아프리카며 중남미며 미국이며 일본이며 유럽이며 …… 못 가는 나라가 없습니다. 손전화 들고 쑹얼쑹얼 하면 먹고픈 모든 밥이 집으로 척척척 금세 날라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어쩌다가 한 번 맡는 날이 돌아와도 지겹고 더럽다며 꺼리는 아파트에서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이 세상에는 돈만 있으면 왔다!’임을 깨닫습니다.


.. 경제의 논리로 아파트의 무덤 속에 혹은 고향을 떠나 변두리 어딘가로 계속 떠돌고 있는 수많은 오늘의 도시인들은 바로 도시의 문화적 빈민일 것이다 ..  (149쪽)





 (3) 작은 책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은 큰 선물


 20대 젊은 날 절반을 프랑스에서 공연과 극장에 푹 빠진 채 살았다고 하는 최엄윤 님은, 몇 해 앞서부터 대구 이천동 골목길 한쪽에 방을 얻어서 살고 있습니다. 몇 해째 조촐하게 ‘마을잔치’를 열면서 마을사람들하고 마을사랑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러는 동안 겪고 듣고 보고 깨달은 생각을 갈무리해서 조그마한 책 《이천동, 도시의 옛 고향》을 써냈습니다.


.. 결국 어른들은 집과 이웃을 잃고, 젊은 세대들이 새 마을을 형성하는 것이다 … 이웃이 사라지는 것은 결국 환경파괴, 즉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습과도 같다 ..  (29쪽)


 그대로 프랑스에 머물면서 공연과 극장을 더 즐기면서 남은 삶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무엇이 최엄윤 씨를 한국땅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한국땅에서도 서울이라는 남녘땅 한가운데 아닌 대구로, 또 대구에서도 골목길 한켠 자그마한 집으로 깃들이게 했을까 궁금합니다.


.. 불행하게도 남도극장에 관한 기록은 인터넷 검색을 해도 발견할 수 없다. 물론 책으로 기록된 건 전무하다 … 이전에는 사람들이 살면서 많은 추억들을 쌓아가던 곳, 아무도 찾지 않는 지하 창고의 낡은 물건들처럼 이제 일상의 추억들은 유물처럼 어딘가에 묻히게 될 것인가? 아니면 흔적도 없이 아파트의 높은 콘크리트 아래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인가? ..  (51, 55쪽)


 그런데, 최엄윤 씨는 그 대구 이천동 골목집에서 오래오래 깃들일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이 대구 이천동 골목집을 알뜰히 꾸미고 사랑스럽게 돌보면서 이웃사람과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배우고 익혀 온 여러 가지를 마을사람한테 나누어 주고, 마을사람들이 한삶을 거쳐 얻고 느껴 온 여러 가지를 고이 받아먹으면서 한 동네 이웃으로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제가 사는 인천은 관청과 학교와 전철역과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높은 아파트와 공장을 빼고는 거의 모두 갈아엎어서 높은 아파트와 커다란 쇼핑센터로 바꾸는 막삽질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엄윤 씨가 사는 대구도 인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깃들인 서울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이라는 이 작은 나라에 ‘시멘트ㆍ물ㆍ모래ㆍ자갈’이 얼마나 많이 있다고, 이 자원을 섞어서 아파트 올려세울 기계 움직일 기름이 얼마나 많이 있다고, 아파트로 지은 다음 아파트를 돌릴 기름과 전기가 얼마나 넘실넘실 넘쳐난다고, 이렇게 온통 온누리 ‘아파트 공화국’이 되도록 뒤흔들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모르겠습니다. 어느 하나 알지 못하겠습니다. 우리한테 얼마나 넓은 아파트가 있어야 하는지를 모르겠고, 우리한테 얼마나 값나가는 아파트가 있어야 하는가를 모르겠습니다.

 골목집은 마흔 해 쉰 해뿐 아니라 백 해도 거뜬히 견디면서 고즈넉한 집자리로 이어왔습니다. 아파트는 스무 해 채우기도 벅찰 만큼 막 짓고 막 부숩니다. 아파트에 사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새 집으로 옮기고 집살림 갈무리하고 다시 싸서 또 옮기고 하느라 바빠야 합니다. 한 집에 오래오래 머물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거나 가꾸거나 껴안을 틈이란 없는 아파트입니다. 그러한 데에도 우리는 아파트에서만 살아야 하나요. 우리 자신도, 우리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이 낳아서 기를 아이들까지도? (4341.7.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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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엄윤 2008-11-0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을 읽은지 긴 시간이 지났고 이제야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근근이 이어오던 소박한 마을잔치가 이제 두해를 넘기고 있습니다. 올봄에 새롭게 거리를 거닐면서 작년겨울 스산한 삶을 견디지 못한 이웃 할머니의 죽음를 몇개월이 지나서야 알게되기도 했었습니다. 좀더 자주 좀더 많이 어울리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쓸쓸함에 할말을 잃었던 시간도 어느덧 두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 길 위에 있으면서도 아직 제 정체를 찾지 못하는 제게 오래도록 이웃들과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주셨었죠..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조용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어떤 활동으로도 드러나지않기 때문에 때론 나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하다 지치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웃은 좀 더 많아졌고 서로의 눈빛이 좀더 따뜻해 졌고 거리엔 예술의 흔적들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추운 계절이 왔습니다. 건강하세요.
 
들꽃 아이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10
김동성 그림, 임길택 글 / 길벗어린이 / 200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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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 별 셋을 준다고 하니, 우리 옆지기는 "뭔 소리!"냐고, 자기가 보기로는 "별 하나 줘도 시원찮은데"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그리려고 애썼으니 별 셋까지는 줘도 되겠네" 하고 덧붙인다. 나로서도 김동성 님이 앞으로는 '사진 판박이'와 '겉으로만 곱게 보이는' 틀거리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별 하나만 주려던 마음을 고쳐서 별 셋을 드린다.)


 ‘빛나는’ 그림 때문에 ‘빛바랜’ 그림책
 [그림책이 좋다 50] 임길택(글)+김동성(그림), 《들꽃 아이》



- 책이름 : 들꽃 아이
- 글 : 임길택
- 그림 : 김동성
- 펴낸곳 : 길벗어린이(2008.7.10.)
- 책값 : 9800원


 (1) 도시에서 읽는 책


 책을 읽으면서 고운 빛을 느껴서 가슴속에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 세상에서 얼마든지 어디에서나 고운 빛을 느끼며 가슴속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날마다 마주치는 사람들하고, 한집에서 이불 함께 덮고 자는 살붙이하고, 늘 디디고 있는 흙길이나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길에서 자라는 수많은 들풀과 들꽃하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빛을 건네고 빛을 받습니다. 끝없이 퍼붓는 빗줄기를 보면서, 비는 그쳤어도 짙게 드리운 구름을 보면서, 말끔하고 파란 하늘 한복판에 걸린 해를 보면서, 별빛 없는 외로운 달을 보면서, 고요히 빛 한 줄기 쓰다듬습니다. 툭 치기도 하고 발을 밟기도 하고 옆구리로 쿡 찌르기도 하는 짓궂은 사람들을 부대끼는 버스와 전철에서, 북적거리는 도심지 길거리에서, 촛불 들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딱딱한 말씨로 마주하는 관청 민원실에서, 자기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책은 부지런히 읽지만 고운 빛도 미운 빛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책을 안 읽으면서는 바보가 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바보가 된다고 느끼면서도 텔레비전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몸이 찌뿌둥하다면서 자가용 몰기를 그치지 않을 뿐더러,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거두어 밥상까지 흘러왔는가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 꼭 스무 해 전의 일입니다. 도회지에서만 살아오던 김 선생님이 첫 발령을 받아 간 곳은 면 소재지의 열두 학급짜리 아담한 학교였습니다. 닷새마다 장이 서서 처음으로 대장간 구경도 할 수 있었고, 물레방아 돌아가는 한가한 마을이었습니다 ..  (3쪽)


