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50명의 여성과학자 이야기
달렌 스틸 지음, 김형근 옮김 / 양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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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과학자라기보다 ‘미국’ 과학자 이야기
 [잠깐 읽기 19] 달렌 스틸,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책이름 :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
- 글 : 달렌 스틸
- 옮긴이 : 김형근
- 펴낸곳 : 양문 (2008.10.17.)
- 책값 : 14500원



 (1) 딸아이를 생각하며 읽은 책


 이제 석 달을 지난 딸아이가 뒷날 커서 어떤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될까, 아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할까를 생각하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는 책을 펼쳐듭니다. 화석연구가, 조류학자, 지질학자, 천문학자, 인류학자, 화학물리학자, 생화학자, 식물학자, 언어학자, 핵물리학자, 신경의학자, 우주비행사, 동물학자, 컴퓨터 과학자, 고고학자, 화학자, 생물학자, 의료물리학자 들을 아우르며 모두 쉰 사람에 이르는 ‘여성 과학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꾸려간 삶을 아이가 나중에 하나하나 펼쳐넘기면서 살펴본다면,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자기 길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해 봅니다.


.. 펄서를 발견한 후 조슬린은 박사학위를 따게 되었다. 그러나 1968년 결혼한 조슬린은 열정을 다해 매달렸던 전파천문학계를 떠나야 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근무처를 옮길 때마다 함께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조슬린은 열 살 때 소아당뇨병 판정을 받은 아들을 돌보느라 바쁜 와중에도 파트타임으로 천문학과 교육 분야에서 일을 계속했다. 그녀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데 ..  (조슬린 벨 버넬/37쪽)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쉰 사람은 모두 ‘여성이라서 안 돼!’ 하는 덫에 치입니다. 걸림돌에 막히고 울타리에 갇힙니다. 대학 교육은 ‘아주 자연스럽게’ 못하도록 막힐 뿐더러, 중고등 교육조차 제대로 받기 어렵습니다. 그저 더 배우고 싶다는, 더 알고 싶다는, 더 깨닫고 싶다는, 자기가 디딘 이 땅과 세상에 무언가 자기 앎과 슬기를 나누면서 살고 싶다는 소담스런 꿈 하나를 믿고 눈물어린 땀을 흘리면서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우리 나라를 돌아본다면, 이제 그 어디에도 ‘여자가 어디 대학을!’ 하는 덫이나 울타리는 없습니다. 여자니까 초등학교만 보내도 잘 가르친 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직 법이나 무역이나 경제나 정치를 다루는 학문에서는 남자만 득시글거리지만, 여자라고 못 들어가지 않습니다. 별을 못 달게 하고 야전장교는 시키지 않아서 그렇지, 여군도 높은 계급까지 올라가곤 합니다. 책마을을 보면 여사장이 있는 곳이 많을 뿐더러, 여자 혼자 모든 일을 꾸리는 1인 출판사도 제법 됩니다.


.. 루스의 연구경력 가운데 대부분은 컬럼비아대학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루스가 죽자 인류학자들은 그의 연구를 비판했다. 근거가 약하고 무익한 연구였다고 무시한 것이다. 그들은 루스가 주장했던 문화의 인성화가 막연한 느낌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사실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류학자들은 루스의 독특한 인류학적 접근의 장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스가 주장한 바처럼 개인적이고 고정적인 상황 모두가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이론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  (루스 베네딕트/42∼43쪽)


 그렇지만 우리 나라가 여자한테 모든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자가 어떤 일이건 마음이 닿고 뜻이 닿고 생각이 닿아서 온몸 내던져서 즐거이 할 수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많이 넘친다고 하지만, ‘옛날과 견주어 많이 넘치는’ 셈이지, 참 자유와 참 평등으로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막상 우리 딸아이를 낳고도 그럽니다. 본가든 친정이든 ‘애 엄마가 애를 돌보고 애 아빠는 바깥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레 이웃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살붙이와 이웃만 그러하겠습니까. 동무들도, 또 저를 안다고 하는 분들도 이러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애 아빠가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애를 어르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애를 씻기고 이불을 빨고 털고 말리고 하는 둥, 온갖 집안살림을 도맡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찹니다. 백일도 안 된 갓난쟁이와 옆지기를 살갗으로 느낀다면, 둘 모두 백일이건 돌을 맞이할 때까지건 몸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음을 당신들도 뻔히 겪어 보았음에도 현실에서는 다릅니다. 너무 옛날 일이라서 잊고, ‘우리 사회가 그러하지 않느냐’면서 일찌감치 손을 놓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기를 배면 달마다 때맞춰 병원에 찾아가 내진을 받아야 하고, 초음파사진을 찍어야 하고, 아기한테 장애가 있는지 살펴야 하고, 성별을 알아내고, 비타민과 철분제를 먹어야 하고, …….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할 만한 일들이 우리 삶터에서 고작 스무 해도 안 된 사이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아기를 낳고 나서도 예방접종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하는 줄, 또 산부인과에서 회음부 자르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듯 여기면서 이런 아기낳기가 마치 ‘자연분만’이라도 되는 듯 여기는 한편, 촉진주사와 무통주사를 놓아 아기를 낳게 하다가, 의사들끼리 힘들면 배를 쭉 째서 끄집어내고, 갓난아기 태지를 함부로 박박 벗기는데다가 형광등 불빛을 쐬도록 내버려두고, 갓난아기한테 엄마젖이 아닌 분유를 먹이지 않나, 아기 낳은 엄마들을 몇 분조차 쉬지 못하게 하며 일으켜서 걷게 하지를 않나, ……. 모두 가슴이 서늘할 만한 일들이 우리 세상에서 고작 스무 해도 안 된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취업 제의도 여러 곳에서 있었지만, 대부분은 남편 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티에게 취업을 제의하는 기관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들어온 제의에 응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경우에도, 거티는 아내가 남편과 함께 일하는 것은 미국인으로서는 ‘비정상적’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1931년 미주리에 있는 워싱턴대학이 코리 부부가 같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의했다. 칼은 약학과 학과장이 되었지만, 거티는 보조 연구원으로 만족해야 했다 ..  (거티 코리/67쪽)


 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이라고 하는데, ‘시대를 뛰어넘었다’기보다는 ‘남녀 불평등’을 딛고 일어선 여성과학자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미국에서 남녀 불평등이 널리 퍼져 있을 때, 어려움을 딛고서 저마다 다 다른 갈래에서 학문을 새롭게 일으켰다’고 해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세상 수많은 남자들은 ‘새로운 학문으로 넓히기’보다는 돈벌이를 하려고 제 밥그릇을 지키는 학문에 매여 있을 때, 여성과학자들은 ‘먹고살자면 돈도 벌어야겠지만, 오로지 그 학문이 마음에 티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좋아서 파고드는’ 가운데 남자 과학자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찾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캐내고 알아내고 밝혀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메리 휘트니는 수학을 아주 잘했다. 똑똑하고 빠르게 지식을 습득하는 그녀에게 선생님들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휘트니가 갈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없었다. 1865년 뉴욕 포킵시의 바서대학이 여성들에게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 가운데 여성을 받아들이는 학교는 하나도 없었다 ..  (메리 휘트니/295쪽)


 어쩌면 터무니없는 울타리가 높고 어처구니없는 덫이 곳곳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더 힘을 쓰고 마음을 바치고 땀을 흘리면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 봅니다. 걱정없이 학문을 하지 못했고, 어려움없이 학문에 온몸 바칠 수 없었기에, 스스로 더욱 훌륭해지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시밭길은 한 사람을 몹시 괴롭히지만, 괴롭힘으로만 끝내지 않고 더 단단하게 여미어 줍니다. 더 힘있게 끌어올립니다. 더 야무지게 다스려 줍니다.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스스럼없이 맞이한다면, 얼마든지 껴안으면서 걸어간다면.

 좋은 조건 하나 없는 가운데 더 빛나는 꽃을 피우고, 넉넉한 터전 하나 없는 가운데 더 싱그러운 잎을 틔우며, 따뜻한 품 하나 없는 가운데 더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지 모를 일입니다.


 (2) ‘여성’ ‘과학자’란 어떤 ‘사람’일까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내내, 또 책을 덮은 뒤로, 오래오래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온갖 어려움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기는 했지만,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는 어슷비슷한 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여성과학자를 빼고는 퍽 비슷한 대목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앨리스는 아버지와 함께 몇 년 동안 부동산에 투자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 덕분에 앨리스는 교직을 그만두고 식물 채집을 위해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  (앨리스 이스트우드/87쪽)

.. 부유한 틸리의 가족은 그야말로 특권을 누리며 살았다. 따라서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중요했다 ..  (틸리 에딩거/90쪽)

.. 당시 윌리어미나는 임신 중이었으나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여성으로서 구할 수 있는 직업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하녀나 가정부 자리를 찾아나섰다. 그녀의 운명을 결정지은 계기는 하버드천문대 소장이던 에드워드 피커링의 집에 가정부로 취직이 된 것이었다 ..  (윌리어미나 플레밍/100쪽)



 생각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었기에 과학이라는 데에도 좀더 눈을 뜨면서 학문을 즐기거나 가까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있는 집안이었을 뿐 아니라, 돈도 있고 힘도 있고 이름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시대를 뛰어넘은’ 과학자가 된 분이 참으로 많다고 느껴집니다.

 학교라는 데를 발도 디디지 못했을 수많은 여성들, 학교에서 배울 권리를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숱한 여성들, 학교가 아닌 집에서라도 세상을 배우거나 부대낄 자리를 한 번이나마 얻어 보지 못한 셀 수 없는 여성들, 집에만 갇혀 집살림에만 마음을 쏟도록 내몰린 어마어마한 여성들은 무엇일까 곱씹습니다.