 학교를 오래 다닌 분들은 학과 공부에 쫓기어 책을 가까이하기 힘겨워 합니다. 보고서 숙제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자기 학과 공부와 안 얽힌 책을 읽지 못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그럭저럭 읽는다 해도, 중고등학교만 되어도 학년 등수에 목을 다느라 옆눈도 뒷눈도 돌리지 않아요. 그러면 대학교에 간 뒤라도 책을 읽어 줄 만하지만, 대학교에서는 노느라 바쁘고 놀다가 지치기도 하는 한편, 또다시 시험에 목매다느라 바쁘고 시험공부에 지쳐서 책장 넘길 힘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학교를 그리 오래 안 다닌 분들은 학교 다닐 적에도 책하고 담을 쌓기 일쑤였습니다만, 학교 오래 다닌 분과 마찬가지로 ‘책 = 교과서’라는 틀을 쉬 떨쳐내지 못합니다. ‘책 = 교과서’가 아니라 ‘책 = 삶’임을, 또 ‘삶 = 책’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어쩌면, 집과 학교 모두에서 아이들한테 삶과 책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가르쳐 주지 못한 탓입니다. 삶과 책이 이어진 끈을 알려주면서 아이들이 세상에 눈을 뜨고 자기 마음 문을 열까 두려워한 탓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돈바라기 어른’이 얼마나 얄궂으며 잘못되었는가를 깨닫는다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몰아넣는 입시지옥에 끄달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길을 뚫으려고 몸부림을 치기 마련입니다. ‘책 = 교과서’라는 지식을 자꾸자꾸 집어넣어서 길들여 놓으면, 굳이 ‘마음 밝힐 책’이나 ‘마음에 밥이 되는 책’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착한’ 아이가 됩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니 ‘용돈’을 두둑히 받는 아이가 됩니다.


.. 6학년을 맡고서 선생님은 보선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익혔습니다. 지각이 잦아 생활기록부를 들추어 보니 거기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습니다. ‘공부는 뒤떨어지나 정직하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함.’ ..  (9쪽)


 뜻과 생각이 있다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분들은 자기 집이나 일터에서 으레 ‘한겨레신문’을 받아서 봅니다. 가만히 보면 ‘읽’지는 못하고 ‘봅’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을 보든 경향신문을 보든, 또는 조선일보를 보든 중앙일보를 보든, 이러저러한 신문을 보는 분들 마음결이나 생각깊이나 눈높이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두 마찬가지 아니냐 싶습니다.

 때때로 ‘한겨레신문 보는 분’한테 ‘송건호 선생님을 아십니까?’ 하고 여쭙습니다. “송건호요? 모르는데요.” “아무개 씨가 받아보는 그 한겨레신문을 만든 사람이에요. 몇 해 앞서부터 그 신문사에서는 ‘송건호 언론상’도 주고 있잖아요.” “아, 들어 본 이름 같아요.” “그 송건호 선생님이 살아 계신 동안 책을 마흔 권 남짓 냈어요. 그 책들을 한길사에서 전집으로 내면서 스무 권에 사십만 원 전집으로 묶었지요. 그래서 한 번에 사십만 원 치러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송건호 선생님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답니다.” “…….” “송건호 님은 한국일보,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경향신문,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분인데, 1975년에 동아일보 편집국장 자리에서 사표를 내고 물러나셨어요. 나라에서 신문사를 억누르면서 후배 기자를 백마흔 사람이나 내쫓아 버리니 선배 기자로서 얼굴을 들 수 없다고 느끼며 누가 나가라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박차고 나오셨지요. 그런 뒤 1988년에 한겨레신문을 만들 때까지 실업자가 되어 대학강사도 하고 번역도 하고 책도 내고 위인전도 쓰고 하셨어요.” “…….” “이분이 쓴 글이 참 좋아요. 그런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들조차 이분 이름을 잘 모르고, 이분이 쓴 책도 읽지 않아요.” “…….” “세상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책방을 바라지 않으니, 지금 있는(책방에서 일하는) 분들이 다 세상을 떠나면 책방은 모두 없어지고 말 테지요. 책으로 돈벌이만 일삼는 꾼들만 남고.” “…….” “책은 숲이나 들에서 읽을 때가 가장 좋아요. 숲소리와 들소리를 들으면서 책에 빠지고, 그러다가 한동안 책을 덮고 숲과 들을 느끼고, 다시 책을 펼쳐 책에 빠지고. 도시에서는 옆사람한테 마음쓰지 않는 소리만 가득해서 책을 읽기에 무척 나빠요. 기차 지나가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를 노래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 누가 시킨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보선이는 꾸준히 새로운 꽃을 꺾어 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붓꽃, 원추리, 참나리 같은 꽃들을 꽂아 놓고 정물화를 그리기도 하고, 패랭이꽃의 씨를 받아선 집에다 심어 보자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제까지 팬지나 달리아 같은 외국 꽃들이 이름도 꽃도 좋다고만 여겨 오던 선생님은 은은한 우리 꽃들이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17쪽)


 저를 취재하겠다는 어느 방송국에서 전화가 옵니다. ‘요즈음 책을 멀리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책이란 무엇이라는 한 마디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줄거리만 읽으려면 책이 아니에요. 책은 줄거리를 알려고 읽지 않거든요. 좋아서 읽는 책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책으로 자기 삶을 바꾸려는 마음을 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스스로 책을 읽으며 삶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을 읽지 않으면 좋겠어요. 삶을 바꾸지 않고 지식만 쌓으려고 읽는 책은 ‘지식 사기꾼’만 만드는 책읽기가 돼요. 책을 내는 분들도 줄거리만 건네는 책으로 그친다면 책을 만들지 않으면 좋겠고, 책 하나로 어떤 삶을 어떻게 바꾸어야 아름답고 좋은가를 깨닫고 곱씹으면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헌책방이 나날이 사라지고 있는데 안타깝지 않으시느냐’고 묻습니다. “헌책방도 사라질 수 있고, 다른 모든 것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헌책방이 사라지는 일은 안타깝지 않습니다. 기자 분들이 취재를 하면서 자꾸만 ‘헌책방은 사라지는 곳’이라는 데에 눈길을 맞추면서 이야기를 퍼뜨리는데, 사라져야 한다면 사라질 뿐이고, 사라져야 하지 않다면 사라지지 않게 하면 됩니다. 바로 내일 헌책방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그 헌책방에 볼 만한 책이 있으면 이 헌책방이 사라지든 말든 이곳에 찾아가서 책을 읽으면 돼요. 안타까운 일은, 헌책방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헌책방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헌책방을 알아보지 못하니 그분들이 안타깝고, 헌책방에 깃든 책을 알아보지 못하니 더 안타깝습니다. 헌책방에서 사람들 눈길을 타지 못하고 스러져 버리는 좋은 책들 또한 안타깝고요. 우리는 무엇이 사라지느니 마느니 하는 대목이 아니라, 우리 둘레에서 무엇이 아름답고 애틋하며 값어치가 있는지를, 그리고 어느 곳에서 우리 마음을 살찌우거나 가꿀 빛줄기를 잡아채어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헌책방을 다니면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느냐’고도 묻습니다. “저는 제 마음에 와닿는 책을 찾아서 읽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책이라면 어떤 갈래 책이라도 좋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굳이 어떤 갈래를 나누어야 하지 않다고 느껴요.”


 (2) 도시에서 만나는 사람


.. 돌이켜보니 날마다 보아 오던 학교 안 나무들도 모르는 것들이 여럿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등생이라는 말을 집안 식구들이나 선생님에게 수도 없이 들어왔건만, 지금에 이르러 생각하니 대학을 다닐 때까지 무얼 배웠나 싶었습니다 ..  (10쪽)


 사람들을 만나 함께 길을 거닐다가 문득문득 몇 가지 나무를 알아보고 ‘와, 방울나무다!’ ‘이야, 오동나무네! 저기 봐요. 오동나무가 이 골목에서 자라요!’ ‘어머나, 이팝나무가 조렇게 조그마한 꽃그릇에서 잘도 자라네!’ ‘이 꽃은 라일락이 아니에요. 수수꽃다리예요.’ 하고 외치곤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무 박사네!’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고작 몇 가지만 알아볼 뿐입니다. 이 나무 이름도 흔히 보니까 알지,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이나 꽃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아보지 못해요.

 그렇지만 나무들 이름이며 꽃들 이름이며 풀들 이름이며 하나라도 아는 이가 생각보다 아주 적습니다. 이제 우리 삶터에서 나무와 꽃과 풀은 곁에 있지 않으니까요. 나무와 꽃과 풀이 자랄 땅은 온통 아스팔트가 깔려 자동차가 내달리니까요. 아스팔트가 깔리고 자동차가 싱싱 달리니, 달리는 모습을 얼핏 보면서도 무슨 차인지 용하게 알아맞힙니다. 어른도 아이도 잘 알아맞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터가 아스팔트가 아닌 흙이요, 이 흙에서 나무와 풀과 꽃이 마음껏 자라나고 피어난다면, 우리들은 슬쩍 보아도 무슨 나무요 무슨 풀이요 무슨 꽃인지 모두 알아맞힐 수 있습니다.


.. 하늘엔 벌써 별들이 하나 둘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보선이가 이토록 먼 길을 다니고 있었구나!’ 비로소 선생님은 보선이가 손전등을 가지고 다니는 걸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  (37쪽)


 아침에 이불을 헹구어 옥상마당에 널었으나 다시금 쏟아붓는 비 때문에 부리나케 거두어 집안에 들입니다. 비가 퍼붓다가도 햇볕 쨍쨍 개는 날이 있어서 밀린 이불 빨래를 해 볼까 했는데, 오늘로 사흘째 담가만 놓고 있으면 썩을 듯해서 빨아서 헹구었는데, 다시 빨아야 할 듯 싶습니다. 하는 수 없지요. 이번 이불은 두 번 빨아서 좀더 깨끗하게 간수한다고 생각해야지요.

 엊저녁에는 비옷을 빨았습니다. 비올 때만 입고 말려 놓느라 빗물 냄새 가득 배어 있더군요. 어제는 주안으로 자전거를 타고 어느 모임에 갔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는 길은 비가 안 뿌렸고 오늘 길에만 비가 살짝 뿌렸는데, 오다가 제물포역 앞을 지날 무렵,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택시 한 대가 찻길에 고인 물을 좌왁 흩뿌리는 바람에 자전거와 저는 빗물을 옴팡 뒤집어썼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비옷을 입었어도 안쪽으로 물이 새어들고, 신 또한 물범벅이 되었습니다. 비옷을 안 입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싶고, 비옷을 안 입고 자전거를 탔다면 아마 눈에 빗물이 들어가며 앞을 못 보고 차에 부딪히거나 길에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렴풋이 그 택시를 눈으로 좇으니 저 앞에서 신호에 걸려서 멈췄습니다. 얼마 달리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다니. 설마, 자전거를 보고 놀려 주려고, 괴롭히려고 그랬는가? 빗길에 자전거를 탄 일도 없고 탈 일도 없으니, 이렇게 자전거꾼한테 함부로 굴어도 되는가? 집 앞에 거의 닿을 무렵 좁은 골목길에서 자전거가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 주는 차가 있으나, 자전거가 있건 말건 좁은 골목 다 차지하며 확 밀어붙이는 차가 있습니다. 그 차를 모는 분 아이가 밤에 비 맞으며 자전거를 탄다고 할 때에도 이렇게 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 선생님이 보선이네 집에 다다랐을 땐 열 시가 이미 넘어 있었습니다. 그곳엔 다섯 집뿐인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0년 전 학교가 생긴 이래 마을을 찾아 준 이론 김 선생님이 처음이라는 거였습니다 ..  (40쪽)





 (3) 빛나는 그림에 빛이 바래고 만 《들꽃 아이》


 그림책 《들꽃 아이》가 나왔습니다. 몸이 아파 일찍 세상을 등진 교사 임길택 님이 남긴 짧은 글 〈들꽃 아이〉에 그림을 넉넉하게 입혀 산뜻하게 묶어냈습니다.

 그림결은 부드럽고 빛깔은 고우며 느낌은 싱그럽습니다. 아이들을 좀더 사랑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 산골마을 교사 삶과, 먼길을 걸어서 오가는 동안 지루해 하지 않고 외려 들꽃과 함께 맑은 웃음을 간직하는 아이 삶이 고루 녹아난 작품입니다.