 오롯한 한 사람이 되자면, 이이는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 사느라 일굴 논밭이 없다고 한다면, 적어도 밥하기와 치우기쯤은 스스로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옷을 깁든 빨든 다리든, 집을 꾸미든 고치든 손보든, 남한테 삯을 주어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테두리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라는 이름은 우리한테 무엇일는지, 우리 딸아이한테 어떤 사람으로 다가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앞으로 자라는 동안, 머리는 굵지만 다리는 가느다란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또한, 다리는 튼튼하지만 머리가 비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알맞춤하게 튼튼하면서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자면, 아버지 된 저부터, 어머니 된 옆지기부터 삶을 바꾸어야 할 테지요. 아니, 삶을 바꾼다기보다 옳게 추슬러야 할 테지요. 생각과 말뿐 아니라 몸가짐과 살림살이까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다스려야 할 테지요.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을 쓰신 분께서는 구태여 이런 대목을 짚을 까닭을 못 느꼈을 수 있습니다. ‘과학자’이니 과학밭에 굵직하게 발자국을 남기면 그만이라고 여기며, 발자국 굵직한 분들만 골라서 이야기를 펼치면 된다고 생각하셨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세계를 주름잡는 나라가 미국인 만큼, 꼭 미국 울타리에서 ‘여성과학자’를 살피면 넉넉하다고 보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든 문학가든 정치꾼이든 예술가든 어느 누구이든, 학문으로 남긴 발자국만으로 ‘시대를 뛰어넘은’이라는 꾸밈말을 앞에 붙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은 꾸밈말을 손쉽게 붙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대’란 무엇이고 ‘뛰어넘기’란 무엇인지, 여기에 ‘여성’이라는 이름과 ‘과학자’라는 이름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뇌어 봅니다. (4341.1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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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아름다움
심상정 지음 / 레디앙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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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모자란? 아니 2%밖에 없는 진보정치
 [잠깐 읽기 18] 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 책이름 : 당당한 아름다움
- 글쓴이 : 심상정
- 펴낸곳 : 레디앙 (2008.9.26.)
- 책값 : 13000원



 (1) 삶과 정치


 어제 한낮, 옆지기는 아기를 업고, 저는 기저귀가방이며 장바구니며 챙기고 골목마실을 나왔습니다. 온나라에 이름나다고 하는 신포시장 닭강정이라는 먹을거리를 인천사람으로서는 처음 먹어 보는데, 제 입에는 너무 매운데다가 튀김옷만 너무 두꺼워서 1/3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마침 아기가 쉬를 한 뒤 낑낑대기에 남은 튀김닭은 싸 달라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집에서도 남은 튀김닭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놓고 망설이게 됩니다. 몇 점 더 먹어 본 옆지기는 도무지 안 되겠으니 버려야겠다고, 돈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망가지는 몸은 되찾기 어려우니 옆지기 뜻대로 따라야 하건만, 먹을거리를 버린다는 일은 영 내키지 않습니다. 양파껍질과 오징어 내장이 아니고서야 우리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라곤 없는데, 버리려는 손이 덜덜 떨립니다. 먹을거리가 없어서 쩔쩔매는 남녘이 아니라,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가운데 못 먹고 버려지는 쓰레기가 온누리에 넘실거리니, 우리들은 죽어서 모두 불지옥에 떨어지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흙을 퍼 와 마련한 거름그릇에 탈탈 털면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맛있다며 멀리서도 자동차 끌고 찾아와서 여러 시간 줄까지 서며 사먹는 닭강정인데, 우리 입맛하고만 안 맞는 닭강정일지 어떠할지 궁금합니다. 동네 닭집에서 튀기는 닭이 부피도 훨씬 많으면서도 몸에서 잘 받는다고 여기는 한편, 생협에서 파는 닭을 우리가 집에서 손수 튀겨서 먹으면 더더욱 맛있다고 느끼는데, 이런 우리 입맛이 지나치게 까다로운지 궁금합니다.


.. 사범대에 진학한 것은 아벚디와 언니가 교사였던 탓도 있지만, 실제 훌륭한 교육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입학하자마자 나는 소원했던 대로 괜찮은 남자 친구를 고르는 데 열중했다. 그런데 남학생을 찍어 두고 뒤를 쫓다 보면 그는 영락없이 운동권이었다. 그와 가까이하자면 학생운동 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맘에 드는 남학생한테 잘 보이려고 열심히 시위 대열을 따라다녔다 ..  (26, 29쪽)


 어제 낮, 골목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참 드러누웠습니다. 아기가 쉬를 해서 기저귀를 갈 때에도 자리에 누운 채 한 손으로 겨우겨우 갈아 줍고 다시 누웠습니다. 드러누운 채 왜 이렇게 몸이 힘들까 하고 생각해 보는데 잘 떠오르지 않다가, 맞다, 아침부터 이불을 빤다며 힘을 쪽 뺐는데 밥도 안 먹고 골목마실을 나갔다가 속이 미식거리는 것만 집어넣고 돌아왔으니 이렇게 몸이 축났구나 싶습니다.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 어제에 이어 빨래를 합니다. 아기 기저귀 빨래는 날마다 스무 장에서 서른 장이 나오니 하루라도, 아니 잠깐이라도 거르면 안 되기도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이 입는 옷도 빨아야 합니다. 기저귀 빨래를 하면서 제 옷 빨래는 자꾸 미루게 되고, 하루 더 입고 이틀 더 입다가 한 주 더 입고 나서 비로소 빠는데, 옆지기도 기저귀 빨래는 해도 자기 옷 빨기는 힘이 든다고 이야기합니다.

 새벽에 보일러를 잠깐 돌렸기에 뜨거운 물이 나와서 통에 받아 놓고 기저귀를 담가 놓습니다. 옆지기 긴바지를 두 벌 빨고 기저귀를 헹구면서 빱니다. 지난주부터는 뜨거운 물에 담근 뒤 헹구기만 합니다. 아기 오줌은 더러울 일이 없으니 오줌 기운만 빠지도록 해서 빨아야 우리도 덜 힘들다고 해서, 이렇게 하기로 합니다.


.. 나는 귀국 후 출장 보고 첫머리에, 다시는 그 기금을 요청하지 않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스웨덴 금속노조는 당시 우리와 조직이나 예산 규모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스웨덴 노조는 어려운 나라의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연대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었다 ..  (54쪽)


 빨래를 마친 뒤 쌀을 씻습니다. 누런쌀 한 주먹에 보리 조금, 수수 조금, 두 가지 콩 한 주먹, 옥수수 한 주먹, 팥 반 줌을 넣습니다. 쌀보다 콩팥이 훨씬 많고, 옥수수 또한 쌀보다 많습니다. 우리 집에 놀러온 분한테 이 밥을 내어주면 거의 못 먹거나 못 씹으시지만, 우리는 하얗기만 한 밥을 먹으면 못 씹습니다. 흰쌀로 지은 밥은 입에서 녹아서 밥을 먹어도 먹은 듯하지 않습니다. 겨만 벗긴 누런쌀로 밥을 지으면 반 그릇만으로도 배가 부르지만, 콩팥과 갖은 곡식을 넣으면 쌀은 1/3 그릇이나 1/4 그릇만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하루 동안 꼬박.

 따로 채식을 한다는 생각이 없이 이렇게 먹습니다. 몸에서 바라고 입에서 바라기 때문이지만, 몸이 훨씬 좋아하고 입도 주전부리를 바라지 않습니다. 조금 모자라다 싶으면 고구마를 날것으로 먹거나 살짝 쪄서 먹습니다. 달걀을 반만 익히듯 고구마도 반쯤 익혀서 먹는 맛이 새삼스럽습니다.


..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 당시 남성 지도부에서 어디를 가든 심 사무처장은 슈퍼우먼이라고 치켜세우곤 했다. 잘났다는 말이니까 우쭐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 엄마가 된 이후 여성들이 ‘슈퍼우먼’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감내햐야 할 짐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절감하였다. ‘슈퍼우먼’이란 말은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여성 개인의 능력으로 치환하는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로구나! 나는 선언하였다. 더는 나에게 슈퍼우먼이란 소릴 하지 마세요! ..  (122쪽)


 아침에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또 집안을 치우면서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세탁기를 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할까 하고. 저 혼자만 품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세탁기를 쓴다고 집안일이 조금도 덜어지지 않습니다. 청소기를 쓴다고 청소 일감이 줄지 않습니다. 냉장고를 쓴다고 밥하기가 한결 낫지 않으며, 전자레인지를 쓴다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안 전기제품은 집일을 맡는 살림꾼한테 일손만 더 가게 하면서 자원은 더 들고 골머리를 더 썩이게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두 손이 아닌 기계에 휙 던져넣기만 하니, 옷을 대수로이 여기면서 더 자주 빨게 됩니다. 옷을 더 자주 빨게 되면서 더 많은 옷을 사게 되고, 더 많은 옷을 사느라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안 입는 옷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두 손이 아닌 청소기를 돌리니 서서 치우느라 허리가 덜 아픈 듯하지만, 청소기가 닿지 않는 자리는 따로 손으로 치우고 닦아야 하니 외려 일손은 곱배기입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만지고 무릎으로 이곳저곳 디디면서 닦는 방바닥과 서서 슥슥 움직이며 미는 방바닥은 사뭇 다릅니다. 냉장고가 먹을거리를 오래 간수해 준다고들 믿지만, 참말 오래 간수하게 해 줄까요. 그리고 오래 간수된 먹을거리는 참말로 우리 몸에 도움이 될는지요. 냉장고가 자꾸만 커지면서 자가용 끌고 ㅇ마트 ㄹ마트 또 무슨 마트에 가서 수레에 그득그득 물건을 쟁이게 되지 않는지요. 안 사도 되는 물건을 사고, 덜 사도 되는 물건을 사며, 조금씩 맛을 보면서 고마움을 느낄 밥이 아니라 싼맛에 덩어리째 쌓아놓고 지겹게 먹어치우는 밥귀신이 되어 가지는 않는지요.

 삶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 생각과 넋이 달라집니다. 삶이 뿌리내린 자리에 따라서 우리 세상이 달라집니다. 정치든 문화든 교육이든 경제든 과학이든, 우리가 뿌리를 두는 삶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온통 더 쓰고 더 누리고 더 가지려고 하는 삶을 우리 스스로 붙잡고 있는 동안, 우리 정치는 진보로 갈 수 없을 뿐더러 개혁조차도 아닌, 그리고 보수조차도 되지 못하는 수구가 되어 버립니다. 흔히 말하는 조중동 매체만 꼴통이 아닙니다. 삶을 바꾸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 꼴통입니다. 조중동 매체가 꼴통이 아니라 조중동을 즐겨 보는 우리가 꼴통이며, 조중동을 비판하느라 애먼 시간을 헤프게 써야 하는 우리가 바로 꼴통입니다.