.. “야, 그 많은 꽃들을 보선이는 이런 데서 꺾어 왔구나!” 저절로 감탄이 되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길을 걷는 아이라면 마음도 더없이 아름답게 자라겠지…….’ 꽃들마다 어떤 숨결이 느껴지는 이런 길을 선생님은 처음 걸어 보고 있었습니다 ..  (33쪽)


 그런데, 그림책을 펼치는 눈이 홀가분하지 못합니다. 무겁습니다. 그림책 《들꽃 아이》가 요즈음 이야기라면 모르되, 1990년에 나온 동화책 《우리 동네 아이들》(나중에 《산골 마을 아이들》로 책이름이 바뀜)에 실릴 때만 해도 ‘적어도 스무 해 앞선 때’ 이야기였기에, 일러도 1970년 이야기이고, 작품은 훨씬 앞서서 썼을 테니 1960년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책에서도 첫머리를 “꼭 스무 해 전의 일입니다”로 엽니다. 더욱이 사잇그림을 보아도 옛날 교무실에다가 옛날 책상에다가 서류뭉치며 주전자며 ……. 이런 여러 가지 모습을 헤아려 보았을 때, 그림책 《들꽃 아이》 주인공이 된 아이 얼굴이 ‘1960년대 산골마을 어린이 얼굴’이 맞는가 싶어서 고개를 자꾸만 갸우뚱갸우뚱하게 됩니다.

 도서관 책시렁을 뒤적이며 1950년대와 1960년대와 1970년대 국민학교 졸업사진책을 살펴봅니다. 1980년대 서울 쪽 국민학교 졸업사진책도 뒤적여 봅니다. 아이들 옷이며 신발이며 머리띠며, 또 차림새며 키며 몸집이며.

 그림책 《들꽃 아이》에 나오는 보선이나, 같은 반 다른 동무들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옛 졸업사진책과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모습이 사뭇 다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꼭 스무 해’를 묵은 예전 모습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요즘 어린이들 모습에다가 ‘보선이 머리’만 예전 느낌이 나게 꾸몄구나 싶습니다.

 밝은 그림, 빛나는 그림, 눈부신 그림입니다. 그러나 이 《들꽃 아이》는 ‘호사스런 화집’은 아닐 테지요. 외딴 산골마을에서 교사로 일하는 한 사람이 ‘교사인 자기가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똑똑하다고 느꼈으나, 정작 아이들한테 나무 이름과 풀꽃 이름 하나 알려주지 못할 만큼,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아이를 가르치는 자리에 선 사람으로서 여러모로 부끄러움을 곱씹는 가운데, 참답게 아이들하고 벗삼으면서 즐겁고 슬기롭게 가르치고 배우는 길이란 무엇일까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책일 테지요.

 교사 임길택은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아이들 삶과 삶터를 가까이에서 느끼며 껴안고자 〈들꽃 아이〉라고 하는 짧은 글을 비롯해 수많은 글을 남기며 《우리 동네 아이들》(창작과비평사,1990)을 묶었습니다. 《수경이》(우리교육,1998)도, 《느릅골 아이들》(산하,1994)도, 《탄광 마을에 뜨는 달》(다솜,1997)도, 어수룩하게 우쭐거릴 뻔했던 자기 몸가짐을 추스르면서 아이들 앞에서 키를 낮추며 어깨동무를 하려는 몸짓이었어요. 동시를 모은 《탄광마을 아이들》(실천문학사,1990)이나 《할아버지 요강》(보리,1995)이나 《산골 아이》(보리,2002) 또한 허투루 겉치레를 하려는 마음이 깃들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거나 다독이는 움직임이었습니다. 학급문집 《물또래》(종로서적,1987)와 《광부 아저씨와 꽃게》(웅진,1985) 또한 아이들 스스로 참삶을 찾아서 일구어 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교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실어 놓은 발자국이었고요.


.. 말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쓴 이야기들도 하나의 역사라 여겼다. 나는 역사책에 나오는 큰 사건들도 중요하나, 이에 못지않게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없는 사람들이 가꾸어 나가는 정서 또한 중요한 역사로 대접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고 있다 … 아이들과 나름대로 그렇게 글짓기를 하다 보니 생각되는 게, 정직한 아이들의 글 속에는 ‘역사성­’ 그대로 담긴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 〈들꽃 아이〉에 나오는 ‘보선’이도 실제 아이다. 이름 또한 그대로 썼다. 다만 내가 가르친 아이가 아니고 옆 선생님이 가르친 아이였다. 예전엔 보선이처럼 먼 데서 걸어 학교에 다닌 아이들이 많았다. 이야기 끝쪽을 너무 성급히 맺는 바람에 이야기 맛이 줄고 말았지만, 지금 아이들이 보선이가 걸었던 길을 잃어버렸다는 게 안타까워 이 이야기를 썼다. 이런 길을 잃었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꿈을 잃어버린 거나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 《하늘숨을 쉬는 아이들》(종로서적,1996) 154∼157쪽


 곱다시 그린 그림은 고와서 좋습니다. 어여삐 담아낸 그림은 어여뻐서 좋습니다. 그렇지만, 고움과 어여쁨에 가려지는 빛줄기가 있다면 어찌하나요. 고움을 고움대로 키우고 어여쁨은 어여쁨대로 북돋우면서, ‘어른과 아이가 똑같은 한 사람’임을 느끼도록 이끄는 빛줄기를 나란히 세워 줄 수 있는 그림으로 삭이기는 힘들었는가요.

 이야기 〈들꽃 아이〉를 읽으면, 보선이를 맡은 교사 마음이 수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낍니다. 설레임이 있고 두근거림이 있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이 있는 한편, 기쁨과 고마움이 있고,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뒤이어 땀흘리는 보람에다가 함께 나누는 눈물과 웃음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림책 〈들꽃 아이〉에 나오는 교사 얼굴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합니다(마지막에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만 조금 다를 뿐). 살짝 웃음 띈 모습일 뿐입니다. 보선이가 머나먼 길을 오가던 그 산길에서 헤매면서 들었던 교사 마음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꽃이름을 물어 볼 때 처음에는 쭈뼛쭈뼛 대답을 못하던 모습이 담기지 않습니다. 나중에 식물도감 마련해서 꽃이름을 익히고 난 다음 척척 알아맞히며 슬그머니 우쭐거리는 모습 또한 안 담깁니다.

 출판사에서 ‘시대배경’을 2008년에서 꼭 스무 해 앞으로 돌린 1988년으로 잡았는지 모르겠는데, 1988년으로 잡았다고 한다면 교무실 모습이나 교실 모습은 그때 모습하고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 옷에 ‘88 Olympic’이라 새겨진 모습은 맞겠지요. 산골마을 보선이가 그 먼길을 ‘단화’를 신고 ‘나풀치마’를 입고 다닐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1988년까지도 ‘채색이 곱게 되고 예술품처럼 정물그림으로 담아낸 한국 식물도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곱게 그린 분이나 책을 예쁘장하게 꾸민 출판사나, 틀림없이 짧지 않은 동안 땀흘리고 애써서 잿빛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철근밖에 없는 도시 삶에 푸른빛을 선사하고픈 마음이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애써 흘린 땀방울이 동화 〈들꽃 아이〉를 좀더 살갗 깊이 받아들이지 못한 열매로 나타났을 때에는, 섣부른 ‘분칠’이 될밖에 없습니다. 고욤은 고욤대로 맛이 있습니다만, 고욤은 감이 아닙니다. 고욤을 일러 감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운동장 가엔 이른봄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손을 보아 정성껏 가꾼 봉숭아, 맨드라미, 백일홍, 채송화 들이 벌써부터 화려하다. 그러나, 나는 그 화려한 꽃들에다 결코 우리 아이들을 견주고 싶지 않다. 우리 아이들은 누가 뭐래도 벼꽃이나 옥수수 또는 콩꽃이거나 감자꽃이다. 언제 피었다 지는지를 모르는 그 꽃들만이 우리를 먹여살릴 수 있음을 볼 때는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든다 ..  《물또래》(종로서적,1987) 184쪽


 들꽃은 눈부시게 빛나는 꽃이 아닙니다. 수수한 꽃이 들꽃입니다. 들꽃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 많으며, 사람이 이름을 미처 못 붙인 꽃도 있습니다. 그래서 들꽃입니다. 들사람, 들풀, 들마음 모두 수수함이 가득합니다.

 교사 임길택은 〈들꽃 아이〉를 말 그대로 ‘들꽃’ 같은 아이가 사랑스럽고 믿음직해서 써 냈습니다. 그렇지만 그림책 〈들꽃 아이〉는 ‘교장 선생님이 시켜서 억지로 날마다 가꾸어야 했던 봉숭아, 맨드라미, 백일홍, 채송화’ 그리고 여느 도시 학교 선생님 책상을 수놓는 ‘장미, 라일락, 수선화, 백합’ 같은 이야기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들꽃도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들꽃도 빛깔이 곱고 번쩍번쩍한다’고 말씀을 한다면 저는 두 손을 들겠습니다. 다만, 들꽃은 들에 피는 꽃이고, 이 나라 이 땅 이 겨레 모든 아이들은 들판에서 자기 마음껏 해를 바라보고 바람을 맡고 물을 마시면서 커 가면서 빛줄기를 품에 안고 있는 그 들꽃하고 똑같은 목숨붙이입니다. (4341.7.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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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의 여행 - 아오지에서 서울까지 7,000km
최금희 지음, 임양 그림 / 민들레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59 ― 한국사람 스스로 잊은 남녘과 북녘
 : 최금희, 《금희의 여행, 아오지에서 서울까지 7000km》


- 책이름 : 금희의 여행, 아오지에서 서울까지 7000km
- 글 : 최금희
- 그림 : 임양
- 펴낸곳 : 민들레(2007.8.28.)
- 책값 : 9000원


 (1) 숱하게 죽을 고비 넘기고 찾아온 남녘땅에서


 《통일로 가는 길》(1999), 《사람답게 살고 싶소》(1999), 《북한사람들이 말하는 북한 이야기》(2000), 《1999 민족의 희망찾기》(1999),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1999), 《고난의 강행군》(1999), 《정말이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입니다》(1997) 같은 책들이 한동안 꾸준히 나왔으나, 요즈음은 소식이 뜸합니다. 눈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북녘을 떠나는 사람이 수없이 늘고 남녘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나날이 늘지만, 이들 이야기가 책으로 엮이는 일은 드물 뿐더러 속깊은 이야기가 나오는 일은 더욱 드뭅니다.

 오히려 새로운 이야기가 꾸준히 나와야 하고, 북녘 사람과 삶터와 사회를 거의 모르는 남녘 우리들로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찾아서 읽어야 할 테지만, 세상은 거꾸로 흐릅니다.


..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왜 그러니?” “아니다.” “왜? 한국 애들과 싸웠니?” “아니! 내가 왜 그들과 싸우나? 통일도 바라지 않는 애들인데.” “뭐?” “학교에서 선생님이 통일을 원하는 사람 손들라고 했는데 두 명밖에 없더라. 나머지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더라.” “왜?” “통일 되면 한국이 못 산다고, 그리고 북한사람들 무섭다고…….” 그들은 만나 보지도 못한 북한사람을 무서워하고 있었습니다. 탈북자인 우린 그들에게 경계의 대상이었고, 함께하지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  (213쪽)


 ‘먹고살기 힘들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기 때문일까요. 1950년대나 1960년대나 1970년대나 1980년대나 1990년대나 2000년대나 ‘먹고살기 바쁜데 그딴 데에 무슨 눈길을 둬’ 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기 때문일까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하면서 이웃사람하고 콩알 한쪽 나누는 마음을 가꾸는 문화나 삶을 우리 스스로 내동댕이쳤기 때문인가요. ‘그리 넉넉하다고 할 수 없어도 온 식구 끼니 제때 챙길 수 있으니 즐겁다’는 마음으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인가요. 천만 원을 벌면 일억이 보이고, 일억을 벌면 십억이 보이며 십억을 벌면 백억이 보여서 자꾸자꾸 돈버는 일에만 마음이 끌리기 때문인가요.

 오늘날 남녘 삶터는 지난날과 견주어 ‘먹고살기에 대단히 나아졌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한뎃잠을 자야 하는 분도 꽤 있고, 일자리 못 얻는 분도 퍽 많으며, 일자리를 얻어도 비정규직에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디에 돈을 쓰고 마음을 빼앗기고 몸을 움직이는가를 헤아려 본다면. 한 번쯤 걸음을 멈추고 옆과 뒤를 돌아볼 수 있다면.


.. 내가 생각했던 한국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머리속에 그리던 동포의 느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우리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말투, 생활, 사고방식, 모두가 너무 낯설었기에 자연히 경계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조사실에 먼저 다녀온 언니는 울고 있었습니다. “언니야, 왜 우니?” “금희야, 저것들 사람 아니다. 진짜로 화가 난다.” “왜?” “글쎄, 어머니 아버지가 가짜란다.” … 나는 언니를 울린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하얀 피부에 매서운 눈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한국에 대한 환상이 이미 깨어진 나는 그 사람을 쏘아보듯 바라보았습니다. 경계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사람은 씨익 웃으면서 자리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최금희입니다.” “나이는?” “열여덟 살입니다.” “부모님은?” “최○○, 이○○입니다.” “진짜 네 부모 맞아?”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따졌습니다. “선생님은 눈이 없습니까? 선생님 자식에게도 이런 식으로 묻겠습니까?” … 한 사람으로 존중받길 원했는데 무리였나 봅니다 ..  (206∼207쪽)