 정치가 진보가 되려면 삶이 먼저 진보여야 합니다. 사회가 진보로 나아가려면 삶이 먼저 진보여야 합니다. 교육이 진보로 아름답게 피어나려면 삶이 먼저 진보여야 합니다. 경제가 모든 사람한테 골고루 나누어지는 슬기로움으로 가지를 뻗자면 삶이 먼저 진보여야 합니다.

 노래꾼 신해철 님이 부른 〈재즈 카페〉에 나오는 노래말,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피자 발렌타인데이”와 〈나에게 쓰는 편지〉에 나오는 노래말 “돈 큰집 빠른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는 우리한테 얼마나 크고 기쁘며 아름다운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겠습니까.

 진보운동이 뜻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목소리는 높이 외칠는지 모르지만 정작 자기 삶을 진보로 바꾸지 않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입으로는 진보를 외지만, 자기들이 비판해 마지 않는 무리와 마찬가지로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피자 발렌타인데이”를 즐기고, “돈 큰집 빠른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에 매여 있는데, 어찌 세상을 바꾸면서 우리가 더 나은 길로 나아가면서 아름다워지겠어요. ‘서민한테 다가가기’나 ‘서민이 있는 자리로 내려가기’가 아니라 ‘서민과 함께 살기’나 ‘서민처럼 살기’가 되어야 하고, ‘서민’이란 어떤 사람인지를 몸과 마음으로 함께 깨우쳐야 합니다.


 (2) 2%가 아니라 98%가 아쉬운 《당당한 아름다움》


.. 세 번째 직장인 대우어패럴은 종업원 2천 명의 의류 봉제 수출회사로 옛 원림산업을 대우그룹이 인수해 이름을 바꿨다. 자본금 25억 원으로 26억 원 흑자(1984년 등 엄청난 이윤을 내면서도 노동자들이 일당 100원 인상을 요구하자, 깡패를 동원해 전기를 끄고 어둠 속에서 살인적 폭력을 휘두르게 한 그런 회사다 ..  (38쪽)


 진보신당을 이끄는 두 바퀴 가운데 하나인 심상정 님이 쓴 《당당한 아름다움》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사서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손에 쥡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 가는 내내 마음 한쪽이 트이지 않습니다. 이 책 하나 읽으면서 뿌듯하게 피어오르거나 넉넉하게 채워질 가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또는 민주노동당 당내 경선 무렵에 나왔다면 모르되, 이제서야 이와 같은 책을 내는 뜻을 읽어내기조차 어려웠습니다.


.. 진보 정치는 ‘관념’에서 ‘생활’ 속으로 내려와야 한다. 진보 정치에 대한 신뢰는 몇 가지 정책 제시만으로 획득될 수 없다.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생활 정치의 모범을 만드는 일, 그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을 생략한 것, 그것이 민주노동당의 패배가 준 가장 큰 교훈이었다. 노동자 밀집 지역뿐 아니라 장사하는 사람, 기업하는 사람, 학생, 노인, 주부, 그 모든 사람이 사는 곳에서, 국민 속에서 보수를 밀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집권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것 아닌가! ..  (213쪽)


 왜 그럴까, 왜 아쉬울까, 왜 허전할까 하면서, 요새 떠도는 말로 ‘2%가 모자라기’ 때문일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떨떠름함이 풀리지 않습니다. 책상맡에 다 읽은 책을 올려놓고 두 달쯤 시간을 보내면서 곱씹어 봅니다. 아무래도 2%가 아닌 ‘98%가 모자라기’ 때문에 이토록 떨떠름하거나 아쉽지 않으랴 싶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당당한 아름다움’이라 한다면, 첫째로, 심상정 님 삶에서 이웃사람 앞에 무엇을 떳떳하고 다부지게 내놓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둘째로, 둘레사람들과 어떤 아름다움을 즐겁게 나누려고 하는가를 펼쳐 보여야 합니다.

 일찌감치 여러 가지 밝고 훌륭한 일을 하신 분으로서는 자기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내놓기란 쑥스럽기도 하고 번거로운 노릇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난생 처음 들어 보는 낯선 용어와 차단된 정보, 보수 정치권의 역공 속에서 나의 특위 활동은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112쪽)”는 핑계로는, “‘진보’라는 언어는 이미 노무현 정권에 의해 오염된 상태였다. 국민의 눈에 진보는 미래가 아닌 서민 배신과 무능으로 보였고, 냉혹한 심판의 대상이었다(168쪽)”는 상식(?) 아닌 상식 같은 둘러댐으로는, 조금도 ‘당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거나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출발점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지역과 사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서민들과 함께 생활 정치의 모범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머리말)”는 말에서 스스로 털어놓고 있는데, ‘서민과 함께 살아가는 정치’가 무엇인가를 낱낱이 보여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외침으로만 ‘서민과 함께 살아가는 정치’라고 말한들, 무엇이 서민과 함께 살아가는 정치이며, 서민이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삼성재벌과 싸우고 노무현 한미자유무역협정과 싸운 일을 못했다는 소리가 아니라, 이러한 이야기를 ‘그동안 알려진 이야기’를 살짝 겉핥고 지나가는 목소리가 아니라, 세상에 내어놓지 못하고 있던 속알맹이 이야기를, 그리고 이러한 일을 구태여 맡아 하려고 정치권에 뛰어든 속다짐을 《당당한 아름다움》에 담아내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심상정 님 어린 날 이야기에다가 형제와 식구와 동무들 이야기를 더 길게 들려주었더라면,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심상정 님 오늘날 모습을 헤아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또는, 진보신당을 새로 꾸리면서 느낀 보람과 아쉬움과 웃음과 눈물을 스스럼없이 담아내었다면, 민주노동당을 나와서 새로운 진보를 외치는 정당을 꼭 꾸려야만 했다는 뜻을 ‘진보는 서민 배신과 무능으로 본다’는 그이들한테 읽히면서 깨우쳐 줄 수 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책, 그렇다고 선거 때 인기몰이를 할 책도 아니면서 정치꾼 심상정 속모습을 찬찬히 보여주지도 못하는 책을 따로 펴내야 했던 까닭이 있을까 몹시 궁금합니다.


.. 갈수록 악화되는 미국 경제 상황과 맞물려 한미FTA는 우리 경제와 서민 생활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  (109쪽)


 대답은 우리가 아닌 심상정 님이 해야 합니다. 책을 읽는 우리가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우리는 늘 우리 삶에서 부딪히고 있기에, 언제나 묻고 그때그때 대답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심상정 님은 여느 사람들 삶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정치꾼 자리에서 바라보면서 여느 사람들 속을 시원하게 긁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전거를 즐겨탑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면 좋은 여러 가지를 깨닫고, 우리네 길형편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깨닫습니다. 공무원 가운데, 또 정치꾼 가운데 자전거를 즐겨타는 분이 있다면, 이 나라 교통법이 이토록 엉망진창인 채로 남아 있거나, 돈 떼어먹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허울뿐인 자전거문화 정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노동자로 고된 삶을 보내 보기도 하고 노동운동도 했던 심상정 님이기에 노동자 삶과 아픔을 남보다 더 잘 안다고 할 테지요. 그러면 심상정 님은 노동자 삶을 넘어서 다른 삶들, 이를테면 자전거 삶이라든지 헌책방 삶이라든지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피를 보는 농사꾼’뿐 아니라 ‘유전자 건드린 곡식이 아닌 깨끗하고 우리 몸에 살이 되는 곡식을 바라는 집살림꾼’ 삶이라든지 골목길 삶이라든지 책마을 삶이라든지를 얼마나 알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아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고, 즐겨 몸에 익히지 않고서는 생각을 여밀 수 없습니다. 삶이 진보이기 앞서 정치만 진보를 말할 때에는, 얼핏 보기로는 달콤하면서 멋져 보일 수 있을 뿐입니다. 2퍼센트가 아쉬운 진보정치가 아니라 2퍼센트밖에 없는 진보정치가 되고 말 걱정이 큰산과 같습니다. (4341.1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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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목이 말을 걸다 - 골목이 품은 서울의 풍경
김대홍 지음, 조정래 사진 / 넥서스BOOKS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78 ― 세상을 고루 느끼고자 자전거로 골목길 나들이
 : 김대홍+조정래, 《그 골목이 말을 걸다》



- 책이름 : 그 골목이 말을 걸다
- 글 : 김대홍
- 사진 : 김대홍, 조정래
- 펴낸곳 : 넥서스BOOKS (2008.9.20.)
- 책값 : 12000원



 (1) 우리 삶과 길


 아기를 안고 이웃집에 놀러갑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손주를 보았으니 할머님이고, 아주머니네 어머님이 계시니 그분은 증조할머님입니다. 강원도 고장말을 쓰는 증조할머님은 우리가 천기저귀를 쓰는 모습을 보더니, “요새도 천기저귀를 쓰는 사람이 있나?” 하면서 “목욕시키고 빨래만 해도 하루가 가는데.” 하면서 걱정을 해 줍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모두들 천기저귀를 썼을 뿐 아니라, 집에서 손수 물을 덥혀서 아기를 씻겼고, 아기 빨래뿐 아니라 집식구 빨래를 죄다 손으로 했을 뿐 아니라, 밥 해 먹이고 그릇 씻고 집 치우고 하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손으로 하지 않은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더욱이 시골집에서라면 먹을거리까지 몸소 씨뿌리고 가꾸고 거두고 갈무리하고 손질했으니 일손은 훨씬 많이 들었습니다.


.. 40년 이상 된 이발관을 두 곳이나 갖고 있다는 것은 마을사람들에겐 참 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곳을 찾는 마을사람들을 둔 이발관 또한 복일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해 문을 닫은 서울 소격동 〈화개이발관〉을 모두 소장하기로 결정하고 내부 시설을 옮긴 바 있다. 1952년 문을 연 이 오래된 이발관을 근대문화재로 인정한 것이다 ..  (23쪽)


 옆지기는 성당 성가대로 안쪽에 앉고, 저는 아기를 안고 성당 유아방에서 지켜보던 지난 일요일. 아기가 잠에 깨어 쉬를 보았기에 기저귀를 갈아 주니, 옆에서 바라보던 젊은 애 어머니들이 모두 놀랍니다. “어쩜 천기저귀를 써요?” “아기가 좋아하니까요.” “익숙하게 잘 가는 걸 보니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시나 봐요?” “집안일은 누가 누굴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같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아저씨들이 집안일은 하나도 안 하시나요? 하긴, 어떤 아저씨들은 아기가 똥 누면 냄새 난다고 싫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낳은 아기인데.” “호호, 우리 아저씨도 그래요. 똥 누었을 때 한 번도 안 도와줬어요.” “아기가 눈 똥도 냄새 난다고 하면, 나중에 자기 부모님 앓아누웠을 때 어떻게 수발을 들려고. 다 마누라만 시켜 먹을려고 그러실까.”


.. 송월동 골목길로 들어서니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 나온다. 어떤 길은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만한 곳도 있다. 이런 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서로의 숨소리까지 느꼈을 것 같다 ..  (68쪽)


 시금치와 능금을 갈고 효소를 조금 섞은 풀물을 아기한테 떠먹입니다. 아기는 날름날름 잘 먹습니다. 그냥 효소를 물에 타서 줄 때와 견줄 수 없이 맛있게 먹습니다. 날푸성귀와 능금을 때마다 갈아서 주기가 번거롭고 품과 시간이 들어서 그렇지, 이렇게 잘 먹어 준다면 지어미나 지아비가 바쁘고 힘들다 해도, 바지런을 떨어 주어야겠구나 싶습니다. 아기 때 이만큼 못하겠습니까.

 아기는 풀물을 먹고 엄마젖까지 물고 나서 새근새근 잠이 듭니다. 애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서 씻는방에서 기저귀 빨래를 합니다. 애 아버지는 방에 남아서 아기를 보면서 글쓰기를 합니다. 애 어머니한테 빨래를 맡기고 싶지는 않으나, 집에서 빨래라도 하지 않으면 ‘아기와 하루 내내 붙어 있어서 바깥에도 나가기 힘든 판’에 몸뿐 아니라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해서, 웬만한 빨래는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아기를 봅니다.


.. 어떤 사람들은 이곳 100평 주택 팔아 봐야 강남 주택 40평도 못 산다고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강남 40평으로 100평 역할을 하니, 오히려 삶의 질이 높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105쪽)


 옆지기가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있으면, 아침이나 새벽에 불려 놓은 콩과 누런쌀로 밥을 짓고 찌개나 반찬거리 한 가지를 마련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엊저녁에 먹다가 남긴 닭볶음찌개에 시금치와 고구마와 감자와 마늘과 국수를 새로 넣어서 끓입니다. 가톨릭농 생협에서 토막닭을 1킬로그램어치 샀는데, 둘이서 엊저녁에 1/3은 튀기고 2/3는 닭볶음찌개로 해서 먹으면서 배가 너무 불러서 다 못 먹고 남기고 오늘 아침이자 낮밥으로 마저 먹습니다.

 유기농 생협 닭 한 마리는 7600원입니다. 닭집에서 튀김닭을 사먹으면 1킬로그램이 못 되는데 12000원을 냅니다. ㅇ마트에서 파는 토막닭은 800그램에 6400원 하더군요. 생협 매장에서는 물건이 없어서 못 살 때가 잦지만, 집에서 튀기고 끓이는 번거로움을 조금 치를 수 있다면, 외려 더 적은 돈으로 몸에 훨씬 나으며, 우리네 시골살림에 보탬이 되는 데에 돈을 쓸 수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우리 식구는 하루에 한 끼니만 먹으니 7600원으로(해바라기씨 기름을 썼으니 기름값이 닭값보다 더 들긴 했지만) 이틀치 끼니를 배불리 이을 수 있습니다.


.. 쉼터라고 하면 꼭 돈을 들여야만 하고, 또 목책을 두르고 그 안에 팔각정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중림동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평상 하나로도 좋은 쉼터를 만날 수 있다 ..  (256쪽)


 우리 아기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곧 보행기 태워도 되겠네.” 하고, 또 “애 엄마와 아빠가 힘들어서 어떡해요. 유모차 끌고 다녀야지.” 하고 말씀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세탁기도 냉장고도 안 쓰는데 유모차나 보행기 쓰겠느냐고, 그리고 유모차가 아기한테 얼마나 나쁜데 거기에 아기를 태우느냐고 말씀 드립니다. 아기가 걸을 나이가 되면 걸릴 생각이며, 아기가 걷지 못하는 지금은 안거나 업고 다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기 데리고 책방 다니며 사진 찍으러 다니고 하자면 힘들어서 작은 차 한 대 있어야 한다고 근심해 주는 분들한테도, 우리는 여태까지 먼길을 마다 않고 가방 가득 책을 담아 자전거를 달렸다고, 여러 시간 걸어서 다녔다고, 이렇게 다니면서 한결 보람이 있을 뿐더러 더 많은 모습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더 널리 세상을 부대껴서 즐겁다고 덧붙입니다.


.. 재래시장은 자전거나 도보와 무척 잘 어울린다. 부피가 큰 자동차는 어쩐지 시장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자동차가 생활 깊숙이 들어선 것과 재래시장의 퇴조가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 자전거길에는 꼭 우레탄을 깔아야 한다는 것은 갑자기 생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자전거는 비포장길을 달렸다. 지금 산악자전거처럼 두꺼운 바퀴가 아니었음에도 아이도 태우고 쌀짐도 싣고 다녔다. 생태계를 지킨다는 측면에서도 논둑길과 같은 자전거길이 도시에도 많았으면 좋겠다 ..  (272, 310쪽)


 큰돈도 아닌 작은돈조차 벌지 못한다 하여도, 우리는 우리 살고픈 대로 삽니다. 아이를 맡아 줄 사람을 쓸 만큼 돈을 벌지 못하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아이를 맡아 기르며 함께 지냅니다. 아이를 사진이 아닌 숨소리로 느끼고, 아이를 귀염둥이가 아닌 우리 식구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동네 집값이 뛰건 말건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 동네 집값은 움직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한테는 집이 없어서 집값이 오른다고 하여 도움될 일이 없을 뿐더러, 외려 달삯이 올라 걱정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돈을 벌어서 집을 얻을 수 있다 하여도, 우리는 우리 사는 집을 재산이나 부동산이 아닌 보금자리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돈을 벌려고 읽은 책이 아니고, 이름값을 높이려고 찍은 사진이 아니며, 지역문화운동을 하자며 고향 동네 골목길에 도서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즐겁게 살고 싶어서, 신나게 어울리고 싶어서, 깨끗하게 나누고 싶어서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습니다.






 (2) 골목마을과 길


 아기를 안거나 업은 채 골목마실을 다니면, 동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아기 오랜만에 보네.” 하면서 당신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엊그제 볼일이 있어서 서울 나들이를 할 때에도 할머니나 할아버지 뻘 되는 분들은 “아기 참 오랜만에 본다.”는 말을 당신들끼리 주고받았습니다.


.. 날이 풀려서인지 뛰어다니며 골목을 누비는 아이들이 종종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아주 좁은 길이 아니고서는 빵빵거리며 위협하는 자동차들 때문에 날이 풀려도 길에서 마음껏 놀 수 없다. 예전엔 길이 놀이터였지만, 지금은 동그란 울타리 안에 놀이터란 곳이 따로 있다. 벽으로 둘러싸야만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세상이 돼 버렸다 ..  (29쪽)


 흔히 시골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가만히 살피면 도시마을에서도 ‘아기 울음소리 듣기’란 어렵습니다. 갓 태어나는 아기는 시골이 도시와 견주어 훨씬 적지만, 나날이 ‘자가용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길에서 아기를 만나기 어렵지 않느냐 싶습니다.

 제 어릴 적을 떠올리면, 작은댁이 있는 서울로 때 되면 나들이를 가느라 온식구가 인천역부터 전철을 타고 머나먼 길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에 어김없이 갓난쟁이 안거나 업은 어머님들을 보았습니다. 우리한테 아기가 태어난 뒤 더 살피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자가용 아닌 대중교통이나 두 다리로 많이 다니던 때에는 버스나 전철에서 ‘애 업은 어머님’ 보는 일은 아주 흔했습니다. 그리고, 저잣거리로 장보기를 나오는 ‘애 업은 어머님’을 비롯하여, 아기 해바라기와 바람쐬기를 해 주는 ‘애 업은 어머님’이 퍽 많았어요.


.. 서울 지역 유일한 백제시대 토기 가마터이지만, 이곳이 문화유적지라는 것을 알 만한 것은 담 한쪽에 있는 안내판이 유일하다. 관악구청장은 선거에 나올 때마다 백제요지 보존을 이야기했지만, 이곳 풍경은 몇 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백제요지 바로 옆에는 공영주차장 건설이 추진 중이다 ..  (45쪽)


 우리도 다니면서 느끼지만, 아기를 데리고 전철로 움직이기란 몹시 힘듭니다. 고달프고 시끄럽고 진땀을 빼야 합니다. 가까운 길이 아닌 먼 길을 가느라 전철을 타기에, 전철에서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이고 해야 하는데, 덜컹거리는 전차간은 그나마 ‘영유아 동반자석’이라는 이름을 함께 달고 있기는 해도, 걱정없이 느긋하게 젖도 물리고 기저귀를 갈 수 있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자전거를 싣고 전철로 움직이는 일도 퍽 고단합니다. 바퀴걸상을 놓는 칸이 앞뒤로 하나씩 있기는 한데, 이 자리는 자전거를 세우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들고 전철에 올랐어도, 스스럼없이 이 자리에서 비켜나 주는 손님이 많지 않아요. 그냥 뻗대고 섭니다. 바퀴걸상이나 자전거가 없다면 누구나 설 수 있는 자리이지만, 바퀴걸상이나 자전거가 있을 때에는, 또 짐칸에 올리기 힘든 큰짐을 들고 타는 분이 있을 때에는, 누구나 이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합니다. 두 다리 멀쩡한 사람은 계단을 타고 두 다리 아프거나 나이든 이들이 승강기를 타야 하듯, 힘이 없거나 여린 사람한테 마음을 써 주는 우리 삶이어야지요.

 사람보다 시설을 탓해야 하고, 사람보다 시설을 못 갖추는 우리 문화를 탓해야 하며, 사람보다 시설을 갖출 마음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교육을 탓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설도 문화도 교육도 다른 어느 누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받고 우리가 누리고 우리가 가꿉니다. 정치하는 사람을 우리 손으로 뽑듯, 공무원이 잘못을 하면 우리 손으로 꾸짖거나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 둘레에 일이 터지면 우리가 나서서 다스려야 합니다. 또한, 시설이 안 되어 있다면, 시설이 될 때까지 우리들이 뜻과 마음을 모아서 손질해 나가야 합니다.