 오래된 저잣거리로 푸성과나 열매를 사러 가면,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은 으레 한두 줌 더 집어줍니다. 우리는 아직 500원어치를 따로 살 수 있습니다. 젊은 부부를 걱정해서 더 얹어주는 분들이 ‘잘살면 얼마나 잘살’며, ‘많이 벌면 얼마나 많이 번다’며 그렇게 마음을 써 주실까요. 우리는 저잣거리에 나들이를 가서 여태껏 한 번도 흥정을 해 보지 않습니다. 흥정을 해야 할 까닭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두 식구는 ‘배부르게’ 사는지 모릅니다. 은행에 다문(?) 몇 백만 원이라도 돈을 모아 놓으며 뒷날을 걱정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 젊은 나이에 막일판에라도 가서 돈 좀 벌어 놓으라는 소리도 듣습니다만, 이런 소리를 한귀로 흘립니다. 꼭 벌 만큼만 벌고, 우리가 우리 몸으로 겪거나 부딪히는 세상을 느끼고 싶으며, 곧 태어날 아이한테 온마음 쏟아서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이를 병원에서 낳고 병원에서 몸풀이할 돈을 버느라 뼈를 깎기보다는, 집에서 아이를 낳고 집에서 몸풀이를 하도록 이웃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여쭙고 앞선 이들 책을 찾아 읽으며 스스로 배우며 집을 손질해 놓으려 합니다. 아이를 보육원에 넣거나 밥어미를 두어 돌보게 하고 두 사람이 밖으로 돈벌러 나가기보다는, 우리가 우리 아이와 하루 내내 함께 지내면서 ‘벌지도 않지만 쓰지도 않는’ 삶으로 아이한테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을 듬뿍 나누어 주려고 합니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맛난(?) 밥집을 자가용 몰고 찾아다니면서 바깥밥을 사먹는 일이 그럴싸할는지 모릅니다만, 우리들은 우리 깜냥껏 번 돈으로 저잣거리에서 날푸성귀 장만해서 꼭 두 사람 먹을 만큼만 밥을 해서 버려지는 쓰레기 하나 없이 맛나게 밥그릇을 비우려고 합니다.


.. 한국 가는 길은 점점 불투명해지기만 했습니다. 선교사님을 만날 때마다 부모님은 한국에 갈 방법이 없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선교사님이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금희, 성경 공부 잘해?” “네.” “금희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래?” “돈 많이 벌고 싶습니다.” “돈보다 선교가 좋은 거야. 여기서 성경 공부 잘해서, 북한에 가서 전도해야지.” 한국에 가는 것보다 북한에 가서 선교하는 게 먼저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이국땅에서 고생하며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자식들 걱정에 날이 갈수록 몸도 마음도 지쳐 가고 있었습니다 ..  (158쪽)


 대중교통을 거의 안 타고 자전거를 타는 뜻도 여기에 있습니다. 찻삯을 아끼는 일은 ‘자전거 타기에 뒤따르는 덤’일 뿐입니다. 몸이 튼튼해지는 일 또한 ‘자전거 타기에 얹혀지는 선물’일 따름입니다. 자전거 타기를 하면서 내 몸을 느낍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고 골목을 걷다가 계단에서는 어깨에 짊어지고 낑낑 오르면서 내 삶터를 느낍니다.

 자전거를 세우고 구멍가게에 들러 보리술 한 병 사서 마시며 길바닥에 앉아 있으면서 하늘도 올려다보고, 지나다니며 저를 쳐다보는 사람을 마주보며 싱긋 웃고 인사도 하지만 저 또한 그이들을 구경합니다. 찻길을 싱싱 달리기보다는 거님길에서 아기들 아장걸음에 맞추어 아주 느리게 달리곤 합니다.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슬슬 달리곤 합니다. 때때로 큰자전거 뒤에 짐수레를 붙여 짐을 나르기도 합니다. 이때만큼은 찻길 하나를 떠억 하니 차지하면서 신나게 달립니다.

 우리 앞집에서 일하는 헌책방 아주머니는, 요사이 자전거 짐칸에 푯말 둘을 묶어서 시청 앞으로 가십니다. “배다리, 우리가 지켜야 할 인천의 역사입니다”라는 글을 적은 동그란 푯말을 들고 서서, 우리 사는 이 골목마을 무너뜨리는 ‘산업도로 반대한다’는 뜻을 시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한테 알리려고 하십니다.


.. (대사관 앞에서)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카메라를 든 아저씨 두 명이 우리 쪽으로 왔습니다. 그러더니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대고 우리 모습을 찍는 것입니다. 뭇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괴로웠는데 동물원의 동물 찍듯 우리 가족을 찍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울면서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애원했고, 나는 머리를 무릎에 묻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습니다. … 우리가 어떤 기분일지는 그들에게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먹이를 찾던 하이에나의 먹잇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메라를 부숴 버리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러워 계속 소리를 질렀습니다. “찍지 마요! 찍지 마요!” ..  (154쪽)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문득문득 느낍니다. ‘그래, 요사이는 꽃제비 이야기를 다루는 책도 나오지 않고, 새터민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내면서 남북이 한겨레로 어우러지자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정작 알고 보면, 남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사랑하고 보듬자고 하는 목소리 또한 안 들리잖어? 수수하게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보이지도 않잖어?’

 ‘머나먼 유럽을 그리워하는 책은 나오고, 미국과 남미를 가로지르는 자전거여행을 한다는 책은 나오며, 일본 문화를 둘러본 이야기책은 꾸준하게 나오지만, 정작 우리 사는 이 땅을 두 발로 튼튼히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책은 하나도 안 나오잖아. 게다가, 한국땅 구석구석 찾아다니면서 ‘구경꾼 아닌 한겨레’로 느낀 마음을 담아내는 이야기책도 안 나오고.’





 (2) 떠날 수밖에 없던 북녘땅에서


 지난주 일요일 낮, 인천 논현동 아파트마을로 자원봉사를 갔습니다. 이날 이곳에서는 ‘새터민 노래잔치’가 열렸고, 노래잔치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돕는 일꾼으로 저녁까지 움직였습니다. 자원봉사자가 적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새터민한테 도움이 될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구나 싶어서 함께 가는 분 차를 얻어타고 갔습니다.

 새터민을 한곳에 모아 놓은 마을 가운데 하나인 인천 논현동은 대중교통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퍽 외딴 아파트마을입니다. 여기에서 시내로 나가기에 만만치 않구나 싶은 한편으로, 자가용을 모는 사람한테는 딱히 어려움이 없을 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새터민을 이 동네 한쪽에 주욱 몰아놓고 살게 하는 일이 이분들을 남녘땅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될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그리고 왜 아파트에서만 살게 해야 하는지, 여느 다세대주택이라든지 골목집에서 다른 주민하고 어울리도록 할 때가 낫지 않느냐 싶은 생각이 듭니다.


.. 나는 아버지의 눈을 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장군님 버려 두고 어떻게 갑니까?” “아버지, 굶어죽어도 사회주의 지킵시다!” 작은언니까지 가세했습니다. 아버지는 답답한 듯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내가 너희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일단 건너가서 보여주마. 내가 먼저 건너갈 테니 내 뒤를 따라와라.” ..  (136쪽)


 노래잔치에 나오는 새터민들은 모두들 남녘나라에서 사랑받는 대중노래를 부릅니다. 초등학교를 다님직한 어린 계집아이들은 ‘섹시’와 ‘남자친구’라는 말이 되풀이 나오는 어느 여자 노래패 노래를 춤까지 곁들이면서 부릅니다. 말씨에 함경도나 평안도 높낮이가 남아 있습니다만, 쓰는 말투는 남녘사람하고 다를 바 없습니다. 아이들 말씨에서는 북녘 말씨를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 옷차림이나 어른들 옷차림은 자원봉사를 온 사람들 옷차림과 견주어 퍽 고급스럽게 보입니다. 아파트마을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는 제가 타는 자전거(20만 원)보다 비싼 녀석들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우리 여느 이웃이 입는 옷, 우리 여느 이웃이 쓰는 물건이 퍽 초라하거나 후줄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거리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빨리 ‘남녘사람들 물질주의에 쉽게 빠져드는구나’ 싶어 고개를 젓습니다. 똑같은 새터민인 《금희의 여행》을 쓴 최금희네 아버지는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하나원 나와서 가장 먼저 책장을 만들어 주”었고, “책을 산다고 하면 서슴없이 돈을 주시지만 옷을 산다고 하면 입던 옷을 입으라고 하”였다고 하며, “가끔 외식을 해도 될 텐데 아버지는 ‘그 돈이면 집에서 맛있는 거 며칠을 해 먹을 수 있어.’하(249쪽)”셨다고 합니다.


.. 1996년, 북한의 식량 사정이 더 나빠지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는 교시가 내려졌습니다. 강냉이 뿌리와 배추 뿌리를 주식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김정일이 선포한 것입니다. 강냉이 뿌리뿐 아니라 벼 뿌리, 나무 껍질, 심지어는 강냉이 대까지 가루 내어 먹었습니다 ..  (125쪽)


 저녁 여섯 시 무렵, 노래잔치는 끝나고 잔치 연 쪽에서 마련한 선물을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원봉사 하러 온 사람들은 곳곳에 널린 쓰레기를 주워서 나누어 담고 상자와 종이를 차곡차곡 따로 모읍니다. 큰 비닐에 페트병과 깡통을 따로 나누어 놓았으니, 이곳 분리수거 쓰레기통 옆에 놓고 가도 됩니다. 그렇지만 아파트 지킴이 할아버지는 못마땅해 합니다. 뒷자리는 말끔하게 치워 놓고 쓰레기는 깨끗이 나누어 놓고 쓰레기봉투까지 사서 담아 놓았는데. 몇몇 분들이 머뭇머뭇하다가, 쓰레기봉투는 남구청 것이니 여기에 둘 수밖에 없고, 상자와 깡통 들은 우리 동네로 가져가서 동네에서 재활용품 모으는 분들한테 드리기로 합니다.

 자리를 치우고 쓰레기를 가르는 동안, 노래잔치에서 노래를 부른 아주머니 한 분이 ‘나는 다른 일도 빠지고 나와서 그렇게 노래를 잘 불렀는데, 노래도 못 부른 그런 꼬맹이들한테는 선물도 다 주고 왜 나한테는 안 주느냐’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모든 참가자한테 퍽 값나가는 다리미를 하나씩 주었지만, 그 아주머니한테는 참가상 다리미만 돌아갔던 터. 잔치 연 사람들하고 한참 실랑이를 합니다만, 더 내어 드릴 선물은 없는 노릇.

 자원봉사를 하는 우리들은 조용히 뒷갈무리 마친 다음, 물건을 짐차에 싣고, 차에 나누어 타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에 닿은 우리 두 사람은 밥을 해 먹을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 혼자 집으로 올라가 밥통에 남은 식은 밥을 도시락에 담습니다. 가까운 닭집으로 갑니다. 닭 한 마리 시켜서 보리술 석 잔 마십니다. 말없이 술잔을 비우고 닭고기를 반참 삼아 밥을 먹습니다.


.. 사형 집행은 계속되었고 사형 당하는 사람들의 죄명도 다양해졌습니다. 강냉이 이삭을 훔쳐서 사형 당하고, 고위급 간부 자식이 도박을 했는데 그 누명을 써서 사형 당하고, 길 가는 여자 시계를 빼앗아 사형 당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무조건 공개 처형 장면을 보게 했습니다 ..  (118쪽)


 이튿날 아침, 찌뿌둥한 몸으로 일어나 부랴부랴 서울 나들이를 갑니다. 살림살이가 어렵게 된 서울 대학로 인문사회과학 〈이음책방〉 아저씨한테 이야기를 듣기로 했기에.

 〈이음책방〉에 가기 앞서 성균관대 앞 〈풀무질〉을 잠깐 들릅니다. 책방 〈풀무질〉을 찾아가는 길에 보니, 아스팔트 길바닥 한쪽을 죄다 뜯어내고 무슨 돌을 깔아 놓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풀무질〉에 닿아 아저씨한테 이야기를 들으니, 구청에서 ‘올해 예산을 다 소비해야 해서 하는 일’이라며, 육십 몇 억을 들이는 공사를 한다는군요.

 한쪽은 대학로에 문화를 심으려고 자기 돈 다 털어가며 빚을 지면서 일을 하고, 한쪽은 서민들 세금을 받아서 꾸리는 행정 예산을 빨리 써서 없애야 한다면서 길바닥 뒤집고 있고.


.. 보지도 못한 증조할아버지가 지주였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뿌리깊게 박힌 성분제도 때문에 큰언니는 십 년 넘게 운동과 함께 키워 온 꿈을 버려야 했습니다 … 그렇다고 대학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운동만 해 온 언니는 간직했던 꿈을 고스란히 접고 아버지와 함께 탄광에서 일을 했습니다 ..  (84쪽)


 먹고살 길이 없어서 고향을 등지고 나라를 등지는 북녘사람이라면, 먹고살 길이 많으나 이웃과 나누지 않거나 나누기 싫어서 나라밖으로 떠나는 한편 고향땅을 마구잡이로 파헤치거나 무너뜨리는 남녘사람인가 싶습니다.

 성분에 따라서 자기 꿈을 펼치지 못하는 북녘 사회라면, 학벌과 이름값에 얽매여 자기 꿈을 펼치기 어려운 남녘 사회인가 싶습니다.

 배 굶는 주민이 있어도 배 굶지 않는 간부가 있는 북녘 정치라면, 마음 굶는 주민이 있어도 마음굶이가 무엇인지 깨닫지 않으면서 자기 스스로 마음 굶으며 똑같이 나뒹굴고 있는 남녘 정치인가 싶습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우기 어려운 북녘 땅이라면, 배우고 또 배워도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돌아보지 못하면서 가방끈만 길어지는 남녘 땅인가 싶습니다.


..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 아버지가 만들어 준 썰매가 제일 좋았습니다. 우리 남매는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겨울을 지냈습니다. 남쪽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추운 곳에서 자랐지만 가끔은 지금 이곳이 더 춥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아마 고향에서 느꼈던 훈훈한 정을 느낄 수가 없어서 그런 듯합니다 ..  (29쪽)


 틀림없이 배를 곯다 못해 뛰쳐나오는 북녘사람이라지만, 배만 채우면 모든 일이 끝나는 삶은 아닐 텐데요.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남녘 사회는 ‘정착금’과 ‘아파트’는 나누어 줄 수는 있으나, ‘돈에 담는 넋’과 ‘집에 들이는 얼’은 나누어 주지 못합니다.

 돈을 바라보며 그렇게 부지런히 뛰었으니 돈은 움켜쥐었습니다만, 돈만 바라보고 사람 넋은 바라보지 않았기에 따뜻한 손길로 돈을 건네지 못합니다. 착한 마음씨로 돈을 베풀지 못합니다. 겉보기에 번들거리는 아파트를 짓는 솜씨는 키웠지만, 오래오래 사는 집이 아닌 돈굴리기 건설업으로 나뒹굴고 있기에, 아파트 한 채 걱정없이 나누어 주기는 하지만, 이 집에 깃들이며 이웃사랑과 이웃믿음을 함께하지 못합니다.