.. 추위를 녹이기 위해 어묵 파는 트럭에 잠시 들렀을 때, 아저씨가 “오늘 같이 추운 날도 자전거를 타세요?” 하며 놀랐지만, 동네사람들 또한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를 탔다 ..  (119쪽)


 ㅇ마트 같은 큰 가게에 가면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 수 있는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옛 저잣거리를 나들이할 때면 뒷간조차 찾을 수 없어서 몹시 힘겹습니다. 새 도심지 큰 빌딩 사이 거리를 거닐 때에는 큰 건물 뒷간을 쓸 수 있습니다. 옛 도심지 골목길을 거닐 때에는 동사무소나 파출소를 찾지 않고서는 뒷간 쓸 곳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ㅇ마트나 빌딩숲에서는 서로가 서로한테 마음을 쏟아 주지 않고,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곳입니다. 옛 도심지 골목이나 저잣거리는 편의시설이 마땅하게 없어도 서로가 서로한테 마음을 쏟아 주는 곳입니다. 비록 뒷간이 없을지라도 골목집 이웃이 당신 집에서 볼일을 보도록 마음을 써 주곤 하며, 아기를 돌볼 방이 없을지라도 고즈넉한 안쪽 골목에 꼭 마련되어 있는 평상에 앉아서 기저귀를 갈거나 젖을 물릴 수 있습니다.


.. 예전 아이들은 땅만 있으면 놀이기구가 필요없었다. 땅ㆍ나무ㆍ집이 곧 놀이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노는 것도 돈이 필요하다. 얼마나 비싼지에 따라서 정성이 결정된다 … 사회는 점점 비슷비슷해지고 그래야만 안심할 수 있게 돼 버렸다. 그런 점에서 모든 것이 제각각인 골목동네는 환영받기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모두 같은 것들만 존재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재미가 없겠는가 ..  (136∼137쪽)


 어린이부터 푸름이와 젊은이와 늙은이까지 똑같은 식구요 이웃이요 동무로 어울리게 되는 골목마을입니다. 도시에서는 골목마을이고 시골에서는 고샅마을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 따로, 푸름이는 푸름이 따로, 젊은이는 젊은이 따로, 늙은이는 늙은이 따로 어울리거나 모여야만 하는 새도시요 뉴타운이요 아파트요 쇼핑센터요 빌딩숲입니다.

 관계자 아니면 드나들 수 없을 뿐더러 경찰옷과 닮은 제복을 입은 건물지킴이가 득달같이 좇아와서 왜 들어왔느냐고 캐어 묻는 새도시요 아파트요 빌딩입니다. 번쩍번쩍 차려입은 옷이라면 모르되, 후줄근하거나 홀가분한 차림새는 금세 눈총을 받습니다.

 관계자 아닌 누구라도 드나들 수 있을 뿐더러 지키는 사람 따로 없는 골목길입니다. 가볍거나 단출한 옷차림이 아닌 사람은 금세 눈에 뜨이게 되는 골목길입니다. 낯선 사람이라고, 뭔가 길을 잘못 든 사람이라고, 골목마을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느냐 싶어서 궁금하기도 하지만, 경계를 하게 되는 양복쟁이입니다.


.. 평지를 통해서 흑성동으로 가고자 한다면 상도역에서 상도터널을 지난 뒤, 차도 옆길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길은 쉽겠지만 시끄럽고 공기 또한 나쁘다. 길도 쉬우면서 조용하고 공기까지 좋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욕심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 아파트는 참 슬프다. 대를 이어 오래오래 살 곳이 못 된다. 추억을 묻기엔 그 삶이 너무 짧다. 아파트의 삶은 도시의 변덕스러움을 참 많이 닮았다 ..  (160, 172쪽)


 큼직한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 있으면 ‘부러 꾀죄죄해 보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이곳은 하루빨리 재개발해야 하는 곳’으로 여겨지게끔 하는 첩자가 아니냐며 따갑게 바라보는 골목마을입니다. 크고 빛나는 사진기는, 새 도심지와 빌딩숲 따위에서는 크게 돋보이면서 자랑 삼을 수 있을지 모르나, 골목마을에서는 두려움과 거리두기를 느끼게 합니다. 골목길에서는 짐자전거나 아이 태운 자전거가 어울리지만, 새 도심지 큰찻길에서는 으리으리 빛나는 값비싼 자전거라든지 자전거옷(저지)을 쪽 빼입고 싱싱 누비는 자전거가 어울립니다.

 골목길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헌 신문지와 종이상자와 빈병 들을 그러모아서 다문 몇 백 원이나마 벌이를 하면서 일손을 놀립니다. 새 도심지와 빌딩숲과 아파트에서는 용역업체에서 큰차를 불러서 ‘요일에 따른 재활용품 수거’를 한꺼번에 싹 해치웁니다. 골목길에서는 헌 신문지 따위를 잔뜩 그러모은 손수레가 언덕길을 낑낑대며 오르기에 뒤에서 영차영차 밀어 줍니다. 새 도심지에서는 큰소리로 빵빵거리면서 윽박지르는 자가용이며 짐차며 오토바이며 그득그득하기에 얼른얼른 길을 비키면서 몸을 사리게 됩니다.

 백일이 되면 백일떡을, 돌이 되면 돌떡을 해서 집집마다 찾아가면서 인사를 할 수 있는 골목마을입니다. 백일이나 돌이 되면 호텔 한 층이나 뷔페집 한 칸을 빌려서 수백만 원을 치르고 행사(이벤트)를 벌여야만 되는 아파트단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골목마을에서도 백일떡이나 돌떡을 구경하기 힘듭니다. 경제성장율에 매여 있는 나라에서는, 경제대통령이라는 허울만 보고 큰 심부름꾼을 뽑는 나라에서는, 더 많은 연봉을 받지 못하면 안달을 낼 뿐더러 제법 많은 연봉을 받고 있음에도 배부를 줄 모르는 나라에서는, 온갖 물질문명을 누리면서도 마음밭 살찌우기는 조금도 못하는 나라에서는, 온갖 전기제품을 쓰며 일손을 줄였다고는 하나 남녀평등도 사람평등도 이루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백일잔치도 돌잔치도 마을잔치로 치를 수 없습니다. 혼인잔치도 예순잔치도 마을잔치로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숫자, 그저 돈, 한낱 돈주머니에 매달릴 뿐입니다.





 (3) ‘자전거 골목 마실’인 《그 골목이 말을 걸다》


 인터넷신문 기자이기도 한 김대홍 님이 쓴 《그 골목이 말을 걸다》를 읽습니다. 이제까지 ‘골목길 나들이’를 글감으로 삼아서 나온 책이 제법 되고, ‘서울 문화’ 이야기를 다룬 책도 꽤 됩니다만, 한영수 님이 찍은 사진에 어린이문학가 어효선 님이 글을 쓴 《내가 자란 서울》(대원사)만큼 사람 냄새가 묻어나도록 이야기를 펼친 책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 자전거를 타는 것은 즐겁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자전거는 ‘일상’이라기보다는 ‘일상탈출’의 성격이 강하다. 자전거는 한강 공원에서 어쩌다 타는 것, 추억을 남기기 위해 먼 여행을 갈 때 쓰는 것, 도시가 아닌 자연에서 타야 좋은 것, 보기에 예쁜 소품으로 쓰이기도 한다 … 골목여행은 달리 말하면 마을여행이기도 하다. 골목을 통해 마을 곳곳에 새겨진 흔적과 발자취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머리말)


 누구나 자기가 자라는 대로 고향마을을 이야기하기 마련이며, 누구나 자기가 겪은 대로 이 나라 서울을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온나라가 서울에 쏠리도록 되어 있고, 온사람이 서울로 가도록 이루어져 있기에, 서울만큼 문화며 역사며 문명이며 예술이며 교육이며 경제며 …… 이야기감이 많은 곳은 이 나라에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 사는 이야기도 서울사람 이야기가 가장 많습니다. 왜냐하면, 가난뱅이부터 배부른 사람들까지, 또 가난했으나 배부르게 된 사람과 배불렀으나 가난하게 된 사람까지, 서울처럼 갖가지 사람이 뒤죽박죽 얼키고 설킨 데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아무리 우리가 외곬눈으로 서울을 들여다보고 ‘서울 골목마실 + 서울 자전거마실 + 서울 문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푸지면서 맛깔스러울밖에 없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만, 이는 그저 제 생각에 지나지 않더군요.


.. 물론 이런 경사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지형이 불편해 집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돈 없는 서민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 ..  (30쪽)


 김대홍 님이 쓴 ‘작은자전거 타고 서울 골목길을 마실하면서 느낀 문화와 사람 이야기’도 다른 분들 책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가지만 보고 다른 여러 가지는 두루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빨리 더 서둘러 더 많이 더 깊이 파고들거나 이루거나 울궈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골목마을에 ‘이발소’와 ‘맛집’만 있지 않습니다만, 골목길에 깃든 수많은 가게 가운데 고작 몇 군데에서만 아련함과 싱그러움을 찾고 만 대목은 아쉽기만 한데, 이 자그마한 책 하나로 모든 서울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는 한편, 글쓴이도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려 하지 않았으니, 낮은자리에서 조금 더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서울사람들한테는, 또 서울을 맛보고 싶어하는 분들한테는 제법 괜찮은 길동무가 되리라 봅니다.


.. 골목에서 사진을 찍을 때 몇 분이 잔뜩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내게 질문을 건넸다. 그때마다 나온 첫마디는 “재개발 때문에 찍느냐”였다. 혹시나 사진을 어디 이용하지나 않을까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이런 질문을 재개발 지역을 찍으면서 종종 받았다. 내게는 그저 사라질지 모를 동네를 둘러보며 그 흔적을 남기는 것에 불과한데, 그들에겐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  (148쪽)


 골목에는 골목집이 있고 골목사람이 있습니다. 골목 구멍가게가 있고 골목 헌책방이 있습니다. 골목집은 지붕이 낮아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집도 해바라기를 즐길 수 있고, 빨래도 햇볕에 널 수 있습니다. 골목사람은 스스로를 높일 까닭이 없으나 낮출 까닭도 없어서 누구하고나 스스럼없는 이웃이 됩니다. 나이가 벌어져도 이웃이고 나이가 비슷해도 이웃입니다. 골목 구멍가게에는 모든 물건을 고루 갖추어 놓지는 못하지만, 골목살림을 하면서 있어야 할 물건은 어딘가에 한두 가지씩 갖추어 놓아서 싼값에 내어줍니다. 골목 헌책방은 그리 넓거나 크지 않음에도 온갖 책이 골고루 꽂힌 채 우리를 기다리는 한편,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 누구나 몇 천 원만 있으면 마음을 푸근히 살찌우는 책 하나 집어들 수 있습니다.

 아무나 들어가서 놀기 어려운 아파트단지 놀이터입니다만, 아파트단지 놀이터까지 가는 길은 또 얼마나 먼지요. 누구나 찾아서 쉬어도 되는 골목길 빈터요 평상이지만, 큰길에서 골목으로 살짝 들어와 조금만 걸으면 어디에서나 어렵잖이 만날 수 있습니다.

 큰차든 작은차든 싱싱 내달리기만 하는 자리에서는 골목사람이고 아파트사람이고 꽃그릇을 키워서 내놓지 못합니다. 차는 들어오지 못하나 자전거는 들어설 수 있는 골목길은 어디에서나 곱고 소담스레 가꾼 꽃그릇이 담벼락 한쪽 또는 두쪽 모두 얌전히 놓인 채 꽃임자뿐 아니라 골목이웃과 모든 길손한테까지 웃음을 선사합니다.


.. 언덕이 꽤 가파르지만 올라갈수록 점점 시야가 넓어진다. 동대문 너머 동네가 한눈에 들어온다. 야경이 눈부셨지만 군데군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아파트가 시선을 가로막는다. 세상을 볼 권리는 고층아파트 꼭대기에 사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인가 ..  (222쪽)


 글쓴이 김대홍 님이 앞으로도 꾸준히 골목마실을 자전거로 다니면서 서울 구석구석을 더 돌아보고, 좀더 느긋이 골목가게와 골목사람을 더 부대낄 수 있다면, 그리고 서울 바깥으로도 나와서 ‘제 나름대로 살림을 꾸리는 터전’을 한 곳 두 곳 찾아나선다면, 두 번째 ‘그 골목이 말을 걸다’는 아직 짚어내지 못한 숱한 눈물콧물과 웃음자락을 알알이 곰삭이며 나누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 책에서는 ‘세상을 볼 권리’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들려주었으니, 다음 책에서는 무엇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들려줄지를 기다립니다. (4341.11.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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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 아들 어린이작가정신 저학년문고 15
노경실 글, 김중석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를 왜 ‘학교’에 보내야 하는가
 [잠깐 읽기 17] 노경실, 《엄마 친구 아들》



- 책이름 : 엄마 친구 아들
- 글쓴이 : 노경실
- 그림 : 김중석
- 펴낸곳 : 어린이작가정신 (2008.10.14.)
- 책값 : 8400원



 (1) 우리한테 학교는 어떤 곳인가


 저녁 아홉 시 무렵, 옆지기는 아기를 등에 업고 두 사람이 골목마실을 합니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아기를 돌보면서 지치고 힘든 우리 둘이는, 아기를 안거나 업고 밖으로 나오면 아기가 고이 잠들어 한숨을 놓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땅도 좀 밟고 살자면서 숨이라도 돌리고 싶어서 바깥바람을 쐬러 나옵니다.

 슬슬 거닐며 낯익은 골목도 지나고, 아직 디디지 못한 골목도 지납니다. 어둑해진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이 보이고, 학교옷을 입은 아이들이 보입니다. 동산고등학교 옆을 지나고 박문여자고등학교 옆을 지나며 재능대학교 옆을 지납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건물은 가장 높은 층 유리창에 불빛이 환합니다. 지난날을 거슬러 생각합니다.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나, 3학년 교실은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궁금했는데, 가만히 보면, 가장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려고 1∼2학년 아이들하고 떨어뜨리려고 위층에 올려놓았는지 모릅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열 시하고도 반. 인천은 서울과 달라 시내버스도 일찍 끊기는데, 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버스라도 넉넉히 있으려나. 보아 하니 열한 시는 되어야 학교에서 풀려날 듯하고, 거의 열두 시 가까워서야 버스를 탈지 모르는데, 학교 선생들은 도무지 무슨 마음으로 아직까지도 저렇게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닦달을 하고 있는지. 원.


.. “현호야, 엄마 친구 아들은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일등해서 해외 연수 가는 장학금을 받는대.” “누구요?” 나는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누군지는 알아서 뭐 하게? 엄마 친구 아들이 한둘이야?” “그럼 엄마 친구 아들들은 다 똑똑해요?” ..  (25쪽)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이들 스스로 저 굴레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도 이러한 굴레에서 아이들을 홀가분하게 풀어놓지 않습니다. 학교가 시키는 대로 따라갑니다. ‘너희들한테는 다른 볼 것 없어. 오로지 대학교뿐이야.’ 하는 윽박지름에 고분고분 따릅니다.

 늦은밤, 햇볕 한 줌도 못 쬐었을 법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 몇몇은 길바닥에 침을 찍찍 뱉습니다. 건널목이 빨간불임에도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꾹 찔러넣은 채 여 보라는 듯이 건넙니다. 이튿날 저녁, 다른 동네 다른 고등학교 앞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봅니다. 사내든 계집이든, 아이들은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고는 이죽거리는 얼굴로 길바닥에 침을 직직 뱉습니다.

 문득 내 고등학교 적을 되돌아보니, 그무렵에도 이와 같은 얼굴로 이와 같은 몸짓으로 이와 같이 침을 내뱉는 동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하나도 멋있지 않고, 하나도 ‘불량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딱할 뿐입니다. 그저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햇볕이 아닌 형광등 불빛에 하루 열 몇 시간씩 시달리는 아이들이 되다 보니까, 닭우리에 갇혀서 잠도 못 자면서 알만 낳다가 고기닭이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암탉들처럼, 이 아이들도 햇볕 아닌 형광등 불빛에 시들고 길들고 찌들면서, 마음밭이 자꾸자꾸 거칠어지고 메말라 가지 않느냐 싶습니다.


.. 이렇게 신기한 점이 엄마와 나 사이에 있는데, 왜 엄마는 나를 보면 활짝 웃는 때보다 툴툴거릴 때가 더 많을까? 내가 알아낸 답을 말해 줄게. 첫 번째 이유, 내가 일등을 못 해서다. 두 번째 이유, 누나와 자꾸 싸워서다. 딱 두 가지 이유로 엄마는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그러나 ‘일등’이라는 이유는 조금 억울해. 내가 위인전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학교 공부 일등해서 훌륭하게 된 사람은 거의 없거든. 오히려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고 걱정시킨 위인들이 많아. 그러고 보면 나는 착하고 훌륭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거야. 너도 위인전을 꺼내 놓고 하나하나 조사해 봐 ..  (16쪽)


 올해에는 아직 옛날 고등학교 적 선생님들 뵈러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한 해에 한 번씩 옛날 동무들이 모여서 예전 선생님을 뵈러 찾아가곤 합니다. 꼭 스승날에 맞추지는 않고, 예전 선생님 시간에 맞추어 찾아뵌 뒤 소주 한잔을 걸칩니다. 학교에서 뵙기도 하고, 선생님 사는 집 둘레 소주집에서 만나기도 하는데, 학교에 갈 때면 으레 예전 교실도 둘러보지만, 예전 교사나 요즘 교사나 똑같이 한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도 살펴봅니다. 남자교사 책상 한쪽에 올려져 있거나 옆에 서 있는 ‘몽둥이’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세상은 틀림없이 ‘민주화’가 뿌리내렸다고 말하고, 우리 나라는 어김없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아직도 제 고향땅 인천에 있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 매타작 소리가 학교를 쩌렁쩌렁 울립니다. 더욱이, 매타작 소리를 듣는 어린 후배들은 이러한 매타작을 ‘잘못을 했으면 마땅히 받아야 할 벌’로 여기고 있어서 아찔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되묻습니다. ‘그래, 그러면, 선생님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어떻게 하지? 그때에는 너희들이 몽둥이를 들고 선생님을 두들겨패면 되니?’


.. 대신 지섭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른 말을 했지요. “그게 어때서? 우리 엄마는 공부만 일등하면 다른 건 하나도 못해도 나를 왕자처럼 모실 거야.” ..  (44∼45쪽)


 되물음에 대답을 해 준 후배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회 후배들(지금 고2)은, 아니면 30회 후배들은, 아니면 40회 후배쯤 되어서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저는 4회 졸업생입니다).

 옆지기와 아기와 함께 밤마실을 하다가 밤늦도록 불이 켜진 고등학교 옆을 지나가면서, 밤나절 술 한 병 사러 동네 구멍가게를 다녀오는 길에 이웃한 고등학교 아이들 몸짓을 보면서, 마음이 늘 어둡습니다. 우리가 어버이 된 몸으로서, 이러한 일을 모두 치러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하나도 달라진 대목이 없음을 알고 있는 마음으로서, 우리 아이가 제도권 학교에 다니도록 해야 할는지 걱정입니다. 아이가 제도권 학교를 다니면서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입을 때 어찌해야 할는지 근심입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아이가 학교에 다닌들 무엇을 배울는지 끌탕압니다.


 (2) 좋은 이야기감이나 섣부른 끝맺음


 어린이책 《엄마 친구 아들》을 읽습니다. 짧은 이야기 하나를 써도 늘 아이들 눈높이에서 헤아리고 살피면서 아이들 마음결을 보듬어 주는 노경실 님 새 작품입니다. 아들(남자)만 높이 섬기는 한국땅에서, 이웃집 아들과 자기 집 아들을 견주느라 아이들이 사람답게 자라도록 하지 못하는 온갖 문제를 맛깔스러우면서도 앙증맞게 잘 여미어 놓은 작품입니다. 진작에 이러한 글감으로 우리 교육 문제와 집살림 문제를 짚어냄직도 했건만 여태껏 이러한 ‘우리 삶 자잘한 이야기’를 글감으로 삼은 어린이책이 드물었습니다(어른책도 드뭅니다). 《상계동 아이들》과 《복실이네 가족 사진》부터 《어린이 동장 만세》와 《열 살이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와 《네가 있어 엄마는 행복해》에 이르는 수많은 창작을 일구어 낸 노경실 님을 생각한다면, 이쯤 해서 이분이 이만한 작품을 선보일 만하구나 싶습니다.