 (3) 《금희의 여행》이라는 책을 덮으며


.. 북한에서는 한국사람을 ‘미군앞잡이’로, 남한에서는 북한을 ‘빨갱이’로 부르면서 서로가 서로를 왜곡된 눈으로 바라보며 증오의 싹을 키운 지 50년 … 왜 북한과 남한은 서로를 비방하기에 바쁘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지 안타깝습니다 … 부산사람이 부산사람이고, 서울사람이 서울사람인 것처럼, 나도 함경북도에서 자라난 아오지사람입니다. 14년을 살아온 고향을 잊고 부정한다면 그건 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온 곳이 좋인지 나쁜 곳인지 판단하기 전에 내가 자란 곳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입니다 ..  (233, 237쪽)


 책방 〈풀무질〉 아저씨는 책방 잘 보이는 자리에 《금희의 여행》을 여러 권 쌓아 놓고 사람들한테 ‘이 책 꼭 읽어 보셔요’ 하고 말씀하곤 합니다. 당신 스스로 먼저 읽은 다음 느낌글까지 한 쪽 써서 책손님들한테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처음, 《금희의 여행》이 나왔을 무렵, 좀 시큰둥하게 느꼈고, 책겉에 적힌 ‘아오지’라는 말이 껄끄러웠습니다. 글쓴이가 아오지사람이었기에 아오지를 적었을 뿐임은 나중에 책을 읽으며 알았고, ‘아오지를 팔아먹는 글월’이 아니냐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러나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마을에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숨바꼭질 하는 아이도 말뚝박기 하는 아이도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왜 아이들이 없을까? … 그러다 서울마을에는 아이들이 모여서 놀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보이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만나곤 하지만, 그 놀이터는 답답할 정도로 작아 보입니다.사방에는 자동차들이 득실거립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찾는 일은 고향마을에서 불 꺼진 저녁에 골목에서 아이들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렇게 눈에 띄지 않던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이 딱 한 곳 있었습니다.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다 보면 큰 학원을 지나게 되는데,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아이들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원 어귀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 이곳 아이들의 몸은 종이로 된 교과서처럼 변해 가고 있어서, 경험을 통해서 느끼고 깨닫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외우기 바쁜 아이들이 다른 것을 생각할 시간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  (240∼241쪽)


 《금희의 여행》을 덮은 다음,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 다시 훑습니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었던 대목을 다시 읽습니다. 새터민 가운데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이 있으려나 생각해 봅니다. 새터민 이야기를 하는 분 가운데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헤아려 봅니다. 새터민을 좋게 이야기하건 얄궂게 비틀건, 새터민을 돕건 새터민을 뱀눈으로 바라보건, 이 책 《금희의 여행》이나 지난 1999년에 나온 《사람답게 살고 싶소》나 1997년에 나온 《정말이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입니다》 같은 책을 한 번이나마 들추어본 사람이 몇 사람쯤 될까 궁금합니다. 일찌감치 판이 끊어진 《정말이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입니다》는 헌책방에서 드문드문 눈에 뜨이기에, 보일 때마다 한 권 더 사서 선물해 주곤 하는데, 이 책을 받는 분 가운데 반가운 빛을 보여준 분은 아직 없습니다. 다 알고 있어서 꺼리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아서 꺼리는지, 새터민 이야기를 몰라도 남녘에서 사는 데 아무 걱정이 없어서 꺼리는지 …….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대학입시에 목매이며 살지 않을 수 있으면, 저 같은 사람이 주머니돈 털어서 《금희의 여행》 같은 책을 사서 선물해 주지 않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찾아서 읽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더 많은 돈과 더 큰 집과 더 빠른 차에다가 더 눈길받는 이름값에 발묶인 채 살지 않을 수 있으면, 사람들 스스로 책방 나들이를 즐겁게 하면서 《금희의 여행》 같은 책을 밝은 눈으로 알아보고 맑은 마음으로 새겨 읽지 않으랴 싶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큰 한겨레’이고 ‘민주주의 나라’라고 내세우면서 ‘大韓民國’이라는 나라이름을 쓰고 있지만, 얼마나 ‘큰’ 나라이고, 참말 ‘한겨레’인가 모르겠으며,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고, ‘나라’ 꼴은 얼마나 나라 꼴다운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4341.7.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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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의 왕 장수풍뎅이
구리바야시 사토시 지음, 히다카 도시다카 감수, 고향옥 옮김, 김태우 / 사파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잡지 <북새통> '이달 추천 어린이책'에 보내는 비평]


 이달에 받아 본 책 다섯 가지를 놓고 오래도록 망설이게 됩니다. 지난달에는 어느 책을 고르면 좋을까 하며 즐겁게 걱정을 했는데, 이달에는 마땅히 어느 하나를 가릴 수 없었습니다. 차마 이 책을 좋은 책이라고 추천하기도 껄적지근하고, 그렇다고 이 책을 칭찬하고 싶지는 않고.

 망설이고 망설이며 ‘이 책은 안 되겠어’ 하고 하나씩 덜어내다 보니 《곤충의 왕 장수풍뎅이》(사파리)가 남습니다. 지금 한국땅에서는 ‘장수풍뎅이’를 본다는 일은 아주 드물 뿐 아니라 운이 억세게 좋지 않고서는 꿈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장수풍뎅이며 하늘소가 살아갈 터전을 마구 무너뜨리고 깎아 버리면서 고속도로와 아파트와 공장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판이니, 우리 땅에서 살아가는 장수풍뎅이 이야기는 엮어내지 못하고, 이웃 일본에서 자라는 장수풍뎅이 이야기를 옮겨서 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엮은 《곤충의 왕 장수풍뎅이》는 일본이 어린이책을 얼마나 잘 만들며, 부지런히 엮어내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이 담아내고 있는가를 잘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번역글이 그런지 일본사람이 쓴 글이 그런지 몰라도, 사진 아래에 달린 풀이말 가운데에는 장수풍뎅이를 ‘사람과 함께 사는 이웃 목숨’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한낱 연구대상이나 보호대상이나 노리개’쯤으로 여기는 듯한 풀이말이 자주 보입니다.

 자연 삶터와 목숨붙이를 살펴보는 데에 《곤충의 왕 장수풍뎅이》는 틀림없이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산 목숨’이 아닌 ‘죽은 목숨’ 같은 느낌이 드는 사진과 풀이말은 달갑지 않습니다. 죽은 목숨을 가까이하는 아이들은 이 책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장수풍뎅이와 얽힌 지식? 그러면 이 지식을 얻은 아이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하고 어울리며 살아야 할까요? 지식과 정보를 담아서 보여준다고 하는 자연도감 갈래 책이라고 해서 ‘지식과 정보’만 담아낸다면 속 빈 강정이 되고 맙니다. 별 하나 반을 줍니다. (4341.7.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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