.. 나는 그냥 보통 어린이야. 바둑은 아마 5급이고, 태권도는 까만 띠야.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정도는 피아노로 대충 연주할 수 있어 ..  (10쪽)


 그러나, 책을 읽어 가면서, 또 마무리를 보면서, 어쩐지 팥소가 빠진 찐빵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합니다. “아들이라는 말이 군대 계급장 같아(12쪽)” 하고 생각하는 《엄마 친구 아들》 주인공인데, ‘엄마 친구 아들’로서 겪는 아픔이나 생채기가 잠깐 스치듯 보여질 뿐인데다가, 아이가 엄마한테 뿔이 나서 ‘집을 나가는(가출)’ 마지막 대목에서 참으로 싱겁게 ‘해피 앤딩’이 됩니다.

 공부도 잘 못하고 누나하고는 허구헌날 싸우기만 하는 주인공(현호)이 딱 하나 잘하는 일이라면, 동네 어른들한테 인사 꼬박꼬박 하기라고 하는데, 주인공이 어느 날 불현듯 ‘나한테도 자랑할 만한 일이 있다’고 느끼며 어머니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데, 어머니는 아이 마음을 조금도 읽지 못하는 채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잔뜩 뿔이 나서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 안 해요!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엄마 아들 안 할래요. 그러니까 다른 아줌마네 아들을 엄마 아들로 삼아요! 나는 다른 아줌마네 아들 할게요.(57쪽)” 하고 외치고는 집을 박차고 나옵니다. 그런데 13층 집에서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사이, 주인공네 어머니는 그사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아이한테 미안해 하며 툇마루 창문을 열고 “아들! 아들! 빨리 들어와!” 하고 두 손으로 하트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도 있지만,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책을 죽 읽는 동안, 주인공네 어머니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아니 갑작스럽게 무엇인가를 깨달으면서 자기 아이를 꾸밈없이 받아들이는 마음그릇이 아닌 분입니다. 더구나 주인공네 어머니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왜 내 아이를 ‘다른 집 아이’와 대면서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우리 아이(아들)한테 사랑스러운 구석은 무엇일까?’ 들을 찬찬히 짚거나 살피는 이야기나 실마리는 한 가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모든 문제가 풀려 버리고 말면,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해지지 않으랴 싶습니다. ‘저 엄마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하면서 시큰둥해 하리라 봅니다.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틀림없이 마땅하고 알맞으며 좋은 이야기감을 찾아서 써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이야기감이라고 하여 늘 쓸 만한 책으로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좀더 곰삭여야 하고, 좀더 둘레를 살펴야 합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읽으라 할 책이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아빠도 읽으라 할 책일 텐데, 뼈가 없는 말만 가득하다면, 아니 뼈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재미나마 담지 못한 말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톡톡 튀는 사잇그림이 듬뿍 담긴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어린이책은 될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나 어머니들이나 또 아버지들이나 가슴에는 한 가지 고이 남아서 자기 삶을 돌아보며, 왜 ‘엄마 친구 아들’ 따위 허튼 말을 함부로 쓰면서 서로한테 생채기나 입히는 삶으로 서로서로 고달프게 하는가를 한 가지도 건드리지 못하고 맙니다.

 《엄마 친구 아들》은 섣불리 마무리를 짓지 말고, 2부를 새로 써서, 집을 박차고 나온 아이 마음을 좀더 차근차근 살피는 이야기를 더 쓰거나, 아이가 집을 박차고 나간 까닭을 헤아리거나 짚어나가는 어머니 이야기를 더 쓰거나 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4341.1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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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박남정 글, 이형진 그림 / 소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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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76 ― 자전거 못 타게 하는 나라에서 우리 권리란
 : 박남정,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 책이름 :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
- 글 : 박남정
- 그림 : 이형진
- 펴낸곳 : 소나무 (2008.10.27.)
- 책값 : 8500원


 (1) 학교와 자전거


 숱한 뺑소니 사고(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다가 차가 자전거를 친 뺑소니 사고)를 겪고 난 뒤탈로 마음껏 자전거 나들이를 즐기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둘레에서는 으레 ‘작은 차라도 하나 사서 타고 다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가볍지 않은 사진장비에다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사들이는 책도 많은데, 아기까지 있는 몸으로 어찌 다 짊어지고 다니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운전면허조차 일부러 따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차를 사라고 한들 소 귀에 읽는 불경일 뿐입니다. 저한테는 운전면허도 없지만 운전면허를 딸 생각도 없고, 앞으로 환경파괴가 하나도 없는 자동차가 나온다면 모르지만, 그때를 맞이하더라도 운전면허를 따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비록 사고 난 자리(어깨, 팔꿈치, 손목, 무릎)가 결리고 쑤시고 아프지만, 틈틈이 짧은 거리나마 자전거로 움직입니다. 장보기를 하면서, 볼일을 보면서, 골목마실을 하면서 자전거를 탑니다.


.. 그때였다. 교실 앞쪽 벽에 달린 스피커가 칙칙거리더니 교감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아, 알립니다. 당산초등학교 어린이 여러분. 특히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잘 들으세요. 학교 주변 빌라와 아파트 주민들이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세워 두는 바람에 불편하다며 항의를 하셨습니다. 에…… 또……, 학교 주변 도로도 사정이 좋지 않아 사고가 날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자전거 통학을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내일부터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절대로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면 안 됩니다.” “뭐야, 무슨 소리야?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  (16쪽)


 1987년 2월, 국민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앞으로 우리가 갈 중학교를 알려주는 담임선생은 저를 따로 불러서 “종규 넌 좋겠다. 앞으로 학교에 자전거 타고 다니겠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갈 중학교는 우리 국민학교를 통틀어 꼭 열여섯만 가게 되었는데, 집에서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가야 했습니다(사십 분 남짓). 다른 동무들이 많이 가는 ‘집하고 가까운 중학교’에는 뽑히지 않고(뺑뺑이였으니), 몇몇 아이들하고 멀디먼 데까지 가야 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동무들하고는 죄다 떨어질 뿐 아니라, ‘자전거 통학은 무슨 얼어죽을 자전거 통학. 누가 자전거를 공짜로 사 주기나 하나?’ 하는 생각에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 제가 갈 고등학교는 중학교 바로 옆에 있는 학교로 떨어집니다. 뺑뺑이질은 어김없이 괴로운 가시밭길만 선사합니다. 중학교 다니던 그 길은 왼편으로는 목재처리장이 있고 오른편으로는 폐수처리장이 있으며, 학교 뒤로는 화학공장이 있고, 그 옆으로는 돌산이 있었습니다(건물에 쓰는 돌을 캐는 산). 중학교 세 해 동안 이 모진 터전을 겨우 견디었다 싶더니, 고등학교 세 해도 이 모진 터전에서 숨막혀야 하는가 싶으니, 울고 싶더군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보금자리를 옮긴 해, 대학교 앞 신문사 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자전거를 몹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동무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린 다음 학교에 오곤 했는데, 그무렵 그렇게 집안살림을 거들며 공부하는 녀석이 몹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새벽 다섯 시 반쯤 일어나 어머님이 해 주신 아침을 먹고는 새벽 여섯 시 반 즈음 해서 학교에 닿아 아침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앞서까지 ‘교과서 아닌 책’을 읽으면서 마음닦이를 한다고 깝죽을 떨었지만, 정작 책삶에만 기울고 이렇게 새벽나절을 땀흘리 일하는 데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음을 느꼈어요. 이리하여 ‘나도 언제쯤 동무녀석처럼 새벽에 신문 돌려서 살림을 보태고 낮에는 공부하고’ 하는 삶을 붙잡을 수 있을까를 헤아렸고, 이 헤아림은 네 해 만에 이룬 셈입니다.


.. 솔직히 혜진이는 자전거 통학이 금지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집이 학교와 가까워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올 일도 없거니와 평소에도 자전거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  (19쪽)


 국민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괜히 선생님 말씀을 어기고 ‘했다가 들키면’ 각목이나 당구채로 몽둥이찜질을 받았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국민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만, 제아무리 선생님들이 뺨따귀를 올려붙이고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도 ‘옳지 않다’고 느낀 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일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들은 체벌과 주먹질로만 다스리려고 할 뿐, 사람과 사람으로, 또 말과 말로 문제를 푸는 민주주의를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지난 아홉 해와 다름없이 ‘하지 말라’는 당신들 말씀을 하느님 말씀처럼 섬기라고 우리들한테 한 주에 두 차례씩 아침모임을 하면서 우리 머리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게 보아도 옳지 않다고 느껴지는 일을 옳다며 따를 수 없는 노릇. 이때에도 중학교 때와 다름없이 선생님들은 발길질과 체벌과 얼차려와 점수깎이로 우리 머리를 깔아뭉개려고 했습니다. 초중고 열두 해라는 세월은 민주주의와 조금도 가까이 사귈 수 없는 나날이었으며, 우리 나라는 조금도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나라가 아님을 깨닫는 하루하루였습니다.

 이 열두 해를 더듬어 보면,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무는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교사도 없었습니다. 걸어서 오는 동무나 교사도 아주 드물었습니다. 적어도 시내버스를 탑니다. 다음으로 자가용을 탑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학교버스를 탑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럴밖에 없구나 싶은데, 처음부터 ‘자전거 타고 학교를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자전거로는 위험하니까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오지 말도록!’ 하고 다그치는 교장 교감 교무주임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2) 사회와 자전거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는 동안, 신문배달 자전거를 타고 ‘그리 넓지 않은 강의실 건물’을 오갔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학교임에도 걸어서 움직이면 ‘쉬는 시간 10분은 금세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잠깐 오줌 누러 뒷간에 가기도 벅차고요. 초중고등학교 때처럼 한 교실에서 배우고 교사가 왔다갔다 하는 틀이 아니니, 강의 하나가 조금이라도 늦게 끝나기라도 하면, 다음 강의를 맡는 강사는 ‘지각생은 안 받겠다며 문을 잠그는’ 일이 생기기도 해서, 자전거로 달리면서 오가는 일은 퍽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때에도 자전거를 타고 대학교 강의를 들으러 오는 선후배나 동무는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다만, 제가 타는 짐자전거 바구니에 담배꽁초를 휙휙 버리는 사람은 늘 있었고, 신문배달 자전거 바구니 바닥에 책이 긁히지 않게 깔아 놓은 신문지 한 장을 몰래 훔쳐가는 사람 또한 언제나 있었습니다. 신문배달 자전거이고 신문사 지국 이름이 굵게 적혀 있던 만큼 자물쇠를 안 채우고 살았는데, 세 해 동안 이 자전거를 타고 대학교를 오가는 사이 딱 한 번 도둑을 맞았습니다.


.. 신호가 바뀌자 민우가 먼저 출발했다. 새 자전거를 탔으니 사이클 선수처럼 폼 나게 쌩쌩 달려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다 사랑마트 앞길에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불록불록 솟은 보도블록 때문에 바퀴가 튕겨 오른 것이다. 롯데상가 앞에서는 숫제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다. 아무렇게나 주차해 놓은 차들이며 가게에서 내놓은 짐이 아침부터 길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로 차도로 오르락내리락 곡예를 하듯 자전거를 달려 학교 앞에 도착한 민우와 성태는 늘 하듯이 교문 앞 아세아 빌라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웠다. 민우는 이미 세워져 있는 서너 대의 자전거를 밀쳐가며 기둥 옆에 자전거를 바짝 세웠다. 그리고는 앞바퀴에 하나, 뒷바퀴에 하나, 열쇠를 두 개나 채웠다. “이 정도 해 두면 아무도 안 가져가겠지?” 열쇠가 잘 채워졌는지 끈을 흔들어 보기까지 하고도 민우는 자전거 옆을 떠날 줄을 모른다. “그렇게 걱정되는데 새 자전거는 왜 타고 왔냐?” “학교 올 때 아니면 탈 시간이 없잖냐. 학원 마치고 집에 가면 캄캄한 밤이고. 학교 안에 자전거 보관소가 있으면 좋을 텐데…….” ..  (10쪽)


 신문사 지국을 나와 출판사에서 일하는 동안, 책 나르는 일을 하자면 자동차 없이는 안 됨을 느낍니다. 그러나, 늘 길이 꽉꽉 막히는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전철로 움직이거나 자전거로 움직이면 한결 빠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 한 대 굴리자면 달마다 일꾼 한 사람 쓰는 돈이 들기 마련일 뿐더러 차값이나 보험값 들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차로 움직인다고 더 빠르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면허가 없으니 늘 얻어타고 움직이는데, 큰짐을 나를 때에는 짐차를 불러서 나르고, 여느 때에는 자전거로 움직이는 일이, 나무한테 고맙게 종이를 얻어서 책을 만들어 먹고사는 우리들로서는 마땅히 할 노릇이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업을 하면서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 모두들 코웃음을 칩니다. 서울 시내만 해도 자전거로 다니면 훨씬 빠를 듯하다고 이야기하면 술이나 마시라며 말허리를 뚝 끊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생각있는 일을 하는 어느 누구라도,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기 두 다리를 써서 자전거를 굴리면서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자기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지 배운 적이 없습니다. 가르친 사람이 없으니 배울 사람이 없습니다. 가르치는 책이 없으니 스스로 익힌다 하여도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더 많은 책은 읽고 더 많은 스승한테 훌륭히 가르침을 물려받았다고는 하지만, 삶으로 곰삭여서 엮어내는 마음밭을 가꾸는 ‘깨우친이’는 드물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환경운동가가 몇 안 되고, 자전거를 타는 진보운동가가 얼마 안 됩니다. 자전거를 타는 생협운동과 여성운동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자전거를 타는 교육운동이나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박정희 독재경제가 ‘검은 굴뚝에다가 노동자 착취’로 이루어졌음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검은 굴뚝에다가 노동자 착취’를 어떻게 씻어내면 좋을지를 헤아리거나 아는 사람은 씨가 말랐다고 할까요. 훌륭하다고 할 만한 생각을 엿들을 지식인은 둘레에 많이 보였지만, 훌륭하다고 할 만한 생각을 몸으로 옮기는 지식인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만나는 자리에서도, 만나고 돌아선 뒤에도, 그분이 쓴 책을 읽으면서도.


.. “솔직히 처음에는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 학교 다니기 편하겠다는 생각에 시작을 한 건데, 하면서 보니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 우리뿐 아니라 우리 후배들,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거창하게 말하면 지구 환경도 지킬 수 있는 일이고요. 그래서 어제 제가 집에 가서 시장님께 편지를 써 봤습니다.” ..  (73∼74쪽)


 어쩌면,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우리 형편에서는, 자전거란 한낱 ‘추억’인지 모를 노릇입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을 ‘추억’을 넘어 ‘우리 삶(현실)’으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을 줄 아는 지식인이 드물듯, 자전거를 추억이 아닌 우리 삶으로 느끼면서 스스로 땀흘리며 부대끼려고 하는 지식인이 드물더군요. 자기 몸을 써서 땀을 내는 일은 한결같이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면, 우리 몫으로 다른 이들이 땀을 흘려 주어야만 할까요. 우리가 먹는 밥과 입는 옷과 자는 집은, 내 손이 아닌 다른 이들 값싼 품삯으로 얻어야만 하나요.

 밥하기, 빨래하기, 치우기, 아기보기를 비롯한 온갖 집안일을 제 두 손으로 치러내는 지식인이, 아니 ‘배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자기 짐을 자기 가방에 넣어서 자기 어깨힘으로 나르는 사람, 또 자기 움직일 곳을 자기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려서 찾아가는 사람, 밖에서 밥을 사먹지 않고 손수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사람, 무엇보다도 이웃사람 목숨을 아끼면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일거리를 찾아서 즐기는 사람은, 아니 ‘배운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늘 궁금합니다.





 (3)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하는 나라


 베네수엘라 가난한 산동네 아이들은 자기한테 내려진 권리를 짓밟는 어른(공무원)한테 맞서서 다부지게 자기들 권리를 찾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그림책에 담겨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한테 기쁨과 웃음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서울 당산초등학교 아이들은 자기한테 주어진 권리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려는 어른(교장 교감과 빌라촌 주민)한테 맞서서 당차게 자기들 권리를 찾아냈고, 이 이야기는 이야기책 《초딩, 자전거 길을 만들다》에 소록소록 담깁니다.


.. “사실 학교에서 자전거 통학 금지를 했지만, 전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편하고 재미도 있어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선생님한테 들킬까 봐, 친구들이 보고 학교에다 이야기할까 봐 걱정하면서 몰래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참 바보같이 느껴졌습니다. 자전거 타는 게 죄짓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건 그래.” 환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전, 자전거를 안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친구와 사이가 벌어진 것도 같지만, 죄 지은 사람처럼 눈치 보며 자전거를 타고 싶지는 않았어요. ……” ..  (37∼38쪽)


 그런데 우리 나라 당산초등학교 아이들 앞길은 무척 거칠었습니다. 어른들(교장 교감을 비롯한 다른 교사들)은 ‘말 한 마디로 손쉽게 자전거 금지령’을 내렸고, 아이들은 ‘말 한 마디 대꾸도 못하는 채 그저 따르기만 해야’ 했습니다. 따르지 않고 몰래 자전거를 탔어도 마음 한켠이 켕기면서 답답했다고 합니다. ‘자전거 금지령’을 내려야 했다고 해도, 학교 다른 교사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든지, 아이들 생각을 들었다든지 하지 않고, 그저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만들어서 내려보내기만 할 뿐입니다. 더욱이,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자전거를 타고 학교나 일터를 오갈 권리가 있음에도, 이러한 권리를 지키지 않고, 외려 권리를 막거나 밟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학교 둘레 길 형편이 자전거 타기에 알맞지 않아서 자전거를 못 타게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학교 둘레가 자전거 타기에 알맞는 길 형편이 되도록 마음을 쏟고 정책을 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전거로 오가기에 알맞지 않은 길은 걸어서 오가기에도 알맞지 않을 뿐 아니라, 차로 오가기에도 나쁩니다. 우리들은 차를 교실 안까지 타고 들어가지 못하거든요. 더욱이 모든 학생과 교사가 자가용으로 다니게 된다면, 이리하여 서울이든 다른 도시이든 모든 사람이 자기 차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우리 나라 길은 어떻게 될까요. 모든 사람이 걸어서만 움직일 때, 또 모든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때에는 아무런 말썽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타면 말썽이 크게 생기고, 나라는 아주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 1886년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뜨겁던 자전거의 인기는 한순간 차갑게 식어 버렸어요. 그러다 20세기 후반부터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다시 치솟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많이 탈수록 선진국이라 불릴 정도지요. 이번에도 이유는 자동차.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동차가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대도시 사람들이 지금보다 딱 두 배만 더 자전거를 이용해도 공기오염이 줄고, 기름 사용이 줄고, 도로를 새로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이 줄고, 병원비나 약값이 줄어들어 3조 원 정도는 절약될 것이라고 합니다 ..  (97, 101쪽)


 자전거 수송분담률이 2.4%라고 하는 우리 나라인데, 우리 둘레를 돌아볼 때 ‘2%라는 숫자도 믿기 어렵다’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합니다. 우리 나라는 1%도 아닌 영점 몇 퍼센트밖에 안 되지 않을까 모를 일입니다.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어서 2.4%라고 해도, 두 곱이 늘어 5%가 조금 못 되어 나라살림이 3조가 줄어든다면, 네 곱이 늘어 10%가 되면 나라살림은 십 조원 넘게 아낄 수 있을 테지요. 이렇게 되면 미국 무역에 기대어 달러값이 솟느니 주식값이 떨어지느니 하며 걱정할 일도 많이 걷힙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할 일을 안 하면서 투정만 부리는, 아니,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지 않으면서 우리 삶터가 지저분하거나 엉망이거나 좋지 않다며 투덜거리고만 있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자전거길은 새로 만들지 않고, 찻길 50센티미터쯤만 페인트를 그어서 자전거한테 내주어도 넉넉합니다. 자전거 세울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면 건물 한쪽 빈자리에 마련하면 되기도 하지만, 자기 책걸상 옆에 접어서 놓아도 됩니다. 바퀴 큰 26인치짜리만 자전거가 아니라, 10인치와 16인치와 20인치짜리도 자전거입니다. (4341.1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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